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
버트란드 러셀 지음 / 사회평론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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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 ~ 1970)의 종교(宗敎)관련 에세이(essay)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는 종교에 대한 러셀의 생각이 담긴 여러 글이 수록되어 있으며, 그 중에서도 제목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대한 주제와 연관된 글 두편을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자.


 [그림] 버트런트 러셀( 출처: http://bonlivre.tistory.com/474)


1.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The Existence of God


 우리는 러셀과 F.C코플스턴(Frederick Charles Copleston, 1907 ~ 1994) 예수회 신부간 이루어진 토론을 정리한 이 내용을 통해 기독교의 신 존재(存在)에 대한 한 내용을 확인하게 된다. 코플스턴 신부는 많은 존재(存在)들이 존재 이유를 스스로 갖지(內在) 못하여, 존재 이유를 밖에서 찾게 되고 이러한 존재는 반드시 실재하는 존재이어야 한다는 내용의 이야기를 한다.


'코플스턴 : 무엇보다도 나는, 세상에는 자신의 존재 이유를 자체 속에 지니지 못한 존재들이 적어도 일부는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둘째로, 세상은 실제의 혹은 상상의 총체이거나 개별 대상들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데 그 어느 것도 오로지 자신의 존재 이유만 지닌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대상이나 사건들이 존재하는 이상, 어떤 경험의 대상도 자체속에 존재 이유를 가지지 못하는 이상, 그 이유는 대상들의 총체는 자신의 외부에 존재하는 이유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반드시 실재하는 존재이어야 합니다.'(p247)


코플스턴 신부의 이런 존재이유의 외재성(外在性)에 대해 러셀은 '실체를 포함하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분석적 명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주장한다. 분석적 명제에서 '주어(主語)'가 실재한다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으며, 우리는 실재의 의미를 '술어(述語)'에서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러셀의 기술 이론 (description theory)에서 지적한  '황금산 문제' 또는 '웨이틀리의 문제'가 여기서 다시 언급된다.


'러셀 : 신부님의 이론에 답하는 가장 적합한 출발점은 필연적 존재의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필연"이란 말은 명제에 붙을 때 비로소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나는 주장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분석 명제 같은 것들 다시 말해 부정하면 자기 모순이 되는 그런 것에만 붙여야겠지요. 만일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면 자기 모순이 되는 존재가 있다고 하면 나로서도 필연적 존재를 인정할 수 있을 수 없겠지요. (p248)... 신부님이 지금까지 하신 얘기는, 제가 보기엔 우리를 존재론적 증명으로 되돌려 놓는 것 같습니다. "실재를 포함하는 존재가 있으며 따라서 그의 실재는 분석적이다."고 하는 증명 말입니다. 나로서는 그건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리고 물론 그것은 실재의 의미가 무엇이냐의 문제를 제기하는데 여기에 대해 나는, 이름 붙여진 주사(主辭: subject)가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으며 서술된 주사에 한해서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상 그 실재가 술어(術語 : predicate)가 아닌 것은 너무도 명백합니다.'(p251)


 기술이론의 내용을 신(하나님)의 실재 문제 측면에서 접근한다면, 다음과 같은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하나님'을 하나의 주어(명사)로 놓았을 때 '세상의 원인'과 '실재'는 각각 이를 설명하는 술어(동사/형용사)에 해당하고, 이들 술부들은 각각 주어를 설명할 뿐이지 이들간 관계를 맺어질 수 없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다.


'"세상의 원인은 실재하는가?" 라는 질문은 분명 의미가 있는 질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신부님이 "그렇다, 하나님은 세상의 원인이다."고 말한다면 그 경우 당신은 하나님을 고유 명사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이 실재한다"는 것은 의미를 가지는 진술이 아닐 것이며, 내가 주장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것입니다. 따라서 이것 혹은 저것이 실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분석 명제가 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기 때문입니다.'(p252)


 러셀의 이러한 내용에 대해 코플스턴 신부는 동의하지 않으면서 토론은 이후 평행선을 달리게 된다. 코플스턴 신부의 주장 속에는 기독교의 원인론과 목적론에 대한 주장이 담겨 있는데 러셀은 이에 대해 매우 날카롭게 비판을 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 첫 단편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자세히 담겨 있다.


2.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 담긴 신 존재에 대한 러셀의 물음


 러셀은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존재는 순수 이성에 의해 입각될 수 있다는 교리에 물음을 던진다. 코플스턴 신부와의 대담은 이러한 가정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러셀은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많은 분량을 기독교의 신 존재에 관한 주요 원인인 제1원인론, 자연 법칙론, 목적론, 신성을 위한 도덕론, 불의 치유론 등에 대해 물음을 제시하는 것에 할애하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의 철학을 바탕으로 성립한,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 ~ 1274)로 대표되는 스콜라 철학(Schola 哲學)에 대한 러셀의 물음은 다음과 같다.


가. '제1원인론'에 대한 물음


 '아마도 가장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이론은 제1원인론일 것이다 (이 이론에서는 우리가 보는 이 세상 만물에는 모두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의 사슬을 따라 점점 깊이 들어가다보면 최초의 원인에 도달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그 제일 마지막의 원인에 하나님이란 이름을 붙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버지는 내게 이렇게 가르치셨다. [누가 날 만들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해답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 즉시 [누가 하나님을 만들었는가?] 라는 보다 깊은 물음이 제기되기 때문이다."'(p22)


나. '자연 법칙론'에 대한 물음


'"그러나 자연 법칙은 사물들이 실제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기술하는 것으로서 사물의 실제 움직임을 기술하는데 지나지 않으므로 사물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움직이도록 명령하는 자가 반드시 있다고 말할 순 없다. 왜냐하면 그런 존재가 있다고 가정하는 순간 곧 다음의 의문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왜 그러한 자연 법칙들만 만들고 다른 법칙들은 만들지 않았는가?" 만약에 하나님 자신의 기분에 따라 그렇게 된 것일 뿐 다른 이유가 없다고 한다면 결국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들도 있다는 뜻도 되고 그렇게 되면 자연 법칙의 일관성은 깨어지고 마는 것이다.'(p25)


다. '목적론'에 대한 물음


'세상 만물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에 꼭 맞도록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이 상태에서 조금만 달라진다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으리라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목적론이다... 다윈 이후로 우리는 생물이 각자의 주위 환경에 적합하게 된 이유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즉, 환경이 생물에 맞추어 만들어졌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이 환경에 맞추어 변해왔기 때문이며 이것이 바로 적응의 기본 원리이다. 거기에 목적의 증거 따위는 전혀 없다.'(p28)


라. '신성을 위한 도덕론'에 대한 물음


'칸트의 도덕론에는 온갖 종류의 형태가 있는데 그중 하나에서는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옳고 그름도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나의 관심사는 옳고 그름에 차이가 있다고 확신하게 되면 곧바로 다음과 같은 의문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점이다. "그럼 그 차이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생기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만일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생기는 거라면  하나님 자신에게는 옳고 그름이 아무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 따라서 하나님에게는 선(善)이라는 말 자체가 벌써 아무 차이가 없다는 얘기가 된다.'(p29)


마. '불의 치유론'에 대한 물음 


'하나님의 존재는 이 세상에 정의를 가져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 이 한편에는 너무도 큰 불의(不義)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에 정의가 존재한다고 믿기 위해서는 이 지구상 삶의 불균형을 바로잡아주는 내세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긴 안목에서 결국 정의가 존재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은 있어야 하며 천국과 지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만일 여러분이 이 문제를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이렇게 말하게 될 것이다... "결국 나는 확률에만 입각해 말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마도 이 세상이 우주 전체의 평균적 표본일 것이고 그러니 여기에 불의가 존재한다면 다른 곳들에도 역시 불의가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할 것이다."... 다시 말해, '여기 이 세상에서 우리는 엄청난 불의를 본다. 그렇다고 한다면 정의가 세계를 다스리는 것은 아니라고 보는 것이 마땅하다.'(p30)


3. 종교란 무엇인가와 우리의 할 일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물음을 제시한 러셀은 종교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들의 두려움 때문이고, 이러한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함이 파생된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두려움, 큰 공포가 사람들을 잔인하게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현상을 통해 확인한다. 두려움으로부터 잔인함이 나온다면, 종교의 기반을 두려움이라고 했을 때, 종교가 잔인함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러셀의 주장이 된다. 


 '종교의 일차적이고도 주요한 기반은 두려움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이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여러분이 온갖 곤경이나 반목에 처했을 때 여러분 편이 되어줄 큰형님이 있다고 느끼고 싶은 갈망이기도 하다.... 두려움은 잔인함의 어버이다. 따라서 잔인함과 종교가 나란히 손잡고 간다고 해서 놀랄 것은 전혀 없다.'(p40)


 러셀은 이러한 종교의 문제에서 벗어나 결국 우리가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을 통해  훌륭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고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를 통해 주장하고 있다. 


 '우리는 세상의 선한 구석, 악한 구석, 아름다운 것들과 추한 것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되 두려워하지는 말자. 세상에서 오는 공포감에 비굴하게 굴복하고 말 것이 아니라 지성으로 세상을 정복하자.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 자유인들에겐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인 것이다... 두려움 없는 직시와 자유로운 지성이 요구된다. 죽어버린 과거만 돌아보고 있을 게 아니라 미래에 대한 희망이 필요하다.'(p41)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제기된 신 존재에 대한 러셀의 물음은 과학적이고 치밀하다. 러셀의 물음에 대해 대답이 명확하지 못한 이유는 '신 존재 증명'이 명사적인 의미의 신(神)을 지시하는 선에서 멈췄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기존 교단의 논리에 대해 철학적 비판을 가한 후 러셀은 다음과 같은 말로 사람이 지향해야할 삶을 제시한다.


"The good life is one inspired by love and guided by knowledge." - 러셀 - 

'훌륭한 삶이란 사랑에 의해 고무되고 지식에 의해 인도되는 삶이다.'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에서 제시된 기독교에 대한 비판과 더불어 훌륭한 삶을 지향하는 러셀의 철학은 우리에게 많은 통찰을 제시한다. 종교가 가져온 폐해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의 지향점을 찾자는 러셀의 철학은 기독교 신앙을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러셀의 논리를 우리는 비판없이 수용할 수 있을까? 나는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러셀은 '신에 대한 모든 관념은 동양의 고대적 전제주의에서 나왔다'고 책에서 언급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종교의 모든 폐해가 서양의 전통이 아니라, 동양에서 흘러든 이른바 적폐(積弊)로 규정하는 러셀의 글 속에서 '기독교의 폐해'를 동양으로 넘기고 베이컨(Francis Bacon, 1561 ~1626)이래 서양에서 강조된 과학적 탐구자세를 강조하는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현재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생겨난 기독교가 유럽으로 전파된 이후 많은 공과(功過)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후 중세(中世) 천 년을 지내면서 신(God)을 강조한 기독교는 유럽에 많은 영향을 미치면서 유럽 전통(傳統)의 주류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신에 대한 관념을 동양적인 사상으로만 몰아갈 수 있을까. 또한, 러셀이 말하는 훌륭한 삶에서 '사랑'이라는 개념 역시 세계 문명에 공통된 황금률(黃金律)에 기반했다는 사실과 함께 서양의 많은 '지식'이 '신의 시대'라 불리는 중세(中世) 1,000년의 시간적 영향하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가 지향하는 '훌륭한 삶'이 과연 서구의 과학적인 전통만의 산물인가하는 의문을 제기하게 된다.


 이러한 러셀 인식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앞선 러셀의 통찰과 그가 지적한 문제가 현재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 신앙의 유무와 관계없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유익한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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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23 17: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의 내용이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어려워 보이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4-23 17:50   좋아요 0 | URL
<나는 왜 기독교인이 아닌가>는 전체 15편의 짧은 에세이로 구성되어 있는데,2개 장(1장과 13장)을 제외한 다른 13개 장의 내용은 편하게 읽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1장과 13장의 2개 장은 ‘존재론‘, ‘인식론‘ 관련한 내용이라 정리가 필요할 거 같아 이번 리뷰를 썼어요..^^; 주제는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 다른 장을 통해서도 종교에 관한 러셀의 생각을 충분히 맛보실 수 있을 것 같네요....

AgalmA 2017-04-24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동양 탓으로 돌려 버리다니 하이데거가 반유대주의로 빠지는 것처럼 황당하네요 ㄷㄷ

겨울호랑이 2017-04-24 16:35   좋아요 1 | URL
^^: 그러게요. 러셀 형님을 그리 안 봤는데, ‘저엉말~ 실망입니다.‘ ㅋㅋ
 
초급 색종이 접기 - 어린이들의 창의력과 지능개발을 돕는
공작교육학습회 엮음 / 삼성서관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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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연의와 색종이 접기를 했습니다.
여느 유치원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연의도 색종이 접기를 좋아하네요.

제가 미술솜씨가 없는 편이어서 색종이 접기가 서툰 편이라 연의를 따라 가기 힘드네요ㅜㅜ. 그래서 여러 종이접기 책을 구입했습니다만, 손과 머리가 따로 놀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초급 색종이 접기」는 낮은 난이도의 종이접기를 쉽게 설명하고 있네요^^: 솜씨 좋은 엄마보다 서툰 아빠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됩니다..

(종이 접기 후 이야기)

호랑이 : 연의야 아빠가 펭귄 만들었어. 선물해줄께.

연의 : 응, 고마워

호랑이 : 연의도 아빠한테 만든 것 주면 좋겠다.

연의 : 싫어, 엄마에게 줄꺼야.

호랑이 : (ㅜㅜ)... 왜 엄마에게 줄꺼야?

연의 : 엄마는 아빠보다 작잖아. 그래서, 내 선물이 필요해.

호랑이 : ... YOU WIN!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존재라 생각이 듭니다. 아니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삶의 고단함에 깎여 작아지는 것일수도 있구요.. 이웃분들 모두 좋은 봄날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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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22 08: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ㅎㅎ 아빠의 사랑에 대한 행동주의!~~~종이접기도 이런 맥락이죠..네 사랑이 입발린 소리가 아닌 이런 맥락의 행위~ 사람은 행동이 아름다워야 진짜 아름답습니다.연의가 좋아하겠습니다.우리 아빠 최고~ ㅋ

겨울호랑이 2017-04-22 08:51   좋아요 3 | URL
^^: 유레카님 감사합니다. 연의도 좋아하는데 아빠보다 더 잘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더 좋아하는 것 같네요 ㅜㅜ ㅋ

줄리엣지 2017-04-22 08:5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두 딸들이랑 종이접기 많이 했는데요~~추억소환이네요^^ 행복한 토요일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4-22 08:5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줄리엣지님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날이 정말 좋네요.^^:

서니데이 2017-04-22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세번째 사진 보니 따님이 화가 많이 난 것 같은데요.^^;
종이접기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아이들은 잘 하나봐요. 부럽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4-23 00:24   좋아요 1 | URL
^^: 연의가 사진을 찍는다니 메롱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많이 장난꾸러기가 되었어요 ㅋ 재주 많은 아이들 따라 가기가 쉽지 않네요.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나와같다면 2017-04-22 22: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정말 아이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큰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고 여린것을 생각할 줄 아는 연의..
이 아름다운 마음 계속 간직하고 커나가기를 기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4-23 00:23   좋아요 0 | URL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저도 나와같다면님과 같은 마음입니다. 이런 사랑을 받으니 앞으로도 잘 성장하리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AgalmA 2017-04-24 16:3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바꾸신 연의 프로필 사진도 엄청 귀엽네요^^

겨울호랑이 2017-04-24 16:34   좋아요 1 | URL
^^: 네 그네 한 번 뛰고 베지밀로 입가심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아빠와 그네 시합해서 이긴 전리품이지요..ㅋㅋ 어찌나 좋아하는지..

보슬비 2017-04-25 22: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구쟁이 연의도 귀엽고, 겨울호랑이님께서 접으신 펭귄도 귀여워요~~.^^

겨울호랑이 2017-04-26 05:28   좋아요 0 | URL
보슬비님 감사합니다^^: 슬프게도 연의는 별로 관심을 안 보이네요 ㅜㅜ

커피소년 2017-04-28 20: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색종이접기를 좋아했었습니다..ㅎㅎ 여러모로 친환경이란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느끼게 되는 사진들입니다..ㅎㅎ 집안 내부도 자연을 옮겨 놓은 느낌이네요..ㅎㅎ

겨울호랑이 2017-04-29 06:37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관사로 이사오면서 자연 안에서 쉬고 싶다는 생각으로 많이 바꿨습니다. 넓지 않은 관사로 오게 되니 저절로 minimal Life가 되네요.ㅋㅋ
 


 며칠 전 출근하는 새벽길에 음악방송을 통해 베토벤 9번 교향곡 <합창> 4악장을 들었습니다. 

 어두운 출근길에 떠오르는 해를 통해 서서히 밝아지면서 보이는 주변은 마치 음악으로 인해 세상이 깨어나는 듯한 느낌이 들더군요. 너무도 좋은 느낌에 출근 후 동영상을 찾아 다시 몇 번을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합창>은 봄에 참 잘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점심 시간에 듣던 중 이 곡을 통해 들었던 몇 가지 생각이 있어 잠시 적어봅니다. 9번 교향곡 '합창'의 4악장은 잘 아시다시피 처음에 관현악으로 연주만으로 곡이 진행되다가, 남성 바리톤의 음성이 들리며 잘 진행되던 연주는 잠시 중단이 됩니다.


O Freunde, nicht diese Töne! 오, 벗들이여! 이 선율이 아니오!


이 말을 시작으로 바리톤이 가세하고, 이후 베이스, 알토, 소프라노, 합창단의 등장으로 이 곡(曲)은 우리가 잘 아는 절정으로 향합니다. 사람의 목소리가 가장 완벽한 악기라는 말이 있는데, 합창단의 가세로 음악은 깊이와 색깔이 달라진다는 것을 <합창>에서는 특히 더 잘 느끼게 됩니다. 마치, 만화 <슬램덩크>에서 상양의 김수겸을 연상시키는 느낌입니다. 제가 이 만화를 봤던 것이 1992년이니 아주 오래된 만화이기에 모르실 분이 많을 것 같습니다. 실력과 미모를 겸비한 김수겸을 모르는 분들께 소개합니다. 특히, 여성분들이 좋아하실 것 같네요.^^:


[그림] 김수겸이 없는 상양 (출처 : 슬램덩크)



[그림2] 상양의 김수겸(출처 : 슬램덩크)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의 이상형이 김수겸이었기에 저는 별로 이 녀석을 좋아하진 않습니다만, 당시에 많은 여성들의 맘을 설레게 했던 만화주인공 중 한 캐릭터였습니다. 


 악기의 연주에 인간의 음성이 더해져서 곡의 차원(次元)이 달라진다면, 지휘자에 따라 곡의 깊이, 높낮이가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다른 지휘자들이 해석한 <합창>을 통해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른 두 지휘자가 해석한 <합창>의 느낌은 좀 다릅니다. 주관적인 생각이니 전문 감상가분들 견해에는 크게 못미칩니다만,  

 


개인적으로 바렌보임의 '합창'은 조금 더 섬세하고 예민하다는 느낌이 드는 반면, 

 


카라얀의 '합창'은 보다 선이 굵다고 느껴지네요. 같은 악보를 토대로 하지만, 지휘자들이 평면적인 악보의 음표에 생명을 부여하는 것이 '연주'라 생각됩니다. 음(音)의 강약(强弱), 장단(長短)의 작은 차이가 전체 느낌을 크게 바꾼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이치는 사람 얼굴에서 입모양 하나로 전체 느낌이 달라지는 것과 같다는 생각도 해봅니다..이런 면에서 음악과 미술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네요...



[그림3] 웃는 얼굴, 찡그린 얼굴(출처 : http://oxygen1114.tistory.com/category/?page=2)


 <합창>을 연주하는 관현악단을 보니, 우리가 흔히 볼 수 없었던 악기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리듬악기라고도 불리우는 트라이앵글, 북 등이 보이네요. 흔히 우리는 타악기를 쉽게 생각하지만, 조금만 깊이 생각해보면 타악기를 잘 연주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타악기 연주자들은 다른 악기연주자들에 비해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상대적으로 제약된 상태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음악가들입니다. 1시간 30분 가까이 계속되는 긴 연주 시간 동안 몇 번 안되는 작은 기회를 포착해서 놓치지 않고 적절하게 자신을 표현하기 위해 공기의 떨림, 최적의 연주법을 고민한다는 것은 피아노 독주자들의 연주와는 다른 의미에서 긴장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음악을 듣다보니,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연주자들의 고민이 담긴 <콘트라베이스>가 생각이 납니다. 짧은 책이었지만, 큰 덩치에 비해 인정받지 못한 악기와 그것을 다루는 음악가의 느낌이 잘 묻어난 책이었습니다. 

 

 교향곡에는 정말 많은 악기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각자 자신의 영역에서 조화(調和)를 이루어 하나의 음(音)을 연주하기에 많은 색깔들의 꽃이 피어나는 봄과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산에 있는 서로 다른 꽃들이 제각기 서로 다른 색(色)과 크기로 자신을 표현하기에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다시 느낍니다. 저는 보라색을 좋아하지만, 산에 온통 보라색 꽃만 있다면 그보다 공포스러울 것도 없을 것같습니다. 초록색과 빨간색 심지어는 작년에 땅에 떨어진 낙엽도 어울려서 자신을 표현할 때 비로소 생명이 있을 수 있음을 교향곡과 산에 핀 꽃을 통해 느껴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홍준표, 심상정과 같이 서로 다른 위치의 정치인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어지럽다기보다는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멀리서 본 아름다운 산도 막상 올라가보면 엉켜있는 나무뿌리, 잡초 등으로 생각만큼 아릅답진 않습니다. 심지어는 썩는 냄새가 나기도 합니다. 또한, 벌레도 날아다니기에 지저분한 것 같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그러한 것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봄은 살아가는 향(香)이 나지 않고, 소리도 나지 않은 생명이 없는 봄은 아니었는지. 추상적인 봄(cosmos)를 꿈꿔왔기에 현실의 봄(chaos)이 우리에겐 실망스러운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 봅니다... 이런, 음악을 잘 모르니 음악의 미(美)에 빠지지 못하고 깔대기처럼 또 이상한 쪽으로 나왔습니다..ㅋ


 꽃 피는 봄. 서로 다른 많은 악기들이 조화를 이루면서 하나의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조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베토벤의 <합창>을 들으며 소원해 봅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금요일 되세요^^:




ps. 상양의 김수겸은 20여년의 시간이 흘러도 그대로군요..ㅜㅜ 이런 피터팬같은 녀석. 예나 지금이나 별로 마음에 안듭니다. ㅋㅋ 20년 전에는 조금 부러웠는데, 지금은 조금 많이 부럽네요.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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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1 11: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1 1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7-04-21 22: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연의 사진이 달라졌네요.^^
예쁜 사진이 많을 것 같아 매일매일 바꾸셔도 될 것 같아요.
마지막의 사진은 겨울호랑이님 이실 것 같은데요. ^^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04-21 23:00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뛰는 사진이 많아 연의 표정이 잘 안잡히네요. 제 사진은 거의 20년전 사진이라..ㅋ 지금은 풋풋함이 없네요. 서니데이님 편한 밤 되세요.^^:

오거서 2017-04-22 17:4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20 년 전의 겨울호랑이 님은 안경 쓴 김수겸 같아요. 눈이 즐겁고 귀가 호강하는 글이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23 00:11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오거서님 20년이 지나니 북산고 감독님이 되버렸네요^^: 음악을 사랑하시는 오거서님께서 즐겁게 읽으셔 특히 기쁩니다.

곰곰생각하는발 2017-04-22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래 사진 겨호 님이시군요. ㅎㅎㅎㅎ 젊은 손석희 같습니다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4-23 00:20   좋아요 0 | URL
^^: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누구나 한창때는 가능성 하나로 아름다운 시절이 있는 것 같습니다 ㅋ 지금은 홍석현 닮은 외모 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ㅋㅋ
 

 [더 플랜 The Plan (2017)]의 인터넷 공개 파일이 최근 조회수 100만이 되었다고 하니, 대선 국면에서 단연 화제가 되고 있는 영화라 생각된다. 조회수가 많지만, 아직 안 보신 분들도 계시고 이제 막 개봉이 된 영화이기 때문에 영화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다만, '더 플랜'의 인터넷 선공개의 의미가 '19대 대선에서 개표부정 가능성'에 대한 공감대 형성이라고 했을 때 개표부정에 대한 짧은 생각과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더 플랜'에서는 선거와 관련한 여러가지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 중 하나가 해킹 프로그램에 의해 투표결과에 관계없이 작위적으로 결과가 집계될 수 있다는 문제다. 영화에서는 이에 대한 대책으로 유권자들의 시민감시단으로의 적극 참여와 수검표 후전자검표 실시를 주장하고 있다.아마도 제작진은 이 메세지를 전달하고 싶어 사전공개를 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대선이 불과 20여일 정도 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수검표로의 방법 개편은 인력 편성 등의 문제로 어려워 보인다.  프로세스 개선이 어렵다면 다른 방법으로 전자검표 문제를 확인할 수 없을까? 짧은 생각이지만, '투표소에서 전자 개표 직전 시험 테스트'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에서처럼 극단적인 경우를 가정한 경우(가령 홍길동 80 / 심청이 20)의 투표용지들를 100매 정도 전자 개표기에서 확인해서 기기의 정상여부를 확인하면 어떨까. 선거감시인단과 각 당의 관계자 눈 앞에서 제대로 인식하는가를 확인 후 개표에 들어간다면 '더 플랜'에서 제기한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를 위해 개표 전 30분 정도 시간이 더 걸리겠지만, 전체를 수검표하는 인력, 시간에 비한다면 적은 비용이라 생각한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이고, 투표 과정에서 예상되는 많은 문제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세련된 생각도 아니고, 채택되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1명의 유권자로서 유권자들의 수많은 의견 중 하나의 방안으로 제안해 본다. 반드시 이 방법이 아니더라도 선관위에서 개표관련한 의혹을 불식시킬 수 있는 있는 방안을 투표전까지 만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을 가지면서.


 다른 한 편으로 '더 플랜'이 가져온 사회적 충격에 대해서도 잠시 생각해 본다.

'더 플랜'이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만큼 사회적으로 준 충격도 크다고 생각되고, 충격은 제작진들의 의도와 관계없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 모두 미치고 있는 것 같다. 긍정적인 측면은 유권자들에게 자신의 소중한 표를 지켜야한다는 의식을 일깨웠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반면, 최근 말해지고 있는 '투표 무용(無用)론'은 영화가 가져온 부정적 효과라 여겨진다. 어렵게 투표해봤자 결국 결과는 왜곡된다고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에서 나오는 투표 무용론은 분명 경계해야할 대상이라 여겨진다.


 지난 11월부터 최근까지 우리가 바른 길로 가기 위해 쏟았던 노력을 생각한다면, 5월 4~5일 사전투표일과 5월 9일 투표일에 신분증을 가지고 가서 투표하는 일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벚꽃 대선'이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일이었음에도 최근에는 대선 후보자들간 네거티브 공방과 검증되지 않은 공약등이 난무하는 현실은 우리에게 많은 실망감을 주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결과 '과연 나아질 수 있을까?'하는 의심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최선(最善)의 방안이 없으면 차선(次善)의 방안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이 최선의 선택일 것이다. 더이상 투표 포기가 또 하나의 선택이 될 수는 없다. 투표 포기는 미래의 잘못된 결과에 대한 면피(免避)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 포기일것이다.


 201년 11월 우리는 우리 후손들에게 나라다운 나라를 물려주자고 촛불을 들었고, 우리는 가정의 달인 5월 선거를 맞이하게 되었다. 사전투표일인 5월 5일은 어린이날이다. 9일 시간이 안 되는 유권자들은그날 장난감 가게에서 아이들에게 어떤 멋진 장난감을 사줄 것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사전투표를 통해 멋진 나라를 물려줄 것을 고민해야 겠다. 그리고, 본투표일에는 5월 8일 어버이 날에 카네이션 달아드리면서, 부모님들께서 더이상 노후걱정하지 않고 안락한 삶을 드릴 수 있도록 고민하고,  9일에 투표하는 것이 진정한 어버이날의 선물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실망에 행동을 포기하기보다, 주어진 선택지 내에서 선택이 우리가 가야할 길일 것이다. 그러면서 우리 삶에 대해 생각해본다. 


 언제나 이상과 현실은 큰 차이가 있는 법이고 그것을 좁혀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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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4-20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20 11: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4-20 13: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투표를 독려하는 인증 사진보다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를 소신 있게 설명한 이런 글이 더 좋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20 13:40   좋아요 2 | URL
^^: cyrus님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이들이 투표에 참여한다면, 비록 제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되지 않더라도 기쁠 것 같습니다.

목나무 2017-04-20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 플랜> 보고서는 화가 나기보다는 눈물이 나더라구요.
그런데 다음날 SBS에서 중앙선관위에서 작정하고 내보낸듯한 공정한 선거와 개표에 대한 광고 목적의 방송을 보고있자니 열불이 나서.......
이번 황금연휴에는 가족들이 다 같이 진지하게 정치에 대해 논해보는 시간도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4-20 14:59   좋아요 1 | URL
오늘 오전에 보니 중앙선관위에서 <더 플랜>에 대한 공식입장을 내놓았다는 기사가 검색되네요. 원한다면 18대 대선 결과 용지를 확인하겠다는 기사였습니다. 그렇지만, 향후 예상되는 문제에 대한 대처방안은 나오지 않은 것 같네요... 선관위의 혁신적인 방안을 기대해 보면서, 우리는 후보들이 현실적인 공약을 제시하는가를 검토해야겠지요^^: 설해목님 감사합니다.
 
미학 오디세이 2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미학 오디세이2>에서는 <미학 오디세이>에 이어 근대 이후 현대 예술(미술) 중심으로 미학(美學)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작가가 생각하는 현대 예술이 그 이전 시대의 예술과 구분되는  특징은 무엇일까? 작가는 그것을 '의미 정보의 분리'라 해석하고 있다.


1. 현대 예술과 의미 정보의 분리


'현대 예술은 그림 밖의 어떤 사물을 지시하지 않는다. 지시하는 게 있다면 오직 자신뿐이다. 여기서 의미 정보에서 미적 정보로의 전환이 시작된다. 예술 작품의 정보 구조를 우리는 둘로 나눌 수 있다. 가령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 ~ 1640)의 <파리스의 심판>을 생각해보라. 우린 이 작품 속의 장면이 어떤 장면인지를 이미 알고 있다. 


[그림1] 파리스의 심판 (출처 : http://cfile27.uf.tistory.com/image/1172CC3B4FFCF6B2366F4D)


이게 바로 그 작품의 '의미 정보'다. 이제 이 내용을 머리에서 지워버려라... 그럼 그림 속엔 순수한 형태와 색채만 남는다. 이게 바로 작품의 '미적 정보'다. 의미 정보를 중시한 고전 회화에선 형태나 색채가 주제에 종속되어 있었다. 하지만 재현을 포기한 현대 예술엔 내용이나 주제가 있을 수 없다. 다만 색과 형태라는 형식 요소 자체가 가진 아름다움, 즉 미적 정보만 있을 뿐이다.'(p43)


2. 화폐의 금태환 금지... 화폐와 신용의 결합


현대예술과 의미의 분리라는 지점에서 한 가지 다른 생각이 들게 된다. 다소 엉뚱하지만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정지'선언과 현대 예술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1971년 이전에는 '금(金 gold)'와 '달러 dollar'는 서로 묶여 있었기에 달러 발행액도 제한적이었다. 이와는 달리 금과 달러의 연관고리가 끊어지는 조치가 금 태환 정지다. 이 시점 이후 달러와 금은 제갈길을 가게 된다.


가. 달러 위기


'1950년대 말부터 서구의 눈부신 경제성장에 비해 미국경제는 정체하고 국제수지도 만성적이고 대폭적인 적자를 누적시켜 금 준비와 대외 단기달러채무 잔고의 비율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비롯된 달러의 지위 동요는 1960년 가을에 표면화되어 그 후 이런 경향은 만성화되고 심각화되어 금융 위기인 달러 위기(dollar 危機)로 이어졌다.'


[그림2] 금 본위제(출처 : 한미경제협의회)


나. 금본위제의 붕괴


'베트남 전쟁 등으로 인한 미국의 국제수지 적자가 발생하고, 전비조달을 위한 통화량 증발에 의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달러 가치가 급락하자 일부 국가들이 금태환을 요구하였고, 결국 금태환 정지선언인 1971년의 8·15 닉슨 조치는 이런 달러위기의 타개를 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나 이 조치에 따라 브레튼 우즈 체제가 붕괴, 국제 통화제도는 혼란에 빠지고 세계무역은 축소화의 경향을 지지게 되며 한편 후진국에는 악영향을 주었다... 금환본위제는 국제수지 자동조절기능의 약화와 통화팽창 가능성이란 약점때문에 1929년 대공황을 계기로 1931년 붕괴하게 된다. 따라서 이때의 무역정책을 보면 강력한 보호무역조치가 만연하는 경향이 나타났었다. 특히 1930년대의 세계대공황은 국제통화질서를 회복하기 어려운 결정타를 가하였다. 주식시장의 붕괴는 급속히 전 세계로 확대되어 유럽각자의 연쇄적인 파산을 불러일으켰고, 그 후 미국마저 달러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하여 주요선진국은 일시적인 변동환율을 채택하게 되었다. 여기서 금본위제도는 붕괴되고 말았다.' (이상 출처 : [위키백과])


마치 금태환 정지라는 사건 이후 달러가 금으로부터 독립된 것처럼, 현대 예술은 의미 정보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세상 모든 것은 상호 관계 속에서 유지되기 때문에 달러와 현대 예술 역시 그 자체로 독립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이들은 각각 새로운 의미와 결합을 하게 된다. 먼저 통화부터 살펴보자.


다. 통화와 신용(信用)의 결합


통화는 금으로부터 벗어나면서 발행액의 제한으로부터 벗어났지만, 가치 평가를 위해서 다른 요소 '신용(信用)'와 결합된다. 물론 이전에도 채권등이 있지만, 현대의 채권은 단순한 채권채무관계 증서만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통화정책의 수단으로도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가 새롭게 맺어졌다고 볼 수 있겠다. (최근 양적완화정책으로 대표되는 국채발행과 중앙은행의 국채매입은 이러한 특징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림3] 통화지표의 구성 내역 ( 출처 : 한국은행 <우리나라의 통화지표 해설>)


2. 고전 예술과 현대 예술 


그렇다면, 현대 예술은 무엇과 결합했을까? 현대 예술은 (가치 평가를 위해) 미적 정보와 결합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 ( )안은 겨울호랑이 해석


'의미를 중요시한 고전주의 예술에선 대상의 형태가 가장 중요했다. 색채는 단지 대상의 형태를 분명히 드러내는 수단일 뿐이었다. 하지만 현대 예술에선 대상성이 사정없이 파괴된다. 형태와 색채는 대상에서 해방되어 자유로운 구성을 이룬다. 결국 고전주의 예술은 의미 정보를 추구한 반면, 현대 예술은 의미 정보를 단순화하는 가운데 미적 정보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할 수 있다.'(p249)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K. Heisenberg, 1901 ~ 1976)의 불확정성 원리는, 세계를 확실하고 고정된 관점에서 인식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현대 예술이 확실하고 고정된 필연성에서 도피하고 다의성을 띠는 경향은, 이런 의미에서 현대 사회의 위기의 반영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열린 작품이 부정적 측면만 갖고 있는 건 아니다. 우린 그 속에서 긍정적인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새로운 인간 유형이다.'(p291)


<미학 오디세이2>에서는 이처럼 현대 예술의 미적 의미와 다의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름다움의 상징은 여신(女神)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스 미술의 아름다움은 조각으로 대표된다. 대리석안에 상(像)의 idea가 숨겨져있다는 미켈란젤로(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 ~ 1564)의 말처럼 그리스 조각상에는 수학적 비례를 갖춘 많은 미의 이상이 표현되어있다.


[그림4] 아리아스(출처 : 나무위키)


반면, 고대에는 어느 정도 미의 정형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현대예술은 다양성을 인정한다. 


[그림5] 아리아스(부제: 피카츄) (출처 : 겨울호랑이 핸드폰)


 위의 사진을 보고  아리아스라고 이름을 붙였을 때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이 고대 예술과 현대 예술의 차이라 생각된다.(너무 무리했을 수도 있겠다.) 비록, 모두의 공감을 얻기 힘들더라도, 적어도 겨울호랑이가 연의를 아리아스보다 예쁘다고 생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현대예술의 열린 개방성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미학 오디세이2>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 ~ 1967)의 여러 작품을 통해 잘 설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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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04-18 17:0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에 나오는 미술 작품에는 ‘정보’만 있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예술 작품들은 색과 형태라는 형식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어요. 과거에 눈으로 보는 감상 행위는 무의미해졌어요. 그래서 요즘 예술 작품들은 난해해요. 예술 작품 속 심미적 가치가 좋아서 그걸 사들이는 컬렉터가 그리 많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 컬렉터들은 경제적 가치를 보고 작품을 수집합니다. 재료비, 캔버스 크기, 호수 등 작품 거래 가격을 매기는 데 영향을 주는 특별한 ‘정보’만 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4-18 17:51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cyrus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어느 정도 ‘의미 정보‘가 공유되어야 감상자의 의견과 느낌이 나올 수 있을텐데, 예술가의 주관적인 미가 기준이 되니 이에 대한 이해 없이는 예술을 음미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마 이 지점이 현대 예술을 어렵다고 느끼게 하는 요인 중 하나인 것 같아요...

2017-04-18 17: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4-18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4-18 18:1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리아스 조각상 아래 연의 아리아스 나타나서 빵ㅋㅋ 두상에서 조각상처럼 빛이 나ㅋㅋ
비교해 보다보니 닮은 듯도....호오~ 이 장르는 개념미술이군....ㅎ

겨울호랑이 2017-04-18 18:24   좋아요 1 | URL
ㅋ 뭐 장르랄 것도 없고 딸바보 아빠의 주책없는 망언이겠지요^^:

AgalmA 2017-04-18 18:26   좋아요 1 | URL
사랑하지 않으면 깊은 의미도 보이지 않는 법^^

겨울호랑이 2017-04-18 18:35   좋아요 1 | URL
^^: AgalmA님께서 잘 받아주시는군요..사실 제가 봐도 피카츄쪽에 가까워요 ㅋㅋ

서니데이 2017-04-18 18: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예쁜 연의사진이네요.
반짝반짝하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볼 때마다 조금씩 크는 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4-18 18:36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 감사합니다.. 부족한 리뷰엔 연의가 언제나 구원투수로..ㅋㅋ 좀 너무한 아빠지요?

서니데이 2017-04-19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에서는 연의 얼굴을 조금 더 크게 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은데요.^^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셨나요.
겨울호랑이님, 따뜻하고 좋은 저녁시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04-19 21:21   좋아요 1 | URL
^^: 네 서니데이님 아무래도 북플 사진이 많이 적지요? 오늘은 황사가 있어서인지 조금은 목니 칼칼하네요.. 오늘도 고생하셨어요. 서니데이님, 편안히 하루 잘 마무리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