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16~17세기에 사가기록화를 만들어낸 집안은 다른 지역보다 영남에 많이 분포되어 있었다. 특히 안동 지역은 기록화 외에도 각종 문헌 자료가 많이 남아 있기로 유명하다. 조상의 손때가 묻은 각종 전적, 편지와 문서 등을 소중히 간직했을 뿐 아니라 사환, 모임, 행사, 여행 등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마다 기록을 남기는 버릇이 강했다.

이상으로 사가기록화의 제작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집단을 영남 지역의 사족과 이유간 및 홍이상 집안에 한정하여 살펴본 것은 사가기록화 각각의 제작 배경에 이들이 비교적 자주 등장하여 결과적으로 다른 집안보다 비중있게 다룰 만했기 때문이다. 높은 관직에 이르면 관료 사회의 관행에 따라 원하든 원하지 않든 궁중기록화나 관청기록화를 집안에 쉽게 소장할 수 있었던 것과는 달리 사가기록화를 집안에 남기기 위해서는 기록화의 효용성과 역할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일정한 의지를 가지고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그래서 집안의 전통이나 개인의 교유망 안에서 공유되는 경험이 중요했으며 이를 짚어나가다 보니 특정한 집안과 지역이 드러난 것이다.

다른 지방에 비하면, 안동 사족들은 단단한 경제적 기반을 가진 지주 계층으로서 안정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였으며 이황을 매개로 학문과 정치적으로 결속할 수 있었다. 이렇게 안동을 중심으로 성리학의 학맥이 생활화된 공동체적 특징을 가진 영남의 사족들은 16세기 이래 사가기록화의 제작 배경에 지속적으로 존재하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1930년대 이후 항일무장투쟁 연구 2- 3.1운동 100주년 기념 연구서
박경순 지음 / 굿플러스북 / 2019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23년 09월 06일에 저장

1930년대 이후 항일무장투쟁 연구 1- 3.1운동 100주년 기념 연구서
박경순 지음 / 굿플러스북 / 2019년 7월
18,000원 → 16,200원(10%할인) / 마일리지 9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내일 수령" 가능
2023년 09월 06일에 저장

3.1운동 100년 5- 사상과 문화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3년 09월 06일에 저장

3.1운동 100년 4- 공간과 사회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 100주년 기획위원회 지음 / 휴머니스트 / 2019년 3월
22,000원 → 19,800원(10%할인) / 마일리지 1,10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5월 19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23년 09월 06일에 저장



8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때아닌 홍범도(洪範圖 , 1868~1943)장군에 대한 후대의 사상검증과 그 결과로 육사에서 흉상이 철거된다는 어이없는 결정이 만만치 않은 역풍을 가져온 듯하다. 흉상 철거의 근거는 홍장군이 1920년대 만주지역에서 자행된 일제의 민간인 학살 등이 탄압을 피해 소련으로 넘어가 공산주의 활동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반론 등은 이미 여러 곳에서 이루어지기에 다시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1920년대 독립군을 바라보는 이른바 좌익 계열의 연구가의 관점에 있다.


  홍범도가 지휘하는 대한독립군은 1919년 8월 국내진공작전을 대담하게 감행, 함경남도 혜산에 진입해 일본군 수비대를 섬멸하고, 10월에는 강계, 만포, 자성 등을 기습해 일본군을 타격했다... 청산리 대첩 이후 독립군 부대들의 대규모 승전소식은 전해지지 않고 있는데, 이 까닭은 무엇일까? 이것은 김좌진 독립군부대와 홍범도 독립군부대가 1921년 우수리강을 건너 소련 땅으로 들어갔다는 사실을 통해 어느 정도 유추해볼 수 있다. 민족주의 계열의 독립군 주력부대들은 청산리대첩 이후 일본군의 야수적 탄압에 겁을 먹고,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민중들을 내팽개치고 투쟁의 현장에서 벗어나 안전한 북만 땅으로 도피해 갔던 것이다... 이것은 독립군이 자산계급의 군대였고 부르주아민족주의를 사상적 바탕으로 하는 군대였으며, 활동에서 분산성과 산만성을 갖고 자파 중심으로 서로 배척하고 질시한 데 있었다. _ 박경순, <1960년대 이후 항일무장투쟁 연구 1>, p24


 홍범도 장군과 독립군을 바라보는 좌익 연구가들은 민족주의 성향의 부르주아적 한계를 대일항쟁의 한계로 인식하고 비판한다. 홍범도 장군의 삶과 철학은 1919년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들 다수처럼 변절되지 않은 한결같았음에도 불구하고 후대의 관점에 따라 21세기 뉴라이트 사관의 역사학자들에게는 공산주의자로, 레프트 성향의 역사학자들에게는 부르주아적 민족주의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 이와 같은 후대의 왜곡에 의해 인정받지 못한 독립투사들이 홍범도 장군 한 분이 아니라는 사실이 마음을 더 무겁게 한다.


 장군 생전에 생겨나지도 않은 북측 정권의 악행으로 사상범으로 몰려 사후에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을 보면서, 서기 전(BCE)에 태어나 그리스도교도가 아니라는 이유로 천당에 가지 못하는 단테 알레기에리(Durante degli Alighieri, 1265~1321)의 <신곡 La Divina Commedia>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중세의 교조주의와 다를 것 없는 오늘날 정부의 행태가 많은 반발을 일으키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31 착한 스승은 내게 “너 지금 보는 이 영혼들이 누군지를 넌 묻지 않느뇨? 그럼 너 더 나아가기 전에 내 알리고 싶노라.

34 저들이 죄를 짓지 않았고 공이 있다 해도 그것은 너 믿는 믿음의 한 몫인

성세聖洗를 못 받았기에 넉넉치 못하니라.

37 그리고 그리스도교 이전에 있었던 만큼 맞갖게 하느님을 섬기지 못하였나니 나 역시 이들 중의 한 사람이로다.

40 다른 죄 때문이 아니라 다만 이 탓으로 우리는 버림을 받고 오직 이 흠집 까닭에 가망도 없이 우리는 뜬 소망 속에 사느니라.”

43 내 그 말을 듣자 마음이 큰 슬픔에 사로잡혔나니 뛰어나게 값진 사람들이 림보(지옥 제1환)에 걸려 있음을 안 탓이어라. _ 단테 알레기에리, <단테의 신곡 - 상>, p68/634



 친일(親日)과 반일(反日) 사이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서 조금은 덜 알려져 있지만, 1930년대 항일투쟁의 역사를 되짚어보려 한다. 앞서와 같이 1920년 경신참변(庚申慘變) 등으로 위축된 항일무장투쟁은 무너지는 듯했으나, 공산주의 세력을 중심으로 때마침 1931년 만주사변(滿洲事變)과 1937년 시작된 중일전쟁(中日戰爭)을 일으키며 중국내륙으로 침탈해 오는 일본군에 대한 투쟁을 전개해간다. 투쟁의 중심이 김일성(金日成, 1912~1994), 김 책(金 策, 1903~1951), 최용건(崔庸健, 1900~1976) 등 동북항일연군이라는 점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시대의 이야기. 금단의 영역으로 언급을 피한 것이 오늘날 친일세력의 부활과 확장을 가져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페이퍼의 마지막은 친일파들이 홍범도 장군을 싫어하는 이유를 알려주는 단서가 되는 부분을 옮기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친일 행적을 반공 이념으로 덮으려는 움직임이 마음을 답답하게 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풀지 못한 숙제가 다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아닌가 생각하며 작은 위안을 삼는다...  


 홍범도는 1921년 9월 연해주지방에서 고려공산당 중앙간부 명의로 ‘우리 고려 노동군중에게’라는 문건을 발표했다. 여기에서 독립군이 봉오동·청산리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자랑스럽게 언급하는 한편, 싸워야 할 대상은 일제뿐만 아니라, 동족 내부의 관료와 유산자, 가짜 공산당원 등도 해당된다고 구체적으로 밝혔던 것이다. 그 성명서의 일부를 인용해보면 다음과 같다.

 

(전략) 환기하며 단합할 지어다. 우리 의병대들을!! 그들은 일찍 서북간도에서 일본 군벌주의자를 박멸하는 전쟁에 아름다운 이름과 거룩한 성적을 날아내였나니라. 동무들이여! 손에 잡은 총을 더욱 굳게 잡고 참된 자유를 각오하는 혁명자를 단합하여 우리의 행렬을 채우라. 주의할 지어다 우리의 수적晩賊은 자못 일본침략주의자뿐 아니라 동족 사이에도 있나니라. 자세히 말하면 관료급 유산자이며 홍○와 같은 외홍내백한 가면공산당원들이로다. (중략) 동무들이여 잊지 말지어다. 일본 군국주의자와 전쟁하는 동시에 세계 만방에서 압박받는 노동자 동지들이 후원하리라. 또는 이 동지들이 멀지 아니하여 압박계급과 대전을 개하리니 이 대전은 참으로 우리를 해방시키고 세계로 하여금 진리의 낙원을 형성하리니 정신을 가다듬어 전투준비에 급급할진저.-1921년 9월 15일 고려공산당 중앙간부(제3국제공산당 고려부) 각 의병대 수령 홍범도·최진동·허재욱·안무·이청천(윤상원,〈자유시사변과 홍범도〉,《역사연구》10, 역사학연구소, 2002, 271·277쪽) _장세윤, <홍범도>, p230/256


 


댓글(4) 먼댓글(0) 좋아요(4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거리의화가 2023-09-06 12:5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음 글을 더 기다리게 하는 반가운 페이퍼네요. 홍범도 장군께서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질투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닌가 싶어 마음이 무겁습니다. 정작 장군은 한 길을 보며 간 분이었는데 말이죠.

겨울호랑이 2023-09-06 13:04   좋아요 2 | URL
각자 자신의 관점에 따라 시대와 인물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 역사가의 연구임은 분명합니다. 그렇지만, 역사는 하나의 관점 대신 다양한 관점에서 종합적으로 해석된 결과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사상과 이념만이 옳고 나머지는 다 그르다는 식의 접근은 인문학이 아닌 종교겠지요...

베이글 2023-09-06 14: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풀지 못한 숙제가 다시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말씀이 저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답답하게만 보였던 이 사태를 능동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해준 말씀입니다.

오늘도 좋은 글과 책 소개 감사합니다.
좋은 오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23-09-06 14:51   좋아요 1 | URL
네, 많이 힘든 요즘이지만 돌이켜보면 박근혜 탄핵 직전 인 2016년에도 극심한 혼란 속에서 시간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골이 깊은 만큼 산도 높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베이글님 평안한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
 

플라톤의 저서를 토대로 그의 철학을 정의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 이유는 그의 철학이 안고 있는 수많은 내부적인 모순과 변화무쌍한 전개를 집필 시기에 따라 다양한 각도에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플라톤은 이러한 방식을 상당히 경계했던 철학자다. 그가 탐구했던 것은 오히려 아름다움이나 선, 정의, 단일성이나 다양성과 같은 수학적인 개념과 보편적인 언어였다.

플라톤의 철학은 인간의 행위나 사유, 존재의 영역을 높거나 낮은 두 단계로 양극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 때문에 탄생한 것이 ‘존재와 변화’, ‘하나와 다중’, ‘영원과 시간’, ‘참과 거짓’, ‘학문과 견해’, ‘선과 악’ 같은 대조적인 개념들이다.

피타고라스의 정리가 적용될 수 있는 것은 이상적이면서 일반적인 삼각형뿐이다. 이상적인 삼각형은 항상 삼각형 자체와 일치하며 시간이 흐르고 공간이 바뀌어도 변화를 모른다. 아울러 이를 토대로 하는 공식들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주관적 의지에 좌우되지 않는다.

묘사와 평가를 내용으로 하는 문장 속에 사용된 표현들이 일차적으로 지시하는 이상적 실재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플라톤이 상대주의와 거리가 먼 의미 체제를 안정적으로 확립하는 데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여기서 플라톤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들 중에 하나가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즉 담론과 지식의 안정성은 이들이 다루는 대상의 안정성에 좌우된다는 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법의 정신 2 나남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441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진인혜 옮김 / 나남출판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풍토, 종교, 법, 통치 규범, 과거 사례, 풍속, 생활양식과 같은 여러 가지가 인간을 지배한다. 그로 인해 그런 것들로부터 유래하는 일반 정신이 형성된다. 각 국민에게 이런 원인 중 어떤 하나가 더 강하게 작용하면 다른 원인들을 그만큼 약해진다. 자연과 풍토는 미개인을 지배하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생활양식은 중국인을 지배하고, 법은 일본에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_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3-2> , p136


 뒤이어 샤를 드 몽테스키외 (Montesquieu Charles Louis de Secondat, 1689~1755)는 <법의 정신 De l'esprit des lois 3-2>에서 풍토에 따른 민족들의 서로 다른 기질이 생겨남을 말한다. 이로부터 다양한 민족성이 설명되며 민족마다 다양한 법(法)의 형태가 가능해진다. 각자의 풍토와 민족에 맞는 정체가 성립되지만, 그러한 법과 정체가 저마다 최적의 상태라고 볼 수는 없다. 때문에, 서로 다른 상황에서 야만 상태에서는 전제정이, 문명 상태에서는 공화정이 자리잡지만 체제의 유지를 위한 여러 방안이 마련되고 구성원들은 이로부터 노예 상태 혹은 자유를 체감하게 된다.


 풍토로 인한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 없이 생활하는 모든 수단을 법을 통해 없애도록 애써야 한다. 그러나 유럽의 남부 지방에서는 법이 정반대의 일을 한다. 즉, 법은 아무 일도 안 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사변적 생활에 알맞은 지위를 부여하고 거기에 막대한 부를 결부시킨다. _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3-2> , p28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나므로, 노예제는 자연에 어긋난다고 말해야 한다. 비록 어느 지역에서는 노예제가 자연적인 이유에 토대를 두고 있더라도 말이다(p49)... 아마도 이 지구상에 자유인에게 노동을 촉구할 수 없는 풍토는 없을 것이다. 법이 잘못 만들어졌기 때문에 게으른 사람들이 생기게 되었고, 그들이 게을렀기 때문에 그들을 노예로 만든 것이다. _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3-2> , p51


 풍토가 민족의 정체를 규정한다면, 문명국 사이의 평화상태를 유지하게 만드는 것은 상업이다. 후대의 칸트( Immanuel Kant,, 1724~1804)의 영구평화론 에 앞서 몽테스키외는 자유로운 상업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바라본다.


 상업은 평화로 이끄는 효과가 있다. 함께 교역하는 두 국민은 서로 의존하게 된다. 한쪽이 사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다면, 다른 쪽은 파는 것으로 이익을 얻는다. 모든 연합은 서로의 욕구에 토대를 둔 것이다... 상업 정신은 사람들에게 정확한 공평성에 대한 감각을 초래하는데, 이것은 한편으로는 약탈에 대립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도덕적 덕성과도 대립한다. _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3-2> , p172


 다만, 몽테스키외에게 상업은 국가 간의 평화만을 담보하는 장치가 아니다. 칸트가 자유로운 통상이 두 국가를 긴밀하게 연계하여 평화를 위한 인계철선으로 작동하고, 이로부터 무력사용의 불필요함으로 이어져 국가연합의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면, 몽테스키외는 국가 간 통상에서 발생하는 막대한 부(富)와 여기에 부과되는 세금(稅金)에 주목한다. 자유로운 통상으로부터 얻어지는 재원은 국가가 필요한 지출을 가능케 하며, 국가는 이로부터 인민의 고통을 경감시키고 공동체를 유지시킬 힘을 갖게 된다.


 통상이 있는 곳에는 관세가 있다. 통상의 목적은 국가를 위해 상품을 수출하고 수입하는 것이다. 관세의 목적은 역시 국가를 위한 것으로, 이 수출입에 대한 일정한 조세이다. 따라서 국가는 관세와 통상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고 그 두 가지가 서로 충돌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때 사람들은 통상의 자유를 누리게 된다. _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3-2> , p182


 몽테스키외의 <법의 정신 3-2>에서는 서로 다른 풍토에서 만들어지는 민족정신과 법을 말하고, 야만과 문명국의 정체에 대해 설명한다. 그리고, 자유로운 상업활동이 평화와 국가의 부강을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이야기된다. 다소 주제가 동떨어진 감이 있지만, <법의 정신>이 집필 준비에만 20여년의 시간이 소요된 오랜 기간을 두고 쓰여진 작품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내용상의 어색함이 이해못할 수준은 아니라고 여겨진다...


 한 나라의 부는 많은 생업을 전제로 한다. 수많은 분야의 상업에는 항상 부진을 면치 못하는 분야가 있게 마련이고, 따라서 그 분야의 장인은 일시적 빈곤 상태가 될 수밖에 없다. 바로 그때 국가는 인민의 고통을 막기 위해서든 인민이 반란을 일으키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든 신속한 구조를 제공할 필요가 있다. 그런 가난을 예방할 수 있는 자선시설 혹은 그에 상당하는 어떤 규정이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경우이다. _ 몽테스키외, <법의 정신 3-2> , p344

아시아에서는 언제나 대제국을 볼 수 있었는데, 유럽에는 대제국이 결코 존속할 수 없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아시아가 더 넓은 평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는 바다에 의해 더 넓은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그리고 더 남쪽에 있으므로 샘이 더 쉽게 마르고 산이 눈으로 덮이는 경우도 더 적으며 물이 덜 불어나는 강은 그다지 큰 장벽이 되지 못한다. 따라서 아시아에서는 권력이 항상 전제적일 수밖에 없다. - P94

자연은 모든 것을 고쳐준다... 우리를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라. 우리의 조심성 없는 품성은 우리의 악의 없는 본성과 결합하여, 우리의 사교적 기질을 방해하는 법들을 부적절한 것으로 만든다. - P137

오류에 빠질 수 있는 것은 국가의 채무를 나타내는 증권이 부(富)의 상징이라는 점이다. 그런 증권을 유지하며 몰락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부유한 국가뿐이기 때문이다. 국가가 몰락하지 않으려면, 그 국가가 다른 데에 커다란 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사람들이 재난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재난에 대항하는 재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재난이 이익이 된다고 말하는 것은 재원이 재난을 능가하기 때문이다. - P289

국가의 인구가 특별한 사건, 전쟁, 페스트, 기근으로 감소할 때는 구제할 방법이 있다. 남은 사람들은 노동과 근면의 정신을 보존하고 있을 수 있다. 그러면 그들은 불행을 만회하려고 애쓰고 재난 자체에 의해 더 근면해질 수 있다. 인구 감소가 오래전부터 내부의 악습과 악정에 의해 초래되는 경우는 거의 치유할 수 없는 병이다. 그런 경우 사람들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만성이 된 병으로 죽어갔다. - P34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