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일러가 사랑한 수 e 경문수학산책
엘리 마오 지음, 허민 옮김 / 경문사(경문북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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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수 함수와 삼각 함수 사이의 놀라운 관계에 대한 발견은 예상치 못한 다른 관계들의 등장을 거의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오일러는 x=pi를 이용해서 다음의 공식을 얻었다... 이 공식은 분명히 수학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의 하나에 속할 것이다.  _ 엘리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p244



  엘리 마오 (Eli Maor)의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e : The Story of a Number>는 자연로그의 밑 e에 대한 역사를 소개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이라는 오일러공식(Euler's formula). 오일러는 자신의 공식에 특수한 경우 x=pi이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등식을 유도한다. 사실 의미는 부여하기에 따라 달라지기는 하지만, 무리수 이면서 초월수와 허수를 지수함수 형태로 표현한 결과가 0과 1로 떨어진다는 것은 수학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경이롭게 보여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것을 다시 쓰면,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개의 상수를 연결하는 공식을 얻는다. 그리고 수학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연산인 덧셈, 곱셈, 지수도 얻는다. 이 다섯 개의 상수는 고전 수학을 대표하는 네 가지 주요한 분야를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즉, 0과 1은 산술을, i는 대수학을, pi는 기하학을, e는 해석학을 각각 나타낸다. _ 엘리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p245


 <오일러가 사랑한 수 e>에서는 네이피어(John Napier of Merchiston, 1550~1617)에 의해 로그가 만들어진 후, 복리계산의 극한값으로서 e가 갖는 의미를 여러 각도에서 조망한다. 뉴턴(Sir Isaac Newton, 1642~1726)과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에 의해 적분의 개념이 도출되면서 pi와 e는 각각 원과 쌍곡선의 넓이로 해석되었고 이들의 유사성에 대한 관심은 결국 오일러의 등식을 통해 이들을 하나의 수식으로 결합시켰음을 확인하게 된다.     


 네이피어는 로그를 만들 때 한 세기 뒤에 로그의 보편적인 밑으로 인정받았고 수학에서 pi(파이) 다음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수의 발견에 부지불식간에 매우 가까이 접근했었다. 그 수 e는 n의 값이 무한대로 커질 때 (1+1/n)^n의 극한값이다. _ 엘리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p13 


 원 함수 사이에서 성립하는 모든 관계에 대응하는 쌍곡선 함수 사이의 관계가 존재하기를 희망할 것이다. 그러면 원 함수와 쌍곡선 함수를 완전히 똑같은 기초 위에 세울 수 있고, 이에 따라 쌍곡선에 원과 똑같은 지위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렇게 할 수 없다. 쌍곡선과 달리, 원은 폐곡선으로, 이를 따라 돌아가면 모든 것은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간다. 필연적으로, 원 함수는 '주기적'이다. 즉, 함수 값이 2pi마다 반복된다. _ 엘리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p222


  오일러의 공식에서 x=pi로 입력할 경우 cos과 sin 값이 간결하게 나오기 때문에, 오일러는 이를 활용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러한 오일러의 간결한 시도 뒤에는 폐곡선인 원과 개방곡선인 쌍곡선을 로그 소용돌이선의 주기성이라는 공통분모로 pi와 e를 하나의 공식으로 통합하는 오일러의 날카로운 통찰이 있었음을 본문 내용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본문의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비전공자들도 수학의 아름다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를 주는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pi(파이)는 단위원의 넓이로 해석되는 반면에, e는 쌍곡선 아래의 넓이를 1로 만드는 x축상의 선분의 길이이다. 수학에서 가장 유명한 두 수의 이런 유사한 역할은 이 둘 사이에 어쩌면 더 심오한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게 한다. _ 엘리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p162


  로그 소용돌이선의 가장 두드러진 성질 몇 가지는 함수 e^X의 도함수가 자기 자신과 같다는 사실에 기인한다. 예를 들면, "극을 지나는 모든 직선은 로그 소용돌이선과 똑같은 각도로 교차한다." 게다가, 로그 소용돌이선은 이런 성질을 가진 유일한 곡선이다. 그래서 로그 소용돌이선을 '등각 소용돌이선'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런 성질 때문에 로그 소용돌이선은 원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원은 극을 지나는 모든 직선과 90도로 만난다. 사실, 원은 증가율이 0인 로그 소용돌이선이다. _ 엘리 마오, <오일러가 사랑한 수 e>, p187


네이피어가 생각한 방향은 다음과 같다. 만약 임의의 양수를 어떤 고정된 수(나중에 ‘밑‘이라 부름)의 거듭제곱으로 쓸 수 있다면, "수들의 곱셈과 나눗셈은 그 수들의 지수의 덧셈과 뺄셈과 일치한다." 게다가 어떤 수의 n제곱, 즉 그 수를 n번 거듭 곱한 값은 지수를 n번 거듭 더한 것, 즉 지수에 n을 곱한 것과 일치한다. 그리고 어떤 수의 n제곱근은 n번 거듭 뺀 것, 즉 n으로 나눈 것과 일치한다. 요약하면, 각 산술 연산은 연산 체계에서 그보다 쉬운 연산으로 환원됨으로써, 수치 계산의 어려움을 엄청나게 감소시켜 준다. - P9

복소수 영역으로 함수의 확장은 실수 영역에서의 모든 성질을 보존할 뿐만 아니라, 함수에 새로운 특징을 실제로 부여한다. 함수론에서 가장 멋진 정리 중 하나는 f(z)가 해석적인(미분 가능한) 각 점에서 이 함수는 ‘등각 사상‘이라는, 즉 각을 보존한다는 정리이다. 등각 사상이란, z-평면에 있는 두 곡선에 각도 b로 교차하면, w-평면에 있는 그것들의 상인 곡선들도 각도 b로 교차함을 의미한다. - P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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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3-10-02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일러의 자연 상수 e 역시 다른 상수처럼 우연의 수일까요? 몹시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23-10-02 22:55   좋아요 1 | URL
e의 출현이 복잡한 연산을 보다 직관적으로 알기 쉬운 연산으로 바꾸려는 과정에서 생겨난 결과물이라는 점과 복리계산의 기본식이라는 유용한 결과물이라는 점을 함께 생각해본다면, 우리 삶에 유용하면서도 단순한 값 e에 대한 여러 고민과 성찰이 보다 깊은 의미를 더하지 않았나 생각해봅니다. 개인적으로 우연이 필연이 된 것과 같은 그런 느낌을 떠올리게 됩니다...ㅋ
 

특기할 만한 일이다. 그만큼 정국이교착되어 있다는 의미다. 야당으로서는현상 유지가 달갑다고만 볼 수 없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대응에 대한 신뢰도가낮은 환경에서, 제1야당이 그만큼의 ‘반사이익‘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대표에 대한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이후 당내 수습도 민주당의 과제다(이번조사는 체포동의안 표결 전에 이뤄졌다). - P18

국민의 힘의 한 전직 의원은 현재의교착 상태가 누구에게 유리한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 윤석열 대통령의 전략은 중원 공략을 포기했다고 봐야 한다. 이념 논쟁 같은 것이 먹힐 리가 없지 않나. 정부·여당에 싸우라는 메시지도 마찬가지다. 대신 부동층이 민주당으로 가지만 않으면 이긴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세게 갈라치기하고, 지지자만 결집시키고, 나머지는 나가떨어지게 하면 이긴다고 보는 거다." - P19

검사 출신도 정치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에서도 검사가 정치인으로 직함을 바꾼 사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 사례는 조금 다르다. 헌정 사상 최초로 검찰 조직 전체를 대표하는 위치에서 특정 정당의 대선후보로 대통령으로 직행했다.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의 등장은 한 개인의 정치 참여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어서다. - P22

지난해와 올해 나타난 검찰에 대한 극단적  신뢰도 평가의 시작은 어디에서 부터였을까?  2019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검찰 수사가 그 시작이라는 게 법조계와 정치권의 공통된 해석이다. 2020년으로 이어진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문재인 정부의 갈등이 극심해지면서, ‘친문재인 대 반문재인‘ 또는 ‘친윤석열 대 반윤석열‘이라는구호가 정치권과 검찰을 둘로 쪼갰다.  - P23

검찰을 둘러싼 ‘정치 구도‘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검찰 신뢰도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윤석열 정부에서 국민의 힘 지지자들은 ‘검찰은 우리 편‘이라는 일종의 일체감을 느끼고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그에 비례해 적대감을 키우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검찰 신뢰도와 대통령실 신뢰도를 겹쳐보면 더 명확히 드러난다. 검찰 신뢰도가 대통령실 신뢰도를 그대로 따라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 P24

단순한 최저점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신뢰도를 받치는 국민의 힘 지지자(4.77점)와 보수(4.14점)도 채 상병 사망사건의 정부 대응을 신뢰하지 않았다. 0~4점은 불신 구간,
5점은 보통, 6~10점은 신뢰 구간으로 분류된다.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을 제외한 다른 3가지 이슈가 국민의힘 지지층에서 ‘신뢰‘이거나 신뢰 구간에 가까운
‘보통 ‘이라는 평가를 받은 것과 대조된다. - P30

조사를 담당한 한국갤럽에 따르면 가장 신뢰/불신하는 언론매체 조사 결과에서 MBC와 KBS, TV조선의 경우 신뢰와 불신이 동시에 높았다. JTBC가 신뢰가 높고 불신이 다소 낮은 범주, <조선일보>는 신뢰보다는 불신이 높은 범주로 분석된다. 정치 성향에 따라 신뢰/불신하는 언론매체가 갈리는 양극화 현상은 올해 조사에서도 동일하게 관찰되었다. - P33

이번 감사원 발표는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친 최종 결과가 아닌 중간조사 결과다. 최종 결과에서 일부 의혹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될 수도 있다.  - P38

유인촌 장관은 역대 최장수 문체부장관이다. 2008년 2월부터 2011년 1월까지 재직했다. 이 시기 이명박 정부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운용했다. - P40

1998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천명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자선사업에 대한 태도가 아니라 냉정한 정책적 판단이었다. 비전문가인 국가권력이 제 마음에 들지 않는 예술이라고 해서 배척하면, 결과적으로 사회의 문화 역량을 해친다는 역사적 교훈을 받아들인 것이다. 대다수 외신은 한류의 세계적 흥행 뒤에 김대중 정부 이후 표현의 자유 확대정책이 있다고 진단한다.  - P42

이런 상황을 종합하면 북한과 러시아가 포탄과 첨단무기를 당장 맞교환하는 거래는 하지 않을 듯하다. 실현 가능한 거래는, 몇 가지를 엮어서 ‘패키지‘를 만드는 것이다. 가장 먼저, 북한의 ‘포탄‘과 러시아의 ‘식량, 비료, 에너지, 의료+a‘를 교환하는 것을 고려할 수 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궁 대변인은 북·러 정상회담 이후 김정은 위원장이 의료 분야 협력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 P44

한·미·일 3국 정상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한·미·일 군사 신동맹 관계를 구축한것에 대응하는 차원에서 북한과 러시아가 ‘새로운 이정표‘ ‘민감한 분야 협력‘이라는 명분으로 군사협력 플랫폼을 구축했을 것이다. 그 플랫폼은 당연히 공동성명이나 조약의 형식을 띠지는 않는다. ‘침략 또는 안전 위험상황 발생 시 바로 상호 접촉‘이라는 기존 선언에 담긴 문구를 조금만 구체화해도 충분히 군사협력 플랫폼 구축이 가능하다. - P46

공화당은 과거 오바마 행정부 시절 바이든이 부통령으로 재직할 당시 둘째아들 헌터가 부친의 직위와 영향력을 이용해 외국 기업에서 부당한 금전적 이득을 취했고, 아들의 비리에 아버지도 관여했다며 탄핵 조사에 공식적으로 착수했다. - P50

그 과정에는 다른 나라에서 볼 수 없던 정책이있었다. ‘해악 감소(harm reduction)‘가 그것이다. 간단히 말하면 중독자들이 마약을 끊도록 하는 대신, 중독된 상태에서 더 위생적이고 안전한 방식으로 마약을 투약하도록 도움으로써 이들의 삶의 질을 개선하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잘 와닿지 않는 방식이고 당시에는 국내외의 비판도 거셌지만, 시간이 흐른 뒤 이 정책이 성공적이었다는 평가가 많았다. - P55

중독자들을 한 장소에 모으고, 돕고,
다시 해체하는 과정에서 스위스 정부와 시민사회는 교훈을 얻는다. 한 가지 방식으로는 마약에 대처할 수 없다는 교훈이다. 1991년 스위스정부는 마약 문제에대응할 ‘네 기둥 정책 (four-pillar policy)‘
을 수립한다. 네 기둥이란 예방, 치료, 해악 감소 그리고 처벌을 뜻한다. 이중 눈여겨 볼 것이 ‘해악 감소‘다.  - P56

영국의 사회학자 허버트 스펜서와 월리엄 그레이엄 섬너 등이 다윈의 진화론을 단순하게 왜곡한 사회진화론이 시대를 지배했다. 인간사회의 생활은 본질적으로 생존경쟁이며, 강자가 생존하고 약자가 도태되는 것이 법칙이라고 믿었다. 도태되어야 할 약자를 보호하는 행위는자연의 질서에 반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사회진화론은 국내적으로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보수주의의 이데올로기로 작동했고, 국제적으로는 제국주의 침략과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노릇을 했다. - P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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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고대사 신론 - 개정판
윤내현 지음 / 만권당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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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조선은 오늘날 중국 하북성 동북부에 있는 난하의 상류와 중류 및 난하의 하류 동부 연안에 있는 갈석산을 서쪽 경계로 하여 한반도 북부의 청천강에 이르는 지역을 그 강역으로 하고 있었다. 그런데 고조선의 서부 변경, 즉 난하의 하류 동부 연안에 있었던 기자국의 정권을 탈취한 위만이 서한 제국의 원조를 받아 고조선의 서부 영역을 침략, 잠식하고 끝내는 오늘날 요하로부터 멀지 않은 지역까지를 차지해 위만조선이 성립되었다. 그 후 서한 무제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여세를 몰아 오늘날 요하까지 차지해 그 지역에 한사군을 설치하게 되었다. 한사군이 설치된 이후에도 고조선은 오늘날 요하 동쪽에 존재하고 있었지만 고조선을 구성하고 있었던 연맹부족을 통어할 능력을 이미 상실하고 왕실의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_ 윤내현, <한국 고대사 신론>, p443


  윤내현(尹乃鉉, 1939~ )의 <한국 고대사 신론 韓國 古代史 新論>은 일반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화 속의 국가 고조선(古朝鮮) 역사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기한다. 우리에게 단군  왕검(檀君王儉)에 의해 설립되어, 한 무제(漢 武帝, BCE 156~87)가 보낸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고 그 일대에 한사군(漢四郡)이 설치된 후 이후 낙랑군이 고구려(高句麗)에 의해 복속된 것으로 알려진 고조선과 삼국시대 이전 시대의 역사. 이 역사에 대해 저자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저자는 <한국 고대사 신론>에 실린 여러 논문을 통해 상세한 의문들과 이에 대한 학설을 제기한다. 고조선사에는 문헌 상의 기록 뿐 아니라 고고학적인 유물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기본적인 흐름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 저자의 이러한 물음의 근간에는 명사(名詞) 문제가 자리한다. 고유명사와 보통명사의 문제.  


 이상과 같이 패수가 여러 강의 명칭으로 사용되었던 것은, 그것이 원래 고유명사가 아니었고 일반적으로 강을 지칭하는 보통명사에서 연원했기 때문이다... 강에 대한 언어의 어원이 같았을 것임을 알 수 있는데, 고대에 고조선이 살던 지역 강들의 보통명사인 펴라, 피라, 벌라가 향찰(鄕札)식으로 기록됨으로써 후에 여러 강들이 패수라는 동일한 명칭으로 나타나게 되어 혼란을 가져왔다고 생각된다. 결론을 말하면, 고조선의 서쪽 경계였던 패수는 오늘날 난하 또는 그 지류였는데 후에 위만조선의 성장, 한사군의 설치 등에 의해 한의 세력과 문화가 팽창함에 따라 고조선 지역에 있었던 여러 강들이 패수(浿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_ 윤내현, <한국 고대사 신론>, p99


 윤내현은 <한국 고대사 신론>을 통해 패수(浿水), 평양(平壤) 등의 위치 비정 시 지명에 대한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볼 것을 주문한다. 이를 거슬리는 해석은 마치 신라 향가 <처용가 處容歌>에서의 '서울'을 오늘날 서울, 한양 지역으로 비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오류에 빠지게 된다. 서울의 의미가 수도(首都)이기에 보통명사의 관점에서 신라 시대의 서울과 고려시대의 서울, 조선시대의 서울이 달라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해석은 고대사를 미스터리로 빠뜨리고, 더 나쁘게는 신화(信話)의 세계, 증명되지 않은 무의식과 미신의 시대로 밀어넣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연구는 고조선을 신화의 세계에서 역사의 세계로 바라본 의미있는 학문적 성과라 여겨진다.


 한국 문헌에는 고조선의 도읍이 오늘날 평양이었던 것으로 흔히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고대 한국어에서 평양은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로서 '대읍' 또는 '장성'을 뜻했던 것으로서 그것은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에 대한 일반적 호칭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평양은 여러 곳에 존재할 수 있는 것으로서 굳이 오늘날 평양으로만 한정시켜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_ 윤내현, <한국 고대사 신론>, p194


 <한국 고대사 신론>에서 제기한 문제는 기본적으로 고대사에 대한 열린 시각을 요구한다. 수많은 사건들과 세월에 의해 뒤덮이고 소수의 유물과 기록에 대해 과거의 역사를 추정하는 고대사의 경우 현대 남겨진 유물만으로 역사를 끼워 맞추는 해석으로 한계가 있음을 저자는 본문의 내용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남겨진 유물은 분명 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줄 수 있지만, 시대의 전반적인 흐름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점에서 지나친 실증주의(實證主義)적인 접근 방식이 갖는 한계 또한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오늘날 평양 지역에서 중국식의 유적이 발굴되어 그것이 한사군의 낙랑군 유적으로 보고되자, 고조선이 오늘날 평양을 중심으로 한반도 북부에 위치했을 것으로 본 견해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처럼 되어버렸다. 그러나 평양지역에서 발견, 발굴된 유적을 면밀하게 검토해본 결과, 그것은 한사군의 낙랑군 유적이 아니라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것은 동한의 광무제가 고구려의 배후를 친 후 설치했던 군사 지역의 유적인 것이다. _ 윤내현, <한국 고대사 신론>, p106


 윤내현의 <한국 고대사 신론>에서는 역사 특히 고대사를 바라볼 때 현재가 아닌 당시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볼 것을 요청한다. 당대인의 시각에서 과거의 사실이 복원되었을 때 비로소 오늘날의 해석이 가능하며, 진정한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생각하게 된다. 보다 상세한 내용은 윤내현의 <고조선 연구>, <한국 열국사 연구>의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고, 여기서는 큰 흐름만 잡도록 하자... 


 중국의 옛 문헌에 나타난 기록을 살펴보면 서한(전한) 초까지는 요수가 오늘날 난하에 대한 호칭이었다. 그런데 서한이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그 지역에 한사군을 설치한 후에는 요수가 오늘날 요하에 대한 명칭으로 이동했다. 다시 말하면 요수는 고대에 중국의 동북부 국경을 이루는 강에 대한 호칭으로서 서한의 영토가 확장됨에 따라 요수라는 강 이름도 동북쪽으로 이동을 했던 것이다. _ 윤내현, <한국 고대사 신론>, p142

중국의 상 왕국에는 국명과 동일한 상이라는 명칭의 읍이 있었고 서주 왕국에도 국명과 동일한 주라는 명칭을 사용한 종주와 성주가 있었다. 이와 비슷하게 고조선에도 국명과 같은 조선이라는 명칭의 지역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조선은 낙랑군에 속해 있던 25개 현 가운데 하나였고 낙랑군은 위만조선의 영역에 설치되었던 낙랑, 진번, 임둔의 3군 가운데 하나였으므로, 고조선의 서쪽 변경에 있었던 조선의 크기는 위만조선 전체 면적의 75분의 1 정도의 좁은 지역이었던 것이다. - P134

고조선 국가 구조의 기층을 형성햇던 소읍은 일정한 지역의 정치적 중심이었던 진번, 임둔 등과 같은 대읍에 종속되었을 것이며, 이러한 지방의 대읍은 중앙의 대읍인 평양, 즉 왕검성에 종속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조선의 국가 구조는 소읍, 대읍, 평양(왕검성)의 순서로 읍이 누층적 관계를 형성한 읍제국가였다. 읍의 거주인은 혈연관계에 기초한 집단이었으므로 읍의 누층적 관계는 부족의 층서관계를 형성했을 것이다 - P232

위만조선은 고조선의 서부 영역을 차지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멸망은 한국 고대에 있어서 읍제국가의 붕괴와 열국시대의 개시를 가져왔으므로 한국사의 범주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사의 주류에 위치한다고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한국사의 주류를 고조선으로부터 열국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파악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 P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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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23-09-30 22: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열하일기를 읽을 때나 사기를 읽을 때 한사군, 패수 등등의 위치를 정확히 알지 못해서 답답하더라구요. 분단 상태라 북쪽을 발굴하기 힘든 것도 짜증나고, 중국이 유적지 발굴하고는 폐쇄해서 비공개하는 것도 답답합니다. 일본은 자꾸 한국 역사를 축소하려고 하고 말이죠. 비전문가이고 잘 모르는 저도 답답한데 전공자 분들이나 학계에 계신 분들은 얼마나 답답할까요...

겨울호랑이 2023-09-30 23:29   좋아요 2 | URL
역사를 바라보는 기준이 민족과 국가가 된다면, 아무래도 이들 개념의 기원인 근대 민족주의와 역사의 관계가 밀접해질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사료가 되는 사건의 기록, 유물 등 자료와 이에 대한 해석이 역사학이라는 학문을 이루는 두 줄기라고 볼 때, 특히 동북아시아의 역사는 근현대사의 얽힌 국가들의 이해가 앞선 시대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네요... 치밀한 연구와 학자의 양심이 언젠가는 왜곡된 역사의 진실을 밝혀주리라 기대해 봅니다.. ^^:)

Redman 2023-10-01 23: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선 윤내현의 주장에 대해 먗 가지 궁금증을 적어봅니다
1. 글에 적어준 윤내현의 주장은 얼마나 당대 기록과 자료의 지지를 받는지 궁금합니다. 삐딱한 시선에서 보면, ˝남겨진 유물만으로 역사를 끼워 맞추는 해석˝을 윤내현도 저지르지 않았나 싶고, 자신의 해석이 그다지 역사적 증거에 충실하지 않은 걸 본인도 아니 자신의 논리적 비약과 억지스러운 해석에 조금이나마 타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런 비판을 한 것 같다는 의심이 듭니다. 사실 그의 방법론과 논지 전개 방식 자체가 전문학자라고 보기에는 너무 허술하기도 하고요

2. 어떻게 고대인의 시각을 복원할 수 있을까요? 플라톤 철학을 전공한 이상인 교수님도 고대 그리스 철학을 고대 그리스인의 눈으로 봐야한다고 주장했으나, 현재는 고대 그리스의 눈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함을 인정하는 쪽으로 의견을 바꿨습니다. 윤내현은 기록이 고대 그리스보다도 현저히 적은 고조선은 당대인의 시각은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우리는 어떻게 고대인의 시각에서 볼 수 있으며, 고대인의 시각에서 과거를 복원한다 해도 그것이 정말 당대인의 시각과 합치한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당대인의 시각으로 본다는 것에 지나치게 매달리면, 역사 서술이라는 행위 자체에 내포된 현재성을 간과하게 되지 않나 싶습니다.

겨울호랑이 2023-10-02 07:58   좋아요 0 | URL
말씀주신 사항에 대해 제가 생각하는 선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윤내현의 주장이 다른 학설과 차이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타당성과 신뢰성이 있는가에 대해서는 전문가가 아닌 제가 말씀드리기는 어려운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저자의 여러 논문 내용이 어느 정도 정리된 <한국고대사신론> <고조선 연구(상)> <고조선연구(하)> <한국 열국사 연구>에 수백 페이지에 걸쳐 저자의 주장과 근거가 있고, 학계에서 이와 관련한 치열한 논쟁이 있는 현실에서 비전문가인 일반독자의 타당성과 신뢰성에 대한 평가는 큰 의미가 없다 생각됩니다. 차차 다른 책들도 리뷰로 정리를 할 계획입니다만, 불과 몇 페이지의 리뷰에 저자의 주장과 근거를 다 정리할 수는 없는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저자의 연구에 대한 평가는 부족한 리뷰보다 원문에 근거해서 내려주시는 편이 더 좋을 듯 합니다.

2. 역사를 거칠게 분류하면 과거의 사실과 이에 대한 해석으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중 ‘과거와 현재의 대화‘가 일어나는 부분은 해석 부분이겠지요.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을 어떤 실을 통해 꿸 것인가가 사실과 해석의 문제라는 것에는 큰 이견이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여기서 한국 고대사의 문제는 해석의 문제 이전의 사실의 문제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이상인 교수님의 철학 문제는 해석의 문제라 여겨지고요. 제가 리뷰에서 언급한 부분에서 고대인의 시각에서 보자는 것은 일례로, ‘평양‘, ‘패수‘ 그리고 ‘낙랑‘의 명사들을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로 생각한 고대인들의 사고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고대의 지명 변천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는 저자의 주장을 옮긴 것입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에 대한 근거로 해당 단어가 여러 지명에서 사용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반론은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데 있겠지요. 이처럼 한국 고대사의 문제는 해석 이전의 사실에 대한 논의라는데 철학과 차이가 있다 여겨집니다. 플라톤이 적도(또는 중용)의 개념을 설명할 때 고대 그리스에서 포도주에 적정량을 넣어 희석시키는 것으로 비유해서 설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숨겨져 있지 않다고 단정할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고대인의 생활양식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이러한 한계 때문에 깨어진 조각이 없는 부분은 부득이하게 현대의 사고로 연결할 수 밖에 없고 결과적으로 완벽한 사상의 복원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과거의 한계를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는 가능하다면 사건이 발생한 당대의 상황에 대한 최대한의 고려가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이상이 제가 리뷰에서 언급한 사건을 바라보는 고대인의 시각에 대한 의견이었습니다... 제가 드린 답변이 Redman님께 충분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섣부른 제 의견이 저자의 진의를 왜곡시키고 Redman님께 혼란을 드리지 않을까 조심스럽습니다. 해당 부분에 대해 의문을 갖고 저자의 책을 직접 읽으신다면 많은 의문이 해소되리라 생각하며 답을 마칩니다. 함께 생각해 볼 문제를 제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Redman 2023-10-02 10:30   좋아요 1 | URL
상세한 답변 감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법도가 세워지는 것은 군주의 보배이며 패거리를 갖추는 것은 신하의 보배가 된다. 신하가 그 군주를 시해하지 못하는 것은 패거리를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한 치라도 잘못하게 되면 신하는 그 갑절의 이득을 얻게 될 것이다. 나라를 갖고 있는 군주는 그 신하의 도읍을 크게 하지 않는다.

환공이 말하였다. "포숙아鮑叔牙는 어떻소?"
관중이 말하였다. "안 됩니다. 포숙아는 사람됨이 지나치게 곧고 고집이 세며 일처리에 너무 과격한 면이 있습니다. 강직하면 백성들에게 포악하게 나설 우려가 있고, 고집이 세면 백성들의 마음을 잃게 되며, 과격하면 아랫사람들이 등용되기를 꺼릴 것입니다. 그는 마음에 두려워하는 바가 없으니 패왕의 보좌역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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