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말합니다. 아이들은 정말 피곤해.
당신 말이 맞습니다.
당신은 또 말합니다.
아이들에겐 눈높이를 맞춰줘야 한다고.
키를 낮추고, 머리를 숙이고, 허리를 구부리고, 몸을 쪼그려 낮춰야 한다고.
그건 아닙니다. 그래서 피곤한 게 아닙니다. 아이들의 감정 높이까지 올라가야 하니까 피곤한 겁니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려면, 몸을 쭉 펴고 길게 늘여, 발 끝으로 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 야누슈 코르차크(폴란드 의사, 교육가, 아동문학가) -

아이를 키우다보면 화가 날 때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화가 날 때가 언제인지를 돌이켜보면, 아이러니하게도 ‘제 단점을 아이가 닮을 때‘인 것 같습니다. 커가는 아이의 모습속에서 부모의 모습은 찾으려 노력하면서도, 부모의 단점은 안 닮았으면 하는 억지스런 생각을 하는 자신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저만 그런가요?^^:)

대체로 제 자신의 안 닮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마음의 상처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아마 이런 치유하지 못한 상처를 아이의 행동을 통해 들여다보게 되는 것이 더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육아 이전의 단계에서 부모 자신의 마음 치유가 선행되어야한다는 책의 내용이 제게는 더 인상깊게 다가옵니다.

「아이 마음 속으로」에서는 아이의 마음을 열기 전 먼저 부모 자신이 행복해야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책에 제시된 아이의 속마음을 여는 일곱 가지 질문을 통해 아이의 심리를 읽을 수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전에 부모가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고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들은 자신의 마음을 열기 어렵다고 합니다.

[아이의 속마음을 여는 일곱 가지 질문]

하나, 아이가 무슨 일을 겪었을까?
둘, 아이가 뭐라고 하는 거지?
셋, 아이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까?
넷, 내가 왜 이렇게 말하는 거지?
다섯, 나 편하자고 아이를 막는 것은 아닐까?
여섯, 나에게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일까?
일곱,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수십년동안 가져왔던 자신의 상처를 치유하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평생 짊어져야할 무거운 짐일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자신과 아이를 위해서라면 보다 용기있게 자신의 상처를 응시할 수 있다고 생각해 봅니다.

이러한 면에서 육아는 ‘아이를 키우는 활동‘임과 동시에, ‘자신을 키우는 활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이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길은 딱 하나다. 부모가 자신의 어린 시절을 치유하는 것이다.(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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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20 23: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00: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08: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21 17:1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이유로 신경정신과에서 상담치료를 받고 있는데 거의 몇 년이 지난 요즘에서야 결실을 맺는 것 같아요. 아이는 어른의 어머니, 아이는 부모의 거울 같은 말들의 의미를 겨울호랑이님 글 보고 더 깊이 알 것 같네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1 18:39   좋아요 2 | URL
그러셨군요.. 좋은 결실을 맺으신다니 다행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1-21 2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5 00: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트러블이 생기면 가족 정도가 아니면 안 보고 말지 하거나 거리를 두며 맘을 더이상 안 주게 되죠. 차고 넘치는 게 사람인데 한 사람에게 그렇게까지 신경을 써야 되나 싶기도 하고 말예요.

며칠 전에 20년도 넘은 친구랑 대판 싸우고 알랭 드 보통 책을 읽기 시작했죠. 도대체가 이 모양인 사람의 감정을 좀 알고 싶어서. 이 나이에도 저렇게도 이렇게도 모르고 대처가 잘 안 되고 이러나 속상하고.
오늘 제가 먼저 전화해 네가 뭘 잘못했는지 차근차근 말해 주니 그제야 자기가 그랬구나, 미안하다 그러더라고요. 마지막엔 고맙다고 하더라고요. 사과보다 그 말이 더 맘을 따뜻하게 해줬어요. 지지고 볶아도 우리가 친구긴 친구긴 해 하며 웃으며 며칠 동안의 마음 어지러움이 가라앉았어요. 알랭 드 보통이 아니어도 다 아는 인내와 배려...가 잘 안 되더라도 답은 답인 거 같아요. 그걸 가장 잘하려는 사람이 부모인 거겠고. 겨울호랑이님은 잘 하고 계신 듯^^

겨울호랑이 2018-01-25 08:31   좋아요 1 | URL
에고... 저도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생각은 ‘내가 조금 굽히면 되겠지‘ 하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 ‘이번에 그렇게 넘어가면, 다음에는 달라지려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참을 수 있는 것도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네요. 저 스스로 생각해도 이런 면이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저를 본다면 저와는 분명 또 다르게 생각할 것 같습니다. 제가 모르고 타인들만 아는 부분에서는 제가 어떻게 보일런지... 이런 점을 감안한다면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인내‘와 ‘배려‘를 꾸준히 추구해야할 덕목이라 여겨지네요^^: 이웃분들의 저에 대한 고평가 거품이 언제 꺼질지 모르겠습니다.ㅋㅋ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5 08:47   좋아요 1 | URL
고평가하면 그에 맞는 품격이 되려고 하지 더 엇나가는 사람은 많지 않죠. 그래서 우리가 아이들에게 아주 작은 일로도 고칭찬을 하는 거잖아요. 이런 것들이 모인 도덕 같은 게 강력하게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이유이죠. 암튼 겨울호랑이님을 그렇게 계도하려는 우리 모두의 음모? ㅋㅋ 설마 그럴라고요ㅎ
이미지란 게 상대적인 것도 있지만 각자가 가진 고유성도 있으니까요. 넘 부담스러워서 겨울호랑이님이 사기를 치고 해외도피를 한다고 해도 그럴 사정이 있었겠지 할 사람은 여전히 있을 겁니다. 이상한 방식의 칭찬ㅋ 모로 가도 전달ㅋㅋ

겨울호랑이 2018-01-25 08:55   좋아요 1 | URL
ㅋㅋ 알라딘에서 ‘겨울호랑이 길들이기‘가 저 몰래 이루어졌군요..ㅋ 농담입니다. 지(겨울호랑이)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러겠어요.ㅋ 솔직히 사기를 치거나, 음모를 꾸미는 것도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그럴 능력도 가지고 있지 않아서...하긴, 그런 능력이 있다해도 조마조마하게 사는 것보다는 그저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좋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 결론적으로 그저 ‘추운 겨울날 난로 앞을 떠나지 못하는 게으른, 만사태평한 겨울 고양이‘인 것 같습니다.ㅋㅋ
 

< 해방의 비극 : 중국혁명의 역사 1945 ~ 1957 The tragedy of liberation : A History of the Chinese Revolution 1945 ~ 1957>은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ter, 1961 ~ )가 바라본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초기의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  장졔스(蔣介石, 1887 ~ 1975)의 국민당 정부를 물리치고, 공산주의(共産主義) 국가로 서기 위한 사회 변혁이 이 시기의 중국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변혁의 모습은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의 <국가 Politeia>, 토머스 모어(Sir Thomas More, 1478 ~ 1535)의 <유토피아 Utopia> 속의 이상국가를 지향하고 있기에, 이번 페이퍼에서는 중국 혁명의 유토피아가 어떤 방식으로 구현되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1. 생산=선(善), 소비 =악(惡)

 

'진정으로 불명예스러운 죄를 지은 자들은 귀와 손가락에 금반지를 달고, 목에 금 목걸이를 차고, 머리에 금관을 강제로 쓰고 다녀야 합니다. 그들은 사실상 금과 은, 두 귀금속을 경멸의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라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자신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금은과 헤어져야 하는 상황이 갑자기 생기더라도 누구든 단 한마디도 애석하다는 소리를 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p145)' - <유토피아 > 中 -  


 중국 공산주의 혁명에서 주체는 도시의 노동자, 농촌의 농민이었다. 이들 중 도시 노동자들에게는 '근검절약'이 강조되었고, 생산은 '선(善)'인 반면, 소비는 '악(惡)'이었기에, 최소한의 소비만이 인정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금.은 등의 사치품 소비가 억제되는 사회 분위기는 <유토피아>의 현실적 구현이었다.


 '사람들은 근검절약하라는 말을 들었다. 생산은 찬양되고 소비는 지탄을 받았다. 이념적 순수성은 경제적 쇠락과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며 한때는 번잡했던 대도시들을 생기 없는 칙칙한 지역으로 탈바꿈시켰다. 혁명 후 불과 몇 개월 만에 쾌락을 쫓는 행위는 부르주아적 경박함의 상징이 되어 눈쌀을 찌부리게 만드는 어떤 것이 되었다.(p106)' - <해방의 비극> 中 -


2. 같은 색깔의 평등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성별이나 결혼 여부에 따라 약간만 차이가 날 뿐 똑같은 옷을 입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유행 또한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이 옷은 보기에 매우 좋고, 입은 상태에서 팔다리를 움직이기도 편리합니다. 그리고 더운 날씨에 입든 추운 날씨에 입든 똑같이 편리하며, 무엇보다도 모든 옷이 집에서 손수 만들어집니다. (p123)' - <유토피아 > 中 - 


 제국주의(帝國主義)를 나타내는 모든 것은 적으로 간주되었고, 제국주의에 맞서기 위해 사회는 통합(統合)되어야 했다. 언어, 언론 심지어는 의류(clothing)와 헤어스타일도 단일하게 통일되어 갔다. 이제 중국은 회색의 마오스타일의 정장으로 사회 전체가 옷을 갈아 입게 되었다. 


 '영어는 더 이상 국제 비즈니스 언어가 아니었고 제국주의의 착취를 상징할 뿐이었다. 영어로 이야기하는 행위는 어떠한 경우에도 용납되지 않았으며(p106)... 사방이 온통 망치와 원형 낫, 붉은 별이었다. 시가 전차나 건물, 현수막, 깃발 등에도 있었고 공무원들이 차고 다니는 배지에도 예외없이 이러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언론도 거의 즉각적으로 정리되었다. 1949년 2월에 이르자 베이징에서는 당의 공식 신문을 제외한 총 20여 개의 일간지 중 오직 하나만 여전히 명맥을 유지했다.(p107)' - <해방의 비극> 中 -


 '사람들이 옷을 입는 방식도 하루아침에 바뀐 듯했다. 장신구가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간주되었고 다른 사치품도 마찬가지였다. 립스틱과 화장품이 사라졌다. 젊은 여성들은 곱슬하게 말았던 머리를 잘랐다. 남녀를 불문하고 반지도 뺐다.... 17년 만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돌아온 리즈쑤이는  대다수 베이징 시민들이 너무 자주 빨아서 거의 완전히 색이 바랜 파란색과 회식 면직물 옷을 입은 따분한 모습에 충격을 받기도 했다. (p108)' - <해방의 비극> 中 -


3. 토지개혁을 통해 모두가 가난해지다


 '리쿠르고스는 스파르타의 모든 시민들에게 토지를 공평하게 분배함으로써 "도시에서 파산, 선망, 탐욕, 맛과 향의 즐거움을 전부 몰아낼 뿐만 아니라 빈부격차도 없애려 했다." 그는 금화와 은화를 쓰지 못하게 하고 철로 만든 주화를 사용하게 했는데, 주화의 가치가 너무 낮아 "그 돈으로 10미나를 모으려면 어느 집의 창고 하나를 다 채울 정도였다.(p162)... 아리스토텔레스는 스파르타 정치 체제의 문제점을 낱낱이 비판한다. 그는 감독관들이 너무 가난한 경우가 흔하여 매수되기 쉬웠다고 한다.(p160)' - <서양 철학사> 中 - 

 

 농촌에서는 토지개혁을 통해 지주 계급을 타파하고, 토지의 무상분배가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지의 지배권은 개인이 아닌 '당(黨)'으로 옮겨간 것에 불과했다. 가정별로 할당된 목표량을 정하는 것이었으며, 소작인 입장에서는 결국 토지 주인이 '지주'에서 '당'으로 주인이 바뀐 것에 지나지 않았다. 한편, 이 기간중 지식인과 지주 계급에 대한 숙청은 해당 '지역 인구의 몇 %'식의 목표가 주어진 마녀재판을 통해 이루어졌다.   


 '토지 개혁이 마을 주민들 간에 갈등을 유발하고 포악한 대회를 통해 서로를 비난하게 되면서 마침내 농촌의 실질적인 재산이 세간에 공개되었다. 부자들로부터 몰수된 땅은 작게 분할되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분배되었다. 소작료도 사라졌다. 하지만 이제 공산당은 정확히 얼마나 많은 땅이 존재하는지 알게 되었다. 그에 따라 각각의 좁고 기다란 형태의 땅에서 생산될 수 있는 양이 결정되었고 각 가정에 지정된 양의 곡식을 납부하도록 하였다.([p119)' - <해방의 비극> 中 -


3. 수단으로서의 문화/예술


 

'"나는 선법들은 모르네. 하지만 이런 선법은 남겨 놓게나. 즉 전투 행위나 모든 강제적인 업무에 있어서 용감한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그리고 또 좌절하더라도, 말하자면 부상이나 죽음에 당면하게 되거나 또는 다른 어떤 불행에 떨어지더라도, 이런 모든 사태에서도 자신의 불운을 꿋꿋하게 그리고 참을성 있게 막아내는 사람의 어조와 억양을 적절하게 모방하게 될 선법을 말일세. (399 : a - b)... 자, 그러면 나머지 것들도 정화하세나. 우리의 선법에 이어지는 것은 리듬에 관한 것이겠기 때문일세. 우리는 복잡 미묘한 리듬도 온갖 종류의 운율(步格 : basis)도 추구하지 말고, 예절 바르고 용감한 삶을 나타내는 리듬이 무엇무엇인지 보도록 해야만 하네. 이를 본 다음에 그런 사람의 말(노랫말)에 시각(詩脚 :pous)과 선율(melos)이 따르도록 해야지. 말(노랫말)이 시각과 선율을 따르도록 해서는 아니 되네."(399 : e - 400 : a)' - <국가, 정체> 3권 中 - 


 문화, 예술 활동은 혁명 사상을 고취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이른바 고전(古典)이라 불리우는 음악, 책, 미술 등은 음란하거나 선정적인 것으로 취급되어 파괴되었다. 용케 파괴에서 살아 남은 것들 중 대다수가 1966년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을 통해 사라지게 된다. 이는 인민3부작 중 마지막 3권 <문화 대혁명>의 주제이기도 하다.


 '전통적인 북소리와 혁명가 노랫소리가 클래식 음악을 밀어냈다. 베토벤, 쇼팽, 슈베르트, 모차르트를 비롯하여 부르주아로 간주된 그 밖의 여러 작곡가들 음반이 조용히 모습을 감추었다.(p300)... 해방 이전의 상하이는 아시아의 음악적 수도로 여겨질 만큼 재즈 수요가 많았다.... 상하이가 함락되고 불과 몇 주 만에 나이트클럽들이 폐쇄되거나 공장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정부는 재즈를 퇴폐적이고 음란하며 부르주아적이라고 비난하면서 전면 금지했다.... 저우쉬안 같은 스타들의 노래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널리 방송되고 축음기에서 재생된 적도 있었지만 1949년 이후로는 음란하다는 비판을 받을 뿐이었다. 곧 사람들의 귀는 소련의 문화 사절단을 통해 도입된 새로운 음악에 적응되었다.... 부르주아의 특징적이라는 표현법이라는 이유로 용납되지 않던 독창과는 달리 합창은 안전했다. 게다가 합창은 선전을 유포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p301)' - <해방의 비극> 中 -


 '공연은 또 다른 선전 수단이었다. 게다가 짧고 단순하며 매우 시사적인 까닭에 효과도 훨씬 좋았다. 인민 해방군 소속 무용단이 부른 <앙가(秧歌)>처럼 군에 소속된 배우들이 선전 활동을 도왔다. 그들은 광장이나 정원, 공원은 물론이고 그 밖의 어떤 공공 장소도 가리지 않고 보행자들이 몰려와 구경하고 박수칠 공간만 확보되면 어디에서나 대중적인 연극을 공연했다.(p304)' - <해방의 비극> 中 -


5. 대국굴기(大國崛起)의 빛과 어둠


 1950년의 한국전쟁은 중국에게도 중요한 전쟁이었다. 이전까지 소련 스탈린의 경제적, 군사적 원조를 받던 중국은 이 전쟁을 통해 미국과 비기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러한 한국전쟁에서의 성공은 스탈린 사후 마오쩌둥의 입지 강화에 도움을 주지만, 전쟁 수행을 위한 막대한 인적 손실과 식량 및 군수품 반출은 중국에게도 큰 타격을 안겨주게 되었다.


 '1951년 7월부터 1953년 7월 27일 휴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다. 중국은 약 300만에 달하는 병력을 전선에 투입했고 그들 중 대략 40만 명이 사망했다. 끔찍한 인적 피해에도 불구하고 한국 전쟁은 마오쩌둥 개인의 승리였다. 당초 그는 동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쟁을 강행했었다. 도박은 멋지게 성공했다. 중국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멈추게 만든 것이다. 마침내 중국이 우뚝 섰다.([p218)' - <해방의 비극> 中 -


 '빈곤은 일상이 되었다. 몇몇 집안이 수대에 걸쳐 힘들게 노력해서 이룩한 상대적인 부가 하룻밤 사이에 증발했다. 자주성과 근면함, 인내심 덕분에 자주성가한 사람들이 버림을 받았다. 마을이 보유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은 조롱거리가 되었고 성공은 착취의 상징이 되었다. 대신 가난한 소작농들과 노동자들이 찬양되었다.(p138)' - <해방의 비극> 中 -


5. 철인(哲人) = 공산당(共産黨)에 의한 지배


 '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이 : ho philosophors)들이 나라들에 있어서 군왕들로서 다스리거나, 아니면 현재 이른바 군왕(basileus) 또는 [최고 권력자(dynastes)]들로 불리는 이들이 진실로 그리고 충분히 철학을 하게(지혜를 사랑하게) 되지 않는 한, 그리하여 이게 즉 [정치 권력(dynamis politike)]과 철학(지혜에 대한 사랑 : philophia)이 한데 합쳐지지 않는한, 여보게나 글라우콘, 나라들에 있어서 인류에 있어서도 나쁜 것들의 종식(kakon paula)은 없다네."(473 : c - d)' - <국가, 정체> 5권 中 -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후 토지개혁과 지주, 지식인 숙청 등을 통해 중국공산당은 지배권을 확장시켜 갔으며, 이 기간 터져나오는 사회 내부의 불만은 한국전쟁이라는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강조하며 이를 억눌러왔다. 그렇지만,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에는 이러한 명분도 사라지면서 중국 사회 내 긴장은 점점 고조되어 가게 되었다. 플라톤의 '철인' 지배는 중화인민공화국에서는 '공산당'에 의한 지배로 구현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공산당의 지배는 노예로 전락한 농민과 노동자에 의해 뒷받침 되었다.


 '사회가 한층 더 엄격하게 관리되었고 이는 공산당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다.(p169)... 한때는 우정이라 불리던 것이 사라졌다. 더 이상 손님도 찾아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향적으로 변했으며 점점 더 단조로운 삶을 살았다. 외국인들의 대대적인 탈출로 중국의 고립은 더욱 심화되었다.(p171)' - <해방의 비극> 中 -


 '1956년에는 수년 전 해방에서 비롯되었던 많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농민은 집산화라는 명목 아래 토지와 농기구와 가축을 잃었다... 도시의 공장과 상점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정부에서 선전하듯이 노동자 계급의 영웅이 아니라 채무 노동자 같은 대우를 받았다. 그들은 유례없이 오랜 시간을 일하고 하나의 생산 목표를 달성한 다음에는 또 다른 목표를 향해 나아가도록 강요되었으며 그럼에도 소득은 계속 줄어들었다... 모든 사람이 유토피아 건설을 위해 허리띠를 졸라매야 했다. 사회적 긴장이 정부를 향한 공공연한 적대감으로 표출되기 일보 직전이었다.(p419)' - <해방의 비극> 中 -


 '힘들고 더러운 온갖 식당 허드렛일은 노예들이 담당합니다.(p135)' - <유토피아 > 中 - 


6. Intro : <마오의 대기근>


 높은 사회적 불만에 직면한 마오의 선택은 '대약진 운동(大躍進運動)'이었다. 그렇지만, 1962년까지 이어진 대약진운동의 결과는 대기근으로 참담하게 끝나게 되었다. 다음 페이퍼에서는 <마오의 대기근>을 통해 대약진운동과 이로 인해 얻어진 참혹한 결과를 살펴본다는 예고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1845년 인구 850만명의 아일랜드에서 100만명의 아사자(餓死子)와 200만명의 이민자가 발생한 아일랜드 대기근의 비극이 이에 견줄만하다고 생각되어, 다음 페이퍼에서 같이 살펴볼 계획이다. 

'마오쩌둥은 대약진 운동을 통해 당시 패권국이었던 영국을 15년 안에 따라잡는다는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비현실적이고 무리한 정책은 재앙에 가까운 결과를 가져왔다. 1958년부터 1962년까지 4,500만명의 중국 인민들이 강제 노역, 굶주림, 폭력에 시달리다 목숨을 잃었다.'


PS. 벼락치기의 끝은 거의 언제나 별로 좋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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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1-20 19: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뻘소리)
오뎅탕 대문사진 탁월한 선택이심-_-)b ... 연의 프필 사진 언제 업뎃 해주실 겁니꽈~!(나도 모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AgalmA 2018-01-20 20:06   좋아요 1 | URL
히히, 실시간 업뎃ㅋ 감사.

겨울호랑이 2018-01-20 20:08   좋아요 1 | URL
^^: AglmA님께서 말씀하시니, 서둘러.ㅋㅋ

cyrus 2018-01-20 21: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플라톤은 마음과 정신이 건강해지려면 좋은 음악을 듣으라고 주장했어요. 그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이란 수학, 철학 같은 유용한 학문의 내용을 전달하는 음악입니다. 플라톤은 학문을 강압적으로 가르치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그래서 학문 습득을 오락하듯이 즐길 수 있는 수단으로 음악을 필요했어요. 플라톤은 시를 싫어했지만 음악은 좋아했어요. 음악의 장점을 주장한 플라톤의 생각은 특정 이념을 알리는 ‘수단으로서 예술‘의 의미와 무관합니다. ‘학습 의욕 고취‘에 중점을 둔 플라톤의 예술관과 ‘이념 고취‘에 중점을 둔 중국 공산당의 예술관을 무리하게 연결지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0 22:30   좋아요 0 | URL
^^: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이 우주의 질서를 수리적으로 (산술평균, 조화평균, 기하평균) 설명한 것을 보면 cyrus님 말씀에도 일리가 있습니다. 다만, 플라톤은 「국가, 정체」3권과 마지막 10권에서 위의 인용에 넣은 부분에서 처럼 용감한 기상을 불어넣을 수 있는 도리아식 선율을 제외한 다른 음악을 금지해야 한다고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용기‘를 ‘공산주의 혁명‘사상으로 대체했을 때도 큰 무리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기조는 보다 후대에 쓰여진 「법률 Nomoi」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제가 아직 읽지 못한 다른 대화편에서는 다른 내용이 나올 수 있으니 다음에 더 찾아보겠습니다. cyrus님 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18-01-20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새로운 연의 사진의 프로필이네요. 볼 때마다 이전 사진보다 더 많이 크고 있는 느낌입니다.^^
아이들은 정말 금방 자라고 배우는 시기 같아요.
겨울호랑이님,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1-20 21:56   좋아요 2 | URL
^^: 특히 아이들이 감기라든지 아프고 나면 더 빨리 크는 것 같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해진다는 말의 의미를 연의를 통해 직접 보게 되네요.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 2018-01-21 00:01   좋아요 1 | URL
아프면서 성숙해진다는 말 자체가 아프지만 공감하게 됩니다.. 어른인 저도 그랬으니까요..^^ 겨호님의 좋은 댓글에 공감하고 갑니다.. 최근 연의가 감기에 걸려서 고생했나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1 00:07   좋아요 2 | URL
네^^: 연의가 감기걸려 조금 고생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뿐 아니라 아픈 아이를 보면서 부모님 마음도 느끼게 됩니다. ‘아픈 나를 지켜보시는 부모님 마음이 이랬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 면에서 저도 조금은 자라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18-01-21 0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2: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1 22: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2-26 20: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해방의 비극부터 시작한 중국사 3부작 짜리는 읽은만 한가요? 사실 읽어보고는 싶은데 지난번 페이스북에서 어떤수꼴이 이책을 극찬하는거 보고 약간 호감이 떨어지더라구요. 물론 마오쩌둥의 위대한 혁명가이기는 하지만 대약진 운동으로 3천만명을 아사시키고 문혁으로 수십수백만을 숙청과 죽음으로 몰아간 폭군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중국을 통일하는데 있어서의 공은 마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봅니다. 뭐 조만간 에드거 스노의 붉은별과 알렉산더 판초프가 쓴 마오쩌둥 평전 읽을 생각이지만 이 책의 내용이 어떤지 궁금하여 물어봤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2-26 20:58   좋아요 1 | URL
구체적인 사례와 수치 제시가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기에 내용에 대한 신빙성을 부여한다는 면은 장점이 되는 반면, 편향된 시각이라는 비판을 받는 것은 책의 단점이라 여겨집니다. ^^:

NamGiKim 2018-02-26 21: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솔직히 몇몇 수꼴들이 이 책을 아주 호평하길래 처음부터 의심의 눈으로 보긴 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2-26 21:11   좋아요 0 | URL
^^: 역사책이 중립적이기 어렵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현대 중국사의 다른 측면을 아는데 책의 의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NamGiKim님 께서 다른 책을 함께 보실 때 관점의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징가 2018-05-24 07: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에드거 스노우 중국의 붉은별 읽고 마오에 대해 호감적이 갔었는데 중국인 친구에게 물어보니 한국 박정희 급으로 싫어하더군요.. 제 시각이 너무 편협해 진건 아닌가 해서 함 읽어보려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24 08:08   좋아요 1 | URL
박정희, 나폴레옹 등 독재자들에 대한 평가는 각자의 입장에 따라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호불호가 없을 수는 없겠지만, 역사적인 평가에서는 빛과 그림자가 함께 이루어져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그런 면에서 마오의 그림자를 보여주는 책이라 여겨지네요. 민정식님 좋은 독서 되세요^^:)
 
에우튀프론 정암학당 플라톤 전집 20
플라톤 지음, 강성훈 옮김 / 이제이북스 / 201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에우튀프론 Euthyphron >은 플라톤(Platon , BC 424 ~ BC 348)의 초기 대화편 중 하나로 경건(敬虔)을 주제로 한다. 작품 속에서 소크라테스(Socrates, BC 470 ~ BC 399)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한 에우튀프론 사이의 대화를 통해 '경건'의 정의를 완성시켜 나가지만, 완성된 형태에 이르지 못하고  아포리아(aporia) 대화로 마무리된다. 이번 리뷰에서는 경건에 대한 에우튀프론의 다섯 정의와 이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논박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대화의 시작


 에우튀프론은 살인을 저지른 아버지를 고소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러한 그의 행동을 불경한 행동이라고 말한다. 에우튀프론은 자신이 경건한 일을 하고 있다고 주장을 하고,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경건이 무엇인지를 질문한다.


 '그분들 주장으로는 아버지가 그를 죽인 것도 아니고, 설사 죽인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 하더라도 죽은 사람이 살인자인 마당에 그런 사람을 위해서 신경을 써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아들이 아버지를 살인죄로 고소하는 것은 불경한 일이라고요. 소크라테스님, 그건 이분들이 경건한 것과 불경한 것에 대한 신적인 입장이 어떠한지를 잘 몰라서 그래요.(4 : e)'


2. 경건에 대한 정의


가.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첫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에우튀프론은 자신의 행동이 바로 경건한 행동이라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개별 행동이 아닌 경건의 이데아(idea, eidos)가 무엇인지를 재차 요구한다.


 '저는 경건한 것이 바로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 살인이나 신성한 것들을 훔치는 일이나 다른 어떤 그런 잘못을 벌함으로써 부정의한 행동을 하는 자를, 그가 아버지이든 어머니이든 다른 어떤 사람이든 상관없이 고소하는 것이라고요. 고소하지 않는 것은 불경한 일이고요.(5 : e)'


 '그럼 내가 많은 경건한 것들 중 한두 개를 가르쳐 달라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경건한 것들이 그것에 의해서 경건한 것이 되는 그 형상(eidos, idea) 자체를 요구했다는 것을 기억합니까?... 그러니 이 형상 자체가 도대체 무엇인지 내게 가르쳐 주시죠.(6 : d ~e)'


나.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두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소크라테스의 요구에 에우튀프론은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이 경건한 것이라고 재정의한다. 이에 대해 소크라테스는 그리스의 여러 신들의 생각이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이는 올바른 정의가 아니라고 논박한다.


[그림] 파리스의 심판 : 세 여신들중 누가 가장 아름다운(美)가? (출처 : http://blog.daum.net/spdjcj/1357)


 '그럼, 신들에게 사랑스러운 것은 경건한 것이고, 사랑스럽지 않은 것은 불경한 것입니다.(6 : e)'


 '그럼 고귀한 에우튀프론, 당신 말에 따르면, 신들 중에서도 이 신은 이것을 저 신은 저것을 정의롭다고 생각하고, 또 서로 다른 것들은 아름답고 추하고 좋고 나쁘다고 생각하지요?... 그런데 동일한 것들을 어떤 신들은 정의로운 것이라고 생각하고 어떤 신들은 부정의한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 당신 주장입니다.... 당신이 제우스 신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크로노스 신과 우라노스 신에게는 미움을 사고 또 헤파이스토스 신에게는 사랑스럽지만 헤라 여신에게는 미움을 사는 일을 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8 : a ~ b)'


다.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세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이에 대해 에우튀프론은 모든 신들이 공통으로 사랑하는 것이 경건이라고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지만, 이 역시 논박을 당하게 된다. 즉, '신들이 사랑하는 것이 경건한 것인가, 아니면 경건하기 때문에 신들에게 사랑받는가?'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반론으로 이 정의 역시 무력하게 된다.(에우튀프론 딜레마 Euthyphron dilemma)


 '아, 그럼 저는 모든 신들이 사랑하는 것, 그것이 경건한 것이고, 반대로 모든 신이 미워하는 것은 불경한 것이라고 주장하겠습니다.( 9 : e)'


'어떤 것이 변하거나 뭔가를 겪는다면 "변하는 것"이기 때문에 변하는 게 아니라, 변하기 때문에 "변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또, "겪는 것"이기 때문에 겪는 게 아니라, 겪기 때문에 "겪는 것"이라는 겁니다.... 그럼 이것도 앞의 것들과 마찬가지겠지요? "사랑받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사랑하는 것에 의해서 사랑을 받는 게 아니라, 사랑받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지요?( 10 : c)'


 결국 에우튀프론은 정의를 내리는 것에 실패하고, 이제는 소크라테스의 도움을 받아 경건에 대한 정의를 내리기 시작한다. 정의를 내리기 전 소크라테스는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라는 것을 전제하고 논의를 시작한다.


 '정의로운 것이 있는 곳에 경건한 것도 있습니까? 아니면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어서, 경건한 것이 있는 곳에는 정의로운 것도 있지만 정의로운 것이 있는 곳 모두에 경건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닙니까?...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부분이라면, 우리는 경건한 것이 정의로운 것의 어떠한 부분인지를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12 : d)'


라.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네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경건'을 '정의'의 부분집합으로 놓았을 때, 에우튀프론은 신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한 부분이 경건이라고 정의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이번에는 '보살핌'이라는 언어적 정의를 지적한다. 그리고, 여기에 해당하는 '보살핌'은 '섬기기 기술'로 서로 합의한다. 


 '정의로운 것 중에서 신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된 부분이 신을 공경하는 것이자 경건한 것이고, 인간들에 대한 보살핌과 관련된 부분은 정의로운 것의 나머지 부분입니다.(13 : a)'


 '당신이 "보살핌"이라는 말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당신이 "신들에 대한 보살핌"을 이야기할 때 다른 것들에 대한 보살핌과 똑같은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분명히 아닐 테니까 말입니다....경건함은 신들에 대한 어떤 보살핌입니까? 노예들이 주인들을 보살피는 바로 그런 보살핌입니다, 소크라테스님. 알겠습니다. 그건 신들에 대한 일종의 섬기기 기술일 것 같군요.(12 : d ~ 13 : d)'


마. 에우튀프론의 경건에 대한 다섯 번째 정의와 소크라테스의 논박


 결국, 다섯번 째 정의에서 에우튀프론과 소크라테스는 경건함이란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을 올바르게 요청하는 일종의 상거래 기술'임을 도출하지만, 이후 논의를 진행하기 전 에우튀프론이 서둘러 자리를 떠나면서 더이상 논의는 진행되지 않는다.


 '누군가가 기도하고 제사 지내면서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을 이야기하고 행할 줄 안다면 그가 그러는 것들은 경건한 것들이고, 그러한 것들이 사적으로 가정들과 공적으로 나라의 일들을 구원합니다. 신들에게 흡족한 것들에 반대되는 것들은 신에 대해 불손한 것들로, 이것들은 모든 것을 뒤엎고 파괴하지요.(14 :b)'


 '올바로 요청하기란 그들에게서 우리가 필요한 것들을 요청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올바로 주기란 또한 그들이 우리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이번에는 우리가 그들에게 선물로 갚아 주는 것이겠군요?... 에우튀프론, 그럼 경건함은 신들과 인간들 사이에서의 일종의 상거래 기술이겠군요.(14 : e)'


  <에우튀프론>은 이처럼 '경건'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마무리된다. 그렇지만, 이 대화편을 통해 그리스 다신(多神)에 대한 플라톤의 부정적인 생각을 읽을 수 있다. 절대적인 이데아 세계를 설명하는데, 여러 다른 신의 존재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확인했다. 이러한 결과를 통해 그리스 전통신관과 다른 데미우르고스(demiurge)로 표현되는 플라톤의 신관(神觀)이 나오게 된 배경도 다소 나마 짐작하게 된다. 또, 논의를 통해 집합 명제와 관련된 내용과 언어정의의 중요성도 느낄 수 있기에 우리는 이 작품을 통해 정의(定意)를 하기 위한 기본수단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다. 이러한 면에서 <에우튀프론>은 짧은 초기 대화편이지만, 그 안에서 플라톤 철학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된다.


 이와는 별도로 에우튀프론이 살인죄로 아버지를 고소하는 장면에서  논어(論語) 子路篇(자로편) 18장을 연상하게 된다. 섭공과 공자(孔子, BC 551 ~ BC479) 사이에 '직(直)' 과 관련하여 이루어지는 다음의 대화를 보면서 동서양(東西洋) 모두에서 부모를 고발하는 행동은 비록 그 부모가 잘못이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葉公語孔子曰  吾黨 有直躬者 其父攘羊 而子證之 

섭공어공자왈  오당  유직궁자  기부양양   이자증지


孔子曰  吾黨之直者 異於是 父爲子隱 子爲父隱 直在其中矣

공자왈  오당지직자 이어시  부위자은  자위부은  직재기중의  


섭공이 공자에게 말했다. 우리 고을에는 매우 정직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가 양을 훔치자 그 사실을 고발했습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고을의 정직한 사람은 이와 다릅니다.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아들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숨겨줍니다. 그 가운데 정직함이 있습니다. (출처: http://ingee.tistory.com/361 [있는 그대로])


 또한, 이처럼 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이 덕목(德目)이라면, 이를 정의해서 형상(이데아)를 규명하고자 하는 플라톤(또는 소크라테스)의 시도는 무모한 것은 아닌가도 생각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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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9 23: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4: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20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1-20 19: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초에 서양은 절대개념(신)이 없음 뭔 말도 성립이 안 돼요ㅎ;;; 그러믄서 뭔 잘난 척은 그리도 많이 하는지;
공자의 저 말은 상대성 속의 유동성을 말하고 있죠. 상태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겨울호랑이 2018-01-20 20:16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서양철학은 신(神)의 존재와 함께 흘러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양에서는 ‘절대진리=idea=神‘을 찾으려는 노력을 많이 하는 것에 반해, 동양에서는 ‘상황‘에 보다 집중하고 있는 것 같네요. <에우튀프론>에서 다신론에서 단신론으로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고, 이것이 다음에 올 ‘절대진리‘를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지더군요.^^:
 

<이코노미 인사이트> 2018년 1월호에는 비트코인과 관련한 특별부록이 제공되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내용을 중심으로 최근 투기광풍이 불고 있는 비트코인에 대한 전망에 대한 내용을 이번 페이퍼에서 정리해봅니다.


1. 암호화폐와 비트코인


암호화폐의 한 종류인 비트코인의 핵심 기술은 암호화 프로토콜과 공개장부의 업데이트로 요약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기술을 블록체인(Block Chain)기술이라고 부른다.


'최근 투기 광풍에 휩싸이며 연일 언론에 오르내리는 암호화폐는 암호화 기술로 신뢰 기반을 구축해 이른바 "제3자 신뢰 주체" 없이도 가치가 이전될 수 있는 혁신적인 수단이다. 중개자 없이 거래되려면 이중지급 문제를 극복하는 노력이 구체화되어야 한다. 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공개 열쇠와 사용자 개인 열쇠(private key)로 구성된 암호화 프로토콜과 다수가 참여하는 작업증명 방식의 인증과정이다. 모두가 참여하는 공개장부의 업데이트 과정에서 누구도 손대기 어려운 거래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기존 보안 개념인 "금고와 보초" 대신 "공개와 참여" 개념을 도입한 역발상의 혁명적 사고 전환이다.(p8)'


2. 블록체인 기술


  '거대 분산 장부 시스템'인 블록체인 기술은 아직 개발 초기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섣부른 낙관도 비관도 하기 어렵다. 다만, 향후 여러 분야에서 활용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블록체인 기술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이끌어가는 기술로 일반에 인식되고 있고, 자칫 기술을 선점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비트코인 거래 규제를 반대하는 목소리에 힘을 싣는다.


 '금융 분야를 중심으로 시작된 블록체인 기술의 활용은 이제 제조업, 공공서비스 등 사회 전 영역으로 확산될 것이다. 블록체인 기술이 모든 사회문제를 해결해주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블록체인 시스템의 확장성과 안정성에 비판적인 의견도 여전히 있다. 블록체인 기술이 보편적으로 적용되기에는 현실적인 기술 검증이 필요해, 아직은 제약 사항이 많다.(p78)... 블록체인 기술의 본질은 신뢰성과 투명성에 있다... 블록체인 기술은 지능정보 기술의 신뢰성과 투명성을 제고하는 융합 기술이며, 산업별 디지털 혁신 전략과 결합해서 새 정보통신기술 서비스를 탄생시킬 것이다. 대량생산기계 중심의 20세기와는 달리, 사람이 중심이 되는 21세기에 블록체인은 매우 적합한 기술이다.(p79)'


3. 비트코인 혁명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블록체인이 가져다 주는 긍정적인 측면은 금융사에 의존하지 않고, 참여자 모두에게 정보가 공개되는 '개방형 구조'다. 현재 금융통화제도가 중앙은행(한국은행)과 민간은행의 통화공급에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구조인 반면, 비트코인은 개인이 채굴(mining)을 통해 통화를 공급할 수 있고, 이러한 통화에 대한 정보를 모두와 공유하기 때문에 '참여형 경제구조'를 가능케 한다는 장점이 있다.


 '비트코인 혁명은 가능성이 무한한 역사적 혁신이다. 은행의 금융서비스에 접근하기 어려운 고객군에는 단순한 기회 이상의 의미가 있다. 가장 폐쇄적인 금융 시스템에 모두가 참여하게 해주는 개방형 플랫폼 기술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존 신뢰의 토대에 의존하지 않는 독자적 기술이라는 점에서 사회 구성원들을 의아케 하는 구석도 있다. 그만큼 암호화폐는 법정화폐가 대표하는 신뢰체제와 확연히 구분되는 혁명적 대안이다. 블록체인 기반의 암호화폐가 던지는 핵심 메세지는, 단순히 기술혁신을 넘어 기술로 입증되고 생성되는 신뢰의 토대 아래 민간 주도로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다.(p9)'


[사진] 블록체인 (출처 : 매일경제)


4. 비트코인 거래소의 위험


 이와는 반대로 비트코인 거래소에도 거래 지연 위험과 거래소 관련 위험이 따른다. 실제로 얼마전 우리나라 비트코인거래소인 '유빗'이 해킹으로 인해 파산당한 사례가 있다.


 '비트코인 거래소는 두 가지 주요 위험을 안고 있다. 첫째, 거래 지연에 따른 가격 변화와 교환 실패, 사기 위험이다. 실제 암호화폐의 가격 변동폭  문제는 법정화폐의 거래소 이체 업무와 연관된다... 또 다른 주요 사안은 거래소 관련 위험이다. 소비자 보호 차원의 보안 문제와 거래소 파산의 가능성이야말로 암호화폐의 미래를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위험 요인이다.(p11)'


관련기사 : http://biz.khan.co.kr/khan_art_view.html?artid=201712191607001&code=920100


5. 비트코인과 금융 투기


[사진] 비트코인 가격 현황( 출처 : https://blockchain.info/ko/charts/market-price?timespan=all)


 비트코인은  2014년부터 1,000달러 수준에서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7년에 들어 급등하여, 2017년 12월에는 최고 19,000달러까지 가격이 치솟아 극심한 투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비정상적인 비트코인의 거래 속에서 '17세기 네덜란드의 튤립 투기'를 연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프랑스의 역사가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은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Civilization and Capitalism>를 통해 암스테르담 증권 시장과 투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6. 금융 투기 : 암스테르담의 증권 시장


'암스테르담에서 새로운 것이 있다면 그 거래량, 유동성, 공급성, 투기의 자유 등이다. 투기는 거의 광적으로 일어나서 투기를 위한 투기가 되었다. 이런 것을 보여주는 현상으로서 1634년 경에 네덜란드를 열광케 한 튤립 광증(tulipomanie : tulip mania)이 있는데 이때 그 자체로는 "아무 가치가 없는" 튤립 구근 하나를 "새로운 마차 1량, 회색빛 말 2마리, 마구 일체"와 바꾸기에 이르렀다는 점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p132)'


'투기꾼은 그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팔기도 하고 결코 보유하지도 않을 것을 구입한다. 이것을 소위 "백색(en blanc)"매매라고 한다. 정리 기간이 되면 이런 것들은 손실 또는 이익으로 결판이 난다. 사람들은 이 작은 잔액을 결제하고 나면 이 투기 놀음은 다시 계속 된다. 또 다른 종류의 것인 프리미엄(prime) 거래는 약간 더 복잡한 종류의 것이다. 사실 주식은 장기적으로 오르게 되어 있으므로, 투기란 단기적인 움직임에 관한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순간적인 가격 변동을 노리고 있어야 하는데, 이것은 뉴스 하나만으로도 일어날 수 있다... 암스테르담의 투기의 액수가 대단히 크고 폭발적이었으며, 더구나 초기부터 그것이 상대적으로 엄청난 규모였다는 것은 여기에 대자본가만이 아니라 소시민들도 가담했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그중 어떤 광경은 마치 오늘날 경마의 마권 사는 모습과도 비교할 수 있으리라.!"'(p135)'


 '이러한 광경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내가 틀린 것이 아니라면, 이것은 거래소가 소액 전주(錢主), 소액 투자가의 주머니에서 어떻게 돈을 길어오는지를 보여 주는 것이다.(p136)'


 주식거래가 일반화되지 않은 17세기 증권시장의 모습을 브로델은 소액 투자자의 주머니에서 거래소로 돈이 옮겨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비록, 비트코인 시장에서는 거래소가 하는 역할이 상대적으로 미미하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이 폭락하는 날 소액투자자의 부(富)는 누군가에게로 아마도 이전될 것이다. 브로델과 같은 역사가가 아니더라도 많은 금융전문가들은 비트코인의 위험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비트코인은 사기다. 끝이 안 좋을 것이다."(Bitcoin is a fraud. It won't end well.) - 제이미 다이먼(제이피모건체이스 JP Morgan Chase, 최고경영자 CEO) - 


 "장기적 관점에서 비트코인의 기반 기술은 번영하겠지만, 비트코인의 가격은 무너질 것이다. 이것이 나로선 최선의 추론이다." - 케네스 로고프(美 하버드 대학 교수) -


 "진짜 거품이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다. 비트코인은 가치를 창출하는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워런 버핏(버크셔 해서웨이 Berkshire Hathaway ,최고 경영자 CEO) - 


 "거대한 투기거품이다." (A gigantic speculative bubble.)  -누리엘 루비니 (美 뉴욕대학 교수) - 


 "비트코인은 오로지 편법의 잠재력과 관리, 감독 부재 덕분에 성공하고 있다. 그래서 비트코인은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것은 사회적으로 유용한 기능이 전혀 없다." - 조지프 스티글리츠 (美 컬럼비아대학 교수) -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락을 계속하면서 이에 대한 사회적 논란이 뜨거워지고 있다. 규제에 대한 찬반(贊反)이 팽팽히 맞서면서, 한편에서는 '투기에 대한 규제'를 다른 한편에서는 '4차 산업 기술 보호'를 말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속에서 개인적으로는 '기술 보호'와 '투기에 대한 규제'는 분명하게 구분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벌써 10여년도 지난 일이지만, 한때 온라인 게임 리니지에서 아이템이 고가에 거래되는 문제가 사회 문제가 된 일이 있었다. 2000년대 초반 온라인 게임은 IT시대의 중요한 콘텐츠였고, 이에 대한 투자로 한때 우리나라 게임이 세계적으로 주도권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된다. 그렇지만, '게임'에 대한 투자와 '게임에 사용되는 아이템'의 거래는 분명히 구분되어야 하지 않을까. 리니지와 리니지 아이템의 연장선장에서 비트코인 문제를 바라본다면, 비트코인 문제의 답은 의외로 가까이 있을 것 같다. 


PS. 금융투기와 관련해서는 다음의 책들이 투기와 투자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하기에 여기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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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8-01-17 22:34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마침 오늘 오후에 서울 모 호텔에서는 ‘블록체인‘과 관련된 전문가들이 여럿 방한해서 주제 발표도 했더군요.

블록체인은 분명 유용한 기술이긴 한데, 그 기술을 활용하는데 쓰이는 중요한 수단인 ‘가상 화폐‘ 자체의 가격이 너무나 급등락해서 참으로 문제가 많은 듯합니다. 화폐야말로 ‘가치 척도‘인데, 비트코인, 이더리움, 네오 등등 수많은 가상 화폐들은 화폐 가격이 하루에서 수십 %씩 급등락을 거듭하니까 말이죠. 유시민이 비트코인 광풍을 두고 ‘바다 이야기‘에 비유했다가 혼쭐이 난 기사도 있더군요. 과학자 정재승이 유시민의 언급을 두고 아예 대놓고 ‘너무 무식한 얘기‘라고 반박도 했던데, 단적으로 이런 모습들 하나만 보더라도 ‘블록체인과 가상화폐‘를 두고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짐작하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제 주변에서도 이미 작년 여름부터 끊임없이 ‘비트코인 광풍‘에 대해 자주 논란을 벌이는 걸 봐오곤 했는데, 결론은 아주 단순한 듯합니다. ˝블록체인 기술은 매우 유용한 기술이고 중요한데, 현재 벌어지고 있는 가상화폐 투기는 정말로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게 분명하다.˝는 사실이죠. 지금 하루 24시간 내내 거래되는 가상화폐의 시가총액이 대략 ‘어제‘ 기준으로 700조원이라고 마침 ‘어제‘ 들었는데, 하룻밤 자고 나니 그 사이에 바로 그 시가총액이 300조원이 공중으로 증발했더군요.

그런데 정말 심각한 문제는 ‘투기 광풍‘에 노출된 ‘보호받아야 할 사회적 · 경제적 약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너무 취약한 상태에 그대로 방치된 채 놓여 있다는 점이고, 이 문제가 이미 오래 전부터 사회문제로 부상하면서 거듭 악화일로였는데도 불구하고, 정부 당국에서조차 아직까지도 갈피를 못 잡고 있다는 거죠.(금융위원회에 ‘대책반‘이 생긴 게 며칠 안 되었죠.)

한때 엄청난 도박 광풍을 몰고 왔던 ‘바다 이야기‘ 때문에 신용불량자가 대략 300만 명쯤 생겼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투기 광풍이 단지 신용불량자만 양산한 게 아니라 엄청난 ‘가정 파괴‘까지도 이어졌을 듯하고, 그 와중에 약삭빠른 사기꾼들을 숱하게 배불리게 만들었다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심하게 얘기하면 ‘거대한 도박판‘이 벌어지는 와중에 온갖 부정과 부패와 악순환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는 거죠. 정부의 강력한 단속이 마침내 그걸 쓸어낼 때까지 아주 오랫동안 말이죠..

가상화폐 투기도 이대로 방치했다가는 아주 큰 후유증을 겪을 게 명백해 보입니다. 이미 ‘채굴‘ 쪽에서도 ‘다단계 사기꾼들‘이 적잖이 적발되고 있고, 지금도 사기꾼들이 득실거리는 데다가, ‘가상화폐 매매‘ 쪽에서는 ‘채굴‘ 보다 훨씬 더 심각한 온갖 부정과 부작용들이 난무하고 있으니까요.

댓글이 너무 길었네요. ‘투기 광풍‘에 대헤 제가 읽었던 책들 가운데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은 찰스 P. 킨들버거가 쓴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더군요. 그런데 그 책은 일반인들이 소화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내용을 많이 다뤄서 함부로 권하기는 어려운데, 그보다 한결 재미있고 쉽게 쓰인 책 가운데 찰스 맥케이의 『대중의 미망과 광기』라는 책도 읽어볼 만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7 22:22   좋아요 0 | URL
oren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개인 투자의 문제로 돌리기엔 비트코인 투기 후유증이 만만찮아 보입니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은 이름만 들어보았는데 이미 oren님께서는 읽으셨군요. 보다 평이하게 쓰여진「대중의 미망과 광기」부터 읽어봐야겠습니다. oren님 좋은 책 추천에 감사드립니다^^:

oren 2018-01-17 22:38   좋아요 5 | URL
찰스 P.킨들버거의 책 속 구절을 정리해 놓은 게 있어서, 그 가운데 이번 ‘비트코인 투기 광풍‘과 관련해서 재음미해 볼 만한 구절들을 찾아봤습니다. 킨들버거의 『광기, 패닉, 붕괴 금융위기의 역사』는 제가 따로 정리해 놓은 ‘요약본‘만 가끔씩 들여다볼 때가 있는데, 매번 읽을 때마다 참으로 교훈적인 이야기가 많다는 걸 거듭 느끼게 되더군요. 소제목 옆에 붙은 숫자는 ‘책 속 페이지 숫자‘입니다.^^

* * *

눈먼 자본 5

패닉과 광기에 대해서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대한의 지식을 동원해 좇고 상상할 수 있는 규모를 넘어서는 대단한 분량이 쓰여졌다. 그렇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특정 시점마다 엄청난 금액의 멍청한 돈이 부지기수의 멍청한 사람들 손에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 당면한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명분을 이유 삼아 이런 사람들의 돈-우리는 이 돈을 눈먼 자본(blind capital)이라고 부른다-이 주기적으로 천문학적인 금액으로 불어나고 꿈틀대는 욕망에 주체를 못한다. 이 돈은 누군가가 자신을 집어 삼켜 주기를 갈망하며 ˝흘러 넘친다˝; 흘러 넘치는 돈이 누군가를 찾아내면 ‘투기‘가 벌어지고; 투기가 이 돈을 다 먹어 치우고 나면 ‘패닉‘이 발생한다.

월터 배젓, 『에드워드 기븐에 관한 소론Essay on Edward Gibbon』가운데


눈에 익은 단계들 5

나는 위기가 다가옴을 느낄 수 있다. 증권거래위원회가 있든 없든, 파탄을 몰고 올 새로운 투기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익히 눈에 익은 단계들을 밟아가며 다가오고 있다; 핵심 우량주가 붐을 일으킨 다음, 이류 종목들이 뜨겁게 달아오르면, 이어서 장외시장에서도 투기판이 벌어질 것이다; 그리고는 새로 상장된 주식을 둘러싼 또 한 차례의 끝물 장세가 지나가면, 마침내 피할 수 없는 붕괴가 찾아올 것이다. 이 일이 언제 벌어질지는 모르겠지만, 가까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빌어먹을 일은, 내가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버나드 J. 라스커(1970년 뉴욕증권거래소 회장으로 재직)
그가 1972년에 했던 말 가운데, 존 브룩스가 쓴『고고의 시절The Go-Go Years』에서 인용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 64

예전에는 투기적 모험과는 거리가 멀었던 기업과 개인들 중에서도 높은 수익률을 얻기 위한 소란스런 게임에 뛰어들기 시작하는 사례가 점점 많아진다, 돈을 버는 일이 이보다 더 수월했던 적이 없었다는 느낌이 든다. 지본이득을 위한 투기는 사람들을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행동에서 일탈시켜 ‘광기‘나 ‘거품‘이라는 표현 말고는 달리 묘사하기 어려운 행동으로 이끈다.

패닉에 대한 처방들 92

˝악마는 맨 뒤에 처진 사람을 잡아먹는 법이다(Devil take the hindmost)˝, ˝재주껏 도망쳐라(Sauve qui peut)˝, ˝맨 뒷사람이 개에 물린다(Die Letzen die Runde)˝, 이런 말들이 채닉에 대한 처방들이다. 이와 비슷한 광경은 사람들이 들어찬 극장 안에서 불이 났다고 고함칠 때의 모습이다. 연쇄편지가 연출하는 과정도 이와 닮은꼴이다. 왜냐하면 그 연쇄고리가 무한정 확장되는 것은 불가능하고 오직 소수의 투자자들만 가격 하락이 시작되기 전에 팔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개인의 입장에서는 연쇄 과정의 초반에 참가하면서 다른 모든 사람들도 자신들이 합리적이라고 여길 것이라고 믿는 것은 합리적인 일이다.

튤립 광기 197

역사가 사이먼 샤마(Simon Schama)가 제공한 사례 하나를 보면, 화이트크라운 1파운드(네덜란드어로 ‘Witte Croon‘이며 일반적인 품종이어서 무게 단위로 매매되었다)에 525플로린을 양도 시점(가령 돌아오는 6월)에 완납하고, 소 네 마리를 먼저 지불하는 방식으로 거래했다. 선불 계약금 지불에 쓰인 여타 현물로는 토지, 주택, 가구, 금은제 그릇, 회화작품, 양복과 코트, 마차, 회색 점박이 말 한 쌍 등이 있었다; 그리고 희귀종 튤립인 비체로이(Viceroy) 한 그루의 가치는 양도 시점의 완납 대금 2500플로린과 함께 현물 선불금으로 밀 2라스트, 돼지 네 마리, 양 열두 마리, 포도주 2옥스헤드, 버터 4톤, 치즈 수천 파운드, 침대 한 개, 몇 가지 의류, 큼지막한 은제 컵 하나였다.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 305

부정행위는 경제가 호황기일 때 증가한다. 재산은 호황기에 만들어지며, 개인들은 부의 증식 과정에 끼어들기 위한 탐욕에 빠지고, 사기범들이 이 탐욕을 이용하려고 등장한다. 호황기에는 스스로 제 털을 깎이려고 줄지어 서 있는 양의 숫자가 늘어나고, 자신들을 사기범의 희생물로 제공하는 사람들의 수가 증가한다. ˝일 분마다 한 명씩 속아 넘어간다.˝

부도덕의 극치 312

스프라그의 인용과 번역이 정확하다면, 호레이스(Horace)는 그들의 자세를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벌어라; 할 수 있다면 정직하게 돈을 벌되, 무슨 수를 써서라도 돈을 벌어라.˝ 남해회사 거품에 대한 조나단 스위프트의 언급도 이와 마찬가지로 냉소적이다:

돈, 돈을 계속 벌어라.
그리고 나서 혹시 미덕이 스스로 따라오겠다고 하면, 그리 하라.

발자크는 마지막 한 방이라고 부를 만한 말을 남겼다: ˝가장 미덕 있다는 상인들이 당신 앞에서 가장 노골적인 자세로 부도덕의 극치를 보여주는 이 말을 들려줄 것이다: 우리는 가능한 한, 나쁜 일에서 잇속을 챙겨 나온다.˝

겨울호랑이 2018-01-17 22:50   좋아요 0 | URL
^^: 킨들버거의 책은 정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경제강대국의 흥망」도 최근 중국의 부상에 대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했는데, oren님께서 추천해주신 「광기, 패닉,..」역시 킨들버거의 통찰이 빛날 듯 합니다. ‘투기‘와 관련해서는 ‘왜 사람들은 폭탄돌리기를 하면서도 자기 차례에 폭탄이 터지지는 않을 것이라‘기대하는지... 참 궁금해 집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7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리스크> 읽으셨네요. 반갑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1-17 22:27   좋아요 1 | URL
「리스크」로 대동단결! ㅋㅋ

북다이제스터 2018-01-17 22:31   좋아요 1 | URL
비트코인의 투기 광풍은 상대적 단기간 우려지만, 비트코인으로 장기적 순기능인 국가 소멸을 기대해 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1-17 22:39   좋아요 1 | URL
다른 한편으로 블록체인 기술로 ‘국가‘를 대체하는 ‘거대금융자본‘이 우려되기도 합니다. 이미 여러 분야로 진출한 대자본들이 국가를 초월한 경제 공동체 ‘애플나라‘, ‘아마존 공동체‘등을 만들다면 더 큰 위협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2018-01-17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3: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23: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雨香 2018-01-18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분홍색으로 옮겨주신 말들에 백퍼 동의하고 있습니다. 1년여전부터 블록체인 등 가상화폐 관련 글들을 읽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잘 아시겠지만 경제정책의 도구로서의 화폐의 기능이 사실 더 큰 화폐의 기능이지 역할인데, 기술을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경제정책의 도구로써의 화폐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없더군요.

다만, 금본위체제가 무너진 것에 대한 경험과, 유로화를 봤을 때(개별국가는 경제정책의 도구로써의 화폐 기능을 잃어버린) 가상화폐의 시대는 멀지 않았다고 봅니다.
*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어떤 분의 글을 읽었는데 우리나라 정부도 이미 4~5년 전부터 가상화폐에 대해 많은 공부를 하고 있고,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에 대해서도 잘 이해하고 있더군요. 다만, 잠시 정치적 공백기(박근혜정권말)와 다른 나라들의 방향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이야기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8-01-18 07:56   좋아요 1 | URL
雨香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정책수단으로서의 화폐에 대한 논의는 현시점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국가에서 통화조절 능력을 상실했을 때 이에 대한 대안도 이제는 이야기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雨香 2018-01-18 0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리고 가상화폐의 시대는 겨울호랑이님의 우려처럼 ‘거대 금융 자본‘의 시대라고 봅니다.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경제는 금융 자본에 의해 움직였다고 봐야 하는데요. 사실 IT 기업들의 성장뒤에도 거대 금융 자본의 지원이 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초기에 자금을 대 주고, 어느 정도 규모가 되면 CFO나 관리자를 소개시켜줘 안정적인 성장을 지원하고 본인들은 거대 수익과 함께 영향력을 잃지 않고요, 그래서 IT와 거대금융자본이 가상화폐 결합이 이뤄진다면 .... )

겨울호랑이 2018-01-18 08:00   좋아요 1 | URL
국가의 경제권력이 사라지고, 경제권력이 금융 자본에게 넘어간다면 이후 세계경제의 블록화는 국가/경제권 단위가 아닌 기업단위 경제 블록화가 된다면 노동/소비가 모두 대기업에 종속될 수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되네요...

AgalmA 2018-01-20 20:2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테일러 피어슨 <직업의 종말>은 자본의 힘이 금융->기업->개인에게 넘어가는 게 4차산업혁명의 흐름이라고 진단했죠. 비트코인도 그 예가 될 테고요.
유시민 작가처럼 이 모든 게 사기다 할 게 아니라 저는 이런 기술을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 하는 정재승 박사 쪽인데요.
이 기술이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 플랫폼이 잘 짜여지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비트코인 거래소 파산 문제도 그런 플랫폼의 부실함 때문인 것이니까요. 아직 공부가 부족해 내부를 자세히 모르니 그림만 떠오르는 상태^^;

겨울호랑이 2018-01-20 20:2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비트코인도, 블록체인 기술도 아직은 기술개발 초기라 향후 전망을 내리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직업의 종말>에서 나오는 것처럼 자본의 힘이 ‘기업‘에서‘개인‘으로 이전되기를 바라봅니다...
 
도덕감정론 - 개역판
아담 스미스 지음, 박세일 옮김 / 비봉출판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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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대표작은 <국부론 The Wealth of Nations>이다. 그렇지만 그는 죽어서 자신의 묘비병으로 "도덕감정론의 저자, 여기 잠들다"라고 써 놓을 정도로 <도덕감정론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 대한 애착이 있었다. 애덤 스미스가 애착을 가졌던 <도덕감정론>에 대해 이번 리뷰에서는 살펴보도록 하자.


1.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원리 : 동감(同感)


  인간의 기본적인 행동원리 중 하나는 '동감(同感)'이다. 동감은 다른 사람의 감정에 대해 자신의 일처럼 유사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며, 우리는 다른 사람의 감정 중 특히 고통에 대해 더 생생하게 느낀다. 같은 감정이더라도 우리가 타인의 기쁨보다는 고통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利己的 : selfish)인 존재라 하더라도, 그 천성(天性 : nature)에는 분명 몇 가지 행동원리(principles)가 존재한다. 이 행동원리로 인하여 인간은 타인의 행운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기 그 행운을 바라보는 즐거움 밖에는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 행운을 얻은 타인의 행복이 자기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연민(憐憫 : pity)이나 동정심(同情心 : compassion) 또한 이와 같은 종류의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보거나 또는 그것을 아주 생생하게 느낄 때 느끼게 되는 종류의 감정이다.(p3)'


 '상상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타인이 처한 상황에 놓고 스스로 타인과 같은 고통을 겪는다고 상상한다. 우리가 타인의 고통을 인식하는 방식은 마치 우리가 타인의 몸속에 들어가서 어느 정도 그와 동일한 사람이 되고, 그럼으로써 타인의 감각에 대한 어떤 관념을 형성하며, 비록 그 정도는 약하다고 하더라도, 심지어는 타인의 것과 유사한 감각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다.(p4)...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하여 동류의식(同類意識 : fellow-feeling)을 느끼게 되는 원천은 바로 이것이다.(p5)'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슬픔보다는 기쁨에 더 큰 공감을 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의 어려움을 숨기려 한다. 그래서, 알게된 타인의 고통에 대한 무관심은 그에게 큰 굴욕감을 안겨 주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공감을 통해서 타인의 고통에 위로를 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태도는 매우 비인간적인 것으로 비난을 받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다른 이들에 대해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이다. 타인에 대한 기본 행동 원리가 '공감'이라면, 자기 행동의 원칙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우리의 비애(悲哀)보다는 환희(歡喜)에 대해 더 많이 동감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재부(財富)는 과시하고 빈궁(貧窮)은 숨기려는 경향이 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우리가 겪는 빈곤과 고통이 폭로되는 것만큼 치욕적인 것은 없으며, 그리고 우리의 처지가 모든 인간들의 눈에 다 드러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누구도 우리가 겪고 있는 것의 반만큼도 생각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는 것보다 더 굴욕적인 일은 없다.(p91)'


 '불행한 사람들에 대하여 줄 수 있는 가장 잔인한 모욕(侮辱)은 그들의 재난(災難)을 경시하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친구의 기쁨에 무관심한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단지 무례(無禮)한 행동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친구가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이야기할 때 진지한 태도로 경청하지 않는 것은 정말로 엄청나게 비인간적인 행동이다.(p16)'


2. 자기 행동의 준칙 : 공정한 방관자


[사진] 칸트(출처 : 위키백과)


 "너의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법칙 수립의 원리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 칸트 -


 애덤 스미스는 자기 행동의 판단 기준은 공정한 방관자가 자신의 행동을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할 것을 <도덕감정론>에서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준칙을 지키는 것을 저자는 <도덕감정론>에서 '시인한다'고 표현하고 있다.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노력하라'는  애덤 스미스의 준칙은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가 <실천이성비판 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에서 말한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연상시킨다. 이처럼 개인이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에서 사회 정의에 부합될 수 있도록 행위했을 때, 사회전체적으로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미덕(美德)이 달성될 수 있다. 그렇다면, 애덤 스미스가 추구한 '아름다움'이란 무엇일까? 여기서 잠시 애덤 스미스의 미학(美學, Aesthetics)을 살펴보자.


 '우리가 우리의 감정과 동기에 대해 어떤 판단을 형성할 수 있건 간에, 그 판단은 항상, 타인의 판단은 실제로 어떠한가, 타인의 판단은 특정 상황에서는 어떠할까, 타인의 판단은 상상하건데 어떠해야할 것인가, 하는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준거(準據)에 관계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행위를 우리가 상상하는 공정한 방관자가 바라보는 것처럼 바라보도록 노력한다.(p210)'


 '우리가 우리를 만족시켜 주는 모든 것들, 즉 건물의 형태나 기계의 설계나 한 접시의 고기 요리의 맛을 시인한다(approve)고 표현하는 것은 언어상으로도 적절한 표현이다.(p628)'


 '미덕은 어느 한 가지 감정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감정의 적절한 정도(程度)에 있다. 나는 이 적절한 정도를 정하는 천연적 및 원시적인 척도(尺度)는 동감(同感) 또는 공정한 방관자의 상응하는 감정을 그 척도로 삼아야한다고 생각한다.(p586)'


3. 아담 스미스의 미학(美學)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애서 절대적인 아름다움과 상대적인 아름다움을 통해 미(美)에 대해 말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때 '절대미'에서 어느정도 떨어져 있는가를 비평기준을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미덕에 대해 말할 때도 절대미덕에 얼마만큼 근접해있는가를 통해 행위에 대한 평가를 한다. 이를 경제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최선(最善)을 대신한차선(次善)의 선택'이 될 것이고, 수학으로 표현한다면 극한(極限, limit)에서 '절대미에 무한 수렴'의 개념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된다. 결국 애덤 스미스는 '적절한 감정의 조화를 통해 절대적인 미에 가까워지려는 적절한 노력'이 아름다움을 향한 우리 사회가 나가야할 바로 지적한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가 어떤 행위에 대하여 그것이 어느 정도의 비난이나 갈채를 받아야만 할지를 결정할 때, 우리는 항상 서로 다른 두 가지 기준을 사용한다.  첫 번째 기운은 완전한 적정성(適正性)과 완미(完美)라는 개념이다... 두 번째 기준은, 이 진선진미(盡善盡美)한 상태로부터 접근해 있는 정도 또는 떨어져 있는 정도를 기준으로 사용하는 방식이다.(p39)...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우리의 상상력(想像力)에 호소하는 모든 예술작품들을 판단한다...작품을 비교하는 기준은 특정 분야의 예술이 통상 도달해 있는 탁월성(卓越性)이 된다. 그리고 그가 이 새로운 척도(尺度)에 의해 판단할 때, 그 작품은 흔히, 그것과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작품들 대부분보다 훨씬 더 완미에 접근해 있다는 이유로, 최고의 갈채를 받을 만한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p40)'


4. 애덤 스미스의 철학 체계


 이상의 논의를 정리했을 때, 우리는 일차적으로 타인의 감정에 동감을 하고, 이로 인해 그 사람으로부터 감사하는 마음을 받게 되고, 이러한 동감과 공감이 우리 개인의 일반준칙에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위들이 모여서 사회전체가 보다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애덤 스미스는 <도덕감정론>에서 말하고 있다. 


 '이상에서 논의한 철학체계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성품이나 행동을 시인(是認 : approve)할 때 느끼는 감정들은 네 가지 근원(根源)에서 나온는데, 이들은 몇 가지 점에서 서로 다르다. 첫째, 우리는 행위자의 동감(同感)에 대해 동감(同感 : sympathize)한다. 둘째, 우리는 그의 행위로부터 혜택을 받은 사람의 감사하는 마음에 공감(共感 : enter into)한다. 셋째, 우리는 그의 행위가 이상의 두 가지 동감이 그것의 행동의 근거가 되고 있는 일반준칙(一般準則)과 일치하는 것을 것을 관찰한다. 마지막으로, 그러한 행위는 개인이나 사회의 행복을 촉진시키는 경향을 가진 행위체계(行爲體系)의 일부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우리가 간주할 때, 그 행위들은 이러한 효용(效用)으로부터 그 아름다움을 획득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마치 우리가 설계가 잘된 기계에 일종의 아름다움을 귀속시키는 것과 같은 것이다.(p629)'


 <도덕감정론>에서는 타인에 대한 기본적인 행동원리인 '동감'과 자기 행동의 원칙인 '공정한 방관자의 입장'을 통해 사회의 미덕(美德)에 맞는 행동을 추구하고 이를 통해 전체 사회가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논증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철학 체계를 완성시키고 있다. 이러한 틀 안에서 <국부론>의 이론이 이해되지 않으면, 그의 사상을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흔히들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를 통해 시장경제 체제를 이야기 하지만, 그 전제는 '공감하는 인간'이 시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공감할 수 없는 인간'인 법(法)에 의해 인격(人格)이 부여된 '회사(company)' 특히, 대규모 자본이 시장의 주체가 되었을 때에도 완전경쟁의 시장의 논리가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아니면,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가.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이 바로 <도덕감정론>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진 물음이라 생각된다. 이제는 이러한 전제 위에서 <국부론>을 읽을 차례다. 


 PS. <도덕감정론>은 1759년에 쓰여졌고, <실천이성비판>은 1788년에 쓰여졌으니, 칸트의 정언명령이 애덤 스미스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PS2. <도덕감정론>을 보다 맛있게 즐기는 법


  아담 스미스의 말에 따르면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322)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Ethica Nicomachea>과 키케로(Marcus Tullius Cicero, BC 106 ~ BC 43)의 <의무론 義務論>을 <도덕감정론>과 함께 읽는다면 보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고 한다. 여기에 <시학 詩學>도 곁들인다면 더 좋지 않을까도 생각되기에, 다음 기회에 페이퍼로 정리해 보려 한다...


 '비극이나 로망스의 가장 흥미 있는 주제는 유덕하고 대담한 왕(王)이나 왕자(王子)의 불행이다. 만약 그들이 지혜롭고 굴(屈)하지 않는 강인한 노력을 통해 그러한 불행에서 벗어나서 그들이 전에 누리던 우세(優勢)와 지위를 회복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매우 열렬히 그리고 심지어 지나칠 정도로 찬탄하는 마음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그들의 불행에 대해 느끼는 비애와 그들의 성공에 대해 느끼는 기쁨은 함께 결합되어, 우리가 그들의 지위와 성품에 대하여 자연스럽게 가지는 편애(偏愛)에 기인한 찬탄을 고조(高潮)시키는 것으로 보인다.(p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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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1-17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7 16: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18-01-17 17:0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서재 바탕이 흰색에 검은 글자가 되어서 읽기 편해졌습니다. 하하하하.

겨울호랑이 2018-01-17 17:03   좋아요 0 | URL
^^: 제 서재 배경이 랜덤 변환이라 이웃분들께서 가끔 읽기 어려운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재 바탕을 고민해봐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0 19:46   좋아요 1 | URL
잠자냥님 의견에 동감요-,-; 사실 그동안 좀....)))

북다이제스터 2018-01-17 17:0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혹시 <도덕감정론>에 다음과 같은 내용은 없었나요?^^

사람들이 상호 애정으로 단결하여 서로에게 서로가 필요로 하는 지지를 ‘감사와 우정, 존중의 마음으로’ 준다면, 사회는 번영할 것이다. 하지만 스미스는 그러한 동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사회는 합의된 노고의 금전적 교환에 의해 지지될 것’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겨울호랑이 2018-01-17 17:22   좋아요 2 | URL
^^: 아마 해당되는 문구는 <국부론>에서 인용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도덕감정론> 에서 ‘미덕(美德)의 완미(完美)함은, 우리의 모든 행동을 가능한 최대의 이익(利益)을촉진하도록 지도하고, 우리의 모든 저급한 감정을 인류공동의 행복을 추구하는 데 종속시키고, 우리 자신을 수많은 사람들 중의 하나로 간주하면서 우리 자신의 번영이 전체의 번영과 일치하거나 혹은 전체의 번영에 기여하는 범위 내에서만 우리 자신의 번영을 추구하는 것에 존재한다.(p505)‘는 내용이 나오는데, 미덕과 관련한 아담 스미스의 논조와 연계시켜보면 아담 스미스가 ‘감사와 우정, 존중‘을 경시했다고 보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혹시 제가 못 찾았을 수도 있는데, 나중에 찾게 되면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1-17 17:41   좋아요 3 | URL
스미스가 미덕을 경시했다기 보다는 미덕이 중요하고 필요하지만, 사람들은 자신 편향성을 없앨 수 없기 때문에 ‘금전적 교환’에 의존한다라는 논리로 보이더라구요.

“무언가를 하려는 욕망이 우리 판단을 편향시킨다. 또한 행동이 이루어지고 난 후에도 우리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욕망이 또다시 편향을 야기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 행동에 대해 편향되지 않는 관점을 가질 수 없다.”

이런 취지는 <국부론>에 나오나 보네요. ^^

겨울호랑이 2018-01-17 18:02   좋아요 3 | URL
^^: 아마도 「도덕감정론」이 인간 감정을 다루기에 인간의 이기심이 드러나는 경제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일정부분 한계가 있어 「국부론」을 집필한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유념해서 「국부론」을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22 16:12   좋아요 0 | URL
북다이제스터님 관련 내용을 찾아 정리해서 먼 댓글로 달았습니다. 하루 잘 보내시고, 시간되실 때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많은 눈이 온다니 퇴근길 안전하게 들어가세요!

2018-01-18 00: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1-18 0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조그만 메모수첩 2018-01-18 09: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부론에 대해서 편견만 잔뜩 갖고 있다가 이 책이 사실은 국가 공동체 구성원들의 모든 행복을 위한 책이었고 심지어 식민지 정책도 반대했다는 내용이 있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겐 국부론 보다 도덕감정론이 ‘아담 스미스’란 이름으로 먼저 알려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1-18 09:47   좋아요 1 | URL
조그만 메모수첩님 말씀처럼 고전을 요약본으로만 접하게되면, 전체 논조 속에 숨어있는 저자의 사상을 온전히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또, 저자의 대표 저작만 알려져 있는 경우도 많아 일반에 왜곡되어 알려진 사상가들이 많다는 것을 요즘 느끼고 있습니다. 아담 스미스 역시 그런 사상가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관심을 가지고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AgalmA 2018-01-20 19: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감하는 인간‘ 상정을 이해는 하는데요. 진화론을 조금만 생각해봐도 허점이 생깁니다. 우리는 공동체 형성을 통하기도 했지만 차이와 경쟁을 통해서도 진화를 해 왔어요. 그러니 ‘공감하는 인간‘이라는 절대 요소만으로 사회를 구성할 수 없습니다. 위에 계신 북다이제스터님이 바로 그 부정성의 해결을 위해 ‘금전적 교환의 보상‘을 스미스가 전제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걸로 해석할 수 있겠네요. 결국 정치와 경제는 같이 갈 수밖에 없는^^;;

겨울호랑이 2018-01-20 20:07   좋아요 1 | URL
^^: 그렇게도 볼 수 있겠네요. 다른 한 편으로 우리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어떻게 보면 대립될 수도 있는 두 체제를 각자 정치와 경제면에서 운용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도덕감정론>은 정치적 배경을, <국부론>은 경제적 배경을 설명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조만간(?) <국부론> 리뷰에서 북다이제스터님과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한 내용을 함께 고려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