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이런 대목이 있다고 한다. 


인생은 범용하고 (mediocre) 

인생의 바깥에 있을 수 없는 문학도 범용한데 

그 범용함을 초월하는 길은 형식의 창조에 있다. (문학에서든 삶에서든) 

먼저 기존 형식을 분쇄해야 한다. 


형식이 너를 너의 밖으로 나오게 한다. 

형식이 네가 너 자신과 거리를 둘 수 있게 한다. 그리고 그 거리. 이것이 네가 다른 이들과 

가까워질 수 있는 선결 조건이다. 



위의 네 줄은 들으면서 사실 잘 이해되지 않았고 ("make it new" 모더니즘의 이 모토 반복일 뿐인가 아닌가) 

하여 별 반응 없이 듣다가 아래 세 줄엔, 역시 이것도 선명하게 이해되지는 않았지만, 강하게 반응하게 됨. 

영어로는 이런 문장들이다: Form draws you out of yourself, distances you from yourself, and it is this distance 

that is the prerequisite for closeness to others.  






거의 전적으로 소설 리뷰만 하는 서평 채널. 여기서 들음. 

문학, 철학, 음악이 결정적으로 약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지 않을까. 

본격 문학 독자, 철학 독자, 음악가들이 유튜브에서 이 정도 활동 중인데?

이 채널 운영자 아직 많이 젊어서 (30대 초) 그의 어떤 말들엔 그러니까 '엄마 미소' 반응해야할 거 같아지기도 

한다. 나이듦(늙어감)이라는 미지의 영역에 대해 관심이 많던데... 특히 그 주제로 말할 때. 그런가 하면 

소설을 극히 예민하게 읽고 (개별 단어에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그걸 가장 정확하게 말하려고 애쓸 때 

그가 그렇게 전해주는 "날것"인 무엇이 


고맙다는 생각 든다. 

자극. 정신에 주어지는 자극이 된다. "날것"이라서. 

날것이라서 자극이든 아니면 "익힌 것"이라서 자극이든 

자극은 필수, 인간은 "mental stimulation" 없이는 부패하는 그런 동물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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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주제 강의 들으면서 

알게 된 사실 하나가 이것이다. 

중요한 음악가들의 경우 전기도 다수 쓰여지지만 

책들도 다수 쓰여지고 (문학, 철학에서 중요한 인물들에게 그렇듯이) 

연구가 계속된다는 것. 문학, 철학 전공자들에게 익숙하고 집에 몇 권씩 돌아다닐 

Cambridge Companion, 이것이 음악가들의 경우에도 나오고 있다는 것. 


아니 그럼 

음악가들은 음악"만" (악보와 연주, 공연"만") 하는 줄 알았다는 말이냐 물으신다면 

.......... 그랬던 거 같은 거 같은 것이다. 언빌리버블. 스스로에게 놀람. 


로버트 그린버그 교수는 

굉장히 방대하게 인용하는 학자다. 

다수가 대학 출판부 아니면 노튼 출판사 같은 학술 출판도 적극적으로 하는 출판사고 

인문학 전공자들에게 귀에 익게 들릴 형식 제목들인데 

대상이 음악, 음악가다. <바로크 시대 음악: 몬테베르디에서 바흐까지>. <리스트와 그의 시대>. 


저런 책은 누가 읽는가? 

(그러니) 저런 책은 몇 부나 찍는가? 


진지하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짧은 시간 뒤

.......... 문학 연구서들보다는 많이 찍을 거 같다고 자답함. 


그러게 그렇게 다수 나오는 줄도 몰랐던 음악 "연구"서. 

그러나 (정색하고 이모저모 따져보니) 아마 문학 연구서보다 독자가 더 많을 거 같은 음악 연구서. 


학술 출판으로 나오는 책들 중 

음악, 문학, 철학을 비교하면 

음악 > 철학 > 문학, 이럴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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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캘리포니아로 터전을 옮기고 행복했던 사람으로 

...... 스트라빈스키가 있다. 이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그는 비벌리 힐즈에 저택을 구입했다" 이런 구절 강의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위 이미지가 그의 LA 집이라고 하고 '저택'은 아닌 듯하다. 보이는 전부가 그의 집이라 해도. 


쇼스타코비치는 1949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 평화 회의에 

소련 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강요된 것이었고 

그는 회의 기간 동안 서방의 부르주아 예술을 규탄하는 연설을 (공산당이 작성한 연설문....) 해야 했고 

그 연설에서 격하게 비난 받은 서구 데카당트 예술가 중엔 미국에 와 있는 스트라빈스키가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에게 미국의 한 언론이 "쇼스타코비치의 주장에 반박할 의향은 없는가?" 물었을 때 

스트라빈스키는 "지금 그에게 그의 생각을 말할 자유가 없다. 어떻게 토론이 가능한가?" 반문하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얘기 들을 때 

그의 증언을 기록하고 미국으로 와서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되었던 솔로몬 볼코프의 얘기 들을 때에도

쇼스타코비치도 서구로 망명, 도피해서 자유롭게 창작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극히 양가적으로라도? 


같은 의문 들었었다. 

그도 스트라빈스키처럼, 솔로몬 볼코프처럼 살고 싶지 않았을까? 




 

들은 강의에 따르면 

그에게 전혀 그런 생각 없었다. 그에게 유럽이나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를 진정 사랑했다. 러시아의 정치, 정치 권력을 깊이 혐오, 증오했지만 

러시아의 문화에 깊이 밀착, 애착했다. 


저 러시아 청년 피아니스트 연주 동영상 보면서 

그게 어떤 건지 알 거 같아지기도 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뮤직 하우스라는데 

저 뒤에 세 분 나이 지긋하신 여자분들이 앉아 계시고 이 분들 내내 무표정 유지한다.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댓글 창 보다가 웃겨 죽는 줄 (과장...) 알았는데 

이런 댓글이었다: 


The ladies in the back are like ''Meh, Liszt played it better'' lol


정말 그렇다. 

리스트가 더 잘 쳤지. 암. 


연주 끝나고 나서 박수치는 관객들이 보여지는데 

"지옥에서 보낸" 관객들 같음. 청년의 연주를 비웃거나 그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 했음을 증오하는 거 같은 표정인 사람들이 있다. 거의 미소년에 근접하는 청년 피아니스트의 역대 최악 난이도에 속한다는 곡 연주 후, 내가 박수는 치지만 웃지 않는다.... 는 관객들. 남캘리포니아적 삶과 정반대일 듯한 상트페테르부르크적 삶.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그것도) 사랑했을 거 같다는 쪽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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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gmar Bergman이 묻혔다는 파로 섬의 교회 묘지. 



"우리 사회를 그 사회의 "외부로부터" 보게끔 추동하는 건 

우리에게 사회의 전체에 관한 이론이 있으며 동시에 직접 감당한 악 -- 아우슈비츠 -- 의 역사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혹은 어쩌면, 이 세계를 천국으로 만들 기술적 역량이 우리에게 있지만 그 역량으로 우리는 

아우슈비츠와 캘리포니아를 만든다는 사실 사이의 심연에 있는지도 모른다." 


Raymond Geuss가 쓴 아도르노의 도덕철학 주제 에세이 보고 있는데 

저런 대목이 나온다. 


하. 캘리포니아 제발 그만 그런 맥락에서 언급하지 말아주시겠? 

.... 심정이 되었다. 아도르노가 캘리포니아(확장해서, 미국) 못 견뎌한 건 사실이지만 

아우슈비츠와 캘리포니아 --> 이런 구절을 허락하는 정도로, 그렇게 말해도 되는 맥락에서 못 견뎌한 건 아니다.  

그렇게 말해도 되는 맥락에서 (<계몽의 변증법>의 문화산업 장이 하는 얘기가 바로 그거 아니냐....) 말한 게 맞다고 

한다면, 해석의 횡포일 것이다. 


어쨌든. Geuss는 아도르노가 캘리포니아에서 실제로 지옥을 보았다고 말하고 싶은 듯 하기도 한데 

그럴 때 그에게 숨은 목적 있는 거 같다. 이렇게 예민했어 그는. 이렇게 쓸데없이 예민했어. 남들에게 천국이 

그에게 지옥이었어, 섬세하고 쓸데없이 예민햇던 사람이라서........ : 정말 이 말을 하고 싶은 것이라 

의심된다.  



Ingmar Bergman도 미국을 좋아하지 않았다. 

단 한 번 방문했다고 하던가. 그가 방문한 곳은 베니스, 캘리포니아였고 

그는 화창한 날씨조차도 혐오했다. 얼른 어둡고 우울한 스웨덴으로 가자고 아내에게 반복해서 말했다. 


파로 섬에서 그의 생의 마지막 몇 년. 

파로 섬의 그를 다룬 다큐멘터리 보면

그는 왜 남캘리포니아를 혐오하고 오직 북유럽을 제집같이 여기는가. 이런 거 알거 같은 느낌 든다. 


아도르노와 미국(캘리포니아)의 관계를 

세심하게 섬세하게 풍요하게 이해해서 쓸 역량이 있음에도 

그걸 꼭 딱 저 정도로만 쓰시는 거 같다 Geuss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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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코와 나르시서스 레고라고 합니다. 



바슐라르의 <물과 꿈>에 나르시서스 신화에 대한 

매우 독특한 논평이 있다. 나르시서스식 자기애의 통렬함에 대해. 


조금 전 Raymond Geuss의 책을 폈더니 

아니 그도 나르시서스 신화에 대한 논평을 하고 있다. 

나르시서스의 게으름을, 세계의 사물들과 작업하면서 그 사물들에 자기 인장을 남기는 방식의 자기 존경이 아니라 

나라서 나를 사랑한다는 자기 몰입으로서 자기애를 택하는 그의 방식을, 나무라는 논평을 한다. 


이것도 바슐라르 편에 서서 Geuss를 비판해야 하겠다........ 

졸리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기타 부정적인 여러 요소들과 함께 하고 있으니 멍한 상태에서 먼저 

저와 같은 생각 들기는 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의 글들에 반복해서 이런 요소들이 등장한다. 


바슐라르가 독특하게 해보인 무엇을

독특하지 않은 버전으로 그도 하고 있기. 아니면 

바슐라르가 독특한 이유에서 옹호하는 무엇을 

예측 가능한 이유에서 반대하는 일을 그가 하고 있기. 




한편 너무 신기하다. 

여기서 알 수 있는 하나는 

바슐라르가 (시적 상상력이니. 사원소의 상상력이니. 반죽하는 손의 코기토니.....) 개념질서에 

포섭될 수 없는, 철학에서 전통적으로 추방되었던 주제들만 다루었던 사상가인 것만이 아니라는 것? 


자기애. 이 주제에 대해서 하도 파편적으로 (여기 두 문단, 저기 두 문단) 써서 

철학을 한 거 같지 않아 보이지만 실은 그게 아니라 철학을 한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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