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터에서 생각없는 부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회사말아먹은 놈이라고, 한놈때문에... ... 친구가 나에게 물어왔다. 김용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구. 글쎄 당신이 김용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감내할까? 억하심정일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자본주의엔 제도주의라고 있는데 기본 룰을 지키는거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있지. 시장의 기본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더 장사가 되지 않는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잖아. 환경경영, 윤리경영이라고 떠들면서 체화시키는 속도는 엄청빠른데, 정말 이상하지 않아 준법경영이라는 소리들어봤어. 우리 자본주의는 너 농민을 수탈하는 마름이 설치는 마름자본주의나 완장자본주의라구.(친구는 마름이나 완장이란 표현에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 환경운동에 대한 직장인의 생각: 환경기자라는 명목으로 업체 삥뜯는 류의 동선이 많다보니 시간의 켜에서 반감이 많다. 그렇지 않는 단체에 대한 설명을 한차례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옮겨 설득을 한 모양이다. 묵묵히 지켜내고 가꿔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기에 없는 것으로 경험되고, 환경을 말하며 먹칠을 하는 친구들과 동일시하게 되는 모양이다.
- 일터에서 도는 말; 지난 주 가는 방향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적극적일지 몰랐다. 전번에 실수했다고 이야기하더라. 아랫사람에게 막하지 않았는데 술이 과했는지...측근으로서 해달라-그렇게 하도록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자꾸 초첨을 흐리기 만드는 일때문에 괜한 고생이나 사고의 번복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원칙이나 룰을 깨뜨리고 자기 위주로 끌어들이려는 습속들로 쓸데없는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 좀더 가진자에 대한 생각
- 앎과 행동의 필요한 간극;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흥분을 만든다. 그 흥분은 말하고 싶고 행동하고 싶게 한다. 이런데, 이렇게하면 되는데, 이렇게 해야지. 직선의 유혹이 늘 스며든다. 하지만 알게 되어서 그 직선으로 내달렸을 때, 의도하지 않게 희생되는 것은 없을까? 의도하지 않는 교육효과나 반작용은 없을까? 지식을 소유하게 될 때 그 지식으로 사라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는 없을까? 한번의 큰 호흡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과연 이대로 가는 길밖에 없을까? 저기에 가는 방법의 가지수를 생각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게 하며 가는 지름길이 무엇인가? 지식의 칼날에 배이지 않고 삶이 살아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나. 딸래미 진로문제로 고민중이다. 이선생님의 조언이나 안해의 말씀을 마음에 넣어 품는다. 내새끼, 내삶, 우리새끼,우리삶, 그리고 할 수 있는 것, 해야만되는 것들 사이에 들락날락하고 있다.
둘. * 대표님 말씀 가운데 지난 번 가진자, 좀더 있는자가 할 일, 가르침에 따라 사라지는 교육효과가 맞물려 생각이 머문다.
셋. 일터에서 역시 이 생각으로 몇가지 선택지점을 가지려고 한다. 직선행동이 아니라 여러곡선에 대해...역시 직선의 유혹에 몸이 배여 있는 느낌.
- 상징-언어-영상의 유격: 상징이야기를 보고 있다
고통이나 슬픔이 배여있거나 켜로 쌓여있지 않는 앎이란 어떤 것일까? 안남미처럼 바람에 훌쩍 날아가는 그런 지식은 아닐까? 지금 알고 있는 알량한 내 앎이 그러하고, 앞으로 알게 될 앎 역시 그러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영상시대에 걸맞게 아이들은 즉문즉답이라한다. 사고의템포가 그많큼 쾌속버전으로 진화해온 모양이다. 문자로 사고한다는 것, 영상으로 사고한다는 것, 상징으로 사고한다는 것. 그 유격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없는가? 더 얻는 것은 무엇일까? 더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조율되고 섞여야하는 것일까? 시각편향의 시대가 얻지 못하거나 놓치는 통찰은 상징의 시대보다 현저히 줄어든 것은 아닌가? 영상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통에 허물어지지 않는 앎이란 어떤 것일까? 허튼 생각이 꼬리를 문다. 관련된 책이 있다면 보고 싶은데...검색어를 쳐도 마땅한 책이 없다.
뱀발. 어제 말이 고팠는지 동기이자 일터동료인 친구가 저녁먹자고 조른다. 간단히 저녁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품고 있는 생각을 조금 곁들여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