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 - 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2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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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사가 조르주 르페르브 Georges Lefebvre는 두려운 심리가 ‘방어의지‘와 ‘처벌의지‘를 불러일으킨다고 보았다. 그래서 혁명기 사람들은 공권력이 저지를 ‘폭력‘에 스스로 방어해야 할 필요를 느끼고 무장하게 되었으며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들을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했던 사람들을 직접 처벌하고 싶어졌다. 이러한 맥락에서 혁명기 민중의 무장을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무장한 민중 때문에 무질서 상태가 오는 것을 두려워하고 왕이 동원하는 무력에 온전히 대응하려고 민병대를 조직한 부르주아 계층의 대응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_ 주명철, <1789> , p79/300

주명철 교수의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2권 <1789-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 Liberte>의 주제는 앙시앵레짐(Ancien Regime)의 붕괴(崩壞)다. 우리는 2권을 통해서 ‘문화적 앙시앵레짐‘의 파괴로 혁명의 배경이 만들어졌다면, 1789년에 일어난 2개의 사건 - 바스티유 함락, 인권선언 - 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바스티유 함락은 ‘정치적 앙시앵레짐‘의 끝장을, 인권선언의 승인은 ‘사회적 앙시앵레짐‘의 종언을 알리며 이제 구체제는 부활하기 어려울 정도로 몰락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0월 5일과 6일에 혁명이 다시 한번 폭발했다. 그리고 파리가 100여 년 전에 잃었던 정치의 중심지 역할을 되찾았다. 파리 아낙네들이 베르사유로 행진해 가지 않았다면 왕은 헌법과 인권선언을 승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10월 5일까지 거부권으로 버티던 왕은 마침내 국민의 의지에 굴복하게 되었다. 이로써 왕과 국민 또는 왕과 국회 사이의 무게중심이 국민 편으로 더 많이 이동했다. 국회 안에서도 좌파가 점점 두드러진 세력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양원제 의회, 절대적 거부권을 주장하는 파는 혁명을 세 달 만에 끝내고 싶어했지만 혁명이 다시 한번 폭발해 누구 하나 앞날을 계획대로 만들어가기 어렵게 되었다. 그럼에도 한 가지 분명한 일이 있다. 앙시앵레짐이 죽어가면서 이제 더는 회생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것이다. _ 주명철, <1789> , p289/300

그렇지만, 앙시앵레짐의 붕괴까지 단계는 결코 순탄치 않았다. 누구보다도 반(反)혁명의 선두에 서 있던 것이 루이16세였고, 그를 둘러싸고 특권을 놓치 않으려는 1,2신분의 저항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실제로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제3신분의 요구를 짓밟으려는 반혁명 세력의 시도가 있었기에 이 시점에서 혁명은 분명 위태로워 보였다.

왕은 종교인과 귀족이 제3신분(‘평민‘)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에게 충성해준다면 ‘평민‘을 고립시키고 원래 목적대로 전국신분회의 기능을 되살려 체제를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 계산했다. 그리하여 그는 6월 23일에 군대를 집결시켜 힘을 과시하고 회의실에 일반일을 들이지 않은 채, 다시 말해 평민 대표들을 고립시킨 채, 그날을 위해 준비한 각본을 국무대신으로 하여금 대표들에게 읽도록 했다. _ 주명철, <1789> , p51/300

그러한 위기상황에서 결국 절대군주와 특권층의 반격을 좌절시킨 것은 국회로 표현되는 제3신분의 일반의지였다. 절대군주로부터 입법권을 국회로 가져오면서 역사의 흐름은 바뀌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불온한 기운의 반란‘이 ‘새로운 시대의 혁명‘으로 명분을 얻으면서 제3신분의 행동은 정당성을 획득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혁명은 점차 가속화되었다.

루이 16세는 브로이 원수가 지휘하는 병력 2만 명을 베르사유에 집결시켰음에도 그들에게 명령하여 국회를 해산시키지 않았다. 브로이 원수는 기꺼이 무력을 동원할 준비를 갖추고 명령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왜 루이 16세는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p60)... 제3신분이 국회를 선포하고 주도하면서 왕의 의지를 꺾은 것은 큰 의미를 가진다. 더욱이 그들은 ˝루이, 당신만 신성한가? 우리도 신성하다˝라는 듯이 의원의 면책특권을 결의했다. 이로써 국회가 스스로 자신의 지위를 높였고 왕은 즉각 대응을 하지 않았지만, 그때부터 ‘혁명‘은 수많은 사건과 함께 흘러간다. 전국신분회의 제3신분이 국회의 ‘평민‘이 되었고, 왕처럼 ‘신성한 존재‘가 되면서 혁명의 중요한 첫걸음을 내디뎠다. 이로써 정치적 앙시앵레짐은 6월 23일로 죽었다. _ 주명철, <1789> , p61/300

‘프랑스 혁명=바스티유 함락‘이라는 공식을 떠올릴 정도로 바스티유 함락이 프랑스 혁명에서 갖는 의미는 상징적이다. 그것의 실상이 생각만큼 큰 것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루이14세의 절대정으로의 회귀를 원했던 루이16세에게 입헌군주라는 현실을 알려주었다는 점과 혁명의 소식을 지방으로 널리 전파했다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대혁명의 과정에서 이는 하나의 분기점이었음이 분명해진다.

왕은 충성스러운 의원들을 보면서 ˝국회는 왕의 의도와 바름을 충분히 알았을 테니 언제라도 왕에게 원하는 것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확인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의장은 ˝국회는 오래전부터 국왕과 국민의 대표 사이에 아무런 중개자가 끼어들지 않고 직접 소통하기 바랐다˝고 강조했다. 왕이 베르사유 궁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수많은 사람이 모여 기뻐했다. 왕이 제대로 걸음을 옮기지 못할 정도로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어떤 여인은 무릎을 꿇고 왕의 발을 껴안으려 했다. 사방에서 ˝왕 만세!˝ 소리가 울려 퍼졌다. 베르사유 궁의 마당으로 들어설 때까지 사람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p131)... 바스티유가 정복된 결과 왕이 의도했던 일은 물거품이 되었다._ 주명철, <1789> , p132/300

대공포의 물결이 프랑스를 휩쓸고 지나가는 기간을 7월 20일부터 8월 6일로 인식한다고 해서 그 기간의 앞뒤로 도시나 농민이 조용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리고 대공포의 원인이 모든 곳에서 한결같았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세 가지 원인 가운데 하나 이상이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영주권에 대한 농민의 반발, 도적떼에 대한 두려움, 귀족과 그 하수인들에 대한 두려움이 주요 원인으로 작용했다. 농민은 소문을 듣고 약탈자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스스로 무장하고 자신들을 괴롭히던 사람들을 직접 처벌하려고 찾아다녔다. _ 주명철, <1789> , p168/300

본문에서는 바스티유 함락과 함께 인권선언의 승인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여러 의원들의 치열한 논쟁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그려지지만, 이를 감상하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돌리도록 하자. 다만, 여기서는 인권선언에 영향을 준 계몽사상과 관련하여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 리뷰 URL을 표시하는 것으로 넘기도록 하자.
<프랑스 대혁명의 철학> 리뷰 : https://blog.aladin.co.kr/winter_tiger/13794501

먼저 정치적인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리고 나서 사회적 앙시앵레짐을 무너뜨린 지 보름 뒤에 나온 인권 선언은 계몽사상을 반영했다. 그러나 계몽사상을 단순하게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계몽사상가들이 똑같은 관념을 똑같이 주장하지도 않았으며 평생 서로 만나지 못한 사람들이 각각 다른 시기에 주장한 내용까지 18세기에 나온 것이라고 해서 계몽사상으로 지징하는 것은 분명 무리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계몽주의자들이 앙시앵레짐의 시대의 자유(일종의 특권)와 다른 종류의 자유(모든 구성원의 자유)를 주장하고, 게다가 앙시앵레짐 시대의 신분사회에서 부정하는 사회적 평등을 주장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_ 주명철, <1789> , p203/300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2권 <1789-평등을 잉태한 자유의 원년>은 이처럼 앙시앵레짐의 붕괴를 다룬다. 정치적 앙시앵레짐의 붕괴로 국회의 권위를 높이고, 이어서 사회적 앙시앵레짐의 붕괴를 통해 특권을 소멸하여 인권선언을 채택하는 일련의 과정안에서 우리는 프랑스 대혁명의 큰 흐름과 의미를 확인할 수 있다. 그렇지만, 아직 혁명이 채 끝난 것은 아니다. 이것은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8권이 남아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반혁명 세력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아직 절대왕권의 꿈을 못버린 루이16세와 특권층의 불만이 아직 채 사라지지 않았던 시기, 같은 시점 국회는 이미 이런 절대정과 ‘헤어질 결심‘을 굳힌 상태에서 이들의 불안한 동거는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인권선언에서 기요틴(guillotine)으로 가는 제2의, 제3의 혁명은 어쩌면 이때부터 예정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모호한 상황을 피하고 시간을 지체시키지 않기 위해서 나는 이렇게 선언합니다. 만일 당신이 우리를 여기서 내보낼 임무를 띠고 왔다면, 당신은 무력을 동원할 수 있는 명령을 내려달라고 요청해야 합니다. 왜나하면 오직 총칼의 힘을 빌려야만 우리를 이 자리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모든 의원이 미라보의 말을 따라 외쳤다. ˝이것이 국회의 결심이다.˝ _ 주명철, <1789> , p57/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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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 문명이라는 발상은 다른 문명에서 거의 지지를 얻지 못한다. 서구가 보편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을 비서구는 서구의 것으로 받아들인다. 서구가 미디어의 세계적 확산을 지구의 부드러운 통합이라고 선전할 때 비서구인은 거기서 사악한 서구 제국주의를 본다. 설령 비서구인이 세계를 하나로 바라본다 하더라도 거기에는 위기감이 스며 있다.

사회적 다원주의는 정치 집단을 낳았고 귀족, 성직자, 상인 등의 이익을 대변할 수 있는 의회 같은 기구를 낳았다. 이 기구들이 제시한 대의 형태는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근대 민주주의 제도로 발전했다.

비서구 사회가 서구 문화의 실질적 요소를 흡수하며 근대화를 향해 서서히 나아가는 초기 단계에서는 서구화와 근대화가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다. 그러나 근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서구화의 속도는 하락하고 고유문화가 소생한다.

결국 근대화는 반드시 서구화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비서구 사회는 자기의 고유문화를 포기하지 않고도, 서구의 가치·제도·관습을 전폭적으로 수용하지 않고도 근대화할 수 있고 또 그렇게 발전해왔다. 서구 문화를 전폭적으로 받아들이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서구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문화 요소에 비하면, 근대화를 가로막는 비서구 사회의 요소는 극히 작은 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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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 자신을 잘 제어하여 다루지 못한다. 그 일엔 나 자신보다 우연이 더 많은 권리를 갖고 있다. 주변 상황, 동반자, 하다못해 내 목소리의 떨림까지도 내가 나만을 위해 캐내어 사용하려 할 때 얻어 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내 정신에서 이끌어 낸다.

과감하고 의연해야 한다고 해서 우리를 위협하는 불행이나 난관으로부터 힘 닿는 한 스스로를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까지 의미하지는 않으며, 따라서 불시에 그런 일들이 덮쳐 올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도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우리를 불행으로부터 지켜 줄 수 있는 정당한 방법은 모두 허용될 뿐 아니라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그리고 의연함의 능력이란 주로 대책 없는 난관을 끈기 있게 감당하는 것에서 발휘된다.

불행이 우리 안에 들어오는 것이 오직 우리의 판단 때문이라면, 그것을 무시하거나 좋은 일로 만드는 것도 우리 능력에 달린 것으로 여겨지니 말이다. 모든 것이 우리에게 달려 있다면 왜 우리가 주인으로서 그것들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며,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조절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불행 또는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이 그 자체로서 불행이나 고통이 아니고, 단지 우리 생각이 그 사물에 그런 성질을 부여한 것이라면 그것을 바꾸는 것도 우리에게 달려 있다.

고통을 겪을 때 우리가 그토록 안달하게 되는 것은 가장 큰 만족을 마음에서 찾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요, 마음에 충분히 관심을 기울이지 않기 때문이다. 오직 마음만이 우리의 조건과 태도를 관장할 수 있는 지상권자인데 말이다. 육체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한 가지 행보, 한 가지 자세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돈 많은 사람은 모두 인색하다. 플라톤은 육체적 또는 인간적 자산을 이렇게 정렬했다. 건강, 아름다움, 힘, 부. 그리고 그는 말했다. 지혜의 조명을 받기만 하면, 부란 눈먼 것이 아니라 아주 통찰력 있는 것이라고.

여유와 궁핍은 각자의 견해에 달렸다. 부도 영광도 건강도 그 소유자가 그것들에 부여한만큼만 아름답고 즐거운 것이다. 각자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행복하거나 불행한 것이다. 행복할 것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행복한 것이 아니라, 자기가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행복하다. 바로 그럴 때에만 믿음이 알맹이를 갖게 되고 현실이 된다. 운수는 우리에게 이롭지도 해롭지도 않다.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재료와 씨앗을 제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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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사의 서막 - 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Liberte :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1
주명철 지음 / 여문책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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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전후관계를 새로 인식한 현대 역사가들은 문제를 다시 검토했다. 혁명가들이 앙시앵레짐이라고 부른 것은 무기력하고 타성에 젖었기 때문에 마땅히 사라져야 할 것인었던가? 그들은 이렇게 묻고 문제를 근본부터 다시 검토하면서 구체제, 앙시앵레짐이 역설적으로 죽어가면서 태어났음을 깨달았다. 따라서 현대 역사가들은 혁명이 발명한 앙시앵레짐이 아니라 혁명을 낳은 앙시앵레짐, 혁명으로 연결되는 앙시앵레짐의 참모습을 파악하려고 노력하였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32/380

주명철 교수는 <프랑스 혁명사 10부작> 중 제1권 <대서사의 서막-혁명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Liberte> 앙시앵레짐(Ancien Regime)과 혁명(Revolution)의 관계에 대해 묻는다. 앙시앵레짐이라는 구체제는 과연 혁명으로 사라져야할 적폐(積弊)인가, 아니면 혁명(革命)의 부모인가?

프랑스 혁명은 무엇보다도 경제문제 때문에 일어났다. 왕정이 빚을 많이 지고 더는 돈을 끌어올 곳을 찾지 못한 채 세제개혁을 하려 했지만 특권층의 반발로 실패하면서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편 그 사실 못지않게 왕정은 그 나름대로 국가를 '근대화'하려고 노력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42/380

이 이야기는 가난(미제르)이 어떻게 생겼고, 어떻게 끝나는지 보여준다. '미제르'의 유일한 재산은 자연이 주는 선물인데 아무나 훔쳐가기 때문에 가난하며, '죽음'도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미제르, 즉 가난을 데려가지 못한다... 민중은 남에게 자기 물건을 도둑맞기 때문에 가난하지만 어려운 사람에게 잠자리를 제공할 정도로 선량하다. 그러므로 민중은 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가난하게 살지 모른다.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만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민중을 보호해줄 공권력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오직 가난이라는 주인공이 스스로를 지켜야 할 뿐이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276/380

저자는 혁명의 근원을 경제적 원인으로부터 찾는다. 이와 함께 본문에 소개된 프랑스 혁명 직전시기 널리 유행한 민담(民譚)은 당시 민중의 어려운 처지를 하나의 예시로 보여주지만, 사실 이것만으로 혁명으로의 흐름을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역사상 수많은 '민란(民亂)'이라 불리우는 사건의 가장 큰 이유가 어려운 경제여건이라는 점을 생각해본다면 추가적인 설명이 요구된다. 이전 시기와는 다른 18세기 말 프랑스가 처한 다른 시대 상황은 어떤 것이 있을까.

루이 16세는 계몽사상가 튀르고를 중용했지만 치세 초부터 곡물 값을 안정시키지 못해 '밀가루 전쟁'을 맞아야 했고, 튀르고의 정책에 반대한 네케르를 중용했지만 이 사람이 추진하는 '영국식 군주정(입헌군주정)'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더욱이 궁정에서 그의 동생 프로방스 백작의 질투와 음모, 그의 사촌 오를레앙 가문의 야망, 왕비의 측근들을 경계하면서 다른 뾰족한 수를 찾아내지 못하고 그저 전통적인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려고 노력했다. 루이 16세는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결국 아메리카 독립전쟁에 참여하는 결정을 내렸다. 그것이 절대주의 체졔를 더욱 거세게 뒤흔드는 위기의 시작이었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197/380

저자는 루이 14세기 절대왕정 시대와는 다른 시대 상황을 '앙시앵레짐의 변화'로 설명한다. 바로크(Baroque)의 장중함에서 로코코(Rococo)의 경박한 화려함으로 넘어가는 시대를 대중들은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자신들의 어려운 처지에 대해 절망하면서도 이러한 문제를 체제의 문제로 인지하지 못하던 이들은 이제 구조적 문제에 눈을 뜨면서 이전과는 다른 대처를 하게 되었다.

루이 15세 치세말의 이야기, 이를 테면 비천한 창녀 출신 뒤바리 백작부인이 루이 15세의 공식 애첩이 되고 이 여인을 중심으로 파벌이 생겨 국고를 탕진하고 음모를 꾸민 이야기와 함께, 루이 16세의 성적 무능 그리고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의 낭비와 자유로운 생활을 헐뜯는 중상비방문이 마구 쏟아져 나와 선왕시대부터 누적된 적자와 더불어 루이 16세 치세의 앞날은 그리 밝지 않았다.(p126)... 이것은 문화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지표라 할 수 있다. 대중은 절대왕정의 이상과 이념을 구현하는 왕의 몸이 신성하기는커녕 창녀에게 오염되었다고 생각했으며, 그러한 믿음은 앙시앵레짐 문화의 밑바탕이라 할 수 있는 절대주의의 절정기가 끝나고 그 표상마저 바뀌었음을 반영한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130/380

루이 16세 치하에서 14년 동안 모든 상황이 변했고 평생 정치와 직접 관련 없이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이 정치화하면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앙시앵레짐의 문화가 변화를 겪었기 때문이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214/380

민중들에게 주어진 가난과 고통이 민중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특권층의 결정으로부터 오는 것이며, 그들은 결코 자신들의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자각했을 때, 그들은 더이상 자신들의 상황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과거에는 큰 문제없이 사회를 작동시키던 구조가 민중들의 깨달음을 통해 문제점으로 인식되는 순간 '레짐'은 '앙시앵레짐'으로, 그리고 혁명의 대상으로 변화되었음을 본문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렇게 민중들은 아폴론의 손이 닿기전 월계수가 된 다프네처럼 정치적 인간으로 갑작스럽게 변화했다. 이제 대혁명은 예정된 사건이었고, 10부작의 서막은 이렇게 시작된다...

제3신분은 강건한 인간이지만 한 팔이 아직 사슬에 묶여 있는 사람이다. 만일 특권층을 제거한다면 국민은 전보다 못한 존재이기는커녕 더 나은 존재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 전부다. 그러나 구속받고 압제에 시달리는 전부다. 만일 특권층이 없다면 그는 무엇이 될 것인가? 전부가 된다. 자유롭고 번성하는 전부가. 제3신분이 없이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존재들(제1신분, 제2신분, 특권층)이 없어도 무한히 발전할 것이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282/380

앙시앵레짐과 혁명을 분리하는 문턱을 정확히 어느 시점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전국 신분회 대표를 뽑는 유세 기간에 프랑스인들이 갑자기 정치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왕국의 모든 곳에서 오랫동안 의식의 밑바닥에 가라앉았던, 때로는 거의 무의식에 가까울 만큼 잊고 지냈던 불만을 구체적인 언어로 되살려내면서 프랑스인은 자유와 평등을 어느 정도 회복할 수 있으리라고 희망했다. _ 주명철, <대서사의 서막> , p299/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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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2022-08-07 18:0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호흡이 긴 프랑스사네요
10부작!

겨울호랑이 2022-08-07 20:17   좋아요 2 | URL
아마 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책들 중에서는 가장 장편인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마치 중계방송을 하는 듯한 저자의 친절함으로 부담없이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여겨집니다.^^:)

바람돌이 2022-08-07 2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 또 이렇게 10권의 장대한 여정을 시작하셨군요. 저는 읽지는 못하고 겨울호랑이님 글을 보면서 아 그렇구나 하며 맛만 보는..... ^^;;

겨울호랑이 2022-08-07 21:35   좋아요 1 | URL
에고 아닙니다. 프랑스 혁명에 관한 10권의 책이긴 합니다만, 대중 교양서로 쉽게 읽히는 책이라 마치 트래킹 코스와도 같은 느낌을 주는 시리즈입니다. 저도 말씀은 이렇게 드립니다만, 읽다가 중도에 딴 길로 새는 경우가 많아서 언제 끝낼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ㅜㅜ 이번에는 좀 집중해서 읽어야겠지요... 바람돌이님 하루 마무리 잘 지으세요!.^^:)

초란공 2022-08-07 23: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리 사회와 다르면서도 비슷한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공권력을 가진 권력이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고, 일반 국민은 가난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하는 상황을 예로 들면요. 저자의 엄청난 공부와 고민 속에서 탄생한 작품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2-08-08 04:51   좋아요 2 | URL
초란공님 말씀처럼 생생하게 당대의 모습을 재현하면서 독자들이 역사의 교훈을 스스로 발견하도록 배려한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인물 한 명 한 명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깊은 내공없이는 불가능함을 느끼게 됩니다. 초란공님 감사합니다 ^^:)

기억의집 2022-08-08 11:1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읽고 작가분에게 호기심이 생겨 찾아보니 책도 많이 내셨네요. 혁명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한 깊은 사고에서 내려진 것 같아 멋진 분이시네요.

겨울호랑이 2022-08-08 11:16   좋아요 1 | URL
주명철 교수의 사촌이 <바다 인류>,<물질문명과 자본주의>의 저자 주경철 교수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서양사학자 두 분이 가까운 관계이기에, 인간적으로 더 깊게 교류하면서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기억의집 2022-08-08 11:1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이름이 비슷하긴 해도 사촌일 거라고 생각하지 못 했어요.

겨울호랑이 2022-08-08 12:56   좋아요 0 | URL
기억의집님 건강한 오후 보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