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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리 신입생 시절, 담배를 꼬나문 여자 선배가 나른하게 연기를 피워올리다가는 가장 좋아하는 작가가 누구냐고 물었다. 헤르만 헤세요. 고양이마냥 가느다랗던 선배의 동공이 문득 커지며 헤세가 책에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것 같든? 다시 물었다. 자기 자신에 이르는 길, 어쩌고 저쩌고 했던 것 같은데 급작스레 파안대소를 하는 선배의 얼굴은 흡사 메두사. 온몸이 돌로 굳었던 그 순간은 내 생애 잊지 못할 한 장면으로 아로새겨져 있다.

 

정신사나운 어미의 취향 탓에 룰라부터 비틀즈까지 숱한 노래를 듣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달이에게 어디 노래 한번 불러볼까, 하면 산토끼가 바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헤르만 헤세는 내게 그런 작가였다. 십대 초반 '수레바퀴 밑에서'를 거듭 읽어가며 한스 기벤라트에게 내 사춘기의 음영을 드리웠고 이후에는 작가소개에 나온 헤세의 작품들을 하나씩 찾아 읽기 시작했다. '크눌프', '봄의 폭풍우'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유리알 유희' 등 헤세의 알려진 작품은 모조리 읽어나갔다. 흥미롭게도 카뮈, 무질, 도스토옙스키, 소세키 등 한때 나를 사로잡았던 대가의 작품들을 읽을 때와는 사뭇 다르게 헤세는 떠올릴 때마다, 다시 만날 때마다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필시 외롭고 험난했던 나의 사춘기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리라.

 

메두사 선배와는 수강생이 대여섯 밖에 되지 않았던 교양철학시간에 우연히 또 만났다.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선배는 니체를, 나는 마르크스를 선택했다. 강퍅했던 교수는 선배를 게으름뱅이로, 나를 선동가로 규정했다. 전날 술 먹느라 발제 준비를 제대로 못해 우물우물하는 선배와 마르크스가 직계 존속이라도 되는 듯 화염을 뿜어대는 나에게 아주 적절하게 맞아떨어지는 평가였다. 그리고 학기말에 우리는 둘 다 A+를 받았다. 불성실한 합리주의자와 성실한 낭만주의자, 혹은 그 반대, 또는 뒤엉켜 얼버무린 존재들 같던 우리는 내 머리가 제법 굵어져 선배 앞에서 시건방을 떨게 되는 그날까지, 아마도 그 이후로도 그럭저럭 온건하게 지낼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톨스토이를 말했다 한들 웃지 않았겠는가. 실컷 비웃고 마음대로 욕하고 인정사정 볼것 없이 깔아뭉개준 선배들 덕분에 좌절과 질투와 살의를 극복해가며 나날이 커가는 후배들이 있지 않았겠는가. 선배가 남긴 헤세의 트라우마 덕분에 헤세를 다시 읽으며 뭔가 다른 것이 있나보다, 순진한 독서에 몰입했던 당시를 떠올리면 파안대소의 저의에 상관없이 무려 고마워지기까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이 나왔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한 줄 비판을 가할 때조차 작품이 시사하는 큰 그림을 훼손시키지 않고 작가에 대한 존중을 거두지 않는 휴머니즘 서평의 진수를 보여주는 책. 매순간마다 작품과 사랑에 빠져버리는 열정적인 사춘기 소년, 예민한 직관과 열린 감성으로 작품의 빛과 그림자를 단번에 읽어내는 예술가의 서평이다. 특히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씨네 형제들'에 관한 페이지를 읽을 때는 과연 대가다운 안목과 통찰에 무릎을 치게 된다.

헤세는 본인의 작품 속에서, 그리고 넓고 깊은 책세상에서 마치 동서양을 가로질러 영생을 사는 듯 그 목소리가 활발하면서도 융숭깊다. 그가 펼쳐놓은 광대무변한 사유의 세계를 몇줄로 인용하기란, 한줄 밑줄로 표현하기란 불가능한 일. 역시 책은 읽어야 한다.

 

그들의 잔을 너무 깊이 들이마셨기에 그들에게 등을 돌릴 수 없는 작가들.-p.182

헤세는 작가 '크누트 함순'에 대해 위와 같이 평했다. 나에게 있어 헤르만 헤세도 그런 작가들 중 하나다. 점점 현실에 매돌되어 리얼 다큐를 찍고 있는 일상이지만 한때 깊이 들이마셨던 세계란 정신과 몸 안에서 쉬이 사라지지 않는 법이다. 코앞의 일거리들을 해치우고 모두 잠든 밤이 되면 좀비처럼 떠돌며 책 속의 정령들을 만나고 다녔던 방학도 이제 끝났다. 그래도 내게는 읽을 책이 남아있고 영달이에게 읽어줄 책도 더 남아있으며 서평으로 다시 만난 헤세가 내가 사랑한 헤세가 맞아서, 사랑한만큼 훌륭하여서 참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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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실 2015-02-02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가 사랑한 헤세~~~~ 메두사 선배ㅎ
책을 읽을때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면 행복하죠~~ 영달이 많이 컸죠?

깐따삐야 2015-02-03 10:19   좋아요 0 | URL
네. 그땐 거인 같던 선배들도 지금 제 나이에 와서 생각해보니 다들 참 어렸구나, 싶습니다. 엄마인 저도 많이 컸다, 많이 컸네, 할 정도로 많이 컸어요.^^
세실님도 여전히 생기발랄 잘 지내시죠?

yamoo 2015-02-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련한 추억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근데, 제게는 매두사 같은 선배가 없어 좀 아쉽네요..ㅎㅎ

깐따삐야 2015-02-03 10:2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당시에는 젠체하는 모습이 싫어서 나는 저런 선배 되지 말아야지, 했었고 그 결심을 지켰다고 생각하는데 후배들은 어떻게 생각했을지 또 모르죠.^^
 

새해 첫 독서로 고른 시집. 길고 쫑긋한 귀는 토끼의 상징이다.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기약 없는 유보 상태.  

다시 잘, 여러 번에 걸쳐, 집중해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집을 대할 때마다 거의 매번 표제작 이외의 작품에 끌린다. 이 시를 읽고 잠깐 동안 마음을 풀어놓았다. 그러나 이 아홉 명의 사람이 있다면 김성대 시인은 '귀 없는 토끼에 관한 소수 의견'을 쓰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다.

신화 속 요정과 마주한 듯 아름다운 시. 이름을 지우고 중력을 풀고 수레 바퀴살을 풀어 까맣게 나를 놓아 줄 사람이라니... 온 우주에 구인광고라도 내고픈 심정.  

그러고보니 올해는 신묘년. 토끼해구나.

 

九人  

 

내가 잠들면 안경을 벗겨 줄 사람 

안경을 고이 접어 놓고  

내 눈동자에 손을 담가 꿈을 정돈해 줄 사람 

지문이 물결처럼 퍼졌다 돌아오고 

눈썹에서 겨울나무가 자랄 때 

나의 이륙과 착륙을 수신호 해 줄 사람 

이름을 지우고 중력을 풀고 

수레 바퀴살을 풀어 

까맣게 나를 놓아 줄 사람 

옷깃에 다시 얼룩이 묻을 때까지 

마블링의 호랑이를 만날 때까지 

주사위 놀이를 대신 해 줄 사람 

 

그리하여 매번 깨어날 때마다  

다른 우주를 낚아 줄 사람 

온몸을 빛의 점자로 만들어 

움직이는 벽화를 그리고 

종이 접는 법을 배우고 

노래의 탯줄을 보관해 줄 사람 

강을 떠도는 뿌리를 따라 

금속과 유리 조각을 모아 줄 사람 

그리고 그의 턱을 대신 괴어 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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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1-01-13 0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을 求人이라고 하지 않고 九人이라고 했군요.
이런 시어들을 지어낼 수 있는 사람, 시인은 어떤 피를 가지고 태어났는지 참...부럽기도 하고말입니다. ^^

깐따삐야 2011-01-13 10:49   좋아요 0 | URL
이 시집에 실린 대부분의 시를 다시 읽어야겠다고 머리를 쥐어박았는데(참으로 난해하여) '九人' 만큼은 한 줄 한 줄 가슴을 적시며 읽었더랬습니다.
독수리 오형제도 아니면서 시인은 지구의 마음을 지켜주는 것 같아요.^^

다락방 2011-01-13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눈동자에 손을 담가 꿈을 정돈해 줄 사람

이 부분이 특히 좋아요. 아, 정말 좋으네요!

깐따삐야 2011-01-13 10:51   좋아요 0 | URL
내가 잠든 사이 누군가 그럴 수만 있다면... 아, 정말 좋겠어요!
 

  반듯하게 각진 칸막이로 서로를 분리한 낯설고 스산한 교무실 정경. 의례적인 안부를 나누고 자필로 꾹꾹 눌러 복직원을 쓰고 돌아오는 길. 이 시를 떠올렸다.  

Coda 

        Octavio Paz


Perhaps to love is to learn
to walk through this world.
To learn to be silent
like the oak and the linden of the fable.
To learn to see.
Your glance scattered seeds.
It planted a tree.
I talk
because you shake its leaves. 


코다

          옥타비오 파스


사랑한다는 것은 아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
우화 속 참나무와 참피나무처럼
묵묵히 있는 법을 배우는 것.
보는 법을 배우는 것.
그대의 눈길은 씨를 뿌렸다.
한 그루 나무를 심었다.
내가 말을 하는 것은
그 나무의 잎들을 그대가 흔들기 때문.

  코다. 이 시는 나의 세밑과 아주 잘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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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샘 2010-12-29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네모나게 각진 안에 사는 사람들 얼굴은 둥글답니다.
착잡하신 마음이 짧은 글에 잘 들어 있네요. ^^
혹시 압니까? 내년에 옆자리에 앉으실 분이 평생 만나실 좋은 벗인지도... ㅎㅎ
그런 희망을 안고 저도 올해를 마무리하고 싶네요.

깐따삐야 2010-12-30 09:21   좋아요 0 | URL
정말 그러네요. 먼나라 시인이 제 마음을 아주 잘 대변해주더라구요.
혹시 가능하다면 부지런하고 말수가 적은 분을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못 그러니 도움 좀 받으려면.ㅎㅎ
글샘님도 한해 마무리 잘하시고 옆자리에 좋은 짝궁 만나시길 바랄게요.

L.SHIN 2010-12-29 2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있네요...
근데, '세밑'이 무슨 뜻인가요? 확실히 깐따님은 저보다 먼저 지구에 온 티가 나요( -_-)힛

깐따삐야 2010-12-30 09:24   좋아요 0 | URL
이 시 보자마자 좋아졌어요.

세밑은 한 해가 끝날 무렵을 가리킨답니다. 연령으로 봐선 엘신님이 먼저 오신 것 같은데...? 형님이시잖아요. 홍홍.^^

L.SHIN 2010-12-30 18:19   좋아요 0 | URL
오!

2010-12-30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1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상적 설교도 아니고 대중적 호소도 아닌, 조금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의 통찰과 조언을 린저 특유의 부드러운 직설로 풀어낸 에세이집이다. 

어떤 책을 알기 전과 후가 달라진다면 내게는 이 책이 그랬다. 차갑지 않고 오히려 따듯한 편에 속하지만 그에 걸맞는 아량까지는 갖추지 못한 내게 이 책은 엄정한 멘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올해 뿐만 아니라 두고두고 가까이 지내면 좋을 책.  

 

 

알라딘을 몰랐다면 그냥 지나쳤을 책. 그리고 한번 더 읽지 않았다면 그냥 갸웃거리고 말았을 소설. 처음의 낯설음 만큼 내가 참 멀리 왔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던 작품이다.  

사람이 사람을 가식과 편견 없이 어떻게 만나고 이해하고 사랑하는가에 관하여, 이 험상궂은 세계 안에서 과연 그것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에 관하여, 시종일관 투명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묻고 일러준다. 

 

 

 

   

어려운 그와 눈을 마주치며 소근소근 이야기하고 난 느낌이다. 나는 그를 좋아해서 그가 어렵고 그는 쉬이 곁을 내어주지 않아 헤매곤 했는데 나 이런 사람이오, 빤히 응시하며 손을 내미는 그에게 약간의 실망을 동반하여 더욱 불어난 애정이 급쓰나미로 몰려오는 감정을 체험했다.  

윤대녕 그는 보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느껴야 하는 사람이고 처음 만났던 그때부터 지금도, 앞으로도 영원히 그를 미련하게 사랑하는 독자로 남고 싶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권할 수 있는 서평집. 이 책을 권하고 이 책 속의 책들을 권하고 싶다. 그리고 그 책들과 어우러진 저자의 이력 또한 권할만 하다. 사람은 열 번 된다는 말. 하지만 거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준 책이다.  

더불어 현학적이지 않으면서도 저열하지 않은 성실하고 균형잡힌 서평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는 지금껏 유례없는 완벽히 인간적인 히로인을 구현해냈으니 그녀의 이름은 올리브 키터리지. 일견 호오와 시비가 분명해 보이지만 타고난 인정 탓에 기어이 동요할 수 밖에 없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을 통해 세상의 어머니들과 엄마로서의 나. 그리고 본래 여자로서의 어머니들과 여자로서의 나. 그들의 겉과 속, 안과 밖을 세밀하게 들여다 본 느낌이다. 외롭고 강하고 슬프고 따듯한 거의 모든 마음에 관한 소설. 

  

 

로망 롤랑은 장 크리스토프라는 한 위대한 인간의 영혼의 역사를 장중한 교향곡으로 그려냈다. 휘몰아칠듯 가쁘고 눈부신 문체를 따라가다 보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가장 독창적인 예술혼과 조우하게 된다.  

사춘기 시절에 한 권짜리 단행본으로 만났던 장 크리스토프는 압축과 생략에도 불구하고 긴 여운을 남겼는데 다섯 권의 대하소설로 재회하니 묵직한 감격이 새롭다. 내 인생 열 권의 책을 꼽으라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작품이다.

다만 이 범우사판은 오역과 오타가 잦은 것이 흠. 말끔히 수정보완된 새로운 판본으로 다시 한번 만나고 싶은 바람이 있다.      

      

올해 나는 영달이라는 귀한 선물을 얻었고 영달이는 뽀로로라는 귀여운 친구를 사귀었다. 이 책은 뽀로로 그림책 시리즈 중에서도 영달이가 매일매일 집중해서 보고 있는 책. 아기 공룡 크롱이 원숭이 인형과 함께 꿈 속 인형나라를 구경한다는 이야기. 실제로 아기들도 어른들처럼 꿈을 꾼단다.

뽀로로 그림책 시리즈는 화질이 선명해서 눈에 잘 들어오고 전하려는 메시지 또한 분명하고 유익하다. 책도 보고 노래도 따라부르다 보면 엄마인 나도 뽀로로와 친구들의 다양한 개성과 즐거운 우정에 저절로 미소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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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12-22 17: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백의 그림자 좋았어요!

올해 나는 영달이라는 귀한 선물을 얻었고, 에서 저는 저의 조카가 떠올라서 슬쩍 웃었어요.
그런 해였어요, 올해는.
:)

깐따삐야 2010-12-23 10:10   좋아요 0 | URL
알라딘에 올라온 리뷰를 보고 고른 책인데 참 좋았어요. 얼마 전 다락방님 서재에서 <나의 미카엘>을 보았고 조만간 제대로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올해 다락방님이 이모가 되셨죠. 아, 언니도 여동생도 없는 저는 결코 들을 수 없는 다정한 호칭이에요. 이모!

2010-12-25 0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2-25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직 말은 못하지만 조금씩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한 영달이. 제 이름을 부르면 돌아보며 씨익- 웃기도 하고 내가 거짓말로 우는 시늉을 하면 콧잔등을 씰룩거리며 얼굴을 쓰다듬어 주기도 한다. 엄마 아빠가 언성을 높이면 눈 딱 감고 자는 척 하는 것을 보면 의뭉스럽기 짝이 없다. 태어난 지 그새 아홉달째로 접어들었고 요즘은 헝겊책 보다는 진짜 책을 더 좋아한다. 책을 보여주면 영달이는 학학, 소리를 질러대며 강아지마냥 엉덩이를 씰룩쌜룩 좋아라 한다.   

  지금껏 내 책 고를 줄만 알았지 아기들 책에는 무지몽매 했는데 주워들은 정보와 미리보기 등을 참고해 몇 권 골라주었고 다행히 영달이는 이 책들을 참 좋아한다. 장난감도 싫증나고 외출하기엔 너무 춥고 그럴 때 책을 펴놓고 읽어주면 안성맞춤. 한번 아프고 난데다 겨울이 지나면 복직해야 한다는 아쉬움에 요즘은 함께 하는 순간순간이 애틋하다.  

맨 처음에 구입한 책 두 권. 모두 최숙희 작가의 그림책이다. 리뷰도 좋았지만 우선 선명하고 따듯해 뵈는 그림이 내 마음에 들었다.  

책 속의 주인공도 여자아이라서 영달이가 더 친근하고 재미있게 느끼는 것 같다. 갖가지 동물과 몸동작들이 생동감 있고 유머러스하게 표현되어 있다.

 

최근에 출간된 최숙희 작가의 신작. -누가 보면 작가랑 친분이라도 있는 줄 알겠네.- 그렇지도 않은데 아기 엄마라면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을만큼 좋은 책. 일단 엄마가 먼저 감동해야 아기도 따라오는 듯. 

아이의 탄생부터 성장을 함께 해온 엄마만이 구상하고 그릴 수 있는 책. 영달이가 아플 때 책 속의 개, 곰, 킹콩과 함께 울었다.   

 

한 페이지엔 눈을 가린 동물, 다음 페이지엔 눈을 동그랗게 뜬 동물, 그렇듯 십이지에 해당되는 동물들과 까꿍놀이를 즐기는 책. 이 시기의 아기들은 대개 까꿍놀이를 재밌어 하나 보다. 내가 손이나 수건 등으로 얼굴을 가렸다가 까꿍~ 하면 울다가도 뚝!   

영달이는 백호랑이띠라 그런가. 아니면 상대적으로 호랑이 눈이 크고 뚜렷하게 그려져서? 호랑이의 까궁놀이를 가장 좋아한다. 이 책 역시 최숙희 작가의 그림이다. 정말 아이 마음, 엄마 마음, 아이의 눈, 엄마의 눈을 잘 아는 작가란 생각.  

  

아기와 함께 신나는 몸놀이를 할 수 있는 책. 영달이는 아직 기어다니는 정도지만 지금도 이 책을 재밌어 하고 나중에 커서도 활용이 가능할 듯.  

우선 책 속 아기가 토실토실 무척 귀엽다. 아기와 함께 뒹굴고 뛰노는 동물들 역시 오동통통 사랑스럽다. 위의 까꿍놀이 책처럼 이 책도 딱딱한 보드북이어서 잘 찢어질 염려도 없고 아기 혼자 책장을 넘길 수도 있고 크기도 적당하다. 함께 동작들을 따라하며 놀아줄 때 유용한 책. 

  

뽀로로는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꼬마 펭귄 케릭터인데 보면 볼수록 참 훌륭하단 생각. 호기심 많은 개구쟁이 뽀로로와 다양한 성격을 지닌 동물 친구들의 모험담은 어른이 보아도 어느새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장아장 뽀로로 인형을 좋아하던 영달이는 서점에서 이 책을 보고 열렬한 반응을 보였고 긴가민가 하는 마음에 구입했는데 다음 장면을 예상하고 흥분할 정도로 기억력이 발달했다. 어리다고 해서 너무 단편적인 사물만 있는 그림책 보다는 적당히 스토리가 있는 책이 좋은 것 같다. 아기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가끔 영달이를 가만 바라보고 있으면 소녀는 말이 없을 뿐. 모든 걸 알고 있다.  

  물려받은 외국 그림책은 영달이가 어쩐지 좋아하지를 않아서 주구장창 우리나라 그림책만 보여주고 있는데 아기들도 취향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 책이 별로였던 것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겨울이라 화단의 꽃도 져버리고 아쉬운 마음에 이번엔 예쁜 꽃이 그려진 그림책을 사주면 어떨까 생각 중이다. 돌 전 까지는 딱 열 권 정도만 구비해두고 반복해서 보여줄 예정. 눈과 마음을 끄는 좋은 책들이 많은데 그렇듯 너무 많아서 오히려 고르기가 참 힘들다. 영달이에게 물어볼 수도 없고 결국 내 취향대로 고르게 되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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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12-04 1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을 날고 싶어요, 저 책 시리즈는 정말 정말 아이가 너무 좋아할 거예요. 읽고 또 읽고 동네 애들이라고 올라치면 서로 읽겠다고 쌈 난답니다. 뽀로로의 위력을 실감했다니까요. 영달이가 벌써 그렇게 컸군요^^

깐따삐야 2010-12-05 15:45   좋아요 0 | URL
맞아요. 뽀로로는 힘이 세다는 것을 절감합니다. 오늘도 해리가 뽀로로와 크롱을 찾아낸 이야기책 한권을 더 샀어요. 영달이가 뽀로로 3기 오프닝 주제가를 좋아해서 어느새 외워졌어요. blanca님 마을의 아이들도 뽀로로 팬이었군요. 텔레토비처럼 우리의 뽀로로도 세계 전역으로 뻗어나가길 바래봅니다.^^

BRINY 2010-12-04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마 닮아서 책을 좋아하나봐요~

깐따삐야 2010-12-05 15:46   좋아요 0 | URL
남편 말로는 엄마 닮아서 책을 집어던진다고...ㅋㅋ

hnine 2010-12-04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제 영달이를 위한 책 구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가 봅니다. 많이 사주세요. 저는 되도록 도서관에서 빌려다 주고, 대여해주고 그랬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옆에 두고 보는 것만 못한 것 같아요. 아이가 어떤 책을 보고 유난히 더 좋아하는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지요? ^^

깐따삐야 2010-12-05 15:51   좋아요 0 | URL
내년에 저희집 바로 옆에 새 도서관이 문을 열 예정이라 저는 자주 데리고 다니고 많이 빌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hnine님 말씀 듣고보니 좋은 것은 소장해야겠어요. 주변에서 아이들 책을 나중에 고물로 내놓거나 버리는 풍경을 심심찮게 봐서 고민이 좀 있었거든요.
네! 정말 신기하고 우리 영달이가 한눈에 좋아하게끔 책을 만든 작가들이 존경스럽고 그래요.^^

레와 2010-12-06 16: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힛~ 신난다.
저에게 꼭 필요한 책 정보를 알려주신 깐따삐야님 복 받으세요! ^^

깐따삐야 2010-12-08 13:51   좋아요 0 | URL
레와님이 책 선물 하실 데가 있었나 보다. 복은 감사히 잘 받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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