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의 불복종
헨리 데이빗 소로우 지음, 강승영 옮김 / 이레 / 1999년 8월
평점 :
절판


 우리가 만약 우리의 장래를 입법자들이 의회에서 보여주는 말재주에만 전적으로 맡기고, 일반 국민의 풍부한 경험과 효과적인 불만 표시로 잘못을 시정해 나가지 않는다면, 미국은 머지않아 여러 나라들 사이에서 그 지위를 잃어버리고 말 것이다.(p56)<시민의 불복종> 中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1846년 인두세 납부 거부와 관련하여 하루 동안 감옥에 수감되었다.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된 <시민의 불복종 civil disobedience>에는 무정부주의자(anarchism)로서 그의 주장이 잘 담겨있다.


 원칙에 따른 행동, 즉 정의를 알고 실천하는 것은 사물을 변화시키고 관계를 변화시킨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혁명적이며, 과거에 있던 것들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불의의 법들이 존재한다. 우리는 그 법을 준수하는 것으로 만족할 것인가, 아니면 그 법을 개정하려고 노력하면서 개정에 성공할 때까지는 그 법을 준수할 것인가, 아니면 당장이라도 그 법을 어길 것인가?(p26) <시민의 불복종> 中


 소로우가 반대하는 정부는 노예제도를 유지하고, 멕시코 전쟁을 통해 영토확장을 꾀하는 제국주의 국가 미국이다. 당시 미국 정부가 추진하던 정책에 동의할 수 없는 소로우는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 미국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올바른 것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법이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더 정의로운 인간으로 만든 적은 없다. 오히려 법에 대한 존경심 때문에 선량한 사람들조차도 매일매일 불의의 하수인이 되고 있다.(p13) <시민의 불복종> 中


 권력이 일단 국민의 손에 들어왔을 때 다수의 지배가 허용이 되고 오랜 기간 동안 지속되는 실제적인 이유는 그들이 옳을 가능성이 가장 크거나 그것이 소수자들에게 가장 공정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지 그들이 가장 힘이 세기 때문이다.(p12) <시민의 불복종> 中


 우리는 한 국가에 소속되기 이전에, 인간(人間)의 입장에서 먼저 판단을 해야 한다는 것이 소로우의 견해다. 이러한 기준에서 봤을 때, 당시 미국 정책은 양심(良心)에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그들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그리고 다수라는 이유로 별다른 제재를 받지 않고 원하는 바를 이루어가고 있다면 이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소로우는 이에 대해 물음을 제기한다. 그리고, 깨어있는 소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단 몇 사람이라도 '절대적을 선한 사람'이 어디엔가 있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전체를 발효시킬 효모이기 때문이다.(p20) <시민의 불복종> 中


 시작이 아무리 작은 듯이 보여도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 번 행해진 옳은 일은 영원히 행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껏해야 거기에 대해 토론만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이 우리의 사명이라고 하면서. 개혁은 수십 개의 신문을 붙들어 일거리를 주고 있으나 단 한 명의 사람도 붙들지 못하고 있다.(p31) <시민의 불복종> 中


 시민에 의해 창출되었으나, 올바른 길을 가고 있지 않은 권력이 있을 때 소로우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시민의 불복종>에서 말한다. 그리고, 적극적으로 부당한 권력에 대해 저항할 것을 강조한다.


 당신의 온몸으로 투표하라. 단지 한 조각의 종이가 아니라 당신의 영향력 전부를 던지라. 소수가 무력한 것은 다수에게 다소곳이 순응하고 있을 때이다. 그때는 이미 소수라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소수가 전력을 다해 막을 때 거역할 수 없는 힘을 갖게 된다.(p33) <시민의 불복종> 中


 <시민의 불복종>에서는 이처럼 부당한 권력에 대한 깨어있는 양심의 저항을 말한다. 본문에서는 다수(多數)와 대비되는 소수(少數)의 개념이 언급되지만, 수의 많고 적음보다 과연 얼만큼 양심에 들어맞는가가 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프로타고라스(Protagoras, BC 481 ~ BC 411)의 말처럼 서로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기준으로 '양심'을 주장했을 때, 우리는 그 기준을 어떻게 세워야 할 것인가. 추상적인 수학의 세계와 달리 감각적인 현실 속에서 우리의 기준은 흔들릴 수 밖에 없지만, <시민의 불복종>안에서 우리는 모호한 기준의 한 단면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형평성(衡平性)이다. 


 만일 아무 재산도 없는 사람이 단 한 번이라도 주정부에 9실링을 내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곧바로 감옥에 구속될 것이며, 그 기간 역시 정해진 법률 형기가 없기 때문에 구속시킨 자들의 재량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주 정부로부터 9실링의 90배를 훔친다면 그는 곧 다시 자유의 몸이 될 것이다.(p28) <시민의 불복종> 中


  아직도 '황제노역'이 존재하는 우리의 현실에서 형평성이 지켜진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양심있는 이들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임을 우리는 <시민의 불복종>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개인이 양심과 건전한 상식에 맞춰 바른 기준을 세우고 각자의 위치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의미에 따라 행동하되, 그 양심에 국가가 어긋났을 때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개인의 양심에 귀기울이는 국가. 소로우는 이러한 국가와 개인의 관계를 <시민의 불복종>에서 제기한다. 소로우가 제시한 이러한 관계와 구성원의 수준에는 우리 사회와 구성원이 미치지 못하지만,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되기를 희망하며 리뷰를 마무리한다...


 내게는 다른 할일들이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중요한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좋든 나쁘든 그 안에서 살기 위해서이다. 한 사람이 모든 일을 다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중 어떤 일만 하면 된다. 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할 수 없다고 해서 어떤 나쁜 일을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p29)<시민의 불복종> 中


 엄정하게 말하면, 정부는 피통치자의 허락과 동의를 받아야 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민주주의가 정부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단계의 진보일까? 인간의 권리를 인정하고 조직화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는 없을까? 국가가 개인을 보다 커다란 독립된 힘으로 보고 국가의 권력과 권위는 이러한 개인의 힘으로부터 나온 것임을 인정하고, 이에 알맞는 대접을 개인에게 해줄 때까지는 진정으로 자유롭고 개화된 국가는 나올 수 없다.(p57) <시민의 불복종>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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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20: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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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9 21: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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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0: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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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0-01 1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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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이것을 알아 두십시오.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완전한 법 곧 자유의 법을 들여다보고 거기에 머물면, 듣고서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실천에 옮겨 실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한 사람은 사람은 자기의 그 실행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성경> <야고 1:19 ~ 25)


 시위를 할 때 함께 무리 지어 걷는 것은 정치적 행위이다. 거리를 행진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행진은 상징적 행동으로, 공적인 장소를 걸어 지나감으로써 그 공간을 점령한다는 의미가 있다.. 시위 행진이 있을 때면 수천 명(경찰 추산에 따르면 수백 명)이 사람들이 모여 같은 방향으로 걷는데, 이렇게 함께 걷는 가운데 생성되는 연대감 역시 상징적인 것이다.(p57) <걷다> 中


 2016년 이후 오랫만에 뜻이 맞는 자신의 생각을 실천으로 옮긴 이웃들과 함께 한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서초역과 교대역까지 거리가 짧긴 하지만, 교대역 앞까지 통제된 사람의 물결 속에서 마음이 통하고 생각이 같은 이들을 만나 외롭지 않은 하루였습니다. 편향되고 왜곡된 정보화 시대 속에서 통하는 이들을 길에서 만났을 때의 느낌. 그런 느낌을 깊이 느끼며 하루를 마무리 합니다...


 양명의 지행합일(知行合一)은 주자학의 선지후행설(先知後行說)에 대한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양명은  "알과 행위는 사욕에 의해 가로막힌 것이지, 지행의 본체가 아니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자는 없었다.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단지 아직 알지 못한 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양명은 "참된 앎은 행하기 위한 까닭이다. 행하지 않으면 그것을 앎이라 말 할 수 없다.(眞知所以爲行 不行不足以爲知)"고 하였다. 양명에 의하면 앎은 실천 중에 터득되는 것이므로 지행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전습록 1>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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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0: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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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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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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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8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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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19-09-28 22: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방이라 참석이 어렵지만 적극 지지합니다!ㅎ

겨울호랑이 2019-09-28 22:5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막시무스님.!!^^:) 아 참, 저를 지지하는게 아니시지요? 뜻을 같이 하는 분을 만나 반갑습니다.

단발머리 2019-09-29 0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젯밤의 감동이 느껴지네요.
어제 무리지어 행진하는 사람들 속에 겨울호랑이님이 계셨군요. 저도 그 속에 있었습니다. 서로를 몰라보고 지나쳤지만,
겨울호랑이님, 더욱 반갑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9 08:36   좋아요 0 | URL
단발머리님께서도 오셨군요. 저 역시 반갑습니다. 어제 밤 행사로 고단하실텐데 평안한 휴일 되세요!^^:)

나와같다면 2019-09-29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미셸 퓌에슈의 [사랑하다] 를 읽었어요

[걷 다] 나는. 오늘도 에도 상징적인 마음을 건드리는 문장이 있네요

겨울호랑이 2019-09-29 17:49   좋아요 1 | URL
[사랑하다]와 [걷 다]를 처음 읽은 시점이 2017년으로 기억이 됩니다. 그때에도 나와같다면님께서 [사랑하다]를 읽고 좋은 독서했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이번에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9-09-29 18: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행합일... 알면서도 가장 어려운 뜻인 것 같습니다. 저녁 날도 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9-09-29 18:32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머리와 손발을 일치시키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인듯 합니다. 그런데, 사실 어제 더워서 고생했습니다. 반바지를 입을 것 그랬다는 생각을.... 아마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현대 의회주의의 정신사적 상황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3
카를 슈미트 지음, 나종석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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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기반한 의회주의가 같은 방향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립할 수 있음을 지적한 카를 슈미트의 통찰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유용한 것일까.

인터넷의 발전 등으로 수많은 정보망으로 촘촘하게 연결된 오늘의 세계에는 의회주의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평등‘을 체제 내에서 잘 조화시키는 길이 있을 듯하다. 기든스의 ‘제3의 길‘은 그러한 길들 중 하나의 길이라 여겨진다...

민주주의의 정치적인 힘은 그것이 이방인이나 평등하지 않은 자, 즉 동질성을 위협하는 자를 배제하거나 격리할 줄 안다는 데서 나타난다. 달리 말하자면 평등의 문제에서 중요한 것은 추상적이거나 논리적이고 산술적인 유희가 아니라 평등의 실질인 것이다.(p24)

선거권의 일반성은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하고 있다. 즉 모든 성인은 단순히 인간(인격체)로서 그 자체에 의해(eo ipso) 다른 모든 인간과 정치적으로 동등한 권한을 지녀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자유주의 사상이지 결코 민주주의 사상은 아니다.(p27)

사람들이 현대 의회주의라고 부르는 것 없이도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있고 민주주의 없이도 의회주의는 존재할 수 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독재의 결정적인 대립물이 아닌 것처럼 독재는 민주주의의 결정적인 대립물이 아니다.(p67)

극도로 일관적이고 포괄적인 체계 속에서 입헌주의 사상과 의회주의가 입각하고 있는 것은 공개성과 토론이라는 두 가지 원리다.(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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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피스토펠레스- 악의 역사 4, 근대세계의 악마
제프리 버튼 러셀 지음, 김영범 옮김 / 르네상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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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 악의 역사 2, 초기 기독교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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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퍼- 악의 역사 3, 중세의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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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블- 악의 역사 1, 고대로부터 원시 기독교까지 악의 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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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픽노블 제1차 세계대전 1914 - 1918 Putain de Guerre!>과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 - 1918 C'etait la guerre des tranchees>는 제1차 세계대전을 병사의 시각에서 바라본 작품들이다. 자크 타르디(Jacques Tardi, 1946 ~ )는 이들 작품들을 통해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한다. 작품 안에서 프랑스군과 독일군 병사들은 증오감에 넘쳐 상대를 죽이는 이들이 아니라, 죽음 앞에선 나약한 인간의 모습 그 자체다.

 

 희생을 강요당한 우리의 머릿속에는 과상망측한 생각이 깃들 수밖에. 이 살육장에서 도망칠 철두철미한 계획을 꾸미기도 했다. 펄펄 끓는 정어리 기름을 마시는 놈들도 있었다. 그러면 황달이 와서 며칠 동안 입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온갖 종류의 자해가 시도되었다. 그것은 팔 하나 혹은 다리 하나를 잃는 대가를 감수해서라도 이 지옥을 벗어나는 데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었다.(p31)  <그래픽노블 제1차 세계대전 1914 - 1918> 中


 독일 병사들은 '친구'를 외쳤다. 양 진영이 처음부터 그랬다면 윗분들이 계획한 살육을 피할 수 있었을텐데. 하지만 그들이 우리 손에 쥐여준 총은 써야 했고, 그 결과도 따라왔다.(p73)  <그래픽노블 제1차 세계대전 1914 - 1918> 中


 전쟁터에 끌려가기보다 작은 부상으로 전선을 이탈하는 이들을 부러워하는 병사들, 서로 상대를 죽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병사들의 모습과는 달리 얼마나 전쟁은 참혹했는가. 참혹한 전쟁과 파괴로 이성(理性 reason)의 시대를 종식시킨 제1차 세계대전의 진정한 승리자는 영국, 프랑스, 미국이 아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태어난 소비에트 연방(소련)도, 멀리 떨어진 연합국 일본도 아니었다. 진정한 승리자는 각국의 대자본(大資本)이었다.

 

 독일군은 크루프사가 루르 공장에서 제조한 포로 공격하고, 우리 군은 프랑스 슈나이더사가 르크뢰조, 생테티엔, 생샤몽 공장에서 제조한 대포로 응수한다.(p8)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 - 1918> 中


 이것은 분명 '문명'을 구한다는 명분을 내세운 '당위성'의 전쟁도 아니었다. 슈나이더, 생 샤몽, 피아트, 크루프, 비커스, 르노, AEG, 포커, 호치키스 등 호주머니가 찢어질 정도로 가득 찬 군수업체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이다. 거기에는 얼마 전부터 비스코른도 포함되었다.(p69)  <그래픽노블 제1차 세계대전 1914 - 1918> 中


 전장은 대자본들이 생산한 신무기들의 테스트장으로 바뀌어갔으며, 병사들은 테스터로 전락해갔다. 그리고, 이로 인해 상상할 수 없는 금액이 새로운 시장의 창출을 위해 파괴비용으로 사용되었다. 이들 대기업들은 전쟁 중에는 무기산업으로, 종전 후에는 전쟁복구사업으로 막대한 부를 이미 예약한 상태였다.


  찬란히 빛나는 제1차 세계대전! 35개국아 직간접적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다. 사망자가 1000만명이다. 얼마나 많은 생명이 진흙 속에 파묻혔는가. 얼마나 많은 부상자, 과부가 생겨났는가. 순무를 키워야 할 좋은 땅에는 십자가들만 솟아 있다. 사망한 프랑스군인들을 혁명기념일에 4열행대로 행군하게 한다면, 마지막 군인이 지나갈 때까지 5박 6일을 기다려야 할 것이다... 비용은? 대포, 포탄, 그 밖에 다른 무기들은? 모두 2조 5000억 금본위 프랑이다! 그 돈이면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의 모든 주민들이 방 네 개짜리 집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숫자는 숫자일 뿐.(p112)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 - 1918> 中


 <그래픽노블 제1차 세계대전>과 <그것은 참호전이었다>는 작품 전체를 통해 전쟁의 비참함을 잘 표현한다. 그렇지만, 이처럼 비참한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시선을 돌려 1914년 사라예보 사건 직후의 유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개전(開戰) 초기 민족주의에 도취한 유럽인들은 전쟁을 피하기보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평범한 시민들인 군중은 비통해하기는커녕 서로를 증오했다. 그들은 기쁨과 증오를 공유했다. 손쉽게 무찌를 독일과 독일인에 대한 증오를.(p36)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 - 1918> 中


 한 카페의 악대가 「라 마르세예즈」를 연주한다. 애국심에 불타오른 손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국가를 제창한다. 한 노인만 자리에 그대로 앉아있다... 그 일요일, 나는 카페테라스에서 군중의 살기에 동조하지 않으면 어떤 대가를 치르는지 알게 되었다.(p37) <그것은 참호전이었다 1914 - 1918> 中


 전쟁 초기 낭만주의에 물든 이들에 의해 제1차 세계대전은 걷잡을 수 없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은 모두 피해자임과 동시에 가해자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Eichmann in Jerusalem: Ein Bericht von der Banalitat des Bosen>에서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떠올리게 된다.

 

 수많은 독일인들과 많은 나치스, 아마도 엄청난 수의 그들은 살인을 하지 않으려는, 도둑질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이웃이 죽음의 길로 가지 않도록 하려는, 그리고 그들로부터 이익을 취함으로써 이 모든 범죄의 공범자가 되지 않으려는 유혹을 분명히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맙소사, 그들은 그러한 유혹에 어떻게 저항하는지를 배워버렸다.(p227)...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을.(p349)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中


 비록, 세계대전의 진정한 수혜자가 전쟁에 나서지 않는 권력자, 지배층, 자본들이라 할지라도, 이를 방관하게 만드는 것은 '악의 보편성'이며, 이는 우리들의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로부터 대파멸을 불러올 수 있음을 한나 아렌트는 경고한다. 악(惡)은 결코 악마처럼 기괴한 존재이거나, 하이드씨 처럼 분리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악을 인정했을 때, 우리는 파멸을 막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제는 정리해보자. 

 

 악의 보편성을 의식하게 되면 악을 또 다른 차원으로 이해하게 된다. 악은 보편적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경험 속 어디에서도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악의 모든 장소, 모든 시간, 그리고 모든 분별 있는 개개인의 삶에 간여해왔다. 악이 보편적임을 이해한다.(p19)... 그러므로 악마란 기묘하고 한물간 존재가 아니라 인간 정신 안에, 또는 인간 정신을 압도하는, 거대하고 영원한 힘이 표출된 것이다.(p38) <데블 The Devil> 中


 세계대전의 파멸적 결과와 이의 원인을 생각해 보면서 우리는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과 연관지어 볼 수 있다. 거의 2달 가까이 벌어진 언론과 검찰의 무도한 모습을 우리 모두를 대파멸로 이끌고 있다. 여기에 올라타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는 더이상 침묵해서는 안된다. 침묵과 방관은 대파멸로 가는 것을 '순전한 무사유'로 암묵적 동의를 표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 안에 아이히만이 모습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이제는 우리가 검찰과 언론 그리고 자한당과 바미당을 견제하고 이들이 딴짓을 못하도록 준엄하게 심판하는 것. 이것이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시대의 과제가 아닐까.


PS. 오늘 읽은 <좌우파 사전>에서 재밌게 읽은 퀴즈가 있어 옮겨본다.


 Q :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소득에 따른 법칙금 차등화를 주장한 대통령은 누구일까요?(힌트 : 4지선다형에서 모르면 *번을 찍으시오.)


1. 김영삼  2. 김대중  3. 이명박  4. 노무현


 정답 : https://www.hankyung.com/news/article/2011022362341


 같은 주장을 해도 조국이 하면 안되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이와 더불어, 이분이 사회주의자라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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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26 23: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9-26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9-09-27 09: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레이트 워에서는 그나마 중세
신사도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고
하던데 나중에는 그마저도 없어졌
다고 하더군요.

어떤 이유에서라도 전쟁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겨울호랑이 2019-09-27 10:3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전쟁 초기에는 단기에 끝날 것이라는 희망과 자신이 영웅이 되리라는 일종의 허세가 퍼져있어 낭만적인 분위기가 났었다고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전쟁이 진행되면서 토너먼트나 결투에서 멋진 통성명 후 상대와 겨루는 양상이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독가스와 기관총알, 철조망에 찢기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는 그로부터 도망치려는 모습이 작품에서는 그려집니다... 전쟁은 참혹하다는 레삭매냐님의 말씀에 동감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가져오려는 노력은 아무래해도 부족함이 없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나와같다면 2019-11-14 19: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번역이 좀 읽기 불편한가요?

한나아렌트의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읽고 싶은 책인데 번역에 실망했다는 글을 많이 봐서..

겨울호랑이 2019-11-14 20:08   좋아요 1 | URL
^^:) 제가 번역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크게 불편하진 않았습니다. 먼저 도서관에서 빌려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책 내용은 훌륭하기에 몇 번 읽어도 좋을 책이라 여겨지에 도서관 맛보기를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