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바이러스로 어수선한 상황이고 

내일 학교에서 보낼 안내에 따라 원격 수업에 쓰일 강의 녹음(녹화) 어떻게 할 것인가 결정해야 한다. 

지금 생각엔 전화기로 (아이폰 5) 10분 단위 (녹음 후 이메일로 보낸다면 10메가 이하여야 하는데 10분 분량이면 6-7메가 되는 거 같다) 녹음하면 되겠다 쪽이긴 한데 


그건 니생각이고. 

일 수도 있다. 그런데 아이폰, 거의 쓴 적 없는 녹음 기능 이제 와서 써보니 

완전 쩔었다. 고물같은 아이폰 5임에도 대강 아무렇게나 녹음하는 것임에도 음질이 고통스럽게 선명함. 

거의 환생임. 실물보다 나음.  


사태에 자체 해결의 방향이 있을 것으로.


마르틴 부버의 (.......... 그렇다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오늘 우리는.....) 저 책. 

바슐라르가 서문을 쓴 불어판. 여기 바슐라르가 쓰는 여러 미스테리한 문장들 중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 

이런 문장이 있다. 


저런 문장을 의미심장하며 동시에 미스테리하게 (해석이 필요하게, 해석이 영원히 필요하게) 쓴다는 것. 

사상가냐 아니냐의 기준 하나가 여기 있는 거 아니냐 생각했다. 니체는 기독교로 인한 인간 정신의 부패를 말하면서 

"이웃 중독" 지목하기도 한다. 니체의 탁월한 독자였던 바슐라르가 몰랐을 리 없는 이웃 중독. 이웃 중독을 

잘 알면서 동시에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고 쓸 수 있었던 바슐라르.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오래 이웃이었던 분이 있었다. 식당 일 하시다 쉬는 중이었던 할머니. 

나를 너무 좋아하셨는데 


나라서 좋아하신 게 아니라 

이웃이라서. 


이런 건 ("우리는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는 바슐라르나, 그 말의 예가 되었던 실제의 이웃이나) 

감정의 뉘앙스를 알면서 나이 든 노인들이, 그런 노인들이나 이해할 무엇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내가 아직 

노인은 아니겠지만 30대의 나라면 지금 내가 여기 쓰고 있는 이 문장들, 이해하지 못했을 거 같다. 


아무튼 그 할머니. 홍제동으로 이사가셨는데 

자주 생각한다. 나도 이사하고 싶어진 게 그 할머니가 이사갔기 때문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유튜브 better than food 서평 채널에서 

J. M. 쿳시의 Disgrace 서평할 때 "metaphysical terror in the form of a page-turner"라는 

기가 막힌 표현을 썼다. 형이상학적 테러인데 책장이 술술 넘어감. 그 책이 그런 책이었다고? 

내가 읽은 중에서 그런 책이 떠오르지는 않았으나 저 말에서 바로 연상되는 무엇인가 있었다. 

알던 세계는 붕괴하고 새로운 세계는 서서히 지어지는? 무너지며 동시에 세워지는? 모든 문장이 이중 작업을 하고 있는?


쿳시 책 바로 구해 봄. 

그리고 첫 페이지에서 바로 관심이 사라졌는데 

50대 영문학 교수인 남자 인물이 주기적으로 찾아가 섹스하는 매춘부를 가리켜  

그녀가 그의 딸 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따지면 남자는 12세에도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는 

문장이 첫 페이지에 나온다. 매춘부는 20대겠고 그리하여 "technically speaking" 50대인 그의 딸 뻘이다, 그러나 

그러려고 한다면 12살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 


무성의하다는 느낌이 듬. 

농담도 아닌 것이, 비판도 아닌 것이. 그녀는 그의 딸 뻘이다까지는 

넘어가지만 12살도 아버지가 될 수 있다는 용서 못하겠다는 심정이었다. 이거 막 쓴 거 아니에요? 






이 채널, 기가 막힌 표현으로 생각을 자극하기도 하지만 

단순명료한 표현으로 그럴 때가 더 많다. 유튜브에서 개인이 운영하는 본격 철학 채널과 비교하면 

언어가 느슨한 편이다. 그러고 보면 분명 철학에 (문학보다 더, 아니면 문학과는 달리) 엄밀하고 정확한 

언어를 쓰라는 압박이 있지 않나는 생각도 든다. 어쨌든 철학 채널에서 개념들이 무기처럼 쓰이는 데 반해 

이 채널에서는 그러지 않는다. 


"이 책은 위대한 회고록이 무엇을 하는가 알게 해. 

모두가 자기 진실을 말하기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모두가 외로운 곳에서, 우릴 조금 덜 외롭게 한다는 것." 


리디아 유크나비치 책 서평 동영상에서 

.... 저 단순명료한 말이, 불시에 가슴 침.  


이어서 그는 이 책을 추천할 독자에 대해 

"당신이 실패자거나 아웃사이더라면 읽어라. 

당신 삶이 지금까지 잘 풀려왔다면, 당신에게는 권하지 않겠다." 이런 말 하는데 

당신 삶이 잘 풀려왔다면......... 이런 말 웃기게 할 수 있기. 독서인의 능력 아닌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독창적 사상가들의 특징이 무엇이냐. 

위의 동영상에 따르면, 그들은 계획대로 하지 않는다. 그들은 데드라인을 넘긴다. 

그들은 미루고 또 미룬다. 미루는 동안 그들은 새로운 도전과 영감에 노출되고 

새로운 통찰들을 접목한다. 다빈치는 16년에 걸쳐 고치고 또 고치면서 모나리자를 그렸다. 


모나리자가 눈이 번쩍 뜨이는 느낌이라거나 (아무튼 그림알못에게는) 천재성으로 압도하는 

그림이 아니다보니 다빈치의 16년 세월은 그리 좋은 예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하나마나한 말일 것이다. 

정반대 주장, 그들은 서두른다, 그들은 미리 온다, 그들은 주어진 시간에 맞서 달린다, 그들은 동시대인들을 앞설 뿐 아니라 후대인들도 앞선다, 이런 주장도 비슷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낭비한 긴 세월 볼 때마다 

'피꺼솟' 되는 입장에서, 내게 그 세월 동안 일어난 일도 저런 것이었으면.......... 

염원해 보았다. 물론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며 해서 미루고 미루던 긴 세월 뒤 

생산력 폭발 같은 일이 일어난다하더라도, 스케일 보정이 필요하고 보정한다면 극미미함이 남을 거라서 

염원은 숲으로 돌아가겠. 





책이 있으면 뭐하냐 찾을 수가 없는데. 프로이트 책들도 각자 알아서 

잘 안 보이는 데 있던 것들 찾아둠. 이것들 외에 더 있다. 더 많이 있다. ㅎㅎㅎㅎㅎㅎ 

읽지는 않았으나 갖고는 있다. 다수. 


거의 다 썼다고 생각했던 페이퍼를 

아예 새로 쓰고 있는데, 새로 쓰면서 가는 방향이 옳고 

여기서 생기는 좋은 변화가 있다고 (글쓰기의 면에서나, 아무튼..... 뭐 '사유'의 면에서나) 알아보이는 

느낌인 한편 


정말 너무너무 

늠흐늠흐 피가 마르고 숨이 막히게 

어렵다. 오늘도 고생함. 고생이라 불러도 된다. 아무 부끄러움 없이 

고생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겨울 동안 한 달에 30분도 안보게 되던 넷플릭스 결국 해지. 

그런데 유튜브는 아마 한 달에 적어도 20시간은 볼 거 같다. 밥 먹을 때 거의 늘. 

산책할 때 자주. 자기 전에도 꽤 자주. 


관심 주제로 찾으라면 무한히 찾을 수 있는 유튜브. 

그런데 가끔 (생각해 보면, 너무 가끔. 아주 가아아아아아끔) 

주제 내용도 내용이지만 이미지에 매혹되기도 하는데, 이 동영상이 그러하였다. 


말에서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이 

이미지에도 해당할 거 같다. 아주 작은 차이인데 

어떤 건 단지 유치할 뿐이고 쉽게 잊히지만 어떤 건 

경의가 담겨 있고 사무침. 


보면서 

울프 책들 근처 한 곳에 모아 두고 

(지금 각자 제 갈 길, 해산된 상태다. 좁은 공간이 감당 못하게 책이 많아지면서 

여러 번 책더미들을 이리 옮기고 저리 옮기고 하다 보면....) 페이퍼 쓰는 때가 얼른 와야 한다고  

기원했다. 새 책으로 시작해 탐독 후 책이 부풀어오르는 이미지가 특히 독서의지 부추기기도 한다. 


<등대로>. 울프 책들 다 그렇겠지만 

특히 <등대로>. 이 책에 관심을 진지하게 갖기도 사실 쉽지 않다. 이 책을 읽었고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바에 진지하게 관심이 있다면, 그 자체로 극히 정신적 인간이라는 뜻일 것임. 

그런데 그렇기만 하다면, 이 책에서 출발해 해볼 논의들이 무수하고 그것들이 다 중요해서 

그 논의들을 다 재미있게 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무슨 농담같은 표지의 책.

이 책에 아도르노 미학 주제 에세이가 있는데 


"아도르노는 현재 사회에 경제적인 이유에서만 반대한 게 아니다. 

그에게 이 사회는 급진적 악의 사회고 그가 그렇게 보는 근거는 형이상학적이거나 신학적인 듯하다." 


위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그리고 Geuss는 이 문장에 주석을 다는데: 


"38년에 벤야민에게 쓴 한 편지에서 아도르노는 자신이 체험하는 신학적 충동에 대해 쓴다. 

이 고백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는 분명치 않다. 벤야민에게 유물론과 신학에 대한 비교(秘敎)적 관점이 있었고, 그리고 아도르노에게는 벤야민을 향한 묘한 집착이 있었다. 어쩌면 아도르노는 실제로 벤야민과 비슷하게 생각했던 걸 수도 있다. 그 관점을 내밀히 나눌 수 있는 상대에게 조금 은밀히 고백했던 걸 수도 있다. 아니면, 이것은 벤야민을 향한 지적 유혹의 시도일 수도 있다. 아도르노의 벤야민을 향한 지적 유혹의 시도는 다른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이 유혹이라면, 아도르노는 실제로 자기 관점이 아님에도 자기도 벤야민처럼 생각하는 척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벤야민을 차지한 다른 위험한 친구들, 그리고 그들의 관점(브레히트와 그의 "속류 유물론")으로부터 벤야민을 빼내올 수 있다. 그렇게 아도르노가 벤야민을 독차지할 수 있다." 

 


Geuss 글들에 위 주석과 비슷한 대목들이 자주 등장한다. 

저런 말을 하면서 그가 얼마나 진지한 건지 확정할 수 없는. 그런데 재미있기는 한. 


이 주석으로, 아도르노의 삶이 어째 묘하게 (사소화되는 게 아니라) 현재화되고 받아 마땅한 경의를 받는 거 같다. 벤야민의 불우했던 삶은 더더욱.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