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 닻을 올린 한국의 해상풍력이 타이완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은 단순히 ‘어떻게 빨리 지을 것인가‘라는 방법론만이 아니다. 거대한 바람개비가 바다에 뿌리내릴 때, 평생을 바다에서 살아온 어민들과 어떻게 함께 살 것인지, 그리고 그들이 그리는 미래는 어떤 모습인지 끊임없이 묻고 답해온 경험이 한국에 더 소중하다. - P13

타이완 정부는 왜 이렇게 재생에너지에
‘진심‘인가? ‘에너지 안보‘ 때문이다. 타이완섬인근에 소위 화석연료, 석유나 천연가스가 없다. 타이완은 현재 에너지의 약 96%를 외부에서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자급자족이 절실하다. 그래서 이른바 ‘녹색 전기‘ 즉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에너지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 P15

권력이 비호한 각종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결론이 나고, 남은 것은 권력을쥐고 있던 시기에 전달받은 금품 수수 일부에 불과했다. 그래서 재판부의 ‘질타‘는 대통령 부인이 청렴하지 못한 것에 대한 공허한 꾸짖음에 그치고 만다. " - P17

그런데 대의원제를 폐지하겠다는 정당의 변화 앞에서 던져야 할 질문이 누군가의 유불리뿐일까? 대의원이 가지고 있던 권한을 허물어 권리당원에게 더 힘을 실어주거나, 아예 동일하게 만드는 이 같은 변화는 정당이 운영되는 방식을 본질적으로 뒤바꾸어 놓는다. - P21

 "국회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은 스스로 대의원이기도 하고, 해당 지역의 대의원들에게 영향력을끼친다. 이들은 각자의 노선을 가지고 정치를 하며 조직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을 설득해서 움직인다는 것은한층 까다롭고 어려운 일이다."  - P23

쿠팡으로 빚어진 최근 기류의 핵심은
‘한국의 디지털 주권 대 미국 플랫폼 자본‘이 정면충돌하는 양상으로 이어지고있다. 쿠팡은 단지 하나의 전장(戰場)일뿐이다.
- P27

하노이 노딜은 북한뿐 아니라 트럼프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만약 당시 북·미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마쳤다면,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가 패배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 P29

그는 칠십 평생 안일하지 않고 안주하지 않은 뜨거운 투사였다. 고문 후유증으로 평생 고통받았던 김근태처럼, 수전증을 비롯한 고문의 흔적을 그대로 지닌 몸으로 해외 출장길에 나섰던 그는 객사(死)가 아니라 전사(戰死)했는지도 모른다. 미칠 것같이 뜨거웠던 한국 현대사를 데운 커다란 불쏘시개 중 하나, 이해찬 전 총리의 명복을 빈다. - P5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장애인이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 - 18년 차 특수교사가 안내하는 편견을 넘어 우정 쌓는 법 교양이 더 십대 12
권용덕 지음 / 다른 / 202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장애가 있는 상대와의 올바른 상호작용을 위해 다음 사항을 기억해야 해요.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평등하며 존중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다.
장애를 차별이 아닌 개인적 차이로 봐야 한다.
장애인은 나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_ <장애인이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 p.25

도움과 불편. <장애인이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를 관통하는, 그리고 연결되는 두 개의 키워드라 생각한다. 장애가 있어 불편을 겪는 이를 보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고 그를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 그렇지만, 이 도움은 눈에 보이는 그의 불편함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의 불편함을 없애기 위함일까.

경우를 달리해서 만일 내가 어려운 수학 방정식을 풀지 못하고 끙끙대며 고민하고 있을 때, 아인슈타인이나 뉴턴과 같은 천재 수학자가 나타나 수학 문제를 풀지 못하는 나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을 느끼고 내 문제를 다 풀어 주었다면, 나는 그에게 감사의 마음을 느껴야 할까, 아니면 나에게 주어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게 방해했다고 화를 내야 할까.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vs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라

우리는 타인을 대할 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대접해야 할까, 아니면 원치 않는 것을 행하지 말아야 할까. 얼핏 전자의 방식이 더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보이지만, 이는 한 가지 전제 위에서 가능하다. 나와 남이 원하는 바가 같을 때만. 만일, 원하는 바가 같지 않다면 불필요한 오해와 갈등이 생길 수 있다. 이제 우리가 다른 이를 돕는다는 문제를 생각해 보자. 내가 그에게 베풀고 싶어 하는 것을 그는 원할까. 진정으로 그의 처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린 결정은 또 다른 폭력의 가능성이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않는 행동이 얼핏 차갑게 보이지만, 실은 그에 대한 최대한 존중을 보이는 배려라는 생각이 든다.

사람들은 모두 다르고 불완전하며 저마다의 짐을 지고 각자의 길을 살아간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는 시혜적인 위치에 어느 누구도 서 있지 않다. 어쩌면 우리의 도움은 불편함으로 인해 생겨나는 기다림이라는 우리의 불편을 치우기 위한 자신을 위한 배려는 아닐까. 우리 모두 장단점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각자의 길을 가다가 도중에 들려오는 작은 부탁에 귀를 닫지 않는 작은 여유가 있다면, '장애인이랑 친구가 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을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산, 파괴, 접속 4 - 전쟁과 정보 혁명 케임브리지 세계사 18
존 로버트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모두 지역 갈등에서 시작해 더 넓은 지역 또는 국제 분쟁으로 이어졌다. 지역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확대된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다. 19세기 후반 유럽에서는 민족 정체성과 국가의 이익이 강조되면서, 기존의 유럽 평화 질서를 지향하는 광범위한 공통 인식은 약화되었고, 결과적으로 강대국 중심 체제가 형성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73


 지역에서 세계로. 케임브리지 세계사의 마지막 <생산, 파괴, 접속 4>에서 우리는 지역(local)과 세계(global)의 진정한 연결을 확인하게 된다. 이전까지 세계사에서 지역 간 접촉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지역에서의 접속'과 '세계 안에서의 접속'은 그 양과 질적인 면에서 그 양상을 달리한다. 이는 지역에서의 접속이 체제의 안정성이 보장된 상태에서 외부와 연결되는 선택이라면, 세계 안에서의 접속은 체제의 사활마저 걸어야 하는 '지정학적 요인'을 고려해야만 하는 실존적 필연성을 띠게 되었으며, 비로소 인류는 진정한 의미에서 '세계사'를 함께 써가게 되었다.


 한국전쟁이 끝날 무렵, 냉전은 단순히 강대국과 동맹국 간의 갈등을 넘어, 국제 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틀로 자리 잡았다. 적어도 초강대국들에 있어 양극체제는 국제질서의 안정성을 보장하는 요소가 되었다. 하지만 한반도와 같이 냉전의 주변부에 놓인 지역에서는 불안정과 폭력이 만연했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125


 이러한 변화가 가능하게 된 것은 19세기에 이루어진 중요한 사상적, 과학적 변화 때문이다. 18세기 시민혁명으로부터 확산된 민족주의 사상은 근대시민국가, 제국주의 국가의 토대를 형성했으며, 과학과 기술의 결합은 군사적 우위를 안겨다 주었고, 자본이 해외로 진출할 수 있는 도구가 되었다. 교통과 통신 인프라는 이러한 양태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인류가 말을 길들인 이후, 교통통신 분야에서 가장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났던 시기는 19세기였다. 당시에는 두 가지 기술 혁신, 즉 증기기관(steam engine)과 전기(electricity)의 발명 덕분이었다.(p.260)... 19세기 후반, 기술과 조직의 혁신이 교통과 통신 분야에 다시 한번 큰 변화를 일으켰다. 이 중 가장 먼저 나타난 혁신은 전기(electricity)의 활용이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268


  제국주의 시대 중심지인 본국에 대해 원료 공급지, 상품 소비지, 제품 판매지로서 기능한 식민지를 연결한 것은 자본이었다. 이윤 극대화를 위한 자본의 확대 재생산은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을 요구했으며, 이는 20세기에 결국 에너지 문제를 낳게 된다. 새롭게 등장한 에너지 이슈는 새롭게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안에서 패권 문제로 연결된다. 석탄-석유-핵(核)으로 주인공이 바뀌면서 이를 둘러싼 역학관계의 변화는 1950년대 이후의 지정학적 분쟁을 설명하는 주요 요인이라는 점은 이러한 사실을 방증(傍證)한다. 


 기술 혁명이 모두 같은 방향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20세기로 접어들 무렵, 여기서 다룰 두 가지 기술은 분명하게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갔다. 교통 기술의 발전은 정체된 반면, 통신 기술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왜 발전이 멈춰 버렸을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에너지 때문이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285

 이 같은 변화는 21세기에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비록 책에서는 다뤄지지 않지만, 책을 잠시 덮어두고 생각해보자. 20세기까지 포디즘(Fordism)의 대량 생산 논리가 통용되었다면, 21세기에는 조금 달라진 듯하다. 20세기가 에너지를 '폭발적으로 생산'하는 파괴적 혁신(핵, 석유)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에너지를 미세하게 제어하는 '지능적 최적화'의 시대로 변화했다. AI 시대를 맞아 더 많은 전력 자원이 요구되는 가운데, 저전력 반도체나 우주 데이터 센터 건설 등의 주제가 이슈가 되는 것은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환에 기반한 것은 아닐까.


 <생산, 파괴, 접속 4>를 통해 이전 세기의 이성(reason)에 기반한 계몽주의에 영향받은 민족주의, 민족주의가 낳은 근대 시민 국가로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한편, 과학(science)과 기술(technology)의 결합은 대량 생산을 가능케 했으며, 이 같은 정치·경제적 변화는 군사력에 기반한 제국주의를 통해 세계화를 만들었다. 비록,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통해 소수의 제국은 여러 나라로 분화되었지만, 에너지와 '자유'와 '평등'의 이데올로기를 둘러싼 다툼은 최근까지 이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한 편으로, 이러한 거대한 시간의 흐름 안에서 우리는 현대 사회의 단면도 확인할 수 있다. 


 신으로부터의 자유, 국가로부터의 자유, 사회로부터의 자유... 근대 이후의 시대는 끊임없는 '-으로부터의 자유(free from)'를 추구해 온 시대였다. 그 결과 가족마저도 분화되어 핵가족에서 1인 가구로 옮겨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개인이 추구할 수 있는 자유와 구속은 무엇으로부터 기인한 것일까. 육체는 자동차라는 좁은 공간(자유)에 갇혀 있지만, 정신은 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접속'되어 있는 현대인의 분열적 상황. 이는 더 이상 분화될 수 없는 자유가 대량 생산-대량 소비의 구조 안에서 표출된 뒤틀린 모습이 아닐까.


 자동차에 대한 인류의 열정은 20세기 초반 이후 전 세계적으로 여전히 식지 않고 있다. 자동차는 단순히 편리한 교통수단이나 사회적 지위와 정체성을 나타내는 수단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자유'라는 이상을 상징하는 존재였다. _ <생산, 파괴, 접속 4>, p.408


 이로써 전 18권에 걸친 케임브리지 세계사의 내용은 마무리된다. 이후의 역사는 이제 읽는 부분이 아니라, 우리가 써 내려가야 할  현재이며 미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치 밈과 괴담들은 전부터 존재했지만, 지금만큼 널리 그리고 많이 퍼진 적은 없다. 도대체 언제부터였을까? 학생들은 지역과 학년을 불문하고 ‘계엄 직후‘라고 증언했다. - P9

고인이 된 전직 대통령이나 현직 대통령을 우습게 만드는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가, 기성세대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일종의 장난감으로 기능하는 셈이다.
그러나 재미로 소비한 콘텐츠들이 항상 ‘재미‘ 수준에서 끝나지만은 않았다. 이는 정치에 대한 학생들의 상황 인식을무의식중에 변질시키고 있었다.  - P11

그래서 지금은 희망이 보이나 극우적 생각이 고착화된 ‘어른 극우‘
보다는 ‘청소년 극우‘와 대화하는 것이 더쉽다. 아직 생각이 굳지 않았기도 하고, 1분 내외의 숏폼 영상으로 세워진 논리는 모래성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수백, 수천 개의 모래성을 무너뜨리다 보면 ‘우리 사회는 아직 망하지 않았다‘는 믿음도 퍼질 거다. 그렇게 예상하는 우리는 희망을 본다. - P15

재판부는 내란죄가 일종의 집합범이므로, 내부자들 사이에서는 우두머리, 지휘자, 중요임무종사자 등으로 처벌해야한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내란이 실제로 벌어졌기 때문에 피고인 한덕수는내란의 중요임무종사자라는 것이다.  - P17

한덕수 선고로 시작된 ‘내란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은 2월19일 윤석열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선고에서 최종적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전망이다. 한덕수 재판에서는 윤석열이 벌인 비상계엄과 그 후속 조치가 위헌·위법한 폭동이며 내란이라는 점을 명확히 판시했는데, 만약 윤석열 본인의 재판 판결에서 12.3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보지 않을 경우 큰 혼란이 뒤따를수 있다. 사법부의 판단에 일관성이 있을지, 2월19일 최종 판단해 볼 수 있다. - P18

지금 NSS에서는 ‘서반구 중심파‘와 ‘중국 견제파‘가 둘 다 강조되고 있는데, 이러면 타이완 문제를 어떻게 할지에 대한 답이 하나로 모아지지가않는다. ‘서반구 중심파‘와 ‘중국 견제파사이의 경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하느냐에 타이완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도 할 수 있다. - P39

그것은 일종의 조직화된 무능(organized  incompetence)이 아니었을까. 과거 한국의 계엄 상황을 기억하는 세대는 이번 계엄 시도가 상대적으로 무능하고 나이브하며 우스꽝스럽다는 느낌을 갖는다. 그것은 어떤 가공할 정도로 유능한 악의 발현이라기보다 한심할 정도의 무능이 삐져나온 것처럼 보였다.  - 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생산, 파괴, 접속 3 - 가족의 변화와 문화의 네트워크 케임브리지 세계사 17
존 로버트 맥닐.케네스 포메란츠 엮음, 류충기 옮김 / 소와당 / 202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늘날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지만, 1750년만 하더라도 도시 인구는 전체 인구의 5퍼센트에 미치지 못했다....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진 도시화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일하는 방식과 생활방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이제 우리는 도시인이 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87


 독일의 <코젤렉 개념어 사전>은 한 단어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달라지는 의미를 담은 책이다. 자유, 평등, 노동 등 수많은 개념어들의 변천 과정은 저마다 다르지만, 하나의 거대한 분기점을 피해간 단어들은 없었다. '근대화'라는 이름의 변화. 근대화가 만들어낸 구조적 단절은 전통 사회와 근대 사회를 구분 지었으며, 공간적으로 다른 지역에서 사는 이들이 느끼는 이질감 이상의 느낌을 선조와 후손들에게 안겨주었다. 이런 면에서 '근대화'라는 커다란 변화의 에너지가 역사에 큰 흔적을 남겼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지만, 근대화라는 변화 자체만으로 오늘날 현대 사회가 이룩되었는가? 한 걸음 더 나아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은 근대화에 있다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생산, 파괴, 접속 3>의 내용은 이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안겨준다.


 민족주의(nationalism)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가 근대의 산물인 것만은 분명하다. 양자는 모두 전근대에 존재하던 전통과 정체성이 근대를 거치면서 변화하여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민족주의와 종교는 모두 전근대 전통의 연속선상에 있으며, 때로는 매우 심오한 역사를 내포하고 있다. 무엇보다 민족성(ethnicity), 언어, 종교 등에서 나타나는 원초적 민족주의(proto-nationalism)는 근대 민족주의의 바탕이 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310


 새로운 사회질서가 필요했던 상황에서 지식인들은 고전 문헌에서 유용한 아이디어를 얻고자 했다. 도시국가의 전쟁이 끊이지 않았던 고대 그리스와, 민족국가의 경쟁이 치열했던 당시의 서구 사회가, 그들이 보기에는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 같았다. 고대 사회에서 운동 경기가 외교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보고, 근대 세계에서도 운동 경기를 통해 비슷한 외교적 기능을 재현해 보려는 노력이 시작되었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421


 근대화를 통한 커다란 변화는 사회 저변에 걸쳐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인류는 구체적인 생활 면에서는 도시화라는 극단적인 변화를 선택한 반면, 사상적인 면으로는 전통의 권위에 기대어 이를 변용시켜 과거와의 연결을 선택했다. 공동체적 생활에서 벗어나 개인 생활을 추구하되, 정신적으로는 종교와 전통의 권위를 따르는 부조화가 사회문화 전반에 충돌하면서 생겨난 거대한 상흔, 그것이 현대 사회의 비극, 문제점이 아닐까. 이러한 충돌과 공존이 유지되는 제도가 '가족(家族)'이다. 시대에 따라 변화하면서도 큰 틀은 유지하고 있는 전근대와 근대의 긴장된 공존이 일어나는 곳. 그곳에서 현대 사회 문제의 뿌리가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 아닐까.


 가족 내부의 성 역할, 자녀 출산과 양육의 목적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했다. 특히 도시화를 비롯한 경제 구조 변화는 가족의 변화에 중요한 원인이었다. 제국주의와 세계화 역시 변화를 가속화한 요인이었다. 동시에 가족은 여전히 개인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전통적인 문화 정체성의 일부로 유지되는 면도 강하다. _ <생산, 파괴, 접속 3>, p.127


 <생산, 파괴, 접속 3>은 생활사이면서 미시사적인 면이 많이 보이는 '가족의 변화와 문화의 네트워크'를 다룬다. 서로 다른 주제의 소논문들을 가로지르며 우리가 목격하는 것은, 결국 단절된 도시와 지속되는 가족, 그리고 변이된 전통이 한데 엉켜 만들어낸 현대인의 초상이다. 이번 독서에서는 이 복잡한 얽힘 속에 담긴 거시사의 도도한 흐름을 읽어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여정이라 자평하며 글을 마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