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호와 러스티
백수현 지음 / 미메시스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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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3 


시호가 낮잠을 자러 들어가면 총총 따라와서 발치에 자리잡고, 또 시호가 낮잠에서 깨면 꼬리를 흔들면서 핥아 주고, 시호 장난감에 입을 대기는 커녕 자기 장난감을 물고 와 시호한테 놀자고 하고, 시호가 거실이나 방에서 울기라도 하면 부엌에서 일하고 있는 나에게 와서 불안한 몸짓으로 알려 준다.

그냥, 고맙다, 러스티. 널 만난 건 행운이야. (p52)


 <시호와 러시티>는 육아 일기다. 아이와 함께 하는 아름다운 가족의 모습이 담긴 에세이라 편안하게 읽힌다. 지은이가 아기 시호를 키우면서 느꼈던 감정이 담겨 있는 이 에세이 속에서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성장하는 일기의 한 페이지가 어린 시절의 추억과 함께 마음에 다가온다. 

 

 

 1970년대 후반의 어린 시절. 많은 시간들을 강아지와 함께 했었다. 당시 엄마는 마당에 개털이 날린다고 싫어하셨지만, 내게 녀석은 항상 함께 해주는 고마운 친구였다. 기쁘거나 슬프거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는 녀석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껏 놀 수 있었던 기억이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인상 깊게 마음에 남아 있다. 그리고, 이러한 추억을 아이와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2015년 여름에 그러한 기회가 찾아왔다. 

 아내가 시골학교 발령을 받아 시골관사로 이사하게 된 것이다. 비록 나의 출퇴근 거리가 멀어진다는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이는 새로운 전환점이 되리라는 생각에 아내는 시골학교로 자원했고, 그렇게 시작된 전원생활. 이러한 결정에서 가장 크게 작용했던 것은 연의의 어린 시절을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머리속으로 그린 청사진 속에는 연의처럼 어린 강아지와 함께 뛰어노는 연의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동물과 함께 커간다는 의미는 사람과 함께 노는 것과는 또 다른 의미를 가진다. 자신과 다른 동물이 같은 감정(感情)을 가질 수 있다는 점, 기쁘거나 슬프거나 자신을 따라주는 한결같은 친구가 생긴다는 점 등 부모가 대신하거나 가르쳐 줄 수 없는 부분도 반려동물은 알려 줄 수 있을 것이었다. 삶의 희노애락(喜怒愛樂) 뿐 아니라, 조금은 슬프겠지만, 죽음(死)까지도. (그런 의미에서는 십장생 十長生을 키우는 것은 좀 그렇다.)


 관사생활을 시작할 때 개를 키우려 했으나, 막상 이사를 와 보니 옆 관사의 선생님 가족들이 먼저 개를 키우고 계셔서 잠깐이나마 개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렇지만, 조금은 큰 개였기에 선뜻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연의 모습을 보면서 다른 기회를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중에 함께 개를 키운다면 어린 시절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아빠가 어린 시절 강아지와 함께 했던 추억을 가졌듯이, 연의가 초등학교 유년기 또는 중고등학교 청소년기 어느 시기에 함께 하는 사람과는 다른 동식물 추억을 가지길 기대해 본다. 


 <시호와 러스티>는 동물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의 소소한 모습이 많은 사진과 함께 담아낸다. 그래서, 아이를 기다리고 있는 부모에게는 아이에 대한 기대를,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에게는 공감과 위로를, 이미 아이를 키운 부모들에게는 추억을 선물하는 책이라 생각된다. 


ps. 연의의 다음 동물친구는 지금은 번데기가 되어 성충이 되길 장수풍뎅이. 장수풍뎅이는 연의에게 기다림이 무엇인지 알려주고 싶었겠지만, 연의는 요즘 인형뽑기하느라 바빠 장수풍뎅이를 잊은지 꽤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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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12: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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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8 1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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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8-02-28 1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 달 뒤면 성충을 볼 수 있겠군요. 풍뎅이를 기다리는 유일한 사람이 호랑이님이네요. 아이들 반려동물까지 보살피다가 반려동물에 정 드는 아버지들이 많아요. 저희 아버지도 처음에 반려견을 싫어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어머니보다 반려견을 더 좋아했어요. ^^

겨울호랑이 2018-02-28 13:45   좋아요 0 | URL
^^: 지금은 호기심이 많아 잠시 장수풍뎅이를 잊고 있어도, 성충이 된 후에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cyrus님 말씀을 듣고보니 첫인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네요.

2018-03-01 21: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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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2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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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21: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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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3-01 22:4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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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3-02 21: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장수풍뎅이는 나중에 크기가 어느 정도나 될까요. 무척 클 것 같은데요.^^
오늘 대보름입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좋은 한해 되세요.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3-02 21:11   좋아요 2 | URL
장수풍뎅이가 성충이 되면 장수풍뎅이 특집 페이퍼 올리겠습니다 ㅋㅋ 서니데이님도 견과류 부럼과 함께 따뜻한 주말 되세요^^:)
 

국제 전기/ 전자부문 '공룡 기업'인 지멘스가 바삐 움직인다. 지멘스는 신재생에너지 시대에 맞춰 사업성이 떨어지는 화력발전 사업 부문 7천명을 줄이는 등 강도 높은 구조고정을 추진하고 있다. 조 케저 지멘스 회장은 대형 유조선인 지멘스를 성능이 뛰어나고 유연한 소형 선박으로 구성된 선단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가 지멘스라는 대기업을 작고 민첩한 단위로 분할하려는 이유는 영미계 추자자를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조 케저의 위험한 프로젝트는 지멘스 노동자들의 격렬한 저항을 받고 있다. 내부에선 그가 독단적으로 지멘스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비판도 나온다.(p61)


 Economy Insight 2월호 기사에는 독일의 최대 엔지니어링 회사인 지멘스(Simens)가 생존을 위해 기업 확장 대신 소규모 사업 단위 운영을 선택하면서 동시에 인력감축을 통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격변하는 시대 변화에 살아남기 위해 변신을 추구하는 지멘스의 전략은 얼핏 보면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연상시키지만, 구체적인 내용면에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 : a study of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에서 E.F. 슈마허(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경제분야에서 거대주의(gigantism) 대신 최소주의(Minimalism)를 지향하며,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말한다. 그리고, 최소주의를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소비, 생산, 분배 측면에서 '가치관의 전환', '교육'과 '중간기술', '공동소유'의 중요성을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는 강조한다. 


1. 소비 : 가치관의 전환과 교육


 가. 가치관의 전환


 저자는 경제학을 파생된 사유체계인 메타경제학으로 정의하면서, 이를 위해 경제학을 인간적인 측면과 외부적인 측면(자연적인 측면)에서 접근을 시도한다. 인간적인 측면에서는 적절한 소비 패턴과 인간 노동에 의한 생산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삶을 보다 만족스럽게 꾸려갈 수 있다. 외부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자연(自然)에 대한 입장 변화가 필요하다. 개발 대상으로 자연을 바라보는 관점을 재생(再生) 가능성 측면에서 접근했을 때 우리 삶은 바꿔질 수 있음을 저자는 말한다.


경제학은 '일정한' 틀 내부에서만 정당하면서도 유용하게 작동하는데, 이 틀은 완전히 경제적 계산 영역 외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학이 제 발로 서 있는 학문이 아니라거나 '파생된' 사유체계, 즉 메타경제학(meta-ecomomics)으로부터 파생된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p63)


서구의 물질주의라는 메타경제적 토대를 버리고 그 자리에 불교의 가르침을 수용한다면 경제법칙이나 '경제적' '비경제적'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될 것인가?(p70)... '올바른 생활(Right Livehood, 正命)은 불교의 팔정도(Noble Eightfold, 八正道) 가운데 하나이다.(p71)... 불교 경제학은 물질주의자의 부주의(heedlessness)와 전통주의자의 부동성(immobility) 사이에서 올바른 발전 경로인 중도, 즉 '올바른 생활'을 발견하는 문제이다.(p82)


모든 일들은 생산자로서의 인간이 '비경제적으로 사치'할 만한 여유가 없으며, 그래서 소비자로서의 인간이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바로 그 필수적인 '사치품' -건강, 아름다움, 영속성-을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다. 이것을 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필요하며, 부유해질수록 그 비용을 감당할 '여유'가 점점 더 없어진다.(p148)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을 만큼 값이 싸며, 소규모 이용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될 수 있는것. 이러한 세 가지 특성으로부터 비폭력이 생겨나고, 영속성이 보장되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가 출현한다.(p47)


나. 교육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서 영속성이 강조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서 변화되어야 할 가치관의 전환 역시 전달이 중요하다.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가치관의 전환이 확산되었을 때 우리의 삶이 구체적으로 달라질 수 있게 된다. 


근대 세계는 근대 형이상학의 산물이며, 이 형이상학은 근대 교육을 틀지웠으며 이 교육은 다시 과학과 기술을 산출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이나 교육까지 언급하지 않더라도, 근대 세계를 만드는 것은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다.(p187)

오늘날 과학 기술의 진보로부터 생겨난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교육의 힘에 의존하는 바가 그렇게 크다면, 교육에는 스노경(Charles Percy Snow, Baron Snow, Kt., CBE, 1905 ~ 1980)이 주장하는 이상의 그 무엇이 존재해야 할 것이다. 과학 기술은 노하우(know-how)를 생산하지만, 노하우 자체는 아무것도 아니다.(p104)... 교육이 무엇보다도 먼저 가치관(ideas of value), 즉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관념(ideas)을 전달해야 할 것이다.(p105) 


3. 생산 : 중간기술(대중에 의한 생산)


 저자는 생사 측면에서는 자본재(기계)에 의한 대량 생산이 아닌, 대중에 의한 적정량의 생산을 강조한다. 그리고, 이를 '중간 기술'로 이름지으면서, 해외 원조 역시 자본재 수출이 아닌 중간 기술의 수출이 이루어졌을 때 피원조국은 바람직한 경제 체제를 구축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간디가 말했듯이, 대량 생산이 아니라 오로지 대중에 의한 생산만이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p196)... 대량 생산 기술은 본질적으로 폭력적이며, 생태계를 파괴하고 재생될 수 없는 자원을 낭비하며,인성을 망쳐놓는다..대중에 의한 생산 기술은 근대의 지식과 경험을 가장 잘 활용하고, 분산화를 유도하며, 생태계의 법칙과 공존할 수 있고, 희소한 자원을 낭비하지 않으며, 인간을 기계의 노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유용하도록 고안된 것이다... 필자는 이를 중간 기술(ntermediate technology)라 명명한 바 있다.(p197)


중간 기술은 대량 생산이 아니라 대중에 의한 생산에 기여한다... 필자는 기술 발전에 새로운 방향을 제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방향은 기술을 인간의 실질적인 욕구에 맞게 재편하는 것이며, 이는 또한 인간의 실제 크기에 맞추는 것이기도 하다.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p204)


4. 분배 : 공동소유


 저자는 책을 통해 분배면에서는 '공동소유'를 강조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제점은 민간대기업이 공공부문의 많은 부문을 이용하면서도 이에 대한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공공기관에 의한 민간대기업 소유를 제안한다. 


공동소유(commom ownership)나 공동체는 이윤 분배나 공동 경영이나 집단 소유(co-ownership), 또는 개인이 공유기업에서 부분적인 이해 관계를 보일 수 있는 온갖 형태(scheme)로부터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것이다. 이것들은 공유(woning thing n commom)로 나아가는 것이며, 그래서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공동소유는 독특한 장점을 갖는다.(p352)


필자는 공공기관이 민간대기업의 배분이윤 중 절반을 수령해야 하며, 그 방법은 이윤세가 아니라 기업 주식의 50%를 소유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가정할 것이다.(p361)... 이는 민간 부문의 유연성을 관료적 경직성(ponderousness)으로 대체하지 않더라도 대기업의 소유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으리라. 이 구상은 점진적이면서도 실험적인 방식으로 도입할 수 있다. 즉 가장 큰 기업에서 출발해서, 기업이라는 요새에서 공익이 충분히 존중되고 있음을 확인할 때까지 점차 규모가 작은 곳으로 나아가는 것이다.(p369)


[사진] 몬드라곤 협동조합(자료출처 : 동아일보)

저자가 강조한 이러한 공동소유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우리는 몬드라곤(Mondragon)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그만 협동조합수준을 넘어 이제는 그룹(group)으로까지 성장한 몬드라곤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슈마허가 강조한 생산과 분배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동시에, 저자의 이러한 의견은 국내 주식 시장에 20% 넘게 투자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소유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국민연금의 운용현황의 문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노후 소득이 없는 이들의 주요 소득원을 국내대기업의 운명과 연동시키는 것이 옳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업에 운영에는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실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제시된 공동소유의 모습과는 같은 듯 분명 다르다.



[사진] 몬드라곤 그룹 규모(자료출처 : YTN)


[사진] 국민연금 자산군별 기금규모 (자료출처 : 연합뉴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비슷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보다 깊이 있게 느껴지는 것은 그속에 담겨있는 철학(哲學)의 깊이 때문이다. 책의 본문 한 장(章)에서 구체적으로 '불교 경제학'을 말하고 있지만, 불교에만 한정되지 않는 인류 보편적 사상이 담겨있다. 일례로 노자(老子, BC604 ? ~ ?) 의 <도덕경 道德經>과 맞닿아 있는 부분은 아마도 다음 구절일 것이다.

80章 小國寡民


小國寡民, 使有什佰之器而不用, 使民重死而不遠徙,

소국과민, 사유십백지기이불용, 사민중사이불원사,

雖有舟輿, 無所乘之, 雖有甲兵, 無所陳之,

수유주여, 무소승지, 수유갑병, 무소진지,

使人復結繩而用之, 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

사인부결승이용지, 감기식, 미기복, 안기거, 낙기속,

隣國相望, 鷄犬之聲相聞, 民至老死不相往來.

인국상망, 계견지성상문, 민지노사불상왕내.


나라는 작고 백성은 적으며, 편리한 기계가 있어도 사용하지 않고,

백성들은 죽음을 중히 여겨, 멀리 옮겨 다니지 않는다. 

배와 수레가 있지만 탈 일이 없고, 무기가 있지만 쓸 일이 없다.

사람들로 하여금 다시 새끼를 엮어 쓰게 하고 먹던 음식을 달게 여기고, 

입던 옷을 좋게 여기며, 살던 곳을 편안히 여기고, 각자의 풍속을 즐거워하게 하니,

이웃 나라가 서로 바라보이고, 닭 울고 개 짖는 소리가 들려도 

백성들은 늙어 죽을 때까지 돌아다니지는 않는다. (p314)


 그렇지만, 슈마허의 '작은 것'은 노자(老子, BC604 ? ~ ?)가 말한 소국(小國)과는 결을 조금은 달리 하는 것 같다. 노자가 <도덕경>을 통해 '최소한의 문명(文明)'을 강조한다면,  저자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서 '적절한 문명의 유지'를 강조한다고 생각되기 때문이지만, 아마도 이 부분은 <도덕경>을 어떻게 바라보는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소비자로서의 인식전환, 중간 기술에 의한 노동(labour) 중심의 생산, 공동소유로 대표되는 분배를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가 이미 1970년대 주장한 대부분의 논의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과거보다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요즈음 <작은 것이 아름답다>가 주장하는 내용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는 면에서 이 책은 경제학의 현대 고전(古典)이라 여겨진다.


PS. <도덕경>은 그런 책이 아니라는 강신주 박사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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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9: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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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5 19: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설 연휴 직전 한국GM에서  군산공상 폐쇄를 일방통보하면서 군산지역 경제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GM 경영진을 만나 공장폐쇄등 관련 현안에 대해 협의를 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은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야권인 자유한국당에서는 GM문제를 낮은 생산성문제로 말하면서 노조를 비판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사 : http://news.jtbc.joins.com/article/article.aspx?news_id=NB11590394


과연 이러한 주장이 맞는 주장인지 살펴보자. 먼저,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은 낮은가? 단정적으로 말하자면 낮은 수준이다.


[그림] 2015년 기준 OECD 주요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출처 : e-나라지표 http://www.index.go.kr/potal/stts/idxMain/selectPoSttsIdxSearch.do?idx_cd=2890&stts_cd=289005



시간당노동생산성 : 1인당국내총생산/총노동시간


 그래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우리나라는 시간당 노동 생산성이 약 30달러 수준으로 65달러 수준에 달하는 미국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다만, 우리는 노동생산성에서 분모에 주목해야 한다. 분자가 되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 GDP는 일정 기간 동안 한 국가에서 생산된 재화와 용역의 시장 가치를 합한 것을 의미하며 보통 1년을 기준으로 측정하게 된다. 생산을 위해서는 자본, 노동, 기술 등 여러 요소가 투입되는데, 노동은 이들 여러 요소중 하나일 뿐이다. 이를 사전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노동생산성 勞動生産性 labour productivity


어떤 생산부문 또는 어떤 생산자의 노동의 생산력이나 생산성은 일정 시간 내에 생산되는 생산물의 수량에 의해 측정된다. 다만 이 경우 노동의 강도는 일정불변으로 가정한다. 노동의 생산력을 특히 규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련의 평균 정도, 과학 및 그 기술적인 응용가능성의 발전단계, 생산과정의 사회적 결합, 생산수단의 범위 및 작용능력, 자연적 사정(인종, 농산물의 풍흉, 광물의 매장량 등)이다. 노동의 생산력이 변하여도 일정 기간내에 생산되는 상품의 총가치는 영향이 없다.


 노동생산성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의 숙련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과 기술은 물론 사회적, 지리적 요인도 고려된 사회의 생산물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측정하기 때문에, 단어 그대로 '노동의 생산능력'으로 해석되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시간당노동생산성의 경우 1인당 국내총생산을 총 노동시간으로 나누게 되면 생산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OECD에서도 두번째로 긴 노동시간은 측정단위에서 분모가 되기 때문에 생산성을 높이기보다 오히려 낮추는 요인이 될 수도 있다.


관련기사 :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8/15/0200000000AKR20170815071000002.HTML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경영자들은 낮은 생산성의 문제를 노동자의 숙련도 문제로 돌리고, 낮은 숙련도로 노동투입시간을 늘리는 것과 해외 이전을 합리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경영자들은 노동생산성문제로부터 자유로운가?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 1723 ~ 1790)의 <국부론 (An I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의 유명한 분업(分業)과 관련한 문단에서 확인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종류의 작은 공장을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10명만이 고용되어 있었고, 따라서 약간의 노동자들은 두세 가지 서로 다른 조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매우 빈곤했고, 따라서 필요한 기계를 거의 가지지 않았지만, 그들은 힘써 일할 때 하루 약 12파운드(5.4kg)의 핀을 만들 수 있었다. 1파운드는 중간 크기의 핀 4,000개  이상이 된다. 그러므로 10명이 하루에 48,000개 이상의 핀을 만들 수 있고 한 사람은 하루에 4,800개의 핀을 만든 셈이 된다. 그러나 그들이 각각 독립적으로 완성품을 만든다면, 그리고 그들 중 누구도 이 특수 업종의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면, 그들 각자는 분명히 하루에 20개도 만들 수 없을 것이며, 어쩌면 하루에 1개도 만들 수 없을지도 모른다. 다시 말해, 상이한 조작들의 적당한 분할과 결합이 없다면, 그들 각자가 지금 생산할 수 있는 것의 1/240은 물론 아마 1/4,800도 만들 수 없을 것이다.(p9)


 상이한 조작들의 적당한 분할과 결합에 따라 노동의 생산성이 극명하게 달라지는 사례를 우리는 <국부론> 속에서 이미 확인할 수 있다. 이 경우 노동생산성의 차이는 노동자의 성실성보다는 노동력의 적절한 배치에 달려있다고 보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은 노동자가 아닌 경영자가 하게 된다. 이러한 이유로 경영자에게는 일반 노동자보다 많은 보수가 주어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낮은 생산성에 대한 책임을 노동자 또는 노조에게 돌리는 것은 비겁한 변명 수준을 넘지 못한다.


 결국,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는 노동자만의 책임이 될 수 없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가 자기계발을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회사에서는 경영자의 노력이,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낮은 노동생산성을 노동자만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사실의 왜곡이라 볼 수 밖에 없다. 공군 파일럿 1명의 전투력이 육군 보병 1명의 전투력보다 높다고 해서, 파일럿이 자신이 조종하는 전투기를 제공하지 못한다. 이를 제공하는 것이 나라라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은 기업과 국가의 몫이다.


 GM이 단계적으로 철수하는 문제는 복잡한 문제다. 글로벌 기업의 세계전략을 '낮은 노동생산성'의 문제로 돌리는 것은 지나치게 문제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백보 양보해서 낮은 노동생산성 문제라고 하더라도 이는 적절한 철수 이유가 되지 못한다. 낮은 노동 생산성의 책임은 경영진에도 분명 있기 때문이다. 높은 경영진 보수 문제를 제외하고 노동생산성의 정의(definition)만 놓고 보더라도 그렇다. 정치권에서 노동생산성을 언급한다면 보다 정확한 의미를 파악한 후 사용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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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1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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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2 1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2-22 20: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노동생산성 수준이 낮은건 노동자가 아닌 경영층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에게 생산성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하는 일인입니다. ㅎㅎ
넘 비인간적이잖아요, 우리가 기계도 아닌데...ㅠㅠ

겨울호랑이 2018-02-22 21:15   좋아요 0 | URL
그렇지요.. 거슬러 올라가면 문제는 모든 것을 계량화하여 측정하는 과학적 사고 역시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량화된 근거와 자본이 결합한 자리에는 인간적인 면이 배제되는 것 같네요... 그런면에서 칼폴라니는 좋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서니데이 2018-02-24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님, 즐거운 주말 기분 좋은 토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2-24 19:41   좋아요 1 | URL
^^: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주말 되세요!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 - 노자의 길과 장자의 길 사이에서
강신주 지음 / 오월의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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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철학자 강신주(1967 ~ )의 관점에서 노자(老子, BC 604 ? ~ ?) 와 장자(莊子, BC 369 ? ~ BC 286)에 대한 해석을 담고 있다.  우리가 알던 노장사상(老莊思想)이 아닌 제국주의(帝國主義) 사상의 기본으로 해석된 노자와 타인과 자신의 소통으로 해석된 장자 사상은 신선함과 낯설음을 함께 느끼게 한다. 이하 리뷰에서는 강신주에 의해 해석된 노자와 장자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려 한다.


1. 노자(老子) : 제국-국가의 수탈과 재분배에 대한 이론적 배경


 저자에 따르면 노자 사상은 하나의 거대한 제국을 지향한다. 제국에 이르기 위해 통치자는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향하는 마음을 가지고 통치해야 물이 모이듯 제국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설명한다. 또한, 저자는 제국은 국가와 동일한 작동한 원리를 가지는 것으로 이해하고, 국가의 작동원리를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체계로 해석한다.


 노자 철학에 등장하는 많은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바로 '천하(天下)'이다. '천하'는 글자 그대로 '하늘 아래'를 의미한다. 결국 이것은 전국(戰國)의 혼란과 무질서를 '하늘 아래'라는 생각으로 통일하겠다는 의지를 반영하고 있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강력한 파시즘으로 무장한 국가의 무력으로는 전국(戰國)을 통일할 수 있지만, 결코 그것만으로 통일된 제국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던 것이다.(p284)


  노자의 해법은 피통치자가 '제국'안에 들어오면 사랑의 원리로, '제국' 바깥에 남으려고 한다면 폭력의 원리에 입각해서 통치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한다... 흥미로운 것은 노자의 '제국' 논리가 역사상 존재했던 크고 작은 거의 모든 '제국들'에서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할 점은 '제국'이 결코 '국가'와 독립적인 층위에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노자 철학의 진정한 고유성을 그가 '제국'으로까지 이어질 '국가'의 작동원리를 발견했다는 것에서 찾아야 한다.(p285)


 저자는 '수탈-재분배'라는 교환 체계를 통해 국가를 해석하고, 이러한 체계를 통해 국가 또는 제국이 유지된다고 보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노자의 사상은 '더 얻기 위해 자신을 더 낮추는' 목적이 있는 고도의 정치학으로 해석된다.


 노자에 따르면 국가란 하나의 교환 체계다. 구체적으로 말해서 국가는 수탈과 재분배라는 교환 논리에 따라 작동하는 기구다. 그러나 문제는 노자가 국가를 자명하게 주어진 전제라고 생각했다는 점이다.(p285)


 수탈과 재분배라는 고유한 작동 원리가 유지되는 한, 그것이 전자본주의 경제체제든 혹은 자본주의 경제체제든 아니면 우리가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경제체제든 간에, 국가가 그 어떤 생산양식 혹은 생산력이라도 자신의 교환 논리로 선택하고 편입시킨다고 보아야 한다.(p288)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노자 사상을 마르크스 주의(Marxism)적으로 해석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본문을 저자처럼 해석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노자 후대에 나타난 정치경제구조를 통해 역(易)으로 과거 사상을 해석한 것은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수탈과 재분배' 라는 후대의 하부구조의 현상속에 추상적인 노자 사상의 일면이 담길지는 몰라도, 그게 노자 사상의 전체라고 보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노자 사상을 경제사상으로 한정시키는 순간 그 길은 길이 아닌 것이 되지 않을까.(道可道 非常道)하는 생각을 <노자>편에서 하게 된다.


2. 장자(莊子) : 타자와 소통을 통해 얻게 되는 자유


 이번에는 저자가 해석한 장자 철학을 살펴보자. 장자의 철학은 소통의 철학으로 정리될 수 있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위해 우리는 꿈(자기동일성)에서 깨어나 타인과 직접 부딪혔을 때에 이르러야 우리는 비로소 소통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소통을 통해 타인과 자신이 서로 긍정 된다.


 장자의 철학은 전국시대라는 정치적 상황과 제자백가로 상징되는 사상적 상황의 산물이었다. 다시 말해 대화와 소통의 결여라는 상황 속에서 그의 철학은 탄생했다.(p614)..  갈등과 대립의 시대에 장자는 진정한 대화와 소통을 꿈꾸었던 사람이다. 그에 따르면 우리는 진정으로 타인과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해서 유아론적 꿈에서 깨어나야만(覺)한다.(p615)


 단지 깨어난 상태는 주체가 자신의 유아론적 자기동일성에서 벗어나서 타자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상태에 지나지 않는다... 깨어남은 주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일 뿐, 결코 필연적으로 타자와의 소통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는 말이다. 소통의 성공 여부는 소통의 양 항이라고 할 수 있는 주체와 타자에 의해 동시에 결정되는 법니다.(p615)... 절대라는 개념 속에서는 주체와 타자는 원리적으로 소멸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반면 무대(無待)가 '매개에 의존하지 않음'으로 이해될 때, 주체와 타자는 실존적으로 긍정될 수 있다.(p616)


 그리고, 저자는 타인과 소통을 통해 기존의 자신에서 벗어나 새로운 자신으로 거듭났을 때 이를 '자유가 실현되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장자는 자신이 깨어나 타인과 소통을 통해 새로운 자신으로 올라섰을 때 비로소 자유를 얻게되는 것이다. 저자의 장자 해석은 전형적인 변증법(辯證法) 구조로 정(正)- 반(反) - 합(合)의 과정을 통해 합에 이르렀을 때 이를 자유라고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소통은 지적인 이해나 또는 정서적 교감과도 구별되어야 한다. 지적인 이해나 정서적 교감에 대한 논의는 기본적으로 독립된 주체와 타인을 전제하기 마련이다... 소통은 우리가 새로운 주체로 생성되는 비인칭적 수준에서의 관계 맺음으로 정의해야 한다. 다시 말해 장자에게 주체의 자유는 주체 자신이 스스로 자신의 주체 형식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 있다. (p618)


 장자에게 소통은 자유(逍遙遊)라는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오직 비인칭적 마음으로 타자와의 소통이 가능했을 때, 자유는 실현될 수 있다. 자유가 실현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주체가 새로운 타자와 소통해서 새로운 주체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p619)


 아직 <장자>를 충분히 읽지 않아서 이에 대한 개인 의견은 나중에 기회가 될 때 정리하도록 하고, 먼저 저자의 생각을 요약해 보았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강신주의 노자 혹은 장자>는 동양사상을 서양철학의 관점에서 해석한 책이다. 본문에서는 데카르트, 들뢰즈 등 여러 철학자들의 사상을 통해 노자와 장자 사상을 해석하고 있어 독자들은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기존 <논어 論語>에 대한 일반적인 해석만 접하다 오규 소라이(荻生?徠, 1666 ~ 1728)의 <논어징 論語徵>을 대했을 때처럼 우리는 낯설음을 느끼게 된다. 그렇지만, 이 책에 따르면 독자들은 노자와 장자에 대한 과거 인식을 버리고 타자(강신주)와 소통하고, 이러한 낯설음을 받아들였을 때 새로운 관점을 가지는 자신으로 거듭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는 기분좋은 낯설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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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21 1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21 1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알케 2018-02-21 12:4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1. 저는 개인적으로 지금은 거의 절판된 도올의 초기 책 <노자철학 이것이다-상>도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2. 오규 소라이의 <논어징>이 새로우셨다면 도올의 <논어한글역주 1,2,3>을 권합니다. 오규 소라이의 ‘고문사론‘적
주석론이 어떻게 더 뛰어나게 발현되는지 보실 수 있을겁니다, 그리고 저는 호들갑스런 오규 소라이 평가론에
마루야마 마사오의 의도성을 의심하는 편입니다,

겨울호랑이 2018-02-21 12:42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알케님 좋은 책소개 감사합니다. 예전에 「노자와 21세기」는 읽은 적이 있습니다만, 말씀하신 「노자철학 이것이다」는 또다른 내용인지 궁금해집니다^^:)

Lomain 2018-02-22 08: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부터 줄곧 강신주 박사의 노자론이 궁금했는데, 겨울호랑이님 덕분에 궁금증을 풀고 갑니다. 직접 읽어보기도 해야겠네요.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2-22 10:2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Lomin님 작은 도움이 되어 저 역시 기쁩니다. 직접 읽으신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행복한 하루 되세요^^!

sslmo 2018-02-23 13: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래간만에 ‘오규 소라이‘보니 새롭네요~^^

전 강신주의 ‘노자, 장자‘는 제법 읽은 것 같은데,
그 후로 다른 분들의 노자와 장자를 읽으면서 비교되거나 또렷해지는 느낌이 아니라,
묻혀서 희미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왠지 고뇌하는 철학자라기 보다는 퍼포먼서라는 느낌.

강신주 님은 ‘제자백가 시리즈‘가 완전 죽음이었는데,
출판사도 빵빵한데 왜 후속편이 안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2-23 14:01   좋아요 1 | URL
양철나무꾼님께서는 동양철학, 특히 노자 철학을 많이 좋아하셔서 시중의 많은 저작을 두루 섭렵하셔서 그런 느낌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래서 큰 흐름 속에 묻힌 것은 아닐까 생각됩니다^^: 저는 이중텐의 「백가쟁명」을 예전에 읽었는데, 양철나무꾼님의 말씀을 들으니「제자백가 시리즈」도 궁금해 지네요. 항상 좋은 책 소개에 감사드립니다^^:

sslmo 2018-02-23 14:08   좋아요 1 | URL
두루 섭렵한 정도는 아니고(삐질~‘‘),
님 말씀을 듣고 보니 그럴지도요~^^
예전엔 강신주를 좀 좋아했는데,
언제부턴가 강신주는 부담스럽더라구요.
그래도 아직도 그분의 책이 나오면 꼬박꼬박 챙겨 구입합니다.

강신주 님 제자백가 시리즈 2권까지 읽고 공원국 님 ‘춘추전국이야기‘ 읽으니,
그건 또 내용이 선명해 지더라구요~^^

제가 노장을ㅡ 노자 보다는 장자를- 좀 좋아하기는 하는가 봅니다.

sslmo 2018-02-23 14:09   좋아요 1 | URL
아참참~, 연의 어린이 프.사.가 바뀌었네요.
많이 컸네요, 예뻐라~^^

겨울호랑이 2018-02-23 14:15   좋아요 1 | URL
^^: 그렇군요. 저는 아직 <장자>를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장자>는 노자 사상과는 또다른 맛이 있는 듯 하여 기대가 됩니다. 사진은 얼마전 눈썰매를 타러 가는 출격 전 좋아하는 모습입니다. 아이들은 타는 것을 참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따라가기는 힘들지만, 저도 덕분에 눈구경 한답니다. 항상 예쁘게 연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블록 체인 혁명 Block Chain Revolution」에서 저자 돈 탭스콧과 알렉스 탭스콧은 블록체인이라 불리우는 분산 원장 distributed ledger이 가져다 주는 혁명적인 변화에 주목한다. 분산 저장 기술을 통해 보안, 가치 평가 및 이전/ 대여등에서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우리 사회는 보다 근본적인 혁신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주장한다. 짧게 요약하면 블록체인기술은 정보의 분산 저장으로 ‘투명성‘을 증진시킨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다만, 이러한 블록 경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여기에 참여자를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용되는 유인책이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가상화폐다.

‘사토시는 이렇게 기술했다. ˝관례상, 블록에서의 최초 거래는 블록 창시자가 소유한 새로운 코인을 사용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코인을 처음 사용하는 특별한 거래인 것이다. 이로써 노드에 유인책을 제시해 네트워크를 뒷받침한다. 비트코인은 채굴자로 하여금 블록을 창조하고 이전 블록에 이어지도록 만드는 유인책이다... 비트코인을 소유하고 활용하는 자체가 블록체인의 개발자금을 지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p79)‘

비트코인에 대해서 많은 사회적 논의가 최근 이루졌다. 특히, 비트코인의 경제적 가치와 평가에 대해서는 다른 곳에서도 많이 언급되었기에 이 리뷰에서는 상대적으로 등한시되어온 비트코인 블록경제가 가져오는 환경오염 문제를 살펴보려 한다.

‘추정컨데 비트코인 네트워크의 에너지 소비는 적을 때는 미국의 700가구가 사용하는 전력량에 맞먹으며, 많을 때는 사이프러스 섬 전체의 에너지 소비량과 맞먹는다. 약 44억 900만킬로아워 이상이며, 엄청난 양의 탄소를 배출하게 된다.(p462)‘

비트코인 블록체인 하나가 이 정도 에너지를 소비한다면, 블록체인 경제가 활성화되고 사물인터넷과 연결된 미래에도 과연 지속적으로 시스템이 유지될 수 있을것인가.

블록체인 경제가 활성화되어 거래비용 감소와 사회가 보다 투명해진다고 하지만, 이러한 에너지 소비 문제가 해결되지 못한다면 블록체인 경제는 지속가능한 경제체제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외면해온 것이 사실이다.

누군가는 성능이 뛰어난 양자컴퓨터가 개발된다면 이러한 문제는 해결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책에서 이러한 내용이 제시된다.) 그렇지만, 블록체인경제는 가져다줄 수 있는 효용만큼이나 많은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기에, 우리 사회에 안정적으로 자리잡기까지는 보다 많은 논의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함을 생각하게 한다.

「블록 체인 혁명」속에서는 블록 체인 혁명이 가져다주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제시한다. 책의 많은 부분이 미래 산업과 블록 체인 기술의 접합점을 설명하고 있기에 기술 전망을 위해서는 좋은 책이라 여겨진다. 반면, 시스템 이해에 대한 설명은 부족한 편이기에 이부분은 다른 책이나 동영상을 활용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는 도서평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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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19 10: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2-19 10:5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