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단락부터 이러면 기분이 잡치죠. 계속 읽어는 보겠지만 10년전 초판 나온 책이고 33쪽 까지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 연달아 나와서 불안하고.

책에 실린 작가의 말에 따르면 작가 눈에도 거슬리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냥 두었다고. 그걸 손보지 않고 10년 만에 새 표지로 내는 책이 ‘개정판’인가? 그냥 리커버 아니고?


결국 책은 끝까지 실망스러웠다. 초반에 엄마와 딸 두 화자를 내세우나 싶다가 딸의 목소리만 내는데, 그 딸도 고등학생, 20대, 30대 등 다양한 느낌이다. 문제는 그 나이 목소리가 제 때에 나오지 않고 엉켜 버린다는 점. 초반의 엉뚱하게 발랄한, 하지만 단단한 사람은 절반을 넘기 전에 사라진다. 여기 저기서 봤던 이야기가 엉성하게 (하지만 억지로) 엮여있다. 주로 계동 원서동 등 북촌이 배경으로 묘사되는 데 영 겉돈다. 그래서 예전 카페가 많이 들어서기 전 이야기와 그후 변화한 동네 묘사의 차이가 크지 않다. 마찬가지로 강남 아파트 묘사도 두어 번 나오는데 그저 '잘사는' 고등학교 동창생 집 이야기로 코드 처럼 쓰인다. 강남 아파트, 베란다에 나서니 전망은 좋지만 강변도로 소음이 커서 문을 닫는다고 한다. 하지만 강남 아파트는 강을 북으로 두고 있어서 베란다가 강변도로를 만나지 않는다. 세심하지 못한 묘사는 비유에서도 쓰인다 '시베리아 추위 같은' 은 예사고 스산한 분위기 묘사엔 여성 연쇄 살인 강간범 이야기나 실연한 여자의 자살 등을 든다. 제한적이고 전형적인 인물 묘사에는 '이런 걸 책으로 묶어서 낸다고?'라는 의문이 계속 들었다. 인물들 하나하나에 정, 아니 최소한의 의리나 의무도 지키지 않는다. 다 따로 논다. 그저 글을 쓴다는 것에 취해있는 작가의 모습만 보여서 어이가 없었다. 주인공의 미국행 이야기부터는 화도 나지 않았다. 그래서, 라이팅 클럽은? 상상했던 여자들의 연대 이야기도 아니고, 모녀 이야기도 아니고, 글쓰기 메타 소설은 더더욱 아니며 독서 경험을 엮은 엣세이도 못되는 '소설'이 우리나라 무슨 '총서'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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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20-08-14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어요? 별롤 것 같은데!

요즘 리커버판들 눈은 즐겁긴 한데, 여러모로 찜찜합니다.

유부만두 2020-08-14 15:09   좋아요 1 | URL
별로에요. 위트 있으려고 애쓰는 옛날 글. 이제 반 읽었는데 일본 영화에서 힘든 상황에서 주인공이 엉뚱하게 지내는 거 있죠? 그런 분위기에요. 메타소설인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뒤죽박죽이에요.

pololi21 2020-08-25 23: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강영숙 작가 단편 한편을 읽고 뭔가 재기발랄함과 꼬여있는 유머가 느껴져서 산 책입니다. 결과는 왕실망. 마지막 쳅터는 억울해서 읽었어요. 작가보다 민음사가 더 싫으네요.

유부만두 2020-08-26 07:38   좋아요 0 | URL
저도 설마, 하는 마음과 억울함을 안고 완독했는데요, 아무리 예전 소설이라지만 10년전에 읽었더라도 역시 실망했을 것 같아요.
표지와 홍보에 휘둘리지 말아야 겠다고 결심했어요. (과연???)
 

계급 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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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청소년>

장군이네 떡집, 김리리, 이승현 그림, 비룡소, 2020

소원떡집, 김리리, 이승현 그림, 비룡소, 2020

큰일 한 생쥐, 정범종, 애슝 그림, 창비, 2016

아기 너구리 키우는 법, 천효정, 조미자 그림, 창비, 2015


<만화 그래픽노블>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이창현, 유이 그림, 사계절, 2018

중쇄를 찍자 8, 마츠다 나오코/주원일 역, 애니북스, 2018

중쇄를 찍자 9, 마츠다 나오코/주원일 역, 애니북스, 2018

중쇄를 찍자 10, 마츠다 나오코/주원일 역, 애니북스, 2019


<비문학>

시대를 앞서간 여자들의 거짓과 비극의 역사, 로사 몬떼로/정창 역, 작가정신, 2000

셰익스피어, 황광수, arte, 2018

진짜 미국식 영어, 김영철, 타일러 라쉬, 위즈덤하우스, 2017

매거진 B vol.10 펭귄북스, JOH&company, 2012

옛 그림으로 본 서울, 최열, 혜화1117, 2020


<문학>

기시마 선생의 조용한 세계, 모리 히로시/홍성민 역, 작은씨앗, 2013

The Bookshop, Penelope Fitzgerald, Mariner Books, 2015

아웃 1, 기리노 나쓰오/김수현 역, 황금가지, 2007

아웃 2, 기리노 나쓰오/김수현 역, 황금가지, 2007

화씨451, 레이 브레드버리/박상준 역, 황금가지, 2009

If I Had Your Face, Frances Cha, Ballatine Books, 2020

<The Yellow Wall-Paper>, Charlotte Perkins Gilman, Penguin Classics, 2009


<영화 드라마 연극>

프레셔스

후세

사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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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0-08-04 16: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익명의 독서중독자들

덕분에 찾아보렵니다^^

유부만두 2020-08-05 08:29   좋아요 0 | URL
재미있어요. 책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자신에게서도 발견하고 맞장구 치는 심정으로 읽었어요.
 


디킨스의 작품을 대할 때는 접근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구애를 할 필요도 없고 꾸물거릴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디킨스의 목소리에 항복하면 됩니다. 그뿐입니다. 가능하다면, 나는 50분의 강의 시간을 항상 말없이 명상하고 집중하며 디킨스에게 감탄하는 데 바치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런 명상과 감탄을 지휘하고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황폐한 집>을 읽을 때 우리는 그저 긴장을 풀고 뇌가 아닌 척추에 모든 것을 맡기면 됩니다. 물론 책은 머리로 읽는 것이지만, 예술적인 기쁨은 양쪽 어깨뼈 사이에 자리잡고 있으니까요. 등에서 느껴지는 그 작은 전율은 확실히 인류가 순수예술과 순수과학을 발전시키며 얻은 최고의 감정입니다. 그러니 척추에서 느껴지는 그 짜릿함과 설렘을 숭배합시다. 우리가 척추동물임을 자랑스러워합시다. 우리는 머리에 신의 불꽃을 이고 있는 척추동물입니다. 뇌는 오로지 척추의 연장일 뿐입니다. 양초의 심지는 양초의 몸을 끝까지 관통하는 법입니다. 만약 이 전율을 즐길 줄 모른다면, 문학을 즐길 줄 모른다면, 전부 다 포기하고 만화, 비디오, 라디오에서 발췌해 읽어주는 책에만 집중하세요. 하지만 나는 디킨스가 그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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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0-07-28 08:4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유부만두님 페이퍼 보고 나니 <나보코프 문학 강의>를 먼저 읽어야 할지 <황폐한 집>을 먼저 읽어야 할지 모르겠네요. 위의 인용글 너무 좋은데요^^

유부만두 2020-07-28 10:12   좋아요 0 | URL
좋죠? ^^ 척추동물 독자로서 양 어깨 사이로 전율을 느끼며 책을 읽고 있습니다.

moonnight 2020-07-30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척추동물이라서 다행입니다ㅎㅎ 아이고 세상엔 읽을 책이 너무 많네요. 이런 행복♡

유부만두 2020-07-31 14:33   좋아요 0 | URL
머리에 신의 불꽃을 이고 있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적대적이었던 최초의 비평가들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들 또한 뉘앙스가 부족했다. 그들은 대부분이 남자들이었고, 남편이 언젠가 말했듯이 <다락방의 미친 여자>의 기본적인 주장에 대한 그들의 공격은 두 가지의 단순하고 단지 애처로운 뿐인 진술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하나는 "남자들 또한 고통받는다" 이고, 또 하나는 "내 아내는 그런 식으로 느끼지 않는다!" 는 것이다.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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