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바흐>를 샀습니다. <음악의 기쁨>을 읽으며 여러 곡을 듣던 중 다른 작곡가들보다 바흐(Johann Sebastian Bach, 1685 ~ 1750)의 곡이 편하게 제게 다가오더군요. 그러던 중 바흐의 작품이 소개된 책이 마침 눈에 띄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요즘 미처 읽지 못한 책들이 대기번호를 받고 기다리는 중에 나가는 속도보다 들어오는 속도가 몇 배로 빠르니, 우리나라 가계 부채 증가(2017년 현재 가계부채 약 1,400조)하듯이 책들이 쌓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평소 그물망을 쳐 놓고 리스트(list)에 올라와 있지 않은 책들은 마음에 들더라도 일단 넘기고 있습니다. 그런 후 다음에도 그녀(?)가 중고서점에 있으면, '우린 운명이야'하며 사고 있지요. 이정도 만남은 아내도 이해해주지 않을까요?ㅋ 오늘은 <바흐>에 있는 곡(曲) 중에서 브란데부르크 협주곡1번을 올려봅니다.


브란데부르크 협주곡 제1번 F장조 BWV1046 Brandeburgische Konzert Nr.1E-Dur BWV1046


악기 편성 : [독주악기군] 오보에3, 파곳, 코르노다캇차(사냥용 호른2), 비올리노 파콜로(바이올린) [협주악기군] 바이올린 2부, 비올라, 첼로, 통주저음


제1악장 [알레그로] F장조, 2/2박자. 무엇보다도 <관혁악 모음곡>의 도입악장을 생각나게 하는 대규모의 악기 편성이 특징적이다. 리토르넬로 형식이지만, 솔로에 투티주제의 동기가 사용되고 있어서 투티와 솔로의 선율적 대비가 그다지 명확하지 않다. 당당한 악상과 고심하여 다듬은 듯한 치밀한 악곡 구성이 아주 매력적이다.


제2악장 [아다지오] D단조 3/4박자. 역시 동일 주제의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파시칼리아의 원칙에 따르고 있다. 애가풍의 선율이 독주 악기 사이에서 계속 연주되고 있는데, 그 선율이 파사칼리아 주제의 장식형이다.


제3악장 [알레그로] F장조, 6/8박자. 이 악장은 나중에 고쳐쓴 것 같다. 역시 리토르넬로 형식이며, 투티와 솔로의 대비가 한층 명확해져 있다. 6박자이기도 해서 음악은 처음부터 끝까지 경쾌하게 흐른다.


제4악장 [미뉴에트] F장조, 3/4박자. 지금까지의 세 개의 악장으로 끝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두 개의 트리오와 폴로네즈가 딸린 미뉴에트가 계속된다. 론도풍으로 네 번 연주되는 미뉴에트는 투티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어서, 특정한 악기로만 연주되는 솔로풍의 두 개의 트리오나 폴로네즈와는 두드러진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두 개의 오보에와 파곳에 의한 제1트리오, 현악 합주만으로 연주되는 폴로네즈, 두 개의 호른과 유니즌의 오보에, 이처럼 이 세가지도 서로 두드러지게 대조적이다. 

    

마음에 드는 바흐의 곡에 대해 좀더 깊이 알아들을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지는 아침입니다. 비록 지금은 조사만 이해하지만요.( 이는 ** 형식이며, 두 개의 ***와 ****가 딸린 *****가 계속된다.) 계속 듣다보면 수준이 나아지겠지요. 이웃분들 모두 즐거운 일요일 아침 되세요^^:


2. 헤겔의 미학(美學)

 

바흐에 대해 찾아보던 중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이 바흐를 비판했다는 내용의 동영상이 있어 추가로 옮겨봅니다.



그렇다면, 헤겔은 음악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 찾아보게 됩니다. <헤겔의음악미학>을 읽으면 좋겠지만, 제게는 없는 책이라 대신 <헤겔 미학3>의 내용을 옮겨봅니다.(같은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좀더 자세한 것에 접근하려면 다음과 같은 면들을 구분해야 한다. 첫째, 악곡에 적합한 가사의 특성에 눈을 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말의 특정한 내용은 음악적인 표현에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둘째로, 악곡에서 새로운 요소, 즉 특성을 띤 낭송조가 덧붙질 때 우리는 이것과 앞서 이미 선율 속에서 발견한 원리와의 관계를 고찰해야 한다. 셋째, 이런 식의 음악적 표현방식 속에서 가장 탁월한 위상을 차지하는 장르들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p407)'


'좋은 가사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것은 내용은 참되고 건실해야 하다는 점이다. 만약 내용이 지루하고 통속적이거나 공허하고 부조리하면 숙련되고 심오한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없다.(p407)... 내용은 그 특징에 맞게 선율적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가사는 진지한 심정, 희극적인 것, 비극적이고 위대한 열정, 종교적인 표상과 감정, 인간의 가슴 속에 들어 있는 위력과 운명을 내포하고 있어야 함은 물론 작곡가도 역시 거기에 심혈을 기울여 전심으로 그 내용을 철저히 느끼고 체험해야 한다.(p410)'


<헤겔 미학>에서는 직접적인 바흐에 대한 비판은 언급되어 있지 않네요. 다만 헤겔 자신이 생각하는 진정한 음악의 조건과 음악가들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음악은 직접 자신을 위해 울리면서 스스로 인지하는 가운데 자족하는 정신이요 영혼이다. 그러나 순수예술로서의 음악은 곧 정신적인 측면에서 열정을 마친 마치 디오니소스신처럼 토해 내면서 혼란스러운 난무 속으로 빨려들어 가거나 절망적인 분규에 빠지지 않게 하고, 기쁜 환호와 극단적인 고통 속에도 자유로이 주입함으로써 열락을 느끼기 위해 이의 열정적인 표현을 규제할 것을 요구한다. 이처럼 진정 이상적인 음악을 한 사람으로 팔레스트리나(1523 ~ 1594), 뒤란트(16894~1755), 로티(1667 ~1740), 페르골레시(1710 ~ 1736), 글룩(1714 ~ 1784), 하이든(1732 ~ 1809), 모차르트(1756~1791) 등을 들 수 있다.(p401)'


 '디오니소스'이야기가 나오면 마치 공식처럼 '디오니소스-아폴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가 따라 나오게 되겠지요. 또한, 니체의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 ~ 1883)비판'도 나올 것이며, 바그너 작품 중 '니벨룽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와 관련한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 ~ 1860)의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이야기도 굴비 엮듯이 나오겠지만, 다 언급했다가는 이번에는 중편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아 이만 줄입니다. 일요일이잖아요^^: 그럼 정말 행복한 일요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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雨香 2017-09-24 16: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을 들으면 언제나 기분이 좋아집니다. ^^

<작곡가별 명곡해설 라이브러리>는 소중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바흐편을 비롯해서 몇 권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쭉 읽기보다는 해당 곡을 찾아보는, 사전처럼 활용합니다.

중편소설 기대하겠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24 16:56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저도 좋은 책이라 생각이 드네요. 음악 애호가분들은 분명 소장 가치가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좀더 깊이있는 독서 후 중편소설에 도전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철학자 강신주(姜信珠)가 생각하는 노자(老子)사상과 장자(莊子)사상이 다름을 주장하고 있는 책이다. 지식인 마을 시리즈 중  하나인 <장자 & 노자 : 道에 딴지걸기> 내용을 보다 깊이있게 다루고 있다. 프롤로그에 책 내용이 잘 요약되어 있어 이를 옮겨본다.

 

 '통치자는 피통치자에게 노동력이든 재화든 수탈하고, 그걸 (재)분배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이 바로 국가의 비밀이라고 할 수 있다. 노자의 위대함, 아니 무서움은 이 메커니즘을 정확히 포착하여 그걸 싸늘한 눈으로 통치자의 정치에 응용하려는 데 있다. 바로 이 수탈과 재분배의 메커니즘을 노자는 "도(道)"라고 불렀던 것이다.(p13)... 나는 장자의 속내는 타자와의 소통에 있다고 생각했다... 장자가 우리에게 권고했던 치열한 자기 수양은 타자와 소통하려는 열망에 종속된다는 것, 내 첫 책이 밝히려고 했던 건 바로 이것이다. 운 좋게도 타자와 소통했다면, 그 흔적도 남을 수밖에 없을 터. 그것이 바로 장자의 머릿속에 있던 "도(道)"였다. 바로 여기에서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그러니까 "길은 걸어가야 이루어진다"는 장자의 사자후가 포효하게 된다.(p12)'


 저자는 2004년에 펴낸 <노자 :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을 통해 노자 사상에서 파시즘, 제국주의를 끌어내고 있다.(이 책은 <장자 : 타자와의 소통과 주제의 변형>과 <노자 : 국가의 발견과 제국의 형이상학>의 합본이다.) '무위(無爲)'에서 에떻게 '제국주의 帝國主義'가 나올 수 있는지 결론만으로는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지만, 이 책은 이에 대한 논리를 서술하는 책이다. 이하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 책에서 <노자>사상이 어떤 방식으로 제국주의로 나아가는지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고, 서양철학과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어 왔는지를 보려고 한다. 여기에 추가적으로 <도덕경>에 대한 다른 해석과 함께 개인 의견을 적었는데 미리 말하자면 내용이 많이 긴 편이라 지루할 수 있을 것 같다.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들은 여기까지 읽으셔도 읽으시는 것을 권하고 싶다.  


1. <도덕경 道德經> 42章


 가. 개별자를 통해 도(道)를 끌어냄 


'백서본 5장(왕필본 42장)에는 "도는 하나를 낳고, 하나는 둘을 낳고, 둘은 셋을 낳고, 셋은 만물을 낳는다"는 유명한 구절이 등장한다. 이 구절만큼 노자와 장자의 차이점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 아니 정확히 말해 노자와 장자는 우리의 통념과는 달리 대립적이기까지 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도 없을 것이다.(p51)'


 저자는 먼저 도덕경 42장을 통해 노자 사상과 장자 사상의 차이를 밝히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노자는 하나, 둘, 셋의 개별자들이 서로 모순되지만, 조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보편적인 질서인 도(道)를 도출한다. 이는 수학적으로 1+1=2, 2+1=3... 무한수(無限數)를 도출하는 방식과 유사하다. 연속된 수(數)의 확장을 통해 만물을 설명하는 일정한 법칙(자연법칙)을 끌어내는 방식으로 이해가 된다.(더하는 수의 동일성(同一性) 문제는 여기서는 논외로 하자.)


제42장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 寡, 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악, 유고, 과, 불곡, 이왕공이위칭. 


도는 일을 내고, 일은 이를 살리며, 이는 삼을 기르고, 삼은 말물을 이룬다. 

만물은 음을 진 채 양을 품고 있는데, 두 기가 서로 만나 조화를 이룬 것이다. 

사람들이 싫어하는 것은 특히 고(孤)와 과(寡) 그리고 불곡(不穀)이지만, 

오히려 왕은 그것들도 자신의 호칭을 삼는다.


'많은 학자들이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첫 번째 단락이 개체의 발생론을 피력하고 있다면, 두 번째 단락은 군주의 수양론을 이야기하고 있다. 첫 번째 단락이 두 번째 단락의 근거로 제안된 것이라고 이해하면, 전체 5장의 구조는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첫번째 단락에 따르면 도는 하나(一)를 낳고, 이 하나(一)는 둘(二)를 낳는다. 그리고 이 둘(二)은 셋(三)을 낳고 최종적으로 이 셋(三)이 만물을 낳는다... 난해해 보이는 하나, 둘, 셋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노자 철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유명(有名)"논리를 통해서만 이해할 수 있다... 반복하자면 노자는 이 세계를 도에 의해 설명하고자 했던 사변적 형이상학자가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아주 재빠르게 만물의 층위로 곧바로 미끄러져 나가버리는 것이다. 노자에 따르면 모든 개별자들은 상호모순적이고 대립적인 이중적 규정의 존재이며 또한 이런 이중적 규정을 조화롭게 할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진 존재이기도 하다.(p53)


'노자의 발생론은 역으로 읽어야 한다. 즉 만물은 상호모순적인 두 계기로 규정되지만 아울러 이런 모순적인 규정성을 조화시킬 수 있는 주체적 역량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부터 노자는 셋, 둘, 하나라는 추상적인 계기를 발견해낸다. 그리고 결국 만물들을 규정하는 모든 대립과 조화의 계기는 오직 내재적 원인(causa immanens)으로서의 "도(道)"에 의해 조율될 수 밖에 없다고 발견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개별자에 대한 통찰을 기초로 가장 추상적이고 보편적인 층위에서 "도"를 발견한 다음에 이것을 발생론적 도식으로 설명한 것이 바로 첫번 째 단락이라고 할 수 있다.(p54)'


나. 군주(君主), 국가(國家) 개념의 도출


이어서 저자는 군주(또는 국가)의 개념과 노자 사상을 결합시킨다. 사실, 이 지점이 노자 사상에 대한 해석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지점이다. 본문에서 '而王公以爲稱'이라고 하는 부분에 있어 저자는 '왕=군주'로 해석을 하고, 이를 통해 "짐이 곧 국가다(L'Etat, c'est moi)"라는 말과 유사하게 이로부터 '국가' 개념을 끌어낸다. 이제 논의는 '국가'로 옮겨간다. 그리고, 이상의 자연법칙과 사회법칙과의 연결고리는 다음 주장의 주요한 논거가 된다.

 

 '노자는 아주 재빠르게 "군주"의 논의를 도입한다. 노자는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로 바로 들어가고 싶었던 것이다. 결국 모든 개별자들의 내재적 원인으로서의 "도"에 대한 논의와 "개별자(萬物)'의 규정에 대한 논의는 군주에 대한 논의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안된 근거였을 뿐이다. 다시 말해 "도"와 "개별자" 사이의 관계는 "국가"와 "군주" 사이의 관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제안된 말이다.(p54)... 국가는 군주의 내재적 원인이고  따라서 군주의 역할과 위상에 대한 인식은 국가의 기능과 위상에 대한 인식으로 파생되는 것이지 그 역이 아니다. 이 점에서 노자에게 "도"와 "개별자" 사이의 인과관계는 "국가"와 "군주"사이의 인과관계의 "내재적 문법"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p55)'


2. <도덕경 道德經> 77章


제77장


天之道, 其猶張弓與, 高者抑之, 下者擧之,有餘者損之,

천지도, 기유장궁여, 고자억지, 하자거지,유여자손지,

 

不足者補之, 天之道損有餘而補不足,

부족자보지, 천지도손유여이보부족,

 

人之道則不然, 損不足以奉有餘, 孰能有餘以奉天下, 唯有道者,

인지도칙불연, 손부족이봉유여, 숙능유여이봉천하, 유유도자,

 

是以聖人爲而不恃, 功成而不處, 其不欲見賢.

시이성인위이불시, 공성이불처, 기불욕견현.


자연의 도는 마치 활을 당기는 것 같구나! 높으면 눌러주고 낮으면 들어준다. 

남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것은 보태준다. 자연의 도는 남은 것은 덜어서 부족한 것을 채우는데, 인간의 도는 그렇지 않다. 부족한 데서 덜어내어 여유 있는 쪽을 봉양한다.

누가 남는 것을 가지고 천하를 봉양할 수 있겠는가? 오직 도를 체득한 자(聖人)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 이런 이치로 성인은 무엇을 하고도 그것을 소유하지 않으며 공이 이루어져도 거기에 거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의 나은 점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기 때문이다.


 42장에서 '국가'의 개념을 끌어냈다면, 이 국가가 어떤 기능을 하는가는 77장에서 살펴본다. 77장에서 언급된 '성인(聖人)'은  저자에게는 '재분배자'로서의 권력이 된다. 이로써, 성인은 더이상 '무위자연 無爲自然'의 '도(道)'와 결별하고 하나의 구조(structure)가 되어버린다. 


'백서본 42장(=왕필본 77장)은 빛을 발휘하고 있다. 이 백서본 42장에서 노자는 국가의 기능에 대해 자신의 사유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자에 따르면 자연의 법칙은 높은 것을 누르고 낮은 것을 올리고 남는 것은 덜고 부족한 것은 채우는 데 있다. 그런데 노자는 이런 자연의 법칙에 비추어 인간 사회 법칙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오히려 가난한 사람의 것을 빼앗아서 부유한 사람에게 더해주는 것이 법칙인 것처럼 행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노자는 이상적인 통치자, 즉 성인(聖人)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다시 말해 노자의 이상적인 통치자(=聖人)는 기본적으로 "재분배(redistribution)"가 국가의 핵심 기능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p117)'


'노자 철학의 탁월한 점은 그가 국가를 통치자와 피통치자 사이에 일어나는 교환의 관계, 즉 수탈과 재분배의 논리에 입각해서 파악했다는 있다는데 있다. 다시 말해 그는 국가를 어떤 신비한 무엇으로 파악하기보다는 경제적인 기구(economical mechnism)로 파악했다는 것이다.(p125)'


저자는 여기서 한걸음 더 나가 노자와 가라타니 고진의 이론을 결부시킨다. 이제, 노자사상은 자본주의 경제사상으로 변화되었다. '자본주의 사상'으로 변신한 이상 '제국주의'로의 이행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가라타니 고진의 분석이 지닌 중요성은 그가 국가를 하나의 실체가 아니라 교환 관계로 통찰하고 있다는 점이다. 고진에 따르면 국가는 기본적으로 약탈을 통한 우월성 확보, 이어서 약탈의 연속성과 지속성을 위해서 수행되는 재분배의 과정을 통해 작동한다. 결국 가라타니 고진의 논의가 옳다면, 국가의 교환 논리는 자본의 논리와는 여러 모로 구별할 수 있지만, 자본의 논리와 구조적으로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p126)'


3. <도덕경 道德經> 80章 : 국가의 발전(by 겨울호랑이)


 책에는 소쉬르, 하이데거, 레비나스 등 많은 학자들이 등장하면서 파시즘과 제국주의로의 이행을 설명한다. 그래서, 책과는 다른 방법으로 발전단계를 설명해본다. 이하 체제의 변화는 <도덕경>, <국가>, <정치학>,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으로 백성들이 국가를 이루고, 제국을 이뤄서 붕괴되는 것을 요약하는 방식으로 구성해봤다. 논의의 서두는 도덕경 80장을 먼저 서두로 잡았다. <도덕경 80장>이 백성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있기도 하지만, 이는 노자 사상과 제국주의가 결합되는 것에 대한 개인적인 의문의 제기이기도 하다. 나라를 적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하라는 것(小國寡民)은 <도덕경>의 문장 그대로다. 지극히 반(反)제국주의 적인 내용을 본문으로 확인하면서도, <도덕경>을 현대 사상으로 해석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규모를 팽창시켜가는 제국주의 사상이 담겨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앞으로도 생각해볼 과제라 여겨진다.


<도덕경 제80장>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나라를 작게 하고 백성의 수를 적게 하라. 많은 도구가 있더라도 쓸 일이 없게 하고,

백성들로 하여금 죽음을 중히 생각하여 멀리 가지 않도록 한다.

배와 수레가 있더라도 탈 일이 없고 군대가 있더라도 펼칠 일이 없다.

백성들로 하여금 결승 문자를 회복하여 쓰게 한다. 그 음식을 맛있어 하고

그 옷을 곱다고 여기며 그 거처를 편안해 하고 그 풍속에 기꺼워한다.


 이와 같은 의문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주장처럼 사람들이 모이게 되면, 부족함이 생겨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점차 나라는 커지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더 많은 사람이 생겨남에 따라 부족함은 점점 더 커지게 되고 그 결과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전쟁을 통해 나라와 나라가 병합되고 제국이 등장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플라톤(Platon, BC 427 ~ 347) 이전 세대에서 '아테네 제국'과 이를 낳은 '페리클레스(Pericles, BC 495 ~ 429)'를 통해 역사 속에서 소국(도시국가)에서 제국으로의 발전양상을 확인하게 된다.


 '그런데 내가 생각하기로는 나라가 생기는 것은 우리 각자가 자족하지 못하고 여러 가지 것이 필요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맞아들이고, 또 다른 필요 때문에 또 다른 사람을 맞아들이는 식으로 하는데, 사람들에겐 많은 것이 필요하니까, 많은 사람이 동반자 및 협력자들로서 한 거주지에 모이게 되었고, 이 "생활공동체(synoikia)"에다 우리가 "나라(polis)"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네..."최소 한도의 나라(he anankaiotate polis)"는 넷 또는 다섯 사람으로 이루어지겠네.(2권 369b ~ 369d)'


 '다시금 이 나라를 한층 더 크게 만들어야만 되네. 앞의 그 건강한 나라는 더 이상 적합지 못한데, 이는 이미 그 규모에서 확장을, 수에서 충만을 보아야만 하겠기 때문일세... 그런데 이와 같은 방식으로 하다보면 영토 또한 그때에는 그 사람들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한 것이었지만, 이젠 충분하기는커녕 아마도 작아 빠지게 될 것세. 아니면 어떻다고 말할까?... 우리가 목축하고 경작하기에 넉넉한 땅을 가지려 할 경우에는, 우리로서는 이웃 나라 사람들의 땅을 일부분 떼어내야만 되겠고, 다시 그들은 그들대로, 만약에 그들 역시 필요 불가결한 것들의 한도를 벗어나, 재화의 끝없는 소유에 자신들을 내맡겨 버리게 될 때는, 역시 우리 땅을 떼어 가져야만 되지 않겠는가? 그 다음에는 우리가 전쟁을 하게 되겠지.(2권 373d ~ 373e)'



[지도]아테네 제국(출처 : http://kalnaf.egloos.com/m/3379624)


 페리클레스라는 걸출한 인물이 다스린 50여년의 시간동안 아테네는 황금시기를 맞이함과 동시에 멸망의 씨앗을 동시에 품게 되었다. 그에 대해 언급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 페리클레스 편을 살펴보자.


 '제 10권인 이 책에서 나는 페리클레스와, 한니발과 처절하게 싸운 파비우스 막시무스(Fabius Maximus)의 생애를 기술할 것이다. 이 두 사람의 탁월함은 서로 비슷하다. 특히 온유함과 올바름, 백성들과 동료 관리의 어리석음을 참는 능력에 힘입어 두 사람은 그들의 조국에 크게 이바지했다.(p186)... 그가 죽은 뒤 일어난 일련의 사건으로 아테나이인들은 곧 그의 가치를 알게 되어 그를 몹시 아쉬워했다... 남들의 시샘을 사 독재정치니 참주정치니 하고 비난받던 그의 권력이 국가를 지켜주는 보루였음이 밝혀진 셈이다. 왜냐하면 치유할 수 없는 화근으로 자라나지 못하도록 그가 늘 억제하고 눈에 띄지 않게 했던 온갖 부패와 해악이 이제는 국가를 덮쳤기 때문이다.(p241)'


 페리클레스 치세(治世) 동안 번영의 시기를 맞이했지만, 그의 치세는 '참주정치'라는 굴레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이러한 정체의 한계는 페리클레스 시대에 이미 대내적으로는 정적(政適)과 민중들의 견제, 대외적으로는 외국과의 대립으로 나타나게 되며 결국, 아테네 제국은 펠로폰네소스 전쟁(Peloponnesian War,BC 431 ~ 404)'을 통해 무너지는 결과를 맞게 된다.

 

'참주정체도 다른 정체와 마찬가지로 참주정체에 반대하는 더 강력한 국가가 있을 경우 외부적인 원인에 의해 무너질 수도 있다. 이념이 상반된 까닭에 그 국가는 참주정체를 무너뜨리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럴 힘만 있으면 원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기기 마련이다... 왕정과 귀족정체는 정체(政體)가 다르기 때문에 참주정체를 적대시한다. 그런 이유에서 라케다이몬인들은 수많은 참주정체를 해체했고, 쉬라쿠사이인들도 좋은 정체를 갖고 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했다.(1312a39)' 


4. 노자 사상 = 제국주의 사상(?)


 기본적으로 이 논의의 시작은 '왕=군주'라고 해석되는 것에서 시작된다. 앞서 책의 내용으로 볼때 왕을 군주로 해석하고 이로부터 국가가 도출된 것으로부터 '제국주의' 개념이 나왔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여기에서 출발점을 달리해서 <노자>를 살펴보자.


<도덕경 제3장>


爲無爲 위무위

 

則無不治 즉무불치 

 

'무위'를 실천하면 다스려지지 않는 것이 없다.


노자 사상을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서처럼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더라도 다른 관점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해석은 '무위=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출발한다. 시장의 질서에 맡기도록 하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내용은 '무위'사상과 의미면에서 잘 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각 개인이 최선을 다해 자기 자본을 본국 노동의 유지에 사용하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동을 이끈다면, 각 개인은 필연적으로 사회의 연간수입이 가능한 한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된다. 사실 그는, 일반적으로 말해서, 공공의 이익(public interest)을 증진시키려고 의도하지도 않고, 공공의 이익을 그가 얼마나 촉진하는지도 모른다. 외국 노동보다 본국 노동의 유지를 선호하는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을 위해서고, 노동생산물이 최대의 가치를 갖도록 그 노동을 이끈 것은 오로지 자기 자신의 이익(gain)을 위해서다. 이 경우 그는, 다른 많은 경우에서처럼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에 이끌려서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았던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p552)'


 추가적으로, 최근 신자유주의자들이 규제철폐를 외치며 '보이지 않는 손'을 강조하는데, 이는 <국부론>의 전제가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임을 외면하는 논리다. <도덕감정론>에서 애담 스미스 Adam Smith, 1723 ~ 1790)는 타인의 고통을 생생하게 느끼는 인간을 전제하고, 이러한 인간의 감정에 대해 탐구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들의 경제행동을 뒷받침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이 남용되는 것을 우리는 경계해야 한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nature)에는 분명히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이 행동원리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기 그 행운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행운을 얻은 타인의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민(憐憫 : pity)이나 동정심(同情心 :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드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이렇게 본다면 '도(道)'를 통해 체제와 권위를 부여하기 보다는, 선(善)하다(또는 동점심이 있다)는 인간의 본성(本性)믿고, 일체의 간섭을 배격하자는 주장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다시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로 돌아와서 '노자 사상'에서 '제국주의'를 끌어낸 관점은 충분히 의미있고 즐거운 지적 과정이었지만, 전체적인 흐름과는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렇다면, <도덕경> 42장의 내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자연질서에서 국가로 넘어가는 연결고리가 되는 이 부문에 대한 설명은 다석 류영모(多夕 柳永模, 1890 ~ 1981)의 <老子 : 빛으로 쓴 얼의 노래>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노자> 42장에 해당되는 한 구절의 설명을 보자.

 

'萬物負陰而抱陽 만물부음이포양. 거의 모든 생물들은 향일성(向一性)을 지니고 있다. 짐승은 암놈이 숫놈을 지고 숫놈이 암놈을 안는다. 이 세상은 거의 모든 것이 음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프리초프 카프라는 서양 문화는 양(陽)의 특성이 음의 특성을 월등히 능가하는 문화라는 결론을 내렸다. 주렴계(周濂溪)의 태극도설에는 양이 극에 이르면 음으로 전환되고 음이 극에 이르면 양으로 전환한다고 하였다. 스티븐 호킹이 말한 특이점(特異點)도 양이 음으로 변하고 음이 양으로 변하는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음양의 법칙이 인연(因緣)의 법칙이다. 토인비의 도전 응전의 법칙이나 헤겔의 정반합의 변증법도 같은 상대성의 법칙을 말한 것이다.(p222)' : 페이지수는 전판(前版)


 류영모의 <노자>에서도 많은 현대 사상가들이 등장하면서 종합적인 관점에서 <도덕경>을 조망하고 있기에,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 비해 종합적인 해석의 크기는 결코 작지 않다. 이 책에서 설명된 42장의 이어지는 내용에 대한 설명을 통해 해당 장의 구조를 살펴보자. 요약하면 편집오류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문장은 의미상으로는 연결이 안된다. 이것은 이곳만이 아니라 앞뒤가 맞지 않거나 장(章)의 나뉨이 잘못된 곳이 여러 곳 있다. <노자>는 몇번인가 개정증보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p223)'


 이처럼, 연결고리가 끊어진다고 한다면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의 논리는 연결고리가 끊어지는 타격을 받게 된다고 생각된다. 이제 마무리를 해보자.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에서 노자편은 이처럼 노자 사상을 새로운 관점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저자의 또다른 저작 <철학 VS 철학>에서 나오는 많은 철학자들이 거의 한 번이상은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 관점에서 노자 사상을 음미하는 맛이 있다고 생각된다. 다만,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이처럼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논리전개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당혹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라 생각된다는 견해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끝낸다.


PS. 쓰다 보니 리뷰 페이퍼가 아니라 단편소설을 써버렸네요. ㅜㅜ 귀한 시간내서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 감사드립니다.^^: 남은 시간 행복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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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3 16: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글은 알라딘에서 상 줘야 됩니다. 뭐하고 있는 거야 알라딘.

겨울호랑이 2017-09-23 16:32   좋아요 0 | URL
^^: syo님 끝까지 읽어주시고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syo 2017-09-23 17:39   좋아요 1 | URL
감사할 사람과 감사받을 사람이 바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3 17:44   좋아요 0 | URL
^^: 이웃분들이 읽어주셔야 저도 글을 올리지요 ㅋ 그래서 이웃분들께 감사하게 되네요^^:

북다이제스터 2017-09-23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느 철학자의 말씀인지 퍼뜩 기억나지 않지만, 세상은 ‘해석된 것의 해석’이란 말이 문뜩 떠오릅니다. ^^

겨울호랑이 2017-09-23 20:03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의견에 공감합니다.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과정에서 ‘보다 보편적인/ 타당한 지식의 DNA‘가 축적, 계승, 발전하는 것 같습니다.^^::

cyrus 2017-09-24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자를 읽으려고 했는데, 마침 참고할 수 있는 글이 나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9-24 10:24   좋아요 0 | URL
^^: cyrus 님께 참고가 되어 좋네요. 다만 는강신주의 저서의독창적 시각에 대한 글의 내용이 많아서 이점 역시 같이 고려하셔야할 것 같습니다.
 

1. aimer


사랑이란 비할 데 없는 경험이다. 사랑할 때 우리는 삶이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끼며 천하무적이라도 된 듯, 활기에 넘친다. 


사랑이란 상대가 일종의 절대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우리가 이익에 무관심한 것은 한편으론 다른 것에 열정적으로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실의 새로운 차원이 드러나기라도 한 것처럼 세상과 모든 상황을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는가 하면, 살아 있음을, 지나가는 모든 순간을, 생생하게 느낀다.


사랑하는 사람과 아주 강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심지어는 하나로 결합되어 있다는 느낌이 있다.


욕망과 성적 즐거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과의 사랑은 더 내밀한 관계를 만든다.


때로 사랑이란 서로를 가르치고 재교육하는 것이자 사랑 안에서 서로를 향상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사랑의 아픔은 사소한 고통이 아니라, 진짜 고통, 가장 격렬한 고통 중 하나이다.


사랑할 때 우리는 자신을 초월하는 힘에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 실존의 강력한 상징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중요성을 부여하기로 약속하는 것이며, 뒤집어 말해 사랑받는 것은 누군가에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든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사랑이란 돌보는 것이다. 상대를 돌보고 관계를 돌보며 또한 자신을 돌보는 것.


2. 사랑하다


 1994년의 일입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에게 물었습니다. 사랑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냐고. 개인적으로는 <AIMER : 사랑하다>에 나오는 수많은 구절보다 당시 여자 친구가 했던 한 마디의 말이 더 와닿았습니다.


 "좋아하는 것은 그 사람의 장점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고, 사랑하는 것은 그 사람의 단점까지도 받아들일 수 있는 거야."



책에서 이야기하는 'aimer' 와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하다'는 의미는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차이가 프랑스어인 aimer 와 한국어인 사랑하다의 뜻에서 오는 물화적인 차이일까요. 개인적인 경험의 차이일까요.아니면 둘 다 일까요? 저마다 생각하는 하늘의 별만큼 다양한 크기와 빛깔의 사랑이 있음에도 공통된 무엇인가를 발견한다는 것은 신기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사실 '사랑'이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것보다 '사랑하다' 그 자체가 중요하겠지요. '애인(연인)과 사랑할 수 있다'는 자체가 행복이라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예전에 만났던 사람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사람과의 관계는 거기까지로 두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 여겨지기에 미소만 짓고는 말지요. 첫사랑의 추억은 추억으로 묻어두어야 더 아름답겠지요. 제게 '사랑하다'라는 단어를 대할 때에도 같은 마음이 듭니다. 적어도 '애인(愛人)과 사랑하다'는 의미는 더이상 추가적으로 분석(分析)하고 정의(定意)하기 보다는 1994년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던 그 어느 순간으로 얼려 놓고 싶다는 그런 마음.



ps. 시간이 흘러 가사 내용처럼 '나를 걸어 너를 지킬께'가 아니라 '너를 걸어 나를 지킬께'의 자세로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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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18: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1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9-22 19: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 뭐죠. 오글거리면서도 간질간질하면서도 뜨끈뜨끈한 마무리ㅎㅎㅎㅎ

오그라드는 글이라면 syo도 한가닥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2 19:45   좋아요 0 | URL
^^: 제 감수성으로는 도저히 syo 님의 깊이를 따라가지 못하지요. 인정합니다. ㅋㅋ

syo 2017-09-22 19:50   좋아요 1 | URL
에.... 자랑을 시도한 게 아닌데, 이렇게 되어 버리니까 엄청 철없어 보이네요ㅎㅎㅎ 와, 들켰다.

겨울호랑이 2017-09-22 19:56   좋아요 1 | URL
^^: 객관적 사실이지요. 일종의 팩트폭행이기도 합니다만 ㅋ

cyrus 2017-09-22 2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1994년에 만났던 여자친구는 지금 겨울호랑이님 옆에 있는 분입니까?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09-22 20:21   좋아요 1 | URL
^^: 제 아내는 그때 초등학교에서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지요.

나와같다면 2017-09-23 00: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지욕기생(愛之欲基生)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

저에게 사랑은 그래요..

겨울호랑이 2017-09-23 16:36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제가 생각하는 ‘사랑‘도 나와같다면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틀‘ 안에 쏙 들어가네요.

2017-09-23 0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3 10: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오거서 2017-09-24 08: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친말고요, 대개 친구는 나와 비슷한 성향이지만 다른 면이 있는데 서로의 단점을 덮어주기에 관계가 오래 지속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 역시 사랑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겠군요.

겨울호랑이 2017-09-24 15:28   좋아요 1 | URL
^^: 네 사랑한다는 의미가 서로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마음을 쓴다고 한다는 면에서 맞을 것 같습니다. 다만, 같은 남자에게 표현하기에는 아직은 어색하네요.ㅋ

. 2017-09-27 17:35   좋아요 1 | URL
동성의 부모 또는 자녀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동성의 친구에게는 하지 못 한다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ㅎㅎ 아마 동성애에 대한 논란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동성끼리는 영화도 같이 못 볼 정도지요..ㅎㅎ
 

 얼마전 치과에서 스켈링을 받았습니다. 2015년부터인가요. 건강보험 가입자는 1년에 1회 스켈링을 받을 수 있게 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스켈링과 치아검진을 받는 것 같습니다. 가입자는 서비스가 늘어서, 치과에서는 건강검진을 통해 치과시장(?)을 확대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과로 향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착색치료 2 곳, 충치치료 2곳 진단을 받았습니다. 특히, 충치 치료선고를 받은 2곳은 이미 치료를 받고 2013년에 금니를 한 곳이라 의외라 생각했습니다만, 예상치 못한 높은 비용에 그저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제, 저는 치료 여부를 선택해야겠지요. 그래서, 다음과 같이 의사 결정 모형을 세웠습니다. 이름하여 '겨울호랑이 2017년도 치아 건강 검진에 따른 진료 프로젝트의 가치 평가 모형' 이며, 모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이 혹시 이렇게 평가하는 것이 타당한가라는 의문을 가지신 분들이 계실 것 같아 권위있는 글을 옮겨 봅니다. 여기에는 시장효율성(market efficiency)과 위험 중립적(risk neutral)가격 결정 이론이 뒷받침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수학은 주로 시장 효율성(market efficiency)과 무차익 거래(no arbitrage)라는 경제학의 두 가지 원칙의 응용을 통해 금융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시장 효율성은 금융 시장이 모든 자산에 정확한 가격을 매긴다는 아이디어다. 두 자산을 구분하기 위해 우리가 적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들의 위험 특성이 다르다는 것이다.(p398)... 블랙-숄즈(BS모형) 결과의 신기한 측면은 앞서 언급했듯이, 파생상품의 가격이 주식 가격의 표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위험 중립적 가격 결정이라 불리는 파생상품 가격 결정 이론에 관한 또 다른 방법을 이끌어낸다.(p402)'


'위험중립측도(risk-neutral measure)는 금융공학에서 폭넓게 쓰이는 마팅게일 측도의 하나로, 파생상품의 가격결정에 필요한 핵심적인 요소 중의 하나이다. 자산가격결정의 기본원리에 따르면 완전시장에서 거래되는 파생상품의 가격은 위험중립측도 하에서 계산한 기대가치의 현재가치이며, 따라서 이를 구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위험중립측도가 존재하여야 한다.

이성적인 투자자들은 위험을 감수하는 데 대한 대가를 요구하므로 자산의 가격은 필연적으로 해당 자산이 가지는 위험의 크기를 반영하게 된다. 따라서 미래에 큰 가치를 지닐 것으로 기대되는 자산이라도 위험, 즉 가격변동성이 크거나 투자자들이 위험에 민감하다면 현재가치가 상대적으로 낮게 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특정 자산의 적정가격을 알기 위해서는 우선 자산이 가진 위험의 크기와 투자자들의 위험선호도를 파악하여 이에 맞는 할인율을 적용하여야 한다.'[출처 : 위키백과]


 이 모형은 기본적으로 옵션(option) 가격 결정 모형에 기본한 모델입니다. 

 치료 받을 때 소요 비용을 산출하고 이와 현재 지출 예정비용을 비교해서 어느쪽이 더 적은 비용이 소모되는가를 판단하게 되며, 위험의 크기는 확률로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재 저는 치통(齒痛)은 없는 상태입니다. 그렇지만, 이가 더 썩어서 통증이 생기면 치과를 가겠지요. 그 경우에는 치과를 가서 치료를 받아야하기 때문에 각각의 경우, 치과 치료 비용이 발생하는 경우와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로 나누어 생각해 봅니다. 

 치료를 받을 확률을 0.6으로 가정했을 때 2017년 지출 예상 비용은 (180*0.6)+(0*0.4)=108로 나타나게 됩니다. 2017년 108(만원)이 다음 검진 예정일인 2018년에 지출된다면 이를 현재의 가치로 재평가 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를 현재 금리를 통해(대출금리 수준인 2.5%) 105.4로 환산할 수 있습니다. 이는 현재 치료 받을 때 지출되는 금액인 180만원보다는 현저하게 적습니다. 위의 모형에서 매년 비용이 증가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시간이 지나서 '충치가 옆으로 번지는 경우'를 가정한 것입니다. 제가 설정한 모델이 맞는다고 한다면, 적절한 치료 시기는 2020년과 2021년 어느 시점으로 생각되네요. (이 기간에 180보다 큰 비용이 발생합니다.) 이 경우 치료를 미루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한 행동은 '투자론'과 연관해서 생각해 봅니다.

'특전부여 주식들의 선정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는 기본원리를 명시한 이상 우리는 다음으로 이 주식들의 계속적인 보유나 매도와 관련하여 과연 어떤 규칙들을 수립할 수 있겠는지를 묻고자 한다... 채권 소유자는 오히려 보통주가 자신이 취하는 이익을 정당화시킬 만큼 충분히 올랐는지에 대한 자신의 관점에 의지하여 보유나 매도 여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p744)... 아무리 좋은 전환사채나 우선주라 하더라도 이와 같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경각심을 갖지 못한 자들은 값비싼 대가를 치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p745)'

<증권분석>에서는 채권보유와 주식 보유의 경우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지만, 이를 치과 치료를 받았느냐 아니면 버티느냐의 경우를 대입해서 해석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위에서와 같은 평가 결과에 의해 저는 지금 치료를 받지 않는 것이 좋겠지요. 다만, 잠시라도 통증이 생길 경우에는 치료를 받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아내에게 하면서 치과 치료를 다음에 하겠다는 이야기를 논리적으로 설명했습니다만, 아내의 반응은...

[사진출처] 영화 실미도 中


 위와 같은 눈빛('사실은 겁나서 치과 안가려는 거지?'라는 의미의 눈빛)으로 쳐다보기에 서둘러 자리를 연의 옆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연의에게 치과와 관련된 책을 읽어주었네요. 연의는 이를 안 닦으면 '아빠랑 손잡고 치과가야 한다'는 말에 참 열심히 이를 닦더군요. 마치 '난 커서 아빠처럼 안 될거야!'라는 것처럼요... 책이 좋아서인지 아빠말이 무서워서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 아빠의 실패비용으로 딸아이가 건강한 치아를 갖게 된다면 가족 전체로는 나쁘지 않은 투자(?)라는 생각도 해보게 됩니다. 청명한 가을날입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가을 오후 되세요.


PS. 위 모형은 단순한 가정 모형입니다. 

충치 발생확률, 추가비용등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엇보다도 위의 모형이 일반화되기 어려운 것은 '치료비용'과 '이의 가치'를 동일하게 볼 수 있는가 하는 문제겠지요. 특히, 앞으로 이를 사용할 기간이 긴 아이의 경우에 '이'의 내용연수 외에도 미(美)적인 부분도 고려해야겠지요. 그래서, 제가 붙인 모형의 이름과는 달리 사실 객관적인 모형이라 볼 수 없을 것입니다...그럼에도, 위의 모형은 자산가치 평가 모형의 틀을 갖췄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자뻑'같은 자평을 해봅니다.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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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22 1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2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09-22 13: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내의 눈빛들은 어느 가정이나
비슷하군요 흐흐~
치과치료와 모형, 그리고 동화를
버무려 어떻게 글을 쓰셨는지
늘 부러울 뿐입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2 13:15   좋아요 2 | URL
^^: 북프리쿠키님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계획하고 글을 썼다면 좋겠지만, 하다보니 이렇게 되네요.ㅋ 좋은 글이었다면 운이 좋은 것 같습니다.

오거서 2017-09-24 09:0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부인도 현실주의자이면서 가족 박애주의자인 것 같아요. 아무리 그럴 듯한 모형과 논리로 설명해도 통하지 않을 겁니다. 제 아내도 그러한데 돈이 들더라도 당장 가족이 아프지 않도록 결정을 내리더군요. 겨울호랑이 님, 하루 빨리 치과 치료를 받으시는 편이 맘 편할 겁니다. 모형 같은 것으로 골머리를 썩힐 일도 없어지고요.
그나저나 치과 치료 비용을 논리로 접근한 방법은 참신하여 또 감탄하였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4 15:29   좋아요 1 | URL
^^: 주위분들의 조언을 바탕으로 견적을 여러군데서 받아 검진받는 것이 현명할 것 같습니다. 아직 살 날도 많은데 말이지요.ㅋ

북다이제스터 2017-10-05 19: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No arbitrage 이론이 맞다면 우린 주식투자, 복권 구입을 절대 하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0-05 19:28   좋아요 1 | URL
^^: 무수히 많은 거래가 이루어진다면, 차익거래이익을 실현하기는 어렵겠지만, 개인의 단타거래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다만, 저는 복권과는 연이 닿질 않네요. 주식은 좋아합니다만 ㅋ

북다이제스터 2017-10-05 19:33   좋아요 1 | URL
무수히 많은 거래에 가능성을 열어 두셨네요. 어려운 문제 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ㅠㅠ
복권과 주식이 정규분포를 따른다면 저도 횟수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은데, 그 둘다 멱함수인 거 같아서 고민하고 있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7-10-05 19:40   좋아요 1 | URL
^^: 주식투자자, 특히 복권구매자들은 자신이 6시그마의 범위에 드는 거래를 하나만 터트려도 인생 역전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은행수익률보다 높은 수익률이면 만족합니다만.ㅋ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복권과 주식은 멱함수를 따르고, 주식투자자들의 함수는 롱테일법칙을 따른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10-05 19:57   좋아요 1 | URL
네 그렇습니다, arbirage 가 절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되겠지만, 주식과 복권 등으로 그걸 조장하는 사회와 국가가 왠지 못 미덥습니다. ㅠㅠ
더구나 arbitrage가 복권과 주식 이외도 만연한데 뻔뻔하게 no arbitrage 를 내세우는 경제학 이론의 눈감고아웅 식의 이론들이 한심합니다. 눈꼴 사납습니다. ㅠㅠ

겨울호랑이 2017-10-05 19:53   좋아요 1 | URL
^^: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사전가정이 너무 많은 것이 사회과학 이론의 한계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론을 통해서 ‘모형‘을 만들고, 이 모형에 맞춰 현실을 재단하는 것이 정치, 학계의 권력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내용없는 사유는 공허하고 개념 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다. 그것들이 결합해야만 인식이 일어날 수 있다.' - 임마누엘 칸트 -


 '칸트를 가리켜 합리론과 경험론을 비판하고 종합한 철학자라 일컫는 것은, 그가 인식의 형식(또는 능력)은 본래부터 갖고 있지만 인식의 내용(또는 재료)은 경험으로 얻을 수 밖에 없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인간은 경험을 재료(내용)으로 삼되, 경험과는 상관없이 타고난 인식 능력(형식)을 통해 보편적 진리를 알 수 있다.(p171)'


 이번에 백종현 교수의 칸트의 3비판서 특강을 듣게 되었습니다. <순수이성 비판>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의 3대 비판서를 중심으로 칸트의 핵심주제에 대한 강의를 우리나라 칸트 철학의 대가이신 백종현 교수께서 직접 강의를 하시기에 청강하게 되었습니다. 벌써 <순수이성 비판> , <실천이성 비판>은 특강은 마무리 되었고, <판단력 비판>만 남은 시점입니다. 종강을 향해 가는 지금 간단하게라도 이번 페이퍼를 통해 정리를 해보려 합니다. 칸트 철학을 처음 접했기에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은 페이퍼이지만, 개인적인 발제라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의 <순수이성 비판>에서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그리고, 우리는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을까를 내용 정리를 통해 생각해봤습니다.


 '칸트는 과학적 방법의 본질과 중요성을 간파하고 있다. 그는 이 방법이 물리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를 "과학이라는 탄탄대로에 올려놓았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의 탐구는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왜 우리의 세계 경험에 과학적 방법이 통할까?"(p168)'


가. 형이상학에 대한 비판

 

칸트는 먼저 형이상학(形而上學)에 대한 접근을 시작한다. 과거에 학문의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하던 형이상학이 논쟁의 장(場)이 된 것은 과학적 방법이 구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칸트는 비판한다.


'칸트는 기존 형이상학에 비판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영혼, 자유, 신의 존재에 관하여 다루는 형이상학이 실재에 대한 지식을 확정시켜줄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칸트는 형이상학이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은 형이상학에는 과학처럼 확실한 방법이 구비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p123)'


나. 칸트의 초월철학


  '칸트는 지식을 둘로 나누었다. 하나는 세계에 대한 직접적 감성에서 얻어지는 '직관'이고, 다른 하나는 오성에서 간접적으로 비롯하는 '개념'이다. 이런 지식(감성, 오성)의 일부는 경험적 증거에서 비롯하는 반면, 일부는 선험적으로 알려져 있다. 칸트에게 개념이란 일반적 '책'의 개념처럼 사물들을 어떤 사물 유형의 예로서 간접적으로 인식한다. 개념이 없으면 우리는 직관의 대상이 책이라는 점을 알지 못할 것이고, 직관이 없으면 우리는 여기 책이 존재한다는 점을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P168)' : <철학의 책>


  칸트는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것과 인식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고, 우리는 '직관'과 '오성'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것만을 인식할 수 있다고 본다. 인간은 수학이나 자연과학 등과는 달리 영혼, 자유, 신과 같은 존재들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이성의 한계) 인간은 '감각적 직관'만 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은 한계가 있게 된다. 칸트에게 문제는 인식의 대상이 아니라, 인식의 주체에게 있다. 


 '칸트는 사유 능력 주체인 이성 자신의 능력을 비판하지 않고 이성(理性)을 월권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독단론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이와 같은 독단론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성이 모든 경험에서 독립하여 이르고자 하는 모든 인식과 관련하여 행하는 이성의 능력에 대한 비판적 탐구"를 엄정하게 수행해야 한다... 칸트가 이성을 비판하는 것은 정신적 실체로서의 이성의 성격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상을 인식하는 주체의 순수한 조건들에 관해서 탐구하기 위한 것이며, 이와 같은 탐구를 수행하는 것이 칸트에게는 초월철학이 된다.(p124)'


 '칸트는 수학이나 자연과학의 경우와 관련하여 학문 일반의 자격 조건을 사실적 차원에서가 아니라 권리적 차원에서 마련하고자 하며, 바로 이 작업을 "초월적 분석론"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와 관련하여 그는 초재적 존재인 영혼, 자유, 신과 같은 것들에 관한 이론적 학문을 구축하는 것은 부당함을 밝히고자 하며, 바로 이 작업을 "초월적 변증론"에서 다루고 있다... 칸트는 이와 같은 작업을 통해 사변이성의 한계를 지적하고 나아가 실천이성의 정당한 길을 제대로 열어주고자 한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비판철학을 통하여 자연형이상학에서 도덕형이상학으로 나아가는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p127)'


  '칸트는 인식의 소재가 "경험"에서 나와야 하고, "인식이 경험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지만 경험과 함께 시작되어야 하기"때문에 사유 작용만으로는 인식이 성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우리의 모든 인식의 객관성은 경험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칸트가 보기에 최소한 우리 인간에게는 생각과 존재를 곧 바로 일치시킬 수 있는 지적 직관이 가능하지 않고 단지 감각적 직관만이 가능하다.(p128)'


다. 형이상학과 선험적 형식


 영혼, 자유, 신과 같은 존재들에 대해 인간은 알 수 없기 때문에 인식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반면, 수학이나 자연과학은 인식할 수 있다. 우리는  '선험적 종합판단'을 통해 우리는 이들로부터 보편성과 필연성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칸트는 탐구과정에서 특수 형이상학의 영역이 이론적 인식의 학문이 되는 것을 배격했다.  즉  그는 특수형이상학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영혼, 자유, 신이라고 하는 대상에 관한 인식 가능성을 이론적으로 구축하려는 주장은 모두 허구를 유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칸트는 형이상학을 "소질로서의 형이상학"과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으로 구별하기도 한다. 전자의 경우는 누구나 초월적 존재인 신이나 영혼 그리고 내세 같은 것에 대한 지식을 확립하려고 하는 것으로, 이것은 인간이성에게 자연스로운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되고자 할 때는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p126)'


 '칸트는 인식의 문제에서 방법론적으로 일대 발상의 전환을 시도한다. 그는 대상 중심의 인식을 주체 중심의 인식으로 바꾸어놓음으로써 "학문으로서의 형이상학"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한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대상에서 아무리 끌어 모아도 학문이 갖추어야 할 보편성과 필연성은 나올 수 없다... 수학의 보편성과 필연성은 대상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식 주체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칸트는 당대의 제반 과학이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를 해명하고, 그러한 작업에서 인식 주체 안에 이런 보편성과 필연성을 가능하게 해주는 선험적 형식이 있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정립하고자 했다.(p129)'


라. 감각적 직관과 두 개의 세계 : 세계는 두 가지가 존재한다, 하나는 우리의 육체이고, 하나는 외부의 세계다


 우리는 선험적 종합판단을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상'에 대해서만 가능하다. 인간은 주어진 현상을 단지 '사유', '감각적'으로 받아 들이기 때문에 인간의 인식에는 한계가 있다. 이를 인정하지 않고 '사유된 세계'를 '주어진 세계'로 동일시 했을 때 허구가 발생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극복하는 철학이 칸트의 초월철학의 내용이 된다.


 '칸트에 따르면 대상이 주관의 선험적 형식에 의하여 구성된다는 전제하에서만 선험적이고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 이런 사고 혁명이 전제된 경우에는 대상에 관하여 적어도 우리가 우리의 선험적 형식에 의거하여 구성한 부분만은 선험적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동시에 그 인식은 대상에 관한 인식인 만큼 단순히 개념을 분석하는 형식 차원에 머물러 있지 않기 때문이다.(p131)'


 '여기에서 한 가지 조심해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갖고 있는 이 선험적 형식이 마음대로 대상 자체를 전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즉 내가 나의 선험적 형식으로 규정한 대상이 곧 대상 자체라고 주장할 권리는 없다는 것이다. 대상을 선험적으로 규정할 권리를 갖고는 있지만 그것은 다만 주어진 현상 세계에만 국한된다.(p132)... 칸트는 주어진 gegeben 세계와 부관된 aufgegebene 세계를 분명히 구별한다. 전자는 우리에게 나타나 있는 현상의 세계이고 후자는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이념의 세계이다...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세계는 주어진 현상 세계뿐이며 주어진 세계 자체, 즉 물자체가 아니다.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유될 수 있을 뿐이다. 사유된 세계를 주어진 세계를 주어진 세계와 동일시할 때 허구가 생겨나게 된다. 칸트는 이 허구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새로운 초월철학을 정립하고자 했던 것이다.(p133)'


 

이번 <순수이성 비판 서문>을 정리했기 때문에 아직 구체적으로 <순수이성 비판>의 깊이 있는 내용(지식의 판단 형식, 초월적 통각, 12개 범주 등) 구체적인 내용까지 깊이 있게 정리하지 못한 한계가 있다. 이는 특강 후 내게 남겨진 과제라 생각된다. 다만, 특강의 주제였던 내용 '<순수이성 비판> :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것을 이번 페이퍼의 목적으로 했을 때, 그 답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내게 주어진 세계에 대해 선험적 지식과 경험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는 것만 알 수 있다. 내가 인식하는 지식은 내가 감각을 통해 알기 때문에 불완전한 것이며, 내가 감각을 통해 안 사실은 실제 세계와는 다를 수 있다.



2. 용어 정리


가. 선험적 종합판단 先驗的綜合判斷 [synthetisches Urteil a priori]


 칸트는 <순수이성비판>에서 판단을 분석판단과 종합판단으로 구별한다. 분석판단은 주어 개념에 포함되어 있는 개념을 술어로서 추출해낸 판단으로서 선험적으로 참이지만 지식을 확장시키지는 않는다. 종합판단은 주어 개념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개념을 술어로서 부가시킨 것으로서 지식을 확장시키지만 오로지 후험적으로만 참이다. 이 두 가지 판단에 더하여 칸트는 지식을 확장시키면서도 선험적으로 참일 수 있는 판단을 문제 삼고 있다. 이것이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나. 초월론적 超越論的 [transzendental]


<순수이성비판>에서 가장 중심적인 술어. '선험적'인 인식의 가능성을 묻는다고 하는 이 저작의 근본 짜임새를 나타내는 말로서 그의 주요 부문의 각각의 표제가 이 형용사를 달고 있다. <순수 이성의 비판>은 형이상학의 원천인 순수 이성 그 자체에 관계되지만, 그 자신이 순수 이성의 일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이 비판은 순수 이성의 자기인식이다. 그리고 여기서 성립하는 순수 이성의 자기관계야말로 '초월론적'이라는 개념의 핵심을 이룬다.


다. 통각 統覺 [Apperzeption]


 통각이라고 번역되는 독일어 Apperzeption은 라틴어 ad+perception(=An/Zu + Wahrnehmung)에 대응하는 말이다. 따라서 통각은 '지각에 의거하여, 지각에 대해서'라는 식으로 지각과의 관계없이는 통각의 개념 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칸트에서의 통각은 경험적 통각과 순수한 근원적 통각으로 나뉘어진다. 전자는 경험적이고 심리적인 상대적 자기의식이며, 후자는 초월론적 통각으로서 모든 인식 내용으로서의 지각을 통일하면서 자기 자신을 통일하는 양면성을 지닌다. 칸트에서의 통각은 '나는 생각한다.(Ich denke)'라는 사유하는 자아의 활동 없이는 불가능하다.


ps. <순수이성비판> 특강 때 필기한 내용을 첨부해 봅니다. 필체가 별로 좋지 않아 알아보시기 어렵겠지만, 관심있는 분들께 작은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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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7-09-20 22: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야말로 역자 직강이군요. 저 파란책들은 읽어내지도 못할거면서 어쩐지 너무 탐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0 22:20   좋아요 0 | URL
^^: 네.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칸트전집 15주년 기념으로 4권 전집을 알라딘에서 예약판매중이더군요. 만약 syo 님께서 구입하신다면 특별판으로 구매하시는 편이 여러 면에서 좋을 것 같습니다^^:

오거서 2017-09-21 07:50   좋아요 1 | URL
네~ 저한테도 그림의 떡이군요. 먹고 싶기는 하군요. 늘 식탐이 문제지요.

겨울호랑이 2017-09-21 08:08   좋아요 0 | URL
저도 구입은 해놓고 계속 미루게 되더군요. 특강이 없었다면 서문 읽는 것도 뒤로 밀렸을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은 갖춰두면 언젠가는 읽지 않을까요?^^

2017-09-20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1 06: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7-09-21 09: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칸트의 비판 시리즈 책이 제 서가에도 있는데 저는 newbie 시절에 해설서 부터 보는 습벽을 들여 놓아서
철학책은 원전보다 주석이나 해설만 봅니다. 문학도 평론을 더 많이 읽는,,,헛똑똑이들의 전형이죠. ㅋ

열심히 공부하시는군요. 저는 음주가무로 밤을 새는데...ㅜ

겨울호랑이 2017-09-21 10:19   좋아요 0 | URL
^^: 알케님 감사합니다. 철학책에서 주석과 해설을 보실 수 있다는 것은 기본실력이 있어야 가능한 부분이라 생각되네요. 저는 해설만 보면 잘 모르는 수준이 되어 놓아서요... 예전에 많이 놀다보니 기본실력이 부족함을 시간이 지난 다음에 느끼게 되는 요즘입니다. 열심히는 아니고 그저 재밌게 하고 있습니다.^^:

2017-09-21 12: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1 12: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7-09-21 13: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칸트는 절대로 혼자 공부하기 힘들고, 혼자 공부하면 낭패 볼 수 있는, 아주 위험한 철학자일 겁니다. 하이데거도 그렇고요.. ^^

겨울호랑이 2017-09-21 13:42   좋아요 0 | URL
cyrus님 말씀에 동의합니다. <순수이성비판> 서문만 읽어도 이렇게 어려우니, 본문을 읽기는 더더욱 그렇겠네요. 하이데거는 가늠조차도 못하겠네요.ㅋ

나와같다면 2017-09-21 13: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체계적이고 흐름에 따른 노트 필기가 겨울호랑이님의 성품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1 13:44   좋아요 0 | URL
^^: 백종현 교수님의 체계적인 강의였지요. 겨울호랑이의 받아쓰기는 그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구요ㅋ.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Dora 2017-09-21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먼지가 되어.... 칸트 3권의 파랑책 ㅜㅜ 필체가 아주 근사하십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1 18:30   좋아요 0 | URL
칸트 사상은 어려워 쉽게 손이 가지 않네요. 저도 특강을 계기로 겨우 시작해봅니다^^: Dora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AgalmA 2017-09-22 0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칸트의 ‘인식주체‘는 불확정성 원리에서 입자의 정확한 위치와 운동량을 측정할 수 없는 ‘관찰자‘와 유사한 상황같습니다?
그래서 ˝소질로서의 형이상학˝과 ˝학문으로의 형이상학˝을 나눈 게 참 과학적 합리성으로도 보이네요. 그럼에도 칸트의 ˝선험적 형식˝은 제겐 여전히 동의되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개념 느낌이 물씬 난단 말이죠...
이번에 칸트선집 넘 예쁘게 나와서 예전꺼 다 팔고 다시 사고 싶더라고요ㅎㅎ; 있는 거라도 제대로 읽어! 제게 면박줬습니다;;

요즘 겨울호랑이님 글이 뜸하다 했더니 칸트 공부하시느라 그러셨구낭!

겨울호랑이 2017-09-22 07:14   좋아요 1 | URL
^^: 저도 AglamA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칸트는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기존 형이상학을 비판하고 계몽철학을 주장했지만, 아직은 기독교의 영향에서 철학이 온전하게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런 구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헤겔 이후 변증법이 보다 구체화되면서 ‘신->사상(이데올로기)‘로 대체되는 맑스까지 기다려야 하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됩니다. (맑스에게 신이 ‘공산주의‘라고 한다면 이도 온전히 새로운 사상은 못된다는 생각도 거칠게 해봅니다...) 그래서, 서구 문명은 기존 형이상학을 대체하지 못하고 결국은 이를 해체시키는 ‘철학적 철거 작업‘ 중에 있지 않나 생각도 조금 해봤습니다... 막연한 추론입니다만.^^: 칸트 특강은 들었는데, 잘 몰라서 공부라고 하기에는 성과가 많이 없네요.ㅜㅜ 참, 이번 칸트 선집에는 <윤리형이상학 정초>, <형이상학 서설>등이 빠져 있어서요. 이 책들을 가지고 계신다면 너무 아쉬워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AgalmA 2017-09-22 07:20   좋아요 1 | URL
칸트 이후에 대한 겨울호랑이님 해석과 저도 비슷합니다.
서양철학은 신-형이상학에서 벗어나기 정말 어렵죠. 과학 때문에 억지로 왕관 뺏기고 있는 형색인데, 신을 믿는 과학자도 많잖아요ㅎㅎ 창조과학 믿는 장관후보자처럼 ˝소질로서의 과학˝과 ˝신념으로서의 종교˝ 그렇게 말하긴 쉽겠으나 인식틀이라는 게 종합인데 컴퓨터도 아니고 그게 쉽나요. 지금의 불협과 한계도 그게 잘 안 돼서 만들어진 세계인데.

예, 다 있는 선집이 아니라 안 사도 돼 위안삼았죠ㅎㅎ

고은아 2017-09-27 1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필요하던 내용이었는데 깔끔한 정리에 감탄하고 갑니다ㅎㅎ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7 13:46   좋아요 0 | URL
^^: 고은아님께 작은 도움이 되어 기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