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색 세루 두루마기에 자줏빛 털목도리, 회색 털장갑, 그만하면 진주의 추위쯤, 든든한 차림인데 그러나 기화는 춥다. 몹시 춥다. 헐벗고 벌판을 거니는 것처럼. 그것은 추위라기보다 막막한 외로움이었는지 모른다.(p483)... 최초엔 길상을 잃었고, 다음엔 상현으로부터 버림받았고, 잃어버렸기 때문에 스스로를 버린 기화는 또 버림받았기 때문에 스스로를 잃었고, 마지막 희망을 버렸기 때문에 그는 모든 사물에 대한 인식을 망각한 것이다. 도망은 상실과 망각에서 오는 일종의 충격일까. _ 박경리, <토지 11> , p484/670


 토지 독서 챌린지 22주차. 이번 주로서 3부 3권도 마무리되어간다. 그 사이 최참판댁 갈등의 시발점이라 할 김 환(구천)도, 용이네 집에 풍파를 일으키던 임이네도 떠나가면서 이제는 서희를 비롯한 2세대가 집 안의 어른이 되었음을 실감하게 된다. 이들1세대의 퇴장 외에 작품 속에 묘사되는 시대상속에서 급격한 변화를 체감한다. 동학 농민 혁명의 여파가 채 가시기 전이었던 작품 초반부와 <토지> 중반부에 묘사되는 1920년대는 분명 차이가 있다. 이런 변화는 작품 속에 묘사되는 기화(봉선)의 모습에서도 잘 드러난다. 


 사실, 기화의 진정한 변화는 사실 옷차림에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자신과 희망을 잃어버리면서 결국 아편에까지 손을 대면서 기화는 걷잡을 수 없을만큼 무너져 내린다. 어린 시절 어머니 별당아씨를 잃어버린 서희를 옆에서 위로하던 봉선이었지만, 어른이 된 기화는 반대로 서희에게 몸을 의탁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자신을 '아편쟁이'라 단죄하는 기화는 자신의 딸마저도 버릴만큼 약해져 버렸고, 서희는 기화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현재 기화는 서희에게 큰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지만 세월은 그들 사이에 가로놓인 주종(主從)이라는 벽을 차츰차츰 허물어왔다. 그것은 기화보다 서희가 더 많이 느낀다. 극심한 사회적 변동이 원인이겠지만 가장 오래된 추억을 함께 간직한 두 사람의 처지 탓이며, 가시밭길을 걸어왔고 지금도 걷고 있다는 실감은 어쩔 수 없는 연민, 애정으로 변하게 마련이다. 애정은 권위를 무너뜨린다.(p439)... '불쌍한 것.' 다정다감했던 그 감성은 어디로 갔는가. 사무치게 깊었던 그 숱한 한은 어디로 갔는가. 너그럽게 이해하고 푼수를 알며 물러나 앉을 줄 알던 그 조신스러움은 어디 갔는가. 욕심 없고 거짓 없던 그 천성은, 아니 연연(軟娟)하고 그 풍정(風情)이 사내들 마음을 사로잡던 기생 기화의 모습은  어디로 갔는가. 그에게서는 양현을 향한 모성마저 없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 여자를 이렇게 만들었나. 마약의 심연으로, 다정다감함이 유죄요, 다정다감함의 단죄(斷罪)인가. _ 박경리, <토지 11> , p446/662


 아편(鴉片). 이제는 고전적인 약물이 되고 말았지만, 페어뱅크(John King Fairbank, 1907~1991)의 <캠브리지 중국사>에 의하면 19세기 말에 중국 인구의 약 10%가 아편 중독 상태에 있었을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강력한 마약이었다. 물론, 청(淸)의 아편은 인도에서 재배되어 밀수의 형태로 청나라로 수출되고, 다시 인도 면화산업에 재투자되었다는 점에서 1920년대 당시 만주와 국내산 아편이 유통된 우리나라와 진행된 양상은 달랐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도 적지 않은 중독자가 있었음을 생각해본다면, 전체 인구의 약 10%가 중독되었다는 통계가 의미하는 바는 적지 않다. 청나라의 아편이 자본주의/제국주의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면, 우리나라의 아편은 시대의 절망에 빠진 이들의 안식처가 되었다는 점은 차이가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마약 문제의 심각성과 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의 차가움은 매한가지가 아니었을까.


 1836년 무렵에는 매년 대략 1,820톤의 아편이 중국으로 수입되고 있었다. 아편 중독자는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1836년 당시 서양의 통계로는 대략 1,250만 명의 흡연자가 있었다고 한다... 스펜스 Jonathan Spence는 꼼꼼한 연구를 통해 1880년 말경이면 10%의 인구가 아편을 흡연하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결론을 내놓았다. 심각한 중독자가 대략 3~5%라고 한다면 1890년경에는 1,500만명의 중독자가 있었을 것이다. _ 존 K. 페어뱅크, <캠브리지 중국사 10 (상) >, p296


 1831년 봄베이 식민정부는 남부 마흐라타 Mahratta에 원면 구입 대행사를 개설했다. 1839년에는 기반시설과 시범농장에 대한 추가 투자와 아편 생산에서 얻은 자본을 면화에 투입하는 방안이 동인도회사 내에서 논의되었다... 인도의 면화 수출을 늘리고 개선하기 위해 많은 사람이 노력했다... 그리하여 엄청난 추가 공급선이 열렸다. 그 공급선을 통해 면직물 제조산업의 주요 부문에서 느꼈던 원료 부족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다. _ 스벤 베커트, <면화의 제국>, p153/688


 어느 사회나 마약중독자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은 좋을리 없다. 치유할 수 없는 정신병으로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토지>의 기화 역시 마찬가지로 느꼈을 것이고, 기화는 버림받아 상처받은 마음에 아편을 했다는 자책감을 더하며 서서히 무너져 간다. 무너지는 자신을 지탱하기 위해 더 강한 자극을 찾으면서. 중독에서 죽음에 이르는 마약중독에 관해 오후의 <우리는 모른다>는 두 실험을 소개하며 우리에게 메세지를 전달한다.


 마약의 중독성을 보여주는 유명한 실험이 있습니다. 좁은 공간에 갇혀 있는 수컷 쥐에게 '순수한 물(이하 물)'과 '모르핀을 섞은 물(이하 마약음료)'을 제시합니다. 쥐는 물 대신 마약음료를 선택하고, 결국 중독이 됐다가 어느 순간 죽어버리죠. 방법이 조금 다를 뿐 이런 식의 실험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습니다. 쥐에게 관을 삽입해 약물을 투여하기도 하고, 원숭이에게 코카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결과는 늘 중독, 그리고 죽음이죠. _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p396/412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에 소개된 하나의 실험은 마약에 중독되어 죽어가는 쥐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이고, 다른 하나의 실험은 마약을 제공하되 보다 쾌적한 환경과 다른 대체물들을 쥐들에게 제공한 실험이다. 첫 번째 실험이 마약의 위험성을 알려주는 전형적인 실험이었다면, 두 번째 실험에서는 쾌적한 환경의 쥐들이 보다 높은 비율로 마약의 유혹에서 벗어남을 보여주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의 실험이 기화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알렉산더 박사는 자신의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자신있게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게 좋은 환경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어떤 중동성이 강한 마약이라도 거부할 수 있다. 금단현상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강하지 않다. 부정적인 주변 환경이 우리가 금단현상을 거부할 수 없는 것으로 느끼게 만들 뿐이다.' _ 오후,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p398/412


 다시 <토지>로 돌아와 보자. 만약, 기화가 길상과 상현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더라도 주변에 누군가 기화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 양현을 키우는 어려움에 공감할 수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뒤늦게 서희와 만나게 되지만, 이미 너무 늦은 뒤가 되고 말았다. 이제 머지 않아 기화 역시 <토지>의 장에서 월선처럼 사라질 것이다. 참 어려운 삶을 살았지만 월선의 죽음이 애잔함을 남겼다면, 봉선의 무너져 내림은 안타까움을 전달한다.... 


 개인은 자신보다 오래되고, 자신보다 영속하며, 모든 면에서 자신을 감싸는 집단적 존재와의 유대를 더욱 강하게 느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 행동의 유일한 목표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자신을 자신보다 더 중요한 목적의 수단으로 이해함으로써 자신의 중요성을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삶 본래의 목적과 지향성을 회복했기 때문에 삶의 의미가 되살아날 것이다. _ 에밀 뒤르켐, <자살론>, p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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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1-12-12 01:02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중국 인구의 10%가 아편을 했다면 제국주의자들이 한 나라를 말살하고자 한 집요함이 얼마나 악날했는지 알수 있을것 같아요~~
마약에 대한 실험의 결과에 공감합니다. 결국 모든 것이 환경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거네요.
그렇기에 모든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하는데 현실이 그렇지 않아 너무 안타까워요.
아편이란 단어는 왜이리 슬픈지 모르겠어요^^
겨울호랑이님께서 토지를 읽으신지 벌써 22주차시네요.
완독을 응원합니다^^

겨울호랑이 2021-12-12 10:41   좋아요 3 | URL
마약 통계가 정확하기 어려운 부분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나라 말기의 마약 문제는 정말 심각했던 것 같아요.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도 그런 부분이 다루어지지만, 서양의 자본주의로부터 크게 당했기에 오늘날 중국에서는 마약 범죄에 유난히 민감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강력한 처벌 보다 필요한 것이 주변의 사랑과 관심임을 생각해 본다면, 처벌보다는 예방에 보다 중점을 둬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함께 해봅니다. 「토지」는 지난 7월부터 시작해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네요. 페넬로페님 격려에 힘내어 완독에 가까이 다가갑네요. 감사합니다.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

mini74 2021-12-12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도 중독자가 꽤 많았다고 봤어요 또 일본이 도망가면서 아편도 엄청 풀었다고 하더라고요 ㅠㅠ 겨울호랑이님 토지 읽으면 새록 새록 예전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

겨울호랑이 2021-12-13 06:14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어떤 이들은 일제 시기를 통해 근대화가 이루어졌다 말하지만, 이로 인해 우리가 입은 손해가 정신적, 물질적으로 더 많았음을 생각하게 됩니다. 미니님 오늘도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갑인일(9일)에 황상이 시중을 드는 신하들에게 물었다. "창업과 수성(守成)49에서 어느 것이 어려운가?"

방현령이 말하였다. "초매(草昧)할 처음에는 여러 영웅들과 나란히 일어나서 힘을 가지고 다툰 다음에 이들을 신하로 삼는 것이니 창업이 어렵습니다."

위징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은 간난(艱難) 가운데서 이를 얻었고, 안일(安逸)한 데서 이를 잃지 않은 것이 없었으니, 수성이 어렵습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방현령과 나는 함께 천하를 빼앗았으니, 백 번 죽을 고비를 넘기고 한 번 살아났다. 그러므로 창업의 어려움을 안다. 위징과 나는 함께 천하를 편안하게 하였으니 항상 교만하고 사치스러움이 부귀한 가운데서 생기고, 화란(禍亂)은 소홀히 하는 데서 생겨날까 걱정하였다. 그러므로 수성의 어려움을 안다. 그러나 창업의 어려움은 이미 지나간 것이지만 수성의 어려움은 바야흐로 마땅히 여러분과 더불어 이를 신중히 하여야 한다."

방현령 등이 절하며 말하였다. "폐하께서 이러한 말을 하시기에 이르셨으니 사해(四海)의 복입니다."

무릇 비록 군자라도 적은 허물이 없을 수는 없는데 진실로 올바른 길에서는 해가 되지 않으니 이는 생략할 수 있습니다. 이미 군자라고 말하고 다시 그를 믿지 못할까 의심한다면 곧은 나무를 세워 놓고 그 그림자가 구부러질까 의심하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폐하께서는 진실로 신중하게 군자를 선발하실 수 있고, 예(禮)로써 그를 믿고 채용하면 어찌 잘 다스려지지 않을까를 걱정하십니까?

위징이 간하였다. "신이 듣건대, ‘임금은 신하를 예(禮)로써 부리고, 신하는 충성으로써 임금을 섬긴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대장군을 파견하여 망한 나라의 부녀자와 대질하여 휘장 속에서 있었던 사사로운 일을 말하게 하니, 사실이라고 하여도 얻는 것은 가볍고 헛된 말이라고 한다면 잃는 것은 무겁습니다.

정관(貞觀, 당 태종의 연호) 연간의 초기에 천하에는 기근이 들고 흉년이 들어서 쌀 한 말이 한 필의 비단 값이 되었으나 백성들이 원망하지 않는 것은 폐하께서 걱정하고 염려하며 잊지 않고 계신 것을 알았던 때문입니다. 최근 몇 년 동안은 풍년이 들어서 한 필의 비단으로 속(粟) 10여 곡(斛)을 얻게 되었으나 백성들이 원망하고 탄식하는 것은 폐하께서 다시는 이러한 것을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급하지 않은 업무를 경영하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로부터 나라가 흥하느냐 망하느냐 하는 것은 쌓아 놓은 곡식이 많은지 적은지를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백성들이 고생하느냐 즐거워하느냐에 있습니다.

무릇 모양을 비추어 보려면 물을 고요하게 하는 것 만한 것이 없고, 실패한 것을 비추어 보는 데는 망한 나라만한 것이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수에서 거울을 찾아보시고, 사치를 제거하고 간략한 것을 좇으시며, 충성스러운 사람을 가까이 하시고, 망령된 사람을 멀리하며, 오늘날에 무사한 것을 가져다가 과거에 공손하고 검소하였던 것으로 계획을 세워 간다면 아주 훌륭하고 아주 아름답게 되어 진실로 견줄 만한 것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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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라는 춤을 추거나 플루트 부는 기술 같은 특별한 재능은 없었으나 외설적인 행위와 관객을 포복절도하게 하는 코미디에 탁월한 끼를 가진 서커스 배우가 되었다. 테오도라는 저속한 춤에 능했고, 그것이 바로 그녀와 취향이 비슷했으리라 짐작되는 유스티아누스를 사로잡은 비법이었다. 그리하여 이윽고 결혼에 장애가 되는 법률이 개정되자 그녀는 유스티아누스의 아내가 되고, 나아가 제국의 황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_ 주디스 헤린, <비잔티움> , p85


 2022년 대통령선거까지 불과 100일도 안 남은 시점이기에 벌써 모든 이슈는 대선이라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검색어의 상단은 대선 관련된 내용이 차리를 차지하는 요즘이다. 며칠 새 갑자기 뜨는 이슈 중 하나는 야당 후보 부인의 과거 문제일 것이다. 그의 과거와 관련하여 많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중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바로 유스티아누스 1세(Flavius Petrus Sabbatius Iustinianus, 482~565)의 부인 테오도라 황후(Theodora, 500 ?~548)다. 비천하게 태어났지만, 유스티아누스를 만나 결국은 황후의 자리에까지 오른 인물. 그렇지만, 황후의 자리에 오른 테오도라는 결코 만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황후 테오도라는 '니카' 반란 당시 도주하려는 황제 일행을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이소크라테스와 같은 고대 작가들의 말을 인용해 이렇게 말했다. "자줏빛 어의는 빛나는 수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나는 도망치지 않겠어요. 도망치느니 이 황후복을 입은 채 죽고 말겠어요." 유스티아누스도 아내 테오도라의 결연한 태도에 힘을 얻었는지 이윽고 반도들과 협상하거나 도주하기를 포기하고, 폭력을 사용하기로 결심했다.(p145)... 테오도라는 비잔티움에서 막강한 권한을 지닌 여자들 가운데 최초는 아니었지만 가장 걸출한 여성들 중의 한 사람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비잔티움의 황후와 황제 미망인들은 다른 중세사회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_ 주디스 헤린, <비잔티움> , p146


 유명한 라벤나의 산 비탈레 성당(Basilica di San Vitale)의 패널화에서 보여지듯 테오도라는 유스티아누스의 좋은 친구이자 반려자로 천년 제국 비잔티움의 초석을 놓은 인물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에서 테오도라의 비천한 출생 이야기는 스쳐지나가는 가벼운 이야기에 불과하다. 이들이 동로마의 역사에 남긴 발자취가 너무도 뚜렸했기 때문이리라.


 유스티아누스라는 인물 자신이 워낙 탁월한 존재였음을 알려주는 명명백백한 증거는 세계적인 폭을 지닌 그의 정치적 목표와 유례없이 다양했던 그의 활동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 그의 성격에는 상당히 유쾌하지 못한 약점들이 수없이 많았지만, 이런 약점들도 모든 것을 포괄하는 그의 정신의 힘 앞에서는 빛을 잃었다.(p49)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이끈 인물은 그가 아니라 벨리사리우스였고, 또 그와 나란히 나르세스였다. 거대한 법전 편찬을 완수한 인물은 그가 아니라 트리보니아누스였고, 가장 중요한 행정조치들을 강구한 인물은 그가 아니라 총독부 총독이었던 카파도키아의 요한네스였다. 그러나 그의 위대한 시대에 이루어진 모든 위대한 업적들을 고취시킨 인물은 바로 유스티아누스였다. _게오르크 오스트로고르스키, <비잔티움 제국사 324-1453>, p50


 2021년말 대선 정국 과정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를 보며 동로마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현재로서는 그가 대통령이 될 지 아닐런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대통령이 되어 그의 공약대로 공정하고 살기 좋은 나라가 된다면 이전의 모든 흠결은 별문제가 되지 않을텐데,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중요하고 긴급한 현안이 많은데, 별로 중요하지 않은 문제가 주요 사안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본다...


ps. 테오도라의 문제는 유스티아누스 치세가 괜찮아서 별 문제가 아니었겠지만,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두고두고 주위에서 말들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을 글말미에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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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1-12-10 00: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역사는 신기하군요. 다른 나라 역사는 자신이 몸 담은 곳과 다르게 느껴지니까요. 저한테 테오도라 황후는 매력적이었거든요. 당시에 그 신분으로 거기까지 올라가다니… 물론 결점도 많았지만요.

겨울호랑이 2021-12-10 07:18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말씀처럼 우리 나라와 다른 나라의 역사는 다른 문화, 사회적 배경탓인지 때로는 신기하고 이해가 잘 안가는 일이 일어나는 듯합니다. 반면, 어떤 경우에는 예전에도 현재와 비슷한 사건이 과거에도 있었다는 사실을 통해 교훈을 주는 것이 역사의 매력이 아닐까도 생각해 봅니다. 시공간을 넘어선 역사의 법칙은 이 점에서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꼬마요정님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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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주의와 역사- 겔너와 스미스
김인중 지음 / 아카넷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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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 칼, 책- 인류 역사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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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기, 칼, 책 - 인류 역사의 구조
어니스트 겔너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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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사회는 식량의, 그리고 식량보다는 덜 중요하지만 다른 재화의 체계적인 생산과 저장에 의해 정의된다. 저장된 잉여가 실재하므로 사회는 그 잉여의 분배의 실행, 그리고 그 대외 방위에 불가피하게 힘을 쏟게 된다. 따라서 수렵인들 사이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났던 폭력은 농업 생산자들 사이에서 필연적인 것이 된다... 잉여의 규모와 실재는 일반적으로 사회를 복잡한 내적 분화로 이끌어 간다. 저장물의 실재가 낳을 수밖에 없는 내적 갈드의 결과, 사회는 몹시 불평등해지고 첨예하게 계급화된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1

어니스트 겔너(Ernest Gellner, 1925 ~ 1995)가 바라보는 농경 사회는 불평등한 계급사회이면서 매우 안정적인 사회다. 책 제목인 생산의 도구인 '쟁기 plough', 억압의 도구인 '칼 sword', 그리고 인식의 도구인 '책 book'은 이 시기를 상징하는 도구이자 계급의 상징이다. 겔너에 의하면 농경 사회는 시대의 이름과는 다르게 노동을 천시하고, 생산이 인정받지 못한 사회다. 생산의 잉여가치는 힘을 가진 자에게 돌아갔으며, 생산자들이 수탈을 막기 위해 의지한 종교는 피지배층으로부터는 존경과 부를 헌납받으며, 지배층의 권력을 공고히 하며 시대의 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시켰다. 일찍이 플라톤(Platon, BC428 ~ BC348)이 <국가/정체 Politeia>에서 말한 분업(分業)으로 유지된 불평등한 계급사회가 바로 농경사회였다.

사람들은 노동하며 살아가지만, 특권을 소유하는 건 억압자들이거나 신호를 조작하여 억압자들을 결집시킬 수 있는 자이다. 농경 사회는 인류의 상당수를 굶주림과 억압에 종속시킨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1

칼은 쟁기보다 강하다. 칼을 쓸 때 전문성을 늘 갈고 닦는 이들은, 간헐적으로 그리고 '절박할 때'에만 칼을 잡는 농부들보다 칼을 훨씬 잘 다룰 것이다... 권력의 평형상태는 지속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칼을 쥔 이들이 우세할 때, 무방비의 생산자들에게 생존과 생산에 필요한 것 이상을 허용할 이유는 거의 없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199

억압 전문가들에게 약탈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또 다른 간접적인 방식으로도 작동한다. 무시무시한 약탈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부를 종교와 연결하여 신성의 보호를 받는 것이었다.(p130)... 이런 유형의 사회에서, 생산자가 축적한 잉여는 폭력의 독점자들에게 강제로 탈취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무인 계층으로 진입하는 입장권을 구매하거나 사회의 제의적 장치를 강화하는 데로 자연스럽게 흘러 들어간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131

농경사회의 불평등한 안정적 관계는 인식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에 의해 깨지게 된다. 인식에서 일어난 이러한 변화는 종교개혁, 계몽주의를 통해 과학의 시대를 불러왔고, 과학을 통해 갑작스럽게 늘어난 생산은 경제 체제의 변화와 함께 분업의 종말을 가져오게 되었다.

인간활동의 세 영역인 인식, 억압, 생산 모두가 동시에 그 기적이 일어난 특별하고도 이로운 조건 속에 놓였을 것이다. 인식에서는, 제의에서 교리로 강조점이 이동하고, 그 교리에 단일한 정점을 부여함으로써 관점을 통합시켜, 통합되고 질서 정연한 세계라는 관점을 낳았다... 통합되고 질서 정연한 자연과 평등주의적인 보편적인 이성이라는 관념은,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기적에 의해서 자연에 대한 효과적인 탐구와 이용으로 나아갔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3

이성(理性)에 대한 각성으로 가져온 자연관(自然觀)의 변화, 이와 함께 발달한 과학(科學)을 통한 대량 생산 체제는 기존의 농경 사회의 농민의 쟁기, 기사의 칼, 성직자의 책을 함께 지닌 전문인을 요구하는 사회로 변화시켰다. 이처럼 변화된 시대 속에서 새로운 인류 역사의 구조를 어떻게 조직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겔너가 <쟁기, 칼, 책>을 통해 던진 큰 물음이다.

우리는 인간 활동의 3대 영역인 인식과 생산, 억압이 분업의 중요한 단계를 거치며 변화해 온 과정을 개괄적으로 살펴보았다. 우리는 미래에 관하여 무엇을 예상할 수 있을까?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274

싸우고 기도하고 일하는 세 집단 사이에서 이루어지던 과거의 질적인 분업은 마침내 무너졌다. 그것을 대체한 것은, 자유롭고 유능하며 자신의 전문 분야를 기꺼이 변화시키는, 동질적 '기능적' 전문인들이었다. 그들은 지적이지만 세속화된 동일한 관용구 안에서 소통했고, 그 관용구는 기록에 의해서 전파되지만 배타적인지는 않은 고급문화에서 비롯된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354

이상에서 보듯 겔너는 <쟁기, 칼, 책>을 통해 농경사회의 불평등성이 근대사회의 평등성으로 변화되는 것을 인식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가 종교개혁, 산업혁명 등으로 이어져 기존 질서를 붕괴시켰음을 말한다. 그렇지만, 겔너가 설명한 이론으로 비서구권 사회에 대한 설명을 적절하게 할 수 있을까. 마치 세 다리를 가지고 있는 정(鼎)과 같이 농경 사회를 유지시켜온 서구의 계급관계는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을 기반으로 인식세계를 지배한 교회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겔너의 인식은 농경 시대 중에서도 유학(儒學)을 기반으로 한 동아시아 세계를 분석하기에는, 그리고 앞으로의 인류의 미래를 전망하기에는 부족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한계에도 불구하고, 논의의 범위를 서구사회로 한정짓는다면, <쟁기, 칼, 책>은 근대 서양사를 움직이는 동력(動力)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진다.

(플라톤은) 신화를 보유하고 고대 그리스의 관습과 제의를 영속화함으로써 이성이 강화되리라 잘못 판단했다. 어떤 면에서 인도는 플라톤의 계획을 서구 이상으로 증명해 보였다. 강력한 윤리를 지니고 있었지만 신학에 갇히지 않았던 중국은 하나의 변형 사례였으며, 유교에서는 비개인적인 도덕을 존중하기에 이르렀다. _ 어니스트 겔너, <쟁기, 칼, 책>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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