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히터: 이니그마>에서 글렌 굴드가 리히터 칭송하는 대목. 

특히 6:30 지점이 밑줄 쫙이었다. 

 

"이게 이단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슈베르트 중독자가 아니다. 

그 반복되는 구조를 견딜 수 없어지곤 한다. 그의 긴 소나타를 끝까지 듣지 못한다. 

그러나 리히터의 연주를 듣던 한 시간 동안 나는 무아지경(hypnotic trance)을 체험했다. 

슈베르트에 대한 내 편견이 사라졌다. 장식에 불과하다 여겼던 디테일들이 유기적 요소가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도 그 디테일들을 기억한다. 화해불가인 두 성격의 융합을 나는 리히터의 연주에서 보았다. 

강렬한 분석적 계산이 있고 즉흥적인 직접성, 자유로움이 있다." 


굴드의 이 인터뷰 장면은 

최초 사용될 때 러시아어 더빙이 되었고 

나중 그 더빙을 지우고 보존된 영어 텍스트에 따라 영어로 다시 더빙되었다고 한다. 

어쩐지 화면은 낡았으나 소리는 낡지 않은 이상한 느낌 있었다. 또박또박 준비한 원고를 읽는 듯한 느낌도 이상했고. 

이상하면서 이상하게 마음을 끌었고. 알고 보니 그게 굴드의 목소리가 아니었던 것임. <리히터: 이니그마> 동영상 댓글들 보면 "이상하다, 굴드가 캐나다 영어 아닌 영어로 말한다" 이런 댓글 있다. 굴드 정말 기인이었구나 생각했었다. 아주 가끔, 교과서형 뉴스진행자형 영어로 말했나보네?!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 말할 때? 


그러나 실제 사정은 

그의 목소리가 지워지고 성우의 목소리가 입혀졌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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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받은 책 중 이것이 있다. 

같은 판은 아니고 New York Review of Books에서 나온 판. 이런 표지다. 





이런 장르 좋아하는 편이다. 

친구를 회고함. 공유했던 삶을 기억함. 


페이퍼 얼른 완성해야 한다는 압박 때문에 (압박이 있다 한들 그래서 더 빨라지는 것도 아님에도) 

어떤 책도 마음 편히 읽지 못하고 있는데 이 책은 앞의 해제 보다가 관심이 식는 

(관심이 강렬히 인다 해도 마음 편하지 않기 때문에 못 읽을 판인데) 느낌이었다. 


숄렘에 따르면 벤야민은 극히 종교적 인간이었다. 

그가 마르크스주의를 선택한 건 오류였다. 착오였다. 

그러면 그는 왜 마르크스주의자로서 그토록 많이 썼냐고? 

그것의 그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주축이던 사회연구소에서 

그가 그런 글을 쓰면 돈을 주었기 때문이다. (.... 그렇게 숄렘은 생각했다). 


저런 얘기가 나온다. 

마르크스주의자이긴 한가? 벤야민 잘 모르지만 이런 의문도 들었고 

그의 글과 무관하게 사회연구소에서 돈 주었던 거 아닌가? 어쨌든 아도르노와 주고받은 편지들 근거로 하면 

그러한데? 물론 글을 쓰면 주기도 했지만 그 경우에도 심지어 그게 "고료"이기보다는 영어 단어 stipend, 네가 우리 사람(우리 연구소 사람)이므로 받을 권리가 있는 소액 정기적 수입 느낌. 연구소 상황이 악화되면 감액하거나 중단하지만. 그래도 네가 우리 사람이므로 우리는 너에게.... 


아니 사실 그들의 돈 문제가 이게, 간단한 게 아니었다. 아도르노-벤야민 편지 보면서 

분명히 이해되지는 않았다. 그래도 "그가 마르크스주의자로 글을 쓴 건 그게 그의 수입원이었기 때문이다"고 숄렘이 생각한 게 맞다면 


완전한 오해이지 않을까. 


그런데 어쨌든 많은 생각이 투입되는 긴 편지들을 쓰는 문화가 한국에도 20세기 동안에 정착했다면 

그래서 20세기 전반에도 후반에도 (한 80년대까지는) 많은 편지들을 주고받았고 그것들이 책으로 나온 예도 적지 않다면 


바로 그 덕분에 지금 그들이 사는 것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 수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에 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대학 시절부터, 아니 고교 시절부터 

친구 가족들과 긴 편지들을 써서 주고 받은 세월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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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전부 19년 연말 시작해 지금까지 몇 달 동안에 처음 접한 러시아 피아노 음악.  


프로코피예프의 피아노 곡 중에서 "덧없는 환영." 

Visions Fugitives 이렇게 불어표기되기도 하고 아니면 영어로 Fugitive Visions. 

러시아 시인 Konstantin Balmont의 아래의 시 구절에서 온 제목이라고 한다. 


"In every fugitive vision I see worlds, 

full of the changing play of rainbow hues..."


"덧없는 환영에서 나는 세계들을 본다. 

무지개 색조들의 유영과 유희로 가득한....." 


이 구절이 놀라운 건 (놀라운 이유가 여럿이겠지만 아무튼 그 중 하나는) 

아도르노 저술에서 어떤 모티프들과 강하게 공명하기 때문에. 특히 

<부정변증법>의 결말 부근엔 위 구절의 직접 인용이라 해도 될 대목들이 있다. 




인정되지 않은 영향. 

이런 게 러시아 음악, 러시아 문학과 아도르노의 작업 사이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듬. 

아도르노는 혹시 러시아도 (라틴 아메리카나, 여성 작가나, 미국 음악 처럼) 무시했고 무관심했나? 

그렇지가 않을 것 같다. 


이 포스팅을 1일 1리히터에 속하게 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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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라는 숫자는 영원히 베토벤 교향곡들을 말하는 숫자여야 한다. 

하이든은 104곡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왜 베토벤은 9곡밖에 작곡하지 못한 거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다. 베토벤 게을렀던 거 아니에요? 


베토벤이 게을렀다니! 

예술가는 정지하지 않는다. 이게 그의 모토였다. 그는 계몽과 혁명의 아이였고 

그들에 담긴 위험한 이념 모두를 체현했다. 예술은 개인의 자기 표현이어야 했고 자기 표현은 

끝없이 갱신하는 자기 발명이어야 했다. 베토벤이 해낸 자기 발명, 자기 재발명. 그걸 했다면 하이든도 

다수 작곡 할 수 없었다. 하이든은 고전 이상에 충실하기만 해도 되었고 템플릿을 반복 사용하기만 해도 되었기 

때문에 다수 작곡한 것이다. 




저런 얘기를 늦어도 20대에 들으면서 

이게 무슨 뜻인가, 진지하게 오래 생각해 봤어야 한다는 생각 든다. 

너무 늦었잖아요. 여기 있는 진실 약간이라도 내 삶에 적용해 보기엔. 


알라딘 서재 터줏대감처럼 느껴지는 로쟈님이 서재 접으신다는 공지하신 걸 보니 

나도 ; 부화뇌동, 이 나이에 이 처지에 서재가 다 뭡니까 너무 오래 눈치없었습니다 고백하고 

떠나야 할 거 같아진다. 쓸쓸하고, 쓸쓸할 때 떠나야 할 거 같다. 자기 최초 발명... 이라도 시도하기 위해. 

better late than never를 모토로. 


그러나 아직, 리히터(1일 1리히터) 해야 하니 아직은......... 

코로나. 사실 처음엔 이 짧은 강제 은신 기간 동안 칩거하고 집중해 글을 써야겠다 계획했다가 

거의 매일 그 계획 일그러졌다. 매일 새로 출발함. (한숨). 내일 또 새로 출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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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받은 <리흐테르>에서 

멈추게 되던 대목. 리히터의 은사 네이가우스. 겐리흐 네이가우스. Heinrich Neuhaus. 

그토록 그윽하고도 담백한 사람. 


<리히터: 이니그마>에 나오는 겐리흐 네이가우스 보면서 받았던 인상과 일치한다. 




프로코피예프. 

가족에게 폭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같다. 아니었을 것이다. 그린버그 교수의 피아노 명곡과 작곡가 강의에 

그도 등장하는데 거기서 교수가 들려준 말에 근거해 상상하자면. 아무튼 그는 미국에 잠시 와 있던 동안에도 

다수의 적을 만들었다. 어디서나 얼굴이 벌개지며 싸울 수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그게 다 그가 귀족적이라서. 

예술 파괴자들에게 선별적으로 그러나 본능적으로 폭력적인 인물이면 매력적이지 않나. 극히 매력적이지 않나. 





피아노 음악에 관심 생기고 얼마 지나니까 

어떻게 집에 디지털 피아노 한 대가 없냐..... 이렇게 되기도 한다. 

그러게 피아노 구입 계획도 세운다. 식기세척기가 먼저요 다음이 피아노. 


아무튼. 프로코피예프. 이 분 역시 외모도 매력적이다. 

어찌 보면 그 흔히 '간신배' '모략가' 형 외모면서, 그러나 결국 부인할 수 없이 귀족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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