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유 관념이란 감각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음에 명석하고도 판명하게 떠오르는 관념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에 따르면 대표적인 본유관념이 '신(神)의 관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관념을 우리에게 넣어 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객관적 세계의 존재, 즉 외계 물체의 존재는 이 '신의 성실성(veracitas dei)을 매개로 하여 증명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다.' (출처 : 철학 사전)


 대륙의 합리론(合理論)과 영국의 경험론(經驗論)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 중 하나가 '본유 관념(innate idea)'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크의 <인간지성론>을 중심으로 '본유관념'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고대 그리스의 본유관념


 '본유 관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올라갈 수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의 <메논 Menon>에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가 노예 소년에게 질문을 통해 기하학 증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진리가 인간 내면에 있으며 '상기(想起)'를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메논>에 나타난 '본유 관념'을 확인해 보자.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아무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질문할 뿐인데, 그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인식을 되찾음으로써 인식할 수 있지 않겠나?

메논 :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데 그가 자신 속에서 인식을 되찾는 것이 상기하는게 아니겠나?

메논 : 물론이죠.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이 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은 그가 언젠가 획득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언제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겠나?

메논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래서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또한 언제나 알았을 걸세. 하지만 언젠가 획득했다면, 그는 적어도 이승에서 획득하지는 않았을 걸세. 아니면 이 아이에게 누가 기하학하는 걸 가르친 적이 있나?' (85 d ~ e) <메논 Menon> 


2.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기하학)이 절대적 진리로서 본유 관념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신(神)'의 개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본유 관념을 통해 '신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정신- 물질'의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한다.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tia, in quibus Dei exstentia, & animae hamanae a corpore distinctio, demonstrantur> 중 '본유 관념'에 해당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관념 가운데 어떤 것은 본유적(innatae)이고, 어떤 것은 외래적(adventitiae)이며, 다른 나머지는 내 자신이 만들어 낸(factae) 것으로 생각된다.(p61)... 내 속에 있는 관념은 상과 같은 것이고, 게다가 이것은 자신이 기인하는 사물의 완전성을 잃어버리기는 쉬우나, 이 사물보다 더 큰 것 혹은 더 완전한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무엇이 귀결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그 표상적 실재성이 대단히 커서 형상적으로 혹은 우월적으로 내 안에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나 자신이 그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이 확실하다면, 이 세상에는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념의 원인이 되는 다른 사물도 현존하고 있음이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관념 가운데는 나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관념이 있는데, 이때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또한 다른 관념들, 즉 신(神), 물질적이고 생명이 없는 것, 천사, 짐승, 마지막으로 나와 유사한 다른 인간을 표현하는 관념이 있다.'(p67) -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中 -

 

3. 로크의 경험론


 이처럼 '본유 관념'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사상이 대륙 합리론의 바탕이 되었다면, 이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영국 경험론의 입장은 무엇일까. <인간지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는 이전 사상에서 인정되는 '본유 관념'을 비판하고, '관찰'과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메논>에서 노예 소년을 증명으로 이끈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아이들이 생각하고 알고 동의할 수 있을 때 자연이 이들에게 심어준 개념들을 (만약 그런 개념들이 있다고 한다면) 모를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아이들이 외부사물들에서 얻은 인상들은 지각하면서도 자연이 몸소 수고를 기울여 마음속에 새겨놓은 글자들을 모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외부에서 얻은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존재의 원리들 안에 짜넣어지고 지워질 수 없는 글자들로 심어져서 그들이 장차 획득하게 될 모든 지식과 그들이 행하게 될 미래의 모든 추론의 토대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상정되는 개념들을 모를 수 있을까?...따라서 설령 더욱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들과 이 관념들을 나타내는 이름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성인에게 제시되어 늘 지체없이 동의되는 몇몇 일반적인 명제들이 있다고 해도, 이 명제들은 다른 것들은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으므로 지성을 갖춘 사람들의 보편적인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본유적이라고 상정될 수 없다.'(p88)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학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유 관념들, 즉 그들이 바로 맨 처음 존재하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본래적인 글자들(original characters)을 갖고 있다.... 나는 내가 지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관념들은 어떤 경로로 점차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줄 때, 내가 앞서 제1권에서 말했던 바(본유관념에 대한 논박)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지리라고 본다. 나는 이를 위해 각자의 관찰과 경험에 호소할 것이다.'(p149)


 <인간지성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 


 '이제 마음이 이른바 백지(white paper)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인가?... 마음은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에서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그 토대를 갖고 있다.'(p150)


 '백지'상태 의 인간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여러 관념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로크는 <인간지성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본유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 경험론에 대한 당대의 비판과 현대의 비판을 다음에서 살펴보자.


3. 빈 서판에 대한 당대의 비판 :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 ~ 1716)는 그의 저서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에서 로크의 경험론을 비판하고 있다. 다소 복잡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신(神) 안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따라서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가, 또는 우리가 자신의 고유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논쟁 문제로 말하자면,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한다하더라도, 우리도 또한 고유한 관념을, 즉 말하자면 작은 모사물이 아니라, 우리가 신 안에서 통찰하게 되는 것에 상응해야 할 우리 정신의 특성들 또는 변형들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신이 그의 현 상태 안에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판명하게 고찰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다양하고 아주 작은 형태들과 운동들의 감각 외에는 다른 어떤 감각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정신은, 자신의 감각이 전적으로 아주 작은 형태들과 아주 작은 운동들에 대한 감각들로 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p24) < 형이상학 논고 Discours de Metaphysique> -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 中


4. 빈 서판에 대한 현대의 비판 : 스티븐 핑거


 그렇지만, 스콜라(Schola)철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보다 설득적으로 경험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책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 ~ )의 <빈 서판 The Blank Slate>이라 생각된다. <빈 서판> 머리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로크 사상의 의의와 책의 저술 목적을 설명한다.


 '로크가 겨냥한 공격 대상은 인간이 수학적 이상, 영원한 진리, 신의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본유 관념 이론이었다... 로크는 정치의 현 상태에 대한 교조주의적 정당화에 반대했다. 자명한 진리로 강요되었던 교회의 권위와 신성 왕권이 대표적이었다...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의 토대를 침식시켰다... 지난 세기 동안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많은 분야에서 빈 서판 학설은 합의된 토대로서 작용했다.'(p30)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p28)


 스티븐 핑거는 <빈 서판>에서 경험주의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본유 관념'을 극복한 경험주의의 모순을 '과학(科學)'적으로 증명하면서, '경험주의'는 '전체주의'라는 또다른 폐해(弊害)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빈 서판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빈 서판으로 인해 인간 본성에는 공백이 생겼고, 전체주의적 체제가 그 공백을 열심히 채웠지만 그것은 전체주의의 대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교육, 양육, 예술을 사회 개조를 위한 형식으로 악용하고 있다(p737)...좋고 나쁜 영향에 상관없이 빈 서판은 뇌 기능을 설명하는 경험적 가설이고 따라서 진위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 과학은 빈 서판이 그릇된 이론임을 갈수록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p738)


 결국, '본유 관념'은 종교(宗敎), 사회 체제(社會體制) 등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상(思想)으로 작용했으며, 이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등장한 경험주의 역시 지금은 또 다른 사상이 되어 우리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빈 서판>을 통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科學)'을 통해 이러한 이념(理念 : 경험주의의 폐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사진] Monsanto에서 생산되는 GMO 제품( 출처 : Monsanto 홈페이지)


 생명공학을 활용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 :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 글로벌 대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는 지금 '과학'이라는 또다른 이름의 '본유 관념'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많은 책들이 '과학'이라는 또다른 종교를 말하고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도구로서의 과학'이 아닌 '주체가 되버린 과학'을 많이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페이퍼를 정리하다보니 대중과학서적을 보다 재밌게 읽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빈 서판>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학서이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실, <빈 서판> 뿐 아니라 우리가 접하고 있는 많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서적 중 많은 주제가 오랜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예를 들면,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철학적 과제를 안다는 것이 비록 쉽지 않지만, 이러한 논쟁의 역사와 내용을 안다면 보다 재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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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의 역할 vs 철학의 역할
    from Value Investing 2017-08-01 22:54 
    겨울호랑이 님께서 여러 책들에서 인용해 주신 문장들 때문에 '본유 관념'과 '빈 서판' 이론뿐만 아니라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까지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베르그송은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과학의 역할과 철학의 역할을 아주 흥미롭고도 명쾌하게 비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들 가운데 이번에 겨울호랑이 님의 글 때문에 다시금 펼쳐 읽고 거듭 음미해 볼 만한 대목들을 '먼댓글 형식'으로 덧붙여 봅니다. 한가지 덧붙일 점은,『창조적 진화』
 
 
oren 2017-08-01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이 아무리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더라도 결국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과학으로서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앙리 베르그송도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고요. 어쨌든 ‘철학‘은 영원히 ‘과학을 보완하는 임무‘를 어깨 위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마치 아틀라스가 무거운 지구를 어깨 위에 계속 떠메고 있듯이요.
* * *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

원인을 실마리로 하여 합법칙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근본적인 힘은 사실은 의지로부터 설명된다. 따라서 인식은 물질의 변용이라는 주장에는 모든 물질이 주관적인 인식의 변용, 즉 주관의 표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언제나 정당성을 갖고 대립된다. 그렇지만 모든 자연과학의 목적과 이상은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완성된 유물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물론을 명백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진리로 이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 진리란 우리가 앞으로 고찰해가면서 분명해질 것인데, 그것은 내가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 체계적 인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학은 세계의 가장 심오한 본질에는 접촉하지 못하고, 표상을 넘어서지도 못하며,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표상과 다른 표상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겨울호랑이 2017-08-01 17:54   좋아요 0 | URL
베르그송이나 쇼펜하우어 모두 ‘과학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군요. 19세기에 선각자들이 이미 깨달았던 부분을 21세기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7-08-03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험론과 합리론 비교 궁금했는데 겨울호랑이님이 이렇게 상세히 말씀해 주셔서 좋네요^^

인간은 태어날 때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촘스키 견해는 본유관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경험과 학습이 쌓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즉 인간은 완전히 백지상태라 보기도 어렵고 관찰과 경험만으로 존재한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신체는 거대한 화학작용이지요. 그 논리에서는 본성이 있기 어렵죠ㅎ. <신의 입자>에서 레더먼이 비유했다시피 우리는 축구공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축구 경기를 해괴하게 바라보는 외계인의 상태라고 해야겠죠. 상태들은 보는데 원인은 정확히 모르는.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신 ‘공백‘ 논란처럼 각자의 인식과 이데올로기로 이많은 관념과 질서를 배태하고 향유하는 것이겠고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4: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레더먼이 말한 내용은 칸트 철학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결과‘만을 볼 수 있기에 각자의 기준에 따라 ‘원인‘을 범주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네요^^: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언젠가 너도」는 아이가 태어나서 어린이로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 독립해서 다시 한 아이의 엄마가 되기까지의 일을 그린 동화책입니다.

동화책인 이 책을 아마도 많은 부모(특히 어머니)가 읽어주리라 여겨지네요. 그렇지만 아마도 아이는 책의 내용을 마음 깊이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보다는 책을 읽어주던 엄마가 자신의 어머니(아이의 외할머니)를 이 책을 통해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아이를 위한 동화가 아니라 세상의 모든 엄마를 위한 동화라 생각됩니다. 책은 다음의 내용으로 마무리 됩니다.

「언젠가, 지금으로부터 아주아주 먼 훗날,
너의 머리가 은빛으로 빛나는 날
그 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딸이 엄마를 기억하는 순간
엄마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아마도 어머니는 곁에 없겠지요
이렇게 세대는 바뀌어가는 것 같습니다

ps. 이 책을 보니 딸을 결혼시키는 아빠의 마음이 담긴 동화가 있는지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없다면 다음과 같은 내용으로 책을 써 보면 어떨런지 상상해봅니다.

˝네가 새하얀 드레스를 입던 날
네 손을 잡고 식장으로 들어가는 날이 오면 사랑하는 딸아, 넌 나를 기억하겠지.˝

네... 이렇게 만들면 딱 걸리겠지요 ㅋㅋ
이웃분들 모두 편한 밤 되세요^^: 



[가사 출처 : http://blog.daum.net/seed/1851]


Schoolbag in hand, she leaves home in the early morning 
Waving goodbye with an absent-minded smile 
I watch her go with a surge of that well-known sadness 
And I have to sit down for a while 
The feeling that I'm losing her forever 
And without really entering her world 
I'm glad whenever I can share her laughter 
That funny little girl

 
이른 아침 책가방 들고 손흔들며
미소 지으며 그앤 집을 나섰지
그앨 보낸 뒤 멍하니 한참 그냥 앉아
가는 뒷모습을 보았어
난 아직 그앨 알지도 못한 채
영원히 그앨 놓칠 것 같아
허나 그 예쁜 꼬마가 웃을 때
난 너무 기뻤어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Do I really see what's in her mind 
Each time I think I'm close to knowing 
She keeps on growing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잡아보려해도언제나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노력할수록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나는 정말 그앨 잘 알고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Sleep in our eyes, her and me at the breakfast table 
Barely awake, I let precious time go by 
Then when she's gone there's that odd melancholy feeling 
And a sense of guilt I can't deny 
What happened to the wonderful adventures 
The places I had planned for us to go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Well, some of that we did but most we didn't 
And why I just don't know


 

눈비비며 아침식탁에 마주앉아
그 소중한 시간 그냥 보냈지
그애가 간 뒤 미안한 맘에 사로잡혀
죄책감마저 느꼈었어
우리가 계획했었던 여행들
그 멋진 계획 다 어디갔나
(잡아보려 해도 언제나)
가기도 했지만 거의 못했어
정말 왜 그랬나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I try to capture every minute 
The feeling in it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Do I really see what's in her mind 
Each time I think I'm close to knowing 
She keeps on growing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잡아보려 해도 언제나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노력할수록 내 손에서 빠져나갔어
나는 정말 그앨 잘 알고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Sometimes I wish that I could freeze the picture 
And save it from the funny tricks of time 
Slipping through my fingers 

Slipping through my fingers all the time 

Schoolbag in hand she leaves home in the early morning 
Waving goodbye with an absent-minded smile 

 

시간을 멈추게 할 수는 없을까
그 행복했던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나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자꾸 클수록 내곁에서 멀어져갔어

이른 아침 책가방 들고 손흔들며
미소 지으며 그앤 집을 나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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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0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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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07: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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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11: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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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0 1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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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 & 토크빌 : 개인이 아닌 시민으로 살기>는 <법의 정신>의 저자 몽테스키외와 <미국의 민주주의> 토크빌의 사상을 다룬 기초 입문서이며,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일부다. 저자인 홍태영 교수가 생각하는 몽테스키외와 토크빌의 사상은 무엇일까. 바로 본문으로 들어가 보자.


1. 몽테스키외(Charles-Louis de Secondat, Baron de La Brede et de Montesquieu, 1689 ~ 1755)


 '<페르시아인의 편지>에서부터 몽테스키외는 프랑스의 군주정이 동양이나 유럽의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전제군주정이 되지 않기를 바랐다... <법의 정신> 후반부의 서술을 통해 몽테스키외는 봉건법 및 당시의 군주정 성격에 관한 논쟁에 참여했다... 그는 프랑스 군주제의 절제된(moderate) 특징이 중간 권력(귀족 계급)에 의한 구조적인 균형과 명예에 대한 열정에서 기인한다고 보았다.'(p92)


 '프랑스 국민을 절제된 국민으로 만들기 위해 몽테스키외는 "권력 균형과 명예의 원칙"을 제시했다. 다음으로 권력 균형과 명예의 원칙이 가능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귀족정의 요소가 보존되고 강화되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서히 힘을 얻고 있는 상업정신에 대한 인식을 위의 원칙들과 결합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가 바라보았던 곳이 영국이었고, 프랑스가 영국과 같은 "상업적 공화국"이 되기를 바랐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연관되어 서로가 서로를 규정하는 형태를 취하지만 가장 중요한 조건은 "귀족이라는 중간 계급의 권력"이 절대적이었다.'(p93)


2.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


 '<미국의 민주주의> 1권과 <미국의 민주주의>2권을 통해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대해 지속적으로 성찰하고 있으며, 공공정신에 대한 강조 및 정치적 제도와 선택을 결정짓는 이념과 습속에 대한 강조는 두 권의 책을 관통하는 지배적인 사고라 할 수 있다.'(p137)


 '토크빌은 민주주의에 민주주의적 통치 능력을 부여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필요했던 것이 자유였고, 이는 더 나아가 "정치적 자유"로 특화된다. 정치적 자유는 고립된 개인들을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에게 공동체 의식을 부과한다. "평등이 만들어낸 악덕들과 싸우기 위해서는 한 가지 치유책밖에 없다. 그것은 정치적 자유다.".'(p154)


 '프랑스는 비록 혁명을 통해 절대왕정을 무너뜨렸지만, 동시에 중앙집권화라는 거대한 권력에 의존함으로써 민주주의적 평등화가 만들어내는 전제주의로 귀결된 것이다. 이에 비해 미국은 연방정부와 주정부, 코뮌으로 구성된 지방분권적 정치 구조를 통해 권력이 중앙으로 집중되는 현상을 막고 있다. 특히 자유로운 인민의 힘이 위치하는 곳은 바로 가장 기초적인 단위인 코뮌이다.'(p157)


저자가 추천하는 몽테스키외와 토크빌 관련 추천 도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책의 출판년도가 2006년이기에 절판된 책도 있고, 재출간책도 있기에 출판사는 다소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PS. 지식인 마을 시리즈를 읽고 여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만, 입문서 리뷰를 쓰는 것이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다른 방식으로 정리해보던 중 섣부르게 요약하는 것보다 저자가 정리한 내용 소개와 추천 도서를 함께 정리하는 편이 보다 적절한 방식이라 생각되어 이와 같이 정리해 봅니다. 사회 계약론과 민주주의에 관심있는 이웃분들은 아래의책들로 즐거운 독서를 하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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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lmo 2017-07-29 09: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어제 ‘알.쓸.신.잡‘이라는 프로그램의 번외편(?) 그동안 티비에 미방영됐던 부분을 보는데,
그들이 더 좋아졌어요.
윤이상, 젠트리피케이션, 냉동인간 얘기 등을 하는데,
지극히 개인적인 발언인듯 하면서도 정치적인 접근을 놓치지 않더군요.
정말로 좋아서 즐기는 수다로 날밤 새는 게 보였달까요.

위에 언급하신 책들은 하나도 읽은게 없지만,
어제 봤던 저 프로그램이 생각나서 몇 자 적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9 09:51   좋아요 0 | URL
저는 ‘알.쓸.신.잡‘을 본 적 없지만, 여러 이웃분들께서 많이 소개해 주셔서 간접적으로 인기를 느꼈습니다. 번외편을 했다고 하니 이제 프로그램이 종영된 것 같군요. 양철나무꾼님께서 많이 아쉬우셨듯 합니다. 저도 책 소개를 일단 했지만, 저 역시 다 읽지는 못해서... ㅜㅜ 일단 목록을 만들어 놓고 차차 이웃분들과 함께 성장하는데 뜻을 두려고 합니다.^^:
 

A. 도입 : 호모 벨리쿠스(Homo Bellicus 전쟁하는 인간) 


'트로스가 그의 무릎을 잡고 애원하려 했으나 그는 칼로 그의 간을 찔렀다. 그러자 간이 쏟아져나오며 거기서 검은 피가 흘러내려 그의 품안에 가득 고였다. 혼절한 그의 두 눈을 어둠이 덮었다. 그러자 아킬레우스는 물리오스에게 다가가 창으로 귀를 찔렀고 그러자 즉시 청동 창끝이 다른 귀로 뚫고 나왔다. 그 다음 그가 아게노르의 아들 에케클로스의 머리 한복판을 자루 달린 칼로 내리치니 칼은 온통 피에 젖어 뜨거워졌고 그의 두 눈은 검은 죽음과 강력한 운명이 붙잡았다... 그래서 그가 죽음을 눈앞에 보며 팔을 늘어뜨리고 서 있었을 때 아킬레우스가 칼로 목을 쳐 그의 머리를 투구와 함께 멀리 내동댕이쳤다. 그러자 척추에서 골수가 솟아나오며 그는 땅 위에 길게 뻗었다.' - 호메로스 Homeros, <일리아스 Ilias> 제20권 468 ~ 483 -


 <일리아스>에서 묘사된 바와 같이 전쟁의 비참함에 대해 오래전부터 인류는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전쟁의 실상이 어떻게 개인에게 인식되는가는 또다른 문제라는 사실에 저자는 주목한다. 저자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는 <극한의 경험 The Ultimate Experience>에서 근대인(近代人)들의 전쟁에 대한 인식 변화를 다루고 있다. 요약하자면,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와 현대로 이행되는 동안 '데카르트(Rene Descarte, 1596 ~ 1650)의 이분법(Dualism)'과 '낭만주의(Romanticism)'를 통해 극적으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극한의 경험>의 내용을 따라가보자.


 G. 전쟁, 정신이 지배한다 : 1450 ~ 1740년


 근대 초기 전투에 참여한 이들은 이전 시대인들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겪었고, 이에 대한 극복이 선결과제였다. 이에 지휘관들은 개별 전투원들의 어려움을 감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이분법(二分法)'을 적용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전투원들은 '정신의 고양'을 통해 전투력을 극대화시키게 된다. 그리고, '정신(精神)'의 고양은 조직(공동체)의 이익을 개인의 이익보다 우선시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근대 초기 전쟁에 대한 인식은 근대 후기에 들어 <인간 기계론>으로 대표되는 '유물론(唯物論)'의 등장으로 바뀌게 된다.


 '근대 초기 전투원들은 전쟁이 무언가 깊은 진실을 밝혀준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인 전쟁 경험을 통해 무언가 특별한 지식과 권위를 획득했다고 주장하는 데 필요한 모든 문화적 모형과 자원을 확보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많은 수도승이 겪는 것보다 훨씬 더 가혹한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많은 판사가 듣는 것보다 더 심한 고문 비명을 들었으며, 많은 해부학자가 보는 것보다 더 자주 인간의 내장을 보았기 때문이다.'(p70)


 '전쟁을 각각 집단적 수단과 개인적 수단, 명예로운 삶의 길로 그리는 경험담 사이의 갈등은 근대 초기에 전쟁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관한 주요 갈등이었다...하지만,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고 국가가 발흥하며 집단적 수단으로의 전쟁 경험담이 우위를 차재했다. 모든 군인이 집단적 이익을 개인적 이익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이 상식이 되었다.'(p203)


 '세상의 확실한 토대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데카르트는 점차 세상 전체를 의심하게 되었고, 결국 확실한 것은 사고 자체밖에 없었다. 데카르트는 자아를 사고와 동일시했다. 그는 영혼과 마음, 육체라는 삼위일체식 구분을 포기하고, 육체와 정신이라는 명쾌한 이분법을 채택했다. 육체는 예전에 마음이 담당한 기능의 전부와 영혼이 담당한 기능 일부를 흡수했고, 자율적인 기계로 이해되었다.'(p166)


A. 전쟁, 육체를 깨우다 : 1740 ~ 1865년


 <인간 기계론>에서 정신(精神)보다 육체(肉體), 이성(理性)보다 감성(感性)이 우선시 된다. 이처럼 인간의 육체와 감성이 강조되면서, 집단보다는 개인(個人)의 존재가 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이제 육체적 경험이 진실이 되었고, 경험에 대한 인간의 감성이 이성을 대신한 진리의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쥘리앵 오프루아 드 라메트리 Julien Offroy de La Mettries는 1747년에 한층 대담한 논문을 발표했다.이 논문을 출간한 것이 바로 근대 유물론의 선언이 된 <인간 기계론 L'Home-machine>이다. 그는 데카르트의 정신과 육체의 이분법을 파기하는 동시에 정신과 영혼의 존재도 부인했으며, 생각과 느낌이 물질의 작용이라고 주장했다.(p212)...육체적 경험과 계시에 관련해 라메트리는 계시의 진실을 육체적 경험의 진실과 반드시 일치해야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사실상 육체적 경험이 계시에 가깝다고 결론지었다.(p214)... <인간 기계론>의 두 번째 신조는 적절한 경험적 연구로 얻은 결론은 명확하고 단순하다는 것이다.'(p215)


  '감수성 숭배는 추상적 철학이 아니었다. 그중에서도 실제 일상 삶에서 따를 수 있는 두 가지 가르침이 특히 중요했다. 첫 번째 가르침은 사소한 감각과 감정에도 가능한 깊은 관심을 갖고, 감각과 감정의 영향에 마음을 활짝 열라는 것이었다.(p228)... 감수성 숭배가 전한 두 번째 현실적인 가르침은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모든 경험에 마음을 활짝 열 뿐만 아니라 감각과 감정의 범위를 가능한 한 적극적으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감각주의 철학자들은 더 많이 느낄수록 그만큼 더 완전하게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감수성 * 경험 = 지식 '(p229)  

 

 위에 있는 감수성 공식을 우리는 후에 <호모 데우스>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 여기서, 개인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극한의 경험>에서 많이 인용되고 있는 <전쟁과 평화> 중 본문에서는 다루지 않은 다른 구절을 통해 살펴보자. 마치, 신병교육대에서 하는 '분열'을 연상시키는 이 대목에서 개인 전투원의 존재는 중요하게 취급받지 못함을 알 수 있다. 


'그의 온 정신은 상관 옆을 가장 멋지게 지나가는 것에만 쏠려 있는 것 같았고, 그것을 잘 실행하고 있다고 느끼는 듯 몹시 행복해 보였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걸음마다 속으로 되풀이하는 것 같았다. 배낭과 총의 무게에 짓눌린 제각각 엄중한 얼굴을 한 병사들의 벽이 잇달아 이 박자에 맞춰 움직여 갔다. 이 수백 명의 병사도 각기 마음속으로 한 걸음마다 "왼발... 왼발... 왼발..."하고 복창하고 있는 것 같았다.'(p356) -레프 톨스토이  Lev Tolstoy, 1828 ~ 1910) <전쟁과 평화 Война и мир>- 


[사진] 국군의 날 분열 장면(출처 : 연합뉴스)


 '감수성 문화는 군사 영역에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하고 오래 지속된 영향이 일반 사병과 관련된 것이다. 감수성이 감각과 감정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사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긴 것처럼, 군사 영역에서의 감수성은 일반 사병의 위상을 크게 향상시키며 일반 사병이 군대의 사고 과정에 참여하도록 만들었다.'(p256)


 고대 그리스의 팔랑크스(Phalanx) 이후 집단적 전투대형은 유럽 보병들의 주요 전술이었기 때문에, 이러한 환경에서 개인의 감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비록 집단간의 전투라는 전쟁 양상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시대는 분명 과거와는 달리 변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의 변화를 읽는 자가 등장하고 승기를 잡게 된다.


 '18세기 말이 되자 일반 사병의 시대가 동트며, 가장 위대한 근대 군사 개혁 하나가 등장했다. 나폴레옹 시대에 강압 대신 포섭이 병사들을 훈련하고 운용하는 주된 수단이 되었고, 이로써 군대가 사용할 수 있는 엄청나고 새로운 에너지원의 빗장이 풀렸다...나폴레옹 군대는 군인들의 지식과 지략이라는 바로 그 에너지를 포섭해 군대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당연히 나폴레옹 군대는 병사들을 통제하고 감시하는데 낭비되는 힘을 훨씬 더 줄였고, 병사들의 주도권과 에너지를 훨씬 더 많이 활용했다.'(p264)


L. 육체의 눈으로 전쟁을 보다 : 1740 ~ 1865년


 승자의 이름은 '나폴레옹 (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이고, 이 시대의 흐름은 '낭만주의(Romanticism)'로 정리될 수 있다. 그렇다면, 낭만주의의 본질은 무엇일까. 

 

'낭만주의 운동의 본질은 인간의 개성을 사회적 규약과 도덕성의 족쇄에서 자유롭게 하려는 목표에 있다. 부분적으로 이러한 족쇄는 바람직한 욕구의 대상이 될 만한 활동을 훼방하는 한낱 쓸모없는 방해물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무법적인 새로운 자아를 자극하고 고무함으로써 사회적 협조를 불가능하게 만들었으며, 그 후예들은 무정부주의나 전제정치 가운데 하나를 대안으로 택하지 않을 수 없었다.'(p869) -버트런트 러셀 (Bertrand Russell, 1872 ~ 1970), <서양 철학사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근대 초기에 용기는 육체와 정신의 단순한 역학 관계를 내포했다. 당시 용기는 순전히 정신적인 자질이었고, 정신의 힘이었다. 겁먹은 육체가 보내는 메세지를 극복하고 육체가 정신의 의지에 완전히 복종해 움직이게 만드는 것은 정신의 능력이었다... 그런데 18세기에 용기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등장했다. 감각주의적 해석은 용기를 정신보다 신경계에 속하는 육체적 힘으로 이해했다. 강한 신경계는 튼튼한 타악기처럼 극심한 감각을 전달해도 부서지지 않지만, 허약한 신경계는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무너져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정신은 인간의 능력을 기껏해야 제한적으로 통제할 뿐이라는 것이다.'(p314)


 <극한의 경험>에서는 근대(近代)를 배경으로 전쟁에 대한 인간의 인식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개인 회고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근대 이후 현대(現代)에서 전쟁의 의미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궁금해지지만, <극한의 경험>에서 현대전은 에필로그로 간략하게 언급될 뿐이다. 그래서, 이 부분은 개인적인 생각으로 채워본다.


M. 너를 깨우친 것들, 1865 ~ 2000년


 <극한의 경험>을 통해 베트남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 내에서 '반전(反戰)'여론은 높았고, 이러한 여론의 흐름에 대해 미국 정부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병사 개인의 감성을 무시할 수 없는 근대 이후의 서구 전통 때문이 아니었을까. 때문에, 미국군은 지상군 투입에 상당한 제약을 받게 되었다. 그와 달리, 우리 역사에서는 서구의 낭만주의와 같은 전통(개인의 감정을 고려하는 전통)이 없었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베트남 파병에 대한 제약은 존재하지 않았고, '한국전쟁에 대한 보은(報恩)'이라는 감정만이 사회적으로 용인된 것은 아니었을까. 이로 인해 많은 군인들이 베트남으로 건너가게 되었고 베트남 전쟁은 이제 우리의 전쟁이 되버렸다. 이렇게 시작된 베트남 전쟁은 전장(戰場)이었던 베트남과 베트남인들 뿐 아니라, 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도 피해자가 되버린 비극(悲劇)으로 귀결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사진] 베트남 반전 운동 (출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insh635&logNo=10175407401&parentCategoryNo=&categoryNo=28&viewDate=&isShowPopularPosts=false&from=postView)


[사진] 베트남 파병 한국군(출처 : 한겨레21)


 이와 같은 내용으로 전쟁에 대한 근대인의 인식 변화를 그린<극한의 경험>은 저자인 유발 하라리가 2008년 저술한 책이다. <호모 사피엔스>, <호모 데우스>를 최근 집필한 그가 <극한의 경험>을 수정보완한다면 유전자 조작을 통해 육체의 한계를 극복한 '슈퍼 솔져 Super Soldier'의 도래를 예상하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사진] 슈퍼 솔져 (출처 : 다나와)


덧붙이는 말 A. 늦었지만, 책을 선물해 주신 알라딘 이웃분 ******님께 감사드립니다.^^: 


베트남 전을 다룬 책 중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읽었던 책이 생각나 뒤늦게 올립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베트남전에서 포로가 된 후 '실로이옹 병'에 걸려 베트남인들을 보면 계속 '실로이옹(용서하세요)'을 연발하는 등장인물이었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끊임없이 미안함을 느끼게 했을까. 그리고, 누가 그에게 미안함을 느끼도록 만들었는가. 책을 읽는 동안 제게 들었던 물음이었습니다.


'허만호의 병명은 자신이 말한 대로 ‘비정형충동조절질환’이라는 것이었는데, 병동 안에서는 ‘실로이옹 병’으로 통했다. ‘실로이옹’이란 월남어로 ‘용서하세요’란 뜻이었다. 그가 왜 그런 병에 걸렸다가, 또 무슨 계기로 호전됐는지는 위생병도 모른다고 했다. 단지 그의 병명이 ‘실로이옹 병’으로 통하게 된 것은 잠꼬대 때문이라는 것만 안다고 했다. 밤이고 낮이고 잠만 들었다 하면, 허만호는 애처로운 목소리로 ‘실로이옹’이라고 잠꼬대를 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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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선물 받았기에 읽어보셨군요. ^^

겨울호랑이 2017-07-27 13:19   좋아요 2 | URL
^^: 좋은 이웃분들 덕분에 하라리와의 만남은 선물로 맺어지게 되었네요..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

북다이제스터 2017-07-27 13:26   좋아요 2 | URL
미국과 달리 우리에게는 낭만주의 문화가 없었기에 베트남 파병에 국민 저항이 약했다는 해석이 신선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7-07-27 13:29   좋아요 1 | URL
^^: 그냥 그렇지 않았을까 짧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경제는 짧은 기간에 따라잡을 수 있지만 문화적 전통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07-27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7-27 15: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oren 2017-07-27 18: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발 하라리는 고대 전쟁에서 ‘개인의 감정‘이 대체로 무시됐다는 점을 너무 지나치게 부각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숱한 고대의 전쟁 기록들이 ‘개인‘은 온데간데 없고, 오로지 지휘관들 중심으로 서술된 것도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렇더라도 ‘극한 상황‘에 다다른 경우에 개개인의 감정이 완전히 무시될 순 없었겠죠. ‘조직‘보다 ‘개인‘이 오히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걸 깨달은 전투병들은 (심지어 용병들 까지도) 옛날 옛적에도 ‘우선 나부터 살고 보자‘는 식으로 도망친 경우도 부지기수로 많았으니까요.『플루타르코스 영웅전』만 보더라도 숱한 영웅들이 무지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그에 못지 않게 ‘전쟁터‘에서 ‘조직‘을 배신하고, 지휘관을 배신하고, 전우들을 배신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빤히 바라보는 앞에서‘ 도망친 병사들도 셀 수 없이 많이 나오거든요.『전쟁과 평화』의 후반부에 아주 인상적으로 그려진 ‘나폴레옹 군대 패잔병들의 대규모 탈영 내지는 탈주 러시‘의 경우에도, 그 탈주병들이 단순히 ‘고대의 전투병‘보다 ‘개인 감정‘을 훨씬 더 중시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혹한과 배고픔‘이라는 ‘극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나부터 살고 보자‘는 ‘생존 본능‘이 작동했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에서 바라보게 되면, 결국 고대 전쟁에서의 ‘탈주병의 모습‘과 뭐가 다른 게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7-27 19:04   좋아요 2 | URL
^^: <극한의 경험>에서 유발 하라리가 근대 초기와 근대 후기의 사상 변화를 구분하면서 제시한 근거들이 대체로 개인의 회고록 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이 글에 나타나 있는가 없는가를 통해 사상의 변화를 통해 유발 하라리가 묘사하고자 한 것은 전투에 참여한 개인의 감정보다는 ‘사회의 전쟁관‘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죽음을 공포 앞에 선 단독자‘의 처지에 놓인다면, 아마도 정면으로 그것을 맞이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습니다. 벌써 20여년 전입니다만, 사격 훈련 시 교관이 했던 말이 생각나네요. ˝너희가 지금은 조준 사격을 하지만, 막상 전쟁 나봐라. 다들 머리를 참호 안에 처박고 총만 들고 허공에 쏠거면서... ˝ 고대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아마도 모든 병사들은 이런 공포를 가지고 있고, 지휘관들은 이들을 억지로 끌어내서 죽음과 직면하게끔 한 것이 전장의 실상이라 생각됩니다...이런 참혹한 상황에서 전쟁 심리를 분석하는 것도 어찌보면 참 냉정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07-27 22:25   좋아요 1 | URL
<극한의 체험> 읽기 전까지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요약 전달로 이해시키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

야전공병 2017-08-01 22: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10년 군번입니다. 참호에 머리를 박던 자들이, 옆 전우의 죽음을 보고 분개하여 달려들것이라는 훈련소 교관의 말이 기억에 남네요.

겨울호랑이 2017-08-01 22:42   좋아요 0 | URL
네.. 전장이라는 공간은 공포, 분노, 절망, 슬픔이라는 여러 감정들이 교차하는 극한의 공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니얼 퍼거슨 위대한 퇴보 - 변혁의 시대에 읽는 서양 문명의 화두
니얼 퍼거슨 지음, 구세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13년 6월
평점 :
품절


[그림] 열강의 침략을 받고 있는 중국을 풍자한 만화(출처 : https://fineartamerica.com/featured/imperialism-cartoon-granger.html)


<위대한 퇴보 The Great Degeneration>는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 1964 ~ )이 2007년 세계 금융 위기를 계기로 서구 문명의 쇠퇴 원인이 무엇인가 민주주의(民主主義), 자본주의(資本主義), 법치주의(法治主義), 시민사회(市民社會) 측면에서 살펴보고 있다. 저자인 니얼 퍼거슨이 <위대한 퇴보>에서 진단한 서양문명(西洋文明)의 쇠퇴원인은 무엇일까. 결론에 정리된 책의 전체 내용을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자.


 '현재 서양 국가들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인 공공 부채 위기는 곧 미래 세대에 대한 배신의 증상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향후 금융 위기를 피하기 위해 복잡한 규제를 쓰려는 시도는 곧 시장경제를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또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운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법치주의가 실은 변호사들의 통치로 쇠퇴할 위기에 처해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때 활기찼던 우리의 시민사회가 부패의 위험에 빠졌으며, 이것은 과학기술 때문이 아니라 국가의 과도한 간섭 때문이라고 주장했다.'(p174) 

 

 많은 이들이 현재 위기에 빠져있는 세계 경제의 원인을 세계화와 과도한 규제 완화등의 내용을 바탕으로한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로 지적하고 있다. 이에 반해, <위대한 퇴보>에서 저자는 오히려 위기의 원인을 '과도한 규제'로 지목한 근거는 무엇일까.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1. 민주주의


 저자는 먼저 민주주의를 위기를 지목한다. 금융위기 이후 큰 규모로 증가한 재정정책, 고령화(高齡化) 사회의 도래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연금(年金) 비용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막대한 규모의 부채(負債)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결과 각국의 정부는 막대한 재정 부채에  대해 정치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하지만 우리 서양의 정치제도에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서양 민주주의 비판가들의 생각에는 틀린 점이 없다. 병폐의 가장 뚜렷한 증상은 최근 몇십 년간 쌓여버린, 과거처럼 전쟁 탓으로 돌릴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부채다.... 국제통화기금에 따르면 그리스의 순정부 부채는 2012년 GDP의 153퍼센트에 달할 전망이다. 이탈리아는 123퍼센트, 아일랜드는 113퍼센트, 포르투갈은 112퍼센트, 미국은 107퍼센트다. 영국은 88퍼센트에 가까워지고 있다.'(p58)


 현재 세대의 부채를 미래 세대의 부담으로 넘기는 정치적인 결정은 세대간 갈등을 유발하게 되었고, 그 결과 사회계약을 기초로 한 현대 민주주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문제의 핵심은 공공 부채가 투표권조차 없는 어린 세대나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세대를 희생시켜 현재의 유권자 세대를 부양한다는 사실이다.(p60)... "사회"는 분명 하나의 계약이다. 국가는 현재 살아 있는 사람들간의 파트너십뿐 아니라 살아 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 그리고 앞으로 태어날 사람들간의 파트너십이다... 성숙한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 과제는 세대 간 사회계약을 원상태로 회복시키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p63)... 이 문제를 해결할 법적 해답이 있는가? 일종의 균형예산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중앙은행에 독립성을 주어 통화정책에 관한 입법자들의 재량권을 축소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적자 지출을 할 수 있는 입법자들의 재량권이 줄어든다.'(p64)


2. 자본주의


 저자는 자본주의의 위기는 '규제의 완화'가 아니라 '과도한 규제'에 있다고 진단한다. 연방준비은행(FRB)를 비롯한 민간 부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이들의 힘이 거대하기 때문에 스스로 규제안을 만들고 있는 것이 현재 상황이다. 민간 자본 스스로의 규제가 과연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인가? 이러한 민간부문의 완벽하지 못한 규제로 인해 오히려 금융 거품이 유발된다.


 '2007년 시작된 금융 위기의 시초는 바로 지나치게 복잡한 규제에 있었다. 위기의 시작 그 첫 장에서는 대규모 상장 은행의 임원들이 "주주 가치를 극대화"하려 안간힘을 쓴다... 두 번째 장에서는 1996년부터 서서히 수정을 거친 바젤 협정에 따라 기업은 내부적인 리스크 추산을 바탕으로 자신의 자본 요건을 사실상 직접 정할 수 있게 되었다... 연방준비은행을 필두로 중앙은행들이 매우 편파적인 통화정책을 마련하기에 이른다... 네 번째 장에서는 미국 의회가 자가 주택을 소유한 저소득층 가구 비율을 늘리기 위한 법안을 통과시켰다... 마지막 장의 시장 왜곡은 달러 대비 위완화 가치 상승을 막기 위해 말 그대로 수조 달러에 달하는 돈을 뿌린 중국 정부에 의해 이루어졌다.'(p78)


 '현재 우리가 직면한 문제는 금융 개혁 때문이 아니라 금융 규제 때문이다. 일련의 금융 위기를 통해 명확히 깨달았듯 민간 부분의 리스크 관리 모델은 분명 완벽하지 못하다. 거기다가 공공 부문의 리스크 관리 모델이라는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법률 제정자와 단속 기관들은 모든 활동에는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따른다는 법칙을 거의 무시한 채 움직였고,  그 결과 선진국 거의 전역에 부동산 거품을 부추기는 꼴이 되고 말았다.'(p81)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위기를 해결하는 방안은 무엇일까? 역설적이겠지만, 저자는 '규제의 완화와 엄격한 처벌'을 해결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법을 위반했을 경우 이에 대한 엄한 처벌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법치주의'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재 서구 문명의 법치주의 역시 위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위협은 무엇일까?


 '우리가 할 일은 배젓의 말처럼 "현재의 은행 시스템을 나름대로 최대한 이용하고, 그것의 역량이 허용하는 한 잘 운영하는 것이다. 지금 쓸 수 있는 건 일시적인 처방뿐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손에 넣을 수 있는 최고의 처방을 얻는 것이다.(p102)... 이 장 처음에는 엄한 규제의 지지자들에게 반박하다가 끝에 와서 나쁜 은행가들을 본보기 삼아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으니 모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규제의 단순화와 법률의 강력한 집행만이 복잡한 금융 세상을 덜 취약하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다.'(p106)


3. 법치주의


 저자가 지목한 법치주의의 위기는 무엇일까? 법치주의의 위기는 영국의 관습법(慣習法)의 위기로 설명된다. 영국 경험주의(經驗主義) 전통에 기반한 영국 관습법 체계는 과거 유연한 적용과 내용의 진화라는 면에서 우위에 있었으나, 과도한 규제로 인해 성문법(成文法) 체계의 확립이 요구되자 제도적 우위를 상실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인해 현대 사회는 막대한 법률비용이 증가되는 부담을 갖게 된다. 


 '경제가 복잡해지면서 민간 계약 집행 기간이 공공 기관으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국가로 하여금 사유재산권을 존중하면서 집행권을 쓰게끔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경제학에서 보면 그것이야말로 법치주의의 가장 필수적인 기능이다. 근본적인 것은 인간의 권리가 아니라 재산권이다.'(p116)


 '계약 집행과 강요 제한이라는 두 가지 역할을 수행하는 데 있어 영어권문화에서 진화한 관습법 체제가 다른 모든 체제보다 뛰어났다... 로마의 법적 전통에서 유래한 프랑스의 민법 체제는 말할 것도 없고, 로마의 법적 전통에서 유래한 프랑스의 민법 체제나 독일과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의 법률 체제는 그 수준이 다소 낮았다.'(p116)


  '관습법은 구체적인 규정 대신 광범위한 기준을 쓰기 때문에 관습법 아래에서 법적 의사 결정의 유동성이 커진다.(p119)... 영국의 법체계와 다른 나라의 비슷한 제도들에 경제 발전상의 우위를 가져다준 것은 투자자나 채권자 처리 방식의 기능적 차이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관습법의 진화였다.'(p128)


 '오늘날 서양, 특히 영어권 국가들에서 법치중의의 실상은 어떠한가? 현재 가해지고 있는 네 가지 명백한 위협을 다음과 같이 가려내보았다. 첫 번째로 국가의 안보 상태로 인해 우리의 자유가 얼마나 손상되었는지 자문해야 한다... 두 번째 위협은 민법의 특성을 갖춘 유럽의 법률이 영국의 법 체제를 침식해 들어오는 문제다... 세 번째 위협은 점점 더 복잡하고 엉성해지는 성문법으로, 정교한 규제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정치판 곳곳에 퍼지면서 유럽과 북아메리카 양쪽 모두에서 벌어지고 있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네 번째 위협, 특히 미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이 문제는 법적 비용이 점점 늘어가고 있는 것이다.'(p130)


 서양 문명에서 '법의 성문화(成文化)' 요구에 따라 도래된 사회는 '법률가들의 통치'로 귀결된다. 이러한 시스템에 대한 개혁이 요구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다음 수순이다. 시스템에 대한 개혁의 마지막 종착역은 '시민 사회'다.


 '오늘날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법의 통치가 아닌 법률가들의 통치다. 분명 미국 의회에 변호사가 너무 많다는 사실도 우연의 일치는 아닐 것이다... 시스템의  내부에, 즉 법안 안에, 단속 기관 내부에, 법적 제도 자체에 썩은 부분이 많다면 그 시스템을 어떻게 개혁할 수 있단 말인가?'(p143)


4. 시민사회


  서양 문명의 위기에 대한 저자의 최종적인 해결 방안은 '시민사회의 참여'다. 온라인(On line) 상의 네트워크가 아닌 전통적인 시민사회의 복구와 시민 개개인의 적극적인 참여를 통해서만이 현재 위기를 극복하고 서양 문명은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 저자는 결론을 내린다.


 '이 마지막 장에서는 "시민사회"라는 표가 붙은 블랙박스를 열어보고자 한다. 한때 우리가 당연히 여겼지만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활기찬 시민 사회의 참여 없이 과연 자유로운 국가가 번창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또 시민사회의 반대말은 무책임한 사회이며, 이런 사회에서는 사소한 반사회적 행위 같은 문제도 국가의 도움이 필요함을 알리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사회적 네트워크가 우리 해변을 깨끗하게 복원했던 실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대체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을 제시하고자 한다.'(p150)


 <위대한 퇴보>는 이처럼 '과도한 규제 -> 법치주의의 위기 -> 경제위기 -> 민주주의의 위기'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회적 고리를 역사학자인 저자의 시각을 통해 분석하고 있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저자만의 해결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위대한 퇴보>는 경제 위기를 그 자체만의 원인으로 바라보지 않고, 정치/사회적인 면에서 종합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면에서 그 의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저자인 니얼 퍼거슨의 분석을 그대로 수용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 여겨진다. 


 저자인 니얼 퍼거슨은 영국의 경제사학자다. 그는 제국주의 시대의 영국을 배경으로 많은 책을 저술하였으며, 이들 저술을 통해 영국 제국주의의 승리 원인이 '금융(金融)'이 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다른 유럽국가들과는 다른 섬나라 영국만의 독자성과 EU 내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금융'에 특화한 산업구조를 강조한 그의 역사관(曆史觀)속에는 1년 전 영국의 브렉시트(BREXIT)를 바라보는 영국인들의 관점이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시민 사회의 참여에 있어 Off-line참여를 강조하며, 전통 사회의 복구를 강조하는 <위대한 퇴보>의 결론 속에서그가 제시한 해결책은 결국 '고립주의'적인 해결안이라 생각된다. 세계의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실을 고려한다면 니얼 퍼거슨의 폐쇄적인 해결책은 그런 면에서 마음 깊이 와 닿지 않는다. 


[그림] 브렉시트(출처 : http://newstreet.tistory.com/5)


  영국 역사학자의 입장에서 '아편전쟁' 당시 중국을 분할 침략하던 영국 제국주의 전성기를 연구하다 'Made in Cina'가 장악한 현대의 모습은 정말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한 결과로 '위대한 영국 Great Britain'으로의 복귀를 저자는 꿈꾸는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그림] 중국 상품의 세계 지배( 출처 : http://www.indiatimes.com/news/world)


 다만, 이러한 폐쇄적인 해결안을 제시했음에도, 그가 인용한 아담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가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통해 제시하고 있는 '정체된 사회의 문제'는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우리의 문제라 생각된다. 인용된 <국부론>의 문구를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국가의 부가 매우 크더라도 오랜 기간 정체 상태에 있었다면 노동 임금이 매우 높을 것이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사회가 부 전체를 완전히 획득했을 때가 아니라 더 많은 획득을 위해 나아가고 있을 때, 즉 진보하는 상태일 때 인구 대다수인 가난한 노동 계층이 가장 행복하고 안락함을 느낀다. 정체 상태일 때는 살기 힘들고, 경제가 쇠퇴한 상태에는 비참해진다.'(p19)


 '부자나 대자본 소유자들이 경제적 안정을 누리는 반면, 가난한 자나 소자본 소유자들이 정의라는 미명하에 안정은 커녕 저급 공무원들에게 약탈당하고 강탈당하는 국가에서는, 종류를 막론하고 산업에 이용되는 주식자본이 그 산업의 본질과 규모가 허용하는 최대 수준까지 절대로 이를 수 없다. 어떤 산업 분야든 가난한 자들에게 가하는 압제는 곧 부자들의 독점으로 이어지고, 부자들은 해당 산업 전체를 고스란히 소유함으로써 더 큰 이익을 보게 된다.'(p20)


ps. 번역된 제목 <위대한 퇴보>는 내용에 맞게 <커다란 퇴보> 또는 <급격한 쇠락> 정도로 해석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위대한 퇴보'라는 지금의 제목은 서구 문명의 퇴보가 마치 동양 문명을 위한 양보 같은 느낌을 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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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7-07-25 19:3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주주 가치 극대화‘를 경영 이념으로 이야기했던 그 대규모 상장 은행에 근무하면서.. 그 당시에도 내 가슴속 깊은 의문은

- 회사는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하여 존재하는가?
- 노동자들은 주주보다 더 절박한 처지에서 회사를 위하여 일하는데.. 이런 생각들

겨울호랑이 2017-07-25 19:36   좋아요 1 | URL
자본주의 사회에서 결국 회사는 자본을 위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최근에는 인간 중심 경영을 외치지만, 결국 노동자들이 제공하는 ‘노동‘은 ‘자본‘과 마찬가지로 생산 투입 요소 취급밖에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결국 회사와 노동자들은 1:1의 관계에서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계약 상대이지, 파트너는 될 수 없는 것 같아 씁쓸하네요...

서니데이 2017-07-25 23: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 상품의 세계 지배 지도에서 많은 지역에 중국 국기가 있지만, 중국에는 일본 국기가 있네요.^^
겨울호랑이님, 더운 날이지만, 즐겁고 좋은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7-25 23:24   좋아요 1 | URL
^^: 중국에서 생산되는 제품의 중간 부품 중 다수가 일제여서 그런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서니데이님도 편한 밤 되세요.

사마천 2017-07-26 00: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요약과 정리가 참 잘되어 있네요. 감사합니다 ^^ 니얼 퍼거슨은 아주 독특한 인물입니다. 말도 거침 없고요. 로스차일드 가문 공식 역사서도 집필하고.. 크루구먼하고도 맞장 토론..

겨울호랑이 2017-07-26 01:02   좋아요 0 | URL
네^^: 사마천님 감사합니다. 사마천님 말씀처럼 퍼거슨이 쓴 「로스차일드」는 쑹홍빙이 「화폐전쟁」에서 그린 로스차일드 가문보다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그려졌다 생각됩니다. ^^: 퍼거슨의 다른 저작들도 더 찾아 읽어보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