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버그 교수 수업에서 웃겼던 거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그 중 이런 것도 있었다. 


서양 음악사. history of Western music. 우리는 왜 서양 음악사를 공부해야 하는가. 

서양 음악사가 우리에게 알게 하는 건 무엇이 있는가. 


위의 내용으로 시작하더니 

"버클리에서 교수하던 시절 얘기다. 서양 음악사 강의하고 강의평가가 나왔는데 

"교수는 열정적이고 자기 주제를 사랑하는 거 같았다. 그런데 나는 이걸 이해할 수 없는데 

학기 내내 실제 웨스턴뮤직(서부음악)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모모, 모모, 모모(*웨스턴뮤직의 거인들로 짐작되지만 낯선 이름들)에 대해 한 번도 듣지 못했다" 


고 쓴 것이다 어떤 학생이. 이게 거짓말 같습니까? 버클리에서 그럴 리가 없다고요? 

이 학생은 나중 미국의 지도층이 됩니다......" 




거짓말일 리 없지. 그리고 너무 웃겼다. 그린버그 교수, (내 취향이라 그렇겠지만) 감각이 있다. 

무엇이 웃기고 어떻게 해야 진짜 웃긴지. 


아무튼. 코넬 대학에서 가르칠 때 카프카 소설을 읽고 나면 자기를 "카프카 교수님"이라 부르는 

학생이 있었다고 나보코프가 회고하기도 했다. 자기 수업에서 C 받고 나가는 학생들, 그들이 나중 미국 사회의 중추가 된다고 쓰기도 했고.  


그린버그 교수는 great courses 시리즈에서 오랜 세월 다수 과목을 제작했고 

초기 강의에서 드립 천재인데 나이가 노년으로 향해갈수록 점점 정중 사색형, 점점 "찐"지식인화한다. 


슬픈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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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03-14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쿠, 몰리님 이 페이퍼 덕분에 오늘 처음 웃었습니다. 지금 시각 저녁 9시 26분 ㅠㅠ

몰리 2020-03-15 07:50   좋아요 0 | URL
저 정말 듣고 울었었어요. 하도 절묘 복잡 심지어 비장하기도 하고.
만수무강하셔야 할 그린버그 교수.
 




로버트 그린버그 교수는 

미국 교수들이 별로 하지 않는 "얼평" 자주 한다. 

선을 넘지는 않는다. 절묘하게 적절하게 한다. 그래도 

어찌 보면 금기에 속할 주제를 꼬박꼬박 확인하듯 한다는 게 

(음악가를 처음 소개할 때 반드시 그의 외모를 정리한다....) 처음엔 ????. 


말러 부부에 대해서 

"알마 말러는 미인으로 유명했지. 그런데 그녀의 미모는 시대보정이 필요한 미모다. 

올림푸스의 여신형 미모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이 부부가 함께 있을 때 그 놀라운 부조화가 가능하다. 

구스타프가 외모와 관련해 신에게 받은 축복은 없었다. 그는 키도 작았고 몸도 작았다. 강렬한 눈빛으로 상대를 

끌 수 있었다면, 어쩌면 하나 둘 미미한 축복을 받았다고 할 수도 있겠지. 두 사람이 같이 서면 알마의 풍채가 

압도했다." 




오늘 할 일이 남아 있는데 

어제 무리했더니 오늘은 종일 졸다가 힘들다가 졸다가 힘들다가 반복이었고 

남아 있는 일은 내일 하기로 결정함. 대신 맥주 마시다 자기로 함. 이제는 좋지 않은 걸 넘어 싫음에 가까운 맥주. 

그래도 '취하는' 기분이 필요함. 집안이 폭격당한 풍경임. 아. 케세라세라. 


그린버그 교수의 얼평을 반복해서 접하면서 

어떤 얼평은 필요하기도 하고 심지어 해방적이다, 이런 생각도 들었다. 

올바르고 필요하며 해방적인 얼평. 이것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묻는다면). 


그건 그렇고. 

그의 말 중 강한 인상 남긴 하나는  

피아니스트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냐에 대한 거였다. 

"피아니스트. 너 피아니스트가 어떤 사람인 줄 아니. 어린 시절 너에게 피아노를 가르쳤던 줄리어드 출신 쌤이나 

음대를 나왔지만 살림을 하다가 교회에서 반주도 하셨던 너의 할머니는 피아니스트가 아니다. 세상엔 수영장을 

다니는 사람이 있고 마이클 펠프스가 있다. 세상엔 피아노를 치는 사람이 있고 피아니스트가 있다. 아니 수영장을 

다니는 사람과 마이클 펠프스 사이의 거리보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과 피아니스트 사이의 거리가 더 멀다. (....)" 


저 말줄임표. 저 안에 엄청난 말들이 계속 이어졌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피아니스트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가에 대해서. 

그들이 그들이 되기 위해 필요한 재능, 천재성도 있겠지만 어떤 정도의 초인적 노력도 필요한가에 대해서. 

그들에게 요구되는 지성과 체력이 어느 정도인가에 대해서. 


그의 말 듣고 나서 

전이라고 피아니스트를 멸시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겠으나 

아무튼 달라진 관점에서 피아니스트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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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소나타 연주 중에서 이 분의 연주 좋았다. 

다른 연주들은, 다들 다르긴 하지만 무슨 차이가 있다는 거야? 였다가 

이 분 연주에서는, 그의 이 다름은 그만의 개성일 거 같고 

개성 정도 아니고 천재성일 거 같다.......... 느낌 든다. 


위키피디아에서 찾아보면 그가 남긴 이런 말들 볼 수 있다. 

"(피아니스트는 해석자고) 해석자는 실행자다. 작곡가의 의도를 가장 충실하게 실행해야 한다. 

이미 작품에 있는 게 아닌 그 무엇도 보태어선 안된다. 만일 그에게 재능이 있다면, 그는 작품의 

진실을 우리에게 보게 한다. 해석자는 작품을 지배하는 게 아니라 작품 속으로 용해되어야 한다." 


그는 소규모 공연을 좋아했나 보았다. 그 점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은: 

"트럭에 피아노를 싣고 시골길로 떠나야 해. 새로운 풍경이 보일 때까지 오래 운전해 가는 거지. 

교회 건물이 있는 예쁜 곳이 나타나면 거기서 멈추어. 트럭의 피아노를 내려놓고 마을 사람들에게 

말해. 공연을 해. 공연에 와 준 고마운 사람들에겐 꽃을 주어 보답해야 해. 그리고 다시 떠나는 거야."  


쇼스타코비치는 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리히터는 경이로운 현상이다. 그의 재능 앞에서 우리는 비틀거린다. 우리의 영혼이 사로잡힌다. 

음악 예술에 속하는 현상들 모두를 그는 이해한다." 




미친 드립력 소유자인 로버트 그린버그 교수가 

리스트의 초인적 일정 콘서트 투어에 대해 말하면서 이런 얘기 한 적 있다. 

"자 그럼 콘서트 투어라 우리가 부르고 있으니 그 시절 리스트가 

옆구리에 Team Liszt라 적힌 대형 버스 군단과 등짝에 Team Liszt 찍힌 옷 입은 스탭 동원하고 

자기는 리무진 타고 이동 중엔 숙면하면서 했을 거 같니? 

'

마차 타고 다녔던 거야! 덜컹덜컹. 길은 좋았을 거 같아? 피아노나 사람이나 남아나기 힘든 길이었어!" 


Team Liszt. 21세기식 콘서트 투어. 

상상하면서 혼자 비틀비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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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일 많이 했다. 

거의 스티븐 킹화했다. 하루 6-7페이지 쓴다던가. 

그래도 끝은 나지 않고 아마 끝은 토요일에 있을 것이다. 

페이퍼 쓰는 날의 피로함과는 다른 피로함이 있다. 

서재 포스팅 많이 하게 하는 종류 피로함이기도 하고 

그만 가서 자기가 아깝다고 느끼게 하는 피로함이기도 하다.


언젠가 나도 "memoir" 이걸 쓰고 싶고 

남들이 가한 고통과 내가 가한 고통을 기억하는 일이 구원이 되게 하고 싶은데 

그 때 피아노가 동반한다면 좋을 것이다. 피아노를 매일 30분 연습하면서 

6개월 뒤 파헬벨 캐논 변주를 칠 수 있게 된다면 

서재 포스팅을 하는 게 아니라 캐논 변주를 치면서..... 



 


Au revoir, les enfants. 이 영화에서 소년들의 이 피아노 장면. 

이런 장면을 노인들이 재연할 수 있다면, 그게 그 노인들에게 어떤 즐거움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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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호평하는 리뷰 다른 데서 접하고 나서 책은 구했고 

아주 조금 읽기도 했다. 강하게 끌리지는 않았고 당장 쓸 이유가 없겠어서 더 읽는 건 무기한 미뤄둔 책. 

better than food 채널에서 호평 듣고 나서 다시 관심이 자극된다. 여기서 유크나비치는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의 사례같기도 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성폭력 가해자였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채널 운영자가 여러 번 그 점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믿기 힘든 (내가 순진한 사람이지도 않음에도) 많은 일들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그녀는 거침없이 쓴다. (....) 그녀가 독자의 존경을 자극한다면, 그건 

자기 고통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다. 그녀는 세상엔 그보다 더 한 일들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안다. 


평범한 차원으로 축소해서 말하면 

그녀의 회고록은 "stupid and cruel"한 사람들에게 당한 괴롭힘의 기록이다. 

사실 이건 만인의 경험이다. 우리 모두 "stupid and cruel"한 사람들에게 괴롭힘 당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다. 

이게 만인의 경험이므로 "stupid and cruel"한 사람들이 가하는 고통이 책 전체의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그 반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책으로 써야 한다. 그러나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특별함이 

있는데 그녀는 그녀를 괴롭힌 이들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도 "stupid and cruel"하다는 걸 그래서 그녀 자신이 타인들에게 가했을 고통도 알고 있다. 나는 특히 이 점에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쩌면 더 냉정하다. 그녀는 자신을 분명히 본다. 


특히 밑줄 긋게 되던 건 위와 같은 대목이었다. 


남들이 내게 가한 고통. 

내가 남들에게 가한 고통. 

이 둘 다를 냉정하고 분명히 보기 위한 선결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게 있고 나서, 이 둘 다를 냉정하고 분명히 보는 건 (.....) 어쩌면 내가 얼마나 훼손된 인간이고 훼손된 삶을 살아왔나를 보는 거라서 절망 속에 빠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Mark Fisher, 그가 40대에 자살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오직 훼손된 삶만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무려 "구원"일 수도 있을 거 같다. 나는 후자 쪽에 걸겠다... 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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