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그늘마다 연분홍 진달래가 햇살을 받으며 밝은 광채를 발하고 있었고, 길가엔 개나리가 아직도 노란 꽃을 머금은 채 연둣빛 새순을 피우고 있었다. 무위사 극락보전 뒤 언덕에는 해묵은 동백나무에 선홍빛 동백꽃이 윤기나는 진초록 잎 사이로 점점이 붉은 홍채를 내뿜고, 목이 부러지듯 잔인하게 떨어진 꽃송이들은 풀밭에 누워 피를 토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진읍 묵은 동네 토담 위로는 키 큰 살구나무에서 하얀 꽃잎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남도의 봄빛이었다.(p33)」

어제는 전라도 강진에 다녀왔습니다. 매년 이맘 때 할머니가 돌아가신 즈음에 할머니 산소에 가고 있는데, 어제가 그 날이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때가 연의가 태어나고 2주 후 였습니다. 그래서 제게 2012년은 생명 탄생의 기쁨과 죽음이라는 슬픔을 함께 느꼈던 한 해로 기억됩니다. 그 후 할머니 산소에 가서는 손녀 잘 지내고 있다고 인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윤달이 있어 예년보다 늦은 가을 날을 보며 남도의 가을을 느껴봅니다. 마침 오늘은 「제2회 강진 갈대 축제」가 있어 남도의 가을을 낄 수 있었습니다. 순천 갈대 축제만큼 크지는 않지만, 작은 공간에서의 아기자기함이 오히려 남도의 정취를 더 잘 표현한다는 생각도 드네요^^

겨울로 넘어가고 있는 11월 중순.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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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서 2017-11-12 09: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글을 읽고서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 생각했습니다. 할머니의 현신은 사라졌다고 해도 할머니의 손자 사랑은 영원한 기억으로 남을 테고요. 증손자의 탄생으로 유대감이 이어졌다니 인연의 끈이 단단한 것 같습니다. 사랑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7-11-12 09:56   좋아요 2 | URL
^^: 오거서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에게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뜻과 피가 흐르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조상님들을 추억하고 뜻을 기리는 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오거서님 행복한 일요일 되세요, 감사합니다!^^

2017-11-12 1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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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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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1: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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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2 1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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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페로탱(Perotin, 1160 ~ 1230) <콘둑투스 Conductus> : 1183년


 '원시적인 형태의 오르가눔은 노래하는 목소리를 나란한 선들처럼 진행시키죠. 12세기 다성음악은 그 평행을 깨뜨립니다. 이제 서로 다른 멜로디들을 중첩시켜 그 합 合에서 고딕 조각의 얽힘 장식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은 유려하고 절묘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지요. 12세기 말 작품인 대 페로탱의 <오르가나> 나 <콘둑투스>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때문에 현학적인 표현에 지칠대로 지친 우리의 귀에는 되레 신선하게 다가오는 음악일 겁니다.(p370)'


 '1183년에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의 주 主 제단이 봉헌된 참이었죠. 파리의 "디스칸투스 작곡가"들은 모든 성부가 평행 진행하는 오르가눔의 단조로움을 깨뜨리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래서 대위법이 활기를 띠었죠. 동일한 구성이 다성음악이 서로 다른 성부들에 순차적으로 나타나기도 했고요.(p460)'


2. 마쇼 (Guillaume de Machaut, 1300? ~ 1377) <노트르담 미사곡 Messe de Notre Dame> : 1364년



 '마쇼야말로 이러한 음악적 무절제 속에서 처음으로 순수대위법을 탄생시킨 장본인일 겁니다. 그의 대위법은 화성의 사용에서 비롯되는 충만과 안식의 표현이었죠. <글로리아>의 도입부 "땅에는 평화 Et in Terra Pax"를 들어봐요. 무엇보다 <크레도>의 "육신을 취하시고 Et Incarnatus Est"가 압권이죠... 라틴어 가사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Ex Maria Virgine"에 이르면 지금까지 빠르게 음절에 맞추어왔던 리듬이 갑자기 확 달라졌다가 멈추면서 깊은 명상을 환기합니다... <글로리아>는 빠른 가사 진행을 보나, 음표 대 음표의 단순한 대위법을 보나, 완전히 달라요.(p467)... 또한, <크레도>는 고상한 것과 어긋난 것이 어우러지면서 거친 표현주의를 과시하죠.(p468)'


3. 깊이 읽기


'여러 측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마쇼의 기욤의 <노트르담 미사곡>은 하나의 작곡 단위였으며 또한 4성의 첫 미사곡이었다(p979)... <노트르담 미사곡>은 1364년 5월 10일 랭스에서 거행된 샤를 5세의 대관식을 위해 작곡되었다고 알려졌지만 봉헌미사곡일 가능성이 높다. 학자들은 미사곡이 성모 숭배와 관련된 예식용 곡들을 근거로 했기에"노트르담의 de Notre-Dame"라는 명칭이 유래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기욤은 세속적인 작품에서도 성모 숭배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자신이 사랑하는 귀부인을 지칭하는 모든 아름다운 senhal Toute Belle 역시 성모에 대한 최고의 라틴어 칭호인 온통 아름다운 tota pulchra 을 반영한 것이다... 획일적인 개념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노트르담 미사곡>의 형식은 부분적으로 변화를 거듭했다. 키리에 Kyrie(불쌍히 여기소서), 상투스 Sanctus(거룩하시도다), 아누스 데이 Agnus Dei (하느님의 어린 양)에 기욤은 아이소 리듬의 모네트(형식)서체와 매우 흡사한 서체를 사용했다... 반대로 대영광송과 신앙 고백의 글들은 상당히 직선적이었으며 콘둑투스 Conductus를 떠올리게 하는 음절 양식을 보여주었다. 대영광송과 신앙 고백은 아리소 리듬의 아멘 Amen으로 끝난다. (p980)'


 노트르담 악파였던 페로탱과 마쇼를 연결시켜 주는 고리가 노트르담 대성당이라 생각됩니다. 노트르담 대성당의 건축사적 의미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 같네요.

'초기 고딕에서 축적된 기술을 집대성하여 수직성을 향해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일단의 성직자들과 장인들은 당시까지 건축된 건물들에서 자신들의 수직 욕망을 실현시켜줄 기술적 가능성을 보았다. 그러나 기술발전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초기 고딕의 기술만으로는 분명한 한계도 있었다... 파리 노트르담은 과시욕과 기하학적 정형성의 두 가지 대표적 특징을 가졌다. 이 둘은 일정한 상반성을 가졌다. 이 가운데 과시욕이 더 두드러졌다. 기하학적 정형성은 그 자체로 독립된 가치로 추구되기도 했지만 수직성을 위한 구조 체계가 잘 작동하게 해주는 뒷받침의 성격이 더 강했다. 노트르담의 기하학적 정형성은 랑에서 안착된 고전적 정돈감을 구조성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었다. 이곳에서도 구조 발전을 통한 과시욕과 고전적 안정감이라는 두 가지 경향이 함께 나타났다. 이 가운데 노트르담을 대표하는 것은 과시욕이었다. 기독교적 욕망이 다시 불붙으면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 흔적이 실내외 곳곳에서 나타났다.(p408)'


 음악사적으로는 신의 영광을 찬미하는 노래인 미사곡이 건축사적으로는 인간의 과시욕을 대표하는 노트르담 성당에서 불려졌다는 것에서 아이러니를 느끼게 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건축가는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기 위한 열망으로 성당을 지었을 것을 생각하면, '욕심'과 '열정'의 경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러한 열망을 표현한 문학작품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 1802 ~ 1885)의 <노틀담의 꼽추 Notre-Dame de Paris>도 같이 이야기하면 좋겠지만, 제가 애니메이션 으로밖에 접하지 않아 여기까지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르빈 파노프스키(Erwin Panofsky)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에 언급된 노트르담의 건축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에서 다룬 노트르담 이야기를 줄여야할 것 같습니다. (아래 사진 출처 : 위키백과)


' 노트르담의 건축가는 오분식 네이브를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행운아였다. 그는 정직하게 이 사실을 무시하지 않으면서도, 과감하게 중앙 부분에 비해 좌우 부분이 넓은 삼분식 파사드를 지었는데, 이로써 모든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다.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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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8 23: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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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9 00: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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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0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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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07: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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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0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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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0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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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1 12: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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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7-11-11 16:40   좋아요 1 | URL
저 역시 김영성님의 관심 덕분에 많은 힘을 얻습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사진에 관하여
수잔 손택 지음, 이재원 옮김 / 이후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사진에 관하여 On Photography>는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 ~ 2004)의 사진에 관한 에세이다. 이번 리뷰에서는 본문에 담긴 7편의 에세이의 내용 중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것에 초점을 두고 수전 손택의 사진관(寫眞觀)에 대해 살펴보자.


 1. 사진을 찍는다는 것


 수전 손택에게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사진 작가가 대상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며, 이를 통해 대상과 작가가 특정한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라고 서술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작가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존재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마치 상습적인 관음증 환자처럼 이 세계를 바라봄으로써 모든 사건의 의미를 대동소이하게 취급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 자체도 사건인데, 그것도 사진을 찍는 사람이 절대적인 권리를 갖고 일으키는 사건이다.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을 간섭하거나 침해할 수 있으며, 혹은 무시할 수도 있는 그런 권리를 갖고 말이다. 오늘날에는 카메라의 개입이 있어야 상황을 정확히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이다.(p29)'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대상 그 자체, (적어도 "멋진" 사진을 찍을 때까지라도) 지금 모습 그대로 변함 없이 존재하는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행위이며, 사진으로 찍어놓아야 할 만큼 그 피사체를 흥미롭게 만들어주는 그 무엇인가(예컨대 남에게는 고통이나 불행이더라도 내게는 흥미로움을 주는 상황)와 공모하는 행위인 것이다.(p31)'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그 대상을 중시한다는 것이다. 확실히 아름다워질 수 없는 피사체란 존재하지 않는다. 게다가 피사체에 뭔가 특별한 가치를 부여하려는 사진 고유의 경향을 막아낼 방법도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가치 자체의 의미는 변할 수도 있다.(p54)'


 '오늘날은 향수를 느낄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그리고 사진이 이 향수를 적극적으로 부추기고 있다. 사진은 애수가 깃들어 있는 예술, 황혼의 예술이다... 모든 사진은 메멘토 모리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또는 사물)의 죽음, 연약함, 무상함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런 순간을 정확히 베어내 꽁꽁 얼려 놓는 식으로, 모든 사진은 속절없이 흘러가 버리는 시간을 증언해 준다.(p35)'


 관심있는 대상과 관계를 맺는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주체가 되는 '사진작가'와 대상인 '피사체'가 필요하며, 이들을 연관시키는 구체적인 도구인 '카메라'가 필요하다. 이들의 관계를 살펴보기 전에 '사진 Phtograpty'의 특성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사진을 찍는다'를 이해하는 것을  먼저 정리해 보자.


2. 사진의 특성


 사진은 필름을 넣은 사진기로 물체를 찍은 뒤에, 그 필름을 이용하여 특수한 종이에 재현한 영상이다. (출처 : 구글 국어사전) 사진이 '실재에 대한 증명'자료가 되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진'이 객관적이며, 진실된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된다. 그렇지만, 사진 자체가 현실을 담는다고 해도, 사진작가가 '의미있는 대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사진에 담지 않는다면 그 현실은 사진으로 남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사진 속의 세계는 작가의 의식과 취향이 묻어나는 주관적인 세계다. 또한, 사진으로 남는 이미지는 '연속된 상황'에서의 한 순간이 아닌, 그 순간 자체로 생명력을 가지게 된다는 점에서도 사진과 현실의 세계는 같은 듯 다른 세계가 된다.


 '사진은 증명해 준다.(p20)... 회화나 산문을 통한 묘사가 세밀히 선택된 해석 이상이 될 수는 없는 반면, 사진은 세밀히 선택된 투명성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사진이 진실하기 때문에 영향력 있고, 관심도 끌며, 매력적이라고 가정한다... 그렇지만,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현실을 거울처럼 비추는 데에만 관심을 가지려 해도, 은밀히 작동하는 자신의 취향과 의식에서까지 벗어날 수는 없다.(p21)'


 '움직이는 이미지보다는 사진이 기억하기 훨씬 쉽다. 사진은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시간의 어느 한 순간을 깔끔하게 포착해 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텔레비전이 흘려보내는 이미지는 신중히 선택된 것이 아니다. 그래서 뒤의 이미지가 앞의 이미지를 곧장 지워버리곤 한다. 그러나 스틸 사진은 어떤 순간을 특권화해 놓은 것으로서, 그 순간을 계속 간직한 채 몇 번이고 다시 볼 수 있는 얇은 사물로 뒤바꿔 버린다.(p39)'


 '사진에게 진실인 것은 사진을 통해서 본 세계에서도 진실이다(p123)... 사진의 우발성은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다. 다시 말해서, 사진으로 된 증거의 자의성은 현실이란 원래 분류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해준다.(p125)'


 '사진은 실제와 가장 가깝고, 그렇기 때문에 매우 쉽다는 별로 좋을 것도 없는 명성을 얻고 있는 모방 예술이다. 사실, 사진은 유서 깊은 다른 예술이 경쟁에서 줄줄이 낙오되는 와중에서도 마치 초현실주의처럼 지난 1백여 년간 현대의 감수성을 장엄하게 장악해왔던 유일무이한 예술이다.(p87)'


3. '사진을 찍는다'의 주체 : 사진작가 


 사진작가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기준으로 현실을 해석하게 된다. 비록, 다른 예술 작품보다 사진작가의 역할은 제한적이지만, 제한된 역할 속에서 은밀하게 자신의 세계관을 표현하게 된다.


[사진] 사진작가 (출처 : 스마트인컴)


 '사진작가는 사진이 어떻게 보여야 할지를 결정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가 선호하는 노출 방식이 있기 때문에, 피사체에 특정한 기준을 들이대기 마련이다. 카메라는 현실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포착한다는 생각도 존재하지만, 사진도 회화나 데생처럼 이 세계를 해석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진으로 기록을 남기는 행위의 수동성(그리고 편재성), 바로 이것이야말로 사진이 우리에게 건네주는 "메세지"이자 사진이 드러내놓는 공격성이다.(p23)'


 '사진작가들의 말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객관적 세계를 무한히 전유할 수 있게 해주는 기법이자 단 하나뿐인 자아의 유아론적일수밖에 없는 [자기]표현이다. 사진이 이미 존재하는 현실을 묘사한다면, 카메라는 그 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 드러난 현실은 [카메라로 그 현실을 찍은] 개인의 기질을 보여준다. 현실의 어느 면을 잘라냈는지에 따라 기질이 드러나는 것이다.(p180)


 '우리는 사진에 찍힌 피사체를 잘 살펴봐야만, 사진작가가 [피사체 안에서] 매우 조심스레 존재감을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사진작가들이 각각 특정 피사체를 독점하지 않는 한) 뛰어난 사진작가의 사진과 그렇지 않은 사진을 구별하기 어렵다는 데에 포토저널리즘이 성공한 이유가 있다. 사진은 개성있는 예술가의 의식을 보여주는 이미지가 아니라 이 세상을 보여주는 이미지(혹은 복제)로서 힘을 갖는다.(p194)'


 '사진은 그 어떤 이미지-체계가 누렸던 것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갖고 있다. 왜냐하면 예전의 이미지-체계와는 달리 사진은 이미지 제작자에게 의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지 제작과정을 준비하고 주도하는 데 사진작가가 제아무리 신중하게 개입한다고 하더라도 이 과정 자체는 여전히 광학적, 화학적(혹은 전자공학적) 과정의 일종으로서 자동적으로 진행되며, 현실의 모습을 좀더 정확하게, 쓸모 있게 묘사하려면 불가피하게 기계의 힘을 빌려서 수정되어야 하는 과장인 것이다.(p225)'


4.  '사진을 찍는다'의 대상 : 피사체


  저 밖에 존재하는 세계와 피사체는 카메라를 통해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의미를 부여받는다. 비록, 현실과 사진 속의 세계와의 관계가 사진작가에 의해 맺어진 관계이기에 왜곡된 모습이지만, 바로 이러한 모습을 우리는 기대하고 사진의 매력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다만, 이렇게 표현된 모습이 구체적인 (정치적인, 경제적인)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는 이데올로기(이념)가 그 안에 담겨 있을 때, 비로소 그 사진은 '사건'이 될 수 있다. 


[사진] 피사체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ssung0908&logNo=50137211586&categoryNo=94&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사진은 필연적으로 현실과 모종의 거래를 한다. 이 세계는 "저밖에" 있기 때문에 카메라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삶이나 사회의 특정한 순간을 정지시켜 놓은 사진이 일련의 과정, 예컨대 시간에 따라 흘러갈 수밖에 없는 삶이나 사회와 상반된 형태를 갖고 있듯이 말이다. 사진에 찍힌 세계는 늘 똑같은 모습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스틸 사진이 영화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듯이, 현실 세계와 부정확한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다. 삶에서는 모든 순간이 중요하거나, 빛을 발하거나, 영원히 고정되는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사진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한다. 사진은 단 한 순간에 우리로 하여금 예술품을 감정하는 사람처럼 세계와 관계를 맺게 만들면서도 이 세계를 아무렇게나 받아들이게 만들이기에 우리를 매혹하며 사로잡는다.(p127)


 '사람들은 경험한다는 것을 바라본다는 것으로 자꾸 축소하려 한다. 결국 오늘날에는 경험한다는 것이 그 경험을 사진을 찍는다는 것과 똑같아져 버렸고, 공개 행사에 참여한다는 것이 그 행사를 사진으로 본다는 것과 점점 더 비슷해져 버렸다... 오늘날에는 모든 것들이 결국 사진에 찍히기 위해서 존재하게 되었다.(p48)'


  '한 사건이 어떤 의미를 갖게 되더라도, 정확히 말해서 사진으로 찍을 만한 가치가 있는 그 무엇인가가 되더라도, 그 사건을 사건으로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요소는 (가장 넓은 의미의) 이데올로기이다... 사진이 도덕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느냐는 그에 상응하는 정치 의식이존재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p41)'


5. '사진을 찍는다'의 도구 : 카메라


 '카메라는 (정밀 사진과 원격 탐사를 통해서) 본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도록 해주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다. 카메라는 무엇을 보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는 보는 행위를 부추기며, 보는 행위 자체를 변화시킨다.(p142)'


[사진] 카메라 (출처 : https://www.popco.net/zboard/view.php?id=ur_dica&no=10007)


6. 사진의 해석 : 이미지-체계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사용해서 '피사체'를 사진으로 옮긴 과정이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였다면, 이에 대한 해석은 감상자의 몫이 된다. 비록, 사진이 현실을 보여준다고 하지만 사진에 대한 이해는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을 때부터 시작됨을 저자는 <사진에 관하여>에서 말하고 있다.


  '현실에 끊임없이 토를 다는 사진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매하게 되면 모든 것을 동질화시킬 수밖에 없으므로. 사진은 아름다운 형상을 드러낼 때 못지 않게 무엇인가를 보도할 때에도 변형된다. 사진은 인간의 물성 物性과 사물의 인성 人性을 들춰냄으로써 현실을 일종의 동어반복 같은 것으로 뒤바꿔 버린다.(p165)... 그렇지만 정작 사진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는다.  그냥 확인해줄 뿐... 사진의 힘은 우리로 하여금 [사진에 포착된] 어떤 한 순간, 그것도 시간의 정상적 흐름이 곧 제자리로 돌려놓을 순간을 마음껏 검토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데에 있다.(p166)'


  '카메라가 기록해 놓은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세상을 알게 되리라, 사진이 함축하는 바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은 이와 정반대의 일이다. 이해라는 것은 세계를 보이는 대로 보지 않을 때 비로소 시작된다. 즉,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p47)'


 '사실상 사진의 힘은 이미지와 사물, 복제물과 원본과의 차이에 따라서 우리의 체험을 반영하기 위해서 현실을 점점 더 근사하지 않게 만드는 힘, 즉 플라톤의 철학을 소멸시키는 힘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진의 힘은 이미지에 대한 플라톤의 파괴적인 태도와 잘 어울린다. 플라톤은 이미지란 무상하며 별로 유익하지도 않으며, 비 非물직적이며 현실의 사물과 함께 존재하는 미망에 지나지 않는다고 과소 평가했다.(p256)'


 <사진에 관하여>는 이처럼 '사진을 찍는다'는 행위와 이에 대한 해석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수전 손택은 여기 7편의 에세이를 통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사진과 회화와의 공통점과 차이점, 20세기 복제 시대와 사진, 미국 문화와 사진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 에세이 속에서 우리는 여러 관점에서 '사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할 수 있다. 사진 전문 작가 뿐 아니라, 개인이 휴대한 스마트폰을 통해 이제는 '사진찍기'가 일상이 된 요즘 <사진에 관하여>는 사진에 관심있는 이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유용한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 생각된다.


PS. <사진에 관하여> 속에서 우리는 수잔 손택의 후대 저서인 <타인의 고통 Regarding the pain of others>과 연계되는 구절을 만날 수 있다. 다음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제는 <타인의 고통>으로 넘어가도록 하자.


 '고통을 받는다는 것과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보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고통의 이미지가 찍힌 사진을 본다고 해서 양심이나 인정을 베풀 수 있는 능력이 반드시 더 강해지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더 망가져 버릴 수도 있다... 한번 그런 이미지를 보게 되면 더 많은 이미지를 보려고 이곳저곳 두리번거리게 되기 마련이다. 우리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만드는 이미지, 우리를 완전히 마비시키는 그런 이미지를.(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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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6: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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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6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20: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7-11-06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7-11-08 1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려주신 강렬한 두 작품을 보며..

‘사진을 찍는다는 것‘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작품으로 그 답을 보네요

겨울호랑이 2017-11-08 14:15   좋아요 2 | URL
^^: 부족한 글에 항상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와같다면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프레이야 2018-01-03 12: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멋진 리뷰를 이제 보네요.
늦었지만 당선 축하드려요.

겨울호랑이 2018-01-03 12:36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프레이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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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 탈무드>는 제목과는 달리 솔로몬(Solomon, BC 971 ~ BC 931)왕과는 큰 관계가 없는 책이다. 탈무드 문헌 자체가 방대하다보니, 한 권 안에 모든 내용을 담는다는 시도 자체가 불가능한 작업이다. 저자 역시 이러한 점을 인정하고 <솔로몬 탈무드>를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솔로몬 탈무드>는 방대한 탈무드의 내용보다는 탈무드의 배경 지식 중심으로 책을 구성했기 때문에, 유대 민족과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유용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 깊이 있는 삶의 지혜를 느끼기 위해서라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많은 내용이 유대 문헌의 특징, 성공한 유대인 사례, 유대인의 인생철학, 유대인 교육 방법 등을 다루기에 자기계발서 / 비즈니스 경영서적의 분위기를 많이 느끼게 된다. 때문에, 페이지는 1,000여쪽에 이르지만 크게 어려운 내용이 없어 쉽게 읽을 수 있는 편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와 닿는 부분은 '유대교'와 '그리스도교(기독교)의 차이점을 설명한 부분이다. 기독교 사상에 바탕을 둔 많은 자기 계발서와 신앙서적들 중 상당수가 탈무드의 구절을 출전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구약성경(토라)의 내용이 공통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기독교 사상에 익숙한 우리가 <탈무드>를 쓴 유대인의 관점에서 <탈무드>를 바라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물음을 해본 적도, 이에 대답을 한 적도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솔로몬 탈무드>에서는 삶에 대한 유대인과 기독교인의 차이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고 있다. (사실, 이런 관점으로 접근한다면 구약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슬람 문헌도 언급 될만하지만 아직까지 이슬람의 <꾸란>의 내용을 가져온 서적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솔로몬 탈무드>에서 유대교인과 그리스도교인의 다른 삶의 방식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그리스도교 신학자 제임스 파크스 박사는 이 점에 대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의 차이를 대비시켜 이렇게 썼다. "유대교에서는 신이 인간에게 '나의 창조계획을 성취해라'고 명하고, 인간은 "예"라고 대답한다. 그리스도교에서 인간은 하느님에게 이렇게 대답한다. "당신의 창조과업을 성취해 주십시오. 어리석고 죄 많은 우리들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그리고 하느님은 "그래, 그렇게 하지"라고 대답하신다"는 것이다.(p499)'


 그리고, 이러한 유대교인과 기독교인의 삶에 대한 차이는 마사다의 청년 다윗 이야기에서 더욱 극적으로 표현된다. 그전에 먼저 마사다(Masada) 항쟁이 무엇인지 알아보자.


[사진] 마사다 (출처 : 위키백과)

사다(히브리어 מצדה, , 요새라는 뜻)는 이스라엘 남쪽, 유대사막 동쪽에 우뚝솟은 거대한 바위 절벽에 자리잡은 고대의 왕궁이자 요새를 말한다. AD 73 제1차 유대-로마 전쟁 당시 끝까지 로마군에 항거하던 유대인 저항군이 로마군의 공격에 패배가 임박하자 포로가 되지 않기 위해 전원 자살한 것으로 유명하다. 현재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 중에 하나이며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AD 73에 드디어 공성을 위한 성채가 마련되자 로마군은 공성기를 이용해 성벽일부를 깨뜨리고 요새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식량창고를 제외한 요새안의 모든 건물이 방화로 불에 탔고 엄청난 수의 자살한 시체들만 즐비했다... 다른 건물을 모두 불에 태우면서도 식량창고만은 남긴 것은 최후까지 자신들이 노예가 되지 않으려고 자살한 것이지 식량이 없거나 죽을 수밖에 없어서 자살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목적이었다. 마사다에서 살아남은 것은 여자 두 명과 다섯 명의 아이들뿐이며 로마군은 그 무서운 자살 광경에 겁을 먹고 그들을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위키백과]


 '운명은 정해져 있었다. 야훼만이 우리를 구할 수 있었지만, 야훼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인간에게는 끝까지 선택의 여지가 주어져 있다. 우리는 모두 죽게 되었지만, 똑같은 모양으로 죽을 필요는 없다. 더구나 짐승처럼 죽어서야 되겠는가? 야훼가 우리를 불행에 떨어뜨렸지만, 우리를 타락시킨 것은 아니었다.(p517)..."우리는 우리를, 아내와 아이들을 죽여야 한다.... 소중한 것은 목숨이 아니다. 영혼이다. 야훼는 우리에게 영혼을 주셨다. 만일 아내와 아이들을 노예로 만드는 길을 택한다면, 야훼가 주신 영혼을 더럽히는 것이 되고 만다.(p518) -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 AD 37 ~ 100) 의 <유대전기> 중 -'

 마사다 항쟁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유대인들의 모습에서 기독교와 같은 경전(<구약성경>)을 공유하지만, 사상이 다른 이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문헌에 나타난 글에 묘사된 신(神)에 대한 태도는 보다 적극적이며, 주체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다음에 언급된 기독교의 황금률 (黃金律,Golden Rule)인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에 대한 유대교적 해석 등은 우리에게 기독교와는 다른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준다.

'"내가 싫어하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마라."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는 이런 부정 형식으로 말햇을 것으로 생각된다.... 부정형 표현이었다고 하는 이 주장은 어디까지나 가설이다. 하지만 이 가설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정형으로 하기 위한 이유가 2가지 있다. 첫째 이유는 본디 부정 표현을 좋아하는 것이 유대인의 경향이라는 점이다. 토라의 중심에 있는 10계명(출애굽기 20장 2 ~17절)을 보면 그 중의 셋이 긍정형, 나머지 일곱이 부정형으로 씌여져 있다. 특히 대인 관계에 관한 조문(6~ 10계)은 모두 부정문이다. 또 구약 외전(外典)인 <토비트>에는 인용구와 똑같은 내용으로 부정형 표현을 볼 수 있다.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누구에게도 해서는 안 된다."(p223)'


 다만, 아쉽게도 책의 깊이면에서 <솔로몬 탈무드> 전체에서 보다 깊이 있는 차이 해석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며, 내용의 전개면에서 단순히 '유대인은 어떻다'라는 유대인의 특성을 전후 연관없이 나열하고 있는 점이 한계로 느껴진다. 이런 면에서 <솔로몬의 탈무드>는 유대인의 문화를 소개하는 자기 계발서로서는 어느 정도 내용이 있지만,  '솔로몬'과 '탈무드'라는 말 속에서 보다 심오한 의미를 기대했던 이들에게는 부족한 부분이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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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7: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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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7: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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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7: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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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7: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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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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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0 1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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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0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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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31 09: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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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1 07: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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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01 08: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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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해받지 못한 가치, 잊힌 영예


 '수세기 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인물의 비밀을 우연히 알아냈을 때의 심정보다 더 아름다운 감정이 있을까? (중략) 그러한 인물들 중 한 사람이 된다면 그거야말로 유일하게 가치 있는 명예다.(p310)'


 '정말로 재능 있는 예술가라면 생전에 소수의 팬들에게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는 드물겠죠. 하지만 순전히 물질적인 요소가 작품의 운명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해요... 이처럼 천재성이 깃든 작품일지라도 그 작품의 운명은 작품을 담고 있는 사물의 수명과 관계가 있습니다. 어떤 작품들은 그 저자들의 이름과 함께 영원히 소실되었죠. 그런 점도 감안해야 합니다. 잃어버린 보물의 수수께끼를 두고 왈가왈부해봤자 소용없어요. 이해받지 못한 가치, 잊힌 영예는 또 별개의 문제랍니다.(p311)'


2.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음악들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1797 ~ 1828) 사망 당시 그의 훌륭한 교향곡들은 미발표 상태였습니다. 슈베르트 본인은 자기 교향곡이 연주되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리지도 못한 것입니다. 하지만 빈의 대학생들과 젊은 여공들은 슈베르트의 가곡을 즐겨 불렀죠. 그들이 프라터에서 종종 마주쳤던 가난뱅이 청년이 그 노래를 만들었다는 것도, 그 청년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노래만 불렀던 것입니다.(p321)'



'정답은 구노(Charles-François Gounod, 1818 ~ 1893)에요. <파우스트>에서 병사들의 행진을 만든 구노... <라 페르방슈 La pervenche>! 할머니들의 사진첩 속에 고이 잠든 사랑스러운 음악이죠! 그 잠을 깨울 때의 감동이란!(p318)'



'황홀하네요. 고대 선법의 샘물을 마시고 영원한 젊음을 누리는 화성이랄까요... 에르네스트 쇼송(Ernest Chausson, 1855 ~ 1899)의 <헤베 Hebe>랍니다.(p319)'



'이건 유명한 작품이에요. 브람스(Johannes Brahms1833 ~ 1897)의 <바이올린, 호른, 피아노를 위한 3중주>아닙니까. 내 생각엔 조예가 그리 깊지 않은 음악 애호가도...(p320)'


3. <성냥팔이 소녀> : 우리는 음악가들이 느꼈던 것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음악가 또는 알려지지 않은 아름다운 음악들에 대해 생각하면서, 동화 <성냥팔이 소녀>가 생각해 봅니다. 추위를 이기기 위해 성냥팔이 소녀는 성냥불을 켜고, 그 속에서 자신을 사랑해주던 유일한 사람인 할머니를 발견합니다.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은 싸늘하게 식은 소녀의 시체를 발견하지만, 결코 소녀가 바라본 것은 알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소녀는 다시 성냥불을 켰다. 그러자 주위가 환해지면서 불빛 속에 할머니가 나타났다. 할머니는 온화하고 다정한 얼굴로 서 계셨다... 소녀는 남아 있는 성냥 더미에 불을 붙였다. 할머니를 붙잡아 두고 싶었던 것이다. 성냥 더미에 불이 붙자 주위가 대낮보다 더 환해졌다.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거대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할머니는 소녀를 품에 안고 밝은 빛을 내며 지구 너머 먼 곳으로 아주 높이 올라갔다. 그곳에는 추위도 배고픔도 고통도 없었다.(p347)'


 '다음날 새벽, 어슴푸레한 빛을 받으며 길모퉁이에 한 가엾은 소녀가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뺨은 창백했지만 입가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바로 한 해가 저물어 가는 마지막 날 밤에 얼어죽은 소녀였다. 소녀는 타 버린 성냥다발을 손에 쥔 채 시체가 되어 꼼짝않고 앉아 있었다. "쯧쯧 몸을 녹이려고 했던 게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으나 소녀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들을 보았는지는 아무도 몰랐다.(p348)


 오전에 예술가의 고독(외로움)에 대해 이웃분이신 유레카님과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알려지지 않은 외로움 속에서 치열하게 아름다움(美)을 추구하는 예술가들. 성냥팔이 소녀처럼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음악가들)이 느낀 감정을 우리는 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런지...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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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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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0-29 22: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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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2: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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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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