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추석 연휴 동안 두 편의 영화를 봤습니다. <남한산성>과 <아이 캔 스피크>. 흥행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이들 영화를 보고 난 후 두 영화를 관통하는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정리해봅니다. 다만, 제가 영화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촬영기법, 영화의 내적 의미 등에 대해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되기에, 영화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연관된 주제를 다룬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페이퍼를 적어봤습니다.


1. <남한산성 南漢山城> : 삶과 죽음의 길


[사진] 영화 남한산성(출처 : CJ엔터테인먼트)

 

 영화 <남한산성>은 김 훈 작가의 소설 <남한산성>을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최근 CG의 발달로 영화 상에서 대규모 전투신이 어렵지 않게 구현되고 있는 많은 영화를 우리는 접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속에서 치열한 논쟁(論爭)이 주로 이루어지는 영화 <남한산성>은 자칫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이는 원작에 충실하려는 노력으로도 여겨지기도 합니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소설 <남한산성>에서도 주전파(主戰派)와 주화파(主和派)의 대립이 작품 전반에 흐르고 있습니다.


 '청(淸)의 무력은 대륙을 비워 놓고 반도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 요동을 내주기는 했으나 북경 언저리로 밀려난 청의 빈자리를 압박하면, 청은 남한산성을 포기하고 군사를 거두어 돌아갈 수도 있을 것이었다. 청이 돌아가면 조정은 청의 퇴로를 따라서 싸우지 않고 도성으로 복귀할 것이고, 그런 식으로 환도가 이루어진다면 성 안에서 투항이나 화친을 발설하던 자들은 사직의 이름으로 휘두르는 임금의 칼에 죽어야할 것이었다. 그리고 성 안이 스스로 기진하여 문을 열고 나가는 날, 끝까지 싸우기를 발설했던 자들은 용골대의 칼 아래서 살아남지 못할 것이었다.(p95)'


   우리는 소설 <남한산성>을 통해서 예조판서 김상헌과 이조판서 최명길의 논쟁은 국가적 차원만의 논의가 아니라, 각각 자신의 생명과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치열한 다툼을 벌이게 됩니다. 이들의 전쟁에서 '총'과 '칼'의 자리를 '말'과 '글'이 대신하고 있음은 주인공 김상헌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사물은 몸에 깃들고 마음은 일에 깃든다. 마음은 몸의 터전이고 몸은 마음의 집이니, 일과 몸과 마음은 더불어 사귀며 다투지 않는다... 글은 멀고, 몸은 가깝구나... 몸이 성 안에 갇혀 있으니 글로써 성문을 열고 나가야 할진대, 창검이 어찌 글과 다르며, 몸이 어찌 창검과 다르겠느냐.(p122)'


 그리고, 남한산성 47일의 시간이 경과하면서, 김상헌과 최명길의 논쟁의 끝은 삶과 죽음의 길의 선택으로 치닫게 됩니다. 각자 자신의 길이 '생명(生命)의 길'임을 주장하면서, 이들의 대립은 극으로 치닫습니다.  그렇지만, 소설<남한산성>의 결말은 이들의 대립과는 무관하게 우리가 아는 대로 삼전도의 치욕으로 이어지고, 조선은 결국 청에게 굴복하게 됩니다.


  '김상헌의 목소리에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 전하, 죽음이 가볍지 어찌 삶이 가볍겠습니까. 명길이 말하는 생이란 곧 죽음입니다. 명길은 삶과 죽음을 구분하지 못하고, 삶을 죽음과 뒤섞어 삶을 욕되게 하는 자이옵니다. 신은 가벼운 죽음으로 무거운 삶을 지탱하려 하옵니다. 최명길의 목소리에도 울음기가 섞여 들었다.  - 전하, 죽음은 가볍지 않사옵니다. 만백성과 더불어 죽음을 각오하지 마소서. 죽음으로써 삶을 지탱하지는 못할 것이옵니다.(p143)'


  '길은 사람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며, 마음의 길을 마음 밖으로 밀어내어 세상의 길과 맞닿게 해서 마음과 세상이 한 줄로 이어지는 자기에서 삶의 길은 열릴 것이므로, 군사를 앞세워 치고 나가는 출성과 마음을 앞세워 나가는 출성이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먼 산줄기를 바라보면서 김상헌은 생각했다.(p199)'


[사진] 삼전도비(三田渡碑) ( 출처 : 두피디아)


 어느 누구의 길이 바른 길이었는지는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한 것은 최대 피해자는 백성이라는 사실입니다. 병자호란 이후 약 50여만명의 백성이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포로들의 귀환 문제는 이후 조선에서 중요한 사회 문제로 부각됩니다. 국가적으로는 소현세자의 비극으로부터, 가정으로는 귀향한 부인과의 이혼 문제에 이르기까지. 병자호란의 비극 속에서 우리는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수뇌부/ 권력층이지만, 그 비극을 직접 당하는 것은 일반 백성, 국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아이 캔 스피크>는 전쟁의 피해 속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한 명의 모습을 주제로 합니다. 위안부 할머니의 문제를 다룬 영화 <아이 캔 스피크>를 보면서 우리는 영화가 "I can speak English"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I can speak Truth... I have experienced "Truth''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소설 <한 명>을 통해서 그 truth에 대해 보다 깊이 알 수 있습니다.


[사진]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출처 : 위키트리)


2. <한 명> : I can speak Truth... I have experienced... "Truth"

 

'"희들이 뒷바라지를 안 하면 군인들이 전쟁을 어떻게 하겠느냐?" 하하가 정색을 했다. "군인들 뒷바라지하는 데인 줄 알았으면 내가 절대로 안 따라왔을 것이오."(p37)'


  '신(神)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으면서, 그녀는 신을 느낄 때가 있다. 간유리에 새벽빛이 번질 때, 풀숲에서 참새들이  떼 지어 날아오를 때, 다디단 복숭아를 베어 물 때... 신을 느낄 때를 헤아려보던 그녀는 자신이 신을 느낄 때가 많다는 걸 깨닫고 놀란다. 생전 처음 도라지꽃을 보았을 때도 그녀는 신을 느꼈다... 신이 있다고 말하는 이들보다 자신이 어쩌면 더 신을 두려워하는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든다.(p56)


  '그녀는 울고 싶은데 울음이 안 나온다. 아귀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목을 늘어뜨려도 눈물 한 방울 안 난다. 자매들이 죽었을 때도, 오빠가 죽었을 때도 그녀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까, 친인척들은 흉을 보았다. 독해서 시집도 안 가고 평생 혼자 살더니만 울지도 않는다고. 그녀는 너무 지독하게 살아서 눈꺼풀을 쥐어뜯어도 눈물이 안 나는가 보다 했다. 평생에 걸쳐서 두고두고 울 걸 소싯적에 다 울어버려서 그런가 보다고.(p36)


  소설 <한 숨> 속에서을 통해서 극한 삶의 끝에 놓여진 개인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적나라하게 말하지는 않지만, 무덤덤하게 진술된 내용 속에서 그 참담함이 오히려 더 가슴깊이 다가옴을 느낍다.  


  '2만 명이었다고 들었다. 20만 명이 갔다가 해방 후 돌아온 숫자가 고작 2만 명에 불과하다고. 그녀는 자신이 20만 명 중 한 명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 2만 명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 놀랐다. 20만 명 중 2만 명이면 10분의 1이었다. 말하자면 열 명 중 한 명...(p125)'


  '아버지, 어머니 저는 만주에 와 있어요. 이곳에서는 아침부터 군인들이 줄을 서서 들어와요. 저는 곧 죽을 거예요.(p148)'


  '백지에 쓴 문장을 소리 내 읽던 그녀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말을 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엄마가, 엄마가 가장 갖고 싶어.(p153)'


 10명 중 1명만 생존해 온 현실 속에서 이들이 원한 것은 삶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말하는 삶의 의미는 <남한산성>에서 말하는 언어로서의 '삶'과는 또 다르게 다가옵니다. 뜨거운 검은 피가 쏟아질듯한 느낌의 '삶'을 <한 명>에서 받다보면, 과연 어떤 명분이 이분들의 고통을 막는 것보다 중요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이분들의 경험을 우리의 문제로 만드는 것은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대한 '공감(共感)'이라 생각합니다. 공감을 느끼게하는 계기는 개인적으로 차이가 있겠지만, 지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은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공감할 수 있는 큰 사건이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동의할 것입니다.


3. <금요일에 돌아오렴> : 공감(共感)


 자신의 가족이 위안부로 끌려가는 참상을 겪은 부모의 심정과 세월호 사건을 통해 자식을 잃은 부모의 심정의 참담함은 동일할 것이라 미루어 생각해 봅니다.


'승희 보내고 삶의 완전히 바뀌었어요. 인생에 즐거운 것도 없고, 삶에 의욕도 없고, 사람들도 싫고. 사람들은 위로라고 하는데 지금은 어떤 말을 해도 안 들려요. 억울하고 분한 마음밖에 없는데 뭐가 들리겠어요.(p147)'


그리고, 세월호 유가족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 일이 '우리에게 있을 수 있었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창 슬픔에 젖어 있던 무렵에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딸과 아들을 잃은 부모를 만났어요. 그분이 고맙게도 위로를 해주고 가시더라구요. "아, 그 당시에 나는 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는 남의 얘기였고 나와 먼 얘기였는데 이렇게 내가 위로를 받는구나... 다른 사람의 아픔을 껴안는다는 거 그전에는 전혀 생각 못했어요. 내가 경험하지 않았다고 모른 체하고 살았던 게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p623)'


 의도하지 않게 추석 연휴 기간 본 두 편의 영화를 통해서 1636년 병자호란에서 1940년대 태평양 전쟁,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의 비극을 생각해봅니다. 가슴아픈 일을 우리가 잊지 않고 다시 생각하는 것은 반복되지 않기 위함일 것입니다. 연휴 기간에 본 두 편의 영화와 세 권의 책 속에서 전쟁 위기론이 부각되고 있는 오늘을 바라보며, 우리가 가야할 길을 생각해 봅니다. 그 어떤 거창한 이념이나 사상도 어린 아이의 웃음이나, 들판의 들꽃보다 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글을 마치면서 떠오르는 노래를 마지막으로 이 번 페이퍼를 마칩니다.


[사진] 집에 있는 소녀 상 뒷자리에 놓여진 세월호 리본


  '하나의 시간은 균질한 시간이 아니다.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시간들에 하나의 수식어를 붙인다면, 슬픔이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이 더 맞다. 집 밖을 나갈 수도, 집 안에만 있을 수도 없는 시간, 아이의 물건을 태울 수도 그대로 둘 수도 없는 시간, 밥을 먹을 수도 안 먹을 수도 없는 시간.(p649)'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10-15 17: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사랑의 송가 좋아하는데, 오늘은 조금은 쓸쓸한 기분이 들어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15 19:28   좋아요 1 | URL
^^: 일요일 저녁이라 그럴까요? 서니데이님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기운차게 월요일 맞이하자구요ㅜㅜ.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 2017-10-15 22: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공감과 연대함에 대해 끊임없이 묻고 생각하던 시간을 기억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10-15 22:16   좋아요 2 | URL
^^: 그렇군요... 얼마후면 박근혜 퇴진을 위한 촛불집회가 시작된지 1년이 되어가네요. 역사 속에서 이 일은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해집니다...

2017-10-18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8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9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9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 나남신서 1190
막스 베버 지음, 전성우 옮김 / 나남출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막스 베버(Maximilian Carl Emil Weber, 1864 ~ 1920)는 <직업으로서의 정치 politik als Beruf>를 통해 정치가(政治家)에게 필요한 자질에 대해 말하고 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어떤 구조로 되어 있을까. 글의 서두에서 주로  '직업 정치가'의 등장배경과 근대적 정당의 형성과정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는 직업 정치가의 자질이 무엇인가를 도출한다. 그리고, 뒤이어  '윤리(倫理)' 문제가 제기된다. 


'어떤 종류의 인물이라야 감히 자기 손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움직여도 좋은가라는 문제는 윤리적 문제이기 때문입니다.(p105)'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의 저자답게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의 자질과 윤리의 문제를 결합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가의 모습을 끌어내고 있다. 이번 리뷰를 통해서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나타난 정치인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그림] 막스 베버( 출처 : 위키백과)


1. 직업 정치가의 자질


 막스 베버는 정치가에게 중요한 세 가지 자질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으로 지목하고 있다. 그렇지만, 과연 이 세 가지 자질이 정치인에게만 필요한 덕목일까?


 '정치가에게는 주로 아래 세 가지 자질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열정, 책임감 그리고 균형감각이 그것입니다. 여기서 열정이란 하나의 대의 및 이 대의를 명령하는 주체인 신, 또는 데몬에 대한 열정적 헌신을 의미하며, 그런 이상 이 열정은 객관적 태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열정은 헌신과 동시에 바로 이 대의에 대한 우리의 책임의식을 일깨우는 열정이라야 하며...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균형감각입니다.(p106)'


  사실, 이상의 세 자질은 모든 직업군에 있어 공통적으로 중요한 자질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정치가가 다른 직업에 있는 이들과 차이가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 차이는 합법적인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권력(權力)의 추구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다만, 이 경우에도 개인의 이익을 목적으로 하거나,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할 경우에는 문제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가의 신념(信念) 문제가 제기되고, 이와 연계되어 정치가의 윤리 문제 또한 언급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권력추구가 <대의>에 대한 전적인 헌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성을 결여한 채 순전히 개인적 자기도취를 목표로 하는 순간, 그때부터 정치가-직업의 신성한 정신에 대한 배반이 시작됩니다.(p108)... 비록 권력은 불가피한 수단이고 권력지향은 모든 정치행위의 추동력 가운데 하나이지만, 순전히 권력 그 자체를 숭배하는 모든 행위는 정치력을 왜곡시키는 가장 해로운 행태입니다.(p109)'


 '정치가의 권력지향과 권력사용의 목적인 이 대의가 어떤 내용의 것이어야 하는지라는 것은 신념의 문제입니다... 그는 하나의 <이념>에 헌신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며 아니면 이념에 헌신한다는 이런 생각 자체를 원칙적으로 거부하면서 일상생활의 외적 목표에 헌신하고자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이든 하나의 신념이 있어야만 합니다.(p111)'


2. <절대윤리>와 <정치>


 절대윤리는 크게 '신념윤리(올바른 행동을 하고 결과는 신에게 맡기는 원칙)'와 '책임윤리(우리 행동의 예견가능한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한다는 원칙)'으로 나뉠 수 있다. 


 '<결과>를 중시하지 않는 윤리, 그것이 곧 절대윤리입니다.(p120). 윤리적으로 지향된 모든 행위는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서로 전혀 다른, 화합할 수 없이 대립적인 원칙 가운데 어느 하나에 따라 수행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 하나는 <신념윤리적> 원칙이고 다른 하나는 <책임윤리적> 원칙입니다.(p121)'


 다만, 현실에서 '선(善)-악(惡)'의 문제는 '목적-수단'의 문제와 결합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현실에 대한 냉철한 판단이 필요하다. 여기에 정치인 자신 뿐 아니라 자신의 추종자들의 행동 역시 정치가의 성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정치인은 이러한 점을 잘 고려하여 처신을 해야하 것이다. 정치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는 것이다.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피해갈 수 없는 사실은, <선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우리는 수많은 경우에 도덕적으로 의심스럽거나 위태로운 수단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정적 부작용의 가능성 또는 개연성을 감수할 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윤리적으로 선한 목적이 윤리적으로 위태로운 수단과 부작용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는 세계의 그 어떤 윤리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수단은 (폭력적) 강제력입니다.(p123)'


 '정치가의 행위에서는, 선한 것에서는 선한 것만이, 악한 것에서는 악한 것만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정반대일 경우가 흔하다는 사실도 매우 잘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자는, 정치적으로는 정말 어린아이에 불과합니다.(p127)'


 '지도자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추종자들 -그가 필요로 하는 홍위병, 밀정들, 선동가들 등-에게 상기한 보상들이 지속적으로 보장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따라서 그가 이러한 조건하에서의 활동을 통해 실제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지는 그의 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추종자들의 행위에 깔린, 윤리적으로 대부분 저열한 동기들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p132)'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 특히 정치를 직업으로 삼겠다는 사람이면 누구나 상기한 윤리적 역설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하고, 또한 이 역설들의 중압에 눌려서 그 자신이 변질된다면 그것은 자신의 책임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어야 합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는 모든 폭력성에 잠복해 있는 악마적 힘들과 관계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p135)'


3. 정치인 :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는 자


 결론적으로, 정치인은 열정, 책임감, 균형감각을 기본 자질로 갖춘 이로서 자신의 신념에 따라 정치적 행위를 하되, 공공의 이익에 부합할 수 있도록 헌신할 수 있는 자(者)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정치인의 신념은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를 조화시키는 윤리적인 신념이 되어야 한다. 이러한 덕목을 갖췄을 때 그는 정치인으로서의 소명(vacation)을 가지고 있다고 베버는 주장한다.


 '정치는 확실히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만, 머리로만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점에서 신념윤리가들의 입장은 전적으로 옳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신념윤리가로 행동하는 것이 옳은 지, 아니면 책임윤리가로서 행동하는 것이 옳은지 여부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우리에게 지시할 수 없습니다.(p138)'


 '이렇게 볼 때 신념윤리와 책임윤리는 서로 절대적 대립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있으며 이 두 윤리가 함께 비로소 참다운 인간,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본질을 이루는 것입니다.(p139)'


 <직업으로서의 정치>는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직후 이루어진 강연 내용을 기초로 저술된 책이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막스 베버는 근대 정당 정치의 역사를 통해 정치인의 자질과 신념의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패전(敗戰) 이후의 극심한 혼란 상에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방향성에 대한 응답을 우리는 막스 베버의 글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 당대 석학(碩學)의 조언은 전후 독일 정치에 도움이 되었을까? 


 '정치란 열정과 균형감각 둘 다를 가지고 단단한 널빤지를 강하게 그리고 서서히 뚫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지도자도 영웅도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모든 희망의 좌절조차 견디어낼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한 의지를 갖추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오늘 아직 가능한 것마저도 달성해내지 못할 것입니다. 자신이 제공하려는 것에 비해 세상이 너무나 어리석고 비열하게 보일지라도 이에 좌절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 사람, 그리고 그 어떤 상황에 대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고 말할 능력이 있는 사람, 이런 사람만이 정치에 대한 <소명>을 가지고 있습니다.(p142)'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공감이 가는 말이지만, 전후(戰後) 독일의 선택을 살펴본다면, '윤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없이 '단단한 의지'와 '그럼에도 불구하고'에 대한 일방적인 추종과 선택이  '나치 독일'이라는 비극을 낳게 한 것은 아닐런지.. 그런 관점에서 정치인의 세 가지 자질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균형감각'이 아닐까 생각을 정리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독일 제3제국(출처 : JTBC)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0-12 1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2 13: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10-13 23: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날씨가 갑자기 기온이 내려가서 추운 가을이 되었어요.
아침엔 더 춥고요.
겨울호랑이님, 감기 조심하시고, 편안한 금요일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14 08:09   좋아요 1 | URL
^^: 날이 이제는 정말 춥네요. 추석 연휴에는 반팔옷을 입었었는데, 마치 옛날 같네요. 서니데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AgalmA 2017-10-15 00: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크아... 히틀러 찬양 다큐 한 장면인지 사진인지 사진 구도가 예술이네요.
<공산당 선언> 서설 한 대목이 생각나는군요. 마르크스-엥겔스가 청년헤겔학파 인본주의의 교화적, 준종교적 성격 비판하다가 자신들이 추구하는 인본주의와 사회주의와 윤리 문제도 거칠게 재단하게 된 딜레마가.... 균형감각 맞추기 쉽지 않죠^^;;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모순 드러나면 화들짝ㅎㅎ 늦게라도 알면 다행인데 우기다가 균형이 안드로메다 가는 일이......

겨울호랑이 2017-10-15 09:18   좋아요 1 | URL
^^: Agla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종교 등 형이상학적인 것을 비판하면서 유물론을 주장했던 ‘공산주의‘가 또 하나의 종교가 된 딜레마는 참 그렇습니다. 어떻게 보면 마르크스-엥겔스 역시 현상을 지칭하는 단순 명사를 하나의 ‘실체‘로 오인해서 이런 문제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실체 없는 허상‘을 실체처럼 비판하다보니, 정작 자신도 ‘허상‘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거칠게나마 20세기 이데올로기 문제는 대개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한가위 연휴 잘 보내고 계신지요?^^: 긴 연휴를 맞아 여행을 즐기시는 분들도 계시고, 한숨돌리고 휴식을 취하시는 이웃분들도 계시겠네요. 저희도 본가에서 돌아왔습니다.

명절을 맞이하면 저희 집에서 일은 대체로 3가지로 나뉠 수 있을 것 같아요.

1) 명절 음식 장만 : 고기, 나물, 전 등
2) 아이들과 놀아주기 : 연의 돌보기
3) 기타 집안일 : 빨래, 청소, 장보기 등등

위의 3가지 사건은 동시에 발생하지는 않습니다. 1)과 2), 2)와 3)은 붙어다니지만, 1)과 3)은 시간적으로 겹치지는 않습니다.

저희 집에서 대체로 명절 음식은 가족들이 인근에 사는 관계로 나누어 하고 있습니다. 나물은 동생네 집에서, 전은 저희 집에서 하는 식이지요. 그래서, 아내가 1)을 하는 동안, 저는 연의와 쿼드릴라를 했었지요.

이제 집으로 돌아왔다는 것은 제가 3)을 할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빨래는 세탁기가, 청소는 청소기가 하겠지만요. 아직 AI가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관리감독을 해야겠지요 ㅋ오후에는 나들이가 있어 서둘러야겠네요^^

이제 연휴도 막바지로 갑니다. 아침에는 맑았는데, 잠시 밖을 내다보니 흐려졌네요. 이웃분들 모두 남은 연휴 즐겁게 보내세요^^:



댓글(8) 먼댓글(0) 좋아요(5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2017-10-06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6 0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후애(厚愛) 2017-10-08 21: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께서도 추석 연휴 잘 보내셨지요?
남은 연휴 잘 마무리 하시고 편안한 밤 되세요.^^
따님이 예쁘게 많이 자랐네요.
예뻐요!!!^^

겨울호랑이 2017-10-08 23:26   좋아요 1 | URL
후애님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참 빨리 자라네요. 즐거운 연휴 마지막 날 되세요^^:

서니데이 2017-10-08 23:0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프로필의 연의는 초등학생 같네요.
겨울호랑이님 연휴가 내일 하루 남았어요. 편안하고 좋은 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8 23:27   좋아요 2 | URL
^^: 실제의 연의 하는 행동을 보면... ㅜㅜ 그러면서 커가는 거겠지요. 서니데이님 편한 밤 되세요^^!

2017-10-10 0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10 0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는, 오늘도 2 : 설명하다 나는 오늘도 2
미쉘 퓌에슈 지음, 캉탱 뒤킷 그림, 심영아 옮김 / 이봄 / 2013년 11월
평점 :
절판


'설명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가 있는 곳까지 찾아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일이다.(p5)'


<설명하다 Expliquer>는 '설명하다'라는 말의 철학적 의미를 찾아가는 책입니다. 일상에서 많이 하는 행동의 의미중에서 '설명하다'의 의미를 본문에서 쫓아가고 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얼마전 연의와 함께 하던 대화 중 일부를 통해 '설명하다'의 의미를 재발견해 보려 합니다. 대화 내용은 '왜 저녁식사 후 양치질을 하고 잠자리에 들어야 하는가?' 였습니다.


 '설명한다는 것은 펼쳐/보이는/것이다.(p14)... 펼쳐야 하는 주름이 많을 경우에는 설명이 길어질 수도 있다(p19)'


 사실, 아이들에게 양치질의 중요성을 실감나게 하기는 어렵습니다. 누구나 잠자기 전 초콜렛이나 사탕을 먹은 후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 단맛과 다시 일어나는 귀찮음의 유혹을 뿌리치고 일어나 양치질을 하기란 쉽지 않지요. 어른이 된 지금도 쉽지 않은데, 아이들은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아이들의 행동은 쉽게 변화되지 않기에, 어린 시절 양치질에 대한 설명(또는 잔소리)는 길어지게 됩니다. 


 '설명의 최소 조건은 바로 언어(言語)다(p27)... 누군가에게 무엇을 설명하는 일은 보통 노력이 필요하며 때로는 시간도 맣이 들고 힘들다. 왜 그런 수고를 해야 할까?... 다른 이에게 설명하지 않는 사회는 민주사회가 될 수 없다.(p35).'


  매일 되풀이되는 잔소리는 말하는 부모에게도, 듣는 아이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의 건강을 위해(그리고, 아이 입냄새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양치질의 중요성을 설명합니다. 물론, 말로 해야겠지요. 말로 이루어지지 않고 강압으로 이루어진다면, 결코 습관으로 자리잡지 못할 것입니다. '양치질=트라우마'가 결합된다면 그보다 더 곤란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설명이란 목적이 있는 행동이다(p62)'


 이 경우 설명은 '아이의 건강한 생활 습관 형성'이 되겠지요. 우리 잔소리의 지향점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설명하려면(똑같은 말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말해야 한다. 사실 설명할 때 우리는 동일한 것, 상대가 이해하지 못하는 점에 대해 다르게 말하려고 노력한다.(p43).. 설명한다는 것은 동일한 대상을 여러 각도에서 보여주는 것이다. 어느 순간 상대가 이미 알고 있는 대상을 알아 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p45)'


 매일 같이 '양치질 해라'라는 이야기를 하면 더이상 새로운 자극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보다 새로운 자극이 필요합니다. 가령, '제365회 번쩍번쩍 빛나는 이 경진대회' 같은. 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 칫솔/치약 제공도 새로운 동기 부여 유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여러 각도에서 접근해 간다면, 생활 습관으로 자리잡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설명한다는 것은 진정한 상호 의사소통 행위이다.(p52)... 이해하고자 하지 않는다면, 이해하지 못한다.(p54)'


 그렇지만, 어느 정도 가면 이러한 행위도 시들해질 수 있습니다. 왜 양치질을 해야 하는가? 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할 수 없다면 아이는 결코 이해하고자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럴 때는 치과 치료를 받은 경험자의 모습(아빠 충치 치료 자리)을 보여줍니다. 


 "응, 이쪽 금니 보이지, 왼쪽 윗니 브릿지것도, 오른쪽 아래에는 임플란트 한거야.."


 사실, 제가 거의 모든 치과 치료를 다 받았기에(심지어는 잇몸이 두꺼워 나지 못한 이를 나게 하려고 잇몸을 째기도 했었습니다. ㅜㅜ) 거의 모든 이(齒)마다 제각기 사연을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이제는 이 사연에 의미를 부여할 차례입니다.


 "연의야, 양치질 하지 않으면, 아빠처럼 충치 생긴다. 그럼, 아빠랑 다음에 치과 같이 가야해."


 이제 연의는 이해할 충분한 이유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의식, 다시 말해 끊임없이 사물의 표상들을 만들어내는 정신세계이다. 우리의 의식은 끊임없이 설명할 수 있는 능력을 향상시켜 가는데, 때로 이런 과정을 일컬어 경험이라 한다. 경험이란 아기 때부터 시작되어 결코 멈추지 않고 진행되는 과정이다.(p80)'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치질이 연의에게 자연스럽게 습관화되기까지는 시간(time)이 필요할 것입니다. 시간 속에서 경험을 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겠지요. 우리는 아이들의 그 과정을 오랜동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설명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가 있는 곳까지 찾아가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일이다.(p59)... 다른 사람의 입장에 서서 그가 나중에 쉽게 찾을 수 있는 길로 지나가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만 한다면, 설명을 잘한 것이다.(p69)'


 사실 '설명하다'는 우리 삶속에서 크고 작은 일과 연계되어 지속적으로 이루어 집니다. 자신의 입장이 아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그에게 자신의 입장을 펼쳐 보이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추석 전날이네요. 저도 오늘 본가(本家)로 넘어갈 예정입니다. 보통 가족들이 모이는 자리는 즐거운 자리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때로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심한 경우 가족간 분쟁으로 이어지기도 하지요.



[사진] 명절기간 가정폭력 사고(출처 : 프라임 경제)


 대부분 경우가 각자의 입장에서 자신의 입장과 의견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남의 설명을 들으려 하지 않는데서 비롯되는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긴 연휴기간 아직 중반입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연휴 되세요^^:


댓글(17) 먼댓글(0) 좋아요(5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0-03 09: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1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14: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15: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4 18: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4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4 2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4 21: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5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5 18: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5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0-07 21: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설명한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가 있는 곳까지 찾아서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는 일이다‘

설명하다.. 에 대해서 이렇게 아름다운 정의를
본 적이 없어요

몇일 전에 본 글인데, 계속 마음에 남네요..

겨울호랑이 2017-10-07 21:36   좋아요 2 | URL
^^: 나와같다면님께서는 배려심이 깊으시기에 누구보다도 설명을 잘 하실 듯합니다^^: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시오노 나나미(?野七生, 1937 ~ )가 저술한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1997년 처음 <로마인 이야기>를 접한 후 15권이 나올 때까지 매년 읽은 후 별도로 정리하지 않았던 이 책을 최근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의 <몸젠의 로마사>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 ~ 1794)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며,  로마사를 돌아보던 중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을 통해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와 그녀의 역사관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그는 운명에 의해 트로이야의 해변에서 망명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라비니움의 해안에 닿았으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하늘의 신들의 뜻에 따라 숱한 시달림을 당했으니 잔혹한 유노가 노여움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서도 많은 고통을 당했으나 마침내 도시를 세우고 라티움 땅으로 신들을 모셨으니, 그에게서 라티니족과 알바의 선조들과 높다란 로마의 성벽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아이네이스>(제1권 1 ~ 7)


 <로마인 이야기> 제1권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E 70 ~ BC19) <아이네이스>처럼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공화정 초기까지의 로마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테베레강 유역에서 출발한 로마가 삼니움 족, 에트루리아 왕국, 켈트(갈리아)족의 침입을 극복하고 이탈리아 반도의 맹주로 자리잡는 과정을 시대순으로 그려낸다. 1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이 달랐는가?'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시오노 나나미는 이 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로마와 그리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1.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가? : 시오노 나나미


 저자가 생각하는 그리스인들은 모험심이 많으나, 단결심이 부족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단결심이 약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으로도 한계를 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그리스 폴리스인 아테네 민주정의 끝은 결국 참주정(독재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대(大) 그리스"라고 부른 이유는 이런 도시들이 급속히 발전하여 단기간에 풍요로운 번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미 높은 문명을 가진 그리스인이 정착했으니까, 모든 면에서 시행착오가 없다. 급속한 번영의 요인은 지나칠 만큼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p35)...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단결심과는 인연이 멀었다. "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도 서로 힘을 합하여 공동으로 싸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p38)"


 '아테네 정치체제의 변화는 그야말로 정치 교과 그 자체여서, 우리에게 정치체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큰 시사가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아테네도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나르키아 끝은 '티라니아', 즉 독재정치다. 무정부 상태의 혼란과 계속되는 권력투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질서만 회복된다면 그밖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스스로 실현할 능력이 없는 그들은 한 사람에게 질서 회복의 임무를 맡겼다.(p120)'


  또한,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해외 식민지의 경우에도 본국과 거의 단절된 채 발전했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대 그리스"의 그리스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본국의 그리스인과 정치적 유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스파르타인의 식민지로 출발한 타렌툼도 군사 국가인 스파르타와는 반대로 아테네적인 통상 국가로 번영해 왔다. 하지만 스파르타인이 건설한 타렌툼도, 코린트인이 건설한 시라쿠사도, 그리스 적인 성향은 그대로 물려받았다. 도시국가로 태어난 뒤에도 계속 도시 국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중심인 도시와 그 주변을 제외하고, 그 이상의 범위까지 세력을 넓히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p270)'


 이에 반해, 로마는 그리스에는 없는 두가지 장점이 있었다. 켈트(갈리아)인들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까지 빼앗겼던 로마는 철저하게 외부의 장점을 모방하고, 자신의 적대 세력까지 포섭하는 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을 발전시켜 결국 제국(Empire)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켈트족의 로마 점령은 엄청난 큰 사건이었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이웃 나라들도 로마인의 비참한 패배를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밑바닥에 떨어진 채 올라오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민족도 적지 않다. 로마인은 기원전 390년에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로마인답게 느리면서도 착실하게 다시 기어올라 온 것이다.(p190)...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입은 로마인에게 철퇴를 가했지만, 그 이후의 로마를 이야기하다 보면 미몽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의 행동을 추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p191)'


 '그리스 땅에서 폴리스(polis)가 스스로 무너진 과정도 로마인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테네든 스파르타든 폴리스적인 국가는 단명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로마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로마인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 보는 사람들이 모방의 민족이라고 경멸할 만큼 다른 민족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 민족이었다.(p196)'


 '로마는 앞으로도 과두정치, 즉 소수 지도체제로 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그리고 공화국 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 출신한테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깊은 통찰력에 뒷받침된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리키니우스 법"을 입안한 평민 출신의 리키니우스와 그 생각을 법제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진 귀족돌은 계급별 분배가 아니라 전면 개방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p203)'


 '신흥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새로 대두하는 또 다른 신흥세력을 편입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끌어안기를 영원히 계속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기원전 1세기까지 300년 동안은 이 "끌어안기" 방식이 유효하게 기능을 발휘했다.(p206)'


 결국,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성공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는 단결을 하지 못해 세계 제국으로 도약을 하지 못한 반면, 악조건 속에 있던 로마는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 시기 이미 세계 제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국을 지향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世界觀)이기도 하다. 제국을 꿈꾸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 속에서 과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를 부르짖던 일본제국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이 지점에서 우리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림] 욱일기를 앞세우고 제국을 꿈꾸는 일본(출처 : http://luckcrow.egloos.com/m/2416330)


 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이러한 세계관은 <로마인 이야기> 이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동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였던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흥망을 시오노 나나미는 이와 유사하게 해석하고 있다. 개인적인 제노바인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한 반면, 유기적인 조직을 갖추었던 베네치아는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번영할 수 있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은 한결같은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역사를 위와 같은 관점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 문제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가의 말을 빌려 답(答)을 해보자.


 2.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바라봐야 한다 : 몸젠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은 그의 저서 <몸젠의 로마사>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바라보는 역사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종교와 문학의 통일을 이룩한 희랍인들의 강력한 지적 발전은 그들의 진정한 정치적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국가적 통일에 필수적인 순수성, 유연성, 자기 헌신, 융합 가능성을 상실했던 것이다. 이제 유치한 역사관을 떼어버릴 때가 되었는데 희랍인의 장점을 로마인의 단점에, 로마인의 장점을 희랍인의 단점에 비추어 비교하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세계가 이룩한 두 위대한 국가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결점을 토대로 자신만의 탁월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두 국가가 서로 상이하게 성장한 가장 깊고 궁극적인 이유는, 성장의 시기 동안 라티움은 근동과 접촉하지 않고 희랍은 접촉했다는 것이다.(p252)'


 그리스와 로마를 서로 비교할 것이 아니라, 각각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몸젠의 관점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몸젠은 <몸젠의 로마사>에서 사실적인 기록과 언어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가 매우 강한 영향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으며, 각각의 문명 그 자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몸젠의 로마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룰 예정이다. (별로 기다리시는 분은 없겠지만, 그렇게 써둔다.)


  <몸젠의 로마사>를 읽은 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책 곳곳에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과 적품의 소설적 특징을 보다 깊이 느끼게 된다. 특히,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역사가가 아니니 이런 상상을 해본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던져놓고 다음으로 말을 돌리는 저자의 화법을 우리는 15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로마인 이야기>를 마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로 접근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를 시찰하기 위해 저 멀리 로마에서 찾아와, 1년 동안 머물렀던 세 명의 로마인이 본 것은 바로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였다.(p156)... 그러나 로마는 이 아테네를 모방하지 않았다. 강대한 아테네도 항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스파르타를 모방하지도 않았다. 쇠퇴기에 접어든 나라를 찾아가 거기에 나타난 결함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정기에 있는 나라를 시찰하고도 그 나라를 흉내내지 않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다.(p157)'


 '만약 이 시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천재와 정열을 동방이 아니라 서방에 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시기적으로는 충분히 성립된다. 만약에 알렉산드로스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면, 한창 융성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로마와 격돌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테고, 만약 그랬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p248)... 리비우스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알렉산드로스가 상대였다 해도,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p249)'


  이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 역사를 처음 접하거나, 역사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 용도로 읽기에 좋은 입문소설(入門小說)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상세 내용과 관련해서는 비판적으로 읽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E 100 ~ 44)를 다룬 제5권과 6권에 서 로마제국의 추종자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카이사르는 거의 군신(軍神) 수준으로 그려진다. 저자도 책에서 카이사르의 팬(fan)임을 공언할 정도이다. 전체 15권이 약 1,000여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한 인물에 2권을 할당하는 자체가 이미 이 시리즈의 편향성을 말해준다.) 그래서, 향후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는 버리고, <몸젠의 로마사>, <로마제국쇠망사>를 따르도록 하되, 참고자료 정도로 활용할 계획이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0-02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휴임에도 역시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17-10-02 22:28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밤늦게 놀 수 있어 좋네요 ㅋ

서니데이 2017-10-02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와 체사레 보르자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로마와 르네상스인 걸까요.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서 보다는 역사소설 가까운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2 22:31   좋아요 3 | URL
^^: 네 그런것 같네요. 사실 체사레도 라틴어 식으로 읽으면 ‘카이사르‘이니, 아무래도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빠‘인것 같아요.ㅋㅋ 서니데이님 즐거운 연휴 초반기 되세요^^:

2017-10-0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10-02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로 겨우 로마를 이해하고 있는 저로선, 몸젠과 기번의 저작물을 꼭 읽어봐야겠네요.
이거...언제 다 읽어요..ㅠ.ㅠ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0-02 23:41   좋아요 2 | URL
^^: 저랑 같이 가시지요 ㅋ 북프리쿠키님 너무 앞서가시면 반칙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10-02 23:42   좋아요 2 | URL
ㅋ 저야..호랑이님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집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17-10-02 23:46   좋아요 2 | URL
제가 알기로 몸젠은 「로마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문학에 관심 많으신 북프리쿠키님께서 보다 즐겁게 읽실거라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17-10-02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시리즈를 기를 쓰고 다
읽었었는데, 시오노 할매의 망언을
듣고 나서 기운이 다 쏙 빠져 버렸습니다.

극우인사의 세계관에 참 씁쓸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0-03 06:32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한창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시대를 다룬 다른 작품을 보니 작가의 편향성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균형잡힌 독서의 중요성도 느끼게 됩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수양 2017-10-03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글쿤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에 홀려 열심히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중에 이 글을 접하니 갑자기 손에 쥔 책에 경계심(!)이 생깁니다 ㅋ 몸젠의 로마사 리뷰도 기대되요!!! 겨울호랑이님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06:36   좋아요 0 | URL
^^: 수양님 감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로마인 이야기」는 소설가 특유의 경쾌한 진행이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장점만 받아들인다면, 「로마인 이야기」역시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수양님. 긴 한가위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독서괭 2017-10-03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중 한니발편과 카이사르편, 그리고 다른 책 <체사레 보르자>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서야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었죠.. 필력이 너무나 좋은 작가일수록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2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체사레 보르자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서 전국시대의 일본을. 체사레 보르지아에게서 오다 노부나가를 느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긴 연휴네요. 독서괭님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