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문재인 대통령 재임기간인 지난 5년, 서울 일부 지역의 부동산 가격은 2배 가까이 올랐다. 이런 결과는 문 대통령의 사회정의에 대한 약속과 부동산 정책을 실패로 이끌었다. 오늘날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주거 형태와 지역에 따라 m2당 약 9,500유로부터 2만 9,000유로까지 극심한 편차를 보인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된 한국의 부동산 위기> 中


 2022년 2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에는 한국 대선 관련 기사2편이 다뤄졌다. 그 중 하나인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된 한국의 부동산 위기>는 수도권 특히 서울 표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 상황을 잘 분석한 글이라 여겨져 일부를 옮겨본다. 기사는 정부의 부동산 가격을 억제하려는 정부의 정책이 실패로 이어지면서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표심이반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전한다. 2021년 후반부부터 집값이 하향세로 접어들었다고 하지만 아직 떠난 민심을 잡기에는 부족하다는 기사의 분석은 현재의 선거 상황을 잘 설명한다. 현 시점에서 부동산 정책에 대한 정부의 실패는 명확해 보인다. 그렇다면, 정부의 정책 방향은 잘못 되었는가?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 대한 실망감이 극에 달한 18~30세 청년층에서 이런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임기 초반에 정부는 다주택자들이 보유한 주택의 일부를 매도하도록 보유세를 대폭 인상했다. 그러나 양도세도 인상한 탓에, 다주택자들은 양도세 부담으로 보유한 주택을 선뜻 내놓지 않았다... 정부는 부동산 세금을 올리고 은행이 대출규제를 강화하면, 자산가들의 대출이 줄고 나아가 투기가 억제될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흘러갔다. 현금 보유액이 충분한 부유층은 굳이 대출을 받을 필요가 없기 때문에, 대출 금리 인상은 결국 서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킨 꼴이 됐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된 한국의 부동산 위기> 中


 부동산 가격이 급등한 일차적인 원인이 통화량의 급증에 있다는 것과 시중 유동성이 확대되었다는 사실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에 더해 문재인 정부 이후 이어진 경상수지 흑자 기조는 국외요인으로 유동성을 더욱 확장시켰을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가설을 세워보자.


 H : 국외적으로 경상수지 흑자로 인한 외환 공급의 과다로 인해 시장 유동성이 확장되었으며 이로 인해 부동산 가격이 확장되었다. 국내적으로는 가계대출 등 경제주체들의 자금수요 증가에 따른 통화량 증가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다.


 이러한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한국은행, 한국부동산원 등에서 각각 '경상수지 및 무역수지' , '주택매매가격 동향', 'M2 통화량 추이(평잔)', '가계신용동향'의 시계열 자료를 확보하여 그래프로 정리해보자.(해당 자료는 e-나라지표에서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림1] 경상수지, 부동산지수, M2평잔, 가계대출 증가율(by 겨울호랑이)


 시계열 그래프는 경상수지 증가율, 부동산 지수, M2(통화량)평잔 증가율, 가계대출 증가율이 전반적으로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직관적으로 보여주며, [그림1]에서는 특히 2019년 이후 급격히 우상향하는 그래프의 기울기를 확인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관계가 양의 관계 있음을 확인 후 상관분석(相關 分析, Correlation analysis)을 통해 이들간의 관계를 보다 상세히 살펴보자. 상관분석은 EXCEL로도 수행할 수 있으나, 이번 분석에서는 통계 프로그램인 SPSS를 활용하여 실행하였다.



[표1] 경상수지, 부동산지수, M2평잔, 가계대출 증가율간의 상관분석 결과(by 겨울호랑이)


 상관분석 결과 전반적으로 이들 요인들 간에는 양의 상관관계가 있으며, 특히 수도권과 전국의 부동산 지수와 통화량 지표인 M2 평잔증가율 간에는 매우 강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와 함께 가계대출증가율과 부동산 지수, 통화량 간에는 뚜렷한 양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지나, 당초 가설과는 달리 경상수지 증가율이 부동산 가격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크지 않은 것으로 분석된다. 상관분석만으로 이들간 인과관계를 설명하기에는 한계가 있지만, 큰 틀에서 방향성만 확인하는 것으로 하자.


[그림2] 가계신용동향(e-나라지표)


 이상의 분석자료와 함께 최근 꾸준히 증가한 가계신용동향의 자료를 함께 참조한다면, 정부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통화량 증가가 부동산 가격을 끌어올렸으며, 통화량 증가에는 가계신용(대출) 증가가 큰 영향을 미친다.'는. 이러한 분석 결과에 근거하여 정부는 강력한 부동산 대출 억제정책을 펼쳐나간 것이라 여겨진다. 여기까지 본다면 정부의 정책은 나름 합리적인 판단에 기대어 이루어졌다 보여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정책이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후 보여진 시장의 반응은 좋지 않았다. IS-LM모형에서 화폐시장의 균형 달성을 위해 대출이자율 규제를 통한 투기적 수요를 줄이려는 정부의 시도가 총수요(AD)측면의 압력이었다면, 이러한 압력이 주택시장의 총공급(AS)을 크게 줄이는 방향으로 시장은 반응했다. 양도세 인상을 통해 시장에 물량을 쏟아내게 하겠다는 의도는 정권 후에 매도하겠다는 반발에 부딪히게 되고, 총공급곡선을 하향이동시켰으며 전월세, 매매 물량을 비롯한 전반적인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켰다. 이에 대해 정부는 주택시장안정을 위해 공공주택 공급을 몇 차례에 걸쳐 약속했지만, 실제적으로 해당 물량이 시장에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현재의 시장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키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재의 상황으로 정리된다.


 관련내용 :  https://www.korea.kr/special/policyFocusView.do?newsId=148883591&pkgId=49500748 일문일답으로 알아본 '역대 최대 규모 주택공급 대책'


 <르몽드디플로마티크>에서 지적하듯 현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현재시점에서는 실패했다. 또한, 과도한 가계부채 해결을 위한 재정지출 확대 등의 대첵이 이어지지 않는 부분은 지금도 실패하는 부분이다. 그렇지만, 과도한 가계부채를 문제를 보고 이를 줄이려는 접근 자체를 정부의 실패와 무능력으로 규정하는 것은 지나친 것이 아닐까 여겨진다.  정리하자면, 현 시점에서 부동산의 실패를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정책의 방향성 자체가 틀렸다고 볼 수는 없지는 않을까. 부분의 최적화가 전체의 최적화를 의미하지 않았고, 전체의 최적화로 가는 과정에서 빚어지는 실패가 전반적인 무능으로 비춰지는 것은 아닐런지.


 내 집 마련의 어려움이, 청년층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아닐 것이다. 그것도 자가 주택 소유 비율이 56%에 불과한 대한민국에서 말이다. 그러나 꿈조차 꿀 수 없게 되면, 사람은 무력해진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오늘날 대한민국 청년들의 대부분은 중산층 출신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빈곤층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모 세대 때와는 달리, 이제는 계층 간 이동 사다리가 거의 끊긴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불안은 세대 갈등을 유발하고 나아가 악화시킨다. "지금 한국 청년들이 느끼는 감정은 단순한 불안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성세대를 향한 증오에 가깝습니다." 최항섭 교수가 덧붙였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된 한국의 부동산 위기> 中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은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정부재정지출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관료들의 부처 이기주의라 여겨진다. 적극적인 재정지출 확대를 통해 가계부분의 부담을 줄여주려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현시점에 이를 외면하는 행정관료들의 행태는 여러모로 우리를 답답하게 한다. 다만, 기술 및 행정 관료 문제는 민주주의를 통한 대리인 선출과는 다른 전문가 집단의 문제인 만틈 구분되어 판당해야 할 것이다. 오스트리아 학파인 루드비히 폰 미제스 (Ludwig von Mises, 1881~1973)의 철학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관료제(Bureaucracy)를 바라보는 그의 시선에는 동질감을 갖기에 이를 옮기는 것으로 글을 갈무리한다...


 정부는 2022년 1월, 소상공인에게 손실보상금 500만 원을 선지급했다. 그러나 ‘비대면’의 일상화로 인한 손실은,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할 수준이 아니었다. 서울대 행정대학원 박상인 교수는 “정부는 1회성 지원금의 형태 외에 지속적이고 직접적인 지원금 제공은 꺼렸다. 대신 저금리 대출을 통한 간접적인 재정지원을 선호했다”라고 설명했다. 대한민국은 공공부채를 늘리는 것에 유독 민감하다. 대한민국 국민의 가계부채가 급증하는 동안에도 공공부채는 OECD 국가 평균을 크게 밑돌았다. 대한민국의 GDP 대비 공공부채 비율은 2016년에 51.6%였고 2021년에는 58.8%였다. 참고로 프랑스는 146%를 기록했다. _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선거의 최대 쟁점이 된 한국의 부동산 위기> 中


 선의의 공무원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말자. 그는 민중의 이기심에 대항해서 자신의 우상을 위해 싸우는 것이 자신의 신성한 의무라는 생각으로 완전히 물들어 있다. 그는, 자기 생각에 영원한 신법(神法, divine law)의 옹호자다. 그는 개인주의의 옹호자들이 성문율로 작성한 인간의 법에 자신이 도덕적으로(morally) 구속되지 않는다고 여긴다. 인간은 신, 국가의 진정한 법을 바꿀 수 없다. 개개 국민은 자기 나라의 법들 중 하나를 어길 때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자다. 그러나 만약 공무원이 '국가(state)'의 이익을 위하느라고 정당하게 반포된 국법을 위반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반동적인(reactionary) 법원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는 기술적으로 위반의 죄를 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높은 도덕적 의미에서는 그는 옳았다. 그는 신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인간의 법들을 위반했다. _ 루드비히 폰 미제스, <관료제> , p142


 PS. 국가가 외국과 재화와 서비스를 거래한 결과 나타는 수입과 지출의 차액인 경상수지(經常收支, current account balance)의 증가율과 부동산 지수 증가율이 상대적으로 약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할 듯 싶다. 하나는 부동산 이외 다른 시장(주식시장, 가상화폐거래소 등)으로 흘러갔거나 아니면, 사내유보 등의 형태로 저장(貯藏)되었을 수 있겠다. 그 중 일부는 지하경제로 유입되어 다시 일부가 조세피난처(tax haven)에 갔을 수도 있겠고.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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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andante 2022-02-10 13: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책시차가 있어서 아직 평가하기엔 이른 감이 있지요..

겨울호랑이 2022-02-10 13:43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역사적 평가까지는 아니겠지만 부동산 정책에 있어 성과는 중기적 관점이상에서 평가해야 된다고 여겨집니다. 그렇지만, 정책에 대한 평가가 선거로 이루어지는 부분이 적지 않아 지나치게 실패했다는 분석 위주로 흐르는 것 같아 페이퍼로 올려 봅니다...

2022-02-10 14: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0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22-02-10 14: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정책이 안착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데
시민들은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언론에서는 부동산 정책라는 프레임으
로 선동을 하구요.

한정된 재화인 부동산에 대한 욕망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인
것 같습니다.

시민들의 머리 위에 있는 기재부가
정말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세금을 더
걷었다는 건, 기재부의 명백한 실책인
데 기재부 수장은 아무런 책임도 느끼
지 못하고 당당하니 할 말이 없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2-10 17:18   좋아요 2 | URL
그렇습니다.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민주주의 틀 안에서 정책의 결과를 장기적으로 기다리는 동안 ‘선거‘라는 여러 중간평가가 자리하기에 구조적인 개혁에는 어려움이 따른다고 보여집니다. 장기적인 혁명을 위한 끊임없는 소통이 중요함에도 현재 언론 지형은 이를 허락하지 않는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를 위한 구조개혁은 수행해야 할 과제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기재부 문제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다음 과제라고 보여집니다. 레삭매냐님 감사합니다.^^:)
 

무릇 나무의 성질은 그 뿌리는 펴고 싶어 하고, 그 흙은 옛 것이고 싶어 하니, 이미 그것을 심고 나면 움직이지 말고 생각하지 말고, 떠나서는 다시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것이 심겨질 적에는 아들같이 대해야 하고, 그것이 배치될 적에는 버리는 것처럼 한다면, 그것이 하늘에서 받은 것을 온전하게 하여 본성을 얻게 됩니다. 다른 심는 사람은 그렇지 아니하니, 뿌리에는 힘을 주고 흙은 바꾸며 그것을 아껴서 크게 은혜를 베풀고, 이를 걱정하여 대단히 부지런히 하며, 아침에 보고 저녁에 어루만지며 이미 떠났다가 다시 돌아다보는데, 심한 사람은 그 껍질을 손톱으로 긁어서 그것이 살았는지 말라 버렸는지를 시험하며, 그 뿌리를 흔들어서 그것이 성긴지 빽빽한지를 보게 되니 나무의 본성은 날로 이탈됩니다. 비록 그것을 아낀다고 말하지만 그 실제는 그것을 해치는 것이고, 비록 그것을 걱정한다고 하지만 그 실제는 그것을 원수로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와 같지 않게 되었습니다.

폐하께서는 어찌 작은 비용을 아끼시어 큰 계책을 놓치고 한 번 인심을 거두어들이지 않으시려 하십니까?
전(錢)이란 다 쓰면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지만 기회와 일이란 한 번 잃으면 다시 뒤좇아 갈 수가 없습니다. 설사 국가에서 15만의 군사를 동원하여 여섯 주를 빼앗는데 1년이 걸려서 이를 이긴다고 한다면 그 비용이 어찌 50만 민(緡)일 뿐이겠습니까?"

11월 신유일(6일)에 지제고(知制誥) 배도(裴度)를 파견하여 위박에 가서 위로의 말을 널리 전하게 하고 전 150만 민을 군사들에게 상으로 주었으며, 여섯 주의 백성들에게는 1년간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 군사들은 사여한 것을 받고 즐거워하는 소리가 우레와 같았다. 성덕(成德, 치소는 항주)과 연운(??)의 사자(使者)들 가운데 몇 사람이 이것을 보고 서로 돌아보면서 얼굴색이 변하며 탄식하여 말하였다. "고집부리고 강한 것이 과연 무슨 이익이 있는가?"

여원응이 말씀을 올렸다. "근래에 번진이 발호(跋扈)하여 신하 노릇을 하지 않으나 받아들여 용서할 만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사도가 도성을 도륙하고 궁궐에 불을 지르려고 꾀한 것에 이르러서는 패역(悖逆)한 것이 아주 심하니 죽이지 않으면 안 됩니다." 황상이 그러할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바야흐로 오원제를 토벌하고 왕승종을 끊어버렸으니 그러므로 이사도를 처리할 여가가 없었다.

만약에 친척과 친구라는 혐의(嫌疑)를 피하려 한다면 성스러운 조정에서는 많은 인사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을 이지러트릴 것이고, 이것은 바로 구차하게 편안하고자 하는 신하이지 지극히 공정한 길이 아닙니다. 진실로 채용한 사람이 그에 걸 맞는 사람이 아니라면 조정에서는 스스로 전형(典刑)을 가지고 있으니 누가 감히 여기에서 도망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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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국(軍國)의 대권(大權)의 경우에 이르러서는 움직였다 하면 치란(治亂)과 관계되고 조정의 제도는 조종(祖宗)으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폐하께서 어찌 차마 아랫사람의 마음을 좇아서 스스로 법제를 무너뜨리고 다른 사람들의 욕망을 좇아서 스스로 성스럽고 밝은 것을 훼손하시며 어찌 한때의 순간에 만대 이후에 비웃음을 사는 일을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 무리들은 대저 인의(仁義)를 알지 못하고 굽은 것과 바른 것을 구분하지 않으며, 오직 이로운 것이라면 즐기며 뇌물을 얻으면 유하척(柳下?)과 장교(莊?)를 칭찬하여 청렴하고 선량하다고 하고, 뜻에 어긋나면 공수(?遂)와 황패(黃覇)를 비난하여 탐욕스럽고 포학하다고 하며, 기울어지고 교묘한 지혜를 사용하고 의심스러울 정도로 비슷한 단서를 얽어매서 아침저녁으로 좌우에서 스며들 듯이 그것을 넣으니 폐하께서는 반드시 때로는 그것을 믿었습니다.

만약 또 늦추고 의심하면 그 해로움은 네 가지가 있는데, 아주 아프도록 애석한 것이 둘이고, 깊이 걱정되는 것이 둘입니다. 무엇 때문일까요? 만약 성공한다고 보장한다면 지출하는 것이 많고 적은 것을 따지지 않겠으나 이미 불가능한 것을 확실히 알았으니 바로 재물과 양식을 헛되이 소비하는 것이어서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깨달은 후에 시행하여도 일은 역시 늦지 않습니다. 지금 하루를 지연하여 교정하면 하루의 비용이 들게 되고 다시 열흘이나 한 달을 지연시키면 소비가 더욱 많아져서 끝내는 군사 활동을 철폐해야 하니, 어찌 속히 철폐하는 것과 같겠습니까!

"율(律)에 그에 대한 조문은 없지만 빠뜨려진 글은 아닙니다. 대개 복수를 허락하지 않으면 효자의 마음을 해치면서 선왕의 훈계를 어그러뜨리게 되고, 복수를 허락하면 사람들이 장차 법에 의거하여 함부로 죽일 것이니, 그 실마리를 금지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인은 경전(經典)에서 그 도리를 재삼 알렸고 율에서는 그 조문을 깊이 빠뜨렸으니, 그 뜻은 장차 법리(法吏, 법관)로 하여금 모두 법에서 결단하도록 한 것이고, 경학을 하는 사인이 경전을 인용하여 논의하게 한 것입니다.

"상과 벌은 주군의 두 가지 칼자루이며, 한쪽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폐하께서 천조(踐?)한 이래로 은덕을 내린 것은 깊었는데, 위엄과 형벌을 아직 떨치지 않아 안팎이 나태해졌으니 청컨대 엄하게 하여 그것을 떨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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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보산 사건은 어떤 것이었는가. 동북지방, 길림성의 장춘(長春)에서 서북방 삼십 킬로 지점에 있는 만보산 부근에서 중국 농민과 조선 농민의 충돌,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중일 관헌(中日官憲)의 무력충돌이라 해야 옳고, 더 정확하게는 무력충돌이기보다 쌍방간의 시위로 보아야 옳은 것이다.(p245)... 애당초 문제가 있었던 공작으로 보아야 옳고 지주와 중간에 땅을 빌린 자와 또다시 조선인이 빌리는 이 과정에서 계약상의 하자도 있었으며, 그러나 무엇보다 수로 개설로 인근의 다른 농토에 침수위험이 있다는 것이 분쟁 발단의 가장 큰 이유였다.(p247)... 문제는 7월 2일 <조선일보> 호외로 만보산사건은 조선 국내로 비화되었다. 일본 기관에서 흘린 허위자료를 받은 장춘 주재의 기자가 본사에 타전했던 것이다. 남의 땅에서 가난한 내 동포가 생명에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위기의식을 강조한 그 보도는 순식간에 민족감정을 자극했던 것이다. 7월 3일에 벌써 인천에서는 중국인 습격이 시작되었고 서울, 가장 격렬했던 곳은 평양이었다... 물론 만보산사건이 파급되어 국내에서 일어났던 폭풍은 일본이 면밀하게 짜낸 각본 때문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5> , p248/720


  토지문화재단에서 주관하는 토지독서챌린지. <토지15>를 읽고 있는 지금 시대적 배경은 어느새 1930년대인 것을 보면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구나 싶다. 물론 소설속의 등장인물에게는 소설 밖의 독자에게 몇 문장이 그들의 시간 속에서는 수 개월 또는 수 년의 흐름으로 나타나겠지만. 그 중에서도 만보산 사건과 조선일보의 내용은 지금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한 듯 싶다.  


 만보산사건의 진상은 몰랐다 하더라도 그곳에 있던 놈이면 그곳 실정쯤 파악하고 있어야지. 일본 기관에서 고의적으로 흘린 오보를 판단 없이 송고해? 의도적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조선일보>는 어용지 <경성일보>와 함께 일본의 계략을 도운 셈이야. 함정에 빠진 것이라 해도 좋고. _ 박경리, <토지 15> , p236/720


 지난 칠월 초순의 일이다. 조선에서 일어난 배화폭동(排華暴動)이 날로 확대되고 격렬해진다는 신문기사를 찬하는 읽고 있었다. 만주 길림성(吉林省)에 있는 만보산 부근에서 중국인 농민과 조선 농민 사이에 벌어진 충돌사건이 <조선일보> 호외로 시작하여, 연이어 선동적인 기사로 사건이 보도되면서 국내에 거주하는 중국인 습격학살이라는 엄청난 참극이 각처에서 자행된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그것은 조선인의 어리석음과 일본의 사악함이 교묘히 맞아떨어지면서 저질러진 어처구니없는 만행이었으며 대만의 무사사건(霧社事件)을 연상케 하였다. _ 박경리, <토지 15> , p85/594


 No taxation without representation. 

 대표없는 곳에 과세가 없다면서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영국 식민지들은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미국 독립 전쟁으로 이어졌다. 또한, '투표할 수 있는 능력만이 시민이기 위한 자격을 부여한다'는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명제를 함께 생각했을 때 우리는 거칠게나마 시민의 권리는 투표로, 의무는 세금으로 부여되는 것으로 이들을 묶어 요약할 수 있다. 여기서 드는 의문 하나.


 회사법에 의해 인격(人格)을 부여 받은 법인(法人 Corporation)은 왜 세금만 내면서 이를 부당하게 여기지 않는 것일까. 영업활동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이들이 의무만 수행하면서도 불만을 가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어도 이들은 전체 세금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만큼의 권리를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1774년 4월 22일, 뉴요커들 또한 알렉산더 맥두걸 Alexander McDougall의 주도에 따라 모호크 족의 의복을 차려입고 '런던'이라는 이름의 영국 선박으로 몰려 들어가 차 궤짝을 바닷속으로 던져버렸던 것이다. 보스턴 차 사건 이후 분노한 영국은 자신들의 미국 동포들을 더 이상 참아주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보복 조치들을 시행했다.(p114)... 자유로운 분위기의 해안 도시 보스턴에 이러한 조치들이 내려진 것은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식민지인들 간의 통합은 거의 미미했었다. 하지만 영국의 조치들을 계기로 상황이 바뀌어, 이제 이들은 한목소리로 자신들의 동의 없이는 의회가 세금을 부과할 수 없다고 외치기 시작했다. _ 론 처노, <알렉산더 해밀턴> , p115


 이런 의문에 대해 요즘은 그 답을 어느 정도 찾는 듯하다. 법인들은 투표권 대신 추천권(right of recommendation)을 통해 우리의 선택을 제한하는 것이 아닐까. 함께 매트릭스 Matrix 안에서 살아가기보다 아키텍처 Architecture로서 시스템을 통제하는 것은 아닐지. 이에 대해서는 낸시 매클린 (Nancy MacLean)의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Democracy In Chains>에서 상세하게 설명된다.


 몹시 가차 없고 영민한 프로파간다 전문가였던 [나치의] 요제프 괴벨스 Joseph  Goebbels는 이렇게 말했다. "엄청난 거짓말도 충분히 반복해서 하면 사람들은 곧 그것을 믿게 된다." 오늘날 코크가 돈을 대는 급진우파가 하는 엄청난 거짓말은 우리 사회가 '생산자'와 '탈취자'로 나뉜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으면, 생산자가 자신의 것을 빼앗아가는 탈취자에 대해 선악 이분법적인 투쟁을 하는 것이 정당화된다. _  낸시 매클린,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 p538/888


 과거 1930년대에 일본 제국의 사주를 받아 여론을 호도한 조선일보의 모습에서 오늘날 검언유착, 광고주에 의해 좌우되는 언론의 모습을 본다. 동시에, 이처럼 왜곡된 언론의 역사가 오래된 것이라면 언론 개혁이 쉬운 일이 아님도 함께 생각하게 된다. 일본의 만주 침략 의지와 조선일보의 오보가 빚어낸 1931년 7월의 만보산 사건. 이 사건의 진정한 의미는 9월 만주사변(滿洲事變)에 이르러서야 알게된다. 언론에 의해 좌우되는 민심. 그리고, 이로 인한 행동의 결과를 우리는 역사를 통해 미리 배울 수 있지 않을까...


 대중이란 끝없이 인내하면서 변화에 대하여 성급하고 가슴에 맺혀 있으면서도 쉬이 체념하며 망각한다. 신출귀몰이라는 말이 한참 유행했고 인심이 소용돌이치던 도시에 여름이 찾아왔을 때 신출귀몰이라는 말은 퇴색해가고 있었으며 인심의 소용돌이도 차츰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몸조심 말조심을 하면서 마음의 문을 닫고 주판을 들어올리는 것이었다. _ 박경리, <토지 15> , p52/594


 1931년(쇼와6)년 9월 18일 밤 10시 20분, 중국 동북부(만주), 요녕성(遼寧省)의 심양(봉천)에서 가까운 류조호(柳條湖)에서 남만주철도의 노선 일부가 폭파되었다. 관동군 참모 이시하라 칸지(石原莞爾) 등에 의해 1929년부터 주도면밀하게 준비해온 작전이 여기서 실행된 것이다... 만주사변은 1) 상대국 지도자의 부재를 틈타 일으켰다는 점, 2) 본래는 정치 간섭이 금지된 군인에 의해 주도된 점, 3) 국제법에 저촉된다는 것을 자각하면서도 국제법 위반이라는 비난을 피하도록 계획된 점, 4) 징역 개념으로서의 만몽의 의미를 끊임없이 확장시키고 있었다는 점, 이 4가지 특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인다. _ 가토 요코, <만주사변에서 중일전쟁으로>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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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2-02-09 07:5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는 하여튼 일본식민지시대에도 현재와 다를 바 없네요. 저는 광주 민주화 운동을 조선 동아를 통해 폭동으로 알고 있던 시대라… 조선 동아는 광주 민주화 운동때 오보내고 선동 한 거 진짜 사과 해야합니다!!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안 하고 있는데…조선 동아 꼭 해야한다고 봅니다.

겨울호랑이 2022-02-09 08:17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조선일보는 1930년대 방응모가 조선일보를 인수한 후 1938년부터 급격하게 친일성향을 보이면서 성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의 역사를 생각하면 사과가 쉬워보이진 않지만, 분명 꾸준하게 문제제기를 해야할 부분이라 여겨집니다...

거리의화가 2022-02-09 09: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에 대한 탄생부터 성장까지 다룬 책이 있습니다. 조선 동아일보의 탄생. 매체 자체에서 낸 역사에서 미화한 것과 달리 왜곡되고 포장된 부분이 많습니다

겨울호랑이 2022-02-09 09:29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조선일보의 경우 1920년대 조만식 선생 등에 의해 운영되던 초기 항일 시기의 역사를 자신들의 100년사에 포함시키면서 민족정간지 행세를 하며, 동아일보는 인촌 김성수의 행적을 고려대학교 설립으로 덮고, 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이바지한 해직기자들의 항쟁을 자신들이 가져와 역시 정론지 행세를 합니다만.... 그들의 부끄러운 행적이 그들이 발행한 과거 신문 안에 박제되어 있음에도 부끄러우 줄 모르는 모습을 보면 할 말이 없습니다...
 

한림학사 백거이가 말씀을 올렸다. "재상은 신하 된 사람의 최고의 자리이니 깨끗한 명망과 큰 공로를 갖지 아니하면 응당 주어서는 안 됩니다. 어제 배균에게 제수하니 밖에서는 논의가 이미 분분한데 오늘 또 왕악에게 제수하면 왕악과 같은 무리가 모두 희망을 가집니다. 만약 그들에게 모두 주면 법도는 크게 무너지고 또 은혜에 감사하지 않으며, 주지 않으면 후대하고 박대하는 차이가 생겨 원망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요행히 문을 한 번 열어 놓으면 어찌할 수 없습니다.

두황상이 대답하였다. "제왕 된 사람은 위로는 천지(天地)와 종묘를 잇고 아래로는 백성과 사방에 있는 야만인을 어루만지며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걱정하고 부지런히 하니 본래 스스로 여가를 가지고 스스로 즐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상하에는 몫이 있고 기강에는 순서가 있으니, 만약 천하의 현명한 인재를 신중히 뽑아서 그에게 일을 맡기고, 공로를 세우면 상을 내리고 죄가 있으면 형벌을 내리며, 뽑고 채용하는 것은 공적(公的)으로 하고 상을 내리거나 형벌을 주는 것은 신용을 가지고서 하면 누가 힘을 다하지 않겠으며 어찌 구한 것을 얻지 못하겠습니까! 밝으신 주군은 사람을 찾는 데에서 수고하고 사람에게 일을 맡기는 것에서 즐기니 이것은 우순(虞舜)이 ‘아무 것도 하는 일 없으면서 잘 다스려질 수 있었던 까닭이었습니다.

치란(治亂)의 시작에는 반드시 싹과 현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직언(直言)하는 길을 열고, 보고 듣는 것을 넓히는 것은 치세의 싹입니다. 아첨을 달게 여기고 가까이에 있는 익숙한 사람들에게 가려지는 것은 난세의 현상입니다. 옛날부터 임금은 즉위한 초기에 반드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인사를 갖게 되는데, 인군이 만약 의견을 받아들이고 상을 내리면 군자는 그 도(道)를 즐겨 실행하며 소인(小人) 역시 이익 얻는 것을 탐하니 간사한 쪽으로 돌아서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하면 상하의 뜻이 통하고 그윽하고 먼 곳에 있는 사정도 전달될 것이니 치세를 없애려 하여도 될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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