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세부적인 실험결과와 수치들은 이야기하지 않겠지만, 그 결과가 꽤나 인상적이다. 흥미롭게도, 이 연구에 따르면 작동 과정에서 측정된 미세입자들의 검출량은 일상생활의 다양한 요리활동에서 검출되는 입자량과 비슷하다고 한다.

이런 논쟁 과정에서 누군가 "프린터용 잉크는 인체에 유해하다. 그러니 쓰지 말자!" 라는 주장을 하고 이것이 뉴스에 크게 보도된다면 어떨까? 이것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는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유의미한 주장일까? 그렇다면 "전자파는 인체에 유해하다. 그러니 전자파를 뿜어내는 기기들을 쓰지 말자!"라는 주장은 어떠한가? 이는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유의미한 주장인가?
이런 주장들과 논의들은 사회적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에서 소모적이다.

스펙트럼과도 같은 유해성의 문제를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 일견 간단해 보이는 해결책인 이분법적인 사고를 피하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이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주 세심한 맥락화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의 사회경제적 선택의 폭을 넓혀줄 수 있다. 어느 정도까지 유해함을 감수할 것인지, 어떤 방식으로 규제할 것이며 기존의 시스템과 합치하는지, 또 다른 사회적 계층화의 위험이 존재하는 것은 아닌지 등 사회가 실제로 마주하는 선택지는 훨씬 복잡하다는 사실을 드러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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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
토마스 프랭크 지음, 김병순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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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생각할 때 노동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회적 약자와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한 정당은 민주당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다. 정상적인 성인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내가 대초원의 서부 고지대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이 부시 대통령을 열렬히 지지했다고 한 친구에게 말했더니 그녀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여태껏 남들을 위해 일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공화당 후보를 찍을 수 있지?˝라고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런 잘못을 저지를 수 있단 말인가? 무엇이 자신들에게 이익이 되는지 근본적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현실은 오늘날 미국인의 정치적 삶이 어떤 상황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_ 토마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p5/294

최근 여권의 지지자들에 ‘저소득 저학력‘ 층이 많다는 유력 정치인의 발언으로 조금 시끄럽다. 다른 한 편에서는 ‘빈자 혐오‘라고 비난하고 프레임에 따라 그렇게 볼 수도 있겠지만 엄연한 사실이다.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저소득층의 보수주의 정당 지지 이유를 설명하기 어려운 것은 두 가지 가정 때문이다. 1) 모든 게임의 참가자들에게 정보는 완전하게 주어지고 2)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행동한다는.

[관련기사] ‘월소득 200만원 미만‘ 10명 중 6명, 尹 뽑았다
https://m.mk.co.kr/news/politics/view/2022/03/269908/

토마스 프랭크(Thomas Frank, 1965 ~ )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What‘s the Matter with Kansas? >는 이러한 설명하기 어려운 물음에 대한 답을 알려준다. 미국 저소득층 사람들에게 정보는 불완전하게 주어지며, 특히 미국 중부의 기독교 사상에 철저한 이들은 정치적인 ‘정의‘를 위해 자신들의 경제적인 ‘정의‘를 기꺼이 감내해 내는 모습을 보인다. 일련의 ‘반지성주의‘적인 이들의 모습 속에서 진보적 가치들은 토론의 대상이 아닌 선악(善惡)의 구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보수주의 정치가들은 이들의 신념을 교묘하게 선동하여 자신들의 경제적 이익을 극대화하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보수 반동 이론가들은 부유하고, 권력이 있고,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자유주의 계열의 미디어와 무신론 과학자, 밉상 맞은 동부의 엘리트들이 꼭두각시를 앞장 세워 무수한 음모들을 꾸며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실 알고보면 보수 반동이라는 술책만큼 지금까지 미국 중산층의 이익을 완전히 거덜낸 정치적 음모는 없었다. 보수 반동 세력이 비난하는 가장 교활한 배후조정자들도 그런 정도의 음모는 생각해내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그들은 상속세 폐지를 주장하면서 ‘기존 체제‘에 저항한다. 그들이 지금 여기서 기존의 권력구조를 비난하는 것은 부자를 더 부자로 만들자는 운동이다. 그들은 노동조합과 민주당의 작업장 안전 법안 때문에 노동자들의 삶이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다고 맹렬하게 비난한다. 또 미국 학생들의 학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공고육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_ 토마스 프랭크,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 , p11/294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의 배경은 미국이다. 그렇지만, 분단체제가 만들어 내는 특수한 보수주의 의제들과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종교적인 우리 민족성을 고려했을 때, 우리의 현실 모두를 설명하지는 못하더라도 중요한 많은 부분을 짚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리뷰는 시간이 될 때 올리는 것으로 하고, 간략한 책소개로 글을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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갱지 2022-08-04 08: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혁을 따라가려면 끊임없는 논리구조의 이해가 필요할거에요. 정치를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부자들은 가난한 이들에게 자신들만의 득을 위함임을 가릴, 쉬운 어조의 감안이설을 만들어 반복적으로 해대고. 그 너머를 보려면 어쩔 수 없이 지성이 뒷받침 되야 하고, 지성은 그냥 꽁으로 쌓이는 게 아니지요.
이유들을 생각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22-08-04 08:29   좋아요 1 | URL
갱지님 말씀처럼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서는 지식이 필요하고, 그 과정에서 역설적인 상황을 맞닥뜨리는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을 갖지 위해서 배워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자산이 필요한데 그 배경이 이미 하나의 배경이 되어버리는. 다른 한 편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모든 분야에서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태를 이해하는 것은 지식이 아닌 지혜가 필요하지 않나 여겨집니다. 자연이나 자신의 삶에서 터득할 수 있는 이치를 받아들이고 이로부터 자신의 판단을 유지하는 것은 말씀하신 역설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라 여겨집니다...
 

요전에 《월스트리트 저널》은 「증오가 빵보다 중요한 곳」이라는 논설을 게재했다. 그곳은 술수에 능한 지배계급이 수십 년 동안 가난한 민중을 착취했지만 동시에 민중들의 분노를 세계시민주의자들에게 향하게 하는 공허한 피해의식 문화를 그들 마음속에 불러일으켰다. 이 비극의 땅에서는 불가사의하게도 확실하게 눈앞에 드러난 물질적 불만보다 어떻게 해도 달랠 길 없는 문화적 불만이 더 기세등등하다. 인간의 기본적인 경제적 이기심은 잘못된 국가 정체성과 정의라는 매력적인 신화의 그늘에 가려져 있다.

그렇다. 보수 우파들은 농촌과 소도시들의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들은 경제가 악화된 것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그저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정치는 경제와 사정이 좀 다르다. 정치는 미국을 망치는 불경스러운 예술과 무소불위 법정변호사의 정신 나간 소송, 그리고 말 잘하는 건방진 팝스타들과 관련된 것이다. 정치는 소도시 사람들이 언제 월마트와 콘아그라에 관심을 보이고, 또 언제 진화론에 맞서 성전에 참여하는가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나 보수 반동은 상업문화가 더 확대되는 것을 거부하면서 동시에 그것을 모방한다. 보수주의는 추종자들에게 정체성, 저항, 희생양의 고결성, 심지어 개별성에 이르기까지 주류와 똑같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가짜 정신들로 구성된 하나의 획일적 세계를 보여준다. 그러나 무엇보다 보수 반동과 주류의 상업문화가 가장 비슷한 점은 둘 다 자본주의를 비판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는 사실이다.

민주당은 언제나 경제 문제에 대해서 공화당보다 약간 더 나으면 된다고 믿는다. 게다가 성공을 지극히 숭배하는 나라에서 정치인이 어떻게 가난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되기를 진정으로 바란단 말인가? 거기 어디서 돈이 나온단 말인가?

이것은 1970년대 초 민주당의 ‘새로운 정치’ 시대를 선언한 이래로 불규칙하게 민주당의 사고를 지배했던 극도로 소심하고 어리석은 전략이다

좌파들이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며 자신들이 잘났다고 만족해하는 동안 우파는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을 알고 매우 부지런히 그 일에 몰두했다. 보수주의 ‘운동문화’의 거대하고 복잡한 구조를 주목하라. 이 현상은 이제 더 이상 좌파만을 상대하지 않는다.

보수 반동은 하나의 사회체제로서 작동한다. 두 적수는 서로를 공격하면서 공생한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조롱하면 조롱을 받은 다른 하나는 더 강력해진다. 이것은 세상의 모든 지배계급이 바라는 것이다. 지배계급은 점점 더 거세게 공격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틀림없이 그렇게 공격받을 것이다. 따라서 지배계급은 점점 더 강력해질 것이다. 아직 검증된 바 없지만 오늘날 자본주의 문화가 하는 역할이 바로 이런 공생 관계를 강화하는 일이다. 문화가 타락할수록 문화를 타락시킨 사람들이 점점 더 부자가 되는데 어떻게 우리 문화가 점점 더 타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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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오행과 음양오행의 현실적 변용인 명리·사주·주역 등은 근대의 시기를 거치며 자신의 역할을, 역사적 구성물 또는 오락(점占의 형식으로)의 하나로 제한시켜 왔다. 그것은 불가피하고 적절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상은 밝음明과 어둠暗, 움직임動과 고요함靜, 더위暑와 추위寒로 구성된다. 밝고 움직이고 더운 건 양陽이고, 어둡고 고요하며 추운 건 음陰이다. 이 단순한 이분법의 위력은 강력하다. 세상의 어떤 것도 새나갈 수 없는 체계로 보인다.
음양론은 그 완벽해 보이는 체계에서 한발자국 더 나아가기까지 한다. 음에서 양으로, 양에서 음으로 변이하는 과정을 터놓았다

음양의 최종 거처는 바로 태양과 달이다. 태양과 달, 낮과 밤이 없었으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음양은 생겨나지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물어야 한다. 태양과 달은 ‘우주적 진리’인가?

음양은 지구적 진리다. 명백히 시공간의 한계를 지닌 이론과 상징들의 체계다. 우주적 진리는 아니다. 음양은 아무리 그 의의를 인정해준다 해도 ‘지구적 차원의 쇼show’를 넘어서지 못한다.

오행의 또 다른 확장형을 언급할 차례다. 바로 사주다. 사주는 오행으로부터 직접적으로 연역된다. 사주의 핵심적 기법은 오행의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 사주풀이는 한 사람의 생년월일을 간지干支라는 매개를 이용해 오행으로 치환하면서 가능해진다

가정에서의 총기와 관련한 위험(사고, 살인, 위협, 자살 위험의 증가)은 총기를 소지해서 얻을 수 있는 효능을 훨씬 능가한다. 가정에 총을 보유하는 것이 가족을 지키고 위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다.21

이는 실제 세계에서 실제 무기의 규제를 논의하는 대신, 가상 세계에서 가상의 무기를 규제하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 논의가 얼마나 모순적인지를 보여준다.

널리 알려진 기존의 연구들은 왜 비디오 게임을 부정적으로만 보고 긍정적인 면을 선뜻 받아들이지 않는 걸까? 최근 연구에 따르면 게이머가 가상 환경에서 부적절한 사회적 행동을 하고 나면 자신이 위반한 도덕률에 대해 더 예민해진다고 한다. 뉴욕주립대 버펄로캠퍼스 신문방송학과의 매튜 그리자드Matthew Grizzard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폭력적인 비디오 게임을 하면 도덕성이 떨어진다기보다 오히려 도덕적 감수성이 높아진다는 것이 우리 연구의 결론이다. 실생활에서도 그렇듯 도덕적 감수성이 높은 플레이어들은 자발적으로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한다."

비디오 게임만큼 인간의 감각과 뇌를 자극하는 것은 없다. 게이머는 현란한 삼차원의 세계에 푹 빠져 다채로운 풍경과 경쾌한 음악을 맘껏 즐길 수 있다. 이런 가상의 여정을 떠나려면 복잡한 근육 조작이 필요하므로 다양한 운동 중추와 감각 중추를 사용하게 된다. 독서는 즐겁고 의미 있는 여가활동이지만 매우 고독한 취미에 속한다. 반면 최근에 나온 게임들은 대체로 복잡한 사회적 관계를 유도한다. 목표 달성을 위한 노력과 팀워크가 결합되어 끈끈한 인간관계로 이어지기도 한다는 것이 존슨의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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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민주주의는 이런저런 형태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어쩌면 여전히 집권 중인 스웨덴에서는 살아남겠지만, 이 나라에서도 심각한 곤란에 처해 있다.
한때 극찬받던 스웨덴 모델이 이제 사회민주주의자들에게 서글픈 광경을 자아낸다면, 스칸디나비아 나머지 나라들은 눈물의 빙산이라고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반유대주의 세력인 자유당이 정부에 들어갈 가능성에 직면한 오스트리아의 유대인공동체는 강력한 어조로 우려를 표명했고, 나중에는 자유당 정치인들이 홀로코스트 기념일 행사에 참석하면 행사를 보이콧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유대 국가’의 총리인 베냐민 네타냐후는 한시도 지체하지 않고 쿠르츠에게 전화를 걸어 승리를 축하했다.

오늘날의 정치는 비스마르크의 냉소적인 경구(부인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다)를 따르면서 모두가 가능하기만 하면 누구에게든 의지하는 서커스가 되고 있다. "시험대에 오르기 전까지는 누구나 원칙을 고수한다오. 그런데 시험대에 오르는 순간 농부가 슬리퍼를 벗어던지듯이 원칙 따윈 내팽개치지."

1997년 당시 유럽연합 회원국 15개국 가운데 11개국에서 사민당이나 노동당이 집권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불과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당들이 집권하고 있는 나라는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는 비단 유럽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곳에서 완전히 패배하고 있다. 이런 패배 가운데 어느 것도 특별히 놀라운 일이 아니다. 좌파 정당이 우파의 의제를 그렇게 많이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이었다. 대다수 사민주의 정당은 조만간 긴축 정책을 받아들이고, 임금이 정체하고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내버려두었으며, 30년 전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규모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했다. 또한 불평등이 증대하도록 용인하면서 승승장구하는 수혜자들에게 과감하게 세금을 물리지 않았다. 하지만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한 것처럼, "세금을 인하하고 규제를 완화하면 … 새로운 고성장의 시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론은 철저하게 불신받고 있다".

한때 신자유주의의 성채였던 국제통화기금조차 과거의 지혜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최근에 펴내는 각종 보고서에서 국제통화기금은 부유층 세금 인하가 생산성을 끌어내리고 불평등을 증대시키고 있으며, 부유층에게 더 많은 돈을 주면 투자와 일자리와 성장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실이 아님을 인정한다.

불평등에 맞선 싸움은 분명 사회민주주의가 활용할 수 있는 카드였다. 하지만 사민당들은 그 대신 자신들이 신중하다고 여기는 카드를 선택했다. 지배적인 친시장 이데올로기에 영합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게임에서 졌다.

하지만 결국 유럽 보수 세력은 ‘추잡해졌는데’, 무엇보다 마거릿 대처가 민족주의로 추잡한 부분을 가린 채 보수당을 분명한 신자유주의 정당으로 재구성한 영국이 대표적인 사례다. 저소득층은 공짜나 밝히는 구걸꾼이 되고 싱글마더는 ‘무책임한’ 여자가 됐으며, 이런 ‘추잡함’에 반대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은 ‘물렁한 보수당원’이 되었다.

우파가 부상함에 따라 정치 언어의 퇴행 현상이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는 일련의 트윗과 장광설을 통해 술집에서나 하는 거친 조롱이나 귀에 거슬리는 인종차별적이고 남성적인 공격, 그리고/또는 불안한 나르시시즘에 사로잡힌 심술궂은 10대와 관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그런 생각을 소리 높여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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