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라인하르트 코젤렉 외 지음, 오토 브루너 외 엮음, 최호근 옮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기 / 푸른역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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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포함하면서 '역사'는 이미 경험된 것과 아직도 경험되고 있는 모든 것을 규율하는 개념 ein regulativer Begriff이 되었다. 그 이후로 이 개념은 단순한 이야기나 역사학의 영역을 훨씬 초월한다.(p12)...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Geschichte an und fur sich' 개념 속에는 예전부터 수많은 의미의 결이 유입되었다. 근대적 역사 개념은 모든 것들을 거부하지 않고, 예전의 의미 영역들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기 안에서 결합하였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 1923 ~ 2006)의 개념사 사전 16번째 주제는 역사(Geschichte, Historie)다. 개념사 사전에 의하면 근대 이후 '역사'의 특징은 크게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그리고 '세계사'로 요약된다. 마치 강(江)이 수많은 시냇물들의 흐름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거대한 물줄기로 변해가는 것처럼 '즉자와 대자로서의 역사' 라는 근대적 개념은 당연하게 보이지만, '역사'의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역사란 인간, 자연, 신, 이 세 종류에 대한 실화이다 Historiae, id est, verae narrationis tria sunt genera : humanum, naturale, divinum." 인간의 역사서술은 개연적인 것을 다루고, 자연사는 필연성을 다루며, 신적인 역사는 종교의 진리를 다룬다. 이러한 연속적 관계를 세 개의 법이론과 연관시켰던 보댕은, 바로 이 세 가지 역사의 관계 속에서 그 다음 단계로 갈수록 확실성이 증가한다고 보았다(p187)... 자연과 성사가 일반적인 역사 과정에 편입됨으로써, 역사 개념은 인간 경험과 기대의 근본 개념으로 부상하였다. '세계사'라는 표현은 이제 이 과정의 결과를 재현하는 데 특히 적합하게 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94


 보댕(Jean Bodin, 1530 ~ 1596)이 내린 역사의 정의에는 인간, 자연, 신 이라는 3주체가 표현된다. 고대에는 각각 분리된 주체들이 중세를 거치면서 신(神)의 질서가 인간의 질서에 영향을 미쳤고, 근대에 자연 법칙의 발견을 통해 자연(自然)이 인간과 분리될 수 없음을 깨닫는 일련의 과정이 오늘날 서양의 역사 개념이 성립이라는 사실을 <개념사 사전>을 통해 알게 된다. 이같은 과정의 결과 계몽 시대 이후 '역사일반'이라는 개념이 도출되었다.


 '역사일반 Geschichete uberhaupt'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특징짓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께로 소급되지 않고자 분투하며 보여준 성취다. 이를 통해서 고유한 시간의 노출이 역사에서만 일어난다. 클라데니우스가 통상적인 언어 용업에 맞서 강조했던 것처럼, 그것은 세 개의 시간적 확장을 포함한다.(p131).. 결국 최후의 심급으로서 역사를 자기 자신에 소급시키는 것을 명확하게 표현하기 위해 각인된 '역사일반'이라는 표현이, 그와 상응하는 유행어처럼 회자되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33


 이러한 개념의 변화에 따라 배경이 되는 시간과 공간의 의미도 변화되었다. 중세의 절대적 시간 관념이 무너지면서 '과거-현재-미래'의 의미가 중요해졌고, 자연법칙에 따라 일반적인 '역사법칙'을 도출하려는 노력이 일어났다. 이러한 과정에서 미래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생겨났으며, 이러한 역사 의지를 '지역'에서 '세계'로 확대되어 왔음을 개념사 역사 안에서 발견한다.


 시간의 세 차원이 서로 파열되어나가는 것처럼 보였다. 현재는 너무도 빠르고 너무도 임시적인 것이 되었다.(p226)... 역사 개념은 한편에서는 빠르게 사라져 가는 과거의 지속을 의미하면서도, 동시에 미래에 대해서 경도할 것을 요구하며 이미 드러나기 시작한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었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229


 역사에 공간적으로 상응하는 것이 세계사 Weltgeschichte다. 시간적으로 이 역사에 상응하는 것은 진보 Forschritt의 특성이다. 진보는 '역사'와 더불어 비로소 개념으로 표현되었다. 그 후 19세기 오면서 이 두 개념은 다소 분리되어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역사가 비동시적인 것의 동시성 Gleichzeitigkeit der Ungleichzeitigen 내지 동시적인 것의 비동시성 Ungleichzeitigkeit der Gleichzeitigen을 하나의 개념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은, 그리고 바로 이 점에서 진보와도 유사한 일면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이 새로운 역사의 구조적 특성들 가운데 속한다._라인하르트 코젤렉,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 p15


 <코젤렉의 개념사 사전 16 : 역사>에서는 이러한 역사의 흐름에 순행 또는 역행하는 여러 흐름을 상세하게 보여주기에 이를 단번에 정리하는 것은 분명 무리가 있다. 아니,  어쩌면 '개념사'라는 시리즈의 핵심을 보여주는 이 단어를 요약한다는 것 자체가 지나친 욕심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역사를 '역사의 3주체 - 인간, 자연, 신-' 를 '시간 - 과거, 현재, 미래 -'과 '공간 - 지역사, 세계사 -'의 관점에서 정의한다는 틀을 갖고 개념사를 들여다본다는 정도로 정리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원래는 동양(東洋)의 사관(史觀)과 서양(西洋)의 사관을 비교하는 곳까지 나아가려고 했으나,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아쉽지만 다음으로 넘기기로 하고 이만 마무리하도록 하자...

헤르더 Herder는 <인류사의 철학 이념 Ideen zur Philosophie der Geschichte der Menscbbie>을 출판할 때, 자연과 마찬가지로 역사 가운데에서도 "사물의 본질 속에 놓여있는 자연의 법칙들이 작용하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였다. 그와 같은 "규칙"은 곧, "오용은 처벌받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계속해서 자라가는 이성의 지칠 줄 모르는 바로 그 열정을 통해 무질서가 질서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 역사의 도덕은 과정으로서의 역사로 시간화 verzeitlicht 되었다. "세계사는 세계법정 DIe Weltgeschichte ist das Weltgericht"이라는, 1784년 실러 Schiller가 표명한 시의 반구가 빠르게 유행하였다. - P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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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검찰이 수사에 착수해 2018년 한만호가 위증죄로 복역을 마치고 출소하면서 최종적으로 마무리된 이른바 한명숙 사건, 이 길고긴 대하드라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사건을 희극으로 본다면 검찰일 것이다. 양심과 도덕이라는 가면을 쓴 정치지도자(한명숙)의 이중성을 폭로하고 숨겨진 부패를 단죄했으며, 그 정의 실현의 과정을 방해한 자(한만호)까지 처단했으니 주인공으로 자격이 충분하다. 반면 비극일 경우 주인공은 한명숙이다. 전임 정권을 향한 정치 보복에 칼잡이로 나선 검찰의 먹잇감이 된 정치 거물, 검찰의 무리한 수사로 선거에서 낙선하고 검찰의 진술 조작과 위증교사로 법정에서도 결국 패배해 정치 생명마저 끊겼다. 하지만 내가 취재하면서 내린 결론은 이 거대한 연극은 희극도 비극도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부조리극에 가깝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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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서평단 참여는 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 뉴스타파에서 나온 신간은 최근 우리 현실과 깊은 관련 주제 때문인지 마음이 간다. 이제는 공소시효가 끝난 사건인 ‘한명숙 사건‘이지만, 진실의 유효기간, ‘무오류‘의 검찰은 없다는 두 기자의 기록이 인상깊게 다가온다...

이 책의 부제는 ‘죄수들이 쓴 공소장‘이다. 주어를 ‘죄수‘라는 상징적인 존재로 한정했지만 넓게 보면 ‘힘없고 평범한 시민‘이라고 하는게 의미에 더 부합한다. 공소의 대상은 검찰이다. 특정한 사건을 담당했던 개별 검사를 지칭할 수도 있지만 기득권을 지키려는 권력으로서의 검찰 시스템을 포함한다. 소(訴)에 대한 심판은 재판정이 아니라 시민 법정에서 진행될 것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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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나라가 일어나고 망했던 것과 한나라와는 아주 다릅니다. 옛날 주나라는 작위를 5등으로 나누었고, 제후들이 스스로 정치를 하게 되어 줄기와 뿌리가 벌써 신약해졌는데 가지와 잎이 무성하게 되었으니, 그러므로 마지막에는 합종과 연횡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는 형세와 운수가 그리했습니다. 한나라는 진(秦)나라의 제도를 이어받아서 바꾸어 군현(郡縣)제도를 세웠으며, 군주는 오직 자기만의 위엄을 갖고 있고, 신하는 백 년 정도 가는 권한을 갖는 일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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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8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5-08 20: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법원들, 특히 연방헌법재판소는 국가사회주의 불법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라드브루흐 공식 Radbruchsche Formel"을 적용했는데, 이에 따르면 부당한 실정법도 원칙적으로 구속력을 유지하지만, "실정법과 정의 사이의 모순의 정도가 너무 지나쳐서 해당 법이 ‘부당한 법으로서 정의에서 벗어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않다" 는 내용이다.  - P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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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1-05-06 22: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나마나 한 얘기일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인류가 정의를 정의 내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21-05-07 00:09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사실 인간이 만들어 낸 수많은 개념들이 현실과 차이나는 경우가 반드시 정의에만 한정된 문제는 아닌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