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한 가지 데이터만 추적해야 한다면, 이익을 추적하라. 그 회사에 이익이 있다면 말이다. 이 책에서 보겠지만, 나는 이익이 조만간 주식투자의 성패를 결정한다고 믿는다. 오늘, 내일, 다음 주에 주가를 자꾸 들여다보아도 정신만 산란해질 뿐이다. _ 피터 린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p28/510


 대표적인 가치투자자로 일반에게도 널리 알려진 피터 린치(Peter Lynch, 1946 ~ ) 그리고 그보다 조금은 덜 알려져있지만 웨렌 버핏(Warren Edward Buffett, 1930 ~ )의 스승인 벤저민 그레이엄(Benjamin Graham, 1894 ~ 1976). 시장을 분석하는 기술적 분석 대신 기업을 분석한다는 면에서 이들을 가치투자자로 분류하지만, 이들이 지향하는 바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피터 린치는 주당 이익(EPS)을 기초로 PER(Price Earning Ratio)과 성장률을 기초로 투자 적정 기업을 판단하지만, 벤저민 그레이엄은 이익으로 판단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성장을 한다는 낙관적 기대 대신 지금 당장 기업이 청산한다고 가정했을 때, 투자 금액 이상을 돌려받을 수 있는 회사. 그런 회사가 벤저민에게는 우량회사다.


 

 그레이엄은 평균 이익과 이익 추세는 증권분석에서 미래 이익을 예측하기 위한 투기적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이익 성장이 가속화되는 기업은 아직 경쟁업체의 시장 진입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레이엄은 '사업에 심각한 차질이 임박했을 때 오히려 이익곡선은 가장 인상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지적한다. _ 벤저민 그레이엄,  <현명한 투자자 1>, p328/530


 이러한 이들의 관점 차이는 고성장주를 보는 관점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High Risk, High Return. 고성장주는 성공한다면 높은 수익을 가져다 주지만, 대신 높은 위험을 갖는다. 이러한 위험에 대해 린치는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음을 강조한다. 최악의 경우에도 투자금 이상의 손실은 보지 않지만, 성공적인 종목 1개가 가져다 주는 수익은 무제한적이기 때문에 포트폴리오 구성을 통한 위험 최소화가 그의 주된 투자 전략이 된다.


 고성장주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종목군으로서, 연 20~25% 성장하는 작고 적극적인 신생기업이다. 현명하게 선택하면 고성장주는 10~40루타가 될 수 있으며, 심지어 200루타가 되는 예도 있다. 포트폴리오 규모가 작을 때는 고성장주 한두 개만 성공해도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_ 피터 린치,  <전설로 떠나는 월가의 영웅>, p199/510


  반면, 그레이엄은 포트폴리오 구성 대신 개별 기업에 보다 집중한다. 개별 기업에서  숨겨진 자산가치로 인해 장부가액(BV) 이상의 시장가치(FV)를 발견할 수 있고, 이러한 숨겨진 가치가 미처 주식가격에 반영되지 않은 기업들만 골라서 투자한다면 주식투자는 성공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장주'란, 주당순이익EPS 성장률이 과거에도 평균보다 훨씬 높았고 장래에도 계속 높을 것으로 예상되는 주식을 가리킨다. 가격이 지나치게 높지만 않다면, 이런 종목은 당연히 매력적이다. 문제는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다. 성장주는 오래전부터 PER이 평균보다 훨씬 높았고, 최근에도 여전히 높다. 그러므로 성장주에는 투기 요소가 많아서, 일반인이 단순하게 투자할 만한 대상이 절대 아니다. _ 벤저민 그레이엄,  <현명한 투자자 1>, p114/530


 내가 사용한 기법들은 다음과 같이 분류된다. 1) 차익거래 Arbitrages: 기업 개편, 합병 등의 계획에 따라 교환 예정인 증권들 중에서 한 종목을 매수하는 동시에 다른 종목을 매도하는 거래. 2) 청산Liquidation: 기업이 자산을 매각하여 주주들에게 현금으로 지급 예정인 주식을 매수. 위 두 가지 거래는 (1) 추정 수익률이 연 20% 이상이면서, (2) 성공 확률이 80% 이상이라고 판단될 때 실행한다. _ 벤저민 그레이엄,  <현명한 투자자 1>, p326/530


  이들이 서로 다른 투자철학을 갖게 된 배경은 그들이 주로 활동했던 시대적 배경과 그들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 처한 각자 다른 상황에서 최선의 방법을 고민한 결과 피터 린치는 IS(Income statement) 중심의 동태적 기업분석을. 벤저민 그레이엄은 BS(Balance Sheet) 중심의 정태걱 기업분석을 했을 것이다. 수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주식시장에 투자를 하고 공부를 하면서 유념해야할 점은 투자의 대가들이 썼던 과거의 전략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것이 아닌,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이 먼저 되어야 하는 것은 아닌가를 잠시 생각해본다...


PS.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워렌 버핏은 주식투자가보다는 훌륭한 사업가라는 생각한다. 투자기업에 대규모 지분을 가지고 투자기업에 사외이사로 출석하여 배당 등 기업의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과 소수 지분 투자자는 분명 결이 다를 것이다. 워렌 버핏은 경영자로서도 뛰어난 면모를 보였는데, 그의 평전인 <스노볼>은 1998년 전세계를 강타한 롱텀캐피털매니지먼트(LTCM)사태의 뒷정리를 묵묵하게 해낸 워렌 버핏의 경영자로서의 면을 잘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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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우행 2023-08-04 04:1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깔끔한 비교분석입니다.ㅎㅎ

겨울호랑이 2023-08-04 09: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인사이드 아웃 - 한국어 더빙 수록
로니 델 칼멘 외 감독, 리처드 카인드 외 목소리 / 월트디즈니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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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 소녀 라일리 안에 자리한 다섯 감정 버럭이, 까칠이, 기쁨이, 소심이, 슬픔이 이야기. 영화 <인사이드 아웃>은 라일리가 태어나면서부터 생겨난 여러 감정들과 라일리의 성장 과정에서 일어난 일상의 날 중 하루에 초점을 맞춰 보여준다.

영화의 실질적인 주인공들은 다섯 감정캐릭터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사고로 인해 라일리는 감정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로부터 벌어지는 혼란과 마무리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지만, 영화를 통해 아빠가 흥미롭게 본 것은 영화의 설정이었어.

영화에서 어린 라일리의 주도적인 감정이 '기쁨'이었다면, 엄마와 아빠의 주도적 감정은 달랐다는 점이 인상적으로 보여졌어. 라일리 아빠의 주도적 감정은 '버럭이', 엄마의 주도적 감정은 '슬픔'인 것을 보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 생각만큼 기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과 아이들이 바라보는 엄마와 아빠의 이미지가 '슬픔'과 '화(버럭)'이라는 생각에 연의에게 아빠는 어떻게 보일까를 돌아보게 되네. 슬프게도 아빠도 '버럭'이 편에 가까운 것 같지만 말이야... 버럭이가 아빠의 주도적 감정이 되지 않게 더 노력해야겠다는 반성을 영화를 보면서 하게 되었단다.

한편으로, 아빠는 그런 생각도 해봤어. 우리가 느끼는 감정이 다섯 감정 뿐일까? 우리가 하는 행동이 과연 모두 감정과 연결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 영화 <인사이드 아웃 2> 예고편을 보니 사춘기에 들어선 라일리에게 새로운 감정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포함된 것을 보니 다섯 감정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찾은 것 같기도 같지만, 하나의 감정만으로 우리의 행동이 결정되지는 않는 것 같아. 예를 들면, 친구에게 까칠하게 대하다가 버럭 화를 내거나, 소심하게 행동해서 슬펐던 경험이 있다면 이런 경험 속에서 감정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또, 마음 속으로는 슬프지만, 겉으로는 애써 웃어야 하는 경우처럼 감정과 행동이 다른 경우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갑자기 너무 어렵게 이야기가 나간 것 같네. 쉽게 표현해서 <인사이드 아웃>에서의 설정 - 마음 속의 캐릭터 - 이 재밌는 설정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감정과 함께 또 다른 것 - 이성 理性- 도 있다는 것, 그래서 감정만으로 사람이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만 연의가 알았으면 해. 또 다른 것의 이름은 잊고 그냥 그런 것도 있다는 것 정도로만 알면 지금은 충분할 것 같고. 너무 깊게 들어가면 영화가 재미없어질테니 아빠 이야기는 흘려들어도 좋을 것 같구나. 요즘 날이 많이 덥지? 더위에 너무 지치지 말고 기운내서 즐겁게 여름방학을 보냈으면 좋겠구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구. 사랑하는 아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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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08-03 0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이 영화를 어쩌자고 극장에서 두 번 보았을 정도로 인상 깊었어요. 어린이보다 어른에게 좋은 영화 아닐까 했는데 2가 만들어졌어요?^^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처음 알았습니다. 2편도 극장에서 봐야겠어요!

겨울호랑이 2023-08-03 08:00   좋아요 0 | URL
얄라얄라님께서도 재밌게 보셨군요. 말씀처럼 어린이보다는 어른들에게 더 다가왔던 애니메이션이라 생각합니다. <인사이드아웃 2>는 내년 개봉예정이라네요. 기분 좋은 소식으로 더운 여름 시원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원인데, 순환의 지속적인 균등함을 방해하는 각이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원은 나누어질 수 없고 그 자체 중심과 시작과 끝을 이루며 순환을 형성한다는 점에서 가장 아름다운 형태라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이론은 비례 개념을 신의 절대적 정체성에 의해 유도되는 형이상학적 정서와 연관짓는 경향이 있다.

비례를 신의 불가분한 완전성과 연결짓는 것은 복합적이며, 거기에는 모순의 씨앗이 담겨 있다. 그것이 바로 중세 미학이 양의 미학과 질의 미학 사이에서 해결을 요구받고 있는 문제이다.

모든 사물들이 현상계에서 자신들의 기능과 위치의 의미를 소진한다면, 그리고 본질을 통해 이 세계 너머에 있는 세계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모든 사물은 부조리하게 되라는 점을 중세 시대는 결코 잊은 적이 없었다.

상징적 해석에는 기본적으로 본질과의 조화 및 본질에 대한 유추가 담겨 있다. 사실 하위징아는 상징적 해석을 본질의 면에서 사고하는 능력으로 설명한다. 상징과 상징된 사물은 추상될 수 있고 비교될 수 있다는 특징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중세의 상징주의는 그런 식으로 그 세계의 미적 개념들을 표현해 냈다. 그러나 거기에는 두 가지 형식이 있었다. 하나는 형이상학적 상징주의로서 세계의 미 속에서 신의 손을 식별해 내는 철학적 습성에 관련된 것이었다. 또 하나는 보편적인 알레고리로서, 이 세계를 신의 예술 작품으로, 즉 세계 안에 있는 모든 것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이외에 도덕적, 알레고리적, 신비적 의미를 가진다는 식으로 보는 것이다.

판단의 일치를 보게 되는 아름다운 대상 속에는 객관적인 특질이 있지만, 미의 결정적인 요소와 표시는 시각적 감각을 수반하는 즐거운 동의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구절로서 많은 근본적인 요점들을 명료하게 만들어 준다. 사물의 아름다움과 선함은 둘 다 형식에 근거하기 때문에 동일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상 매우 일반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형식은 그것이 어떤 욕구의 대상이 되는 한, 즉 현실화나 형식의 소유를 위한 갈망의 대상이 되는 한, 그 형식이 실재하는 한, 선함을 지닌다. 반면 미는 형식과 지식과의 관계 속에서만 존재한다. 보일 때 즐거움을 주는visa placent 사물들은 아름답다는 것이다.

아퀴나스의 시각으로 보면 즐거움이란 완전히 객관적인 사물들 속의 잠재성으로 인해 야기되는 것이다. 즐거움이 미를 규정하거나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의 문제는 매우 실제적인 것으로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이미 드러난 것이다.

이 모든 것에 비추어 볼 때 이제는 아퀴나스의 미에 대한 세 가지 규준, 즉 완전성, 비례, 명료성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세 가지 모두가 실체적인 형상보다는 구체적 실체의 특징으로 여겨질 때에만 완전한 의미를 획득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합리적인 것 같다. 사실 〈비례〉라는 용어의 여러 가지 의미들 속에서 이런 견해의 여러 예증을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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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이야기 - 개정판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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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가 내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내게도 희망은 있었다. 눈치챈다면 난 당장 죽을 목숨이지만. 그가 방수포를 헤치고 튀어나올까? 걱정스러웠다. 그 대답을 놓고 두려움과 이성이 다투었다. 두려움은 ‘그렇다’라고 말했다. 리처드 파커는 몸무게가 250킬로그램이나 되는 사나운 맹수였다. 발톱 하나하나가 칼날처럼 날카로웠다. 이성은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방수포는 화선지가 아니라 튼튼한 캔버스천이라고. 내가 높은 곳에서 그 위로 뛰어내려도 끄떡없었다고.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175/498


 얀 마텔 (Yann Martel, 1963 ~ )의 <파이 이야기 Life of Pi>는 망망대해에서 조난을 당한 호랑이와 함께 보낸 소년의 이야기가 큰 틀이자 하나의 골격이다. 다른 곳으로 나갈 수 없는 갇힌 공간에서 호랑이와 함께 산다는 것. 그 자체로 하나의 위협이며 공포로 소년에게 다가온다. 공포를 느끼면서도 소년은 생명을 내려놓지 않는다. 생명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의지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공포의 응원을 덕택이기도 하다. 소설 속 '리처드 파커'라는 호랑이는 그에게 공포와 평온함을 동시에 주는 존재다.


 내 얼굴에 단호하고 굳은 표정이 떠올랐다. 자랑은 아니지만, 난 그 순간 살려는 강렬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경험으로 보면 누구나 그런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은 한숨지으며 생명을 포기한다. 또 어떤 이들은 약간 싸우다가 희망을 놓아버린다. 그래도 어떤 이들은 - 나도 거기 속한다 -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싸우고, 빼앗기며, 성공의 불확실성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그것은 생에 대한 허기로 뭉쳐진 아둔함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229/498


 나를 진정시킨 것은 바로 리처드 파커였다. 이 이야기의 아이러니가 바로 그 대목이다. 무서워 죽을 지경으로 만든 바로 그 장본인이 내게 평온함과 목적의식과 심지어 온전함까지 안겨주다니.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248/498


 사실, 개인적으로 <파이 이야기> 전체 글 중에서 시선이 머무른 것은 생(生)에 대한 의지, 공포 등보다 아래의 문단이다. 좀처럼 넘어갈 수 없었던 이 구절은 소설의 구도를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구명보트라는 갇힌 공간. 소년과 호랑이의 일정한 거리. 긴장과 이완이 반복되는 그 거리는 좀처럼 좁혀질 수도, 넓혀질 수도 없는 반지름이다. 소년의 이름은 파이(Pi). 원주율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무한소수는 영원(永遠)에 대한 열망의 상징일까.


 원주율(圓周率), 파이(pi) = 원의 지름에 대한 원주(원둘레)의 비율. 3.141592....


 조난객이 되는 것은 계속 원의 중심점이 되는 것과 같다. 아무리 많은 것이 변하는 것 같아도 바다가 속삭임에서 분노로 변하고, 상큼한 하늘이 앞이 보이지 않는 흰색이 되었다 칠흑같이 까맣게 변해도 원점은 변하지 않는다. 당신의 시선은 언제나 반지름이다. 원주는 대단히 크다. 사실 원들이 겹쳐 있다. 조난객이 되는 것은 춤추듯 겹쳐지는 원들 사이에 붙들리는 것이다. 당신은 한 원의 중심이며, 당신 위에서 두 개의 반대되는 원이 휘휘 돌아간다.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322/498


 원(圓, circle) = 평면 위의 한 점에 이르는 거리가 일정한 평면 위의 점들의 집합


 이제 우리는 두 개의 원을 그릴 수 있다. 소년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원과 호랑이를 중심으로 한 또 다른 원. 이들은 서로 다른 중심점을 갖기에 일정 부분을 공유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이 두 개의 원에서 생겨나는 것이 갈등이며 공포다.


 이번에는 조금 다른 도형을 그려보자. 소년의 중심점과 호랑이의 중심점으로부터 우리는 다른 도형을 그릴 수 있다. 타원이다. 이들은 각각의 원을 가지고 겹치는 공간으로 인해 갈등하지만, 각각의 중심점으로부터 다른 사건(배고픔, 갈증, 폭우 등등)을 바라볼 때는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가지며 이번에는 서로를 의존하게 된다. 


  타원(楕圓, ecllopse)= 두 초점 사이의 거리의 합이 일정한 평면 위의 점들의 집합


 이렇게 본다면, 소년 파이 위의 두 원은 호랑이 원과 둘의 타원이 아닐까. 호랑이 원이 주는 공포와 위협과 소년-호랑이 타원이 주는 위로와 평안이 소년 파이의 생존을 지탱해주는 상반된 힘은 아니었을까를 도형의 정의를 통해 잠시 생각하게 된다. 다만, 여기에서 반전은 언어와 비유를 통해 나중에 드러나는 호랑이의 정체가 아닐까. 그런 면에서 소년과 호랑이의 거리는 추상과 현실을 매개하는 언어의 거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가를 생각하며 글을 갈무리한다...


 "무엇에 대해 말하는 것은?영어든 일본어든 언어를 사용해서?이미 창작의 요소가 들어 있지 않나요? 이 세상을 바라보는 것에도 이미 창작의 요소가 있지 않나요?" ... "현실을 반영하는 언어를 원하나요?" _ 얀 마텔, <파이 이야기>, p447/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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