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뜻밖에 웃겼다. 

악보 볼 줄 모르는 내게도 악보도 웃김. 

악보 볼 줄 알면 더 어처구니없고 웃길 거 같다. 

피아노 치는 사람들 사이에 이미 비슷한 농담 있었겠지만. 


유튜브 클래식 채널 찾아다니면서 

실감하는 건 음악하는 사람들의 그 엄청난 열정. 

인문학 연구자들에게서 본 적 없는 것 같은, 지속하는 열정. 


음악 애호가들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하는 말들 거의 전부 

문학 독자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 하기엔 벅찬 말이라는 것.  

철학 독자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랑하는?) 텍스트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사례는 

없거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임. 


월터 페이터가 했다는 말. 

모든 예술은 음악이 되고자 한다. 

All art aspires towards the condition of music. 


흔히 들어온 말이지만 

무슨 뜻일지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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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에 

영화판에선 짧게 지나갔던 부분이 조금 더 자세하게 제시되는 대목들 있다. 


리히터가 보았던 미국. 이것도 그러한데 

리히터는 미국에서는 언어도 경박하다는 얘기를 한다. 

같은 영어여도 영국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은데 미국에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다. 




이 문제는 좀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 아주 크지 않은가 말하고 싶어진다. 


경박함이 자기의식을 획득하면 

더 이상 경박함이 아니게 되지 않나요. 미국엔 경박함에 대한 자기의식이 있기도 해요. 

60년대라면 당연히 그게 흔히 있었을 것입니다. (............) 


그린버그 교수 강의에서 웃겼던 대목 참 많은데 

그 중 이런 것도 있었다. 베토벤의 권위 혐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불화, 갈등이 그에게 남긴 

거의 본능이 된 권위 혐오. 이것에 대해 복잡하고 정신분석적인 심오한 얘기를 잠시 하더니 


요즘 아이들인 내 딸에 따르면 세 단어면 족한데  

Beethoven had issues! 이다. (끙. 오 신이여 이 나라의 미래는............) 




저런 말을 좀 심오하게 한다. 지적이며 도덕적인 에너지가 담긴 말로 들리게 한다. 

경박함에 대한 자기의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미국에 리히터가 우호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래도 어디든 "위대한 인민"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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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들은 음악 강의에서 

교수가 리히터를 말한 건 한 번이었다. 

스크리아빈이 주제였을 때. 스크리아빈의 소나타에 대해. 

"위대한 소비에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피아노 레퍼터리 전부에서 가장 치기 어려운 곡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문장으로.  

러시안 피아니즘. 이 주제로 강의 제작되면 좋을 것이다.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총망라되는 

한 84강 분량. "피아니즘"이라는 말을 나는 그의 강의에서 처음 들었다. "러시안 피아니즘" 이 말도 당연히 

그의 강의에서 처음 들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안 피아니즘과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뗄 수가 없는데 

러시안 피아니즘이 추구한 표현력의 확장, 그것에 가장 우호적인 피아노가 스타인웨이였다. 


러시아 음악, 러시아 피아노 음악에 대해 

수시로 그가 말해주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걸 주제로 하는 논의 듣고 싶어진다. 


피아니즘. 이 말 일단 듣고 나서 보니 

어떻게 (그것도 영어권 문학 전공자라는 사람이) 그 말 모르고 살았던 건가. 

모르고 살았던 거 맞나? 누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는 거지 본 적도 없는 건 아닌 거 아닐까.... 

???? 그런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겠음. 




그린버그 교수가 내게 진정 "믿고 듣는" 교수가 되었던 순간은 

그가 아도르노 인용하고 논의하던 때였다. 내용은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흔히 인용되고 거의 공식적인 해석이 있고 그런 문장 아니었다. 아도르노 저술 꽤 오래 이것저것 열심히 읽은 편인 

내게 낯설게 들리던 (그의 음악 저술을 읽지 않았으니 당연히....) 문장이었고 


강의 맥락에서 등장하기 적합한 내용이었다. 뜬금없이 까이기 위해 동원되는 극단적 주장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에 잠김. 

아도르노를 인용하면서 (인용하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김. 


그리고 나는 그러는 그를 

오나전 신뢰하기 시작함. 


그랬다. 생각에 잠기던, 생각하며 말하던 그의 목소리. 

아도르노 문장을 떠나지 못하던 그의 목소리. 문장은 가도 생각은 남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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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히터: 이니그마>에서 글렌 굴드가 리히터 칭송하는 대목. 

특히 6:30 지점이 밑줄 쫙이었다. 

 

"이게 이단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슈베르트 중독자가 아니다. 

그 반복되는 구조를 견딜 수 없어지곤 한다. 그의 긴 소나타를 끝까지 듣지 못한다. 

그러나 리히터의 연주를 듣던 한 시간 동안 나는 무아지경(hypnotic trance)을 체험했다. 

슈베르트에 대한 내 편견이 사라졌다. 장식에 불과하다 여겼던 디테일들이 유기적 요소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디테일들을 기억한다. 화해불가인 두 성격의 융합을 나는 리히터의 연주에서 보았다. 

강렬한 분석적 계산이 있고 즉흥적인 직접성, 자유로움이 있다." 


굴드의 이 인터뷰 장면은 

최초 사용될 때 러시아어 더빙이 되었고 

나중 그 더빙을 지우고 보존된 영어 텍스트에 따라 영어로 다시 더빙되었다고 한다. 

어쩐지 화면은 낡았으나 소리는 낡지 않은 이상한 느낌 있었다. 또박또박 준비한 원고를 읽는 듯한 느낌도 이상했고. 

이상하면서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고. 알고 보니 그게 굴드의 목소리가 아니었던 것임. <리히터: 이니그마> 동영상 댓글들 보면 "이상하다, 굴드가 캐나다 영어 아닌 영어로 말한다" 이런 댓글 있다. 굴드 정말 기인이었구나 생각했었다. 아주 가끔, 교과서형 뉴스진행자형 영어로 말했나보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러나 실제 사정은 

그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성우의 목소리가 입혀졌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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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받은 책 중 이것이 있다. 

같은 판은 아니고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나온 판. 이런 표지다. 





이런 장르 좋아하는 편이다. 

친구를 회고함. 공유했던 삶을 기억함. 


페이퍼 얼른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압박이 있다 한들 그래서 더 빨라지는 것도 아님에도) 

어떤 책도 마음 편히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은 앞의 해제 보다가 관심이 식는 

(관심이 강렬히 인다 해도 마음 편하지 않기 때문에 못 읽을 판인데) 느낌이었다. 


숄렘에 따르면 벤야민은 극히 종교적 인간이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건 오류였다. 착오였다. 

그러면 그는 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그토록 많이 썼냐고? 

그것의 그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주축이던 사회연구소에서 

그가 그런 글을 쓰면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숄렘은 생각했다). 


저런 얘기가 나온다. 

마르크스주의자이긴 한가? 벤야민 잘 모르지만 이런 의문도 들었고 

그의 글과 무관하게 사회연구소에서 돈 주었던 거 아닌가? 어쨌든 아도르노와 주고받은 편지들 근거로 하면 

그러한데? 물론 글을 쓰면 주기도 했지만 그 경우에도 심지어 그게 "고료"이기보다는 영어 단어 stipend, 네가 우리 사람(우리 연구소 사람)이므로 받을 권리가 있는 소액 정기적 수입 느낌. 연구소 상황이 악화되면 감액하거나 중단하지만. 그래도 네가 우리 사람이므로 우리는 너에게.... 


아니 사실 그들의 돈 문제가 이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아도르노-벤야민 편지 보면서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로 글을 쓴 건 그게 그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고 숄렘이 생각한 게 맞다면 


완전한 오해이지 않을까. 


그런데 어쨌든 많은 생각이 투입되는 긴 편지들을 쓰는 문화가 한국에도 20세기 동안에 정착했다면 

그래서 20세기 전반에도 후반에도 (한 80년대까지는)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고 그것들이 책으로 나온 예도 적지 않다면 


바로 그 덕분에 지금 그들이 사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부터, 아니 고교 시절부터 

친구 가족들과 긴 편지들을 써서 주고 받은 세월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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