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는 스며드는 것일까? 알갱이로 톡톡 두들기는 것일까? 아니면 노크하듯 똑 똑 하는 것일까?  마음은 꿰어지는 것일까? 흔들리는 것일까? 불쑥 다가오는 것일까? 바람처럼 꽃향기를 넘어 오는 것일까? 햇살은 온몸에 들어와 녹는 것일까? 똑똑 하며 들어와 섞이는 것일까? 흔들리는 마음을 보듬는 것일까?경계는 엷어지는 것일까? 바래지는 것일까? 온기를 만나 톡톡하는 것일까? 꽃처럼 저멀리 알갱이처럼 똑 똑 두드리며 환하게 열리는 것일까?


순간적인 찰라,  많은 것이 들어가고 나갈 수 있다. 경계를 허물 수도 삶을 지지하고 있던 마음 기둥을 흔들 수도 세상의 경계선을 저만큼 밀어버릴 수도 대못을 박을 수도 함석판 판에 두드리는 소리라도 찰라에 듣지 못할 수도 햇살이 토닥거리는 느낌도 갖지 못할 수도

간을 늘려잡아 본다. 그리고 이런 온기나 마음이나 경계에 반응하는 내가 갖는 동선, 무늬, 패턴이 어떻게 두드려지는지 또 어떻게 두드리고 있는지 늘 똑 같은 직선은 아니었는지 늘 꼭 같은 실선뒤의 바래지는 점선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작은 곡선, 아니면 날카로운 직선, 쉼표하나없는 파르르한 떨림,

일을 대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또 일을 즐기거나 또 사람을 만나거나 또 다른 나무를 보듬거나 하다보면 시공간이란 울타리를 치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어쩌면 그렇게 마음길이 일을 여는 길이, 일을 닫는 길이, 일을 즐기지 못하는 길이, 사람과 사귀는 길이, 늘 같은 템포, 리듬, 무한의 순환고리를 갖는 일.

다른 색깔. 다른 동선. 어쩌면 곡선의 이어짐을 배려한 직선. 어쩌면 더 넓게 품을 수 있는 점선. 어쩌면 노아란 색. 그러다 초록에 물든. 다른 연두색. 빨간색. 하늘색.

카로운 직선만 난무하고 잊어버리고 또 다른 직선으로 나아가는 반복. 세상에 온기와 마음, 경계를 만나면 그것을 딱딱한 것으로 일로 사람으로 익숙해져 온 대로만 톡 톡 두드리는 것일까? 토독 토닥. 파란 노랑 목련으로 피워내지 못하는 것일까?

음들도 꿰어야 서말은 되는것은 아닐까 회색톤으로 아무런 굴곡없는 직선으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 일상과 반응으로 그 닫힌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끊임없는 경계만들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온기는 다가오는 것일까? 스며드는 것일까? 불어넣는 것일까?

가야금변주처럼 파스텔톤처럼, 때론 양지바른 봄햇침에 졸린 고양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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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서없이 적다.

 계획에 대한 강박증
- 세부일정에도 리듬을 주어야; 해야된다는 생각만...작심삼일만 남고 나머지는 햇살에 바래버리는 반복이라...마음을 얼마나 오래가지고 일정에 강약약 중간약약 강약중약을 주지 못하면 사그라져 버리는 것은 아닐까? 함께 하는 일들이 서로 마음에 배여있는지, 그리고 그 동선을 따라 리듬과 호흡은 있는지? 지나치게 잘해야만 된다는 강박만 앞머리에 있는 것은 아닌지?

 
 일주일 화 목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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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연비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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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  ... ...

 

2.

휴우... ...

 

3.

 왜 눈물이 나죠...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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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08-03-19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우리 폴아저씨는 시인이에요

여울 2008-03-19 10:35   좋아요 0 | URL
그쵸
 

 

- 김용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일터에서 생각없는 부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회사말아먹은 놈이라고, 한놈때문에... ... 친구가 나에게 물어왔다. 김용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구. 글쎄 당신이 김용철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감내할까? 억하심정일까? 설명되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은데. 자본주의엔 제도주의라고 있는데 기본 룰을 지키는거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있지. 시장의 기본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더 장사가 되지 않는 논리에서 출발한 것이잖아. 환경경영, 윤리경영이라고 떠들면서 체화시키는 속도는 엄청빠른데, 정말 이상하지 않아 준법경영이라는 소리들어봤어. 우리 자본주의는 너 농민을 수탈하는 마름이 설치는 마름자본주의나  완장자본주의라구.(친구는 마름이나 완장이란 표현에 맞다고 맞장구를 친다.)
 
- 환경운동에 대한 직장인의 생각: 환경기자라는 명목으로 업체 삥뜯는 류의 동선이 많다보니 시간의 켜에서 반감이 많다. 그렇지 않는 단체에 대한 설명을 한차례 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을 옮겨 설득을 한 모양이다. 묵묵히 지켜내고 가꿔내는 사람들이 있는데 보이지 않기에 없는 것으로 경험되고, 환경을 말하며 먹칠을 하는 친구들과 동일시하게 되는 모양이다.

- 일터에서 도는 말; 지난 주 가는 방향에 대해 다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적극적일지 몰랐다. 전번에 실수했다고 이야기하더라. 아랫사람에게 막하지 않았는데 술이 과했는지...측근으로서 해달라-그렇게 하도록 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쉬운 방법이 있는데도 자꾸 초첨을 흐리기 만드는 일때문에 괜한 고생이나 사고의 번복이 일어나는 것은 아닌가? 원칙이나 룰을 깨뜨리고 자기 위주로 끌어들이려는 습속들로 쓸데없는 에너지가 많이 소비된다.

- 좀더 가진자에 대한 생각
- 앎과 행동의 필요한 간극;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는 것은 흥분을 만든다. 그 흥분은 말하고 싶고 행동하고 싶게 한다. 이런데, 이렇게하면 되는데, 이렇게 해야지. 직선의 유혹이 늘 스며든다. 하지만 알게 되어서 그 직선으로 내달렸을 때, 의도하지 않게 희생되는 것은 없을까? 의도하지 않는 교육효과나 반작용은 없을까? 지식을 소유하게 될 때 그 지식으로 사라지는 것을 최소화할 수는 없을까? 한번의 큰 호흡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과연 이대로 가는 길밖에 없을까? 저기에 가는 방법의 가지수를 생각해야 되는 것은 아닐까? 살아있게 하며 가는 지름길이 무엇인가? 지식의 칼날에 배이지 않고 삶이 살아나는 방법에 대해 배우는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하나. 딸래미 진로문제로 고민중이다. 이선생님의 조언이나 안해의 말씀을 마음에 넣어 품는다. 내새끼, 내삶, 우리새끼,우리삶, 그리고 할 수 있는 것, 해야만되는 것들 사이에 들락날락하고 있다.
 둘. * 대표님 말씀 가운데 지난 번 가진자, 좀더 있는자가 할 일, 가르침에 따라 사라지는 교육효과가 맞물려 생각이 머문다.
 셋. 일터에서 역시 이 생각으로 몇가지 선택지점을 가지려고 한다. 직선행동이 아니라 여러곡선에 대해...역시 직선의 유혹에 몸이 배여 있는 느낌. 

- 상징-언어-영상의 유격: 상징이야기를 보고 있다
고통이나 슬픔이 배여있거나 켜로 쌓여있지 않는 앎이란 어떤 것일까? 안남미처럼 바람에 훌쩍 날아가는 그런 지식은 아닐까? 지금 알고 있는 알량한 내 앎이 그러하고, 앞으로 알게 될 앎 역시 그러지 않을까 심히 염려된다. 영상시대에 걸맞게 아이들은 즉문즉답이라한다. 사고의템포가 그많큼 쾌속버전으로 진화해온 모양이다. 문자로 사고한다는 것, 영상으로 사고한다는 것, 상징으로 사고한다는 것. 그 유격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없는가? 더 얻는 것은 무엇일까? 더 얻을 수 있다면 어떻게 조율되고 섞여야하는 것일까? 시각편향의 시대가 얻지 못하거나 놓치는 통찰은 상징의 시대보다 현저히 줄어든 것은 아닌가? 영상시대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고통에 허물어지지 않는 앎이란 어떤 것일까? 허튼 생각이 꼬리를 문다. 관련된 책이 있다면 보고 싶은데...검색어를 쳐도 마땅한 책이 없다.

 

 

 

뱀발. 어제 말이 고팠는지 동기이자 일터동료인 친구가 저녁먹자고 조른다. 간단히 저녁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품고 있는 생각을 조금 곁들여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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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4 18: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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