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최소 1리히터. 

이런 존잘 ; 모습도 찾아집니다. 

폴 뉴먼 풍이시죠. 





안드레이 가브릴로프도 소년-청년 시절 

한참 보게 되는 귀여움. 





이 쇼팽 발라드도 

리히터 연주가 진짜 최고 좋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고 느껴지는데 

리히터 연주에서 느껴지는 그 특유의 "touch of madness" 이게 싫은 사람들에겐 정말 싫은가 보았다. 

"클래식은 비참한 인간들이 하는 비참한 음악 (miserable music played by miserable people)" 이런 댓글 

그리고 리히터는 과대평가되었다 내용 댓글 달면서 싸움 유도하는 사람들이 리히터 음악 많이 올리는 채널에도 

자주 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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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가 연주하는 스크리아빈. 

이 동영상 댓글 중 추천 댓글 하나가 

"저 옷 입으니까 피카소 같다"인데 나는 이거 웃겨서 여러 번 웃었다. 





리히터와 피카소는 만난 적이 있다. 

사실 노인 리히터는 조지 칼린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사진 찾아보니 조지 칼린에게는 있을 수 없는 종류 

진지함, "비참의 지도"(바슐라르가 에드거 앨런 포의 소설들에서 그 기이한 물들이 그리는 풍경에 대해 하는 말)를 

품고 있는 사람의 단호함 같은 것이 리히터에게는 있으니 


둘의 비슷함은 

찰나에 어쩌다 일어날 뿐인 것으로. 




그린버그 교수가 피아노 명곡과 작곡가 개관하는 강의도 했다. 

스크리아빈이 그 강의에 등장한다. 교수는 극찬, 격찬한다. 그는 기인이었다. 서양 음악사를 통틀어 

그를 능가할 작곡가가 없을 정도 기인이었다. 그는 일찌감치 결혼했고 짧은 세월 안에 네 아이를 낳고 나서 그 결혼을 깬다. 그의 제자와 같이 살겠다며 집을 나가면서 그가 아내에게 남긴 말은 "이것이 내가 나의 예술을 위해 할 수 있는 희생이다"였다. 이게 우습게 들리겠고 실제로 당신이 당신 아내에게 같은 말을 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안보아도 알 수 있지만 스크리아빈에게 이건 장난이 아니었다.  


저 정도 말만으로도 호기심 든다. 교수의 말에 (목소리, 말투에) 담긴 무엇 때문이겠지만. 

아무튼 그는 철학과 문학을 능가하는 음악, 바그너의 이상이던 "total work of art" 정도는 갈아먹을 음악을 

하려고 했고 (결국 그 정도까지는 못하지만?) 대단히 독창적이고 현대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43세이던 해 어느 날 그의 얼굴에 뾰루지가 나는데 

이 작은 염증이 악화했다. 일주일 뒤 그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항생제가 없던 시절이라 가능했던 부조리. 그는 그렇게 어처구니 없는 정황 속에 짧았던 생을 마친다. 


그의 음악이 실제로 얼마나 "crazed"이기도 하고 동시에 독창적 현대적인가에 대한 설명은 

.... 들어도 소용없긴 했다. 다 바람이 되어. 그의 음악을 들어본 적 없는데 이해될 리가. 그렇긴 해도

관심이 자극된다는 게 어디냐. 그리고 리히터가 연주한 스크리아빈도 있는 것이다. 

유튜브. 열일 해주는 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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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이니그마>에서 리히터가 마지막으로 하는 말. 

"I don't like myself." 그리고 그는 고개 숙이면서 양팔로 머리를 감싼다. 


그가 생전에 인정한 바 없는 그의 동성애와 연결하여 

생각할 말이라는 댓글이 있었다. 


리히터에게 평생의 파트너가 있긴 했다. 니나 돌리아크. 

두 사람이 결혼을 실제로 하긴 한 건지, 서류 상 부부였다는 것인지 아닌지 

두 사람 얘기 하면서 이에 대해 명확히 말하는 글은 아직 못 보았고, 사실 두 사람의 관계나 

리히터의 동성애는 아무도 길게 말하고 싶어하지는 않는 주제인 느낌. 


돌리아크는 리히터의 마지막 몇 년 병약해진 리히터를 돌보았고 리히터가 타계하고 몇 달 후 

그녀도 타계했다. <리히터: 이니그마>에 그녀가 적지 않은 분량 출연하는데, 그들의 관계가 

보통 이해되는 사랑의 관계가 아니었다는 걸 그녀 자신 전하고 싶어한다는 느낌 드는 장면 있다. 

그녀는 오페라 가수였고 어느 날 (연습이 끝나고 난 뒤?) 밖에 나와 걷던 그녀를 리히터가 붙잡는다. 

"그는 내가 노래할 때 자기가 피아노를 치고 싶다고 했다." : 이 말을 (이 정도 말하면 알아들어라...) 

식으로 말한다는 느낌. 


남자가 자기 동성애를 숨기면서 하는 위장 결혼. 

이게 아예 처음부터 아니었을 것 같다. 돌리아크는 알고 있었고 

그리고 그를 사랑했다.......... 였던 것일 듯. 검색되는 사진들을 보면 부부처럼 보이는 사진은 거의 없는가 하면 





그런가 하면 이런 사진은? 



아 지금 내게 중요하지 않은 걸 넘어 

의미도 없는 주제. 그들의 동반자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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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시절 리히터. 

맨 오른쪽, 턱을 손에 고인 인물이 그의 은사인 Heinrich Neuhaus인 걸로 짐작되는데 확실치 않다. 

(저 독일계 이름은 영어로 표기할 때 성 Neuhaus는 아니지만 이름은 Heinrich, Henryk 등 몇 다른 표기들이 있는 듯. 러시아 바깥에 나온 적이 없음에도 국제적 명성의 피아니스트였다는데 이름, 이름 뭐라 불러야 함. 성 Neuhaus도 독일인이면 쉽게 "노이하우스"지만 러시아 식으로 읽으면 뭐라 기억할 수 없게 복잡한 다른 이름이었다.) 





리히터 입덕하면 

바로 알게 되는 사실. 

리히터는 아버지가 오르간과 피아노를 연주했던 음악 교사였고 

아버지에게 어린 시절 기초를 배우는 걸 끝으로 22세까지 피아노를 독학했다. 

모스크바 음악원에 들어가는 나이가 22세. 이 때 시작하여 피아니스트가 되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나이. 

리히터는 노이하우스에게 들어가 배우고 싶다는 뜻을 전했고 노이하우스는 회의적이었지만 오디션을 허락했다. 

그리고 오디션 장에서 그는 리히터의 연주를 함께 본 다른 학생에게 "저 청년은 천재다"고 속삭였다.  


리히터에게 집도 절도 없을 때 

노이하우스가 자기 집에 와서 살라고 했고 리히터는 그렇게 했다. 

그 시절 그는 노이하우스의 집 피아노 밑에서 잤다. (*노이하우스가 "구박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리히터에게 일신의 편안함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리히터: 이니그마> 보면 노이하우스의 대규모 청중 연주회 장면도 나온다. 

내 귀엔 그의 음악도 대단하게 들렸다. 와. 하게 들렸다. 아무튼 그랬는데 

2015년이 리히터 탄생 100주년이고 해서 당시 나온 기사들도 많고 여러 글들 찾아보다가 

읽은, 이거 정말 눈물 없이 생각하기 힘든 그들 인생의 이야기는 


노이하우스가 리히터를 자기 문하에 들이고 나서 

리히터가 했던 모든 연주회에 왔고 모든 연주회에서 가만히 앉아 듣던 그를 보면 

그의 두눈에 눈물이 차오르고 있었다는 것. 


.............. 어찌하여?의 한 1/20은 그대로 다 이해할 수 있을 거 같음. 


한 반 쯤 써두고 꽤 오래 (온라인 mp3 강의 제작 ㅎㅎㅎㅎ 무려 제작.... 등으로) 밀어놓았던 

글쓰기 재개했는데, 앞으로가 고난이고 문제지만 써둔 분량은 그래도 괜찮지 않나 했다가 

전혀 그렇지 않음을 발견했다. 이게 성공(좋은 곳에 발표함의 성공)해야 인생이 바뀌는데........ 

인생이 안 바뀌면 어쩌나. 이대로 그냥 쭉, 리히터도 유튜브로나 들으면서 살다 가는 거냐. 

끝없는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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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lody in F. 

안톤 루빈스타인(루빈스테인)이 

23세에 작곡한 소품. 루빈스타인은 

19세기 후반 리스트의 라이벌이었던 러시아 피아니스트. 작곡가. 상트 페테르부르크 음악원을 설립해 

유럽의 음악 지도에 러시아를 올린 인물. 



"이 곡이 시시하게 들리니? 

이 곡은 적어도 한 사람의 생을 바꾸었고 그 바뀐 생이 인류에게 남긴 은총이 있다. 

1898년 브루클린에서 태어난 제이콥 거쇼비츠. 나중 조지 거슈인으로 불릴 제이콥은 

장난꾸러기였지만 그의 가슴에 일찍부터 음악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었다. 그가 남긴 회고가 있다. 6살이던 제이콥은 

뉴욕 시내를 걷다 (어른과 동행하고 있었을 것이라 믿읍시다) 어느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Melody in F를 듣는다. "그 기묘한 멜로디가 나를 사로잡았고 나는 발을 뗄 수가 없었다. 지금도 이 곡을 들으면 나는 그 날 그 가게, 그 앞에서 움직일 수 없던 나를 기억한다. 나는 거기 서서 내가 듣던 모두를 들이마셨다." 


거슈인은 38세로 요절했다. 

그는 그가 살았던 짧은 삶 동안 그 이전, 그 이후 어느 미국 출생 작곡가도 쓰지 못했고 쓰지 못한 

뛰어난 작품들을 다수 썼다. 우리는 거슈인에게 그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영원히 루빈스타인에게 감사해야 한다." 



오늘 아침엔 저런 얘길 들었다. 

거슈인. 우디 앨런 영화로 접한 정도가 다인 거슈인. 

그런데 우디 앨런 영화에서 들은 그의 음악과 6살 그를 사로잡았다던 루빈스타인의 melody f, 비슷하다고 

느껴진다. 인간이란. 인간의 정신이란. 


발을 뗄 수가 없는 일. 

꼼짝 못하고 그냥 서서 모두를 들이마시는 일. 

정말 겪어보고 싶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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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3-21 14: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귀에 익숙한 곡을 또 오랜만에 들을 기회를 주시네요.
라디오 프로그램 오프닝 곡이기도 했었는데 어느 프로그램인지는 기억이 안나요.

몰리 2020-03-21 14:56   좋아요 0 | URL
이 곡을 ˝우리 모두 알고 있지만 영원히 들으며 감사해야할 명곡 9곡˝ 하나로
교수가 소개했는데 저는 이 곡 앞에 나온 ˝엘리제를 위하여˝ ㅎㅎㅎㅎ 어 제가 엘리제를 위하여는 압니다만... melody in F라니 첨 들어요 였어요. 그런데 정말 그게 무엇이든, 문학이나 영화나 음악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어도 전혀 새롭게 다시 보이는 일이 있다는 게 놀랍다는 생각이 듭니다. 리히터는 그것으로 유명했다고 해요. 지겨울 정도로 흔히 연주된 곡들이 전혀 새롭게 들리게 하는 일. 엘리제를 위하여, 심지어 이것도 ㅎㅎㅎ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