철학의 모험 - 동녘출판사 철학 시리즈 1
미카엘 비트쉬어 / 동녘 / 199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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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는 누구인가요? 우리는 어디서 왔어요? 저것(저 사물)은 왜 저기에 있죠? 시간은 누가 만들었나요? 왜 착한 일만해야 하고 나쁜 일은 하면 안 되나요?····


어린이들이 자주 하는 질문들이다. 물론 지금 성인이 된 사람들도 어린 시절 이런 물음을 아버지나 어머니 또는 어른들에게 물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이런 물음에 직면한 어른들은 당황하기 마련이다. 무엇을 말해줘야 할 것인가? 옛날의 우리 아버지 세대들이 그랬고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로 궁색한 답변밖에 할 수가 없다.


우리가 예전에 궁색한 답변에 또 다른 물음을 제기한 것처럼 지금의 아이들도 또 다른 난해한 질문들을 연이어 쏟아낸다. 그것이 두려워 우리는 얼른 말한다. 학교에서 다~ 가르쳐 주니 학년이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고. 그러니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우리 경험상 학교는 이런 물음들에 대해서 결코 가르쳐 주지 않는다. 나이가 들고 성인이 된다고 해서 이런 물음에 대한 답을 저절로 알아가는 것 또한 아니다.


다만, 나이가 들면서 주변의 사물이 무엇이며 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하나 둘씩 아는 것 같으면(본질은 여전히 모르면서), 어렸을 때의 그 왕성했던 호기심은 차츰 사라진다.


특히, 어른들의 경우는 조급해 하고 아는 체하기 때문에 질문할 게 점점 없어지며, 호기심은 더더욱 사그러든다.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기, 이러한 유감을 날려버리고 어린이들이 하는 난해한 질문들에 대해서 좀 더 깊게 사고하는 습관을 가르쳐주는 유용한 안내서가 있다. 미카엘 비트쉬어라는 독일의 작가이자 철학자가 쓴 <철학의 모험>(동녘, 1996)이 바로 그것.


‘철학적 사색, 인식론, 도덕철학의 길잡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저자가 교사와 고교생 그리고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지만 여타 다른 철학 입문서와는 그 성격을 달리한다.


보통 철학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이 주로 읽은 철학 개론서나 입문서는 철학자나 철학사의 나열이라서 철학적 사색을 해보기도 전에 몇 페이지를 읽다가 덮기 일쑤이다. 친절한 설명이 있지만 계속 어려운 개념이 나오기 때문에, ‘철학은 역시 난해해’하면서 철학으로부터 멀어진다.


"어떤 점에서는, 철학의 요지를 정리해 놓은 철학 개론만큼 비철학적인 책도 없다. 일상의 사사로운 문제에도 고민을 하는 게 인간이데, 하물며 그런 고민과 일상적 소망의 뿌리에 있는 인생의 근본문제, 살의 의미와 목적의 문제를 ane고 따지는 철학을 어찌 간단히 개괄할 수 있단 말인가."(p10)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인간의 운명을 감동적으로 그린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이나 죽음과 영혼불멸의 주제를 깊게 다루고 있는 미겔 디 우나무노의 <안개>를 읽는 것이 낫다.

왜냐하면 이런 류의 문학들은 우리로 하여금 ‘나는 누구인가?’, ‘삶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하는 본질적인 물음들에 대해서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관심사가 다르겠지만 개인적으로 진정한 철학책이라고 하는 것은 독자로 하여금 갑작스런 전율을 일으키게 하면서 많은 물음을 쏟아놓게 하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일반인과 학생들을 위해 만든 비트쉬어의 이 철학적 사유의 입문서는 비록 230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이지만 진정한 ‘철학적 사유’를 가르쳐 주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은 구성과 내용 전개 방식이 독특하다. 여타 일반적인 철학 개론서들은 철학자위주로 개념을 설명하거나 전통적인 철학의 분야인 인식론, 존재론, 가치론 등을 분야별로 개괄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치고 있지만, 이 책은 “철학의 전통적인 몇 가지 문제를 소개하고 그 문제를 파고드는 가운데 독자 스스로 문제를 제기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책 전체는 3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 철학적 사고의 본질’, ‘2부 진리에 이르는 길’ 그리고 ‘3부 도덕의 의미’를 다루고 있다.


책 전체를 이루고 있는 이 세 범주의 구분은 각각의 세부 항목들이 짧은 에피소드들로 이루어져 있어 읽어 나가는데 전혀 부담감이 없을뿐더러, 전개되는 철학적 에피소드가 세 편의 주제와 너무도 잘 맞아 떨어지고 있다.


더군다나 철학자나 소설가의 생생한 원문과 의미심장한 삽화들은 논의 되고 있는 철학적 주제를 감동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철학적 사색을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이 에피소드 가운데에는 철학자나 문학가의 글도 소개되어 있다. 질문있습니까?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입니다(토마스 만), 스스로 생각해 보세요!(이상 에른스트 블로흐), 철학의 세 가지 규칙(칸트), 모든 것이 그저 꿈인가(데카르트), 의지의 자유 문제(쇼펜하우어), 에서와 야곱(콜라코프스키). 서커스 관람석에서(카프카), 범죄와 예절(하인리히 뵐) 등.


그 밖에도 그때그때의 철학적 주제에 적절한 이솝 우화나 사건 기사 등을 포함하고 있어, 매우 재미있게 생각의 나래를 펼 수가 있다.


수록된 모든 글과 삽화들이 주제와 관련하여 무언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에, 음미하다 보면 하나의 철학적 주제에 대해 심도 있게 사유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희한한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독특한 경험을 맛보게 해준 이 책의 저자인 미카엘 비트쉬어는 태어난 곳인 쾰른의 비퍼퓌르트의 김나지움에서 철학과 독일어를 가르치면서 작가이자 화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1980년 <모든 크레타인은 거짓말쟁이라고······크래타인이 말했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냈는데, 이 책은 출판되자마자 독일과 네덜란드에서 널리 읽히는 책이 되었다. 이 밖에도 <윤리학 입문>(1983), <너 자신을 알라>(1994), <놀랄만한 여행의 진실; 일상의 철학>(1996) 등의 저작이 있다.


아, 참! 이 책의 또 하나의 강점이자 아주 유익한 정보가 더 있다. 바로 각 철학의 기초 분야별로 읽어야할 철학의 입문서들을 추천해 주고 간략한 해설이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개인적으로 여기 추천되어 있는 대부분의 책을 갖고 있는데, 얇고 쉬운 철학의 입문서이자 학계에서 쉬운 걸로 정평이 나 있는 기본 서적이라는 점이다. 쉽지만 아주 중요한 저작물들이다.(책에서는 각 편이 끝나는 책의 마지막 에피소드에 실려 있다)

 

 

1편 책, 책, 책(철학 일반)

<철학적 사색에의 길>, 보헨스키, 동명사/종로서적

<철학의 뒷계단>, 빌헬름 바이셰델, 분도출판사/서광사

                 (이 책은 <철학의 에스프레소>라는 책으로 2000년 재출간 되었음)

<초보자를 위한 철학>, 데니스 위스망

<철학사>, 크리스토프 헬퍼리히

<철학입문>, 안첸바허


2편 당신의 눈의 위하여- 책소개(인식론의 범주)

<철학의 여러 문제들>, 버트란드 럿셀, 서광사

<객관적 지식>, 칼 포퍼

<현실은 얼마나 현실적인가>, 파울 바츨라빅

<평면의 나라>, 에드윈 에버트

<우라니아의 눈>, 귄터 슐테

<인식의 나무>, 마투라나&바렐라


3편 더 읽어야 할 책들(가치론/윤리학의 범주)

<도덕 형이상학의 기초>, 임마누엘 칸트, 아카넷

<윤리학 강독>, 디에테르 비른바허&노베트르 회르스터

<윤리학>, 존 매키

<윤리학 입문>, 아르노 안첸바허

<형이상학 없는 윤리학>, 귄더 파치히



잊을 수 없는 글---------------------------------------(p47 철학의 탄생)

(사진; 푸른 초원의 양 한 마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다-응시하는 눈)

초원의 양이 놀란 눈으로 나를 응시한다.

마치 나한테서 최초의 안간 남자를 보았다는 듯이.

응시하는 그 눈초리. 우리도 그 양처럼 섰다.

나로 말하자면, 난생 처음으로 양을 보는 것 같다.

-크리스티안 모르겐슈테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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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
폴 크루그먼 지음, 김이수 옮김 / 부키 / 2002년 8월
평점 :
절판


 

경제학 책을  읽는 일은 피곤하다. 매우 집중력을 필요로하기 때문이다.  우리몸이 비타민을 필요로 하듯이 우리의 정신도 경제학의 비타민을 필요로 한다. 비타민을 먹지 않으면 정신적 빈혈을 일으키기에...작년 12월 하순부터 교양경제학 책들을 독파하고 있다. <괴짜경제학>, <경제학 콘서트>, <서른살 경제학>,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 <열린 경제학>, <행동경제학>, <정치 경제 에세이> 등등.. 그리고 여기에 폴 크루그먼이라는 요상하게 생긴 기묘한 경제학 책이 추가된다.

 모두 만만치 않은 책들이지만 그래도 <서른살 경제학>이 가장 평이했다. 이론 습득에 유용했고 그런 핵심적인 이론이 현실경제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있어 유익했다. <경제학 콘서트>와 <누가 케인즈를 죽였나>는 그 보다 좀 어려웠다. 미시와 거시에 대한 이론의 다양한 면을 모색하고 있었기에...물론 3책다 교양 경제학에서 빼어난 책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절한 해설과 이론을 쉽게 이해시키는 책의 범주에 속한다.

 여기 이 3권을 뛰어넘는 현란한 독설가의 책이 있다. 원제 <The Accidental Theorist>(어설픈 이론가), 우리말 제목으로는 <우울한 경제학자의 유쾌한 에세이>로 부키출판사에서 번역되었다. 주로 경제지에 실렸던 에세이들을 모아 출간한 것이다. 상당히 난해하지만(글을 쓴 전후의 사건의 상황판단을 이해해야 하기에) 그렇게 유쾌하고 통쾌할 수가 없다.

크루그먼은 통념의 경제학을 뒤집는다. 저명한 정부관리, 경제학자, 정치가들이 언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책에 언급된 지당한 경제이론들의 허점과 급소를 맹렬히 공격하고 있다. 헌데 그 방식이 매우 시니컬하면서도 유머스럽다. 번역본이라 그 유쾌함은 상당히 반감됐지만 꽤 진지하게 2-3번 정독하면 그가 하는 빈정거리는 방식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어 그렇게 즐거울 수 없다.

비판을 해도 크루그먼식으로 하면 좋겠다.(나는 이사람의 비판의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책을 3번 정독해야 했다) 급기야 크루그먼식으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까지 마구마구 들게 만들었다. 신랄하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이론의 핵심을 바로 치고들어가면서 이론의 맹점을 복잡한 수식이 아닌 간단한 모델(이야기)로 논파하는 그의 글쓰기는 가히 경탄할 만 했다. 그가 24세에 MIT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천재임이 이 한권의 책으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크루그먼의 비판의 수위는 상당하다. 주로 관료나 잘나가는 동료 경제학자 그리고 저명한 경제 칼럼리스트를 공격한다. 특히나 공급중시 경제학, 다시말해서 우파(공화당) 정치인들을 집중적으로 공격하고 있다. 그도 그럴것이 괴상한 허점 투성이의 경제이론이 17년을 구가하는 것에 매우 불만인 듯 했다. (크루그먼의 성격 자체가 잘못된 이론에 기반한 권력 누리기를 매우 싫어하는 듯한 인상이다)

일명 래퍼곡선으로 레이건 시대이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바로 그 공급중시 학파의 이론가들을 비판하고 있다. 각종 이론과 문헌을 인용하면서. 그것두 신랄하고도 위트있게, 때로는 뒤통수치는 식으로.

책을 읽어보면 크루그먼이 독설가라는 사실을 확인 할 수 있다. 펠릭스 로허틴을 비판한 부분(p156)에서 잘 드러나 있다. “·······나같은 짜증나는 경제학자가 등장하여 그의 주장에 두어 가지 허점, 대학교과서에 나와 있는 내용을 애써 이해하고자 했던 사람이라면 저지르지 않았을 초보적인 실수를 지적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입니다. 어이쿠~ 또 크루그먼이지. 정말 거만한 친구야~”

 좀 더 크루그먼식 독설을 따라가 보자. 연준 부의장으로 거론되는 펠릭스 로허틴을 ‘어리석은 4%론자’로 빈정거리고(p431), ‘어설픈 이론가’라는 부분에서는 롤링스톤 기자 윌리엄 그레이더가 쓴 <하나의 세계로 가는가; 글로벌 자본주의의 조울병적 논리>라는 책의 말도 안돼는 허점을 핫도그와 롤빵생산 이야기로 파헤치면서 어떻게 이런 허무맹랑한 책이 그렇게 유명세를 타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꼬집는다. ‘다운사이징의 다운사이징’에서는 실종사건 이야기(유괴)로 노동부 장관인 로버트 라이시를 신랄하게 비판한다. “얼굴 없는 유괴와 마찬가지로 다운사이징은 실제 문제의 작은 일부분이면서도 얼굴을 파헤치기에 완벽하게 촬영준비가 된 비극이라는 점이다.”(p33)

크루그만의 글쓰기는 이렇듯 그럴듯한 학자의 대단히 인상적이고 현학적인 말들 속에 감춰진 기본적인 이론의 허점을 맹렬하게 공격한다. 빠져나갈 구멍 없이 완벽하게 KO시킨다는 느낌. 그가 하는 말은 교주처럼 다~ 맞아 보인다.(진짜 모두 옳은 사실을 지적한다) 27편의 유쾌한 에세이들은 버릴것이 하나두 없었다. 에세이 제목 하나하나 속에 그의 재기넘치는 독설이 숨어있었다.

 크루그먼이 하는 경제학적 비판은 다음과 같다. 일단 동료학자나 유명한 경제칼럼니스트(대체로 공급중시학파이다)의 어떤 문제작을 읽고 거기에 대한 경제학적 반론을 가한다. 그 비판의 대상으로 선택되는 대상은 매우 잘나가고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텍스트이다. 그리고 그럴듯하게 쓰여지고 과대포장된 잘나가는 책이 엉터리라는 걸 증명한다.

그 증명법 또한 명쾌하길 이를데없다. 언제나 단순하고 재미있는 모델로 이론이 안고 있는 허점을 논파해 낸다. 우스울정도로 단순화된 모델안에는 경제학적 핵심사상이 담겨져있다. 놀라운 통찰력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크루그먼의 지적에 따르면, 이 단순화된 경제에 관한 가상적인 이야기들을 갖고 시운전 해 보는 일이 대부분 잘나가는 경제학자들에게 품위를 떨어뜨리게 해 점잖은 경제학자들이 의도적으로 그런 시도를 회피했다는 것이다. 바로 자명하고 쉬운 그 진리를···

크루그만은 말한다. “진정한 경제 전문가가 행하는 방식은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데 관한 이야기를 갖고 시작한다. 그 이야기는 언제나 세계를 단순화시켜 복잡성을 배제하는데 도움을 주는 표상의 형태를 띠는 모델입니다. 일단 모델이 있으면 그것이 사실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물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합리적으로 잘 들어 맞으면, 그것이 내포하는 중요성은 어떠한 것인지 또 그 반대양상은 어떠한 것인지를 물을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정책적 견해가 모델로부터 도출되는 것이며 그 외에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p154)

“모델이란 것이 때로는 우리들 자신보다 더 영리하다는 점입니다. 어떤 일관성있는 모델에····훨씬 해박해 집니다. 여러분들이 탁아조합에 관한 나의 이야기를 진정 이해하셨다면 여러분들은 르네상스 위켄드에 참석하는 멤버들의 99%보다 통화정책과 경기순환의 본질에관해  더 많이 알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p155)

 포춘지의 서평에서 케인즈 이후로 글을 가장 잘 쓰는 경제학자라고 그랬는데, 진짜 빈말이 아니다. 크루그먼은 진짜 재미있게, 경제이론을 갖고 사람을 웃게 만든다. 희한한 능력이다. 비판의 신랄함과 현상을 뒤집어 보기 그리고 유머스런 면에서는 에코의 글쓰기 방식과 비견될만하다는 것이 주관적인 생각. 

에코의 글쓰기 방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방대한 지식의 배경과 이탈리아 문화를 이해해야 하듯이 크루그먼이 하는 비판의 논의 구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시경제학 이론의 포괄적인 이해가 급선무였다. 크루크먼의 이론 응용력은 매우 뛰어나서 거시경제학이 정부정책에 어떻게 잘못 적용됐는지 논파하는 이론의 맥락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물론 단순하고 명확한 모델이 있었지만. 친절하게도 자기가 하는 모델을 이해하면 머리 나쁜 우파 경제학자보다 낫다는 칭찬도 덤으로 해줘 모델을 이해하기 위해 애써야 했다. 오랜 경제학을 공부한 우파 경제학자들보다야 낫다는데, 머리를 싸매고 이해하는 수밖에. 아~~고약한 크루그먼. 그런 고약한 칭찬으루다가 자신의 이론을 흡수하게끔 만들다니..."정말 거만한 친구야~!"라는 말을 안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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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트 상식사전 스페셜 - 비범하고 기발하고 유쾌한 반전, 대한민국 1%를 위한 상식사전
이동준 지음, 이관용 그림 / 보누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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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 시절을 돌이켜 보면 항상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는 친구들 주위에는 사람들이 끊이질 않았다. 더군다나 모인 그들의 얼굴은 항상 즐거운 표정이었다. 유머감각 있는 친구들은 어디서나 인기다. 천성적으로 썰렁한 나는 그런 그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유머감각으로 사람들을 후리는 그들의 능력에 질투심이 들기도 했으니까...그런데 알고 보니 그들은 열심히 그런 방면의 책을 탐독하고 자기것으로 승화시키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었다. 음...역쉬 열정과 노력밖에는 없나부다..

인터넷이 발달하니 여기저기 유머가 넘쳐난다. 진짜 재미있는 유머만을 골라 메일로 보내주기도 한다. 이런 유머들을 빨리 캐취하여 그 유머를 모르는 다른 사람에게 써먹는 민첩한 사람들도 있다. 썰렁한 사람을 위한 개그집 비스무리한 책도 널려있다.
난 재미없는 사람이고 보니 가끔 이런 류의 책을 구경해 보곤한다. 읽지는 않고 구경만...나도 그런 능력을 길러볼까하고...언제나 그렇지 못하지만 서도..

이런 종류의 책을 읽으면 우울한 기분을 날려버릴 수 있어 좋다. 하지만 읽고나서도 어디다가 분류를 할지 난감하다. 에세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식을 키워주는 교양도서도 아니고...그러면 어떤가 읽고 유쾌하면 그만인것을..

이 책은 유머집이 맞기는한데, 옛날에 인기있던 만득이씨리즈나 최불암씨리즈를 모아놓은 유머집과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르다. 싸구려 유머가 아니라 품위있는 유머라할까...부제가 밝히고 있듯이 비범하고 기발하며 유쾌한 반전이 돋보이는 그런 책이다.

물론 키득키득 웃을 수 있는 요소도 충분하다. 배를 잡고 웃을 수 있는 애피소드도 있고 은근히 입이 돌아가게 하는 내용도 있다. 애피소드 마지막을 읽어야 전체적인 맥락을 잡을 수 있는 깜직한 글도 마음에 든다.

무엇보다 "그래 맞아!"하면서 무릎은 탁 치게 하는 공감가는 글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사랑과 우정, 나라마다 다른 문화, 여행, 일과 컴퓨터, 정치와 역사,나이듦과 추억 등의 주제로 전복적인 사고를 하는 저자의 기발한 상상력에 박수를 쳐준다.

위트상식사전이라고 타이틀이 붙어있지만 상식사전이라 부르기에는 그 유쾌한 반전의 사고가 그분류를 무색하게 할 정도이다. 개인적으로 유머에 관심이 없어서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아는 유머는 거의 없고 언제나 난 무릎을 치고 있었다..특히 남녀관계를 소재로 쓴 글들이 압권이랄만 했다. 거기서는 언제나 바보같이 무릎을 치고 고개만 끄덕거리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책을 읽고 있는데, 이 책을 먼저 읽은 누군가가 그랬다. 저자인 롤프 프래드리히가 그의 동료학자와 그가 가르치는 학생들과 함께 이 책을 집필했다고. 음...웃긴 책을 진지한 학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집필하는 과정을 생각하니 그것도 또한 웃긴다. 웃긴것두 진지하게 연구하나 부다...

유쾌한 저자들의 유쾌한 발상과 내용에 책 읽은 후에도 계속 입가에 웃음이 남아있어 흐믓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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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禁의 세계 - Japanese Eros Manga, Anime, Game
김봉석, 김의찬 지음 / 씨엔씨미디어 / 200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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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금의 세계>, 김봉석&김의찬, CNC


일본 성인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왜 우리는 성인문화와 포르노를 동일시하는가? 왜 일본 만화는 유난히 성과 폭력에 관대한가? 성인용 애니메이션의 등급분류와 유해논쟁은? 왜 일본 애니메이션은 미국과 유럽에서 큰 인기를 얻는가? 애니메이션과 게임이 벌이는 치열한 공방전, 혹은 협력은?

이와 같은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싶다면 이 책을 슥 한번 훑어 보면 된다. 이 책은 아니메를 위주로, 만화와 게임에서 성인 등급에 해당하는 작품들을 선정 소개 하고, 그것이 왜 성인물이며 왜 왜곡되어 우리나라에 유입되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1장:18禁이란 무엇인가?, 2장:일본의 만화, 영화, 게임의 발전사, 3장:일본만화의 매력, 4장:신나는 일본만화 취재기5장:한국 성인 만화의 가능성 등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말이 18금이지 일본 만화와 아니메에 대한 총체적인 소개로 보아도 좋을 듯 싶다. 

 이 책은 애니와 게임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2장부터, 만화에 더 매력을 느끼는 사람은 3장과 4장부터 읽기 시작해도 무방하게 구성되어 있어 취향대로 읽거나, 관심있는 부분만 읽어도 되게끔 구성된게 장점이다.

일본 아니메에 관심이 많은가? <카이트>, <바이올린 잭>을 아는가? 만약 일본 아니메에 관심이 많은데 이런 작품들을 모른다면 이 책을 구해서 읽어보는 게 매우 유익할 것이다.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하다. 일본의 아니메는, 특히 성인 대상 아니메는 그만큼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으니까.

 이 책은 일본 만화와 애니 뿐만이 아니라 만화와 애니에 포함된 문화의 중요성을 수용자측에 인식시키려는 노력을 한 흔적이 책 곳곳에 베어있어, 일본 만화나 애니를 주체적으로 수용하는 시각을 일깨우고 있다. 더 나아가 그런 시각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만화 애니의 성인 지향적 작품을 조심스럽게 진단까지 하고 있다.

<클릭! 일본문화>라는 책 이후 두 번째로 호흡을 맞춘 저자들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점은 '난 척'하는 글이 되지 않게 하려고 했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애니 비평책이 전문가의 위치에서 감나와라 대추나와라 하는 식의 기분 나쁜 글이 아닌, 수용자의 시각을 중요시 했다는 점.

그래서 그런지 쉽게 읽히고, 읽고 나면 일본 성인 애이에 대한 나름의 체계를 잡을 수 있는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결코 거부감이 들거나 하지 않는다.

 

[덧붙임]
*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고 새로운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번역되어 나온 <캠퍼스 러브스토리>라는 만화가 있는데, 아실분은 아시겠지만 약간 변태적인 내용을 코믹하게 작품입니다. 그런데 이 작품의 원작이 <동경대학 이야기>라는 사실과 원작자 에가와 타츠야가 고교 선생님출신이라는거. 그리고 그의 작품 대부분이 지나칠 정도로 리얼한 성묘사로 일본에서도 정평이 나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출간된 작품은 상당한 양이 짤려서 편집됐다는 군요. 하기야 이 작품을 처음 보시는 분들은 상당한 문화적 충격을 각오해야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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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배수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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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며]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

이 통쾌하고도 자극적이면서 웬지 불편한 타이틀. 이 4단어 만큼이나 이 책을 집약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건 없을 듯 싶다. 일인칭 관찰자 시점인 내가, 이제... 상대방인 애인나부랭이한테 지겹다고 과거를 날려버린다.. 쿨하게 말하는 이 4단어...정말 타이틀 하나 잘 뽑은 거 같다.

쿨걸 배수아의 장편소설인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5년전에 현대백화점 책코너 가판대에서 잠시 구경했던 책이다. 제목이 하도 재미있어 배수아라는 작가를 내 머리속에 각인 시켜두고 있었다. 그래서그런지 간간히 문학상집에 묶인 그녀의 단편들을 만나보고 배수아 작가를 좋아하게 됐다. 내가 배수아 작가를 좋아하는 건 다름아닌, 작품에 가식이 없다는거. 뭐든지 작가가 쓰고 싶은 대로 쓴다는 거. 그래서 쿨하다는거...항상 배수아를 칭할 때 나는 쿨걸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읽기]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는 작가가 뭐라든, 작가의 자전적 생각이 가장 많이 담겨 있는 소설이라는 게 내 주관적인 평가다. 연애에 대한 배수아식 고찰이라고 해 두고 싶다. 쿨걸인 배수아는 자신이 분신인 유경을 통해 쿨걸의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보여진다. 읽으면서 나는 개인적으로 배수아의 분신이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작가의 말에서, 아니라고 두루뭉실하게 말하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 유경이 전투적으로 쏘아내는 냉소는 바로 배수아의 생각이라고 해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수의사 자격시험에 모든 걸 걸고 생화학 시험에 매달리는 유경과 "생각이 앞으로 나가지 않을 때 무한급수와 확률분포 같은 문제를 풀고 있는" 배수아는 닮아도 너무도 닮아있다. 세상에 생각이 앞으로 안나간다고 수학문제를 푸는 사람이 있다니~

"어리석을 정도로 고집이 세고 자기 중심적이고 타협이나 화해를 싫어하고 자신과 가까운 사람에게 특히 냉정하고 자신은 아프거나 빚을 지거나 남의 도움을 빌려야 할 정도로 곤란에 처하는 일은 영영 없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으며 종교나 도덕이나 사랑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것에 관심이 희박하고 앞으로 나가는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한 사람. 생물학적 성별은 피메일이고 나이는 33세. 독신. 건강상태 양호. 중산층 출신이나 노동 의지와 독립심이 특이할 정도로 상당히 강하다. 어떤 점에서는 과겨하기 조차 하다."(217p)

이소설의 주인공 유경의 인물 설정이다. 한 마디로 까칠한 노처녀라고 하면 될 것을.. 이 소설은 이 까칠한 마르크스 걸인 유경이 자신의 직장 부원장인 길과 옛 애인 교진 그리고 그녀들의 친구와 논하는 <사랑과 전쟁>이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유경이 다니는 직장에서 새로 부임한 40대의 부원장과 썸씽이 있고 난 후 섹스 파트너로서 유경을 원하는 길과 길에게 끌리면서도 감정에 질퍽거리는 걸 참지 못하는 유경의 내면적 투쟁이 줄거리의 한 축이다. 그리고 옛애인인 교진을 만나면서 갈등이 심화되고 연애의 진정성에 대한  회의와 그 탈출구를 찾는 과정이 쿨하게 그려진다.

 한편 유경과 그녀의 친구 넷이 정기적으로 모여 떠는 수다가 책의 색다른 재미를 더해주고 있다. 노처녀의 한탄과 결혼관 그리고 남자에 대한 품평과 서로에 대한 애증섞인 질투와 상처주기. 그리고 동생의 결혼에 쯔음하여 가족에 대한 비판과 자학이 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 책의 제목은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이다. 여기서 나는 유경이고 너는 길과 교진이다. 길은 유경이 다니는 회사의 부원장이고 교진은 유경의 옛 애인이다. 교진과는 쿨하게 헤어졌다. 교진은 연애의 정점에서 연애의 허망함을 알게 해준 사람이었다. 서로 동의하에 쿨하게 헤어졌다. 겉으론 쿨하게 헤여졌지만 사랑했던 사람과 헤어짐은 그녀에게도 고통이었나 보다. “....헤어짐이 아프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건 오만이다.”라고 한 그녀의 추억 속에 잘 나타나 있지 않은가. 아무리 전투적이라도 그녀는 여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에 빠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다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교진을 만난다. 비록 쿨하게 헤어졌다 하더라도 그와는 연애의 진정성과 정점 그리고 청춘을 함께 했던 사람이었기에 유경에게는 그리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선뜻 전화번호를 불러준 유경의 태도에서도 알 수 있다.

아무리봐도 ‘지겨움’의 대상은 길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길은 한 때의 원나잇 스탠드의 대상이기에는 너무 무겁다. 연애의 정점에 올라가 본 그녀에게 또다시 구태를 반복한다는 건 그녀 자신에게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유경은 과거의 애인 교진과 현재의 불안한 관계인 길 사이에서 갈등한다. 길보다 교진은 연애에 있어 더 진정성을 갖췄지만 그는 가난했다. 길은 여자들이 바라는 모든 것을 가졌다. 중후한 멋, 재력, 그리고 사회적 위치. 하지만 그는 유부남이고 그와 연애를 한다는 자체는 유경에게 뻔한 결말이 예비된 불륜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면 니가 지겹다는 대상은 누굴까? 그것도 바로 이 시점에. 이제 지겨우니 과거에는 지겹지 않았음을 추론해 볼 수 있고, 그 대상은 교진 일수밖에 없다. 하지만 위에서 잠깐 살펴본 대로 교진은 지겨움의 대상이 아니지 않는가. 이미 끝난 상태다. 대상은 길 일수밖에 없다. 따라서 유경은 길과 같은 자유주의로 무장한 여자들을 사냥하는 사람에게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라고 쿨하게 날려주고 싶어한다.

 “지금 당장 나에게도 꿈이 있다. 탈한국도 아니고 돈도 아니고 프라이드도 아니다. 바로 웨이터가 서 있는 저 문으로 누군가가 걸어오는 것이다. 근사하게 옷을 차려입고 있는 척하는 계급의 그런 사람이. 상대편보다 잘났다고 생각하는 거드름과 자신이 아주 중요한 일을 하는 존재라느 오만한 광용으로 뭉친 사람이. 그리고 나를 쳐다본다. 헤게모니의 승자가 된 자신 만만한 미소를 띠고, 바로 그 순간 그 사람에게 아주 쿨하게 말해 주는 것이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나는 이제 니가 기겨워, 하고.”(pp207~208)

여기까지 본다면 유경의 지겨움의 대상은 분명히 길이다. 하지만 갈등하고 고민하다가 유경이 내린 결론은 어처구니 없게도 탈연애주의 였다.

 “나에게 교진과 길이다른 점은 무엇인가. 없다.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도 나 역시 자유주의자인 삼십대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친구들에게 얘기하는 순간 나 역시도 길에게 상당히 끌리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인격자나 도덕군자하고만 같이 잘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세상 누가 완전한 인격을 가졌을까. 나 자신도 도덕보다는 스스로의 열정을 선택하지 않았는가 말이다.(212p) 계속해서 그녀는 말한다.

때론 나도 남자가 그리운 밤이 있다. 진짜 섹스가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길이라도 괜찮고 교진이라도 상관없다. 그들은 나에게 정도으 차이일 뿐 어차피 마찬가지인 사람들이다. 대개 미덕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더 마음이 끌린다거나 나를 더 생각해 준다거나 도덕적으로 장애가 없다거나 순수하다거나 심지어는 사랑한다거나 하는 것은 모두 다 무의미한 핑계일 뿐이다. 결국 인간은 자기 자신 말고는 아무것에도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섹스에 명분은 필요없다. 사랑하지 않는 섹스에 죄의식을 느낄 필요도 없다. 길이 어떻게 생각하고 있건 내 알 바 아니다. 그는 그의 입자에 나는 나의 입자에 충실할 것이다. 마무런 책임도 과장도 미화도 없는 진짜 섹스 말이다.(213p)"

"미라: 너를 찾는 데 남자야. 누군데 그래?

유경: 길

미라: 만나러 간단 말이니? 그런 거구나

진숙: 마음을 정리했다고 하지 않았어?

유경: 그와 관계를 갖기로 정리했어.

진숙: 그를 사랑해

유경: 무슨 바보 같은 소리.

나는 코웃음 치며 일어섰다. ····겁낼 것이 무엇인가. 나는 연애라는 게임에서 패배하지 않는 방법을 안다. 그것은 ‘탈연애주의’이다.(pp214-215)"

이렇듯 그녀는 마지막에 가서 길의 정부가 되기를 결심한다. 그러므로 나는 이제 니가 지겨워의 대상은 교진이고 그녀를 거쳐간 연애라는 이름하의 모든 대상이 지겹다는 말로 귀결된다. 유경은 말은 쿨하게 했는지 모르지만 최종적인 결정은 쿨하지 못했다. 결론에 이르는 추론 과정이 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탈연애주로 포장하기에는 너무 어설픈 추론이다. 결론은 마광수의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라는 입장보다 나을게 없어 보인다. 마교수의 다른 작품에서도 보여지는 자유연애주의와 탈연애주의는 무엇이 다른건지. 본질은 똑같은데 말이다. 과대포장이랄까..

 
[나오며]

책을 너무나 재미있게 읽었다...읽으면서 막 웃었다. 유경의 입을 빌어 말하는 배수아의 냉소적인 말이 너무도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여자들이 막다른 골목에서 외치는 결혼을 일종의 폭력이라고 서슴없이 말하고, 가난한 대학 강사에게 시집갈 결심을 하는 친구 자연에게 "너 청록파 시쓰니?"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부분에서 푸하하 웃음이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배수아식 자유주의적 독신관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자유란 더 이상 읽은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라는데...(이웃 블로그에서 좋은 표현이 있어서리..) 자유의 부산물일수밖에 없는 고독을 피해 쾌락으로 몸을 던지는 유경의 어설픈 철학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가 없단 말이다. 독신은 다그런가? 독신은 무엇으로 살지?...라는 대답에 유경처럼 대답하는 게 삶의 쿨한 대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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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어차피 인생이 초이스라고 말한다면 이것이냐 저것이냐 그것이 문제가 아닌가. 난 가정경영 따위에 관심이 없고 요리나 육아도 하고 싶지 않다.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다. 난 다른 것이 더 좋다. 땀을 흘린다면 다른 것을 위해서 흘리고 노동한다면 다른 것을 위해서 하고 싶다. 난, 다른 것에 걸겠다. ........세상을 너 마음대로 사느냐구? 그래, 난  마음대로 살고 싶어. 남들 하는 대로 살고 싶지는 않아. 아, 난 그래서 결혼 안 해. 남자가 필요하다면 같이 자겠어. 하지만 결혼을 전제로 남자를 만나고 싶지는 않아. 난 그게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고 동물을 학대하는 것보다 더 이상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어. 절대로." (72p)


 

덧붙임..

나는 배수아의 소설이 좋다. 비록 그녀가 나와 다른 생각으로 작품을 쓰지만 약간 어설퍼 보이는 문제의식이 좋다. 대부분 해답이 없지만 서도..작품의 완숙기로 접어들어 소설이 세련된 맛을 풍기더라도 데뷔때의 이런 문제의식을 지속적으로 가져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 작품은 그녀의 첫 장편소설 데뷔작이란다.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채 문자화 됐다나... 하지만 그런 면이 더 좋다. 완전하지 않더라도 항상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면을 신랄하게 비꼬고 풍자하는 ...그 속에서도 유모가 빛나는 그런 시도가 밋밋한 완성도 높은 작품보다 훨씬 값지다는 게 내 생각이다. 씩씩하고 대담한 그녀의 글을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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