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날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두 권의 책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봅니다. 두 책의 주제는 List(目錄)이며,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같은 듯 다른 두 책의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비교, 대조해 봅니다.


1.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 : 공간(空間) 속의 목록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에서 일본 언론인, 작가, 평론가인 다치바나 다카시 (立花隆 たちばな たかし, 1940 ~ )는 자신의 서재이자 작업장인 '고양이 빌딩'에 소장된 책을 소개하고 있다. 마치, 가이드처럼 자신의 서재를 소개하는 책의 구성 덕분에 저자와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느낌을 준다. 


'이쪽 서가는 저자별로 되어 있어요. 리처드 도킨스, 칼 세이건, 에드워드 윌슨 등 과학론이 모여 있습니다.(p96)... 여기에 있는 <멋진 신세계> 등 올더스 헉슬리의 책들은 고서점에서 세트로 산 겁니다. 그 고서점에서는 낱권으로 팔지를 않았거든요. 본격적인 고서점들 중에는 그런 곳이 꽤 됩니다...(p97)'


 이 책에서는 단순히 소장도서를 소개하는 것에 그지 않는다. 언론인인 저자가 취재하면서 얻은 내용도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깊이 있게 들어간 내용도 발견하게 되며, 이를 통해 저자의 넓은 지식에 대해 감탄하게 된다. 대표적인 부분이 <구약성경>의 창세기(Genesis)의 전승자료와 관련한 다음의 내용이라 생각된다.


'구약성서에는 사실 천지창조 신화가 둘 있습니다. 하나가 이 1장 1절에 나오는 대로 신(엘로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는 구절입니다. 여기서는 신을 엘로힘이라고 한다는 점에서 E자료에 의한 천지창조 신화라고 부릅니다. 또하나의 천지창조 신화는 2장 4절 이하, 즉 에덴동산과 아담과 이브가 나모는 대목입니다. 이쪽은 신의 이름을 야훼JHWH라고 한다는 점에서 J자료에 의한 천지창조 신화라고 합니다.'(p202)


[사진] 고양이 빌딩(출처 : 한겨레 블로그)


[사진] 고양이 빌딩 서재 모습 (출처 : http://m.yna.co.kr)


 책 본문에서 저자는 여러 분야에 걸쳐진 책의 내용과 현재 우리 삶과 어떤 관련이 있는가를 설명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독자들은 지식의 유용성에 대해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책의 내용 속에서 우리는 저자의 공부법에 대해서도 짧게 나마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 책에 소개된 책의 대부분이 일본서적이기 때문에 소개된 책 다수를 우리가 한국어로 접하기는 어렵다는 한계가 있다. 이러한 아쉬움을  감수한다면, '넓은 지식'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이쪽에는 <싱할라어사전>, <피진어 사전>, <이누이트어 사전> 등 여러 나라 언어의 사전들이 있습니다. 물론 마이너한 언어들만이 아니라 라틴어도 있고 중국어도 있지요.'(p88)


 '석유 이야기에서 이스라엘과 중동 이야기로. 공산당 이야기에서 중핵과 혁마르, 그리고 적군 이야기로. 하나의 주제를 기점으로 취재할 것이 점차 증식되어 가는 것. 이것이 제가 일을 하는 방식이죠.'(p334)


2. <궁극의 리스트> : 시간(時間) 속의 목록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가 '서재'라는 공간(空間)속에 놓여진 책을 바탕으로 리스트를 만들었다면, 움베르트 에코(Umberto Eco, 1932 ~ 2016)는 호메로스(Homeros, BC 9C(?) ~ 8C(?))로부터 앤디 워홀(Andy Worhol, 1928 ~ 1987)까지의 시간의 흐름 안에서 <궁극의 리스트>를 만들어 간다. <궁극의 리스트>는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와 달리 주제를 문학, 예술로 한정하여 보다 깊이 있는 목록을 제공한다. 이러한 점에서 <궁극의 리스트>는 '깊이있는 지식'을 쌓으려는 독자들에게 맞는 책이라 할 것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일리아스>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 책은 바로 <일리아스>에 나오는 선박 카탈로그 사이에도 그만큼의 많은 세월이 존재한다. 이 책은 바로 <일리아스>에서 단서를 얻은 것이다. 한편 호메로스의 바로 그 책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서술적인 모델을 발견한다. 조화로운 완성과 종결이라는 기준에서 영감을 얻어 주문한 아킬레우스의 방패라는 모델이 그것이다.'(p7)


[사진] 아킬레우스의 방패 (출처 : http://valarmorghulis.tistory.com/5)


 다음은 <일리아스>에서 시인이 출전하는 함대의 목록을 읊기 전 나오는 대사와 '아킬레우스의 방패'를 묘사한 장면의 일부를 가져와 본다.


 '이제 말씀해주소서. 올륌포스의 궁전에 사시는 무사 여신들이여! -그대들은 여신들이라 어디나 친히 임하시므로 만사를 아시지만 우리는 뜬소문만 들을 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다나오스 백성들의 지휘자들과 지배자들은 누구누구였습니까? 하나 군사들에 관하여 일일이 이름을 들어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이기스를 가지신 제우스의 따님들인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께서 일리오스에 간 모든 이들에 관하여 일일이 일러주시지 않는다면, 설사 내게 열 개의 입과 열 개의 혀가 있고 지칠 줄 모르는 목소리와 청동의 심장이 있다 하더라도 나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일입니다.'<일리아스 Ilias> 제2권 (484 ~ 493)


 '거기에 그(헤파이스토스)는 대지와 하늘과 바다와 지칠 줄 모르는 태양과 만월(滿月)을 만들었다. 그리고 하늘을 장식하고 있는 온갖 별들을, 플레이아데스와 휘아데스와 오리온의 함과 사람들이 짐수레라고도 부르는 큰 곰을 만들었다. 큰곰은 같은 자리를 돌며 오리온을 지켜보는데 이별만이 오케아노스의 목욕에 참가하지 않는다.'<일리아스 Ilias> 제18권 (483 ~ 489)


 <일리아스>에서 모든 병사들까지 다 말할 수 없기에, 주요 지휘관들과 지배자들만 언급한 것처럼 저자는 주제별로 한정된 내용을 다룰 수 밖에 없다. 다만, 다룬 내용 중 헤파이스토스가 세상 만물을 아킬레우스의 방패에 촘촘히 새긴 것과 마찬가지로 움베르트 에코는 지식의 목록을 가급적 촘촘히 새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궁극의 리스트>에 언급된 주제와 관련한 모든 작품을 언급하는 작업은 올륌포스의 무사 여신들께서 일러주시지않는다면 호메로스도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호메로스에 미치지 못하는 나로서는 당연히 감당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저자가 생각하는 목록에 대해 살펴보고 가볍게 넘어가도록 하자.


 '미학에서 무한이란 우리가 찬양하는 유한하고 완벽한 완전성에 따라오는 하나의 느낌인 반면, 지금 말하는 재현 형태는 거의 "물리적으로" 무한을 암시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것은 끝이 없으며", 형태로 종결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런 재현 방식을 "목록" 또는 "카탈로그"라고 부를 것이다.'(p17) 


3. 그리고 만남 : 교점(intersection point)


 공간적인 리스트를 X축으로 놓고, 시간적인 리스트를 Y축으로 놓는다면 실제로 이들 서재의 책들은 이들 사분면에 대응될 수 있겠지만,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분야에서 공부를 해서인지 공통된 책을 찾기 어렵다. 굳이 찾는다면, <구약성경> ,<신약성경> 정도 추릴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고양이 빌딩에 수많은 책을 소장한 다치바나 다카시와 마찬가지로 움베르트 에코 역시 책목록을 통해 즐거움을 얻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두 책의 교점(intersection point)은 '목록을 통한 즐거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책 목록에 대한 취향은 세르반테스부터 위스망스, 칼비노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들을 매혹시켜왔다. 더욱이 애서가들이 고서점의 카타로그(확실히 실용적 목록으로 만들어진)를 무릉도원이나 욕망의 땅에 대한 황홀한 묘사처럼 읽는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쥘 베른의 독자들이 고요한 심해 탐험이나 무시무시한 바다 괴물과의 조우에서 즐거움을 얻듯이, 그들은 책 목록에서 즐거움을 얻는다.'(p377)


 마지막으로, 이 두 저자들은 다음과 같이 자신들의 작업이 미완(未完)의 작업임을 고백하면서 서문을 마치고 있다. 그것은 자신들의 독서, 공부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진 작업이기 때문에 리스트는 죽는 날까지 update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닐런지. 그런 의미에서 우리들의 리스트를 만드는 것이 '리스트의 완성(完成)'이고, 이는결국 우리의 몫이고 평생에 걸친 작업이 될 것이다.


'결론적으로 목록을 조사하는 것은 어떻게든 우리가 이 책에 포함할 것을 추려 내는 작업이었다기보다는 제외해야 할 모든 것을 추리는 매우 흥미로운 작업이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이 책은 "기타 등등"이라는 말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궁극의 리스트> (p7)


'내가 늘어놓은 이야기가 이런 식이다보니 서가 앞에서 펼치는 나의 이야기는 경계를 넘어 끝없이 뻗어나가고, 한 번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게다가 그 이야기를 정리한 텍스트에 일단 교정의 붉은 펜을 대기 시작하면 이번에는 가필하면서 또 사고가 끝도 없이 펼쳐져서, 이 책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간신히 여기서 끝낸 것이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p12)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와 <궁극의 리스트>는 모두 독서를 위한 좋은 안내서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서재>는 종교, 과학, 역사 뿐 아니라 임사체험, 항공기 제작 등 넓은 분야의 책을 폭넓게 다루는 반면, <궁극의 리스트>는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서양의 문학, 예술과 관련한 책들 문장을 짚어주고 있다. 전자(前者)가 넓다면, 후자(後者)는 깊다고 해야할까. 그런 면에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생각나게 된다. 

 

子曰 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이니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壽니라.  <논어 論語>옹야(雍也)편 제21장


 우리 자신의 리스트를 만들 때  스스로 슬기롭다 생각하는 사람(知者)는 물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면 좋을 듯 하고, 스스로 어질다 생각하는 사람(仁者)는 산과 같은 리스트를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면서 페이퍼를 마친다. 


PS. 슬기롭지도, 어질지도 않은 자신이기 때문에, 제 자신의 리스트는 더운 날을 피해서 산이나 바다로 한 번 놀러간 후에 천천히 만들어야겠다고 슬그머니 빠져나가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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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6 21: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6 2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1. 푸가와 서곡


가. 푸가(Fuga)


모방대위법에 의한 악곡형식(樂曲形式) 및 그 작법. 원래 '도주(逃走)'의 뜻으로 음악용어로는  둔주곡(遁走曲), 추복곡(追覆曲) 등으로 번역된다. 그 전에는 카논을 뜻했으나 17세기 이후부터는 모방대위법에 의한 보다 완성된 음악형식과 악보 적는 법을 의마하게 되었다.


나. 서곡(序曲, overtura)


오페라, 오라토리오, 발레, 모음곡 등의 첫부분에서 연주되어 후속부로의 도입 역할을 하는 기악곡. 그 자체가 정돈되어 있는 내용을 갖고, 완결되어 명확한 종지감(終止感)을 줌으로써 후속부와는 독립하여 존재하는 경우도 많다. 이 점에서 같은 도입적 성격을 띄면서도 보다 소규모적으로 후속부와 계속적으로 접속되는 일이 많은 서주(西奏)와 다르다. 역사적으로 서곡은 우선 두 가지 중요한 형태로 분류된다. 17 ~18세기에서의 프랑스 풍 서곡과 이탈리아풍 서곡이 그것이다.'(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2. 음악의 기쁨


가. 푸가


'푸가는 단일 주제를 각 성부가 일정한 규칙에 따라 변형하며 연속적으로 반복함으로써 전개되지요. 그러니까 그 진행은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예상 가능합니다.... 푸가의 원리는 사람 음성 높낮이의 자연스러운 분포에 이미 있어요.... 동일한 주제를 서로 간격을 유지하면서 따로따로 부른다면 카논이라고 합니다. 카논은 푸가의 기원이지요. 푸가는 카논의 자원을 끌어다 쓰지만 균일성을 깨뜨립니다. 여러 국면들이 에샤페(Echappee, 회피음), 반복과 함께 이어지다고 엄밀하게 예정된 단계에 따른 추적이 막바지에 이르면 일종의 함성이 일어나죠.'(p225)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의 <평균을 클라비어 곡집 Das wohltemperierte Klavier>에는 선택할 수 있는 예들이 넘쳐나죠. 일단 여기 첫 번째 목소리로 등장하는 테마 혹은 주제가 있고요. 이 목소리가 뒤따라 나오죠. 짧은 선율적 부분이 제2주제를 끌어들여요... 첫 번째 성부에서 제1주제가 제2주제를 이끄는 동안에 두 번째 성부는 응답(Response)을 하는 겁니다. 응답은 딸림조로 옮겨진 주제죠. 두 번째 성부를 맡은 목소리의 테시투라(Tessitur, 편하게 낼 수 있는 적정 성역)에 해당합니다. 이 응답이 첫 번째 성부에서 나오면서 또다시 대주제(對主題)를 이끌겠죠. 이 모든 것이 소위 푸가의 제시부 Exposition를 이룹니다.'(p226)


'그 다음은 희유부 Divertissement가 오는데 이는 기본 테마에서 선율적 요소들을 따와서 반복적으로 전개하여 첫 번째 희유부를 구성합니다. 주제 혹은 대주제에서 가져온 희유부는 관계조들을 넘나들다가 으뜸조의 딸림화음으로 귀결됩니다. 푸가가 잠시 휴식을 취하는 부분이죠.'(p227)


'그 다음은 스트레타 Streta죠. 종결부에서 추적의 간격이 좁아지면서 주제와 응답이 점점 더 겹쳐갑니다. 드디어 "페달", 즉 베이스의 지속음이 종결부를 끌고 오죠. 그동안 주제, 응답, 대주제가 마지막으로 제시되고요. 푸가는 원조의 승리를 확인하는 카덴차로 끝을 맺습니다.'(p227)



나. 서곡 


'치밀한 형식과 극적 의미 전달이라는 바로 이 이중의 요구가 교향악 스타일의 형성에 결정적 영향을 줍니다. 소재를 바로 공략해야 하고, 주테마들과 부테마들 사이에 조성 관계가 있어야 하고, 대비를 강조하되 균형은 유지해야 하고, 에필로그와 종합과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를 찾아야 하고, 테마 혹은 리듬의 요소로서 음향적 조직을 견고하게 지킬 의무... 오페라의 서곡과 교향곡의 알레그로 악정은 공통적으로 이런 문제들을 풀어야 했지요. 그리고 이 공통의 문제들이 결국 오페라의 서곡과 교향곡의 알레그로 악장을 서로 가까워지게 했습니다.'(p238)


'베버(Weber, Carl Maria von, 1786-1826)의 <오베론 Oberon> 서곡은 무슨 즉흥곡처럼 보이는 동시에 마법적 주술의 매혹을 지니고 있죠. 이 음악은 아주 특별한 힘, 즉 사건들을 분명히 예고하되 위험 없이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힘을 지닙니다.'(p239)



3. 그라우트 서양음악사


가. 바흐의 푸가


'전형적으로 바흐의 푸가 형식은 협주곡의 빠른 악장과 매우 비슷하다. 푸가 주제는 관계조나 으뜸조로 되돌라오는 리토르넬로와 유사하게 기능한다. 위와 같은 음악적 진술 사이에는 에피소드가 위치하는데, 에피소드는 독주 부분과 유사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종종 더 가벼운 짜임새와 동형 진행을 갖고 있거나 조가 변화되는 형태를 지닌다.'(p482)


나. 프랑스 서곡


'프랑스 서곡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각은 두 번 반복된다. 첫 부분은 수직화음적이고 장엄하며 부정리듬과 강박을 향해 몰아치는 음형으로 이루어진다. 두 번째 부분은 더 빠르고 푸가와 같은 모방 비슷한 것으로 시작된다. 때로는 제일 마지막에 첫 부분의 템포와 음형이 되돌아 나오기도 한다.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 ~ 1687)의 오페라 <아르미데>(1686, NAWM 77a>의 서곡은 이 장르의 좋은 예다.'(p392)


다. 이탈리아 서곡


 이탈리아 서곡과 관련한 별도의 설명이 없어 유명한 주페(Franze von Suppe, 1819년 ~ 1895년)의 <경기병 서곡>을 대신하여 올립니다. <경기병 서곡>은 국민학교 음악시간에 인상적으로 들었던 기억이 나는 추억의 곡이네요. 수십 년이 지나도 기억이 남는 것을 보면 어렸을 때 배운 것들이 평생 간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물론 너무 많이 배우면 질려버리겠지만요. 태풍이 올라와서인지 어제, 오늘 무더운 날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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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08-06 10: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유려한 필력이 클래식 음악 세계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된 것 같습니다. 이런 글 한 편 쓰기가 쉽지 않지요.

겨울호랑이 2017-08-06 10:2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오거서님. 제가 만든 것도 아니고 잘 몰라서 내용을 정리해봤습니다. 모르는 음악 전문 용어가 많아 갈길이 멀었음을 매번 느끼게 됩니다.^^: 오거서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라로 2017-08-06 15: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저희 딸 바이올린 가르치시던 선생님이 바흐의 푸가는 알수록 오묘하다고 하신 게 님의 글을 읽으며 생각이 나네요. 바흐는 정말 대단해요!!!

겨울호랑이 2017-08-06 15:38   좋아요 0 | URL
^^: 네 많은 음악가들이 규칙과 질서의 테두리 안에서 자유롭게 흐르는 선율을 구현하는 것을 보면 감탄하게 됩니다. 그중 바흐는 카논과 푸가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고 주위에서 말씀하시네요 ㅋ ^^:

AgalmA 2017-08-10 05: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주말엔 음악 공부. 정말 탁월한 공부 안배^^b

겨울호랑이 2017-08-10 06:21   좋아요 1 | URL
^^: 이렇게 한 걸음씩 나아지는 것이겠지요. AgalmA님께서는 요즘 많이 바쁘신 듯해요. 지금도 아마 밤을 새우신 듯 하네요. 더운 날 건강 잘 챙기세요. ^^:
 

 아빠. 아버지.


 엄마, 어머니와 같이 있지만, 자녀들에게는 아무래도 조금 떨어진 존재인 아빠, 아버지와 관련된 책을 정리해 봅니다. 한 아이의 아빠로서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읽고, 부모의 길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1. 유년기(아빠) :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

 

<이중섭 1916~ 1956 편지와 그림들>은 일본인 아내를 둔 화가 이중섭(李仲燮, 1916 ~ 1956)이 아내와 두 아들에게 보내는 글과 그림이 담겨진 책이다. 책 중에는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가 실려 있는데 이 편지를 통해 '인간 이중섭'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책에는 자녀에 대한 사랑만 표현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나의 귀여운 즐거움이여, 소중한 나만의 오직 한 사람, 나만의 남덕이여', '나의 귀여운 가장 멋진 남덕 군', '나만의 살뜰한 사람, 나 혼자만의 기차게 어여쁜 남덕 군'  등으로 아내에 대한 사랑이 더 많이 표현된 잘 표현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된다. 연애때에는 쑥스러워서 잘 표현하지 못하고, 지금은 '가족'이라서(가족끼리 이러는거 아니야(?))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어느새 결혼 8년차 남편이 되버린 나에 비한다면 이중섭 화가는 사랑을 잘 표현한 예술인이었다. 비록, 대부분의 편지가 일본어로 쓰여져 편지 내용이 고(故)  박재삼 시인이 번역했기에 더 아름다운 표현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만, 내게 더 마음깊이 다가왔던 것은 아들들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두 번째인 유년기를 맞이한 아들들에게 보내는 아빠의 편지를 보려 한다.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는 약 20편 정도로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보다 양도 적고, 내용도 짤막한 편이지만 짧은 편지 속에 아빠의 사랑이 잘 담겨있다. 특히, 어려웠던 화가의 처지를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편지를 쓸 당시 화가는 일본에 아내와 두 아들을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와 있었다. 고국이지만, 한국전쟁이라는 큰 시련의 시기를 혼자서 견뎌야 했던 화가에게 편지는 삶의 낙이었으리라. 편지 속에서 아들들의 안부를 걱정하고, 선물을 약속하는 화가의 모습은 지금의 여느 아버지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아빠가 보내준 그림을 보고 그토록 기뻐해주었다니... 아빠는 정말정말 기쁘다. 다음 편지에는 학교에서 재미있었다고 생각한 일들을 적어 보내다오. 아빠도 부지런히 그림과 편지를 보내주마.'(p191)


 '아빠가 가면... 이번엔 꼭 보트를 태워줄께. 몸 성히 얌전하게 기다리고 있어라. 아빠는 감기로 누워 있었지만 약을 먹고 이젠 아주 좋아졌단다.(p192)... 이번에 아빠가 빨리 가서... 보트를 태워주마. 아빠는 감기로 닷새 동안 누워 있었지만, 이제는 다 나아 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단다. 어서어서 전람회를 열고서... 그림을 팔아 돈과 선물을 잔뜩 사 가지고... 갖고 갈테니... 몸 성히 기다리고 있어다오.'(p212)


 그렇지만, 화가의 삶은 그렇게 녹록지 못했던 것 같다. 전체 20편의 편지 중 7편의 편지에서 화가는 아들들에게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한다. 매번 자전거를 사주기로 약속했지만, 가난했던 아빠는 끝없이 약속밖에 하지 못한다. 해주고 싶지만, 할 수 없는 아빠의 마음. 마음 깊이 이해할 수 있다.


'한 달 후면 아빠가 도쿄로 가서 자건가 사주마.(p194)... 둘이서 사이좋게 기다려다오. 아빠가 가면 자전거 사줄께. (p198)... 이번에 아빠가 가면 자전거를 꼭 태현이에게 한 대, 태성이에게 한 대씩 사줄 참이란다.(p202)...이번에 아빠가 가면 틀림없이 근사한 자전거를 태성이와 태현이 형에게 하나씩 사줄 작정이다.(p204)... 아빠가 한 달 후면 도쿄 가서 꼭 자전거 사줄게.(p207)... 전람회가 끝나면 곧 아빠가 도쿄에 가서 자전거를 사줄게.(p208)... 전람회가 끝나는 대로 곧 도쿄에 가서 너희들에게 자전거를 사줄 참이란다.'(p210)


 그런 어려움에 대해 결코 시인은 드러내 놓고 표현하지 않지만, 지나가는 편지의 문장 속에서 화가의 가난과 좋지 않은 건강 등을 충분히 느낄 수 있기에 같이 마음이 아파온다. 그래서였을까. 화가는 그림 속에서 두 아들의 모습을 참 많이 표현했다. 이중섭 화가의 편지는 유년기를 함께 하지 못하는 아빠의 아쉬움이 잘 드러낸다. 


 '아빠가 사다놓은 종이가 떨어져 한 장밖에 없어서 그림을 한 장만 그려 보낸다. 엄마와 태성이, 태현이 셋이 사이좋게 봐다오.(p189) ... 내 훌륭한 일들 아들 태현아, 종이가 모자라 한 장에다만 쓴다. 다음엔 길게길게 써 보내마.'(p203)


[사진]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 동봉한 그림(출처 : http://m.blog.daum.net/prohklee/1765)


 2. 청장년기(아버지) :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중섭 화가의 편지가 아직 어린 시기를 보낸 아들에게 보낸 편지라고 한다면,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는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 ~ 1836)이 청년기, 장년기를 보낸 아들에게 보내는 내용이 담겨있다. 먼저의 편지가 아버지의 사랑을 한껏 드러낸 반면, 다산의 편지는 아들들이 바른 길로 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잘 표현되고 있다. 어린 자식들에게 어려움을 애써 보이려 하지 않는 이중섭 화가의 편지와는 달리, 다산의 편지는 현실을 직시한다.


 '이제 너희들은 망한 집안의 자식이다. 그러므로 더욱 잘 처신하여 본래보다 훌륭하게 된다면 이것이야말로 기특하고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 폐족으로서 잘 처신하는 방법은 오직 독서하는 것 한가지밖에 없다. 독서라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깨끗한 일일 뿐만 아니라, 호사스런 집안 자제들에게만 그 맛을 알도록 하는 것도 아니고 또 촌구석 수재들이 그 심오함을 넘겨다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p37)


  다산의 편지가 깊은 울림이 있는 것은 그 자신이 걸었던 길을 자식에게 전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그저 자식들에게 공부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미 걸었던 길 속에서 깨우침을 전했기에 진심이 담겨있다. 그러한 편지를 읽다보면, 진정한 부모의 가르침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너희들은 도(道)와 덕(德)이 완성되고 세워졌다고 여겨서 다시는 책을 읽지 않으려 하느냐. 금년 겨울에는 반드시 <서경(書經)>과 <예기(禮記)> 중에서 아직 읽지  못한 부분을 다시 읽는 것이 좋겠다... 역사책을 읽고 자신의 견해를 적는 '사론(史論)'은 그동안 몇 편이나 지었느냐? 근본을 두텁게 배양하기만 하고, 얄팍한 자기 지식은 마음속 깊이 감추어두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p33)


  '독서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학문에 뜻을 두지 않으면 독서를 할 수 없으며, 학문에 뜻을 둔다고 했을 때는 반드시 먼저 근본을 확립해야 한다. 근본이란 무엇을 일컬음인가. 오직 효제(孝弟)가 그것이다. 반드시 먼저 효제를 힘써 실천함으로써 근본을 확립해야 하고, 근본이 확립되고 나면 학문은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들고 넉넉해진다.'(p39)


 또한, 아들의 수준을 정확히 진단하고, 아들에게 필요한 공부가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아래의 편지를 통해 우리는 다산이 자녀에게 일방적으로 학습을 지시한 부모가 아님을 확인하게 된다. 선배(先輩)로서 공부의 어려움을 공감했기에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는 공부하는 부모의 전형을 우리는 다산의 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네 동생 학유의 재주는 너에 비하면 조금 부족한 것 같다. 그런데 금년 여름 고시(古詩)와 운이 안 달린 부(賦)를 짓게 했더니 좋은 작품들이 많이 나왔다. 가을 무렵에는 <주역(周易)>을 베끼는 일에 힘쓰느라 독서를 많이 못했지만 그애의 견해는 제법이었다.'(p53)


  '아무쪼록 <삼국사기(三國史記)>, <고려사(高麗史)>, <국조보감(國朝寶鑑)>, <여지승람(與地勝覽)>, <징비록(懲毖錄)>, <연려실기술(燃藜室記述)> 및 우리나라의 다른 글 속에서 그 사실을 뽑아내고 그 지방을 고찰하여 시에 인용한 뒤에라야 후세에 전할 수 있는 좋은 시가 나올 것이며 세상에 명성을 떨칠 수 있을 것이다.'(p57)


 공부를 통해 맺어진 공감대 가 있었기에 부모의 말이 힘을 얻을 수 있었고, 다음과 같은 일상의 가르침 역시 자녀의 가슴깊이 와 닿았음을 우리는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사진] 다산의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출처 :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infiniti&folder=5&list_id=8090481)


 '뒷날 너희에게 근심 걱정할 일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이 보답해주지 않더라도 부디 원망을 품지 말고 바로 미루거나 용서하는 마음으로 "그분들이 마침 도울 수 없는 사정이 있거나 도와줄 힘이 미치지 않기 때문이구나"라고 생각할 뿐, 가벼운 농담일망정 "나는 저번에 이리저리해 주었는데 저들은 이렇구나!" 하는 소리를 입밖에 내뱉지 말아야 한다. 만약 이러한 말이 한번이라도 입밖에 나오면 지난날 쌓아놓은 공과 덕이 하루아침에 재가 바람에 날아가듯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p61)


 

현대에도 어린 자녀를 걱정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한 책은 많다. 예를 들어  41세의 나이에 심장마비로 급사하기 전까지 자식에게 남긴 편지를 엮은 <사랑하는 아빠가>라는 책 역시 어린 자녀와 함께 하려는 아버지의 사랑이 잘 드러난다.


 이에 반해 청장년기 부모가 자식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내용의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 자녀에 대한 사랑보다는 '자녀 교육'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학습법 관련 책이 다수를 차지한다고 생각된다. 예전에 <부모 인문학>이라는 책을 읽은 적이 있다. 교양있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고전공부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이 책은 과목별로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제시한다. 학습목표, 아이들이 할 수 있는 능력, 저자 자신의 경험 등이 수록되어 있어 홈스쿨링에 관심있는 이들에게 유용한 자료를 제시한다는 면에서 좋은 책이다. 그렇지만, 어딘가 부족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나는 고전공부법을 파고들수록 어린아이들이 예리한 관찰자가 되도록, 모든 감각을 총동원해서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내도록 하는 것이 교육 목표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 가족이 즐겨 하는 일 가운데 하나는 해변에서 상어 이빨을 찾는 것이다.. 과학 공부는 아이들에게 "보는' 법을 가르치는 기회를 완벽하게 제공해준다. 결국 우리는 아이들이 정의롭지 못한 사실을 지나치지 않고 보기를, 자기 힘으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음을 알기를 바랄 것이다...'(p244)


 이 책을 읽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을 지금 생각하게 된다. <부모 인문학>에는, 아니 대부분의 인문학 교육을 강조하는 책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부모가 자녀들과 같이 공부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들보다 낮은 수준에 있다면 결코 제대로 된 공부를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의 공부에 대한 이야기가 먼저임에도 불구하고 <부모 인문학>에서는 매 장(章)에서 부모가 함께 공부하기를 말하지만, 구체적으로 부모가 갖춰야할 소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부모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어떤 책에서도 말하지 않고 있기에, 부모 자신은 TV 앞에 있으면서 자녀들에게는 들어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을 우리는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만드는 지점이다. 부모의 이러한 태도는 결코 자녀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 것지만, 이에 대한 답은 제시하지 못한다. 또한 책의 내용 중에는 현대 부모가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아이들을 복종시킬 것을 요구하는 다음의 단락을 본 후에는 책의 내용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된다.


 '아이가 자기 생각을 가진 지각 있는 존재가 아니라 마치 개인 소유물처럼 복종하도록 훈련시킨다는 생각을 어떤 부모는 탐탁찮아할지 모른다. 믿기 어렵겠지만, 우리 아이들에게 복종심을 심어주고 혹독한 노력을 하도록 요구한 결과, 우리 아이들은 나에게서 자유로워졌다.'(p240)


 저자의 아이들이 자유로워졌는지 부모에게 마음을 닫아버렸는지는 내가 알 길이 없지만 나는 그 길을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 솔직한 지금의 심정이다. 그런 의미에서 다산의 편지는 진정한 자녀 교육과 자녀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이제 정리해 보자.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한결같을 것이다. 다만, 자녀의 성장 시기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달라지는 것일뿐. 어려서는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하는 것이 보다 중요했다면, 보다 성장한 후에는 그런 마음을 조금은 접고,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자의 위치로 자리매김해 가는 것이 부모의 사랑이 아닌가 생각을 한다. 그렇지만, 현재 우리는  물질적으로 풍요로움 속에서 어려서는 많은 장난감을 안겨주다가, 성장기에는 아이들에게 '교육(敎育)'이라는 이름하에 부모들이 '공부하라'는 강요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물질적으로 어려운 속에서도 내색하지 않고 꾸준히 자식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일깨우는 '이중섭의 편지'와 유배지에서 자식을 자주 보지 못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바른 길을 제시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다산의 편지' 속에서 진정한 '사랑하는 아빠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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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4 09: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10: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갱지 2017-08-04 17: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부모랑 학부모 얘기가 생각나요:-) 아직은 소년을 키우고 있지만, 앞에 ‘청‘ 이 붙으면 어떻게 될지 궁금해하는 중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4 18:18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갱지님과 마찬가지로 아직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 부딪혀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네요.

2017-08-04 22: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08-05 01: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신의 행복을 포기할 정도로 다른 이를 위하는 일에 기꺼이 애쓰는 게 바로 정의라고 김경집 교수가 그러더군요. 가족만이 아니라 타인에게도 두루 그런 사회라면 얼마나 좋을까요...

겨울호랑이 2017-08-05 05:42   좋아요 2 | URL
^^: 그런 사회라면 재산이 많지 않아도 큰 걱정없이 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학기의 「아름다운 세상」노래가 갑자기 생각나네요..

서니데이 2017-08-05 17: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더위가 식지 않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시원한 저녁시간 되세요.^^
 

 일주일 사이 <슈퍼배드3>와 <덩케르크 Dunkirk>를 봤습니다. 평소 극장을 잘 찾지 않는 편이지만, 날이 더워서인지 최근 자주 가게 되었습니다. 평소 영화를 잘 알지 못해 작품에 대한 평가를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영화 관람 중 들었던 짧은 생각을 몇 자 적어봅니다.


[사진] 슈퍼배드3(출처 : 제니스 뉴스)


 아내, 연의와 함께 본 <슈퍼배드3>는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입니다.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캐릭터인 미니언스들이 등장하지요. 덕분에 보통 극장에서 앞자리를 발로 차고, 큰 소리로 웃고 떠드는 아이들도 제법 몰입해서 이야기에 빠져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연의 역시 처음으로 극장에서 도중에 집에 가자고 조르지 않더군요. 아내말에 따르면 연의는 여태까지는 재미없다고 집에 가자고 이야기하거나, 화장실에 가자고 하는 등 관람시간 동안 수차례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번에 극장올 때도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슈퍼배드3>를 볼 때는 끝까지 재밌게 봤습니다.  그런 면에서 <슈퍼배드3>는 가족사적인 의미(?)가 있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더 많은 공연을 연의와 함께 볼 계획입니다. <슈퍼배드3>가 재밌었는지, 연의가 컸는지는 좀더 지켜보면 알겠지요...


 <슈퍼배드3>는 나름 자녀와 함께 오는 부모들을 위한 배려도 담겨 있습니다. 악당이 80년대 '발타자르 브랫(Balthazar Brat)' 이라는 인물(첫 번째 사진의 오른쪽)입니다. 복고풍 느낌이 물씬 나는 이 인물을 통해 부모들은 80 ~ 90년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이 인물이 등장할 때 나오는 음악이 있는데, 이 음악을 통해서도 추억을 소환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마이클 잭슨의 'Bad', 영화 'TOP GUN'의 OST 중 하나인  <Take my breath away>, A-ha의 <Take on me> 등이 나오는데, 이들 음악과 당시 패션은 부모들 세대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잠시 제공합니다.(평균 3초 정도) 그런 의미에서 <슈퍼배드3>는 모든 세대를 배려한 좋은 가족 영화라 생각됩니다. 줄거리는 뻔하지만, 제가 아이들을 살펴보니 그래도 부모님과 같이 영화를 본 아이들이 더 활짝 웃고 있었기에, 가급적이면 함께 보시는 것을 추천 드립니다.^^:(만약 보실 계획이라면요)





[사진] 뎅케르크 (출처 : http://eleit.tistory.com/entry) : 영화 이미지는 아닙니다.


 다음에 본 영화 <덩케르크>는 2017년 개봉한 크리스토퍼 놀란(Christopher Jonathan James Nolan) 감독의 작품입니다. 영화는 대화와 불필요한 상황 설정을 최대한 억제하고 담담하게 전쟁을 그려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만약, 감독이 전작 <인셉션 Inception, 2010>, <인터스텔라 (Interstellar, 2014)>에서 보여준 모습을 기대하고 보신 관객은 다소 밋밋하게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이 본 제 동생의 감상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담담하게 이야기를 진행한 영화에 몰입해서 봤습니다. 그렇지만, 영화가 다루고 있는 '덩케르크 철수'와 관련해서 최근의 정치 상황이 계속 연상되어 다소 불편했습니다. 개인적으로 1940년의 '덩케르크 철수' 속에서 2016년 '브렉시트 Brexit' 가 연상되었기 때문입니다.

 

 EU에서 탈퇴하여 유럽이기를 거부하고 섬나라 '영국'으로 돌아간 선택을 한 21세기 영국의 모습을 우리는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충격적인 결정에 대해 많은 영국인들은 찬성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EU에서 철수해서 영국으로 귀환한 결절을 환영하는 영국 유권자의 모습과 영화 내에서 귀환병들을 환영하는 영국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었습니다. 또한, 유럽대륙을 제패한 독일 제3제국의 모습 속에서 현재 EU의 주도권을 행사하는 독일의 모습이 관람자의 입장에서 투영됨을 느꼈습니다. 영국인인 놀란 감독이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철수 작전을 통해 현대 영국의 결정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게된 지점입니다. 


 그런 관점- 자신들의 선택인 '브렉시트'에 스스로 합리성을 부여한 것은 아닌가 하는 - 에서 '던케르크'를 본다면 많은 부분이 다르게 보입니다. 프랑스, 벨기에 등 현재 EU 회원국들이자 과거 연합국으로서 동맹국들에게는 과거 '대(對)독일'전선에 대항했다는 이미지를 통해서, 유럽 내 영국의 고립을 약화시키려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와 동시에 '나치'로 대표되는 독일을 고립시키는 듯한 느낌을 영화 전반에서 느끼게 됩니다.  너무 나갔다는 생각이 들지만, 기왕에 나간 김에 조금만 더 나가보겠습니다.


세계적으로 배급되는 이 영화를 아마도 많은 유럽인들도 볼 것입니다. 다른 EU 회원국민들의 마음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몰고갔던 독일에 대해 동질감보다는 반감이 더 커지게 되는 것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또한,최근 유럽 등지에 일어나고 있는 EU 탈퇴를 부르짖는 '극우 운동'이 힘을 받지 않을까 생각이 되었습니다. 반면, 독일인들은 '유럽 공동체' 보다는 강대한 '독일'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러한 부분이 2017년 9월 예정된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강경 우파가 득세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보게 됩니다. 전쟁 영화 한 편에 너무 나간 상상을 하게 되었네요.^^: 다만, '영국 만세!'의 느낌을 통해 어설픈 관객 한 명이 딴 생각을 할 여지를 주었다는 정도로 정리하겠습니다. 이른바 '국뽕'이라고 하는 이런 느낌은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읽었던 책에서도 느꼈습니다. 영화와는 전혀 관련없는 '한옥' 관련 책이었습니다만...


영화 시작 전 잠시 살림지식총서에서 나온 <한옥>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문고판 책은 어디서든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는 면에서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통 가옥 연구를 평생 업(業)으로 해온 저자가 풀어주는 한옥(韓屋)에 대한 이야기는 즐겁게 쉽게 익힙니다. 제게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저자가 풀이한 마루에 대한 부분입니다.이외에도 한옥의 숨겨진 의미에 대해 저자는 쉽게 설명하고 있고, 이는 이 책만이 가진 매력이라 생각합니다.


 '또 마루는 인간과 신을 이어주는 또 다른 측면의 매개공간이 되기도 한다... 신과 인간이라는 상/하 개념의 두 존재가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형성되어야 하는데 이 기능을 담당하고 있는 곳이 마루인 것이다. 마루를 땅에 떨어지게 한 것은 인간세속을 벗어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주거에 있어서 다른 공간들이 전부 막힌 구조인데 비해 마루는 아래 위를 비워둠으로써 단면상의 상징성을 유도하기도 한다.'(p71)


다만,  책 중간 중간에 있는 전통 한옥에 대한 저자의 예찬은 현대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져 책에 대한 몰입을 방해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덩케르크>의 '영국만세!'의 연장선입니다.


 '옛날 조석으로 어른들을 문안할 때 아랫사람이 요 밑에 손을 넣어 방의 온도를 살폈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온돌이 파이프를 이용한 난방으로 바뀌면서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그러나 서양식 난방방법이 들어옴에 따라 우리들은 매사에 감정적이고 다혈질적으로 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닐까?... 위대한 미래는 찬란했던 과거와 접목되었을 때에만 약속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p64)


 전통가옥에 대한 예찬이 최근 주거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고, 이어서 현대 문화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지면서 책은 마무리되고 있지만 저로서는 상당히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한옥에 대한 좋은 소개서라는 생각이 많이 옅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여러 형제, 남매가 한 이불 속에서 옹기종기 자랄 때에는 서로 다투고 싸우면서도 필여에 따라서는 양보도 할 줄 알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끈끈한 가족애가 있었다. 아기가 아프면 자기의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먹였다는 어머니의 모성도 바로 이 가족 간의 굳건한 공동체 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굳건한 공동체 의식은 오랜 역사를 통해 굳어지면서 우리 민족의 저력이 되었다. 강대국의 옆에 붙어 정치적, 군사적으로 위협을 당했어도 우리의 문화를 간직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이 공동체 의식에 있었던 것이다.'(p88)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이 한옥을 소개하자는 것인지, 현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가자는 의미인지 참 모호해집니다. 그런 어정쩡함 속에서 과거에 읽었던 책 내용의 일부를 옮겨 봅니다.  아래 내용은 2016년 < 한옥문화> 여름호에 실렸습니다. (이미지가 없어 2017년 봄호의 이미지를 넣었습니다)


'마당에 잔디를 깔거나 정원을 만들어서 그것을 관리하려고 독한 농약을 뿌리는 모습도 보았는데,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말고 마당을 비워두었으면 더 건강한 집이 되었겠다. 한옥은 마당을 그냥 텅 비워 놓아서 그곳을 실내 공간처럼 썼다. 마당에서 음식도 만들어 먹고, 놀이도 하고, 일을 하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한옥>과 내용이 거의 동일합니다. 제게 와닿았던 부분은 다음입니다.


 '한옥의 공간 구성에서 현대인의 삶을 건강하게 하는 요소를 찾아내서 그  내용을 집짓기에 적용하자. 이것이 한옥의 현대화다. 과거에는 비가 왔을 때, 평평한 옥상에서 물이 새지 않게 할 기술이 없었다. 지금은 평지붕에 방수를 하는 기술이 있다. 그러니 기와 없이, 옥상을 둔 한옥을 지을 수도 있겠다. 기와가 멋있다면 옛날 기와를 그대로 복제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현대적인 재료로 세련되게 새롭게 처마와 지붕의 선을 디자인해보아도 좋겠다.'(p108)


 예전에는 난방기술이 '온돌'이 최선이었기에 온돌이 사용되었을 것입니다. 반면, 지금은 다양한 난방 기술이 있지요. 이러한 시대의 변화를 무시하고,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는 후대의 공감을 받기 어렵습니다. 그러면서 소개된 한옥 '잔서완석루'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한옥입니다. 잔서완석루는 <제가 살고 싶은 집은> 이라는 책에도 소개된 집이기도 합니다. '잔서완석루'가 한옥이라 불릴 수 있을까 물음을 던지게 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집은 멋진 집의 요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사진> 잔서완석루 (출처 : 한옥문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의(衣), 식(食), 주(住)라 했을 때, '우리 땅에서 난 것이 우리 몸에 좋다(身土不二)'라고 해서 갑자기 양복 대신 두루마기 한복을 입고, 바나나, 파프리카 대신 감, 배 등만 먹기는 힘이 들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무조건 적인 과거로의 복귀가 '정답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대와 과거와의 조화. 그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슈퍼배드3>는 참 배려심이 넘치는 영화입니다. 날이 무더운 요즘입니다. 이웃분들 모두 좋은 건강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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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8-03 0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3 0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7-08-03 09:2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덩케르크>를 관람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전환점이 많았을 텐데 하필 패배한 전투의 역사적인 순간이 영화의 소재가 되었을까 생각해보았습니다. 영국군의 생존 귀환 프로젝트는 과거보다는 현재의 영국 상황을 맞춰보니 영화의 주제와 맥락이 닿고 영화의 디테일 역시 놀랍더군요. 영화 막바지로 갈수록 영국민의 감정을 자극할 만한 요소가 많다는 것도 느낄 수 있더군요. 스핏파이어 전투기의 구군분투와 독일에 포로가 되는 마지막 장면이 저한테는 인상적이었습니다. 겨울호랑이 님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덩케르크와 한옥을 연관성을 생각해봐야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8-03 09:42   좋아요 3 | URL
^^: 네 저 역시 오거서님께서 말씀하신 조종사가 포로가 되면서 마치는 장면 또한 인상적이었습니다. 방어선이 없는 그곳으로 가면 포로가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 그쪽으로 활강을 하는 조종사. 적에게 비행기가 넘어가지 않도록 엔진을 폭파시켰던 사람이 자신은 포로가 되었다는 사실은 알 수 없는 묘한 여운이 남더군요. 개인적으로 <덩케르크>가 배트맨 시리즈처럼 시리즈물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덩케르크 철수 이후 벌어진 ‘영국 본토 항공전‘, ‘노르망디 상륙잔전‘등으로 배트맨 시리즈처럼 3부작을 만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아니겠지요..^^: 오거서님 더운 날 건강한 하루 되세요..

곰곰생각하는발 2017-08-03 10: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오, 덩케에 대한 해석이 좋군요. 생각하지 못했던 지점인데 겨호 님 해석을 들으니 맞는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3 11:00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곰곰발님 말씀을 들으니 저 혼자 안드로메다로 간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이 줄어듭니다. 더운 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고양이라디오 2017-08-03 12: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는 해석 잘 보았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08-03 12:23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날이 무척 덥네요. 고양이라디오님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AgalmA 2017-08-03 14: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연의 귀여워ㅋㅋ

최근 <군함도>와 <덩케르크> 비교논쟁들 보고 이 글 읽으니 국뽕은 만국의 정서라는 생각도 들고^^; 좀전에 헤르메스님 <거대한 후퇴> 읽은 게 오버랩 되면서 우리는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수많은 퇴행과 퇴보도 부산물이자 동반자라는 생각이 아니 들 수 없군요.

언젠가 중국, 한국, 일본의 건축양식을 비교해보며 결국 각 풍토에 따른 인간의 적응방식 아니었겠나 싶었는데 그걸 어떤 우월성으로 비교하면 개별적 특수성을 너무 간과하는 게 아닌가 생각도 됩니다. 물론 상상과 기술력의 혁신 관점에서 보면 비교우위가 당연 생길 수밖에 없겠습니다만요. 요즘은 글로벌해져서 그 격차가 자본에 의한 차이로 더 부각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한옥에 대한 저자의 저 발언은 그런 경제 문화적 환경 요인은 간과한 거 같네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4:19   좋아요 1 | URL
^^: 그러게요... 진보한다는 것도 마냥 앞으로 간다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듭니다. random walk를 하다보니 장기적으로 ‘나아졌더라‘하는 것이 역사의 발전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직 건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인간의 생활양식의 결과가 ‘주택‘이라고 본다면, 전통이 무너져서 사회가 어렵게 되었다는 논리는 ‘인과오류‘가 아닌가 싶네요.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특수성 문제를 듣다보니 열대지방의 ‘낮잠‘ 문화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낮잠을 자는 것이 그들이 게을러서가 아니라 그 기후에서 적응하는 하나의 문화양식임을 우리가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요. 그런 의미에서 세계화, 글로벌화라는 것은 문화적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강요된 폭력인듯 하네요.

2017-08-03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3 17: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4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8-05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8-05 08:27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요즘 날이 너무 덥네요. 김영성님도 시원하게 건강한 하루 보내세요.
 

 

'본유 관념이란 감각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고 마음에 명석하고도 판명하게 떠오르는 관념이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 ~ 1650)에 따르면 대표적인 본유관념이 '신(神)의 관념'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의 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관념을 우리에게 넣어 준 신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객관적 세계의 존재, 즉 외계 물체의 존재는 이 '신의 성실성(veracitas dei)을 매개로 하여 증명된다는 것이 데카르트의 생각이다.' (출처 : 철학 사전)


 대륙의 합리론(合理論)과 영국의 경험론(經驗論)이 가장 첨예하게 부딪히는 부분 중 하나가 '본유 관념(innate idea)'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크의 <인간지성론>을 중심으로 '본유관념'과 관련된 내용을 정리해 본다.


1. 고대 그리스의 본유관념


 '본유 관념'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로 올라갈 수 있다. 플라톤(Platon, BC 427 ~ BC 347)의 <메논 Menon>에는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가 노예 소년에게 질문을 통해 기하학 증명을 하는 장면이 나온다. 플라톤은 이를 통해 진리가 인간 내면에 있으며 '상기(想起)'를 통해 인식할 수 있다는 내용을 주장하고 있다. <메논>에 나타난 '본유 관념'을 확인해 보자.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아무도 가르치지 않고 단지 질문할 뿐인데, 그 스스로 자신으로부터 인식을 되찾음으로써 인식할 수 있지 않겠나?

메논 :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런데 그가 자신 속에서 인식을 되찾는 것이 상기하는게 아니겠나?

메논 : 물론이죠.

소크라테스 : 그렇다면 이 아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인식은 그가 언젠가 획득했던 것이거나, 아니면 언제나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겠나?

메논 : 그렇습니다. 

소크라테스 : 그래서 언제나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또한 언제나 알았을 걸세. 하지만 언젠가 획득했다면, 그는 적어도 이승에서 획득하지는 않았을 걸세. 아니면 이 아이에게 누가 기하학하는 걸 가르친 적이 있나?' (85 d ~ e) <메논 Menon> 


2. 데카르트의 본유관념


 고대 그리스에서 수학(기하학)이 절대적 진리로서 본유 관념의 자리를 차지했다면, 근대 초기 유럽에서는 '신(神)'의 개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데카르트는 <성찰>에서 본유 관념을 통해 '신 존재'를 증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데카르트는 '정신- 물질'의 이원론(二元論)을 주장한다. <성찰 Meditationes de prima philosoptia, in quibus Dei exstentia, & animae hamanae a corpore distinctio, demonstrantur> 중 '본유 관념'에 해당되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이런 관념 가운데 어떤 것은 본유적(innatae)이고, 어떤 것은 외래적(adventitiae)이며, 다른 나머지는 내 자신이 만들어 낸(factae) 것으로 생각된다.(p61)... 내 속에 있는 관념은 상과 같은 것이고, 게다가 이것은 자신이 기인하는 사물의 완전성을 잃어버리기는 쉬우나, 이 사물보다 더 큰 것 혹은 더 완전한 것을 가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이로부터 무엇이 귀결될 수 있을까? 내 안에 있는 그 표상적 실재성이 대단히 커서 형상적으로 혹은 우월적으로 내 안에 있을 수 없고, 따라서 나 자신이 그 관념의 원인이 될 수 없음이 확실하다면, 이 세상에는 나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관념의 원인이 되는 다른 사물도 현존하고 있음이 필연적으로 귀결되는 것이다... 내 안에 있는 관념 가운데는 나 자신을 나타내고 있는 관념이 있는데, 이때는 전혀 문제가 없으며, 또한 다른 관념들, 즉 신(神), 물질적이고 생명이 없는 것, 천사, 짐승, 마지막으로 나와 유사한 다른 인간을 표현하는 관념이 있다.'(p67) - 제일철학에 관한 성찰 中 -

 

3. 로크의 경험론


 이처럼 '본유 관념'에 기초한 데카르트의 사상이 대륙 합리론의 바탕이 되었다면, 이와는 입장을 달리하는 영국 경험론의 입장은 무엇일까. <인간지성론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에서  존 로크(John Locke, 1632 ~ 1704)는 이전 사상에서 인정되는 '본유 관념'을 비판하고, '관찰'과 '경험'을 강조하고 있다. <메논>에서 노예 소년을 증명으로 이끈 소크라테스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듯한 다음의 내용을 살펴보자.

 

'그렇다면 아이들이 생각하고 알고 동의할 수 있을 때 자연이 이들에게 심어준 개념들을 (만약 그런 개념들이 있다고 한다면) 모를 수 있다고 상정하는 것은 과연 합리적인가? 아이들이 외부사물들에서 얻은 인상들은 지각하면서도 자연이 몸소 수고를 기울여 마음속에 새겨놓은 글자들을 모른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는가? 아이들이 외부에서 얻은 개념들을 받아들이고 동의하면서도 자신들의 존재의 원리들 안에 짜넣어지고 지워질 수 없는 글자들로 심어져서 그들이 장차 획득하게 될 모든 지식과 그들이 행하게 될 미래의 모든 추론의 토대이자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상정되는 개념들을 모를 수 있을까?...따라서 설령 더욱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관념들과 이 관념들을 나타내는 이름들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성인에게 제시되어 늘 지체없이 동의되는 몇몇 일반적인 명제들이 있다고 해도, 이 명제들은 다른 것들은 알고 있는 어린아이들에게서는 발견되지 않으므로 지성을 갖춘 사람들의 보편적인 동의를 얻을 수 없으며 따라서 결코 본유적이라고 상정될 수 없다.'(p88)


 '내가 알고 있는 기존의 학설에 따르면 사람들은 본유 관념들, 즉 그들이 바로 맨 처음 존재하게 될 때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본래적인 글자들(original characters)을 갖고 있다.... 나는 내가 지성은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관념을 어디서 얻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관념들은 어떤 경로로 점차 마음속에 들어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줄 때, 내가 앞서 제1권에서 말했던 바(본유관념에 대한 논박)가 훨씬 더 쉽게 받아들여지리라고 본다. 나는 이를 위해 각자의 관찰과 경험에 호소할 것이다.'(p149)


 <인간지성론>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은 바로 다음에 이어진다. 


 '이제 마음이 이른바 백지(white paper)라고 가정해보자. 이 백지에는 어떤 글자도 적혀 있지 않으며 어떤 관념도 없다. 그럼 어떻게 하여 이 백지에 어떤 글자나 관념이 있게 되는 것인가?... 마음은 어디에서 이성과 지식의 모든 재료를 갖게 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나는 한 마디로 경험(experience)에서라고 대답한다. 우리의 모든 지식은 경험에 그 토대를 갖고 있다.'(p150)


 '백지'상태 의 인간은 '관찰'과 '경험'을 통해 여러 관념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로크는 <인간지성론>에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본유 관념'을 인정하지 않는 경험론에 대한 당대의 비판과 현대의 비판을 다음에서 살펴보자.


3. 빈 서판에 대한 당대의 비판 : 라이프니츠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von Leibniz, 1646 ~ 1716)는 그의 저서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에서 로크의 경험론을 비판하고 있다. 다소 복잡하게 기술되어 있지만, 간략하게 줄이면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신(神) 안에서 인간은 한계가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인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따라서 경험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할 수 있는가, 또는 우리가 자신의 고유한 관념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논쟁 문제로 말하자면, 우리가 신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통찰한다하더라도, 우리도 또한 고유한 관념을, 즉 말하자면 작은 모사물이 아니라, 우리가 신 안에서 통찰하게 되는 것에 상응해야 할 우리 정신의 특성들 또는 변형들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은 필연적일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우리 정신이 그의 현 상태 안에서 그들을 개별적으로 판명하게 고찰하는 것이 충분하지 않을 정도로 아주 다양하고 아주 작은 형태들과 운동들의 감각 외에는 다른 어떤 감각도 갖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 정신은, 자신의 감각이 전적으로 아주 작은 형태들과 아주 작은 운동들에 대한 감각들로 복합되어 있다는 사실을 감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p24) < 형이상학 논고 Discours de Metaphysique> - 인식, 진리 그리고 관념에 관한 성찰 - 中


4. 빈 서판에 대한 현대의 비판 : 스티븐 핑거


 그렇지만, 스콜라(Schola)철학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라이프니츠의 주장을 현대인들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이보다 설득적으로 경험주의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책은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 1954 ~ )의 <빈 서판 The Blank Slate>이라 생각된다. <빈 서판> 머리말은 다음과 같은 말로 로크 사상의 의의와 책의 저술 목적을 설명한다.


 '로크가 겨냥한 공격 대상은 인간이 수학적 이상, 영원한 진리, 신의 관념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주장하는 본유 관념 이론이었다... 로크는 정치의 현 상태에 대한 교조주의적 정당화에 반대했다. 자명한 진리로 강요되었던 교회의 권위와 신성 왕권이 대표적이었다... 로크의 빈 서판 개념은 또한 세습적인 왕권과 귀족 신분의 정당성의 토대를 침식시켰다... 지난 세기 동안 사회과학과 인문학의 많은 분야에서 빈 서판 학설은 합의된 토대로서 작용했다.'(p30)


'인간 본성에 대한 이 이론, 즉 인간 본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이 바로 이 책의 주제이다. 모든 종교에는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이 포함되어 있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론들이 각각의 종교 안에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처럼, 현대 지식 세계에서는 빈 서판이 세속 종교가 되었다... 그러나 많은 종교적 전통들이 결국에는 과학의 명백한 위협들을 참고 받아들였듯이,  우리의 가치관도 빈 서판의 종말을 이기고 꿋꿋이 살아남을 것이다.'(p28)


 스티븐 핑거는 <빈 서판>에서 경험주의의 한계를 말하고 있다. 저자는 '본유 관념'을 극복한 경험주의의 모순을 '과학(科學)'적으로 증명하면서, '경험주의'는 '전체주의'라는 또다른 폐해(弊害)를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빈 서판에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빈 서판으로 인해 인간 본성에는 공백이 생겼고, 전체주의적 체제가 그 공백을 열심히 채웠지만 그것은 전체주의의 대학살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것은 교육, 양육, 예술을 사회 개조를 위한 형식으로 악용하고 있다(p737)...좋고 나쁜 영향에 상관없이 빈 서판은 뇌 기능을 설명하는 경험적 가설이고 따라서 진위의 관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마음, 뇌, 유전자, 진화를 연구하는 현대 과학은 빈 서판이 그릇된 이론임을 갈수록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p738)


 결국, '본유 관념'은 종교(宗敎), 사회 체제(社會體制) 등 사회 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사상(思想)으로 작용했으며, 이에 대한 반동(反動)으로 등장한 경험주의 역시 지금은 또 다른 사상이 되어 우리 사회를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빈 서판>을 통해 알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학(科學)'을 통해 이러한 이념(理念 : 경험주의의 폐해)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현재는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사진] Monsanto에서 생산되는 GMO 제품( 출처 : Monsanto 홈페이지)


 생명공학을 활용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 :  Genetically Modified Organism)이 글로벌 대기업에 의해 생산되고 유통되는 요즘의 세태를 보면, 우리는 지금 '과학'이라는 또다른 이름의 '본유 관념'이 지배하는 세계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최근 많은 책들이 '과학'이라는 또다른 종교를 말하고 있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제는 '도구로서의 과학'이 아닌 '주체가 되버린 과학'을 많이 느끼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 상황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처럼 페이퍼를 정리하다보니 대중과학서적을 보다 재밌게 읽는 방법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빈 서판>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학서이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주제는 단순하지 않다. 사실, <빈 서판> 뿐 아니라 우리가 접하고 있는 많은 자연과학, 사회과학 서적 중 많은 주제가 오랜 논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예를 들면,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 등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철학적 과제를 안다는 것이 비록 쉽지 않지만, 이러한 논쟁의 역사와 내용을 안다면 보다 재미있는 독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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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과학의 역할 vs 철학의 역할
    from Value Investing 2017-08-01 22:54 
    겨울호랑이 님께서 여러 책들에서 인용해 주신 문장들 때문에 '본유 관념'과 '빈 서판' 이론뿐만 아니라 앙리 베르그송의 '철학'까지도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베르그송은 그의 주저인 『창조적 진화』에서 과학의 역할과 철학의 역할을 아주 흥미롭고도 명쾌하게 비교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대목들 가운데 이번에 겨울호랑이 님의 글 때문에 다시금 펼쳐 읽고 거듭 음미해 볼 만한 대목들을 '먼댓글 형식'으로 덧붙여 봅니다. 한가지 덧붙일 점은,『창조적 진화』
 
 
oren 2017-08-01 19: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과학‘이 아무리 ‘만능열쇠처럼‘ 여겨지더라도 결국 과학은 ‘세계‘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과학으로서의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게 됩니다. 앙리 베르그송도 ‘과학이 끝나는 지점‘에서 ‘철학이 시작된다‘고 말했고요. 어쨌든 ‘철학‘은 영원히 ‘과학을 보완하는 임무‘를 어깨 위에서 내려놓을 수 없을 듯합니다. 마치 아틀라스가 무거운 지구를 어깨 위에 계속 떠메고 있듯이요.
* * *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

원인을 실마리로 하여 합법칙적으로 나타나는 모든 근본적인 힘은 사실은 의지로부터 설명된다. 따라서 인식은 물질의 변용이라는 주장에는 모든 물질이 주관적인 인식의 변용, 즉 주관의 표상이라고 하는 주장이 언제나 정당성을 갖고 대립된다. 그렇지만 모든 자연과학의 목적과 이상은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완성된 유물론이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유물론을 명백히 불가능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또 하나의 다른 진리로 이것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그 진리란 우리가 앞으로 고찰해가면서 분명해질 것인데, 그것은 내가 충족 이유율에 근거한 체계적 인식으로 이해하고 있는 본래적인 의미의 과학이 모두 궁극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없고, 충분한 설명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러한 과학은 세계의 가장 심오한 본질에는 접촉하지 못하고, 표상을 넘어서지도 못하며, 오히려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표상과 다른 표상과의 관계를 가르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 쇼펜하우어,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겨울호랑이 2017-08-01 17:54   좋아요 0 | URL
베르그송이나 쇼펜하우어 모두 ‘과학의 한계‘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군요. 19세기에 선각자들이 이미 깨달았던 부분을 21세기에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사회의 발전‘이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oren님 감사합니다^^:

AgalmA 2017-08-03 14: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경험론과 합리론 비교 궁금했는데 겨울호랑이님이 이렇게 상세히 말씀해 주셔서 좋네요^^

인간은 태어날 때 언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촘스키 견해는 본유관념에 해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알다시피 경험과 학습이 쌓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즉 인간은 완전히 백지상태라 보기도 어렵고 관찰과 경험만으로 존재한다고도 보기 어렵습니다. 생물학에서는 인간의 신체는 거대한 화학작용이지요. 그 논리에서는 본성이 있기 어렵죠ㅎ. <신의 입자>에서 레더먼이 비유했다시피 우리는 축구공의 실체는 보지 못하고 축구 경기를 해괴하게 바라보는 외계인의 상태라고 해야겠죠. 상태들은 보는데 원인은 정확히 모르는. 그래서 본문에서 말하신 ‘공백‘ 논란처럼 각자의 인식과 이데올로기로 이많은 관념과 질서를 배태하고 향유하는 것이겠고요.

겨울호랑이 2017-08-03 14:4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레더먼이 말한 내용은 칸트 철학에 가까운 느낌입니다...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가 ‘결과‘만을 볼 수 있기에 각자의 기준에 따라 ‘원인‘을 범주화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열린 마음이 더욱 필요하다는 생각도 함께 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