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한칸, 부엌이라기도 뭣한 주방 한칸, 왜 넓은지 이해가 안됐는데 살아보니 넓어서 편했던 욕실 한칸. 2000년대 초기. 한 지붕 세 자취생 중 한 명이 나였다. 친구가 놀러와 김치부침개라도 부치는 날이면 옆방 총각들이 슬며시 창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왁자지껄한 수다를 못 참겠거나 고소한 지짐 냄새를 못 견디겠거나. 하숙생이 아니라 자취생이었기에 문 닫으면 각자의 공간이었고 각자의 생활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면 편안했고 한편 쓸쓸했다.
그 즈음 졸업하고 회사를 다니기 시작한 오빠가 내게 권한 사이트가 yes24였다. 캐나다에 가느라 만들었던 비자카드가 있었기에 온라인 책쇼핑이 가능했다. 그곳엔 많은 책과 다양한 리뷰가 있었다. 독후감과 레포트에 익숙했던 나는 리뷰라는 자유로운 형식이 흥미로웠고 학교도서관의 너덜거리는 책과 구내서점의 눈치주기에 서글펐던 참이라 온라인 서점의 신세계를 단연 환영했다. 당시에 어떤 책을 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택배 아저씨가 문 두드리는 소리, 칼로 조심조심 포장을 뜯는 순간, 띠지를 걷어내고(난 띠지가 싫다. 띠지는 모아서 버린다. 대체 띠지는 왜 만들까?) 향긋한 책내음을 음미하며 첫 장을 여는 순간들을 즐기고 사랑했다. 책상과 연결된 책장에 새 책이 하나, 둘 꽂힐 때마다 자취생활의 외로움이 덜해지는 느낌이었고 그 책에 관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가뿐한 클릭질 하나로 살펴볼 수 있다는 것 또한 색다른 유희였다.
그리고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주 드나들던 학교 정문 앞 '열린 지성'이라는 서점이 폐점했다. 주인아저씨는 아무리 오래 구경해도 눈치를 주거나 괜히 내가 있는 쪽으로 와서 책 정리를 하는 척 하거나 그러지 않았다. 책장사도 장사인데 그렇듯 열린 마음을 갖고 장사를 하던 아저씨는 급기야 문을 닫았다. 그 자리에는 술집, 커피숍, 편의점들이 늘비하게 들어섰다. 간혹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갔을 때 드나들던 '일선문고'는 커피숍을 옆에 끼고 새로 오픈했다. 이곳은 입점한 위치도 그러하고 직원들의 태도 역시 '열린 지성'에 비해 상업적인 냄새가 강했는데 근래의 풍경을 보면 덩치만 키웠을 뿐 파란 티셔츠를 말쑥하게 빼입은 직원들은 책이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분류도 엉망이라서 어느 시점부터인가 발길이 안 닿는다.
기억을 되살려보면 학부 시절엔 온이건 오프이건 마음 놓고 책을 사보거나 책쇼핑에 실패해도 괜찮은, 그런 넉넉한 시기가 아니었으므로 불타오르는 독서욕이 구매욕을 불지르거나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전공서적은 대개 제본을 떴고 꼭 사야만 하는 책은 선배로부터 물려받거나 할인된 가격으로 구내서점에 주문했다. 교양국어 시간에 교수님이 시인과 시집을 하나씩 정해주시고 레포트를 써오라고 하신 적이 있는데 수강생들로부터 꼭 책을 사야만 하냐는 질문을 받았을때 교수님이 몇천원 하는 시집 값이 아깝더냐고 반문하실 때는 얼굴이 활활 뜨거워졌던 기억도 난다. 하지만 우리는 호주머니 할랑하고 미래는 불확실한 IMF 시대의 지방국립대생들이었다. 술값도 커피값도 아까웠고 책값도 아깝기는 마찬가지였다. 매일 먹는 밥값도 아까웠다. 비교적 등록금 저렴한 국립대생들도 그럴진데 큰 꿈을 안고 상경한 친구들의 생활은 더욱 팍팍했으리라.
결국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전공서적 외에 그저 나의 소소한 관심사에 불과한 책읽기는 주로 도서관 대출이나 서점 마실로 해결했고 여윳돈이 생기면 오래도록 읽고 싶고 갖고 싶었던 책을 구입했다. 그 중엔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도 있고 헤르만 헤세의 <페터 카멘친트>, 루 살로메의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등등의 책들이 있고 그 책들은 여전히 중고샵이나 폐지장수에게 주어버리지 않은 채 내 책장을 지키고 있다. 지식욕과 인식욕에 목마른 청춘이었으나 읽는 기쁨 외에 소유하는 기쁨, 두고두고 내킬 때마다 펼쳐볼 수 있는 만족감에 이르기에는 나는 너무 가난했다.
사정이 그러하다 보니 남들은 취업하면 근사한 옷, 명품 가방부터 산다는데 나는 돈 걱정 안 하고 마음껏 책을 사볼 수 있다는 기쁨에 눈물이라도 날 지경이었다. 알라딘에 둥지를 튼 건 신규교사로 발령 받고 일년 즈음 됐을 무렵인가 보다. 날이면 날마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눈물 범벅 콧물 범벅해가며 느끼고 5층 이상의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나의 유일한 낙은 '퇴근 후 책읽기'였던 것 같다. 물론 작은 학교이다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였고 능력있고 따듯한 선배교사들과 순수한 아이들 덕분에 즐거운 추억도 많았지만 십수년 전이나 십수년 후나 크게 바뀌지 않을 듯 느릿느릿 돌아가는 시골 마을에서의 생활은 편안하다 못해 단조롭고 지루했다. 더구나 눈을 씻고 찾아봐도 영화관 하나 없고 온통 아이들 문제집만 빼곡히 쌓아놓은 동네 서점에 실망, 마음 먹고 근처 도시로 외출하지 않는 한 문화생활이 어려웠다.
그 와중에 우연히 알게 된 알라딘. 우선 yes24에서 볼 수 없었던, 혹은 내가 미처 발견 못했던 멋진 리뷰어들이 포진해 있었다. 위트와 유머로 무장한 M님, 솔직하고 능수능란한 글쓰기를 보여주었던 P님, 외모부터 지식수준까지 아트 자체인 A님, 바스러질듯 섬세하면서도 감각적인 문체로 나를 매혹시켰던 J님... 그 분들의 리뷰나 페이퍼에 항상 동의하거나 찬사를 보냈던 것은 아니었지만 책을 사랑하는 공통분모를 지닌 채 다양한 삶, 흥미로운 글쓰기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즐거움은 상당했다. 도서산간지역도 아닌데 꼬박 사나흘 이상 걸려야 책 한 권 받아볼 수 있는 시골마을에서도 알라딘에 접속하면 얼마든지 지적인 대화, 책에 얽힌 재미있는 사연들이 가득했다. 지구상의 한 점으로 사라지고 싶은 절망적인 날에도 이곳에 들어와 다른 이들의 일상다반사를 읽고 그들이 권해주는 책 한 권 집어들면 다시 살고 싶어지는 생에의 의지마저 체험했다. 그처럼 초창기의 훌륭한 멤버들이 조성해놓은 독특하고 훈훈한 알라딘 서재 문화가 아마도 나와 같은 소외된 이들을 보다 풍부하고 깊이있는 독서로 이끌었을 것이라 추측한다.
그 후 도시로 나오면서 드디어 빈번한 오프라인 서점행이 가능해졌다. 집 근처 '한성문고'가 폐점하기 전까지 나는 왕성한 단골이었다. 서점 주인이 알라디너가 아닐까 싶을 만큼 배열된 책들이 마음에 들었고 단골에게 포인트도 적립해주고 예쁜 책갈피를 서비스로 끼워주는 것도 좋았다. 가끔 문제집 사러 오는 학부모나 학생들만 눈에 띄고 한산하다는 점이 좋았는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지하 책방은 어느 날 문을 닫았다. 간판을 여태껏 치우지 않았는데 지나칠 때마다 옛날 생각이 난다. 밥 먹는 와중에 계산하러 달려오던 동그란 얼굴의 점원, 책갈피를 무늬가 다른 것으로 두 개를 챙기던 내 모습, 아들 문제집 사러 온 선생님과 마주쳐서 안부를 주고받던 기억, 길다란 의자에 앉아 신간 한 권을 다 읽어치우고 뿌듯함과 미안함이 공존했던 순간... 모두 다 '한성문고'와 함께 한 추억이다. 그 이후에 옮겨 간 곳이 지금의 '홍문당서적'이다. 지난 달에 우수고객으로 5천원 할인권을 받았을 만큼 이곳 역시 단골인데 알라딘에서 2, 3일 이상 걸리는 책도 이곳에 주문하면 바로 이튿날 받아볼 정도로 주인 아저씨가 친절하고 발빠르다. 특히 영달이 그림책을 많이 구입하는데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그 자리에서 구입, 너무나 재미있게 읽은 다음 <도깨비를 다시 빨아버린 우리 엄마>를 알라딘에 주문해서 읽었다. 어떤 가게보다 일찍 문을 열고 가장 늦게 문을 닫는 우리 동네의 홍문당서적은 내부 실정은 잘 모르지만 항상 북적이고 생기가 넘친다.
지난 해 터미널 근처에 '영풍문고'가 오픈한다고 했을 때 엄청 반겼는데 빛 좋은 개살구마냥 인테리어만 그럴싸할 뿐. 유명출판사의 전집류만 빼곡히 쟁여놓았지 막상 찬찬히 둘러보면 책 구성이 알차지도 않고 직원은 또 어찌나 무뚝뚝하고 불친절한지! 그래도 한 달에 두어번씩 들르는 이유는 위층에 회전목마와 기차를 탈 수 있는 키즈카페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공짜로 가져가도 되는 '책과 삶'이라는 독서신문 때문이다. 그 외에는 이곳을 굳이 방문해서 책을 구입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한달에 서너권 정도 읽고 그 외에 옛날 책 다시 읽기를 좋아하는 내게는 알라딘과 홍문당서적, 두곳이면 충분하다. 영달이 역시 으레 책은 그 두곳에서 구입해서 읽는 걸로 알고 있는데 요즘 한글에 관심을 보이며 어찌나 주구장창 읽어대는지 영달이 도서구입비를 위해 내 책을 팔아야 할 지경이다. 그래도 책을 사랑하는 삶은 책을 사랑하지 않는 삶보다 진지하고 행복할 거라 생각하기에 나는 오늘도 텔레비전을 켜지 않고(영달이는 라바, 채플린, 뽀로로만 가끔 본다) 구형 핸드폰을 스마트폰으로 바꾸어야 할 필요를 절감하지 못하며 휘발성 강한 최신 매체들에 별다른 관심도 없다. 며칠 전 영화관으로 영달이와 함께 <뽀로로의 슈퍼썰매 대모험>을 보러 갔는데 꽤 길었던 러닝타임 동안 흥미진진하게 보고나서도 두 번 보자는 이야기는 아직 없다. 만약 책이라면, 책이었다면, 또 읽어줘! 또 보여줘! 했을텐데 말이다.
엄마가 된 후 옛날처럼 많이, 다양하게 읽지 못하고 읽을 시간도 없어 아쉽지만 그만큼 아름답고 다채로운 그림책의 세계에 눈을 뜨고 세계명작을 다시 읽는 기쁨이 있어 나름대로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미녀와 야수>의 왕자가 허름한 노파를 함부로 무시했기에 야수로 변했다는 점이나 <구두장이 요정>이 구두장이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옷과 신발을 선물받는다는 점은 어른이 된 지금에서야 다시금 알게 되었다. <장화신은 고양이>의 재치는 나이 먹어 다시 보니 무척이나 교활하고도 깜찍하다. 고운 삽화에 신선한 이야기들을 담은 창작동화도 많지만 아이들의 그림책 세계에서도 고전 파워를 여실히 느끼는 요즘이다. 이야기를 듣고, 그림을 살핀 후, 그 그림에서 새로운 이야기, 뜻밖의 결말을 만들어내는 영달이를 보고 있으면 아이의 창조력을 발현시키는 책의 힘이 놀랍고도 또 놀랍다. 그러한 영달이를 데리고 동네 오프라인 서점에 마실가는 일도 즐겁고 유익하며 알라딘 화면에서 읽고 싶은 책 표지를 찍은 다음 보관함이나 장바구니에 넣는 재미도 쏠쏠하다. 결국 책 좋아하는 우리 모녀에겐 이곳이나 그곳이나 저곳이나 모두 필요한 셈이다. 더구나 윤대녕이 대관령 너머 무슨 고개 이름인 줄 아는 바쁜 사람들, 레이몬드 카버을 무슨 다이아몬드 케이스 쯤으로 치부하는 실용적인 사람들 사이에서 책에 대해 말할 수 있고 책에 대한 이야기와 애정이 오가는 이러한 공간은 주위의 삐딱한 시선과는 하등 상관없이 참으로 소중하다.
그나저나 방학이 끝나간다. 금요일 출근, 이제 다음주면 개학이다. 책 읽을 시간이 크게 늘어나거나 크게 줄어드는 변화는 아니다. 나는 밖에서는 정신없는 선생이고 안에서는 역시 정신없는 엄마니까. 다만 짬짬이 책을 손에 들고 읽는 것일 뿐. 책을 읽고 소유함으로써 더 나은 인간으로 도약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몹쓸 인간으로 추락하는 일은 예방되지 않을까 하는 낙관적 기대. 누군가 한 마디 할 때 보다는 한 줄 쓸 때 조금 더 고심하지 않았을까, 조탁하지 않았을까, 하는 독자로서의 소망. 그 모든 효용은 차치하고라도 이 복잡하고 현란한 시대, 홀로 책 한권 든 채 활자 사이를 유영해가며 한없이 고독해질 수 있는 자유 때문에 어제도, 오늘도 읽는다. 오래된 습관이자 기쁨이니 이변이 없는 한 내일도 읽겠지?
그래도 날이 따듯해지면 영달이와 더불어 자연으로 나갈 것이다. 몸이 흐물흐물, 근질근질하다. 겨우내 책으로만 읽고 보고 느꼈던 자연을 직접 안아줄 것이다. 근처 미동산 수목원에 가서 새싹과 꽃잎들을 구경하다 목조 건물로 아름답게 지은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든, 안 읽든, 그 서늘하고 쾌적한 공기를 느끼다 오는 그림을 상상한다. 숲속 도서관 나들이! 동백꽃을 채송화라고 우겨대는 영달이, 바로잡아주려는 아빠 사이에서 즐겁게 묵인하고 있기에 어서 사방팔방 꽃잎 만발한 봄이 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