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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의 역사- 유라시아의 교차로
제임스 A. 밀워드 지음, 김찬영.이광태 옮김 / 사계절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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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오스만 제국사- 적응과 변화의 긴 여정, 1700~1922
도널드 쿼터트 지음, 이은정 옮김 / 사계절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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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진- 청(淸)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사
피터 C. 퍼듀 지음, 공원국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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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1400년
버나드 루이스 엮음, 김호동 옮김 / 까치 / 200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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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휘다르네스여, 그대는 상황을 잘 몰라서 우리에게 그런 조언을 하시는 것이오. 그대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고 그런 조언을 하시니 말이오. 그대는 노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알아도, 자유가 무엇인지는 전혀 경험해보지 않아 그것이 달콤한지 아닌지 모르신단 말이오. 그대가 자유를 경험했더라면 우리에게 창 뿐 아니라 도끼를 들고 자유를 위해 싸우라고 조언했을 것이오. <역사 제7권 135> 中


  서양 역사학의 아버지인 헤로도토스(Herodotos, BC 485 ~ BC 425)가 그의 저서<역사 Histories apodexis>에서 페르시아 전쟁을 페르시아 전제정으로부터 그리스 자유를 지키기 위한 전쟁으로 규정한 이후, 후세 서양사가들은 이러한 구도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이 역사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로 인해 '유럽'이 형성되었다고 해석하는데 의견을 같이 한다.

 

 이오니아인들은 페르시아인들을 '이민족'이라 불렀다... 마라톤 전투는 아태네 뿐만 아니라 전 그리스에 중요한 교훈을 일깨워주었다. 강대국에 대한 굴종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아테네인들은 이후에도 누차 강조하게 되겠지만 대왕의 군대도 격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거인에게도 약점은 있었다. 자유는 끝내 지켜질 것이었다.(p339) <페르시아 전쟁> 中


 페르시아가 그리스 본토를 침공하여 정복하려 한 과정은, 크세르크세스가 잡동사니 테러국이라 칭한 나라들의 독립을 넘어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아테네인들은 어쩌면 외국인 왕의 백성이 되어 아테네 고유의 민주주의 문화를 발전시킬 기회를 영영 갖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리스 문명의 특징이 된 여러 가지 요소들도 생겨나지 못했을 것이다. 하마터면 서구는 독립과 생존을 위해서 싸운 최초의 전쟁에서 패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서구 the West'라는 실체 자체를 탄생시키지 못했을지도 모른다.(p34) <페르시아 전쟁> 中


 그렇지만, 이러한 역사가의 설명과는 달리 페르시아는 페르시아 전쟁 이후에도 심지어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 BC 431 ~ BC 404)에 이르기까지 그리스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크세토폰(Xenophon, BC 431 ~ BC354)의 <헬레니카 Hellenika>에서는 페르시아를 동맹으로 끌어들이려 노력하는 테바이와 아테나이의 모습이, <페르시아 원정기 Anabasis>에서는 페르시아 용병으로 고생하며 퇴각하는 그리스 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그렇다면, 페르시아 전쟁을 통해 서구(Europe)이 형성되었다는 주장은 별로 설득력 없게 들린다.

 

"전우들이여, 내가 지금 상황에 괴로워하더라도 여러분은 놀라지 마시오. 퀴로스는 내 친구가 되어, 조국에서 추방당한 나의 명예를 여러 가지 다른 점에서도 높여주었을 뿐더러 내게 1만 다레이코스를 주었소. 그리고 나는 그 돈을 받아 내 개인 용도를 위해 빼돌리거나 탕진하지 않고 여러분에게 썼소.<페르시아 원정기 제1권 제3장 (3)> 中


 테바이인들은 어떻게 하면 헬라스의 패권을 잡을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고, 만일 페르시아 왕에게 사신을 보내면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 사실을 알고 아테나이도 티마고라스와 레온을 파견했다... 조약 내용이 알려지자, 레온은 왕이 듣는 데서 "맙소사, 이제 아테나이 인은 왕 대신 다른 우방을 구해야 할 때가 온 것 같소"하고 말했다. <헬레니카 제7권 1:33 - 37> 中


 그렇다면, 당대인들은 <페르시아 전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아이스퀼로스(Aeschylos, BC 525 ~ BC 456)의 <페르시아인들 Persai>에서는 다리오스의 입을 빌려 살라미스 전쟁의 패배를 다음과 같이 노래한다. 아이스퀼로스에 따르면 페르시아의 패배는 휘브리스(hybris 오만)의 결과로 해석된다. 

 

 인간은 인간으로서의 분수를 지켜야 한다고.

 일단 교만의 꽃이 만발하면 미망(迷妄)의 이삭이 패고, 

 그것이 익으면 눈물겨운 수확이 시작되기 때문이오.

 그대들은 이런 과오들과 이에 대한 벌을 보고

 아테나이와 헬라스를 기억하고, 차후에는 누구도

 자신의 현재 분복(分福)을 업신여기고 남의 것을 탐하다가

 자신의 큰 복마저 엎지르지 않게 하시오. (820 ~ 827) <페르시아 인들> 中


 <페르시아인들> 속에서 페르시아 왕은'세계정복'을 꿈꾸는 야망가의 모습이 아닌 단순히 '막대한 부'를 원하는 탐욕꾼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이로부터 <페르시아인들> 속에서 당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침략이 탐욕에 의해 일어난 결과로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  당대인들의 인식 속에서 '페르시아 전쟁'은 (대부분의 역사적 사건이 그러하듯) 자유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부(富)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자유민주정 VS 전제정'의 구도로 이 전쟁을 바라보는 것은 무리가 있다 여겨진다. 이러한 이유로 이제는 <페르시아 전쟁>을 다른 관점에서 해석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굳이 이 전쟁에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더라도, 이 전쟁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미의 실마리를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찾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322)의 <정치학 Politika>을 통해 그리스 폴리스(Polis)를 살았던 여성과 노예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헬라(Hella) 공동체는 결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여성임과 노예임은 자연적으로 차이가 있다... 그런데 비(非)헬라스 사람들에게서는 여성과 노예가 동일한 지위를 가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자연적으로 지배하는 어떤 것을 가지지 못하고, 오히려 그들의 공동체는 남성 노예와 여성 노예로 구성되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시인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헬라스인들이 비헬라스인들을 지배하는 것이 아주 그럴듯하다 <정치학 제1권 5 - 9>中


 페르시아는 전제 군주정으로서 1인 군주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모두 평등(平等  Equality)한 사회였다. 그렇다면, 오히려 페르시아 전쟁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자유와 평등'의 대결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자유'를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집단의 승리로 끝난 이 전쟁에서, '자유'는 전체의 자유가 아닌 소수의 자유를 의미한다는 면에서도 다른 해석이 가능할 듯 하다. 즉, 오늘날 소수 글로벌 대자본에 의한 체제 지배가 이루어지고 있는 오늘날의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eoliberalism)의 뿌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 해석은 어떨까. 


 톰 홀랜드(Tom Holland)의 <페르시아 전쟁 Persian Fire>를 훒어보다 떠오른 몇 가지 생각을 두서없이 옮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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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9: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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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8 09: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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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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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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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연휴를 마치고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의 <티마이오스 TImaios>에 대한 강의를 청강하고 왔습니다. 플라톤의 우주론(Cosmology)가 담긴 <티마이오스>를 읽었지만, 상당히 어려운 대화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강의를 듣고 나니 조금은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 강의 자료와 함께 개인적인 내용정리도 함께 올려 봅니다.(이하 반말)


 <티마이오스>는 화자인 티마이오스의 비중이 매우 크다는 점에서 다른 대화편들과 뚜렷하게 구별된다. <티마이오스>의 우주론 역시 티마이오스의 입을 빌려 설명되는데, 우주론은 크게 다음의 내용으로 진행된다.


1. 존재와 생성/소멸


 티마이오스에 따르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은 '사유'와 '합리적 설명'이 가능한 반면, '생성'되는 것은 '소멸'되는 것이며, '감각'과 '의견'에 의해 파악된다. 그렇다면, 생성된 것이 분명한 우주는 소멸되는 것이며, 불완전한 존재가 된다.(그렇지만, 최상의 아름다움을 가진 필멸의 존재)


 그러니까 제 판단으로는 먼저 다음 것들이 구분되어야 합니다. '언제나 존재하는 것(to on aei)'이되 생성(genesis)을 갖지 않는 것은 무엇이고, '언제나 생성되는 것(to gignomennon ari)'이되 결코 존재(실재)하지는 않는 것은 무엇인지 말씀입니다. 분명히 앞엣것은 '합리적 설명(logos)'과 함께하는 지성에 의한 앎(이해)(noesis meta logou)'에 의해 포착되는 것으로서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aei kata tauta on) 것'인 반면에 뒤엣것은 '비이성적인 감각(aisthesis alogos)'과 함께 하는 의견(판단 doxa)의 대상으로 되는 것으로, 생성/소멸되는 것이요, 결코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한데, 생성되는 모든 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원인이 되는 어떤 것에 의해 생성됩니다. 어떤 경우에도 원인 없이는 생성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27d - 28a) <티마이오스> 中


 그렇지만, 데미우르고스는 완벽한 존재를 모상으로 우주를 만들었기 때문에, 우주는 생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져야만 한다. 그래서, 우주는 데미우르고스에 의해 무질서에서 질서가 있는 상태로 이끌리게 된다. 정리하면, 우주는 생성된 필멸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형상'의 모상이기 때문에, 카오스(Chaos)에서 코스모스(Cosmos)로의 변화된다. 그리고, 이 우주는 몸통과 혼을 가진 존재이며, 이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다음에 이어진다.


 그런데 무엇을 '만드는 이(匠人, demiourgos)이건 간에, 그가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바라보면 이런 걸 본(paradeigma)으로 삼고서, 자기가 만드는 것이 그 형태(모습 idea)와 성능(dynamis)을 갖추게 할 경우에라야, 이렇게 완성되어야만, 모든 것이 필연적으로 아름다운 것으로 됩니다.(28b) <티마이오스> 中


 이 우주(Kosmos)가 과연 아름답고 이를 만든 이(demiourgos) 또한 훌륭하다면, 그가 영원한 것(to aidion)을 바라보고서 그랬을 것이라는 건 분명합니다... 우주는 바로 그렇게 해서 생겨났기에, 그것은 합리적 설명(logos)와 지혜(phronesis)에 의해 포착되며 '똑같은 상태로 있는 것'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점들이 이러할진대, 이 우주가 어떤 것의 모상(模像 : eikon)일 것임이 또한 전적으로 필연적입니다.(29b) <티마이오스> 中


 이 우주를 구성한 이(ho synistas)는 훌륭한(선한 : agathos) 이였으니, 훌륭한 이에게는 어떤 것과 관련해서도 그 어떤 질투심이든 이는 일이 결코 없습니다. 그는 질투심에서 벗어나 있어서, 모든 것이 최대한으로 자기 자신과 비슷한 상태에 있게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그것을 무질서 상태(ataxia)에서 질서 있는 상태(taxis)로 이끌었습니다. 질서 있는 상태가 무질서한 상태보다는 모든 면에서 더 좋다고 생각해서였죠.(29e -30a) <티마이오스> 中


 2. 우주의 몸통


 우주는 물체적인 것으로 시각적인 '불'과 촉각적인 '흙'을 재료로 한다. 그렇지만, 이들을 결합시키기 위해서는 '비례'라는 질서가, 중간재료로 '물'과 '공기'를 필요로 한다. 결국, 불, 흙, 물, 공기의 비례적 관계에 의해 우주의 몸통이 구성되는 것이다.


 생성된 것은 물체적인 것이며 볼 수도 있고 접촉할 수도 있는 것이어야만 합니다. 그렇지만 불 없이는 어떤 것도 볼 수 있는 것으로 될 수 없고, 단단한 어떤 것 없이 접촉할 수 있는 것으로 될 수도 없지만, 흙이 없고서는 단단한 것이 될 수도 없을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신은 불과 흙으로 우주의 몸통을 구성하기 시작하면서 만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셋째 것 없이 이들 둘 만으로는 훌륭하게 결합될 수가 없습니다. 양쪽 중간에서 결합해 주는 어떤 끈(desmos)이 생겨야만 하기 때문이지요. 끈들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은 자신도 묶여진 것들도 최대한 하나로 만드는 것이겠는데, 이 일은 등비 비례(analogia)가 그 성질상 가장 훌륭하게 수행하는 것입니다.(31b)... <티마이오스> 中


 우주의 몸통은 실상 입체적인 형태로 되는 것이 적절하거니와, 입체적인 것을 조화롭게 결합하는 것은 결코 하나의 중항(mesotes)이 아니라, 언제나 두 개의 중항입니다. 바로 그래서 신(神)은 물과 공기를 불과 흙 사이의 중간에 놓고서, 이것들을 가능한 한, 그것들이 서로에 대해 같은 비례 관계를 갖게 하여... 천구(ouranos)를 볼 수 있고 접촉할 수 있는 것으로 구성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그리고 수에 있어서 이와 같은 네 가지인 것들에서 우주의 몸통이 그 비례 관계로 인해 조화를 이룸으로써 생겨났으니..(32c) <티마이오스> 中


3. 우주의 혼(魂)


그렇다면, 우주의 혼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우주의 혼은 동일성과 타자성, 그리고 기본적 존재(ousia)의 결합을 통해 혼(魂)으로 결합된다. 그리고, 데미우르고스는 이들을 잘라내어 운동을 만들어 내는데, 이들 중 '타자성 운동'이 이루어지는 곳에서 행성의 움직임이 이루어진다.


 그(우주를 구성하는 이)는 불가분적이고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존재(ousia)와 물체들에 있어서 생성되고 기본적인 존재, 이들 양자에서 그 중간에 있는 셋째 종류의 존재를 혼합해 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는 동일성(he tautou physis) 및 타자성(he tou heterou physis)과 관련해서도 역시 같은 방식으로 이것들의 불가분적인 것과 물체들에 있어서 가분적인 것의 중간에 있는 셋째 종류의 것들을 구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셋인 이것들을 갖고서 이 모두를 하나의 형태(idea)로 혼합했는데, 동일성과 섞이기 힘든 타자성은 억지로 조화를 이루게 결합했죠. 그리고는 [이것들을] 존재와 함께 섞어서, 셋으로 하나를 만들고, 다시 이 전체를 그가 적절한 부분들만큼 나누었지만, 나뉜 각 부분은 동일성(tauton), 타자성(thateron) 그리고 존재(ousia)로 혼합된 것입니다.(35a -35b <티마이오스> 中


 그는 혼합된 것, 즉 거기에서 그가 이것들을 잘라 냈던 그것을 이렇게 해서 어느새 마저 마저 써 버렸습니다. 그리고서 그가 이 전체 구조(systasis)를 길이로 둘로 가르고서, 그 둘을 'X' 모양으로 중점이 서로 교차하도록 한 다음, 그 각각이 원형으로 하나를 이루게 구부렸습니다. 이것들이 [처음의] 그 교차점과는 반대편에서 또 한 만나게 한 거죠. 그리고선 그것들을 같은 곳에서 같은 방식으로 회전하는 운동으로써 에워싸서는 이들 원(kyklos) 가운데 하나는 바깥쪽 것으로, 다른 하나는 안쪽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는 바깥쪽 운동을 '동일성의 운동(phora tes tautou physeos)'이라 부르고, 안쪽 운동은 '타자성의 운동(phora tes thaterou physeos)라 불렀습니다. 그는 동일성의 운동은 평면으로 오른쪽으로 돌게 하되, 타자성의 운동은 대각선으로 왼쪽으로 돌게 하지만, 주도권은 동일성과 한결같음을 유지하는 회전[운동](periphora)에 주었습니다.(36c) <티마이오스> 中


[사진] 타자성과 동일성의 궤도(출처 : <티마이오스>)


 4. 시간


 본래 형상은 영원한 존재이기 때문에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그렇지만, 생성된 존재는 영원할 수 없기 때문에, 데미우르고스는 시간을 만들어내어 과거, 현재, 미래라는 시간 속에서 존재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그렇지만, 필멸의 존재들은 시간을 인식할 수 없다. 때문에, 데미우르고스는 시간을 인식시키기 위한 수단을 추가적으로 만들어야 했는데, 그 결과가 바로 '별(star)'이다. 


 본(paradeigma)이 살아 있는 영원한 것이듯이, 그는 이 우주도 그처럼 가능한 한 그런 것이도록 만들어 내려고 꾀했습니다. 그런데 그 살아있는 것의 본성은 영원한 것이어서, 이를 생성된 것에 완전히 부여하는 것은 사실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움직이는 어떤 영원(aion)의 모상(eikon)을 만들 생각을 하고서, 천구에 질서를 잡아 줌과 동시에, 단일성(hen) 속에 머물러 있는 영원의 [모상], 수에 따라 진행되는 영구적인 모상(aionion eikon)을 만들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시간(chronos)이라 이름지은 것입니다.(37c) <티마이오스> 中


[사진] 행성의 운동(출처 : <티마이오스>)


 본이 영원토록 있는 것인 반면에, 천구는 그것대로 일체 시간에 걸쳐 언제나 '있어 왔고' '있으며'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간이 생겨나도록 하기 위한 시간의 창조(genesis)와 관련되는 신의 이러한 숙고와 의도로 해서 태양과 달 그리고, 떠돌이별들(행성들 astra planeta)이라는 이름을 갖는 그 밖의 다섯 별(달, 태양, 수성, 금성, 화성)이 시간의 수치들의 구별과 수호를 위해 생겨났습니다.(38b) <티마이오스> 中


 결국 <티마이오스>의 창세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데미우르고스는 '영원한 존재인 형상의 모상'으로서 '우주'를 만들었기에 우주는 생성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생성된 것으로서는 가장 아름다운 존재가 된다. 그리고, 이러한 우주의 질료는 4원소(불, 흙, 공기, 물)이며, 우주의 혼은 동일성, 타자성과 기본적 존재의 혼합으로 만들어진 회전 운동으로 구성된다. 다만, 이러한 우주의 혼과 몸통은 유한한 것(그렇지만, 매우 긴)이기 때문에, 우주는 '과가-현재- 미래'라는 시간 안에 존재하는 것이며, 시간을 알기 위해 별들이 만들어진 것이다...


  <티마이오스>의 우주론은 지금 관점에서 보면 다소 황당한 것이 사실이지만, 우리가 <티마이오스>에서 주목해야 하는 점은 다른 곳에 있다(고 강의에서 말했다.) 그것은 <티마이오스>의 우주론이 말하는 바가 '인간이 우주와 같이 혼을 가지고 운동을 한다면 질서있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티마이오스> 강의에서는 여기까지 강의되었지만, 이에 대해서 플라톤의 다른 대화편인 <파이드로스 Phaedrus>라는 연결 고리를 가지고 조금 더 생각해보자.

 

 <티마이오스>의 대화는 <국가 The Republic> 다음에 이루어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최선의 정체(政體)가 무엇인가?'를 묻는 <국가> 다음에 '우주(宇宙)'론이 나오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가'가 지향하는 바가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플라톤의 대답이 될 것이다. 영혼의 불멸을 주장한 <파이드로스>의 내용을 중간에 넣는다면, 이 관계는 더 명확해진다. 우주의 혼은 질서있는 회전 운동을 한다.(티마이오스) - 인간도 혼이 있으며, 이 혼은 불멸한다.(파이드로스) - 인간들이 모여서 질서있고 조화롭게 살아간다면, 우리도 생성되었지만, 영원한 형상의 존재로 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마치 우주처럼(국가).  이것이 강의에서 말하는 도식이었다고 정리해본다.


그렇다면, 과연 <티마이오스>를 정치철학이라고 볼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자. 그 전에 먼저 <티마이오스>의 우주론은 과연 플라톤과 그리스 철학만의 고유한 사상일까 부터 살펴보자. 발터 부르케르트(Walter Burkert, 1931 ~ 2015)의  <그리스 문명의 오리엔트 전통 Babylon, Memphis, Persepolis>에 따르면 <티마이오스>의 우주론은 오리엔트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다.

 

 아카드 문헌에서도 생성 혹은 창조(바누), 파괴(훌루쿠), 존재(바슈)의 세 개념이 만물을 포괄하고 지배하는 체계 속에 결합된 것을 볼 수 있다.,,, <에누마 엘리시>는 신이 파괴나 생을 명할 수만 있다고 가정하는 것인데, 파르메니데스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파르메니데스를 거쳐 그리스어로 변형된 옛 천지창조론은 새로운 토대를 이루었다. 이것은 겉으로 보이는 외양을 넘어 합리적인 논증으로 드러나는 '존재'의토대이다. 훗날 플라톤은 이 논증에 아프리오리 개념이라는 수학적 기초를 놓았다.(p94) <그리스 문명의 오리엔트 전통> 中


 그리스의 창조론이 오리엔트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면, 천문학 역시 오리엔트 영향을 받았음을 추론할 수 있을 것이고, 천문학의 목적 역시 같은 목적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 천문학 역시 지배층들의 지배수단이었다고 바라본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문명화의 길로 접어들던 한 종족이 시대적으로 틀림없이 농사를 지었을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곳에 우리 스스로를 놓고 그들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대부분 거의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언제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작물을 거두어들이고 풀을 베어내는지'를 꿰뚫은 사람들만 진정으로 성공했을 것이다. 처음에 그런 지식을 얻는 유일한 수단은 천체를 관측하는 것뿐이었을 것이다.(p17) <천문학의 새벽> 中


 그런 의미에서 하늘을 읽고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은 정치 행위였다는 사실은 이집트에서만 확인되는 사실은 아니다. 대표적으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자신을 수양할 것과 천리를 알고 천명을 기다리는 것을 말하는 것을 보면 동양에서도 하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한 정치수단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孟子曰 盡其心者는 知其性也니 知其性則知天矣니라

存其心하여 養其性은 所以事天也요

天壽에 不貳하여 修身以俟之는 所以立命也니라


맹자께서 말씀하셨다. "그 마음을 지극히 하는 사람은 그 본성 本性을 알게 되니 그 본성을 아는 사람은 그 천리 天理를 알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을 보존하여 그 본성을 수양 修養하는 것은 하늘을 섬기는 것이요, 요사 夭死하는 것과 장수 長壽하는 것에 의심하지 않고서 몸을 수양하여 천명 天命을 기다리는 것은, 자기의 본성을 잘 수양하여 기다리는 것이다." <맹자 진심장구 상 孟子 盡心長句 上> 中 

 

 이렇게 정리하고 보니<티마이오스>의 우주론은 <국가>라는 정치철학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이라는 내용은 무리한 설명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와는 별도로 플라톤과 비슷한 시기에 맹자(孔子, BC 372 ~ BC 289)가 멀리 떨어진 동양에서 '천명 天命'을 강조했다는 사실 또한 흥미로운 지점이라 여겨진다. 또, 멀리 플라톤과 맹자 시기까지 거슬러갈 것도 없이 들뢰즈(Gilles Deleuze, 1925 ~ 1995) 철학의 지향점이 정치였음을 생각해 본다면, 정치철학이 철학의 종착점이 아닌가도 여겨진다. 글이 매우 길어졌기에, <티마이오스>와 여기에서 파생된 여러 이야기가 담긴 이번 페이퍼를 서둘러 마무리한다.... 


PS. 창조신인 '비슈누'와 파괴의 신 '시바' 그리고 분신인 '크리슈나'가 등장하는 <마하바라따>를 생각하면 오리엔트 문명의 영향을 인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겠지만, 이는 다음 기회로 일단 넘기자... 이렇게 곁가지로 새니 책 한 권 제대로 읽기가 참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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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09: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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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17 12: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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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모자 2019-02-17 15: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은 박홍규에 관련된 책들을 읽어보는 것도 추천해드립니다.

겨울호랑이 2019-02-17 15:58   좋아요 0 | URL
우리나라 플라톤의 대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는데, 황금모자님의 추천을 받게 되니 반드시 읽어봐야겠습니다. 황금모자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9-02-17 18: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요즘 자주 하는 생각은 목적론적 지향, 즉 인과적 사고가 사실상 우리 사고의 브레이크 혹은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 아닌가 하는 겁니다.
하라리도 지적하듯이 농경생활은 그 지역에서 그 작물이 재배된 우연한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지 인간이 농경을 위해 그 작물을 재배한 것이 원인은 아니었죠. 물론 후대에서는 목적 달성을 위해 많은 걸 벌이고 있긴 하지만요. 그러나 정작 처음의 목적과는 다른 경로의 발전도 많죠. 원자폭탄이 만들어진 과정이라든지, 실험 중에 우연히 만들어진 것들이 다른 문제에 도움이 되는 경우(탈모 문제를 연구하다 만들어진 비아그라 같은ㅎㅎ;;)도 많고.
인간은 인과적 사고를 하는 특성이 있어 원인 결과를 따질 수밖엔 없긴 하지만, 그런 식의 사고 때문에 이해하기 너무 큰 것에 ‘이것은 신이 만든 게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식도 나온 것이라 참...

요즘 마르쿠스 가브리엘 <나는 뇌가 아니다> 읽으면서도 한숨을 계속 쉬었는데요. 그는 신경과학이 인간을 뇌로 설명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과학적 설명을 한계로만 치부하며 철학적 관점을 고수하려는 확증 편향 아닌가 싶은 대목이 참 많아요. 인간은 뇌의 어느 부부만 잘못되어도 ‘아내를 모자로 착각하는‘ 교란을 많이 받잖습니까. 여기서 ‘진짜 그‘는 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정상적인(?) 본질적인(?) 그‘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그 모든 게 그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성적‘, ‘주관/객관‘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사고 모형일 뿐입니다. 합리적 설명을 위해 다양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톺아보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인간의 사고가 불완전하다는 걸 누구나 아는 만큼.

겨울호랑이 2019-02-17 18:40   좋아요 3 | URL
^^:) AgalmA 님의 의견에 동감합니다.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형상을 따라 만들어졌기에 생겨난 이유가 있다는 말은 우리 삶을 부품화시키는 것 같습니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말로 기억됩니다만, 인간은 ‘뇌‘가 아닌 ‘위‘로 설명되어야 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인간은 배고프면 살 수 없다는 그의 말 속에 현실이 잘 녹아있다 여겨집니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이니까요. 우리 안의 유전자도 그걸 원할 거라 넘겨짚어봅니다 ^^:)

2019-02-18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8 09: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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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3-04 18: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잠을 자고 마침내 깨어 고요한 겨울 아침을 맞게 된다. 창문틀에는 눈이 솜이나 솜털처럼 따듯하게 쌓여 있고 넓어진 창틀과 성에가 낀 유리창은 은밀한 빛을 받아들여 실내에 포근한 기운을 더한다. 아침의 고요는 무척 인상적이다. 들판 너머 확 트인 곳을 통해 바깥을 내다보려고 창 쪽으로 갈 때면 발아래에서 마루가 삐걱거린다. 쌓인 눈을 무겁게 지고 있는 지붕도 보인다. 처마와 담당에는 눈 종유석(鍾乳石)이 달려 있고 뜰에는 숨겨진 나무 고객이를 덮으며 석순이 서 있다. 나무와 관목들은 하얀 팔을 하늘 곳곳으로 치켜들고 담장과 벽이 있던 곳에는 어둑한 풍경 위로 마구 장난을 친 것처럼 환상적인 형태들이 펼쳐져 있는데, 자연이 사람들에게 예술의 본을 보여주려고 밤사이에 새로운 도안을 뿌려놓은 것 같다.(p76)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中


 어제 아침부터 띄엄띄엄 내린 눈이 밤 사이에 제법 쌓였습니다. 이번 겨울에는 눈이 많이 내리지 않아 반가운 마음에 사진을 올려 봅니다.



 입춘(立春)도 지나 봄의 문턱에서 내리는 눈이 조금은 뜬금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렇지만, 이대로 눈없는 겨울을 보내기에는 아쉬웠는데, 밤사이 쌓인 눈에 아쉬운 마음도 함께 묻힙니다. 저는 겨울의 풍경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쳤지만,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 ~ 1862)는 그 안에서 생명의 기운을 느끼고 있습니다.


 겨울이면 나는 길을 가다 멈춰 서서 어떤 시기와 환경에서든 앞날에 대한 걱정없이 자라는 나무의 모습을 보며 감탄한다. 사실 나무가 사람처럼 시기를 기다리는 법은 없지만, 지금이야말로 묘목이 자라기에는 황금 같은 시기다. 토양, 공기, 햇빛과 비가 아주 적절하니 태초의 환경도 지금보다 더 낫지 않았다. 나무들에게는 "그들의 불만스러운 겨울 winter of their discontent"이란 결코 오지 않는다. 잎이 하나도 없는 자생 포플러 가지 위에서 서리에도 아랑곳 않고 기운차게 돋은 눈을 보라.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을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p37)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中


 이러한 소로의 말을 듣다보면, 자연스럽게 주역(周易)의 '지뢰복(地雷復)' 괘(卦)가 떠오릅니다. 땅 밑에 우뢰가 있으니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생명력을 나타내는 이 괘와 겨울 나무를 바라보는 소로의 시선은 통하는 바가 있습니다. 동양사상에도 관심 많았던 소로이니 만큼, 아마 주역을 알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소로 보다 200여년 앞선 독일의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 ~ 1716)가 주역을 읽고 주석까지 달았던 점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이야기라 여겨집니다.


 음이 극에 달하면 양으로 돌아가는 것은 필연적인 이치입니다. 여러 음이 양을 박식(剝蝕)하여 박락(剝洛)이 극에 달하면 양이 되살아나게 됩니다...'복(復)'괘는 바로 하나의 양이 아래에서 되살아나는 형상으로 '복'은 본원으로 돌아와 원래의 상태를 회복한다(返本回復)'는 뜻입니다... 이는 동지(冬至) 즈음 음기(陰氣)가 극성하고 추위가 맹위를 떨칠 때 오히려 한 가닥 양기가 회생하여 광활한 대지에 봄이 멀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것과도 같습니다.이때 무럭무럭 자라나는 그 발랄한 생명력은 어떻게도 막을 수 없는 것이니, '형통'할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p357) <주역 周易> 中


 아침에 내린 눈을 누구나 반갑게 맞이하지만, 오후에 먼지를 먹은 검은 눈은 천덕꾸러기가 되겠지요. 사람의 마음에 간사한 면이 있음을 생각하게 됩니다.(저만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생각해보면 눈(雪)만 그런 것이 아니라, 육아(育兒) 역시 마찬가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처음에 태어났을 때는 그렇게 예쁘더니 '고난의 행군 100일'을 지나고 나면, 그 좋았던 마음도  많이 약해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아이'와 '눈'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번 주말에는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연의에게 조금 더 잘 해야겠습니다.


 고양이는 봄가을에 털갈이해 여름철 더위와 겨울철 추위에 대비합니다. 이른 봄부터 점차 털이 빠져 한여름 즈음에 말쑥하게 털이 정리되고, 가을부터는 보온 기능이 뛰어난 겨울털이 빽빽하게 자라나지요. 털갈이 시기에는 평소보다 털이 많이 빠지므로 훨씬 세심하게 브러싱하세요.(p64)  <달콤살벌 고양이 수업> 中


창밖에 쌓인 불구하고,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것은 2월이면 꽃대가 올라오는 긴기아난(Kingianum)과 군자란(Clivia miniata)과 함께 겨울이 끝난 다음 '고양이 털파카'를 만들어도 될 만큼 털갈이를 해대는 귀요미 녀석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녀석이 고양이가 아니라 누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말 모처럼 씻기고 쉬고 있는 녀석의 사진을 마지막으로 인사드립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되세요!



 쌓인 눈은 우리를 가두지만 집이 제공하는 편안한 느낌을 더해주기 때문에 가장 추운 날에도 우리는 난로 위에 앉아 굴뚝 꼭대기를 통해 하늘 보는 것을 즐거워한다. 굴뚝 주변 따뜻한 구석에서 누릴 수 있는 조용하고 평온한 삶을 즐기거나 길거리에서 소들이 우는 소리나 긴 오후 내내 멀리 떨어진 곳간에서 도리깨 소리를 들으며 우리의 맥박을 재면서 말이다.(p97) <소로의 자연사 에세이> 中


PS. 그렇지만, 역할 놀이는 정말 적응이... 어려서도 안하던 것을 딸 때문에 하려니 마치 '밀린 숙제'를 해야하는 심정입니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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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9-02-16 23: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소로의 일기>에도 자연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소로를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로 꼽습니다.
고양이가 졸린 듯 보입니다. 잠자는 모습은 더 귀엽겠지요.

겨울호랑이 2019-02-16 23:54   좋아요 0 | URL
페크님께서 말씀하신 <소로의 일기>는 <소로의 야생화 일기>를 말씀하신 듯 합니다. 혹 제가 잘 모르는 다른 책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페크님 말씀처럼 소로는 자연을 사랑하는 작가의 모습을 <월든>을 비롯한 그의 여러 책에서 아낌없이 보여준다 여겨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소로는 자연 그 자체가 아니었다 하는 생각도 듭니다. 고양이는 낮에 졸고 밤에 돌아다녀서 지금은 아주 생생하게 뛰어나니네요. 아까는 귀여웠는데, 지금은 놀아달라고 보채니 귀찮아 집니다.ㅋ 페크님께서도 편한 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2019-02-17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7 12: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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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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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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