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격으로 "누구의 누구" 말하는 화법은 

음악에서는 강한 의미 있겠다는 생각 들기도 했다. 

리히터의 쇼팽. 굴드의 바흐. 켐프의 베토벤. (.....) 좋고 강력한 다른 예들이 많을 것이다. 


강한 의미도 있겠지만 

연주자와 그들이 연주하는 작곡가들은 모두 

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일 거 같기도 하다. 그래서 널리 "누구의 누구" 화법이 쓰이는. 


인문학에서 "누구의 누구"는 

더 약하고 더 제한적일 듯하다. 

내가 아무리 니체를 읽는다 해도 나의 니체는... 


사상의 대가, 이런 게 되는 게 극히 어렵다는 뜻이기도 하겠지만 

음악에서는 작곡가와 연주자가 서로 녹아들면서 동시에 별개인 게 가능하지만 

그게 인문학에서 극히 어렵기 때문이기도 할 거 같다.  




아무튼. 아아 쓸데 없는 생각이다. 지금 이런 포스팅할 에너지와 시간이 있으면 그걸 다 

다른 데에 써야 하는데 이러고 있다. 


바슐라르가 발자크를 굉장히 많이 인용하는 편이다. 그런데 드러나지 않는다. 

발자크 인용이 많았다고 기억되지 않는다. 이상한 일. 아니 이상하지 않고, 내가 발자크를 읽은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니. 


<공기와 꿈>에 저 소설 Louis Lambert에서 인용되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비행" 이 말은 인간의 오감 전부에 호소하는 말이다" 이런 문장. 


비행은 비행청소년의 비행 아니고 

단독비행... 의 비행. 


처음 읽었을 때 굉장히 감탄했었다. 

<공기와 꿈> 전부를 읽기 위한 가이드로 삼을 만한 말이고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공기적 삶, 공기적 삶이라는 도덕 에너지 이것과 바로 연결되는 말. 


.............. 지금 이걸 놓고 

고생 중이다. 아 이거 정말 누가 이걸 이해하지...... 이 심정되기도 한다. 

나는 왜 이런 것에 끌렸지? 왜 이게 그렇게 매혹적이었지. 


잘못 살았던 삶의 무게. 이것에 허덕일 때 서재에 포스팅이 증가한다. 


(*잘못 살았던 삶은 바슐라르에게 끌렸던 삶은 아니고 

아마 그러니까 그 삶을 제외한 전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 사진도 좋다. 

이 사진도 오래 보게 되는 사진. 

틀에 넣어 근처에 선반에 두거나 벽에 걸어두고 싶어진다. 수시로 보면서 

배우게. 





이 사진도 좋다. 

그가 어떤 음악을 했고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이미 생각, 상상을 많이 했기 때문이겠지만, 꼭 필요한 중요한 얘기를 해주실(해주시는) 것 같음. 




 

이런 사진도 있다. 

담배가 세 개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아니겠지. 두 개피겠지. 

은둔자, 성자로 알려졌다지만 <리히터: 이니그마>에서 젊은 시절 파티 장면이나 유튜브 동영상들에서 

보게 되는 노년의 파티 장면에서, 격하게 즐겁게 시간 보내신다.   


유튜브의 리히터 팬이 

"네이가우스와 루빈스타인이 공히 그를 격찬한 이유? 그의 피아니즘이 

인간 정신의 진화가 도달한 정점을 대표하기 때문" : 이런 (오글거림 주의) 댓글 쓰기도 했던데 

........ 그 쪽으로 (진화? 인간 정신의 진화?) 생각했던 건 아니지만 나도 거의 같은 이유에서 

빠진 거 같았고 그 댓글에 완전 동의하는 느낌이었다. 


진화가 도달한 정점. 

이렇게 말해도 되는 면들을 그의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쓰려면 계속 이어 쓸 수도 있을 거 같다. 그러나 멀리 가기 전에 

미친 사람처럼 (미친 사람의 무의미한 독백처럼) 들릴 것이다.  


오래 전 존경하는 어느 분(남자) 댁 방문해서 

김치 담그는 일 지켜본 적 있다. 묵묵히 배추와 무를 썰던 장면.

인생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났다 이미. 각자 자기 가진 것에서 최선을 다한다는 선택이 있을 뿐.


그런 하루 살아보고 싶어진다. 

리히터 음악이 들리는 부엌에서 묵묵히 배추와 무를 썬다. 

묵묵히 돼지고기를 삶는다. 아무도 말하지 않지만 모두가 같이 생각한다. 

밤이 온다. 자기가 아니어야 한다는 압박 없이, 그리하여 모두가 별 말이 없이 

그러나 모두가 각자와 모두에게 일어난 인생을 생각하면서, 술을 마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거 뜻밖에 웃겼다. 

악보 볼 줄 모르는 내게도 악보도 웃김. 

악보 볼 줄 알면 더 어처구니없고 웃길 거 같다. 

피아노 치는 사람들 사이에 이미 비슷한 농담 있었겠지만. 


유튜브 클래식 채널 찾아다니면서 

실감하는 건 음악하는 사람들의 그 엄청난 열정. 

인문학 연구자들에게서 본 적 없는 것 같은, 지속하는 열정. 


음악 애호가들이 

자기들이 사랑하는 음악에 대해 하는 말들 거의 전부 

문학 독자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작품에 대해 하기엔 벅찬 말이라는 것.  

철학 독자들이 그들이 사랑하는 (사랑하는?) 텍스트에 대해, 그런 말을 하는 사례는 

없거나 없는 거나 마찬가지일 것임. 


월터 페이터가 했다는 말. 

모든 예술은 음악이 되고자 한다. 

All art aspires towards the condition of music. 


흔히 들어온 말이지만 

무슨 뜻일지 이제야 조금 알 거 같아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책 <리흐테르: 회고담과 음악수첩>에 

영화판에선 짧게 지나갔던 부분이 조금 더 자세하게 제시되는 대목들 있다. 


리히터가 보았던 미국. 이것도 그러한데 

리히터는 미국에서는 언어도 경박하다는 얘기를 한다. 

같은 영어여도 영국에서는 사정이 조금 나은데 미국에서는 견디기 힘들 정도다. 




이 문제는 좀 

다르게 볼 수 있는 여지 아주 크지 않은가 말하고 싶어진다. 


경박함이 자기의식을 획득하면 

더 이상 경박함이 아니게 되지 않나요. 미국엔 경박함에 대한 자기의식이 있기도 해요. 

60년대라면 당연히 그게 흔히 있었을 것입니다. (............) 


그린버그 교수 강의에서 웃겼던 대목 참 많은데 

그 중 이런 것도 있었다. 베토벤의 권위 혐오. 어린 시절 아버지와 불화, 갈등이 그에게 남긴 

거의 본능이 된 권위 혐오. 이것에 대해 복잡하고 정신분석적인 심오한 얘기를 잠시 하더니 


요즘 아이들인 내 딸에 따르면 세 단어면 족한데  

Beethoven had issues! 이다. (끙. 오 신이여 이 나라의 미래는............) 




저런 말을 좀 심오하게 한다. 지적이며 도덕적인 에너지가 담긴 말로 들리게 한다. 

경박함에 대한 자기의식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미국에 리히터가 우호적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긴 해도 그래도 어디든 "위대한 인민"은 있다는 것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금까지 들은 음악 강의에서 

교수가 리히터를 말한 건 한 번이었다. 

스크리아빈이 주제였을 때. 스크리아빈의 소나타에 대해. 

"위대한 소비에트 피아니스트,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가 

피아노 레퍼터리 전부에서 가장 치기 어려운 곡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문장으로.  

러시안 피아니즘. 이 주제로 강의 제작되면 좋을 것이다.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총망라되는 

한 84강 분량. "피아니즘"이라는 말을 나는 그의 강의에서 처음 들었다. "러시안 피아니즘" 이 말도 당연히 

그의 강의에서 처음 들었다. 그에 따르면 러시안 피아니즘과 스타인웨이 피아노를 뗄 수가 없는데 

러시안 피아니즘이 추구한 표현력의 확장, 그것에 가장 우호적인 피아노가 스타인웨이였다. 


러시아 음악, 러시아 피아노 음악에 대해 

수시로 그가 말해주긴 했지만 본격적으로 그걸 주제로 하는 논의 듣고 싶어진다. 


피아니즘. 이 말 일단 듣고 나서 보니 

어떻게 (그것도 영어권 문학 전공자라는 사람이) 그 말 모르고 살았던 건가. 

모르고 살았던 거 맞나? 누가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없다는 거지 본 적도 없는 건 아닌 거 아닐까.... 

???? 그런지 아닌지 확신하지 못하겠음. 




그린버그 교수가 내게 진정 "믿고 듣는" 교수가 되었던 순간은 

그가 아도르노 인용하고 논의하던 때였다. 내용은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흔히 인용되고 거의 공식적인 해석이 있고 그런 문장 아니었다. 아도르노 저술 꽤 오래 이것저것 열심히 읽은 편인 

내게 낯설게 들리던 (그의 음악 저술을 읽지 않았으니 당연히....) 문장이었고 


강의 맥락에서 등장하기 적합한 내용이었다. 뜬금없이 까이기 위해 동원되는 극단적 주장 아니었다. 


그리고 그는 생각에 잠김. 

아도르노를 인용하면서 (인용하고 나서) 잠시 생각에 잠김. 


그리고 나는 그러는 그를 

오나전 신뢰하기 시작함. 


그랬다. 생각에 잠기던, 생각하며 말하던 그의 목소리. 

아도르노 문장을 떠나지 못하던 그의 목소리. 문장은 가도 생각은 남는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