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시리즈 중 '스릴러'와 '택시'를 읽었는데 두 책의 구성과 문체, 내용(은 당연하고), 남는 느낌도 매우 다르다. 시리즈를 묶는 공통점은 무얼까. 아무튼, 이건 시리즙니다.

 

금정연 작가는 가볍고 (아주 조금은 귀여운) 분위기로 자신이 얼마나 무해하고 착한지, 수동적이며 순진한 택시 승객인지 수다떨듯 책을 시작했다. 부인의 경험을 통해 여성 승객의 불편함을 건드리기도 했고, 택시 기사와 승객, 택시라는 공간의 밀폐된 폭력성을 영화와 소설을 가져다 풀어놓을 듯 하다 말았다. 결국 '혼자 혹은 따로' 타는 택시. 작년 일정 기간 동안 택시 만큼이나 그가 자주 탄 인생차 (모델명이 la vita), 한 무리의 아저씨 영화인들과의 경험이 묵직하다. 택시거나 인생이거나, 혼자거나 (억지로) 무리거나.

 

그에게도, 다른 승객이나 기사에게도 택시의 경험은 일상이라 아주 즐겁지도 뜻대로 되지도 않는다. 막히면 짜증나고 유턴금지에 사고도 나 있고, 금정연 작가의 글쓰기도 일상처럼 무슨 말을 끝까지 밀어붙여서 풀듯 하다가 그 기개에 제풀에 놀라 주저 앉으며 꿍얼거린다. 인생 이런거 아니겠냐고, 아무튼 일상, 아무튼 책이니 책장은 넘어가고 웃기도 하고. 저자 양반의 수다를 네, 네, 하고 건성으로 읽다보면 어딘지 목적지로 가긴 하겠지. 책값으로는 우리동네에서 택시 타고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이 책을 시작하면서 어제, 나는 목적지를 말을 했던가, 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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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8-04-23 09: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금정연 작가는 요즘 활발히 활동하는 것 같아요. 괜히 반가운 작가네요. (괜히는 아니죠~~제가 금정연 마니아 17위더라고요!!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4-23 21:14   좋아요 0 | URL
금정연 작가는 친근한 방식의 글을 많이 쓰더라구요. 서평집이 몇 권 나와있는데 전 이번에 처음 단행본을 읽었고요 (전에 그의 글/말이 실린 책을 읽은 적은 있고요).
 

 

복제인간 이야기. 승민은 교수인 아빠와 변호사인 엄마에 비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몸은 건강하지만 머리는 평범한 아이. 하지만 부모님은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다. 실은 따로 5년전부터 완벽한 두뇌의 복제인간을 준비해 두어서 승민이는 최고의 두뇌를 이식받을 예정이다. 이 계획은 아직 부모님의 비밀이지만 승민이가 아빠의 컴퓨터를 몰래 열어 알게된 사실. (승민이 똑똑한걸?)

 

복제인간 생명권에 대한 이야기는 '네버 렛 미 고' 에서 가슴 아프게 읽었기에 이 아주 짧은 단편의 단순한 외침 '죽이면 안되잖아요' 라는 어린이 말로는 그닥 설득되지 않는다. '마이 시스터즈 키퍼'도 생각나고. 비슷한 설정의 이야기에 몰입하려면 디테일이 필요한데 많이 엉성하고 틈이 보인다. 수학이나 운동을 잘하려고 복제인간을 만들어서 부분을 쓰고 버린다, 90년 이후의 세상에서? 생명권을 언급하기 전에 경제성이 떨어진다. 병원에서의 두 아이를 착각하는 설정도 너무 어설프다. 한 세기 후 세상의 어린이들은 아직도 학교 등수와 공부 경쟁을 신경쓰며 재미 없게 살고 있을까? 복제인간 선택을 못하는 부모들과 아이들은 어떤 모습일까. 왜 승민이만 복제인간 걱정을 하는걸까. 서로를 안타까워하는 승민과 미르. 이 두아이는 마음도 닮아 보인다. 어쩌면 그 마음도 복제가 된 걸까. 복제인간 혹은 쌍둥이 설정이 미래세상도 현재의 세상도 그려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실망이다. 함께 읽은 막내는 나름 반전이라고 놀라며 얼른 자기 왼쪽 겨드랑이를 살폈다. (표지그림처럼) 또다른 복제인간 이야기 봉구도 만나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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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기 할망'이라고 불리는 진아영 할머니는 제주 4.3 사건의 생존자다. 아직도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음식을 먹을 때도 다른이들과 함게 할 수 없고 물질도, 이야기도 나눌 수 없다. 무엇보다 저녁노을이 붉을 때나 집을 잠시 나설 때도 '그날'이 살아나서 겁에 질려 서있기도 힘들다. 하지만 어린이들에게 구덕에 든 해물을 나눠도 주는 따뜻한 할머니. 그림책은 아름다운 제주가 겪은 아픈 역사를 알려준다. 마음이 무거워서 그림을 오래 보기가 어려웠다.

 

할머니 주위 사람들이 '모로기 할망'에게 계속 손을 내밀고 있다. 이 그림책도, 함께 읽은 우리집 아이도. 사람이 증거고 그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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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눈알 작전‘ (최대한 눈 앞에서 알짱거리기)로 후배 여학생에 가까워지려 노력하는 대학 3학년생, 어른의 세계와 인생을 폭넓게 경험하고 싶은 신입 여학생. 별난 주변 인물들, 개인용 3층 전차 타고 다니는 고리대금업자, 붕어 양식업자 성추행범, 치위생사 말술 언니, 밤도깨비같은 빈대, 그리고 학생 자치회장, 속옷을 일년간 갈아입지 않는 빤스대왕... 이들이 그려내는 청춘과 사랑 이야기가 어련하랴. 내용을 까먹었지만 몇 년 전에 난 분명 이걸 재밌게 읽은 느낌이 난단 말이지... 그래서 다시 읽는 실수, 애니매이션을 결재해서 시청하는 실수를 저릴러버렸다.

광고 혹은 뮤직 비디오로도 1분 이상 시청하기 힘들게 과장된 비율의 그림과 흑/적 중심 색상의 불편한 영상. 1년에 걸친 사계절 소심 연애담이 단 하룻밤에 벌어지니 내용 연결도 억지스럽고 피곤하다. 단체 마빡이 춤을 추는 사람들에 나찌와 레지스탕스의 힘겨루기로 보이는 축제 게릴라 연극, 겨울 감기는 봄밤 이후 누런 콧물이 되어 어지럽게 매달린다. 중반 이후 부터는 건너 뛰며 봐야했다.

여름밤 헌책방 축제 장면과 여학생의 그림책 찾기 여정은 흥미로웠다. 하지만 책이 나온다고해도 용서가 안돼. 반복되는 옷 벗기기와 성추행은 짜증이 솟고 가을 대학축제의 젊은 치기와 온갖 장난도 식상할 뿐이다. 겨울의 감기 치료사로 나선 여주인공은 ‘엄마‘ 타령을 하는 할아버지에게 가서 ‘제가 있잖아요‘라며 간호해준다. 성추행범의 빚을 술내기를 이겨서 갚아준다니, 이건 끝까지 간 일본남자들의 판타지 문학인건가. 그러니 ‘천천히 걸어‘가라고 붙잡고 있지. 그나마 다행인건 주인공 남자 선배가 ‘스토킹‘을 하는 게 아니라 그저 좇아다닐 뿐이라는 것쯤. 아니 이 여학생은 왜 1년간 술마시며 늙은 남자들만 만나는지 모르겠다. 그런 게 어른의 세계가 아니야. 수업 가다 말고 왜 동네 아저씨들 (책에는 ‘나이스 미들‘이라고 써놓음)을 찾아다니니. 그치들한테 뭘 배우게? 여학생 선배는 안만나? 동급생 친구는 없어? 넌 일본의 ‘은교‘ 같아.

(사진 속 만화 부분은 ‘교토 구석구석 매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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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4-17 0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 사람들이 하도 좋다고 하길래 읽으려고 했다가 1/3도 못읽고 팔아버렸었어요. ㅎㅎ

유부만두 2018-04-17 07:53   좋아요 0 | URL
제목 때문일까요? 오기로 완독 재독... 하아 ... 이건 제 잘못이군요. ㅠ ㅠ

라로 2018-04-17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책이 영화 만화로도 나오다니,,,가끔은 아니 자주 취향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ㅎㅎㅎㅎ

유부만두 2018-04-18 09:36   좋아요 0 | URL
네. 취향에 따라 문학과 영화의 폭은 아주 아주 넓으니까요. ^^
 

둘 다 '저학년용 도서'라고 표시되어 있지만 '지우개똥 쪼물이'와 '조막만한 조막이'는 아주 다른 이야기다. 조막이는 전래 동화를 비틀어서 유머와 다시보기를 시도했고 쪼물이는 생활에 판타지를 가미한 동화다. 쪼물이는 얇고 스토리도 단순해서 저학년이 혼자 읽기로도 적당해 보인다. 그림도 귀엽고.

 

지우개로 쓴 글이나 그림을 지우면 지우개 밥이 나오는데 맞다, 똥. 그걸 모아서 동그랗게 뭉치면 말랑거리고 고무 찰흙 느낌도 나서 뭔가를 계속 만들고 싶어진다. 치우고 훅 불어버리자면 너무 많아 귀찮은데 뭘 만들려고 드니 아쉬운 양이다. 뭘 지워야하고, 뭘 더 그리고 써야 해. 이 과정을 기꺼이 하는, 공부 말고 딴거 다 재밌는 애들 모여바바!!!

 

아이들은 억지로, 꾸중 들으며 지울 때가 더 많다. 숙제가 틀려서, 잘못 그어서, 계산이 틀려서. 눈물도장, 노력도장을 받아서 한숨을 지으면서 지운다. 그런데 그런 지우개 똥은 냄새나고 맛이 없대. 재밌게 그리고 쓰고 놀다 나오는 지우개똥은 향기도 나고. 누가 먹게요? 지우개 똥 인형이요.

 

유진이네 반 선생님은 깐깐하게 아이들의 실수를 다 지적하고 지우게 하고 혼을 낸다. 그리고 칭찬을 아낀다. 아이들은 풀이 죽고 주눅들어 손가락으로 지우개똥을 모아서 쪼물거리다 인형을 하나씩 만들어 위안을 받는다. 또 금세 잊어버리고 자기들 끼리 논다. 그리고 집에 간다. 학교에 남은 지우개똥 인형들, 쪼물이 헐렝이 짱구 딸꾹이 들은 아이들이 시무룩한 원인, 선생님이 칭찬도장 대신 찍어주는 '눈물도장'을 없애기로 결의한다. 하지만 눈물 도장은 엄청 크고 또 힘이 세고 무서워. 게다가 부리는 벌레 부하들까지 여섯이나 있다.

 

아이들은 칭찬을 먹어야 힘이 나고, 지우개 똥 인형들은 지우개 가루를 먹어야 힘이 난다. 지우개 가루를 더 만들려고 쪼물이와 일당들은 샤프심을 하나씩 들고 낑낑 그림을 그려놓는다. 아이들이 그 위에 더 그림을 이어 그리고 글도 쓰고 또 지우면서 지우개 가루가 생긴다. 잘못 써서 혼나며 지우는 게 아니라 좋아서 놀면서 지우개 가루가 생긴다. 쓸모 없는 똥이 아니라 다른 의미가 주어지는 것만 같다. 아이들 집에도 따라가는 지우개 인형들. 아직 아이들과 교류가 없지만 아이들 대로, 쪼물이들 대로 다녀서 귀엽다.

 

어제 4월 15일은 '지우개의 날'이었다고 한다. 영국의 화학자 조셉 프리스트리(Joseph Priestley)가 고무의 지워지는 성질을 알아낸 날. 지우개의 날. 나는 어릴적에 지우개똥으로 뱀을 만들었었는데. 회색빛 뱀. 또아리를 틀어놓으면 똥처럼 보였.... 그런데 지우개를 닳도록 쓰는 아이들은 없다. 쪼개거나 잃어버리거나 지우개 따먹기로 빼앗기거나. 그 많은 지우개들은 어디에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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