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 문명과 문화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외르크 피쉬 지음,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엮음, 안삼환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 푸른역사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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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유럽적인 전통에서는 문화라는 개념(이하에서는 이 일반적인 형태속에 언제나 문명이란 개념도 함께 포함된다)이 포괄적인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즉 고전 라틴어에서 문화는 농경 활동을 가리켰으나 점차 한 집단 내에서의 제의적이거나 지적인 활동을 지칭하는 것으로 그 의미가 바뀌게 되었던 것이다.(p12) 중세에도 이 개념은 부분적으로 전수되었다. 그리고 거기에 '시빌리타스 civilitas'리는 공동체적/정치적 요소가 더욱 보강되었다. 근대 전기 前期에는 특히 교양과 학문의 영역에서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현대적으로 포괄적인 개념은 18세기 후반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생겨났다. 독일어에서는 전통적인 표현인 '문화 kultur'가 계속 쓰였고, 프랑스어와 영어에서는 '문명 civilisation'이라는 새 조어가 사용되었다. 두 개념 다 인간이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에 대해 행하는 활동 전체를 가리켰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개명된 인간의 모습, 개척된 자연의 모습, 그리고 마지막으로 문화 생산품의 모습으로 나타난 모든 결과물들을 가리키게 되었다_코젤렉, <코젤렉 개념사 사전 1>, p13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 : 문명과 문화 Zivilisation / Kultur>는 문명(文明, civilization)과 문화(文化, culture)의 시대적 변천에 대해 다룬다. '경작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이 말들이 처음에 가지는 긍정적 이미지는 이후 의미 확장에 따라 부정적인 뜻도 함축하게 된다. 이후 독일어 '문화(kultur)'는 근대의 긍정적 이미지와 결합되며 형이상학적이고, 긍정적인 어휘로 발전한 반면, '문명 zivilsation'은 부정적 의미를 가져가면서 뜻이 분화되기에 이른다.

문화는 현대를 움직이는 주요 개념군에 속하며, 특히 '역사'와 '진보'라는 개념과 결부되어 있다. 문화는 이 개념들의 운동적 성격에 참여했고 동시에 이 운동의 원동력들 중 하나가 되었다. 즉 문화와 문명은 그 자체로 하나의 발전 과정이 되고 말았다._코젤렉, <코젤렉 개념사 사전 1>, p14

'문화'와 '문명'은 19세기에는 일차적으로 -민족적 색채도 띤 - 유럽적 자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는 포괄적인 세계사적 진보운동의 선두에 다 함꼐 서 있다는 의식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과정, 즉 '문명화'라는 요소는 약화되고 '문명화된 상태'라는 요소가 강화된다.(p150)... '문화'와 '문명'은 국가와 사회, 경제와 기술, 학문과 예술, 법, 종교, 도덕등 삶의 모든 영역을 포괄하며, 둘 다 각각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와도 관계된다._코젤렉, <코젤렉 개념사 사전 1>, p151

(독일어에서) 문화 개념은 시간이 가면서 점점 더 자주 민족주의적 맥락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물론 그것은 소위 비독일적 문명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부각시키려는 것도, 독일의 우월함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민족적 목표를 위해 동원하려는 목적에서였다._코젤렉, <코젤렉 개념사 사전 1>, p169

제2차 세계대전의 물질적 결과는 유럽이 제2급 세력으로 하강한 것이었다. 진보하는 것으로 믿어지던 인류 발전의 최첨단에 서 있다는 확신 그리고 자신의 문화 내지 문명을 전 세계에 전파시킬 수 있다는 희망은 지나간 일이 되어 버렸다. 회의와 비판이 힘을 얻게 되었다. 이런 와중에 모든 언어에서의 온갖 부정적인 측면들이 점점 더 문명 개념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반면, 문화 개념은 정신적인 것과의 밀접한 여관 덕분에 근본적으로 '하나의 이상'이라는 특징을 유지하거나 이제야 비로소 획득했다._코젤렉, <코젤렉 개념사 사전 1>, p204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의 첫 권은 이렇게 문명과 문화를 분석한다. 독일어에서는 별다른 의미 분화가 일어나지 않았던 '문명 civilization'이 유럽의 제국주의 선두주자인 영국과 프랑스에서는 독창적으로 사용되고, 양 차 세계대전 이후 쇠퇴하게 된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 보다 우월한 문명에 대한 인식은 '문명'이라는 단어에 함축되었고, '계몽', '진보', '이성'의 긍정적 이미지가 이 안에 녹아들어갔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 면에서, civilization이라는 단어는 다분히 제국주의의 산물임을 깨닫게 된다. 상대적으로 제국주의 세력이 약했던 독일에서도 부정적인 이미지는 zivilisation이 가져가는 것을 보면서 언어는 시대의 산물임도 더불어 확인한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에서 문명과 문화를 다룬 것은 참으로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근대 이후 급격한 의미 변화가 일어난 개념어들의 역사를 살피는데 이들 두 단어처럼 극명하게 명암이 갈린 단어들도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단어들의 엇갈린 운명으로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대의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이어지는 개념어는 문화와 결합된 '진보 Fortschritt'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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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2-17 01: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문명의 개념이 문화와 분화되고 제국주의의 용어로 전화해가는 과정이 흥미롭네요. 오늘도 많이 배우고 갑니다. ^^

겨울호랑이 2021-02-17 07:17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바람돌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
 
금요일엔 돌아오렴 -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
416 세월호 참사 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엮음 / 창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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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구조에 대한 해경 지휘라인에 대한 1심 판결 결과가 무죄로 나왔다. 재판부의 판단은 해경 지휘부의 결정이 당시 상황을 바꿀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는 것이지만, 당시 현장에 있었던 민간 선주들과 협력을 잘 했다면, 모든 사람은 아니어도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처벌이 과거 결과를 되돌려 놓을 수는 없겠지만, 책임 인정이 되지 않았다는 점이 유감으로 남는다. 때문에, 2심 재판을 더 지켜보게 된다...

이 사건의 포인트는 민간 선주들도 애들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겁니다. 해경이 처신만 잘했다면 많은 아이들을 살릴 수 있었습니다. 왜냐면 섬의 모든 선주들이 다 무전기를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사고가 났다는 것을 다 들었어요. 그래서 섬에 있던 모든 배들이 세월호로 집결했거든요. 문제는 뭐냐면 애들을 구하려면 민간 선주들이 끌고 온 배에 두 사람은 타고 있어야 해요. 한 사람이 세월호에 올라가 애들을 구하는 동안 배가 떠나가지 않도록 잡아주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그걸 '닻거지'라고 하는데 닻을 내려서 배가 안 밀려나가게 당겨야 합니다. 혼자 아이들을 구하면 배가 가버리기 때문에 구할 수가 없어요. 전부 다 사고소식만 듣고 최고 속도로 달려가보니까 모두 혼자 타고 있는 상황이어서 세월호에 올라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배에는 전부 '앙카'라는 게 있어요. 그걸로 유리창을 깨면 그 방 아이들은 다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민간 선주들 전부가 하나같이 다 그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내가 섬에 내려갔을 때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_4.16 세월호 참사 기록 위원회 작가단, <금요일엔 돌아오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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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발머리 2021-02-16 12:3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기사 보고 정말 할말이 없더라구요. 무죄라니.... 그 많은 생명들을 눈 앞에서 구하지 않고 그냥 두었는데 무죄라니요 ㅠㅠ

겨울호랑이 2021-02-16 12:42   좋아요 1 | URL
네... 물론 시간이 지난 뒤에 이들을 처벌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냐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번 판결로 상명하복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풍조가 퍼지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공직사회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은 판결이라는 점에서 참 안타깝습니다...

페넬로페 2021-02-16 15: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이를 키우는 입장이라 그런지 세월호는 저에게 남다르게 더 마음이 아파요~~
저 판결소식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은 너무 상심이 클 것 같아요^^
너무 화가 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16 16:00   좋아요 2 | URL
정말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사건에 분노하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세월호가 제대로 마무리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언제든 그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다른 의미일테니까요...
 

 죽을 때에는 죽음 그 자체가 무서운 것이 아니라, 그 전의 마음의 준비가 무서운 것이다. 그는 이미 그 두려움, 괴로움, 가련함을 <지나서>, 이미 슬픔을 뛰어넘어, 자기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승복하고, 지금은 마음의 준비도 되어 있었다. 그리하여 육체의 죽음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솔제니친(Aleksandr Solzhenitsyn, 1918 ~ 2008)의 <수용소 군도 5>에서는 비참한 군도생활의 끝이 그려진다. 극한 상황에 몰린 이들의 탈주와 이들에 대한 엄한 처벌 그리고 반란. 죽음을 각오한 후에야 비로소 탈옥을 할 준비가 된 것이라는 저자의 말에서 우리는 광산 갱도의 마지막 끝, 막장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발견한다.


 나는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밑바닥으로 내려가게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어떤 공통된, 돌멩이가 많은 바닥에 단단하게 발을 디디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가 시작되었다. 나의 인격은 그 시기에 완성되어 갔으며, 그 이후에 내 인생에 어떤 일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때 익숙해진 시선과 습관에 충실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그렇지만, <수용소 군도 5>에서 저자 솔제니친은 수용소에 수감된 이들 뿐 아니라 이들을 감시하는 경비병들 역시 같은 밑바닥에 있다는 사실을 언급한다. 벗어날 희망을 갖지 못한 버림받은 땅에 놓여진 이들은 분명히 같은 처지지만, 이들은 서로 다른 계급에 속한다. 때문에, 이들은 반목하게 되는데, 그것은 이들이 각자의 사회적 기반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 계급이 '주인 계급'이라는 기반 위에 서 있다면, 다른 계급은 '노예 계급'이라는 기반에 있어 대립할 수 밖에 없었다. 주인 도덕과 노예 도덕.


 우리를 가둔 자들도 우리처럼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 특수 수용소의 규율은 완전한 격리를 시키는 것이다. 즉, 누군가에게 호소할 수도 없고, 아무도 여기서는 석방되지 않고, 아무도 여기서는 도망치지 못한다... 어찌하여 이렇게 순종하게 되었는가? 이런 수용소는 따로 생겨난 것이 아니다. 지배받는 측도, 지배하는 측도 교정 노동 수용소에서 와서, 전자는 몇십 년의 노예의 전통을 짊어지고, 후자는 몇십 년의 주인의 전통을 짋어지고 왔기 때문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결국, 문제는 정치적 자유가 아니다. 그래, 바로 그렇다! 인류가 발전시키고 있는 것은 내용이 없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 기능이 충분히 발휘되는 정치 기구를 가진 사회를 만들려는 것도 아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다! 문제는 말할 것도 없이 사회의 도덕적 기반에 있는 것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이제 우리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가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말한 '노예 도덕'과 '주인 도덕'을 수용소 질서에 가져올 수 있겠다. 위력에 의해 강제로 수감된 이들이 갖는 '힘에의 열망'과 능동적인 힘에 의해 위협받았기 때문에 일어나는 반동(Reaktion)에 의해 생겨난 르상티망(Ressentiment)의 모습은 니체의 도식에 정확하게 부합한다. '강자(경비병)=악인'으로 간주하지만, 강자인 경비병들에게 복종함으로서 겨우 살 수 있었던 노예(죄수)들이 여기에서 벗어나 개인적으로는 탈옥, 후에는 집단 항명 등을 통해 거부하는 모습은 글자그대로 '노예의 반란'이다. 그렇지만, 결국 진압된 항명과 구질서로의 회귀는 말 그대로 역사 속에서 '선과 악 Gut und Bose'의 반복의 전형으로 보여진다. 결국, 죄수들의 르상티망은 자신들을 선(善)으로 규정하고, 선이 악을 이길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면서 절망하게 된다.


 인간이 정서나 감정 없이 사고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어떤 것을 일단 악이라고 보게 되면, 그 속에 있는 선마저도 좀체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끝이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작은 있는가? 우리의 인생에 광명이란 있을까? 아니면 없는 것일까? 억압받는 사람들은 <선으로 악을 근절할 수는 없다>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그렇다면, 세상에서 버려진 땅 수용소 군도에도 나타난 '주인 - 노예'계급의 갈등은 과연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주인에게는 스스로 '좋음'이라는 우월 의식을, 노예에게는 '아니다'라는 부정의 답을 끌어내는 이 힘을 솔제니친은 '체제'에서 발견한다. 체제로부터 '반동'으로 낙인 찍힌 이들은 말 그대로 노예(죄수)로 강등되니, 수용소에 있는 이들에게 체제는 말 그대로 하늘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수용소의 천명(天命)은 동양의 천명인 민본(民本)과는 분명히 다르다.


  만일 경비대의 <장교>가 죄수들에게 어떤 친절을 베풀려고 한다면, 그는 그 친절을 병사들 앞에서, 그리고 병사들을 통해서 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죄수들에 대하여 적의를 품고 있는 가운데서는 불가능한 일이며, 또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 그를 밀고 했을 것이다. 이것이 체제라는 것이다!...  이 체제의 힘은 어떤 인간이 다른 인간과 직접 이야기를 할 수 없고, 반드시 장교나 정치 지도원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데에 있다. 이 청년들의 힘은 그들의 무지에 있다. 수용소의 힘은 이 청년들에 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수용소의 '체제'는 개인과 개인을 고립시키고, 새로운 정보를 차단하며, 명령을 주입함으로써 수용소의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개인과 개인이, 개인과 집단이 의견을 나누며 교류를 하게 된다면, '여론'이 형성되고 꺾을 수 없는 힘이 생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혁명(ebruary Revolution, 1917)으로 소련을 만든 이들 대부분이 시베리아 유형의 경험이 있어서인지, 솔제니친은 <수용소 군도> 곳곳에서 제정 시대보다 열악한 수용소 생활에 대해 언급한다.   

 

 결국, 수용소 내에서 빚어진 '주인 계급'과 '노예 계급'의 갈등이 더 첨예해진 것은 '무지'를 주입받은 이들은 별다른 죄책감 없이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 1906 ~ 1975)가 말한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가지고 인민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책무에 충실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런 면에서 히틀러의 극우와 스탈린의 극좌가 만나는 지점을 발견하게 된다... <수용소 군도 5>를 통해 '선(善) - 악(惡)'의 문제를 잠시 생각하며, 이제 <수용소 군도 6>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자기의 양심을 남에게 맡긴 채 명령에 따라도 되는 것인가? 이것이야말로 20세기 최대의 문제가 아니겠는가? 선악에 대해 스스로 가치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인쇄된 지령서나 상사의 구두 명령만을 받아들일 수 있는가? 선서! 떨리는 음성으로 되풀이하는 이 엄숙한 맹세, 그 의미는 악당으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것이다 - 이런 선서를 통해 아주 간단히 그들은 악당의 편이 되어 국민들을 탄압하게 된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끄림반도 전쟁은 - 그것은 러시아에서 가장 행운의 전쟁이다 - 농노의 해방과 알렉산드로 황제의 여러 개혁을 가져오게 했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에는 가장 위대한 힘, 즉 <여론>이 탄생했다... 여론! 사회학자들이 여론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나는 알 수 없으나 그것은 정부와 당의 견해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이, 자유롭게 표명되고, 서로 영향을 미치는 개인적 견해로서만 구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질서>를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배자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도적질을 하여 남을 짓밟고 살아가며, 죄수들을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_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수용소 군도 5>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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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무스 2021-02-15 22:49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이 훌륭한 페이퍼로 니체와 아렌트를 다시 한번 복기합니다. 수용소군도가 엄청나군요! 글의 내용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요즘 고민해 보았던게 악의 평범성의 범위 내지 비난가능성은 어느 정도인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답이 쉽지는 않더라구요!ㅎ 6권까지 힘차게 정진하시길 응원합니다!ㅎ

겨울호랑이 2021-02-15 23:01   좋아요 4 | URL
작가 솔제니친의 말처럼 삶의 밑바닥까지 다녀온 이들에 관한 이야기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단순히 처참한 삶의 기록을 넘어선 무엇인가가 분명 작품 안에 있음을 느낍니다. 때문에 <수용소 군도>는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모든 철학은 죽음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실증하는 대작이라 여겨집니다. 막시무스님 감사합니다! ^^:)

바람돌이 2021-02-16 0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수용소 군도의 사유의 깊이가 대단하네요. 저런 사유를 저렇게 엄청난 양의 페이지에 펼쳐놓는단 말입니까? 작가는 역시 위대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1-02-16 05:47   좋아요 2 | URL
분량도 많지만, 절박한 삶을 살아야 했던 서로 다른 이들의 인생은 하나하나가, 그리고 그들 전체가 철학의 실증으로 보입니다. 힘든 수용소 생활이었지만, 이로 인해 깊은 의미를 담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말씀에 매우 공감합니다^^:)

scott 2021-02-16 10: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예의 반란을 진압하며 권력에 위력과 정당성을 확립시킨 로마 제국 처럼 수용소 군도속 자리잡은 주인 계급과 노예계급 ,,,죽음의 끝자락에서도 글쓰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은 솔제니친 작가,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다시한번 더 역사를 상기 시켜보게 되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님은 겨울 동면을 안하쉼 ^ㅎ^

겨울호랑이 2021-02-16 10:35   좋아요 1 | URL
scott님 말씀처럼 지배계급에 대한 복종만이 생존을 보장할 수 있는 상황 속에서 대다수의 다른 이들처럼 소극적인 분노 표출에 그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글을 쓴 솔제니친은 이를 통해 진정한 초인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겨울잠을 자고 싶은데, 먹고 살다보니 봄이 가까이 와버렸네요.ㅋㅋ scott님께서 매일 들려주시는 음악 또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니, 겨울잠 자기는 틀린 듯 합니다. scott님 감사합니다.^^:)

그레이스 2021-02-16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학 졸업하고 읽었던 기억이 나요
고등학생이였던 남동생이 허락없이 친구에게 빌려주고 아직도 못돌려받은책예요 ㅠ
아저씨가 되서도 그 친구는 누나책 아직도 갖고 있다고 하면서 왜 안돌려주는지...
책장이 누렇게 바랬을텐데...ㅋ

겨울호랑이 2021-02-16 12:38   좋아요 2 | URL
그렇군요. 옛말에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제 책을 가져간 이를 그렇게 생각되지는... ㅋ 저도 돈을 빌려줘서 못 받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책을 못 받으면 잊히질 않더군요. 오랜 억류 생활로 수용소 생활을 겪고 있을 <수용소 군도>가 하루 빨리 그레이스님 품 안으로 돌아오길 바라봅니다! ^^:)
 


 '계몽'의 다층성은 회고적으로 '계몽' 개념의 의미 내용을 오직 두 정신사적 뿌리들로부터 연역하려는 시도가 문제 있는 것으로 보이게 한다. 이 정신사적 뿌리들이란 첫째, 데카르트 인식론의 이념 영역, 그리고 이 인식론이 사유의 자기 확실성과 진리 인식 방법을 근거 지음.(p29)... 둘째, 종교적, 형이상학적 빛 이론들의 이념 영역. 이 영역은 "자연적인 빛 lumen naturale"이론의 근대적 변천을 걸쳐 앞에서 언급한 첫 이념 영역과 밀접하게 만난다.(p30)... 대략 1770년부터 '계몽'은 "앎의 수준"이라는 의미 변형과 연계되어 예컨대 공동체 Gemeinwesen나 민족과 같은 도덕적, 문화적 상태를 의미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해가 계속 형성되면서 '계몽'은 이후 한 공동체, 민족, 시대 또는 지리적 공간의 전형적인 정신적 능력들과 표현 형식들의 전체를, 그리고 똑같이 그러한 물질적, 기술적 숙련들과 자식들의 전체를 의미할 수 있게 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 계몽>, p31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의 6번째 주제는 "계몽 Aufklarung"이다. 근대와 뗄 수 없는 관련있는 이 단어에 대한 의미는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으며, 그 의미가 확장, 변형된 역사를 지녔기에 이를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벅차게 느껴진다.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 계몽>을 읽다보면, 이 단어만큼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의미를 지닌 단어도 별로 없을 듯하다.


 1786년 칸트는 한 시대를 계몽하는 것을 달성하기 어려운 과제로 본 반면에, 한 개별 인간을 계몽하는 것을 당시로선 비교적 쉬운 일로 여겼다. 실러에겐 이 관계가 정확히 정반대다. 그에게 현 시대의 계몽은 문젯거리가 아니다. 이 시대는 이미 계몽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진리가 밝게 비추었는데도  동시대인들에게 진리 수용에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라는 물음에 답하는 것이다. 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 계몽>, p147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계몽'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보다 명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코젤렉의 조언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누가, 누구에 의해, 무엇을, 어떤 근거로, 어떤 수단으로, 어디로 이끄는가. 이러한 코젤렉 조언은 '빛을 만들었다 en+light'는 영어 계몽(啓蒙 enlightment)을 잘 풀었다는 느낌을 받는다. 추가적으로 계몽의 주체와 계몽의 대상을 넣고, 왜 그렇게 했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시대마다 다른 색깔의 빛으로 표현된 '계몽'이라는 현상의 공통인자를 발견할 수 있다. 

 

참된 진리 자체가 빛으로 밝혀주고, 이로 인해 인식할 수 있다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Hipponensis, 354 ~ 430)의 조명설(Illuminatio)의 구조 안에서, 심훈(沈熏, 1901 ~ 1936)의 소설 <상록수>에 나타난 브나로드 운동의 현상을 떠올린다면 계몽의 대강을 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계몽'의 의미들에서, 그리고 이 의미들로부터 전개되는 계몽 개념의 그때그때 행해지는 주제 선택과 파급 범위와 평가와 적용 방식은 누가 누구에 의해 무엇에 대해 어떤 근거에서 어떤 수단으로 어떤 목표를 향해 "계몽되어야"한다는 것인가라는 일반적인 물음에 그때마다 구체적으로 답변하는 것에 의존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 계몽>, p33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에 수록된 여러 단어들 중 다수가 이르면 17세기, 늦어도  18세기 후반 이후에 변형되거나 새롭게 의미를 추가된다. 이는 독일어의 개념을 설명하는 사전의 성격 상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 ~ 1832),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1759 ~ 1805)라는 독일의 거장들이 출현한 시기라는 점과 영국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과 프랑스 대혁명(French Revolution, 1789 ~ 1799)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은 시기였다는 점이 가장 클 것이다. 아마도, 이는 개념사들의 전반적인 설명이 되겠지만 적어도 '계몽'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조금 특별한 설명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 ~ 1803)의 '계몽'인식을 살펴본다면, 그가 스파르타에 '애국심'이라는 사상을, 아테네에 '계몽'이라는 사상을 부여했음을 알게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헤르더는 헬라스의 두 도시국가가 충돌한 펠로폰네소스 전쟁( Peloponnesian War, BC 460 ~ BC 445)은 이들 이데올로기의 충돌로 해석한다고 볼 수 있을까.


 헤르더는 '계몽'을 '인본성'의 본질 인식이자, 그 정신적 영향들로 언급된다. 이 영향에 의해 세계 창조자인 유일신에 관한 이론이 모든 철학과 종교의 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헤르더)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비교하면서 애국심과 계몽에 있어 인간성의 모든 인륜 문화가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두 개의 극점을... 포착해 스파르타엔 애국심의 극점을, 아테네엔 계몽의 극점을 부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계몽'을 '국가기술'과 연관시키며 이로써 민족에 어울리는 책무에 대해 그 민족의 계몽을 생각하고 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6 : 계몽>, p141


 일반적으로, 펠로폰네소스 전쟁의 원인을 아테네의 번영을 시기한 스파르타의 견제 때문이라고 해석한 투키티네스(Thucydides, BC 465 ~ BC 400)의 분석이 일반적이지만, 투키티데스와 헤르더의 해설을 결합하여 '경제적 원인으로 발생한 전쟁이 가져온 정치적인 의미'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스파르타의 '애국심'이 아테네의 '계몽'을 이겼다고 볼 수 있겠다.


 23 (4) 이번 전쟁은 아테나이인들과 펠로폰네소스인들이 에우보이아 섬을 함락하고 맺은 30년 평화조약을 파기함으로써 일어났다. (5) 앞으로 어느 누구도 왜 헬라스인들 사이에 이런 큰 전쟁이 일어났는지 묻지 않도록, 나는 그들이 조약을 파기하게 된 원인과 그들의 쟁점을 먼저 기술하겠다. (6) 그러나 진정한 원인은 사실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말하자면 아테나이의 세력 신장이 라케다이몬인들에게 공포감을 불러일으켜 전쟁을 불가피하게 만든 것이다._투퀴티네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제1권 , p46 

 

 그리스가 문화, 언어, 예술, 학문의 씨앗을 다른 곳으로부터 얻어왔음은 내가 보기에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각, 건축, 신화, 문학 등의 몇몇 예에서 이는 명백히 드러난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이 모든 것에 완전히 새로운 본성을 부여함으로써 결국 남들로부터 얻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는 점, 단어의 원래 의미에서의 "아름다움"을 모든 방식으로 만들어내는 일이 그리스인들의 과업이었다는 점 - 그리스 문화에 나타난 몇몇 이념의 진보에서 이러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다고 나는 생각한다._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 철학>, p61


 헤르더는 다른 책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 철학>에서는 독창적인 아름다움을 창조한 그리스 문화와 뒤를 이어받는 로마 문화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 다뤄진다. 펠로폰네소스 전쟁 이후 그리스의 패권이 스파르나, 테베로 넘어가면서 그리스 문명 자체가 쇠퇴한 것을 생각해 본다면, 구조적으로 전쟁국가이면서 병영국가였던 로마가 계승한 그리스는 스파르타의 '애국심'과 군대사회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러한 기반 위에 수립된 고대 제국 로마. 스파르타의 '애국심'은 로마 제국의 '시민 의식'의 기반이 되었고, 중세 '신앙'의 기반이 된 반면, 아테네의 '계몽'은 르네상스(Renaissance)때까지 겨울잠을 잘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인간의 능력과 노력의 방향은 장년의 나이에 도달했다. 로마인들이 바로 여기에 해당한다!...로마 민족은 그 얼마나 높은 언덕 위에 서 있었던가! 그리고 이 언덕 위에 그 얼마나 거대한 신전을 건설했던가! 이들이 건설한 공공건물과 전투기구, 그 계획과 실행수단은 세계 전체의 콜로세움이 되었다! 로마에서 유희가 벌어졌을 때, 세 개의 대륙에 걸쳐 피가 흐르지 않는 경우가 있었던가? 이 제국의 위대하고 존엄한 국민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힘을 떨쳤던가!(p63)... 로마인들이 주둔했던 세계의 모든 지역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수세기에 걸친 로마의 지배는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이 폭풍은 모든 민족이 지닌 민족적 사고방식의 가장 깊은 내실까지 휘몰아쳤다._요한 고트프리트 폰 헤르더, <인류의 교육을 위한 새로운 역사 철학>, p64


 물론, 이처럼 생각하는 것에 문제점이 없는 것은 아닐것이다. 18세기 후반 이후 독일의 계몽주의가 민족주의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면, 보다 복잡하게 흘러간 19세기의 현상을 모두 설명하기에는 부족함이 분명있다. 그렇지만, 이번에 수많은 사상가들의 다양하게 사용한 '계몽'이라는 의미 중 하나를 건져야 한다면, 헤르더의 개념을 가져가고 싶다. 이 정도로 '계몽'의 개념사를 일단 정리하고, 다른 연관 개념사와 관련해서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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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2-13 11:4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계몽의 여러가지 층으로 나누는 의미를
돌이켜 생각하며
모든 사실로 증명하지 않고
추론함으로써
사유하는 정신의
큰 두가지 방법의
근원을 규명하는데
문제가
있다는거죠?

첫줄 읽고 또 읽고 댓글부터 씁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21-02-13 12:27   좋아요 3 | URL
초딩님께서는 이미 책을 읽으신 줄은 모르겠습니다만, 코젤렉의 글의 의미를 잘 짚으셨다 여겨집니다. 조금 부연하자면 근대 이후 여러 의미로 사용된 ‘계몽‘의 뿌리를 앞서 말한 두 영역에서 찾는 것으로는 부족하다는 의미로 여겨집니다. 많은 부분을 설명하지만, 초딩님께서 말씀하신 바처럼 서로 다른 역사적 배경 또한 개념을 알기 위해서는 필요한만큼,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말로 생각되었습니다. 이러한 코젤렉의 생각 또한 현상학의 틀을 사용하기에 전부를 설명하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 봅니다. 초딩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초딩 2021-02-13 14:34   좋아요 2 | URL
일제 시대 때의 브나르도 운동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측면은 타협적 민족주의 운동으로 그 타협이 굴종으로 보이기도하고,
너무 오래지속했던 조선의 양반체제의 붕괴를 사회주의 운동으로 그리고 평등을 위한 신분타파 운동으로 볼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즉, 현상은 여러 가지 측면으로 볼 수 있고 ㅜㅜ 사실 현재에서는 화자의 색이 입혀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 시절로 돌아간다해도
현재의 우리도 현재 일어나는 일을 모두 알 수 없으니 답답할 따름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과거를 회고한다는 것은 반성과 긍정적인 미래를 위함이라는 관점에서보면
얻을 것을 취한다는 입장이 도움이 될 것 같구요.
그렇다 해도 긍정 또한 편향되면, 진실을 보지 못하니 비판의 냉정한 눈을 유지해야할 것이고요. 또 그러기 위해서는 편협하지 않기 위해 많이 알고 열려 있어야할 것 같습니다.
코젤렉 읽어 보고 싶은데 우아 씨리즈가 많네요. 마음을 비우고 언급하신 계몽만 봐도 좋겠다 생각합니다.
:-) 사유를 자극하는 글 언제나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02-13 14:57   좋아요 1 | URL
1919년 3.1 만세항쟁 이후 다양하게 전개된 독립투쟁 방식 중 하나가 교육을 통한 자각운동이었다고 여겨집니다. 마치 춘추전국시대의 제자백가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이루어진 투쟁을 생각하면 후손들을 생각했던 선조들의 사랑이 느껴져 뭉클해집니다. 브나로드 운동도 이러한 교육투쟁의 일환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결실을 맺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교육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결실을 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 한 인간이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 걸렸던 것은 아니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초딩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동물철학 - 발췌 - 지만지 고전선집 316 지만지 천줄읽기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 지음, 이정희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생명의 진정한 요소를 규명하고자 한다면, 생명은 그것이 영위되는 모든 신체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러한 태도를 취한다면 생명의 존재에 실재로 핵심적인 요소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조직화 계획 내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_ 라마르크, <동물 철학>,p140

장 바티스트 드 라마르크(Jean-Baptiste de Lamarck, 1744 ~ 1829)은 <동물철학 Philosophie Zoologique>을 통해 생명의 본질이 신체 내에 있음을 강조한다. DNA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던 시절에 생명 존재의 핵심 요소에 대한 라마르크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비록, 획득형질이 유전된다는 용불용설(用不用說 Lamarckism)은 더 이상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라마르크의 뛰어난 통찰이 갖는 의의는 줄지 않을 것이다...

습성에 의해 변화가 이루어지기에 충분할 만큼 기관을 사용하여 얻어진 모든 변화는 수정 과정에서 이들 종의 생식에 전체적으로 일조하는 개체에 공통적인 경우 세대에 걸쳐 연속적으로 보존된다. 결국 이 변화는 실제로 그것이 형성되는 경로에 의해 획득되지 않고도 세대를 이어 동일한 환경을 따르는 모든 개체에 그와 같이 전파되고 전달된다... 어떠한 결함이나 형태의 특이성이 획득되어 나타날 때, 만일 이 경우 두 개체가 언제나 함께 결합된다면, 이들은 동일한 특이성을 생성하게 될 것이며, 또한 후속 세대는 그와 같은 결합으로 한정되며, 따라서 특이하게 구분된 인종(race)이 형성될 것이다. _ 라마르크, <동물 철학>,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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