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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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혁명은 인류의 오만함이 뿌리채 뽑혀 생명이란 예측불가능하고 방향이 없다는 진화론의 명백한 의미가 이해될 때, 그리고 다윈적 지질학 연구를 진지하게 고려하여 호모 사피엔스는 거대하고 풍성한 생명의 나무에 엊그제 돋아난 작은 가지에 지나지 않으며, 그 나무가 다시 씨앗으로 뿌려진다면 지금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띠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숙지할 때 비로소 완성될 것이다.(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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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철학사전 민음 생각 3
볼테르 지음, 사이에 옮김 / 민음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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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테르(Voltaire, Francois-Marie Arouet,1694 ~ 1778)의 <불온한 철학사전 Dictionnaire philosophique portatif>은 백과사전처럼 구성된 책으로 다양한 주제의 짧은 글을 통해 계몽주의자인 저자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 중 이전 시기와 비교해 특징적인 몇 개의 주제(자연, 인간, 사회, 신/종교)를 통해 볼테르의 생각을 들여다 보도록 하자.


[그림] 볼테르(사진 출처 : 위키백과)


1. 자연 : 인간에게 본성을 준 존재


 볼테르에게 자연은 인간에게 본성(本性)을 부여한 존재다. <불온한 철학사전>에서 인간에게 주어진 성격, 운명 등은 인간의 것이기는 하지만, 인간 자신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외재 요인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들 요인은 자연 또는 절대자에 의해 주어진 것으로 불변의 법칙(法則)에 의해 작동하는 것으로 인식했다. 


 법 Lois 자연이 인간을 만들 때 몇 가지 본성을 부여했다. 자신의 보존을 위한 자기애, 타인의 보존을 위한 자비심, 다른 동물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는 사랑, 그리고 어떤 동물보다도 많이 생각할 수 있는 재능이 그것이다. 자연은 우리에게 우리 몫을 준 다음 이렇게 말했다. "알아서 해!"(p416) <불온한 철학사전> 中


 성격 Caractere 성격은 우리의 생각과 감정으로 형성된다. 그런데 감정도 생각도 자신이 자신에게 주는 게 아님이 충분히 입증됐다. 따라서 우리의 성격은 우리에게 달린 것일 수 없다.(p156) <불온한 철학사전> 中


 운명 Destin 세계는 그 자체의 본성, 그 물리법칙에 따라 존속하는 것일수도 있고, 아니면 어떤 절대자가 자신의 지고한 법칙에 의거해 창조했을 수도 있다. 어느 경우이든 세계에 내재하는 법칙은 불변이다. 어느 경우이든 세계에 내재하는 법칙은 불변이다.(p212) <불온한 철학사전> 中


2. 인간 : 이성을 가진 피조물


 자연으로부터 본성을 부여받은 것은 인간만은 아니다. 다른 동식물 또한 자연으로부터 본성을 부여받아 만들어졌는데, 이들과 인간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볼테르는 그것을 스스로 완성해 가는 재능, 이성(理性)이라고 파악했다. 


 사랑 Amour 짝짓기를 할 때 동물은 대부분 오로지 한 가지 감각으로만 쾌락을 맛본다. 그리고 욕구가 충족되는 순간 모든 것이 사그라진다. 인간을 제외하면 그 어떤 동물도 포옹을 하지 않는다... 인간은 자연이 허락한 것을 누리며 스스로 완성해 나갈 수 있는 재능을 부여받았다. 바로 그런 재능으로 인간은 사랑을 완성했다.(p44) <불온한 철학사전> 中


전쟁 Guerre 모든 동물은 끊임없이 전쟁 중이다. 모든 종이 저마다 다른 종의 포식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신이 인간에게 이성을 주셨으니, 이 이성은 인간이 동물을 흉내 내는 수준으로 타락하지 말라고 경고해 주어야 마땅하다. 자연은 인간에게 동족을 죽일 무기도, 그들의 피를 빨려는 본능도 부여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러하다.(p331) <불온한 철학사전> 中

 

 이 땅을 혐오와 비열로 더럽힌 그 증오스러운 재앙을 보면 자연이 스스로 만든 작품을 경멸하고, 스스로의 계획을 부정하며, 스스로의 의도에 반대되는 일은 하지 않느냐고 비난하게 된다. 이것이 정말 가능한 최상의 세상일까?(p45) <불온한 철학사전> 中


  저자는 비록 다른 생물들과 구분되는 인간만의 능력에도 불구하고, 현재 인간 세상은 그리 아름답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정말 악인은 세상에 그렇게 많지 않다고 말한다. 적은 수의 악인이 재앙을 만들어내는 역설적인 상황에서 가장 큰 악은 동족간에 서로 죽이는 행위다. 인간이 자신의 권한을 넘는 행위인 동족을 죽이는 행위가 볼테르 관점에서는 가장 나쁜 행위다.


 악인 Mechant 결과적으로 세상에는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는 것보다 사악한 존재가 많지 않다. 물론 여전히 나쁜 사람이 많고, 여전히 불행한 일이 일어나고 끔찍한 범죄가 저질러진다. 하지만 사람들은 불평하고 과장하면서 얻는 기쁨이 너무 큰 나머지 자그만 상처에도 세상에 피가 넘쳐흐른다고 비명을 지른다.(p427) <불온한 철학사전> 中


 내가 보기에 가장 큰 악(惡)은 인간이 서로를 죽이는 것이다. 우리가 죽은 이후에 살을 구워 먹든 양초를 만들든 그것은 큰 차이가 없다. 어차피 선량한 인간은 자기가 죽은 이후에 무언가에 유용하게 쓰인다는 사실에 화를 낼 리 없기 때문이다.(p59) <불온한 철학사전> 中


 <불온한 철학사전>에는 나오지 않지만, 내용 연결을 위해 몇몇 내용을 첨가해본다.  사회는 인간이 이러한 악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이들을 통치할 권력이 필요하며 그 결과로 여러 형태의 정체(政體 Etatas, Gouvernements)가 수립되었다는 내용으로 연결될 수 있을 것이다. 권한이 왕권신수설로 연결된다면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의 이론을, 사회계약론으로 연결된다면 루소(Jean-Jacques Rousseau, 1712 ~ 1778)사상이 가능할 것이다. 이 부분은 다음에 다시 정리하도록 하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자.


3. 사회


 볼테르는 <불온한 철학사전>의 여러 곳에서 정체에 대해 언급한다. 여러 체제의 정체가 있지만, 저자는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 이나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처럼 최선의 정체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은 자신들이 처한 처지에 따라 다른 정체를 원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또한, 권력자와 민중의 다툼은 항상 발생하지만, 결국은 민중의 복속으로 끝난다는 말을 통해 소수에 의한 다수 지배 현상을 설명한다.


 민주 정치 Democratie 민주 정치는 아주 작은 나라이면서 또한 지정학적 위치가 좋을 경우에만 적합한 정치체제인 것 같다... 그렇다면 공화정이 군주정보다 더 좋은 정치체제인가? 이것은 늘 되풀이되는 질문이다. 이 논쟁의 끝은 매번 동일한데, 즉 인간을 통치한다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에 어쩔 수 없이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p210) <불온한 철학사전> 中


 조국, 고향 Patrie 당신의 조국이 왕정 국가인 것과 공화정 국가인 것 중 어느 쪽이 낫겠는가? 해법을 부자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모두 귀족 정치를 선호한다. 서민들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민주 정치를 원한다. 왕정을 선호하는 것은 왕들뿐이다... 지상의 거의 모든 곳이 군주들이 다스리는 나라라는 것은 인간이 자치를 할 만한 그릇인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p451) <불온한 철학사전> 中


 평등 Egalite 가난한 자들 모두가 절대적으로 불행한 것은 아니다. 그들 중 대다수는 태어날 때부터 가난한 상태로 태어나는데, 끊임없는 노동에 쫓기다 보면 자신들의 처지를 깊이 느낄 여유도 없다. 그러나 그들이 그런 처지를 인식하는 순간 계층 간에 싸움이 일어난다... 이런 싸움들은 길든 짧든 결국 모두 민중의 복속으로 결말이 난다. 왜냐하면 강자들에게는 금전이 있고, 이 금전이야말로 한 나라 안에서 모든 것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다..(p227) ... 인간이라는 종은, 본래의 성향 그대로라면,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상태로 노동력을 제공할 수밖에 없는 무한한 수효의 인간이 있지 않은 한 존속할 수 없다.(p228) <불온한 철학사전> 中


4. 신/종교


 <불온한 철학사전>에서 볼테르는 종교(宗敎)에 대해 매우 비판한다. 종교가 지배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었다는 말, 인간이 신을 만들었다는 내용,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배타성을 지적하는 저자의 글을 통해 종교(특히 기독교)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자세를 확인할 수 있다. 


 종교재판 Inquisition 종교재판은 교황과 성직자들의 권한을 강화하고 위선의 왕국을 공고히하는, 매우 경이롭고 매우 기독교적인 발명품이다.(p383)... 종교재판은 우리시대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박해를 견뎌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 신성함이 느껴질 정도다. 하지만 괴물은 아직도 숨을 쉬고 있다.(p388) <불온한 철학사전> 中


 기도 Piere 한 마디로, 우리가 신에게 기도하는 이유는 오로지 우리가 우리 모습대로 신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인 것이다. 우리는 신을 마치 도발하거나 달래거나 할 수 있는 무슨 파샤나 술탄인 양 취급한다. 요컨대, 모든 백성들은 신에게 기도한다. 현자들은 체념하고 신에게 복종한다.(p482) <불온한 철학사전> 中


 종교 Religion 한마디로 그리스도교 아닌 이교도의 종교는 거의 사람 피를 흘리지 않았는데 정작 우리의 종교는 세상을 피로 적시다시피 한 것이다. 우리 종교는 아마도 유일하게 훌륭한 종교이고 유일하게 진실한 종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그 종교의 방편을 쓰면서 너무도 많은 악을 저질렀기에 다른 종교에 대해 얘기할 때는 겸손해야 한다.(p497) <불온한 철학사전> 中


 이처럼 <불온한 철학사전>을 통해 우리는 종교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나, 자연의 일부로서 인간을 바라보고 새로운 자세로 인간을 탐구하려는 계몽주의(啓蒙主義  Lumieres) 지식인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동시에, 우리가 과학(科學 science)라 부르는 방법을 활용해 인간과 자연을 알아가고자 노력한 계몽주의자의 모습을 접할 수 있다. 


 영혼 Ame 지적 능력을 갖춘 영혼은 정신일까, 물질일까? 그리고 우리보다 앞서 창조되었을까, 아니면 무(無) 속에 있다가 우리가 태어날 때 같이 나올까?  이 땅에서 우리에게 생명을 불어넣은 영혼은 우리가 사라진 이후에도 영원히 살아갈까? 전부 훌륭해 보이는 질문들이다. 하지만 이 질문들은 모두 맹인이 다른 맹인에게 빛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것과 다르지 않다.(p27) <불온한 철학사전> 中


 그렇지만, <불온한 철학사전>에서 이러한 계몽주의의 새로운 흐름과 동시에 우리는 한계도 확인할 수 있다. 영혼과 같이 추상적인 주제를 다루는데 있어 아직은 종교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18세기 당대 지식인의 인식과 한계를 느끼게 된다.


 당신이 영혼이라고 부르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영혼이 뭐라고 생각하는가? 초자연적인 계시의 도움 없이 당신 혼자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라곤, 당신 안에 당신이 알지 못하는 능력이 있어서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뿐이다.(p36)... 그대의 미약한 이성만으로는 또 다른 영혼이 존재한다는 것 역시 증명할 수 없을 것이다... 신이 우리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셨고, 나머지도 모두 마찬가지다. 신이 그 섭리를 통해 우리에게 비물질적인 영원한 영혼이 있음을 알게 하신다면 모를까, 우리 스스로 그 증거를 찾아내지는 못할 것이다.(p37) <불온한 철학사전> 中


 <불온한 철학사전>은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에세이(essay) 형식으로 쓴 글이다. 책 곳곳에 나타난 저자의 재치와 유머는 자칫 무겁게 나갈 수 있는 책의 무게를 덜어준다. 그러면서도, 계몽주의 철학자들의 인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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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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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4: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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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2 18: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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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00: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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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 (천줄읽기) 지만지 천줄읽기
존 메이나드 케인즈 지음, 박만섭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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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효 저축의 크기가 투자 규모에 의해 결정되며, 투자의 규모 증가가 낮은 이자율에 의해 촉진된다는 것을 보았다... 완전고용이 달성되는 자본의 한계효율표와 비교하면서 완전고용에 상응하는 점까지 이자율을 하락시키는 것이 우리에게 최대의 이익을 가져다준다.(p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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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프랑수아 케네 지음, 김재훈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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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폐의 부정한 거래는 비생산적 순환일 뿐이다. 부의 진정한 원천에 관한, 그리고 그것을 증식시키고 영구화하는 수단에 관한 지식에만 왕국의 경제 관리학이 존재한다.(p56)... 농업이 침체하면 할수록 자유롭게 처분 가능한 액수를 더 많이 농업에 지출해야 한다.(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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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10: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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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0 11: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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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동의 탄생
데이비드 프롬킨 지음, 이순호 옮김 / 갈라파고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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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이 지금과 같은 모습을 띠게 된 것은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하나는 유럽 국가들이 재편을 맡았기 때문이고, 또 하나는 영국과 프랑스가 왕조, 국가, 정치시스템만 구축해놓고 그것들이 지속될 수 있는 대책 마련에는 소홀한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1914 ~ 1922년 사이 영국과 연합국이 취한 조치는 유럽의 중동문제만 종식시켰을 뿐, 중동의 중동문제는 오히려 새로 불거지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p863) <현대 중동의 탄생> 中


 데이비드 프롬킨(David Fromkin, 1932 ~ )는 <현대 중동의 탄생 A place to end all peace>에서 1차 세계대전 전후 오스만 투르크를 둘러싼 유럽 열강의 갈등이 현대 중동 문제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1914년 당시 그레이트 게임(Great game)을 막 끝냈던 영국과 러시아는 오스만 투르크를 중립지대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당시 영국은 여러 면에서 중동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편입시켜야할 필요가 분명하게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국 이해관계는 현재 중동 문제의 뿌리가 된다. 현대 중동의 모습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떠한 일들이 있었는가를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획득한 식민지 중에서도 전설로 가득찬 동방에 대해 가장 큰 자부심을 느꼈다. 하지만 그 의기양양함에는 뜻밖의 아이러니가 숨어 있었다. 아시아와 태평양에서 프랑스를 몰아내고 인도를 손에 넣어 승리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좋았으나, 수송로와 병참선이 지나치게 멀어져 여러 곳에서 끊길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은 중동의 토착 정권들을 지지하는 방식으로 유럽 국가들의 이런 팽창을 막으려고 했다. 중동을 지배할 의도는 없었으나 유럽의 경쟁국들이 그 지역을 지배하는 것 또한 결단코 막으려고 했다.(p51)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전략적 관점으로 봐도 중동은 케이프타운에서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로 연결되는 노선의 끊어진 부분을 이어줌으로써, 아프리카, 아시아, 태평양에 걸친 영국제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곳이었다.(p464) <현대 중동의 탄생> 中


 그렇지만, 당시 영국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방대한 영토를 유지해야 하는 어려움은 그대로였지만, 주변 상황은 달라지고 있었다. 신흥 강국 독일의 급부상, 철도의 발달로 인한 육상 전력의 중요성 증대 등은 오랜 제국 영국에게 위협요소로 다가왔고, 영국은 이러한 위기를 중동에 대한 직접지배력의 확대를 통해 극복하려 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오스만 투르크 제국은 제물이 되어야만 했다.

 

  1871년 1월 18일부로 공식 출범한 독일제국(제2제국)이 그로부터 몇십 년 뒤에는 러시아를 누르고 영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최대 세력으로 부상한 것은 세계정치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영국의 산업이 쇠퇴한 것도 정세 변화의 일부 요인으로 작용했다. 영국은 화학과 공작기계처럼 중요성이 날로 커지는 새로운 산업 분야에서도 독일에 주도권을 빼앗겼다... 군사적 요인도 정세 변화에 한몫했다. 철도의 발달로 해군이 힘을 못쓰게 되어 육군과 해군의 전략적 균형이 바뀐 탓이다.(p57)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식민지 수립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달랐지만 중동의 오스만제국이 언젠가는 와해될 것이고, 그러면 유럽 국가들이 거기서 떨어질 떡고물을 얻게 되리라는 점에서는 양측의 견해가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결국 역사를 움직이는 동력의 하나가 되었다.(p59)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동맹국으로 참가한 오스만제국은 당시 매우 허약해진 상태였다. 제국 내의 인종/언어 문제는 발전을 가로막았고, 한때 16세기에 빈을 포위하며 오스트리아를 공포로 몰아넣었던 제국의 위엄은 20세기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과거 크림전쟁(Guerre de Crimee, 1853 ~ 1856)을 통해 오스만 제국의 허약한 모습을 알고 있었던 영국이 오스만 제국을 손쉬운 상대로 본 것도 자연스러운 판단이었다. 


 오스만제국은 지리멸렬했다. 지배자들의 인종도 제각각이었다. 언어는 튀르크어를 사용했지만, 지배자 대부분이 발칸과 여타 지역 기독교 노예의 후손이었다... 그러다 보니 서로 간의 공통점을 찾기 힘들었고, 많은 경우 서로에 대한 애착도 크지 않았다. 이렇듯 오스만제국은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사람들이 모자이크를 이룬 다민족, 다언어 제국이었다. 그나마 접착제 구실을 한 것이 종교였다. 오스만제국은 튀르크족의 나라라기보다는 무슬림 나라에 가까운 신정국가였다.(p6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사진] 갈리폴리 전투(출처 :https://warfarehistorynetwork.com/daily/military-history/what-events-led-to-the-battle-of-gallipoli/)

 

 그렇지만, 승리를 자신했던 영국은 1차 대전에서 다르다넬스 작전(갈리폴리 전투)을 실패하며 대(對)오스만 전선에서 절대적 우위를 점하는데 실패하고 말고 영국 역시 과거와 달라진 제국의 모습을 확인하였다. 이후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종료되었지만, 영국제국의 운명은 매우 불투명했고,  중동 문제에 직접적인 개입이 어려워진 시점에서 승전국들은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 했다. 그 중 하나가 오스만 제국 해체를 위한 민족자결주의(民族自決主義)였다.


  영국 경제는 1920 ~ 1921년 사이에 붕괴했다. 물가가 폭락하고, 수출도 둔화되고, 폐업하는 회사가 속출하고, 온 나라가 전례가 없을 정도의 대규모 실업과 씨름을 벌였다. 상황이 그렇게 되자 정치인들도 국내외에서 벌여놓은 각종 사업을 시행할 여력이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영국은 팔레스타인과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는 외교정책의 모험을 감행했고, 국내에서도 사회적 평화를 얻기 위한 사업을 벌였다.(p590)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918년 1월 8일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제안한 '평화 14개 조항'이었다... 윌슨은 오스만제국과 미국이 교전 중에 있지는 않았지만, 그에 관련된 내용도 12조에 포함시켰다. 이런 내용이다. "12조. 현재의 오스만제국 중 튀르크인들이 차지하는 영토의 주권은 확실히 보장되어야 하며, 튀르크 지배를 받는 다른 민족들에게는 확실한 생활의 안전과 방해받지 않는 자율적 발전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이에 앞서 작성된 초안에는 터키를 지도에서 지워버리는 내용이 명기돼 있었다.(p399)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이같은 분위기에서 유대인들의 독립운동인 시온주의(Zionism) 는 보다 활성화된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거주하는 아랍인들을 자극시키는 이러한 움직임을 당시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지지하였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현대 중동 문제의 가장 커다란 씨를 뿌린 것으로 판명되었다.


 민족주의가 정치적 악폐를 근절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되었던 만큼 누군가는 유대인 문제에 대한 답으로 민족주의를 제시할만도 했다.(p421)... 연합국이 팔레스타인에 가진 유대인의 열망을 지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면 시온주의 운동은 유대인 국가의 보호국을 선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그 경우 시온주의 운동이 영국을 보호국으로 택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이치였다.(p45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영국 외무부는 미국의 유대인 사회와, 특히 러시아의 유대인 사회가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영국정부는 계속해서 러시아 유대인들이 러시아 정부가 연합국 진영에 계속 남아 있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믿었다. 러시아의 위기가 심화될수록 영국 외무부는 더욱더 유대인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혔다.(p456) <현대 중동의 탄생> 中


  1921년 6월 처칠은 하원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아랍인들이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팔레스타인의 부를 확대하고 그곳의 자원을 개발하는 정도의 유대인만 정착시키고, 그 이상의 유대인 정착은 허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p782)... 1922년 7월 22일에는 국제연맹이, 영국이 요르단 강 서안에 밸푸어선언을 실행하도록 명시된 팔레스타인 위임통치안을 최종 승인했다.(p792) <현대 중동의 탄생> 中


 <현대 중동의 탄생>은 1922년 이루어진 연합국간의 협정이 현대 중동의 모습을 결정짓는다고 지적한다. 석유의 중요성이 지금처럼 부각되지 않은 시기에 중동은 지정학적 위치에 의해 이미 그 운명이 결정되고 말았다.


 1922년의 타결은 단일한 법령, 조약, 혹은 문서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중동문제가 대개는 그해에 성립된 법령, 조약, 문서들로 정리되어 붙게된 명칭이다.(p857)... 중동에서의 러시아 문제도, 정치적 국경은 러시아가 터키, 페르시아, 아프가니스탄과 체결한 조약들 및 어느 정도는 영국과 맺은 교역 협정으로 1921년부터 모습을 드러냈고, 오스만제국의 술탄제가 종식되고 터키 민족국가가 창설된 것 또한 1922년 대국민의회 투표에서 만들어진 결과였으며... 중동의 영국 세력권에 적용될 법령과 조약도 대부분 1922년에 확정되었다.(p858) <현대 중동의 탄생> 中


 중동 분규가 특별했던 것은, 1922년 초 영국과 프랑스가 합의한 내용에 따라 그 즉시 모습을 드러냈거나 혹은 종국에는 모습을 드러내게 될 나라들의 규모와 경계는 물론이고 그 나라들의 존립권 자체에도 의문을 제기하는 더욱 본질적 문제가 내포돼 있다는 점이다. 그곳이 지금까지도 국가의 생존을 위해 빈번히 투쟁을 벌이는 세계적 분쟁지역이 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쿠르드족의 정치적 미래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의 정치적 운명과 같이 독특하고 해결 불가능한 사안들의 저변에, 중동에 이식된 유럽의 현대적 정치시스템이 중동이라는 생소한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한 본질적 문제가 내재돼 있는 까닭이다.(p864) <현대 중동의 탄생> 中


 또한 저자는 본문에서 이러한 지정학적 문제 외에도 외부에서 이식된 현대 정치 시스템의 문제가 중동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랜 무슬림의 전통 지배 체제를 부정하고 강제로 서구의 시스템을 강요는 중동의 또다른 분열요소가 되었다는 저자의 주장은 2010년 '아랍의 봄'을 통해 뒷받침 된다.



[사진] 아랍의 봄(출처 : https://www.history.com/topics/middle-east/arab-spring)


 <현대 중동의 탄생>은 우리가 알고 있는 중동의 수많은 국가가 만들어진 이유가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다툼의 결과임을 보여준다.   책에 서술된 중동에서 패권을 장악하기 위해, 유대 - 아랍 민족의 갈등과 수니 - 시아 파의 종교 반목을 활용하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모습을 통해, 현재 이들이 시리아 내전 등으로 발생한 중동 - 아프리카 난민 문제에 인도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세기 자신들이 뿌려놓은 갈등의 씨앗을 생각한다면, 이들 지역에 대한 난민 수용은 단순한 인도주의 차원이 아니라, 결과에 대한 책임일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아랍 난민 수용 문제에 대해 직접 책임 있는 일부 유럽 국가들과 우리 나라를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조상들이 100년전 독립의 희망으로 봤던 민족자결주의가 사실은 영국 패권 유지와 오스만 제국의 해체를 위한 이론 근거였음을 <현대 중동의 탄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민족자결주의라는 추상적인 관념이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헛된 희망을 주고, 많은 희생을 불러왔는지를 생각해보면 중동의 불행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현대 중동의 탄생>은 제법 두껍다. 그러지만, 본문만 9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이지만, 내용은 깊지 않아 현대 중동 문제와 기원에 대해 알고 싶은 이들은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중동 문제에 관심있는 이들은 한 번정도 읽기를 권하며 이번 리뷰를 마친다.



PS. 난민 문제에 대해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해야한다는 개인의 생각은 여전하지만, 유럽은 몇 명 받아들였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조금 받아들였는가하는 단순한 수치 비교는 적절하지 않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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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6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16 16: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05-17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지역을 중동이라고 해야 할 지, 서남아시아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문화적인 면이 우리 나라와는 많이 다른 지역이라서 책으로만 알게 된 것들은 어쩐지 많이 낯설게 느껴집니다.
겨울호랑이님, 요즘 날씨가 많이 더워졌습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9-05-17 18:21   좋아요 0 | URL
^^:) 우리 입장에서는 서남아시아가 유럽 입장에서는 중동이 될 것 같네요. 날이 많이 흐린 초여름날씨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좋은 주말 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