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은 청동기 시대를 배경으로한 '고조선 古朝鮮'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청동기(靑銅器)와 고인돌(支石墓)로 대표되는 이 시대에 대해 우리는 일반적으로 잘 알지 못한다. 이 시대에 관심이 있다고 해도 그  관심은 고조선의 강역(疆域)이 어디까지인지, 중국 왕조와 고조선의 관계는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에 그친다. 물론 이러한 주제가 중요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그 시대를 살았던 일반인들의 삶이 진정한 우리의 역사가 아닐런지. 그런 점을 조명했다는 점에서 <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이 주는 의미는 크다고 여겨진다. 2권의 내용을 통해서 고조선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모습을 우리는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다. '생생하게 확인'한다는 표현이 다소 진부하지만, 이번 페이퍼에서는 고조선 생활사와 더불어 시각적으로 전달된 정보와 문자적으로 전달되는 정보가 어떻게 다르게 다가오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려 한다. 고조선의 의(衣), 식(食), 주(住)에 대해<한국생활사박물관> 2권에 그려진 그림과 함께 우리나라 고조선 연구가인 윤내현 교수의 <고조선 연구>에서 생활사 내용을 살펴보자.


1. 고조선의 의(衣)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부여와 고조선 관리의 정장(p45)


 '<삼국지> <동이전> <부여전>에는, "(부여 사람들은)국내에 있을 때의 의복은 흰색을 숭상하며 흰 베로 만든 큰 소매 달린 도포와 바지를 입고 가죽신을 신는다."고 했는데, 부여는 원래 고조선의 거수국이었으므로 부여인들이 입었던 큰 소매 달린 도포는 고조선 때부터 입었던 두루마기 같은 겉옷이었을 것이다... <후한서> <동이열전>에는 "(예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곡령을 입는데 남자는 넓이가 여러 치 되는 은화(銀花)를 옷에 꿰매어 장식한다"... 이로 보아 고조선 사람들은 목둘레의 깃을 둥글게 만든 옷에 은화를 장식했을 것임을 알 수 있다.(p298)...고조선 사람들은 모자를 즐겨 썼던 것으로 보인다. 서포항 유적의 흙인형 머리 위는 수평을 이루어 양쪽 옆으로 넓게 퍼지고 양쪽의 모서리는 각을 이루고 있어 고깔을 쓴 것처럼 보인다.(p299)' <고조선 연구(하)>


2. 고조선의 식(食)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고조선의 식생활(p40)


 '기자가 망명했던 서기전 12세기에 고조선의 전민은 대나무나 나무로 만든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었음을 알 수 있다. 전민(田民)은 농사를 지으며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므로 음식을 그릇에 담아 먹는 생활 풍습이 고조선의 농민 사회에까지 널리 보급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p309)... 고조선에서는 청동이나 뼈보다는 대나무 또는 나무를 이용한 나무를 이용한 숟가락이 더 많이 보급되어 있었을 것이지만, 썩어 없어져 유물로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p311)... 고조선에서는 벼, 보리, 조, 기장, 콩, 팥, 수수, 피 등의 오곡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곡물이 재배되었다... 고조선 사람들의 음식은 익히거나 끓인 것이 주류를 이루었겠지만 쪄서 먹기도 했다... 고조선 사람들은 이미 소금을 조미료로 사용했을 것이다.(p312)<고조선 연구(하)>


3. 고조선의 주(住)


[그림] 한국생활사 박물관 : 언덕마을의 삶(p39)


 '고조선의 농촌 주택은 지상식 건물도 일부 있었으나 대개 지하 50 ~ 60센티미터 정도로 깊지 않은 반지하 움집이었으며 대부분 직사각형이었다. 집자리 바닥의 면적은 80제곱미터의 큰 것과 10제급미터 이하의 아주 작은 것도 있었으나 20제곱미터 정도의 것이 가장 많았다. 고조선의 주택은 지붕을 짚이나 풀 따위로 이었고 그 위에 두텁게 진흙을 바르기도 했다. 고조선 사람들은 집자리를 단단하게 다진 후 그 위에 집을 지었다.(p343)<고조선 연구(하)>


 고조선사를 비롯한 고대사(古代史)는 기록된 문헌의 수도, 남아있는 유물의 수도 적기에 많은 연구과제가 남아있는 분야다. 또한, 많은 연구가 세력권과 이웃 나라와의 관계 등 정치, 외교, 군사 부문에서 한정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시대를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렵게 이루어진 연구 성과는 문자(Text)로 기록되어 일반인들의 관심으로부터 멀어진 현실 속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2권은 충실하게 시각적으로 당대의 모습을 복원했음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시리즈는 어린이와 청소년의 역사자료로서도 유용하지만,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에게도 여러모로 유용한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한국생활사박물관>의 그림을 보면서 '애니메이션(animation)'과 '만화'가 문자로 구성된 책을 밀어내는 현실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이러한 현실은 사회가 복잡해지면, 생각하기 싫어하고 끈기가 부족한 세태의 변화로만 설명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언어(言語)가 가진 이중성과 모호성이 문학적인 아름다움을 주기도 하지만, 때로는 분명한 사실 전달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모호하다는 언어(문자)의 한계 대신 분명한 시각을 우리는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러한 '시각 선호' 성향은 최근의 현상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있어온 것임을 우리는 조지 버클리(George Berkeley, 1685 ~ 1753)의 <새로운 시각 이론에 관한 시론 An Essay Towards A New Theory of Vision>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120. 참된 시각 이론은 말로 설명하기 어렵다


이것들을 다루는데 언어는 불명료함과 혼란을 일으키며, 우리에게 잘못된 관념을 심어주기 쉽다. 언어는 사람들의 공통 개념과 선입관에 순응하기 때문에 대단히 완곡한 표현, 부정확한 용법, 그리고 (조심성 없는 독작에게는) 외관상의 모순 없이 있는 그대로의 정확한 진리를 거의 전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시각에 관해 써왔던 것을 이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할 사람은 누구나 이러저러한 구절이나 표현 방식에 사로잡히지 않고, 내 이야기의 전체 요점과 취지로부터 내 의미를 숨김없이 추측하며, 될 수 있는 대로 낱말에 얽매이지 않고 개념 자체를 있는 그대로 고려하며, 그 개념이 진리와 자신의 경험에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할 것을 단호하게 원한다.(p158)'


 인간이 느끼는 감각의 70~80%가 시각이라고 하니, 아마 '책의 시각화'는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추세인 것 같다. 하긴, 이미 1979년에 이미 음악 역시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 바뀌었으니, 책에서의 이러한 변화는 오히려 늦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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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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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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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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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14: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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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2-02 16:0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어제 눈이 와서 오늘은 날씨가 추울 줄 알았는데, 그래도 덜 추워서 다행이예요.
아마 고조선 시대에 살았다면, 추워서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2-02 21:03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님이 계신 곳에서는 어제 눈이 왔었군요. 제가 있는 곳은 비록 눈은 안왔지만 춥네요.ㅋ 고조선 시대에 있었다면 말씀하신 것처럼 추웠겠지만, 미세먼지는 없었을 것 같아요. 만약 선조들이 지금 우리 사는 곳으로 올 수 있다라면 ‘그 곳은 따뜻하긴한데, 눈과 목이 따끔거려 못 살겠어!‘라고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 서니데이님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with 다육이들)

2017-12-02 2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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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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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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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1: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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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
칼 마르크스 외 지음, 박종철출판사 편집부 엮음, 김세균 감수 / 박종철출판사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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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맑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저작선집 1>에 실린 여러 단편 중 가장 유명한 저작은 <공산주의당 선언 The Communist Manifesto (1847 ~ 1848)>일 것이다. 이 단편은 칼 맑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와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에 의해 쓰여진 선언문으로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공산주의라는 유령이.'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의 두 문장으로 유명하다. 이 두 문장 외에도 <공산주의당 선언>에는 많은 내용이 담겨있는데, 이번 리뷰에서는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봉건 사회의 몰락으로부터 생겨난 현대 부르주아 사회는 계급 대립을 폐기하지 못하였다. 부르주아 사회는 다만 새로운 계급들, 억압의 새로운 조건들, 투쟁의 새로운 형태들을 낡은 것들과 바꿔 놓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시대, 부르주아지의 시대는 계급 대립을 단순화시켰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사회 전체가 두 개의 커다란 적대적 진영으로, 서로 직접 대립하는 두 개의 커다른 계급들로 더욱더 분열되고 있다. :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로.(p401)'


1. 부르주아지(Bourgeoisie)와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


 <공산주의당 선언>에 의하면 부르주아지는 기존의 사회 관계를 파괴하고, 기존의 사회 관계를 금전 관계로 대체시켜 버렸다. 그리고, 끊임없이 세계를 부르주아지의 질서 속으로 편입시키면서 규모를 확장시켜 왔다.


  '부르주아지는 역사에서 극히 혁명적인 역할을 수행하였다. 부르주아지는 자신들이 지배권을 얻은 곳에서는, 모든 봉건적, 가부장제적, 목가적인 관계들을 파괴하였다.(p402)... 부르주아지는 가족 관계로부터 그 심금을 울리는 감상적 껍데기를 벗겨 버리고, 그것을 순전한 금전 관계로 되돌려 놓았다.(p403)'  


  '부르주아지는 세계 시장의 개발을 통해서 모든 나라들의 생산과 소비를 범세계적인 것으로 탈바꿈시켰다...부르주아지는 모든 생산도구들의 급속한 개선과 한없이 편리해진 교통에 의하여 모든 민족들을, 가장 미개한 민족들까지도 문명 속으로 끌어넣는다... 부르주아지는 농촌을 도시의 지배 아래 복속시켰다.(p404)... 부르주아지는 생산 수단, 소유 및 인구의 분산을 점점 더 폐기한다.(p405)'


 그렇지만, 이러한 부르주아지의 확장성은 '과잉 생산'이라는 한계점을 만났을 때, 오히려 자신의 질서에 독 毒이 된다. 한편, 프롤레타리아트는 기계화, 대량화 되는 생산 구조의 변화 속에서 점점 부속품화된다. 이러한 노동자의 모습을 우리는 찰리 채플린(Sir Charlie Chaplin, 1889 ~ 1977)의 <모던 타임스 Modern Times>(1936)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공황시에는, 이전의 모든 시기에는 어불성설로 보였을 하나의 사회적 전염병이 돌발한다- 과잉 생산이라는 전염병이... 왜 그런가? 그것은 사회가 너무 많은 문명, 너무 많은 생활 수단, 너무 많은 공업, 너무 많은 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 뜻에 맡겨져 있는 생산력들은 더 이상 부르주아적 소유 관계들의 촉진에 봉사하지 않는다.(p406)'


 '부르주아지는 자신에게 죽음을 가져올 무기들을 벼려 낸 것만이 아니라 ; 그들은 이 무기들을 쓸 사람들도 만들어 내었다 - 현대 노동자들, 프롤레타리아들을.(p406)... 프롤레타리아의 노동은 기계제의 확장 및 분업으로 말미암아 모든 자립적 성격을, 따라서 노동자들에게 주는 모든 매력을 상실하였다. 프롤레타리아는 오진 가장 간단하고, 가장 단조롭고,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손동작만을 요구받는 단순한 기계 부속품이 된다.(p407)'


[사진] 영화 모던 타임즈(출처 : 조인스 닷컴)


 노동가치가 저하되면서 노동자의 임금은 낮아지고, 저임금의 노동자로 대체된다. 또한, 대자본과의 경쟁을 견뎌내지 못한 기존 중상층 계급도 프롤레타리아트 계급으로 내려앉게 되고, 결국 사회는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로 양분화가 심화된다.


 '지금까지의 소중간 小中間 신분들, 즉 소공업가들, 소상인들과 소금리 생활자들, 수공업자들과 농민들 등의 이 모든 계급들은 프롤레타리아트로 전락하였는데, 이는 일부는 그들의 소자본이 대공업의 경영에 충분하지 않고, 더 큰 자본가들과 경쟁을 이겨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일부는 그들의 숙련이 새로운 생산 양식들에 의해 무가치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리하여 프롤레타리아트는 주민의 모든 계급들로부터 충원된다.(p408)


2. 자본주의 붕괴


  우리는 앞서 과잉생산으로 인해 부르주아의 지배가 위기에 빠지게 됨을 살펴봤다. 그리고, 맑스와 엥겔스는이러한 상황 속에서 점차 세력을 키우게 된 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해 부르주아 지배는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혁명 革命임을 주장한다.  <공산주의당 선언>이 말하는 혁명궐기문의 성격이 다음의 글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


 '한마디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현존의 사회 정치 상태를 반대하는 모든 혁명 운동을 지지한다. 이 모든 운동들 속에서 공산주의자들은, 그것이 더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든 덜 발전한 형태를 띠고 있든 소유 문제를 운동의 기본 문제로 내세운다. 끝으로 공산주의자들은 어디서나 모든 나라의 민주주의 정당들간의 결합과 합의를 위해 노력한다...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목적이 지금까지의 모든 사회 질서의 무력적 전복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다는 것을 공공연하게 선언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p433)'


3.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 (Post Capitalism)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꿈꾸었던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점차 세력을 불려나간 프롤레타리아트처럼 이들의 혁명은 '사적 소유의 철폐'부터 시작하여, 국가 단위로, 다시 세계단위의 연합체로 발전하게 된다. (맑스에게 국가는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억누르기 위한 통치기구이기에 국가 역시 타도 대상이 된다.)


 '공산주의를 특징짓는 것은 소유 일반의 폐지가 아니라 부르주아적 소유의 폐지이다. 그런데 현대의 부르주아적 사적 소유는 계급 대립에, 즉 한 계급에 의한 다른 계급들의 착취에 근거하는 생산물의 생산 및 전유의 최후의, 그리고 가장 완성된 표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공산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단 하나의 표현으로 집약할 수 있다. : 사적 소유의 철폐.(p413)'


 '만일 프롤레타리아트가 부르주아지에 대항하는 투쟁에서 필연적으로 계급으로 단결되고 혁명을 통해 스스로를 지배 계급으로 만들고, 또 지배 계급으로서 낡은 생산 관계들을 폭력적으로 폐기하게 된다면, 그들은 이 생산 관계들과 아울러 계급 대립의 존립 조건들과 계급 일반을 폐기하게 될 것이고, 또 이를 통해 계급으로서의 자기 자신의 지배도 폐기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인의 자유로운 발전이 만인의 자유로운 발전의 조건이 되는 하나의 연합체가 나타난다.(p421)'


 <공산주의당 선언> 속에서 우리는 당대의 상황을 '부르주아-프롤레타리아트'의 대립으로 규정한 맑스 사상의 체계와 함께 이를 위해 노동자들의 단결을 주장한 혁명가로서의 맑스, 엥겔스를 발견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90년대말 동유럽 공산국가들의 몰락을 통해 관심밖으로 멀어졌으나, 최근 신자유주의 新自由主義의 물결 속에서 자본의 집중과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는 요즘 우리의 현실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공산주의당 선언>속의 자본주의 붕괴 모습을 보다 상세히 알기 위해서는 칼 맑스, 엥겔스의 <자본>을 읽어야겠지만, 개략의 주장만을 알고 싶다면 <공산주의당 선언> 을 통해 전체 모습을 집작할 수 있어, 짧은 단편이지만 읽을만한 내용의 책이라 여겨진다. 다만, 개인적으로 맑스, 엥겔스에게 아쉬운 점이 하나 생긴다. 


4. 노동운동 그리고 소비자 운동


 맑스, 엥겔스는 노동자(프롤레타리아트)에 의한 단결과 혁명을 주장했지만, 그들의 다른 면을 볼 수는 없었을까? 노동자는 다른 한 면으로 '소비자'이기도 하다. 노동자는 자본가에게 '을 乙'의 위치에 서지만, 소비자는 자본가에게 '갑 甲'의 위치에 놓인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보다 성공적인 혁명을 위해서 맑스와 엥겔스는 '소비자 운동'을 내세웠어야 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를 생각해본다.


 그렇다고 <공산주의당 선언>에서 맑스와 엥겔스가 노동자가 소비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친 것은 아니다. 이는 다음의 문장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공장주에 의한 노동자의 착취가 끝나서 노동자가 자신의 임금을 현금으로 지불받게 되면, 부르주아지의 또 다른 부분들, 즉 집주인, 소매 상인, 전당포 영업자 등등이 그에게 달려든다.(p408)'


 거칠게 생각한다면, '소비 consumption'를 생산적 소비(산업적 소비)와 개인적 소비(비생산적 소비)로 나누고 새로운 재화를 생산하는 생산적 소비만 가치있는 것으로 규정한 맑스 사상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된다. 생산이 분배, 교환, 소비를 총괄한다는 그의 사상적 한계가 노동자의 다른 면인 소비자를 가렸고, 이를 통해 보다 불리한 위치에서 궐기해야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칼 맑스의 다른 저서 <정치경제학 비판 요강>과 <자본>을 정리할 때 살펴보도록 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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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0: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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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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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7-12-02 0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그때는 지금처럼 소비가 만연한 시대는 아녔으니까요. 소비는 부르주아지의 특권에 더 가까웠을 듯.
한국도 경제개발 할 때 거의 대부분 당장 의식주를 해결할 돈 벌기 바빴잖아요. 이후 소비의 물결은 8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이었죠. X세대 나오고 해외여행 자율화 등등~ 소비의 붐이 일었죠.
어디까지나 제 소견^^; <소비의 역사>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 자료 바탕은 어렵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12-02 08:35   좋아요 3 | URL
^^: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20세기 이후 대량 소비 시대가 열렸고, 소비자의 힘이 강조된 것도 그 이후인 것이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19세기 유럽 대룩에서의 산업혁명 초기 모직을 비록한 경공업 제품이 초기 자본주의 생산품임을 생각해보면, 의류의 최종소비자는 중공업제품과는 달리 결국 일반인들이 아니었을까 싶더군요. 옷은 누구나 입어야하니 소비자 역시 적지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AgalmA님 말씀처럼 그럼에도 소비가 관심을 받지 못한 다른 이유가 있겠지요. 그리고, 저는 또 하나의 과제를 안고 갑니다 ㅋㅋ

2017-12-02 21: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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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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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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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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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쉬나메(Kush Nama)는 페르시아의 서사시로 501년~504년, 1108년과 1111년 사이에 이란의 하킴 이란샨 아불 카이에 의해 쓰여진 신화 역사의 일부이다.' (출처 : 위키백과)


'쿠쉬나메는 7세기 중엽 통일신라 전후의 신라를 다룬 페르시아 구전 서사시이다. 이슬람 이전 시기 영웅 서사시의 형태를 띠고 있으며, 오랫동안 구전으로 내려오던 페르시아의 전통적인 서사시이다... 일반적으로 페르시아 서사시의 제목으로 선(善)과 정의(正義)의 화신인 영웅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쿠쉬나메의 쿠쉬는 폭압자이고 기이한 용모를 지닌 악의 대상으로 존재한다. 이 점이 쿠쉬나메의 독특한 설정이다.(p19)


페르시아 왕자 아비틴이 바실라(Basilla) 왕 태후르와 함께 중국과 싸움을 벌려 큰 승리를 거두게 되었고, 바실라의 공주 프라랑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는 내용의 <쿠쉬나메>는 1998년 발굴된 페르시아 서사시다. <쿠쉬나메>가 페르시아 서사시임에도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이슬람 전문가인 이희수 교수가 작품 속의 '바실라' 또는 '마친 Machin'이 '신라'일 개연성이 높다는 내용을 밝힌 이후일 것이다. 이희수 교수에 따르면 <쿠쉬나메>의 의의는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페르시아 문헌으로 된 신라 관련 자료는 극히 제한되어 있었다. 아랍 사료들이 대부분 통일신라 시대 한반도와 아랍 세계 간의 해상 교역 관계를 주로 다루는 데 비해, 쿠쉬나메는 삼국 시대 후반인 7세기 중엽 사산조 페르시아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 따라서 쿠쉬나메의 발굴과 해제는 신라와 사산조 페르시아의 정치적 관계는 물론, 한반도와 이슬람 초기 서아시아와의 새로운 관계 정립을 위한 유용한 내용들을 담고 있어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화 교류, 나아가 신라의 대외 관계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어 줄 것으로 기대한다.(p21)'


 이슬람 문헌 여러 곳에서 신라에 대한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어, 고대 실크로드를 통한 문명 교류사에 신라가 역할을 하였음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유적을 통해서도 페르시아 문화를 신라 유적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 석조 유물(입수쌍조문석조유물)도 원의 중앙 아래서 나무 한 줄기가 수직으로 올라가고 위에는 잎이 무성하며 수간(樹幹) 밑에는 수간 앞뒤에서 긴 목이 교차되어 있는 두 마리 새가 마주 보고 있는데, 머리 위에는 벼슬이 있고 굵고 긴 꼬리는 반원을 그리면서 위로 올라가 위의 나뭇잎에까지 이르고 있다.(p457)... 경주 지방에서 출토된 이 두 유물의 문양은 페르시아계 문양에 그 원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추측된다. 페르시아계 문양은 대체로 평면은 원형이고, 중앙에 나무가 수직으로 서 있으며, 나무 좌우에 동물을 배치하고 있고, 연주문대를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p458)' <고대문명교류사>


[사진] 입수쌍조문석조유물(立樹雙鳥文石造遺物) 문양 (출처 : http://m.blog.daum.net/yns7070314/8014209)


 문화적인 교류이외에도 여러 형태의 인적 교류가 있음을 문헌산으로로 확인되는데, 잘 알려져 있듯 '처용' 설화에서 처용 역시 아랍계라는 학설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경주 곳곳에 있는 무인상을 비롯한 석조상을 통해서 이국적인 면모를 풍기는 인물들을 우리는 만날 수 있다.


[사진] 경주 괘능에 있는 석조상( 출처 : http://yellow.kr/blog/?p=1277)

 

'동해 용(龍)이 기뻐하여 곧 일곱 아들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 덕을 찬양하고 춤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중 한 아들이 왕의 행차를 따라 서울에 들어와 왕의 정치를 보좌했는데, 그 이름을 처용(處容)이라 했다... 그의 아내가 몹시 아름다웠으므로 역신(疫神)이 그를 흠모해 사람으로 변신해서 밤중에 그의 집으로 갔다. 남몰래 그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했다. 처용이 밖에서 집에 돌아왔다가 잠자리에 두 사람이 있는 것을 보고는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물러났다.(p170)' <삼국유사 三國遺事> 처용랑(處容郞)과 망해사(望海寺) 중


 <쿠쉬나메>는 앞서 말한대로 발굴이 1998년에 이루어졌기 때문에,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 있지 않다. 그리고, 과연 '바실라'가 '신라'인가에 대한 반론 역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는 '신라'가 '바실라'라는 섬나라(<쿠쉬나메>에서 바실라는 섬이다)라는 공간 설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해본다. 서사시에는 다분히 작가의 창작이 들어가 있으므로, 이러한 작가의 상상에 당시 아랍세계에 알려져있던 '신라'라는 실크로드 끝에 있는 국가는 매력적인 소재로 작용되지 않았을까. 더구나, 작품 내용이 12세기까지 꾸준히 바뀌어 지금 전해온다면, 8세기 아랍세계와 중국(唐)과의 대립 역시 작품의 세계관 안에 녹아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지도] 탈라스 전투(The Battle of Talas, AD 751) (출처 : http://yellow.kr/blog/?p=1277)


 우리에게 고구려 유민 출신 고선지(高仙芝, ? ~ AD 756) 장군이 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탈라스 전투 등으로 아랍세계와 중국이 충돌이 본격화되었다면, 아랍인들에게 중국보다 더 멀리에 있는 어떤 나라가 자신들을 도와 중국을 물리친다는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러한 상상의 예로 기독교 유럽 세계의 '사제왕 요한'전설이 있다. 이슬람 세계에 포위된 유럽은 사제왕 요한이 세웠다는 아시아에 있는 기독교 국가가 있다는 희망 속에서 대항해시대(大航海時代)를 열어가게 된다. 그처럼, 중국과 부딪히게 된 이슬람 사람들 역시 중국 건너에 자신들의 형제 나라가 있다는 희망 속에서 이런 서사시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사제왕 요한(Presbyter Johannes) 전설은 중세 시대에 동방(東方) 어딘가에 거대하고 풍요로운 기독교 왕국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프레스터 존(Prester John)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사제왕 요한의 이야기는 12세기에서 17세기까지 유럽에서 유행했다. 동방의 무슬림과 온갖 이교도들의 나라 너머에 있다는 이 기독교 왕국에 대한 이야기는 기록에 따라 약간 다르지만, 중세 시대 유럽에서 유행하던 여러 판타지가 섞여있다. 전설에 따르면 사제왕 요한은 세 명의 동방 박사 중 한 명의 후손이며, 관대한 군주이며 덕을 갖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의 부유한 왕국은 청춘의 샘 같은 온갖 신기한 것들로 가득하며 에덴 동산에 맞닿아 있었다고 한다.


 사제왕 요한 신화의 궁극적인 목표는 사제왕 요한과 가톨릭 세계가 힘을 합해 이슬람을 협공하자는 것이었다. 에티오피아의 대패로 사제왕 요한의 신화는 사라졌다.'(출처 : 위키백과)


[사진] 사제왕 요한 전설 (출처 : 위키백과)


 <쿠쉬나메>는 페르시아 서사시이고, 수록된 작품은 신라와 관련된 부분만 추려서 옮긴 번역본이기에, 아쉬움이 많은 책이다. 그렇지만, 그 속에 남아있는 '신라의 향기'를 찾으려 읽다보면 흥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쿠쉬나메>와 유사하게, 페르시아 왕자와 중국 공주의 사랑을 다룬 푸치니(Giacomo Puccini, 1858 ~ 1924)의 오페라 <투란도트 Turandot> 중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공주는 잠못 이루고'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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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6: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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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17: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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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7-11-27 17: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너무 오래되어서 당사자에게 물어볼 수는 없겠지만, 이야기가 맞다면 처용은 정말 멀리서 왔네요.
어느 날 집에 잠깐 다녀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겠어요.^^;
겨울호랑이님,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7-11-27 17:05   좋아요 2 | URL
^^: 아마 동남아시아에서 시집온 신부들과 같은 느낌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네요.. 비행기도 없었던 옛날 멀리까지 교역을 하러 다니던 이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니데이님도 따뜻한 저녁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7-11-27 19:5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통일신라 때 페르시아와 교류가 많았단 이야기는 알았는데, 이런 얘기들까지 있었네요. ^^

겨울호랑이 2017-11-27 19:56   좋아요 1 | URL
^^: 네 저도 단편적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 고대사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2017-11-28 07: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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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8 08: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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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0: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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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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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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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9 08: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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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7-11-29 2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 유익한 글이라뉘!!^^
감사하게 잘 읽고 갑니다. 알라딘 측에서 보면 겨울호랑이 님같은 유저를 만난 건 큰 행운일 듯해요. 이런 유용하고 좋은 글을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으니, 알라딘은 참으로 복을 넝굴째 받아 먹는 거 같습니다.ㅎ

겨울호랑이 2017-11-29 22:27   좋아요 0 | URL
^^: 저야말로 제 글을 즐겁게 읽어주시는 yamoo님과 같은 이웃분들을 만날 수 있어 진심 행복합니다. yamoo님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7-11-30 13: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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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3: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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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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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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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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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30 14: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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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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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08: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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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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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2 22: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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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아이가 있다보니 한동안 영화관에 갈 기회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니 가족이 함께 영화관에 가고 있습니다. 물론, 그 기준은 아이 눈에 맞춰야겠지요. 덕분에 많은 애니메이션을 영화관에서 보게 되었습니다. 최근 본 애니메이션은 <부니베어>, <넛잡2>, <수퍼배드3> 그리고 오늘 본 <<래빗 스쿨> 등이 있습니다. 만화 영화를 보는 동안 동심으로 돌아가 평안하고 좋은 시간을 가졌으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물론, 아내와 아이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팝콘과 음료수를 마시는 시간을 가졌다는 면에서는 분명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다만. 영화에 대해 개인적으로 느꼈던 불편했던 부분이 있어 이를 정리해 봅니다. 먼저 영화를 안보신 분들을 위해 해당 영화들의 영화 예고편을 첨부합니다. 이들 영화들은 중국 자본이 투입된 영화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화 <부니베어>와 <넛잡2>의 공통된 주제는 '환경파괴'에 맞닿아 있습니다. 여기에 <부니베어>는 동양 전통 사상인 '효(孝)'를 접목시켜 부모님을 위한 명절 선물을 마련하려는 주인공이 겪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넛잡2>는 무분별한 도시 개발을 야생동물의 입장을 빌려 간접적으로 비판하고 있지요. "자연보호"가 환경 오염 해결이 심각한 현대의 과제라는 것에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고, 이러한 측면에서 이들 영화가 다루고 있는 주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만, 최근 들어 중국 자본이 투입된 애니메이션에서 환경 문제를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시기적으로 어느 정도의 '의도성'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의도성은 제19차 공산당 전당대회 내용 중 일부를 언급한 기사 내용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아래 URL은 해당 기사의 내용입니다. 


http://kr.ce.cn/sy/gd/201710/19/t20171019_2513683.shtml


최근 생태문명체제 개혁을 집권2기 주요 과제로 언급한 기사 내용 속에서 저는 앞서 본  두 개의 애니메이션이 떠올랐습니다. 환경 파괴에서 환경 보호로 가자는 이러한 움직임이 문제될 것이 없다라는 반론도 있을 수 있겠습니다만, 저는 개인적으로 헐리우드 자본에서 사용되는 '자유(freedom)' 와 '독립(independence)'라는 이념이 과도하게 사용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느끼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를 다룬 영화부터 현대사를 다룬 거의 모든 장르의 영화에 '자유'가 남발되는 현실 속에서 향후에는 '중국 자본'의 영향력 하에서 '환경보호' 가 같은 길을 가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진] 영화 '브레이브 하트'의 주인공 윌리엄 월레스의 죽음 장면(출처 : http://officen.kr/wegood/viewcontent.do?id=21&contentID=46&tab=company&boardType=welfare)


 이러한 최근 제작된 영화의 공통된 주제의식 '환경보호' 속의 정치적 의도성에 대한 의심 외에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여러가지를 느끼게 됩니다. 애니메이션의 기술적인 측면이나 컴퓨터 그래픽 등은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작품의 내용 전개 면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개연성이 부족하다거나, 흐름이 끊기는 한계점 또한 발견됩니다.(예를 들어 갑자기 캐릭터들이 쿵푸를 한다거나, 태극권을 뜬금없이 하는 등의 내용이 작품마다 묻어나오는데, 이러한 요소는 극중 몰입을 상당히 방해하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이는 중국이 2001년 WTO에 가입한 이후 20여년이 지나 G2의 한 축이 된 현재 기술적인 부분은 선진국 수준에 올라선 변화된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1966 ~ 1976)으로 인한 중국 인문 전통과의 단절이라는 한계점도 동시에 노출하고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향후 중국이 풀어나가야할 과제는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너무 나간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최근 중국자본이 헐리우드와 세계 영화계에 영향을 미치면서, 영화 중 중국배우들의 등장과 중국 배경이 이제는 낯설지 않은 현실이 되버렸습니다. 이처럼 과도하게 '중국 PPL'이 현실화 되다보니, 영화에 몰입을 방해하는 것에 대한 불만에 중국의 '생태문명건설'이 미국의 '자유' 처럼 또다른 문화 제국주의(文化 帝國主義)의 캐치프레이즈(catch-phrase)가 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가 더해지면서 앞뒤없이 글을 올려 봅니다. 그리고, 생각난 김에 중국의 현대사도 조만간 정리해 볼까하는 과제도 부여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칩니다.


[사진] 영화 <엑스맨 : 데이즈 오브 퓨처 패스트 X-Men : Days of Future Past>에 출연한 판빙빙

 (출처 : http://playwares.com/freeboard/4183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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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7-11-25 2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중국의 현대사 리뷰 기대합니다. ^^
근데 판빙빙은 넘 예뻐요. ㅋㅋ

겨울호랑이 2017-11-25 22:13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판빙빙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는 아직까지 「천녀유혼」의 왕조현이 제일 예뻤다는 생각이 듭니다. ㅋ 너무 오래전인가요 ㅋㅋ

이하라 2017-11-25 23: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수퍼히어로물들과 주먹왕 랄프라는 애니와 해피피트 1편을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의 매체들이 대중을 특히나 아이들에게 편향된 관점을 세뇌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봅니다. 다만 이젠 그 수위가 문제제기를 하는 쪽이 더 문제라고 몰릴 정도이니. 쉽게 타파할 수 있는 수준은 넘어선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17-11-25 23:57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수퍼히어로물들은 분명 그런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마블의 ‘캡틴 아메리카‘와 DC의 ‘수퍼맨‘, ‘원더우먼‘은 옷차림부터 미국을 상징해서, ‘미국=정의‘라는 패러다임을 심어주는 것 같습니다... 이하라님 말씀에도 어느 누구도 이런 구도에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서 작품의 세계관을 말하니 그 폐해가 심하다는 말밖에는 할 수 없네요...

이하라 2017-11-26 08:51   좋아요 2 | URL
미국=정의라는 패러다임도 문제지만 어벤져스 시리즈 중 울트론 이나 엑스맨아포칼립스의 경우 이 세계의 문제를 제기하는 편이 더한 문제를 가져오는 존재라는 편향을 보여주지요. 주먹왕랄프의 경우는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하는 쪽을 악으로 그려서 아이들에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하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 만족하는 체제순응적인 존재가 되기를 세뇌하고 있습니다. 해피피트1 역시도 문제는 근본부터가 다른 탁월한 존재들이 해결해 줄테니까 자신의 개성과 잠재력을 기르는 것이 나은 삶의 길이다는 세뇌가 이어집니다. 이러한 관념적 폭격들이 보통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겨울호랑이 2017-11-26 00:22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이하라님께서 말씀하신 작품을 다 못봤지만, 말씀하신 문제점이 작품에 내재되어 있을 가능성이 있으리라 여겨집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말씀하신 부분에 유념해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2017-11-26 0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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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6 07: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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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7-11-26 09: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만약 미국에서 축구가 대중적으로 인기 많은 스포츠이고, 미국 리그가 유럽 리그처럼 발전했으면, 중국은 ‘황사 머니‘를 쓰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중국의 행보는 ‘스포츠 제국주의‘에 가까워요.

겨울호랑이 2017-11-26 10:18   좋아요 0 | URL
그런 점도 있군요.. 제가 스포츠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그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네요. 그 부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2017-11-26 21: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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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7 07: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한국생활사박물관 : 선사생활관>은 선사시대(prehistoric age) 한반도에서 출토된 유물과 문화사적인 고찰을 통해 우리 선조들의 생활 모습을 재현한 책이다. 선사시대부터 최근의 남북한 생활상까지 총 12권에 걸친 시리즈물의 한 편인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보다 생생하게 선사(先史)시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다른 좋은 리뷰들이 많기에 책의 구성이나, 내용에 대한 우수성은 별도의 언급없이 넘어가도록 하자. 대신, 이번 페이퍼 속에서는 선사 시대의 '여가 leisure' 또는 '놀이 play'와 이의 현대적 의의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하루 일과의 끝, 긴 노동과 노동 사이의 여가에 벌이는 이 같은 유희와 축제를 통틀어 "놀이"라고 부르자. "일" 다음에 찾아오는 "놀이"는 인간 생활에 활력과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놀이는 단지 "일이 아닌 것"이 아니라 다음에 해야 할 "일"을 더욱 멋지게 해내기 위한 숨고르기이다.(p16)... 인간이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는 여가가 늘어난다는 것은 그만큼 창조적이고 풍부한 인간으로 거듭날 기회를 더 갖는다는 뜻이다. 인류의 역사는 어찌보면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노동 시간을 단축하고 자유로운 여가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역사였다고 할 수 있다.(p17)' <한국생활사박물관 : 선사생활관>


 <선사생활관>에서는 선사시대 생활을 크게 '노동'과 '놀이'로 구분한다.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면서, 고기잡이, 농경과 목축 등 식량획득 방법이 다양해짐에 따라 인간은 점차 삶의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여유를 가지게 된 인간은 '놀이'를 통해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가꾸게 된다. '여가'가 주는 정신적 의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에서도 찾을 수 있다.


 '전쟁의 목표는 평화이고 노동의 목표는 여가이므로, 개인이나 국가나 여가 선용에 필요한 탁월함을 갖고 있어야 한다. 여가 선용과 마음의 계발에 필요한 탁월함 중 어떤 것은 여가를 선용할 때 작동하고, 다른 것은 노동할 때 작동한다... 속담에 따르면, 노예에게는 여가가 없고, 용감하게 위험을 극복하지 못하는 자는 공격자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용기와 끈기는 노동에, 철학(philosophia)은 여가에, 절제와 정의감은 노동과 여가 모두에 필요한데, 여가를 즐기며 평화롭게 사는 자들에게는 특히 그러하다.(1334a11~23)'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 <정치학 Politika>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노동의 목표는 여가이기 때문에, 결국 '노동'과 '놀이'로 크게 구분된 선사시대 인류의 삶은 '놀이'를 추구한 삶이라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씨족공동체 생활을 했던 선사시대 인류에게 여가의 상당부분은 '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선사시대 인류의 모습을 미진한 단계로 볼 것인가? 그렇지 않다고 요한 하위징아는 말한다. 놀이가 단순한 유희(play)가 아니라, 공동체를 지지한 기반이었음을 우리는 <호모 루덴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류학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원시 부족의 사회 생활이 아곤적/대립적 공동체 구조에 바탕을 두고 있고 또 원시 부족의 정신세계가 이런 심오한 2원론과 일치한다. 우리는 그것의 흔적을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원시 부족은 프라트리아(phratriai)라고 하는 두 개의 상반되는 절반으로 나뉘어졌다.(p119)... 계절의 대(大) 축제 때 만나서 노래와 춤을 교대로 수행하는 의례적 형태로 구애를 하는 축제에서 서로 절반씩 나누어진 두 부족이나 남성과 여성의 그룹은 경쟁의 정신을 발휘하며 놀이를 하게 된다.(p120)... "겨울 축제 동안에 춤과 노래의 토너먼트에서 남자들의 모임 혹은 형제회(兄弟會)에 스며든 경쟁의 정신이 국가와 제도의 형성으로 나아가는 첫 걸음이었다.(p122)'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 ~ 1945) <호모 루덴스 Homo Ludens : A study of the play element in culture>


 '놀이'가 인간 사회의 모습이 제도적으로 바뀌는 첫 걸음이었음을 우리는 <호모 루덴스> 속에서 확인하게 된다. 이전 시대보다 체계화된 현대에 이르러서는 '놀이'에서 즐거움이 떨어져 나가게 되었지만, 현대의 '주5일'근무 체계에서 '2일'의 주말 휴식을 기다리는 우리 모습 속에서 '놀이'와 '여유'를 추구하는 선조들의 DNA를 발견하게 된다. 석기 시대를 우리는 주로 '야만'의 시대로 인식하고 있다. 자연의 산물 이상을 거의 생산하지 못하던 이 시대가 문명(文明)이전의 미개한 사회라는 우리의 선입견의 기원은 19세기로 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모건의 구분을 다음과 같이 일반화할 수 있다. 야만은 주로 자연이 만들어 놓은 산물 Naturprodukte을 획득하던 시기이며, 인간이 만든 생산물 Kunsprodukte은 자연의 산물을 획득하기 위한 보조 도구였다. 미개는 목축과 농경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시기인데, 인간이 활동을 통해서 자연의 산물 생산을 증대하는 방법을 습득하던 시기다. 문명은 자연의 산물을 그 이상으로 가공하기를 습득하던 시기로서 본질적인 의미에서 공업과 기술의 시기다(p47)' 프리드리히 엥겔스(Friedrich Engels, 1820 ~ 1895)<가족, 사적 소유, 국가의 기원 Der Ursprung der Familie, des Privateigentums und des Staats> 


 19세기 진화론의 영향과 과학의 발전으로 인류의 역사는 끊임없이 진보한다는 사상의 흐름 속에서 신석기 시대는 어두운 과거에 불과했다. 과거가 어두울수록 현재의 진보는 더욱 빛이 나기에 과거는 부정당했고, 어두운 시대로 규정당했다. 유럽의 중세가 그러했듯이, 선사시대 역시 그렇게 인식되어왔다. 그렇지만, <한국생활사박물관 : 선사생활관>을 통해서 우리는 야만의 모습 대신 여유 속에서 삶을 발전시켜나간 선조들의 모습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의 생활 모습이, 그리고 다른 지역에서의 생활 양식이 우리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한국생활사 박물관> 시리즈는 의미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PS. 에스키모의 분쟁 해결 방식을 서술한 다음의 문장에서 랩 배틀(rap battle)을 연상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어떤 에스키모가 누군가에게 불평할 것이 있으면 그는 그 상대방에게 드럼 시합을 하자고 도전한다.(덴마크 어 Trommesang). 그러면 씨족이나 부족은 화려한 옷을 떨쳐입고 즐거운 기분으로 축제의 대회에 모여든다. 두 명의 소송 당사자는 번갈아 가며 드럼(북)을 치면서 상대방을 향해 야비하고 상스러운 노래를 불러댄다. 그 내용은 주로 상대방의 비행을 지적하는 것이다. 그것이 근거 있는 비난인지, 풍자적인 말인지, 관중을 웃기기 위한 말인지, 순전한 중상 비방인지는 따지지 않는다.(p173)'<호모 루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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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5 21: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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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25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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