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자는 스스로 왕숙문을 남겨 놓고 말하였다.
"지난번에 그대만 홀로 말이 없었는데, 어떤 생각이 있었는가?" 왕숙문이 말하였다.
"저 왕숙문은 태자의 총애를 입었고 소견이 있었으나 감히 그것을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태자의 직분은 마땅히 반찬을 살펴보고 문안해야 하는 것이니, 의당 외부의 일을 말해서는 아니 됩니다. 폐하께서 자리에 계신 지 오래되었는데, 만약 태자가 인심을 거둔다고 의심하면 무엇을 가지고서 스스로 해명하겠습니까!"

가만히 생각건대 태종(太宗)의 성대한 업적을 기울게 하고 전하의 집안과 나라를 위태롭게 할까 두려우니, 바라건대 전하께서는 그날로 상주하여 보고하여 여러 소인배를 물리쳐 내쫓고 정치를 주군에게서 나오게 하면 사방이 평안함을 얻습니다.

경술일(14일)에 형남(荊南)에서 모구(毛龜) 둘을 헌상하자, 황상이 말하였다.
"짐이 보배로 여기는 것은 오직 어진 사람이다. 가화(嘉和)와 신지(神芝)는 모두 허황된 아름다움일 뿐이어서 《춘추(春秋)》에 상서로운 것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지금부터 아름답고 상서로운 것이 있다면 다만 유사에게 알리도록 하고 다시는 그것을 보고하지 마라. 진기한 새나 짐승의 경우에 이르러도 모두 바칠 수 없도록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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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8년 유럽이 희망봉을 돌아 인도양으로 진입하고 있을 때 해금 정책을 결정한 중국은 인도양에서 후퇴하고 있었다. 아시아의 해양 세계가 완전히 활동을 멈춘 것은 결코 아니며 류큐를 비롯한 거점들을 연결하는 새로운 네트워크가 발전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난날의 활력 넘치는 해상 활동을 대신하지는 못했다. 얼마 후 유럽인이 인도양 세계에 출몰하기 시작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근대사의 시작 시점에서 세계 최강의 해상력을 가진 세계 최대의 제국이 스스로 무대를 떠나고 그 빈자리에 유럽 세력이 들어왔다. 이들은 국가와 상인 자본이 결합한 탄탄한 조직을 갖추고 세계의 바다로 공격적으로 팽창해나갔다. 중국이 바다 너머 세계를 자신들의 세계 내부로 끌어들이려 한 반면 유럽은 바다를 통해 세계로 외연을 확대했다. 결과적으로 근대 세계의 해양 패권은 유럽의 차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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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에서 오늘날 민주주의 사유의 상당 부분을 특징짓는 정치관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정치관은 합리주의적이고 보편주의적이며 개인주의적인 것으로 특징지을 수 있다. 나는 이 정치관의 주요 결함이, 갈등과 결정의 차원에 놓인 정치적인 것의 특정성에 관한 안목이 없고, 적대가 사회적 삶에서 구성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르크스주의의 종언 이후 적대라는 통념 없이도 지낼 수 있다는 가상illusion이 광범위하게 퍼졌다. 하지만 이 믿음에는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부지불식간에 나타날 수 있는 적대를 아무 준비 없이 맞이해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 P12

허스트는 이렇게 쓰고 있다. "다원주의 국가는 결사체들에 대한 지원과 감독을 자신의 존재 이유로 정의한다. 다원주의 국가의 법적 과업은 결사체들 사이의 공평성을 보장하고 결사체들의 행동에 대해 치안을 유지하는 것이다. 다윈주의 국가는 개인과 결사체 모두를 실제 인격체로 다루며, 개인들이 다른 개인들과 결사체를 형성함으로써만 개인성을 찾을 수 있고 자기 자신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며, 개인과 결사체 양자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마지막 지점은 특히 중요하며, 따라서 좀 더 정교해져야 한다. 이 지점은 민주주의 이론에 대한 성찰의 핵심 지점을 가리킨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P159

내가 제안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치적 원칙들을 지지하는 것이야말로 민주적 평등에 요구되는 동질성의 토대로 간주되어야한다. 여기서 문제의 원칙은 자유와 평등의 원칙이며 이 원칙은 확실히 다양한 해석들의 근원이며 아무도 정확한 해석을 소유한다고 자임할 수 없다. 따라서 이 원칙들을 해석하기 위한 논쟁의 틀 속에서 결정을 내리고 국가 의지를 규정하려면, 일정한 수의 메커니즘과 절차의 확립이 본질적으로 중요하다. 따라서 나는 슈미트와 켈젠 둘 다에 대해 부분적으로만 동의한다.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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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와 동아시아 고대국가
권오영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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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상 실크로드와 문명의 교류-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
강희정 외 지음 / 사회평론아카데미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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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화’는 아포이키스모스(apoikismos)라는 용어를 번역한 것이다. 그리스어 아포이키아(apoikia)에서 온 것으로, ‘집에서 떨어진 집(home away from home)’을 뜻한다.(Antonaccio, 220~223) 고대 그리스 도시국가 주민들이 해외로 나가 새로 지은 ‘작은집’은 원래의 ‘큰집’에 정치적으로 종속되지 않는 독립 공동체로, 19~20세기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영토 지배에 큰 관심이 없었다. 사실 이 시기는 ‘모국’ 자체도 형성 중인 때였기 때문에 먼 이역 땅으로 가서 ‘영토’를 확보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확산해갈 때 그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개인적일 수도 있고 집단적일 수도 있다.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은 상인, 장인, 용병 등 부류가 실로 다양했다. 어떻든 국가가 주도하여 의도적ㆍ계획적으로 주민들을 내보내 영토를 차지하는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다시 정리하면, 지중해 세계는 지리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 단일한 구조가 아니며, 페니키아와 그리스 민족의 해상 활동을 두고 해양 식민 ‘제국’을 건설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Antonaccio, 220~223) 그보다는 올리브기름, 포도주, 직물, 도자기, 철, 은 같은 상품이 이동하고, 건축, 문자, 시가 등 문화 자산들이 전달되는 해상 네트워크들의 중첩으로 그리는 게 타당하다. 지중해 해안 지역은 일종의 세포막(membrane)이다. 선박이 해안까지 오면 강들이 모세혈관 역할을 하여 상품과 문화 자산들을 내륙으로 흡수해간다. 이렇게 해서 물질문화, 관습, 이데올로기, 음식 그리고 사람의 유전자까지 전파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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