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는 시오노 나나미(?野七生, 1937 ~ )가 저술한 로마제국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이다. <로마인 이야기>는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작품이라고는 하지만, 작가의 주관적인 해석이 강하기 때문에 객관적인 역사서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고 여겨지는 작품이다. 1997년 처음 <로마인 이야기>를 접한 후 15권이 나올 때까지 매년 읽은 후 별도로 정리하지 않았던 이 책을 최근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의 <몸젠의 로마사>와 에드워드 기번(Edward Gibbon, 1737 ~ 1794)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읽으며,  로마사를 돌아보던 중 다시 펼쳐보게 되었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 1권을 통해 저자인 시오노 나나미가 로마사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는지와 그녀의 역사관에 대해 간략하게 정리해 보려 한다.


 '무기들과 한 전사를 나는 노래하노라. 그는 운명에 의해 트로이야의 해변에서 망명하여 처음으로 이탈리아와 라비니움의 해안에 닿았으나, 육지에서나 바다에서나 하늘의 신들의 뜻에 따라 숱한 시달림을 당했으니 잔혹한 유노가 노여움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쟁에서도 많은 고통을 당했으나 마침내 도시를 세우고 라티움 땅으로 신들을 모셨으니, 그에게서 라티니족과 알바의 선조들과 높다란 로마의 성벽들이 생겨났던 것이다.' <아이네이스>(제1권 1 ~ 7)


 <로마인 이야기> 제1권은 베르길리우스(Publius Vergilius Maro, BCE 70 ~ BC19) <아이네이스>처럼 아이네이아스가 트로이를 탈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여 공화정 초기까지의 로마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테베레강 유역에서 출발한 로마가 삼니움 족, 에트루리아 왕국, 켈트(갈리아)족의 침입을 극복하고 이탈리아 반도의 맹주로 자리잡는 과정을 시대순으로 그려낸다. 1권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는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이 달랐는가?'로 요약될 수 있을 정도로 시오노 나나미는 이 점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저자가 생각하는 로마와 그리스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1. 로마는 그리스와 어떤 점에서 달랐는가? : 시오노 나나미


 저자가 생각하는 그리스인들은 모험심이 많으나, 단결심이 부족한 이들이었다. 그리고, 단결심이 약한 그리스인들은 정치적으로도 한계를 보이게 된다. 대표적인 그리스 폴리스인 아테네 민주정의 끝은 결국 참주정(독재정치)로 귀결될 수 밖에 없었다고 시오노 나나미는 말한다.  


 '"대(大) 그리스"라고 부른 이유는 이런 도시들이 급속히 발전하여 단기간에 풍요로운 번영을 이룩했기 때문이다. 이미 높은 문명을 가진 그리스인이 정착했으니까, 모든 면에서 시행착오가 없다. 급속한 번영의 요인은 지나칠 만큼 골고루 갖춰져 있었다(p35)... 그들은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지만, 단결심과는 인연이 멀었다. "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들도 서로 힘을 합하여 공동으로 싸운 적은 한번도 없었다.(p38)"


 '아테네 정치체제의 변화는 그야말로 정치 교과 그 자체여서, 우리에게 정치체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큰 시사가 되지만, 이 무렵에는 아테네도 그리스의 다른 폴리스와 같은 체험을 하게 되었다. 아나르키아 끝은 '티라니아', 즉 독재정치다. 무정부 상태의 혼란과 계속되는 권력투쟁에 지친 아테네 시민들은 질서만 회복된다면 그밖의 일은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을 스스로 실현할 능력이 없는 그들은 한 사람에게 질서 회복의 임무를 맡겼다.(p120)'


  또한, 그리스인들이 개척한 해외 식민지의 경우에도 본국과 거의 단절된 채 발전했기 때문에 이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대 그리스"의 그리스인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본국의 그리스인과 정치적 유대는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스파르타인의 식민지로 출발한 타렌툼도 군사 국가인 스파르타와는 반대로 아테네적인 통상 국가로 번영해 왔다. 하지만 스파르타인이 건설한 타렌툼도, 코린트인이 건설한 시라쿠사도, 그리스 적인 성향은 그대로 물려받았다. 도시국가로 태어난 뒤에도 계속 도시 국가로 남아 있었던 것이다. 국가의 중심인 도시와 그 주변을 제외하고, 그 이상의 범위까지 세력을 넓히는 데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p270)'


 이에 반해, 로마는 그리스에는 없는 두가지 장점이 있었다. 켈트(갈리아)인들의 침입으로 인해 로마까지 빼앗겼던 로마는 철저하게 외부의 장점을 모방하고, 자신의 적대 세력까지 포섭하는 정책으로 인해 자신의 세력을 키워갈 수 있었고, 이러한 점을 발전시켜 결국 제국(Empire)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켈트족의 로마 점령은 엄청난 큰 사건이었다. 그리스를 비롯하여 이웃 나라들도 로마인의 비참한 패배를 모두 다 알고 있었다... 밑바닥에 떨어진 채 올라오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민족도 적지 않다. 로마인은 기원전 390년에 밑바닥까지 떨어졌지만, 로마인답게 느리면서도 착실하게 다시 기어올라 온 것이다.(p190)... 기원전 390년의 켈트족 침입은 로마인에게 철퇴를 가했지만, 그 이후의 로마를 이야기하다 보면 미몽에서 완전히 깨어난 사람의 행동을 추적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p191)'


 '그리스 땅에서 폴리스(polis)가 스스로 무너진 과정도 로마인은 분명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것은 아테네든 스파르타든 폴리스적인 국가는 단명으로 끝난다는 사실을 로마인에게 가르쳐 준 것이 아닐까. 로마인은 표면에 나타난 현상만 보는 사람들이 모방의 민족이라고 경멸할 만큼 다른 민족한테서 많은 것을 배운 민족이었다.(p196)'


 '로마는 앞으로도 과두정치, 즉 소수 지도체제로 해나갈 것임을 분명히 밝힌 셈이다. 그리고 공화국 정부의 모든 요직을 평민 출신한테도 개방하기로 결정했다. 이것은 깊은 통찰력에 뒷받침된 현명한 결단이었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리키니우스 법"을 입안한 평민 출신의 리키니우스와 그 생각을 법제화하는 데 찬성표를 던진 귀족돌은 계급별 분배가 아니라 전면 개방이라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참으로 대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p203)'


 '신흥세력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한다 해도, 새로 대두하는 또 다른 신흥세력을 편입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서, 끌어안기를 영원히 계속해야 할 숙명을 안고 있는 셈이다. 적어도 기원전 1세기까지 300년 동안은 이 "끌어안기" 방식이 유효하게 기능을 발휘했다.(p206)'


 결국,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성공에 유리한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는 단결을 하지 못해 세계 제국으로 도약을 하지 못한 반면, 악조건 속에 있던 로마는 특유의 포용력으로 이 시기 이미 세계 제국으로의 도약을 준비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제국을 지향하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世界觀)이기도 하다. 제국을 꿈꾸는 시오노 나나미의 세계관 속에서 과거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를 부르짖던 일본제국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이 지점에서 우리가 불편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림] 욱일기를 앞세우고 제국을 꿈꾸는 일본(출처 : http://luckcrow.egloos.com/m/2416330)


 사실, 시오노 나나미의 이러한 세계관은 <로마인 이야기> 이전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한 <바다의 도시 이야기>에서도 나타난 바 있다. 동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경합을 벌였던 제노바와 베네치아의 흥망을 시오노 나나미는 이와 유사하게 해석하고 있다. 개인적인 제노바인들은 결국 도시국가의 한계를 넘지 못한 반면, 유기적인 조직을 갖추었던 베네치아는 후에 나폴레옹에 의해 멸망되기까지 번영할 수 있었다는 해석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은 한결같은 면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 시기의 역사를 위와 같은 관점을 바라보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될 것이다. 이 문제는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역사가의 말을 빌려 답(答)을 해보자.


 2. 그리스와 로마는 각각 바라봐야 한다 : 몸젠


 몸젠(Christian Matthias Theodor Mommsen, 1817 ~ 1903)은 그의 저서 <몸젠의 로마사>에서 그리스와 로마를 바라보는 역사관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비록 완전하지는 못할지라도 종교와 문학의 통일을 이룩한 희랍인들의 강력한 지적 발전은 그들의 진정한 정치적 통일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모든 국가적 통일에 필수적인 순수성, 유연성, 자기 헌신, 융합 가능성을 상실했던 것이다. 이제 유치한 역사관을 떼어버릴 때가 되었는데 희랍인의 장점을 로마인의 단점에, 로마인의 장점을 희랍인의 단점에 비추어 비교하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고대 세계가 이룩한 두 위대한 국가를 비난하거나 칭찬할 것이 아니라 각자가 자신의 결점을 토대로 자신만의 탁월함을 성취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두 국가가 서로 상이하게 성장한 가장 깊고 궁극적인 이유는, 성장의 시기 동안 라티움은 근동과 접촉하지 않고 희랍은 접촉했다는 것이다.(p252)'


 그리스와 로마를 서로 비교할 것이 아니라, 각각 그 자체로 봐야한다는 몸젠의 관점은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을 정면으로 비판한 내용이라 생각된다. 몸젠은 <몸젠의 로마사>에서 사실적인 기록과 언어학적인 분석을 통해, 그리스와 로마가 매우 강한 영향 관계 속에서 발전하고 있음을 서술하고 있으며, 각각의 문명 그 자체로 인정한다는 점에서 보다 객관적인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몸젠의 로마사>에 대해서는 별도의 리뷰에서 다룰 예정이다. (별로 기다리시는 분은 없겠지만, 그렇게 써둔다.)


  <몸젠의 로마사>를 읽은 후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 책 곳곳에 있는 시오노 나나미의 역사관과 적품의 소설적 특징을 보다 깊이 느끼게 된다. 특히, 사실에 기반하면서도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역사가가 아니니 이런 상상을 해본다'라고 자신의 의견을 던져놓고 다음으로 말을 돌리는 저자의 화법을 우리는 15권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접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로마인 이야기>를 마치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로 접근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스를 시찰하기 위해 저 멀리 로마에서 찾아와, 1년 동안 머물렀던 세 명의 로마인이 본 것은 바로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였다.(p156)... 그러나 로마는 이 아테네를 모방하지 않았다. 강대한 아테네도 항상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던 스파르타를 모방하지도 않았다. 쇠퇴기에 접어든 나라를 찾아가 거기에 나타난 결함을 타산지석으로 삼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절정기에 있는 나라를 시찰하고도 그 나라를 흉내내지 않는 것은 보통 재주가 아니다.(p157)'


 '만약 이 시기에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천재와 정열을 동방이 아니라 서방에 쏟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상상도 시기적으로는 충분히 성립된다. 만약에 알렉산드로스가 동쪽이 아니라 서쪽으로 시선을 돌렸다면, 한창 융성의 길로 나아가고 있던 로마와 격돌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테고, 만약 그랬다면 그 결과는 어땠을까.(p248)... 리비우스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알렉산드로스가 상대였다 해도, 최종적으로는 로마의 승리로 끝났을 것이다."(p249)'


  이런 점에서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는 로마 역사를 처음 접하거나, 역사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 용도로 읽기에 좋은 입문소설(入門小說)이라 생각한다. 다만, 이러한 경우에도 상세 내용과 관련해서는 비판적으로 읽는 것을 소홀히 한다면, 율리우스 카이사르(Gaius Iulius Caesar, BCE 100 ~ 44)를 다룬 제5권과 6권에 서 로마제국의 추종자로 변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 나오는 카이사르는 거의 군신(軍神) 수준으로 그려진다. 저자도 책에서 카이사르의 팬(fan)임을 공언할 정도이다. 전체 15권이 약 1,000여년의 시간을 다루고 있는데, 한 인물에 2권을 할당하는 자체가 이미 이 시리즈의 편향성을 말해준다.) 그래서, 향후 페이퍼에서는 <로마인 이야기>는 버리고, <몸젠의 로마사>, <로마제국쇠망사>를 따르도록 하되, 참고자료 정도로 활용할 계획이다.





댓글(18)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yo 2017-10-02 2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연휴임에도 역시 겨울호랑이님!!

겨울호랑이 2017-10-02 22:28   좋아요 1 | URL
^^: 감사합니다. 밤늦게 놀 수 있어 좋네요 ㅋ

서니데이 2017-10-02 22: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와 체사레 보르자를 좋아했던 것 같은데, 그래서 로마와 르네상스인 걸까요. 읽은지 오래되어 잘 기억이 안 나는데 역사서 보다는 역사소설 가까운 모양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2 22:31   좋아요 3 | URL
^^: 네 그런것 같네요. 사실 체사레도 라틴어 식으로 읽으면 ‘카이사르‘이니, 아무래도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빠‘인것 같아요.ㅋㅋ 서니데이님 즐거운 연휴 초반기 되세요^^:

2017-10-02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3 06: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7-10-02 23:3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로 겨우 로마를 이해하고 있는 저로선, 몸젠과 기번의 저작물을 꼭 읽어봐야겠네요.
이거...언제 다 읽어요..ㅠ.ㅠ ㅎㅎㅎ

겨울호랑이 2017-10-02 23:41   좋아요 2 | URL
^^: 저랑 같이 가시지요 ㅋ 북프리쿠키님 너무 앞서가시면 반칙입니다! ^^

북프리쿠키 2017-10-02 23:42   좋아요 2 | URL
ㅋ 저야..호랑이님 따라가다간 가랭이 찢어집니다..ㅠ.ㅠ

겨울호랑이 2017-10-02 23:46   좋아요 2 | URL
제가 알기로 몸젠은 「로마사」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하니, 문학에 관심 많으신 북프리쿠키님께서 보다 즐겁게 읽실거라 생각합니다^^:

레삭매냐 2017-10-02 23: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 전에 이 시리즈를 기를 쓰고 다
읽었었는데, 시오노 할매의 망언을
듣고 나서 기운이 다 쏙 빠져 버렸습니다.

극우인사의 세계관에 참 씁쓸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0-03 06:32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한창 「로마인 이야기」를 읽고 있을 때는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데, 동시대를 다룬 다른 작품을 보니 작가의 편향성이 조금씩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균형잡힌 독서의 중요성도 느끼게 됩니다. 레삭매냐님. 즐거운 한가위 보내세요!^^:

수양 2017-10-03 06: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음.. 글쿤요 시오노 나나미의 필력에 홀려 열심히 로마인 이야기를 읽던 중에 이 글을 접하니 갑자기 손에 쥔 책에 경계심(!)이 생깁니다 ㅋ 몸젠의 로마사 리뷰도 기대되요!!! 겨울호랑이님 풍성한 한가위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06:36   좋아요 0 | URL
^^: 수양님 감사합니다. 다른 한편으로「로마인 이야기」는 소설가 특유의 경쾌한 진행이 장점이라 생각됩니다. 장점만 받아들인다면, 「로마인 이야기」역시 읽을만한 책이라 생각되네요.^^: 수양님. 긴 한가위 연휴 행복하게 보내세요!

독서괭 2017-10-03 2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로마인 이야기> 중 한니발편과 카이사르편, 그리고 다른 책 <체사레 보르자>를 무척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서야 그런 문제점이 있다는 걸 알고 놀랐었죠.. 필력이 너무나 좋은 작가일수록 비판적 독서가 필요하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풍성한 한가위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3 21:03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도 체사레 보르자를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면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기의 이탈리아에서 전국시대의 일본을. 체사레 보르지아에게서 오다 노부나가를 느낀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긴 연휴네요. 독서괭님 행복한 추석 연휴 되세요^^:
 

1. 음악의 형식 


'일반적인 의미의 형식은 어떤 것이 존재하는 방식입니다. 존재 방식이자 행동 방식이죠. 형식은 어떤 것이 다른 것 아닌 바로 그것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형식이 있기에 그것을 지각하고 분별하고 이해할 수 있는 거죠. 형식 없는 것에는 "의미"도 없습니다.(p299)'


 '작곡은 다양성을 통일성으로 끌고 가는 겁니다. 창작의 문제는, 그러니까 최종적으로 요약하자면, 일자 一者와 다자 多者의 작용이라고 할 수 있죠. 미학자들은 통일성이 모든 형식의 조건이라는 생각으로 끊임없이 돌아오곤 했습니다. 대조, 명암, 갈등은 통일성에 대한 갈망을 낳기 위해서, 결국은 전체를 조화시켜 통일성을 획득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거죠... 작곡가는 화음 배열에서 으뜸조를 수립하고 전조 轉調를 결정하며 통일성과 다양성을 얻습니다. 리듬은 교차, 지속, 변화를 통해 통일성과 다양성에 기여를 합니다. 여기에 멜로디 악구의 주기적인 반복, 악기군들과 음색들의 대조도 가세하고요.(p301)'


2. 슈만 그리고 클라라 슈만


'슈만(Robert Alexander Schumann, 1810 ~ 1856)이 자기 친구 멘델스존을본받아 5중주와 교향곡을 끙끙대고 쓸 때에는 부자연스럽고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죠. 반면에, 슈만의 소곡들은 얼마나 유려합니까. 그의 소곡들에서 음악은 열정을 제 형식으로 쏟아내죠. 이 작품을 냉철하게 분석해보면 형식의 교과서적인 성격 못지않게 놀라운 음악성이 넘쳐난답니다.(p307)'



'그래도 이 작품이 전개되어갈수록 점점 더 망가지는 건 사실이죠. 반면, 슈만에게 있어서 감정의 분출로 나온 것은 뭐든지 완벽하고 훌륭해요. <카니발>은 번득이는 재기들이 완벽한 전체를 이루는 작품이죠. 슈만과 더불어, 슈만 이후에야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근대음악이 엄격한 형식에 대한 경멸과 샤를 보들레르가 무절제하 형식 취향이라고 불렀던 것으로 나뉩니다.(p307)'



 슈만은 작곡가로서 자신뿐만 아니라, 부인인 클라라 조제핀 비크 슈만(Clara Josephine Wieck Schumann, 1819 ~ 1896)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안타깝게도 피아니스트인 클라라 슈만의 연주를 직접 들을 수 없지만, 음악가로서 슈만과 클라라 슈만의 사랑, 그리고 클라라를 평생 사랑한 브람스(Johannes Brahms1833 ~ 1897)와의 관계는 음악외적으로도 의미있게 다가온다.


관련기사 : http://shindonga.donga.com/Series/3/9905040004/13/111157/1





[사진] 유로화 제작 이전 독일 화폐 100마르크 인물 클라라 슈만( 출처 : 경향비즈)


2. 깊이 읽기 : 음악의 형식과 내용


 '교향곡, 서곡, 소나타, 아리아, 합창과 같은 "형식"은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부분이나 단락의 구축성 Architektonik을 말하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부분들이 나열되고 대조를 이루고 반복되고 발전해나가는 데 있어서의 부분간 균형을 말한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그러한 구축성을 이루고 있는 주제들을 내용이라고 이해한다. 여기서는 "대상"으로서의 내용은 전혀 문제되지 않고 오로지 음악적인 내용만이 거론된다... 우리가 이것을 음악의 개념에 적용하려면, 모든 부분들이 합쳐진 전체 작품이 아니라, 최후의, 미적으로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핵심에 적용해야 한다. 이것이 주제 혹은 주제들이다. 주제에서는 내용과 형식이 어떤 경우에도 분리되지 않는다.(p186)'


 '작곡이 형식적인 미적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그 과정은 자의적으로, 무계획적으로 방황하는 즉흥적인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마치 하나의 꽃봉오리가 활짝 피어나듯이 유기적으로 앞으로의 전개를 예측하게 하면서 점점 발전해나가는 것이어야 한다.(p187)'


 추석 연휴가 시작되었습니다. 바깥은 흐리고 비도 내리지만, 마음만은 추석임을 느끼게 됩니다. 아내가 명절 준비를 하는 동안 연의와 함께 '쿼드릴라'를 만들었습니다. 책상을 활용해서 같이 쿼드릴라를 만드니 더 재밌게 만들어진 것 같네요. 

 

 

 책상의 높이를 활용는 방법은 새로운 방식이어서 연의도 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되었으니, 다음번에 유치원 친구들 앞에서는 자신의 방법으로 만들지 않을까 살짝 기대도 하게 됩니다. 이렇게 블럭을 만들고 보니 자연지형을 활용한 우리나라의 산성이 자연스럽게 연상됩니다. 마침 추석연휴 기간 <남한산성>, <아이캔스피크> 등 많은 영화가 개봉합니다. 긴 연휴기간동안 가족들과 함께 좋은 영화를 보시는 것도 즐겁게 연휴를 보내는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되네요. 이웃분들 모두 즐거운 연휴 되세요.^^:    


[사진] 남한산성(출처 : http://fallsfog.tistory.com/261)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거서 2017-10-01 14: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은 추석 연휴를 즐겁게 지내는 노하우를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추석을 넉넉하게 보내시길! ^^

겨울호랑이 2017-10-01 14:20   좋아요 3 | URL
저도 이제 곧 결혼 10년차가 되어가니 생존법을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현명한 남편이 결혼생활을 오래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 유지하는 남편이 현명해짐(?)을 깨닫게 됩니다. ㅋ오거서님께서도 즐거운 명절 되세요!^^:

오거서 2017-10-01 14:25   좋아요 2 | URL
역시! 겨울호랑이 님의 현명한 남편 처세법은 귀감이 될만 합니다. ^^ ㅎㅎ

겨울호랑이 2017-10-01 14:27   좋아요 2 | URL
^^: 감사합니다. 오거서님께서는 음악과 함께 하는 명절 되세요!

북프리쿠키 2017-10-01 14: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클라라 슈만..이뿌네욤!!ㅎㅎ

겨울호랑이 2017-10-01 14:30   좋아요 2 | URL
^^: 네 클라라 슈만은 미모와 실력을 겸비한 진정한 엄친딸인 듯 합니다. 북프리쿠키님 즐거운 명절 되세요!^^:

bookholic 2017-10-01 2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여유로운 한가위 명절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1 20:4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께서도 행복한 한가위,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서니데이 2017-10-01 23:0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즐겁고 좋은 추석연휴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0-01 23:30   좋아요 2 | URL
^^: 서니데이님 긴 연휴동안 즐겁게 지내시고, 보름달을 잘 감상하시되 보름달이 되진 마세요 ㅋ

2017-10-02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2 00: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7-10-02 03:1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의 기하학적 취향이 놀이에도 적극 반영되는 거 같다 싶은 건 제 오버입니까ㅎㅎ..
즐거운 명절 보내시길^^

겨울호랑이 2017-10-02 07:42   좋아요 2 | URL
^^: 기하학을 더 알고 싶어하는 가냘픈 손놀림 정도 될것 같습니다. ㅋ AgalmA님도 즐거운 한가위 되세요!^^: 그런데 AgalmA님은 대체 잠은 언제 주무세요? ㅋㅋ
 

 '사회개혁이라는 것은 공산주의 사회에서만 부르짖거나 실천하는 공산주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도 사회 개혁은 얼마든지 부르짖을 수 있고 실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것은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더욱 사회개혁이 필요한지도 모릅니다... 민주주의나 공산주의가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체제에 반동으로 생겨났다는 데는 동일성을 갖습니다. 그러나 경제구조의 이질성으로부터 두 주의는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밖에 없습니다. 봉건사회나 전제군주사회가 무너지고 민주주의 사회가 형성되려면 인간 본위적 사회개혁은 필수적으로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p31)'


  <태백산맥> 제3권에서는 사회개혁과 관련한 대화가 이뤄진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서로 다른 길을 택한 남(南)과 북(北). 서로 다른 길을 택했지만, 이들은 모두 '사회개혁(社會改革)'을 당면 과제로 떠안게 되었다. 비록, 체제가 다른 국가지만, 이들이 공통된 과제를 맞이하게 된 것은 '국가'라는 체제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to zen eudaimonos kai kalos)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자가 자유와 신분에서는 같거나 더 우월하지만 정치적 탁월함에서는 더 열등한 자들보다, 또는 부(富)에서는 더 우월하지만 탁월함에서는 뒤처지는 자들보다 국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384∼322 B.C. )<정치학> (1281a2)


 <정치학>에서 말하는 내용에 따르면, 체제와 관계없이 공동체에 더 많이 기여하는 자가 더 큰 몫을 가져가게 된다. 전통농업사회에서는 지주(地主)계급이, 산업자본시대에서는 자본가(資本家)계급이, 공산당이 지배하는 공산국가에서는 당(黨)이 많은 몫을 차지하게 된다. 많이 기여한 자가 더 많이 가져가는 것이 문제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국가의 문제는 이러한 많은 몫이 재분배되지 않고, 후대에 계승되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의 민중들은 40여년 전 조선왕조의 백성들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식민지시대를 거치면서  사람들의 의식은 변화를 거듭했습니다. 우리나라 공산당 역사는 중국보다 앞서 있었고, 자유주의다, 농촌계몽주의다 하는 것들이 의식변화를 촉진했습니다. 결국 지주계급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회의 기운이고 역사의 필연인 것입니다.... 지금 이남이 내걸고 있는 민주주의는 링컨이 정의한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정당한 사회 개혁의 절차를 거쳐 지주계급도 한 사람의 시민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주계급을 보호하고 있는 이남의 체제는 민주주의라는 허울뿐 봉건사회의 답습이고 연장일 뿐입니다. 과감한 사회개혁 없이 이런 식으로 계속되게 되면 사회혼란은 점점 더 심해질 것입니다.(p32)


 <태백산맥>의 배경이 되는 전남 벌교 지역은 '자유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남한 지역에 속한다. 당시 남한이 당면한(그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현실적인 문제는 기득권의 상속, 유지 문제였고, 이러한 사회적 모순은 과감한 사회개혁 또는 혁명의 필요성을 부르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남한의 현실은 미국의 민주주의와는 차이가 있었다. 남한에서 민주주의는 거창한 구호일뿐, 현실에서 실현되지 않고 있었다. 반면, 남한 민주주의의 롤모델인 미국 시민 혁명은 어떻게 파급되었는가. 이를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 1805 ~ 1859)의 <미국의 민주주의1>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아메리카 혁명이 일어나면서 주권재민의 원칙은 타운들로부터 나와서 전국을 석권했다. 모든 계급이 이 원칙을 지지했다. 이 원칙을 쟁취하기 위해서 전투가 벌어졌고 승리를 거뒀다. 이 원칙은 법 중의 법이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사태발전에 걸맞는 빠른 변화가 사회 내부에서도 일어났는데 상속법은 국지적인 영향력들을 완벽하게 말살시키고 있었다. 법률의 이런 영향과 독립혁명의 결과가 누구의 눈에나 분명해지자 민주주의 쪽의 승리는 되돌이킬 수 없는 것으로 선포되었다. 사실상 이 원칙의 수중에 모든 승리가 돌아갔으며 이에 대한 더이상의 저항은 있을 수 없었다. 상류계층들도 불평 한마디 없이, 저항 한번 없이, 이 원칙으로부터 불가피하게 파생되는 악에 대해서까지 복종했다.(p116)' 토크빌 <미국의 민주주의1>


 미국시민 혁명은 대내적으로는 상속법을 통한 법률개혁과 대외적으로는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실현하면서 반대세력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아마도, <태백산맥>에서 남학의 사회개혁가들은 아마도 이와 같은 사회 개혁을 꿈꾸었을 것이고, 거슬러 올라가  동학농민혁명(東學農民革命) 역시 이러한 사회개혁의 선구라 하겠다. 


 '1893년 11월에 지방관들의 수탈행위로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에서 민란이 일어났다. <동학사>에는 "계사(癸巳) 11월 15일에 전라도 고부, 전주, 익산 등 각 군에서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민란이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 있었다. 횡포, 탐학, 강압으로 가결전(加結錢), 가호전(家戶錢), 무명잡세며, 국결환롱(國結幻弄)과 백지징세(白地徵稅)며 유망(流亡), 진결(陳結), 은결(隱結), 허복(虛卜)이며 불효(不孝), 불목(不睦), 불경(不敬), 독신(瀆神), 상피(相避) 등 죄목으로 옭아매어 백성들을 들들볶아 먹는 까닭이라" 하였다.(p374)' 삼암 표영삼 <동학2>


 탐관오리들의 수탈로 일어난 동학혁명은 대내적으로 당시 제도적 모순에 대한 개혁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으나,  미국 시민 혁명과는 달리 외세(일본(日本)과 청(淸)나라)의 개입으로 인해 좌절된다. <태백산맥>4권에서는 동학혁명 당시의 참상이 잘 묘사되고 있다.

 

'녹두장군 전봉준 대장이 인내천(人乃天) 깃발 펄럭임스로 전주감영을 빼은 담에 나라가 불러딜인 청국군 일본군이 밀려들고, 종당에는 일본군이 독판침서 동학군이 패허든 대목을 이약허겄구만. 다 이긴 쌈에 일본눔덜이 훼방얼 놓고 뎀베들었는디, 그눔덜언 각단지게 총질얼 허는디다가 대포할라 펑펑 쏴질러뿐께로 지아무리 용맹시러운 동학군이라 혀도 당헐 방도가 웂었제. 우리 동학군이 지닌 무기라는 것은 창뿐이고 칼뿐인디, 맞부어 싸우겄다고 쫓아가다 보면 총에 맞어 수도 웂이 죽어갔제.(p54)'


 동학농민혁명군은 우금치 전투(牛禁峙戰鬪), 1894)에서 일본군의 신식무기와 개틀링기관총 앞에 무수히 많은 사상자를 남기고 패퇴하게 된다.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에서 주인공 탐크루즈와 동료 무사들이 개틀링 기관총 앞으로 돌격하는 장면이 하이라이트로 등장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일본군의 기관총 앞에 쓰러져간 이들의 모델은 우리 선조들이었다.) 


[사진] 영화 라스트 사무라이[출처 : http://egloos.zum.com/leesunggil/v/2993445)


 만일 동학농민혁명이 외세의 개입이 없었더라면, 혁명의 성과를 내고 우리는 왕정(王政)에서 민주정(民主政)으로 이행할 수 있었을까. 그럴수도 있었겠지만, 다시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 역시 존재한다. 마키아벨리(Niccolò Machiavelli 1469 ~ 1527)는 <로마사론>에서 이러한 지점을 지적하고 있다. 모든 혁명적 변화는 다른 계기를 통해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내재적 동인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모든 정부는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존경을 받기 때문에 이 민주 정부는 어느 정도 존속되지만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기껏해야 그 민주정부를 수립한 세대가 살아 있을 동안만 버티는 것이다. 그 세대 이후에 민주 정부는 곧바로 아무 규율 없는 방종한 자유의 상태로 추락한다. 이런 상태에서는 시민 개인이든 정부 관리든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 그 결과  각 개인은 제 멋대로 살아가며 날마다 무수한 피해 사례들이 발생한다. 그리하여 사태의 필요에 의하여 또는 어떤 선량한 사람의 제안에 의하여, 이런 방종한 상태를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그들은 다시 한 번 군주제로 돌아간다.(p69)' 마키아벨리 <로마사론>

 

 <태백산맥> 제3권에서 나오는 짧은 대화 속에서 우리는 해방이후 극심한 혼란기 속에서 하루빨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 의식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문제 의식 속에서 '혁명' 또는 '급진적인 개혁'의 목소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급진 개혁 움직임이 정말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변화방안이었는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한국 전쟁 이후에도 우리는 격변의 시대를 살았고, 많은 혁명을 거쳤지만, 제대로 진전된 해결책을 찾은 문제는 드물었다. 적시에 해결하지 못한 많은 문제는 이제는 후대의 짐이 된 채 쌓여만 가고 있는 현실 속에서, '혁명적 변화'가 아닌 '작은 변화'가 진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10-01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1 08: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1 11: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1 1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1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0-01 1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아내가 시골 학교로 발령난 지 벌써 2년이 지나갑니다. 덕분에 관사에서 지내고 있다는 말씀도 드린 적이 있고, 학교의 정경도 여러 차례 올렸지요.

오늘은 지난 주말 찍었던 집 앞 시골가게 사진을 올려봅니다. 제가 사는관사로부터 직선 거리로 30미터 떨어져 있으니 이웃분이시지요. 시골 가게에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고 계십니다. 30여년 전, 학교 전교생이 300명 정도로 꽤 컸었던 시절부터 터를 잡으셨으니 말그대로 터줏대감이십니다. 어린이들을 손자손녀처럼 아껴주시는 그분들 모습 속에서 마을 공동체에서 아이들을 키웠던 예전 분위기가 이어옴을 느낍니다.

오랫동안 그리고 지금도 학교 아이들이 동전을 모아 과자와 사탕을 사먹는 시골가게(가게 이름도 ‘시골 가게‘)를 보면, 도심의 편의점 또는 할인마트에서 살 수 없는 추억을 느끼게 됩니다.

미세먼지가 있었던 지난 주말 시골가게의 꽃사진과 함께 제가 그곳에서 주로 사는 과자 사진을 올려 봅니다. (비닐안의 쫀쫀이는 연의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사탕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이 제게는 추억의 가게가 옆에 있어 바로 이 순간의 삶이기도 합니다. 푸른 가을 하늘을 배경으로 하지 못해 조금은 아쉽긴 하지만, 추석을 얼마남겨두지 않은 지금 사진을 올려봅니다.

ps. 시골가게에서는 추억을 팔지만 현재 가격으로 팝니다. 1980년도에 100원에 팔던 뽀빠이 가격이 지금은 1,000원이 되었습니다 ㅜㅜ. 과자를 발견할 때는 추억을 떠올리지만, 계산할 때는 매우 빠르게 현실로 돌아오게 됩니다. ㅋ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서니데이 2017-09-27 21:4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가게가 사진으로 봐서 그런지 영화 세트장 같아요.^^
뽀빠이는 라면처럼 생겼네요. ^^

겨울호랑이 2017-09-27 21:57   좋아요 2 | URL
^^: 실제로는 더 예쁜데 제가 사진을 못 찍어 아쉽네요ㅜㅜ ‘뽀빠이 별사탕‘은 추억의 불량 식품이지요 ㅋ

2017-09-27 2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7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7-09-27 22: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와 ㅜ 가게 이름이 ‘시골가게‘네요. 뭐지, 왜 감동적이지....

겨울호랑이 2017-09-28 04:07   좋아요 0 | URL
^^: 네 우리 모두의 아련한 추억을 소환시키는 분위기가 있는 가게입니다.

jeje 2017-09-27 23: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스크롤 내리면서 아아 뽀빠이 사진도 있었으면 좋겠다...생각했어요 ㅎㅎ 정말 예쁩니다. 시골가게 라는 이름도 시골가게 풍경도 추억도.

겨울호랑이 2017-09-28 04:10   좋아요 1 | URL
jeje님 감사합니다.^^: 추억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7-09-28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0: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8 1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목련 2017-09-28 14: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사탕 들어있는 뽀빠이 과자인가요?
정겨운 풍경과 다정한 사진에 추억이 새록새록~~
감사해요!!

겨울호랑이 2017-09-28 15:08   좋아요 0 | URL
^^: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억과 함께 즐거운 추석 연휴 되세요!
 

<태백산맥> 2권에 가장 큰 반전(?)은 정하섭과 소화의 관계설정이라 생각된다. 이와 더불어 한국 현대사와 관련되어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이 이번 <태백산맥>2권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이었으며 이를 중심으로 이번 페이퍼를 정리해본다.


 1. 근친상간 문제 : 천륜(天倫)인가 아니면 인륜(人倫)인가


<택백산맥> 에서 소화는 정하섭을 사랑하고 있으나, 이들은 사실 이복남매 관계다. 그리고, 본인들은 이러한 사이를 알지 못한다. 이들의 관계를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는 소화의 어머니 월녀. 그렇지만, 어머니 월녀는 병에 걸려 이러한 사실을 말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이 사실을 딸에게 말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를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끈다.


 '어머니의 표정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부릅뜬 눈에 이상한 빛이 서렸다. 그녀는 몸이 달고 답답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안 뒤여, 안 뒤여, 술도가 집 아들허고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그 짓 혀서는 안 뒤여. 월녀는 목이 찢어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이년아, 머시가 신령님 뜻이냐. 신령님이 천벌 내릴 죄럴 니년이 저질러뿌린겨. 이년아, 넋 나간 년아. 이 일얼 워째야 쓸 것이다냐. 월녀는 정신이 아찔아찔해지기 시작했다. 딸의 얼굴이 대중없이 흔들렸다. 숨길이 막혀왔다.(p67)'

 

가족간의 근친상간을 다룬 작품으로 잘 알려진 <오이디푸스왕>을 살펴보면, 오이디푸스와 그의 어머니 이오카스테는 결혼하여 자녀를 두고 있다. 테바이를 휩쓴 재난의 원인이 그들의 근친상간임을 지목했을 때, 이오카스테 역시 이를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자살하셨어요. 하지만 여러분들은 그 광경을 보지 못하셨으니, 그 참상은 알지 못하실 거에요. 하지만 저 불쌍하신 마님께서 겪으신 고통을 내가 기억나는 대로 여러분들에게 들려드리겠어요. 마님께서는 미친 듯 현관에 들어서시더니 두 손 끝으로 머리털을 쥐어뜯으시며 곧장 결혼침대로 달려가셨어요... 그분께서는 누가 신호라도 하는 양 무섭게 고함을 지르며 이중의 문으로 달려가시더니 걸쇠에서 빗장을 뜯어내며 방안으로 뛰어드셨어요. 그리고 방안에서 우리는 흔들리는 밧줄의 꼬인 고에 마님께서 목을 매달고 계신 것을 보았어요.(1236 ~ 1264)' <오이디푸스 왕>


[그림] 오이디푸스왕(르누아르) (출처 : http://www.bhgoo.com/2011/56460)

 

 '소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소화가 혼자서 장례를 치렀다...... 앞으로 외롭겠다...... 무당 노릇은 할래나.......(p216)'


 <태백산맥>에서 소화는 자신이 근친상간을 저질렀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였기에, 어머지의 장례를 자신의 손으로 치룰 수 있었다. 


 '그분께서 마님의 옷에 꽂혀 있던 황금 브로치를 뽑아 드시더니 자신의 두 눈알을 푹 찌르시며 대략 이렇게 말씀하셨으니 말예요. "이제 너희들은 내가 겪고 있고, 내가 저지른 끔찍한 일을 다시는 보지 못하리라. 너희들은 보아서는 안 된 사람들을 충분히 오랫동안 보았으면서도 내가 알고자 했던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어둠 속에서 지내도록 하라!"(1265 ~ 1274)'


 반면, 오이디푸스는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자신의 눈을 스스로 찌르게 된다. 이처럼 같은 근친상간이 원인이 되었음에도, 다르게 처신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을 알았는가, 아닌가의 차이일 것이다. 물론 자녀를 둔 오이디푸스와는 달리 소화는 후에 아이를 유산하게 되어 자식이라는 끈을 도중에 놓치기도 하지만. 우리가 천륜(天倫)이라고 부르는 도덕적 질서가 절대적인 것인가, 상대적인 것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2. 사회주의에 대한 상반된 시선


 작품 중 염상진은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로의 길이 우리 민족이 이루는 진정한 해방구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것은 염상진의 생각일 뿐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았던 공산주의자들의 투쟁 이념이었을 것이다. 이들에게 공산주의는 우리가 가야할 유일한 길이었다.


 '반도땅의 역사의 길이가 반만년(半萬年)이라고 했다. 그 장구한 세월을 무턱대고 자랑 삼으려 한다. 세월의 길이가 왜 자랑감이 될 수 있는 것인가. 그건 배부른자, 인민대중의 생혈을 빨고 살아온 자들의 타령이고 최면술인 것이다. 그 긴 세월이 진정 자알이 되려면 계급 없는 사회로 나아갔어야 한다... 끝도 없는 착취의 역사일 뿐이었는데 그 세월을 무엇으로 자랑 삼는다는 것인가. 단군이 최초에 나라를 세울 때 그 건국이념이 홍익인간(弘益人間)이었다고 한다. 그 말은 누가 만들어낸 뻔뻔스런 잠꼬대인가... 해방은 반도땅의 역사 위에서 단순한 의미일 수가 없다. 자멸한 조선 봉건 왕조 위에 새 역사를 창조해야 할 중차대한 기점이 바로 해방인 것이다... 남쪽 땅에는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지주계급과 친일 세력이 합세하여 남쪽만의 나라를 세우고 만 것이다. 사회주의의 건설, 그것만이 최선의 길이고 유일한 길일 뿐이다.(p144)'


 반면, 공산주의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역시 <태백산맥>에서 소개되고 있다. 유물론(唯物論)을 내세우는 이념(理念)으로 '종교를 부정하는 종교'를 바라보는 스님의 소리를 통해 공산주의의 한계 역시 제시된다. 공산주의자들에게 타도의 대상이 된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공포스러울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공포가 다른 편 역시 극단으로 모는 것은 아닌지. 이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다른 지주'에 불과했다.


 '불심 없는 인간, 아니 불심 없는 남자의 집단이 얼마나 무서운 동물의 집단인가를 생생하게 목격했던 것이다. 공산주의라는 그들의 집단이 내세우는 유물사상(唯物思想)이란 애당초 불심 같은 것은 완전히 묵살하고 있었다. 오로지 물질만을 좇는 그들은 앞뒤를 분간하지 않는 살인집단이었다... 그들 집단을 혐오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인간을 위한 새 세상을 만든다는 사람들이 살인을 너무나도 쉽게 저질렀기 때문이다. 물질을 탐한 지주들이 야수만도 못하다면 그 물질을 빼앗기 위해서 살인을 서슴지 않는 그 집단도 결국은 지주들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p275)'


3. 분단의 이유


 <태백산맥>에서는 곳곳에서 김범우, 염상진, 서민영의 목소리를 통해 당대의 현실인식이 제시되고 있다. 마치 영화에서 정면 클로즈업 샷으로 관객들을 향해 말을 하듯, 독자들에게 상황설명을 하는 대목이 여러 곳에서 표현되고 있고, 이는 우리의 현대사 인식을 새롭게 한다. 


[사진] 정면 클로즈 업 샷 : 영화 <나를 잊지 말아요> 中


 '연합국의 헤게모니를 쥐고 있던 미국은 특히 일본 문제에 있어서는 발언권이 절대적이었지요. 일본을 도맡다시피 해서 싸운 것이 바로 미국이니까요. 그래서 미국은 일본 열도를 독일식으로 나눠먹지 않고 독식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건 태평양으로 뻗치는 소련의 힘을 견제하는 동시에 태평양 전체를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그 계획에 따라 당연히 한반도 분할이 필요했고, 독일에서와는 달리 일본 쪽에 전적이 미미한 소련은 한반도의 반이나마 차지하는 데 동의한 것입니다.(p303)'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일본 대신 우리가 분단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아직도 '종북', '빨갱이' 등의 문제에 좌우되지 못하는 모습을 떠올리며 답답함 역시 느끼게 된다.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일제 식민지 시대 이후 모든 문제가 지금도 진행형이라는데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 해방은 식민지 시대의 종식이 아니라 새로운 식민지 시대의 개막이었습니다. 전 시대에는 일본을 공동의 적으로 삼는 민족적 명제나 자존이 있었습니다만, 이제는 백인들이 만들어낸 "이즘"이라는 것에 최면이 걸리고 마취되어 우리끼리 적을 삼아 살육을 자행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이즘을 일단 정치도구화한 이상 상호 양보는 있을 수 없습니다. 정치적 실현을 위한 상호 상승작용만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정치생리이며 힘의 역학입니다. 벌써 서로를 괴뢰라고 공공연하게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유치하고 졸렬하고 파렴치한 짓들입니까. 그러나 그 뻔뻔스러움과 무모함과 이율배반이 곧 우리의 정치현실입니다. 비판이나 선택이 용납되지 않는 획일적 모순의 질서에 줄을 맞춰야 하는 것이 앞으로의 우리의 길입니다.(p304)'


'최익승은 "빨갱이"란 말을 무수히 되풀이했다. 그 말은 지칭(指稱)으로 사용되기도 했고 호칭(呼稱)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건 말이 아니었다. 공격의 무기였다. 지칭이든 호칭이든 그 말이 되풀이될때마다 기묘한 마력으로 육박해왔다... "빨갱이"라는 말은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라는 말과는 그 색깔이나 냄새나 느낌이 판이하게 달랐다. 그건 극악한 범죄자의 대명사였고 극형의 죄목이었다. 그 말은 해방 이후 수삼 년에 걸쳐 그 어떤 말보다 사람들의 입에 많이 오르내렸다... 그 말이 정치적 사회적으로 선택의 자유권을 상실한 지는 오래되었지만 생존권까지 좌우하게 된 상황임을 새삼스럽게 확인해야 했다.(p20)


3. 소화(素花)와 소화(小花) : 흰 꽃과 작은 꽃


 '정 참봉은 월녀를 끌어안고 목이 메었다. 월녀는 그 품에서 비로소 쏟아지기 시작하는 눈물을 흘렸다. 정 참봉이 조끼주머니에서 꺼낸 한지에 두 글자가 적혀 있었다. "소화 素花"였다.(p83)'


 <태백산맥>을 읽다보니 '소화'라는 여주인공의 이름에 관심이 가게 된다. '흰 꽃'이라는 뜻을 가진 '소화'라는 이름을 통해 내가 가진 종교적 배경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가톨릭 성녀(聖女) '소화 데레사'를 연상하게 된다.


 '리지외의 테레스(데레사)(Therese of Lisieux, 1873년 1월 2일 ~ 1897년 9월 30일)는 프랑스 맨발의 카르멜회 수녀로, 오늘날 널리 존경받는 사람들 가운데 하나이다. 본명은 마리 프랑수아즈 테레스 마르탱(Marie Francoise-Therese Martin)이며, 리지외의 성 테레스(Saint Therese of Lisieux)라고도 한다. 예수의 작은 꽃, 단순히 작은 꽃(소화, 小花)이라고도 불린다. 테레스는 1873년 1월 2일 프랑스 알랑송 루 세인트 블레이즈(Rue Saint-Blaise)[1]에서 태어났다. 4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가르멜회 수녀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14세 때 가르멜회 입회를 바랐지만, 나이를 이유로 허락되지 않았다. 1889년 4월 가르멜회에 입회하여 "아기예수의 데레사"라는 이름을 받는다. 1894년 7월 28일 아버지 루이가 사망하였다. 테레스는 1897년 9월 30일, 결핵으로 24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출처 : 위키백과]


 신령님을 모시는 무녀(巫女) 소화(素花) 와 예수님을 따랐던 소화(小花)의 삶은 그들의 종교, 나라가 달랐던 것만큼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각자의 위치에서 어려운 선택을 해야하는 어려움에 처했을 때 자신의 신(神)에게 전적으로 의탁하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종교적 인간의 원형(原形)을 발견하게 된다.


[사진] 성녀 소화 데레사(출처 : http://www.carmel.kr/Theresa)


<태백산맥>에는 한국 현대사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있지만, 그것만으로 작품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이유를 온전히 설명하지는 못할 것이다. 당대의 세계사적인 흐름과 개인사적인 내용, 개인의 내면이 서로 잘 조화되면서 현실을 그려내고 있기에 <태백산맥>이 우리시대 고전의 반열에 오른 것은 아닐까.


ps. <태백산맥>의 향토성은 전라도 사투리에서 배어나오는데, <태백산맥>을 표준영어로 번역한다면 그 맛이 상당히 반감될 듯하다. <태백산맥>의 번역본은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지 궁금해 진다.


댓글(9)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7-09-25 2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5 21: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09-27 17: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독서괭 2017-09-25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태백산맥에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뻗어내시다니.. 흥미롭게 잘 읽었습니다^^ 김범우, 염상진 넘 멋져..!하며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ㅋㅋ
오.. 영어라니 그 구수함을 번역하는 게 어찌 가능할까요. 그 감칠맛나는 욕설은 또.. 전혀 상상이 안 되네요;;

겨울호랑이 2017-09-25 22:03   좋아요 1 | URL
^^: 독서괭님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가지를 썼습니다만, 강원도에 있는 태백산맥을 남쪽에 있는 벌교까지 끌어내린 작가만 하겠습니까 ㅋ 대하소설이다보니 이런저런 감상거리가 떠오른 것 같습니다. 언어에 혼이 실렸다는 것을 「태백산맥」을 통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의 외국어교육도 우리 정서를 외국인들에게 공감시킬 수 있는 능력향상으로 초점을 두어야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봅니다^^:

cyrus 2017-09-25 2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복남매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막장 드라마의 기본 요소는 간혹 문학작품에서도 나오는군요. ^^;;

겨울호랑이 2017-09-26 06:47   좋아요 0 | URL
^^: 저도 많은 문학을 접하지 못해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도저히 의지만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 중 하나가 우리가 ‘인륜‘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AgalmA 2017-09-26 07: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을 알면 알수록 재밌는 것이 근친상간이 진화생물학적으로 돌연변이를 많이 만들어내죠. 결국 자멸로 향하는 길. 현실 속 근친상간은 윤리적 터부로 굳어졌지만 생물학적으로도 나쁜 결과란 말이죠. 프로이트는 근친상간의 금지는 사회학적 과정이었다고 봤지만서도.
현재의 국가 대 국가도 이데올로기적 대결로 볼 것만도 아닌 것이 생존을 위해 무리 생활을 하던 동물적 생활방식이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라고 봐요. 근대 사회, 도시의 탄생 등 거창하게 말해도 어쩐지 그 본질은 원시와 다르지 않습니다. 고차원적으로 보려 하지만 그건 우리의 착각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겨울호랑이 2017-09-26 08:05   좋아요 1 | URL
^^: AgalmA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생물학적으로 근친상간을 통한 종족의 번식은 나쁜 형질의 유전자가 도태되지 않고, 계승/강화되면서 부작용을 유발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생물들은 근친교배를 피하게 되고, 이는 결국 교류의 확장 또는 영역의 확장으로 이어지는 것 같네요. 이러한 부분이 인간의 집단인 국가로도 확대된다고 말씀하신 의견에 공감합니다. 아울러, 이렇게 극단적으로 확장되어 보편성=특수성인 되버린 시점, 더이상 확장될 수 없는 시점이 되면 그때부터 쇠퇴가 시작된다고도 생각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