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해 부근에서 다시 읽고 싶은 명작 6
엔도 슈사쿠 지음, 이석봉 옮김 / 바오로딸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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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적을 일으키지 못한 예수는 초가을에 갈릴래아 호숫가 마을에서 쫓겨났다. 차가운 안개비가 내리는 날, 예수와 제자들은 5개월 전 그토록 환영했던 자들이 욕설과 돌팔매질을 해대는 수모를 받으며 그곳을 떠났다(p56)... 이듬해 5월, 안드레아는 아무 쓸모 없던 그 사나이가 제자들한테서도 버림을 받아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57


 엔도 슈사쿠(遠藤周作, 1923~1996)의 <사해 부근에서>안의 예수는 무능력하다. 기적을 행하지 못하는 예수. 예언자는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한다고 했지만, 고향 뿐 아니라 자신이 가는 곳마다 쫓겨나는 인간 예수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설기만 하다. 슈사쿠의 예수는 기적을 행하며 그들을 비참한 현실에서 한 번에 끌어올려지 않는다. 대신, 자신이 직접 비참한 현실로 내려가 그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는 존재다.


 "왜 대답을 못하나? 성전과 야훼께 바치는 희생제사보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가?" "슬퍼하고 고통받는 이를 위해 울어주는 것, 죽어가는 사람의 손을 잡아주고 위로하는 것, 자신의 비참함을 받아들이는 것, 그런 것들이 다윗 성전이나 과월절의 제사보다 더 소중하오. 성전에서 제사를 바치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소." 예수는 피로한 목소리로 말했다. "모두 들었소? 이자는 성전과 제사를 모욕했소. 의회도 그것을 알게 될 것이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99


 "하느님에게 성전이 무엇이란 말인가? 당신들이 경멸하는 창녀들이 하룻밤 자신의 비참함을 울며 지새웠다면 하느님은 이 성전보다 그 한 방울의 눈물을 택하실 것이다. 하느님은 성전을 바라지 않으신다. 하느님은 인간을 바라신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109


 빛나는 승리나 예언의 성취가 아닌 사랑과 인간을 말하는 순진한 목수 예수. 그가 행한 기적이라 기록된 것들은 성경학자들에 의해 많은 부분이 각색된 신화(神話)였음이 작품 속 학자 도다(戶田)에 의해 말하여지고, 이러한 사실은 열심한 신자 도다를 신앙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다.


 "이곳에 성경학을 공부하러 온 한 사나이가 있었네. 그는 예수의 생애도 모습도 성경에 쓰인 그대로라고 믿고 있었지, 그런데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성경에 묘사된 예수의 생애도 말씀도 사실이기보다 원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격화하여 지어낸 사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네. 그는 후세의 신앙이 만들어 낸 성경의 예수상像을 정중하게 옆으로 밀어놓았네"(p71)...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우리는 인생의 마무리를 서서히 시작할 나이에 이르렀지만 도다도 나도 손에 거머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73


 현재의 도다뿐 아니라 역사 속의 유대 민중과 혁명당 그리고 사두가이, 바리사이 등 정치 세력 모두에게 예수는 메시아가 아닌 무기력한 희생양뿐이었다. 우리에게 알려진 예수의 모습은 마치 우리 나라 민화  '아기장수' 처럼 후대의 창작에 불과하다는 <사해 부근에서>. 작품에서는 예수의 모습이 제자 알패오, 대사제 안나스, 총독 빌라도, 쑥 파는 사나이, 백인대장의 시선에서 저마다의 시선으로 비춰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곳에서도 우리가 아는 '그리스도 왕'의 모습은 없다. 다만, <성경> 속의 말씀이 슈사쿠의 예수를 뒷받침할 뿐이다.


 불행은 해마다, 때로는 계절마다 형태를 바꾸어 찾아왔다. 그들은 이렇게 찾아오는 불행에 항거하기보다 지나가 버릴 때까지 수굿이 기다리는 것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호수에서 잡히는 물고기와 양 몇 마리밖에는 생활 방도가 없는 그들은 비참과 가난이 없는 인생이란 생각할 수도 없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38


 갈릴래아의 무지한 민중 사이에는 그가 메시아라는 소문이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갔다. 그러나 이 소문의 근원지는 혁명당이었다. 늘 기회를 노리던 그들은 그 소문의 목수를 앞잡이로 내세워 또 한 차례 반란을 일으키려는 속셈이었다. 무지한 이들은 그가 나병을 고쳐주고, 죽은 이를 살리는 기적을 행했다는 이야기로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지만 알고 보면 목수는 기적을 행한 적이 없었다(p161)... 순박한 민중이 이런 희생자에게 얼마나 잔인해지는가를 나는 오랫동안 보아왔다. 카야파는 오직 민중의 잔인한 마음을 부추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바라빠는 깨끗이 잊고 그들에게 맡겨진 새 장난감에 열중하게 될 것이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162


 <사해 부근에서> 화자인 '나'는 과거와 현재의 교차 속에서 예수의 의미를 찾는다. 마치 <오즈의 마법사 he Wonderful Wizard of Oz >에서 도로시가 찾던 대마법사 오즈의 실체가 실은 평범한 인간이었던 것처럼, 역사 속에 남겨진 예수의 족적은 너무도 희미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서로 다른 전승에 의해 찾아보기 힘들게 된 상황에서 화자는 예수의 실체를 찾아 힘든 걸음을 내딛는다.


 '그들은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우울한 취기를 느끼면서 확실하지 않은 기억으로 예수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나한테는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 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징조와 기적이 필요한 속물이며 나약한 인간이다.... "나는 기적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수에게 기대했던 것이 기적뿐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네.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한테서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현실적인 기적을 더 바라고 있었던 거지. 절름발이를 고쳐 달라, 열병에 걸린 아이를 살려 달라, 눈먼 사람을 보게 해 달라.... 그 밖의 것은 예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이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246


 기적을 요구하는 세대에게 보여줄 기적은 없다며 침묵하는 예수. <사해 부근에서>는 <마태오 복음><마르코 복음>과 <루카 복음>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미묘하게 대조시킨다. 그리고, 발견하는 부활의 의미. 엔도 슈사쿠가 찾아낸 예수의 의미, 사랑의 의미를 우리는 <사해 부근에서>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로부터 그의 다른 작품 <침묵>을 다시 들여다 본다면 로드리고 신부의 물음에 대한 침묵의 의미를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지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침묵> <사해 부근에서>의 페이퍼로 넘기자...


 그는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완강한 그 침묵은 나(대사제 안나스)에게 분노를 일으켰다. 그 침묵은 처음부터 나의 호기심과 수다스러운 말을 거부하고 있었던 것이다(p174)...  "그대는... 마지막에 저 비탄의 시편 구절을 외치게 될 거네. '주여,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라고 말이네." "아닙니다. 그때 나는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하느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겨드립니다.' 라고. 이 모든 걸 곧 알게 될 것입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175


 '당신은 무력했고 그 무력함 때문에 나자렛에서 쫓겨났으며, 갈릴래아 여러 마을에서도 박대를 받으셨습니다. 당신은 무력했기에 예루살렘 사람들한테서 매도당하고 잡히셨으며, 무력한 당신 몸에서 짜낸 고통의 기쁨으로 많은 사람의 슬픔을 씻으려 하셨습니다. 그리고 죽음 직전에 오른쪽 죄수에게 언제나 그대 옆에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내가 당신 부활의 의미를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시작했다는 표시일지도 모릅니다.' _ 엔도 슈사쿠, <사해 부근에서>, p384

그는 갈릴래아를 찾아온 예언자들처럼 큰 소리로 외치거나 요란한 행동을 하지 않았따. 그는 아네모네로 뒤덮인 호숫가나 양이 풀을 뜯는 구릉의 흰 바위에 걸터앉아 이야기를 했는데, 아이들이 뒤에서 매달려도 꾸짖는 일이 없었다... 예수는 하느님도 쓸쓸하시다고 했다. 하느님은 여자가 남자의 사랑을 구하듯 인간의 사랑을 바라신다고 했다. 하느님은 예언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험준한 산속이나 황야에 숨어 계신 것이 아니라 불행한 자가 흘리는 눈물과 버림받은 여인의 고통 중에 함께 계시다고 했다. - P45

몸이 회복되자 그는 그분을 따르는 남녀 무리에 끼어들었다. 그러나 알패오도 시몬처럼 그분의 슬픈 눈빛을 알게 되었다. 그분이 아무리 노력해도 모든 병자가 알패오처럼 치유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를 잃은 아이와, 남편과 사별한 부인이 왜 고쳐주지 못하느냐고 불평을 쏟자 그분의 눈에 괴로운 빛이 어렸다. 그날 밤 제자들이 깊이 잠들었을 때 예수는 구릉에서 돌아왔다. - P95

허리에 가죽띠를 졸라매고 메뚜기와 들꿀만을 먹었다는 예언자들, 나는 이 황야에서 사람을 불러 모으고, 큰 소리로 외치는 그들 모습을 다시 떠올렸다. 그리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라고 성경에 쓰인 대로 그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을 믿기 위해 이 황량한 풍경을 바라보았을 것이다. 신의 분노를 느끼기 위해서는 하늘을 쳐다보고 하얗게 부서지는 태양을 보는 것으로 족했을 테니까(p141)... "신의 분노와 경외심만으로 살았던 무리 가운데 예수는 무엇을 희구했을까?" 무심코 중얼거리자 도다는 다시 야유하는 것처럼 대답했다. "자네가 방금 말한 대로 인간에 대한 정다움이겠지. 그는 황야에서 자라난 신앙과 율법이 만들어 낸 신의 이미지를 견딜 수 없었던 것일세. 그는 신이란 무엇인가를 알기 위해 이곳에 왔지만 분노하고 벌하는 신밖에는 알 수 없었지." "그가 요한의 무리를 떠난 것도 그 때문인가?" - P142

완전히 납빛으로 변한 황야를 바라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성경에서 본 예수와 악마의 대화는 바로 이것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이야기 속에서 악마는 예수에게 힘을 드러내 보이라고 몰아세웠다. 돌을 빵으로 바꾸는 힘을 보여라, 높은 성전에서 뛰어내리는 힘을 보여라 하고. 예수는 완강하게 고개를 내저였을 뿐인다. 그 이야기는 도다의 말마따라 황야의 무리가 예수를 무능력자로 낙인찍은 이유였는지도 모른다. - P144

백인대장이 지금까지 보아온 병사들의 죽음은 훨씬 빠른 속도로 난폭한 모양을 하고 닥쳐왔다. 형장에 끌려온 죄수들도 십자가 위에서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몸을 뒤틀고 비명과 저주의 말을 외쳐대면서 죽어갔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죽음의 얼굴은 아니었다. 공포에 질린 인간이 그것을 속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백인대장은 알지 못했다. 진정한 죽음은 지금 이 사나이가 받아들이는 것처럼 완만하게, 길고 고통스럽게 오는 것이었다. ‘이런 죽음은 싫다.‘ 이미 여러 번 전쟁터에 나갔던 그였지만 그때 경험한 죽음의 공포보다 훨씬 다른 두려움과 불안이 그를 엄습해 왔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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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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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부흥집회의 초점은 병 치료에 있었어요. 사람들은 자기를 괴롭히는 질병에서 벗어나고 싶은 필요가 충천해 있는데, 그 필요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정상적인 시스템은 부재하니 대중신비가들이 그 자리를 채운 거죠. 대개 개신교 계통의 대중신비가들이 집회에서 성공했던 것 같아요.

부흥집회의 성격이 대단히 혼합주의적이었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서북지역에서 시작했던 근본주의 신앙은 토착종교에 대해 적대적이었는데, 1950년대 중반 무렵부터 맹위를 떨친 대중신비주의 신앙은 근본주의적 신앙 요소를 지닌 동시에 혼합주의적인 성향도 내포하고 있었어요.

교회를 만들지 않고 전국을 순회하며 부흥회를 이끌었던 나운몽과는 달리 조용기는 자기 부흥운동의 센터를 구축했고, 그곳을 거점 삼아 팽창을 거듭함으로써 권력화된 종교성을 발전시켰어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결합한 혼합주의적 신앙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운몽의 계보에 속한다고 할 수 있죠. 영혼의 구원에, 몸의 구원(건강)과 물질의 구원(풍요)을 결합한 ‘1+2’의 복음. 그것이 조용기의 저 유명한 ‘3박자 구원론’이에요. 세속적인 것과 영적인 것을 동시에 결합한 기복적 신앙 양식이죠. 그리고 이런 현상은 1970~80년대 한국 개신교 신앙의 한 전형으로 발전했어요.

서북주의자들이 ‘파괴적 증오의 정치’를 통해 부상했다면, 조용기로 표상되는 부흥사들은 ‘생산적 증오의 전략’을 구사했다고 할 수 있어요. 적에 대한 증오를 성공에 대한 욕구의 자양분으로 전환한 것이죠. 그리고 이러한 생산적 증오의 전략에서 유용한 도구가 혼합주의였어요. 사람들이 가진 모든 종교심을 활용하고 그것을 기독교적 종교성으로 덮어버리는 거죠.

실패한 사람들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성패와도 관련된 거예요. 이 사람들도 똑같이 한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이거든요. 1920년대 말에 나치즘과 파시즘이 등장한 게 이 사람들의 선택이었던 거죠.

박정희정권의 새마을운동이란 일종의 간증의 정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국정을 홍보하거나 국가 이데올로기를 전달하는 일을 새마을운동 지도자들이 했는데, 카리스마적 1인 통치자를 중심으로 농촌 사회를 통합하는 역할이었죠.

최태민은 기독교를 가지고 설명하기보다는 권력을 가지고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최태민은 1970년대 초부터 유사 종교인 영세교를 이끌다가, 그 유사 종교로는 박근혜를 세우고 자원을 동원하는 데 한계가 있다 싶어서 1975년 목사로 옷을 갈아입어요. 그러면서 십자군 논리를 차용하죠. 최태민은 구국십자군을 만들었을 때 자기 스스로 총장을 맡았고, 단장을 강신명(姜信明) 목사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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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성경학을 공부하러 온 한 사나이가 있었네. 그는 예수의 생애도 모습도 성경에 쓰인 그대로라고 믿고 있었지, 그런데 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성경에 모시된 때수의 생애도 말씀도 사실이기보다 원시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신격화하여 지어낸 사실이란 걸 알게 되었다네 그는 후세의 신앙이 만들어 낸 성경의 예수상을 정중하게 옆으로 밀어놓았네"(p71).. 세월이 많이 흘렀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느려졌다. 우리는 인생의 마무리를 서서히 시작할 나이에 이르렀지만 도다도 나도 손에 거머쥔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 P73

‘그들은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으면 믿지 않는다. 무물한 취기를 느끼면서 확실하지않은 기억으로 예수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나한테는 징조와 기적을 보지 않고 믿는마음은 사라진지 오래다. 나는 징조와 기적이 필요한 속물이며 나약한 인간이다.
"나는 기적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갈릴래아 사람들이 예수에게 기대했던 것이 기적뿐이었음을 다시 생각하곤 한다네. 갈릴래아 사람들은 예수한테서 사랑이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보다 현실적인 기적을 더 바라고  있었던 거지 절름발이를 고쳐 달라. 열병에 걸린 아이를  살려 달라, 눈먼 사람을 보게 해 달라.... 그 밖의 것은 예수에게 요구하지 않았다는 말이네."  - P246

사나이의 얼굴에서 땀이 들렀다. 땀방울은 바라빠가 흘린 핏자국 위로 떨어졌다. 가늘게 떨리는 어깨는 곧 찾아볼 죽음에 대한 공포를 나타냈다. 이 사나이는 바라빠치럼 죽음을 피해 살 힘도 없이 도살되는 어린양처럼 따가몬 죽음에 겁먹고 떠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가장 비참하고 고통스러운 죽음을 하게 해주시도록 그의 신에게 바짝 마른 입술로 탄원하고 있었다.  젊은이의 핏자국 위에 떨어지는 방울과 그 일술에서 새어 나오는 기도소리를 백인대장은 어떻게 연결시켜야 할지 알 수 없었다..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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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히 이야기하면 지금 우리 사회, 1997년과 2008년의 경제 대란을 겪은 이후의 한국은 신자유주의에 그 어느 나라보다 난폭하게 포획된 상태가 되었잖아요. 그러한 삶의 공간 속에서 안전한 계층이 없어진 거죠. 중상류층조차 삶의 불안감 때문에 종교의 위로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거기에 웰빙교회가 자리를 잡지 않았나 합니다.

회사에 머물며 노동하는 시간도 길지만, 정보 시스템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퇴근하고 나서 하는 외국어 공부, 컴퓨터 프로그램 공부를 비롯해 접대 마케팅, 인맥 만들기를 위한 각종 사적 활동까지 포함하면 실제 노동시간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죠. 노동의 연장으로서 술을 마시며 몸이 축나기도 하고, 스트레스도 많이 받죠. 그런 것이 피로사회에 나타나는 ‘번아웃’(burnout)형 질병, 즉 소진성 질병의 배경이 되어서 당뇨라든가 혈관계·순환계 질환, 정신적 질환이 만연하게 됩니다. 그런 질병이 건강 염려증을 낳고, 건강 염려증을 시장화하는 한국의 헬스케어 시스템 속에서 더 많은 병이 발굴되고요. 꼭 치료하지 않아도 되는 병까지 치료하게 되는 시스템이 건강을 위기에 빠지게 하는 거죠. 그런 사회에 한국이 진입해 있는 것 같습니다.

교회 공동체의 배타성은 오히려 더 강화된 측면이 있어요. 저는 그들끼리 나누는 문화에 이미 함축되어 있는 배타성을 우려합니다. 그 배타성은 전형적인 ‘부드러운 야만’이라고 할 수 있어요. 외부에서도 노골적인 배타성으로 보이지 않고 집단 구성원들도 스스로 배타적이라 생각하지 않지만 사실상 배타성이 작동하는 문화가 있죠. 그 구성원들은 모임에 소속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편견을 은연중 갖게 돼요. ‘부드러운 야만’이란 누군가를 우리의 기억에서 삭제해가는 일을 가리킵니다. 생각을 하면 호혜를 베풀 수 있지만, 의도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을 연습하죠. 그렇게 기억에서 삭제된 이들에 대한 몰이해가 발생하고, 이는 배타적인 태도로 이어집니다

한국의 종교시장에서 개신교가 엄청난 힘을 가진 이유 중 하나는 교육 인프라를 상당 부분 독점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초·중·고등학교 가운데에서도 미션스쿨 계열이 많고, 대학은 70퍼센트 이상이 사립대학인데 그중 가장 많은 것이 기독교계입니다. 그런 곳에 교직원으로 채용되려면 세례증명서, 담임목사 추천서까지 필요합니다. 기독교에 대해 가르칠 사람이 아닌 일반 과목을 가르칠 사람이나 일반 직원을 뽑을 때도요. 학생들에게는 채플 수업을 강요하고요. 신학교가 아닌 이상 이런 것은 일반 교육 부문인데 일반인에게 특정 종교의 소속을 요구하는 것은 위헌입니다.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소죠.

가끔씩 강제송환을 앞둔 아프가니스탄 피난민들이 교회에서 농성을 하며 가지 않겠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 안으로는 경찰이 들어오지 못하니까요. 목사들이 그들을 도와주고 국가 앞에서 그들의 입장을 변호하며 보호해주는데, 그것이야말로 기독교의 올바른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감벤(Giorgio Agamben)이 이야기한 호모 사케르(homo sacer), 사회의 희생물이 되어야 할 외부자에게 무조건 자비를 베푸는 것 말이에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그다지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다른 일체의 사회 안전망이 없는 세상에서 교회가 그걸 제공할 수 있었던 거예요.

한국인들은 사실 종교에 기대고 싶은 마음을 상당히 갖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19세기 들어 조선왕조가 노쇠하고 자생력을 잃어가자,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 속에서 불안감이 심해졌고 거기에 대한 대응으로 새로운 종교가 많이 태어났죠. 한편으로는 서학(西學)이 들어왔고요. 천주교가 탄압받았다고 하지만 그 과정을 보면 종교로서 탄압받았다기보다는 외국과의 연결이나 간첩 문제로서 탄압받았던 게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1801년 황사영(黃嗣永) 백서의 경우 프랑스 군대를 불러들이려 했던 것이니, 요즘 식으로 말하면 중대한 외환죄(外患罪)에 해당하는 일 아닙니까. 중국의 가톨릭 주교에게 ‘여기를 좀 쳐주시오’라고 보낸 편지였으니까, 지배층 입장에서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겠죠.

미움이라는 마음작용이 적대적 테러 행위로 이어지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남한의 경찰기구나 미군정 정보기관이 그 장치를 마련해준 거죠. 이렇게 해서 테러 행위에 참여하게 되면 그런 행동을 반복하는 일은 훨씬 수월해지고요. 그런 점에서 이는 ‘수행적 적대’라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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