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과 전체 - 정식 한국어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지음, 유영미 옮김, 김재영 감수 / 서커스(서커스출판상회) / 201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인슈타인은 양자론을 한시적으로만 통용되는 가설이지, 원자 현상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은 아닌 것으로 여겼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아인슈타인은 이런 원리를 굳게 부여잡았다. 보어는 그런 아인슈타인에게 이렇게 응수할 뿐이었다. "하지만 신이 어떻게 세계를 다스릴지 신에게 제시해주는 것도 우리의 과제는 아닌 듯 합니다." (p137) <부분과 전체> 中


 1930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제6차 솔베이회의에서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 ~ 1955)는 보어(Niels Henrik David Bohr, 1885 ~ 1962)가 하이젠베르트의 '불확정성 원리'와 보어의 '상보성원리'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을 펼쳤다. 비록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로부터 양자역학은 물리학의 한 분야로 자리잡게 되었다. <부분과 전체 Der Teil und das Ganze>는 바로 불확정성 원리를 제창한 베르너 하이젠베르크(Werner Heisenberg, 1901 ~ 1976)의 자전 에세이이며,  물리학과 관련한 많은 내용을 본문에 담고 있다.


 시간과 공간은 지금까지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서로 그리 무관하지 않은 거야. 아인슈타인은 상당히 단순하고 완결된 수식으로 시간과 공간의 새로운 구조를 정리해낼 수 있었어.(p40)... 이제 가장 흥미로운 분야는 원자 이론이야. 어째서 물질세계에서는 특정 형태와 성질이 계속해서 나타나는가 하는 것이 원자 이론의 기본 질문이지... 물체, 가령 물이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면 우리가 학교에서 배웠던 뉴턴역학의 운동 법칙으로는 물질의 최소 단위가 그런 안전성을 지니고 있다는 게 결코 설명이 되지 않아. 따라서 이런 부분에서는 전혀 다른 자연법칙이 작용하는 것으로 보여. 아주 다른 자연법칙이 원자들이 계속하여 동일한 방식으로 배열되고 운동하게끔 해서, 계속해서 동일한 안정된 성질을 가진 물질이 탄생하게끔 한다는 거지. (p41) <부분과 전체> 中


 <부분과 전체> 도입부에서 저자는 자신이 물리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를 말하고 있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원리'에 의해 시간(Time)과 공간(Space)이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라 시공간(Time-Space)이라는 연속체라는 것을 밝혀낸 후 당대의 관심은 원자(原子, atom)로 옮겨가게 되었고, 당대의 물리학자들은 원자의 세계에 적용되는 자연법칙을 규명하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보어는 영국 러더퍼드의 결정적인 실험에 기초하여 원자를 미니 행성계로서 파악하고 있었다. 원자에 비해 아주 작지만, 원자의 질량을 거의 다 가지고 있는 원자핵이 있고, 상당히 가벼운 전자들이 태양계의 행성들처럼 원자핵 주위를 돌고 있는 모양으로 말이다. 그러나 이들 전자의 궤도들은 행성계에서와는 달리 힘들과 전력 前歷에 의해 결정되지 않고, 외적 방해로 인해 변화될 수도 없었다. 그리하여 외적인 영향과 무관하게 유지되는, 참으로 기이한 물질의 안정성을 설명하기 위해 기존의 역학이나 천문학에는 생소한 추가적인 요청이 따라야 했다. 1900년 플랑크가 유명한 논문을 발표한 이후 그런 요청은 양자조건이라 불렸다. (p62) <부분과 전체> 中


 당대의 유명 물리학자였던 덴마크의 보어는 원자모형을 통해 '원자-전자'의 구조를 설정했으나, 이 구조가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기존 물리학에서 설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한 설명이 필요했다. 이러한 양자조건은 후에 '불확정성 원리'와 '상보성 원리'에 의해 뒷받침된다. 그렇지만, 보어의 의견이 처음부터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대표적인 반(反) 양자론자는 아인슈타인이었다. 


1. 양자론에 대한 아인슈타인과 슈뢰딩거의 공격


 아인슈타인은 물론, '슈뢰딩거의 고양이'로 유명한 슈뢰딩거(Erwin Rudolf Josef Alexander Schrodinger, 1887 ~ 1961) 역시 양자론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현한대표적인 학자다. 먼저 아인슈타인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며 한 정상상태에서 다른 정상상태로 이동할 때 생기는 불연속성이 타당하지 않음을 통해 양자론을 부정하였다. 


 양자론은 서로 다른 두 측면을 가지고 있어요. 한편으로 양자론은 특히 보어가 늘 강조하듯이 원자의 안정성을 상정해요. 그로 인해 늘 같은 형태의 원자가 생겨나는 것이죠. 다른 한 편 양자론은 불연속성 즉 자연의 변덕이라는 독특한 요소를 말하고 있어요. 이 불연속성은 가령 방사선 시료에서 나오는 섬과을 암실 속의 형광판에서 관찰할 때 분명하게 알 수 있지요. 이런 두 측면은 물론 연관되어 있어요.(p115) <부분과 전체> 中 


 슈뢰딩거는 아인슈타인의 위와 같은 질문에 대해 두 정상 물질이 동시에 진동하면서 빛의 복사가 생겨난다는 이론을 증명함으로써 양자론을 부정하는 주장을 펴게 되었다. 이들의 물음과 주장에 대해 이제는 하이젠베르크와 보어가 대답할 차례다.


 원자가 하나의 정상상태에서 다른 정상상태로 이행할 때 그 에너지를 갑자기 변화시키고 잉여 에너지를 아인슈타인이 가정한 광양자의 형태로 방출하는 게 아니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두 정상 물질이 동시에 진동하고, 이런 진동의 간섭이 빛의 파동 같은 전자기파를 방출시킴으로써 빛의 복사가 생겨난다는 것이었다. (p124) <부분과 전체> 中 


2.  하이젠베르크의 대답 : 불확정성 원리(不確定性原理, uncertainty principle)


 <부분과 전체>를 통해서 하이젠베르크는 아인슈타인의 질문 속에서 답(答)을 유도했음을 고백하고 있다. 아마 아인슈타인은 별로 반가워하지 않았겠지만.


 사실은 이론이 비로소 무엇을 관찰할 수 있는지를 결정해요. 관찰은 일반적으로 아주 복합적인 과정이에요. 그러므로 관찰하고자 하는 현상이 비로소 우리의 측정 도구에 영향을 미쳐요. 그러면 그 결과로 이런 도구에서 계속적인 과정이 진행되고, 우회를 거쳐 우리의 의식 속에서 감각적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결과를 확인시켜 주지요.(p109) <부분과 전체> 中


 아인슈타인과의 대화에서 영감을 얻은 하이젠베르크는 '보이는 것이 진실이 아니라'는 가정 하에서 두 개의 관측가능량(observable)을 측정 시 위치와 속도/운동량은 플랑크의 작용양자보다 작을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해내면서, 불확정성 원리를 증명하게 되었다. 


 진짜로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전자궤도가 아닐 것이다. 전자가 놓여 있는 불확정적인 위치에 대한 불연속적인 결과만 지각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실제로 안개상자에서는 몇몇 작은 물방울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며, 이것들은 전자보다 많이 확대된 것이리라. 따라서 올바른 질문은 다음과 같아야 할 것이다. 약자역학에서 한 전자가 대략적으로 주어진 위치에 놓여 있는 동시에, 대략적으로 주어진 속도를 갖는 상황을 묘사할 수 있을까? (p133) <부분과 전체> 中 


 그런 상황을 수학적으로 묘사할 수 있고, 그런 부정확성에 대해 훗날 양자역학의 불확정성 원리라 불리게 되는 관계가 성립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확정성의 특징을 갖는 위치와 운동량(운동량은 질량과 속도의 곱)의 곱은 플랑크의 작용양자보다 작을 수 없다.(p133) <부분과 전체> 中 



[사진] 불확정성 원리(출처 : 경향신문)


3. 보어의 대답 : 상보성 원리(相補性原理, complementarity principle)


 1930년대 당시 빛과 관련한 주요 논점은 빛이 파동인가, 입자인가 하는 빛의 성질이었다. 파동과 입자 각각을 주장하는 학자들 모두 나름의 논거가 있었기에 이에 대한 논점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미국의 물리학자 콤프턴은 빛이 전자에 부딪혀 산란이 일어날 때 빛의 진동수가 변한다는 것을 발견했는데, 이런 결과는 빛이 아인슈타인이 제안한 대로 작은 입자나 에너지 덩어리로 되어 있으며, 입자들이 공간 속에서 빠른 속도로 움직이다가 간혹 전자와 부딪혀 산란된다고 가정해야 설명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파장만 더 짧을 뿐, 빛 역시 전파와 기본적으로는 전혀 다르지 않음을 뒷받침하는 실험들도 많았다. 따라서 빛은 입자의 흐름이 아니라 파동이라는 것이었다.(p101) <부분과 전체> 中


 이에 대해 보어는 관찰 방식에 따라 빛이 '파동'으로도 '입자'로도 보인다는 '상보성 원리'를 주장하면서, 논리적 모순을 극복한다. 그리고, 이러한 상보성원리는 불확정성 원리와도 통하는 것이었기에, 양자조건을 뒷받침하게 되었다.


 보어는 파동과 입자의 이중성에 대해 새롭게 '상보성의 원리'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이 개념은 두 개의 서로 다른 관찰 방식으로 파악할 수 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것이었다. 두 가지 관찰 방식이 서로 배제적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상호 보완적인 것이며, 모순되는 이 두 관찰 방식을 병존시킴으로써만 그 현상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곧 불확정성 원리와 상보성 원리가 별 차이가 없는 것이며, 이제 이런 새로운 내용을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정리해서 발표하는 일만 남았다는 것을 깨달았다.(p135) <부분과 전체> 中


 <부분과 전체> 속에는 위와 같은 물리학 뿐 아니라, 철학, 음악, 정치, 역사, 종교 등 수많은 주제를 폭넓게 다루기 때문에 독자로 하여금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일례로, 양자역학을 둘러싼 아인슈타인과 하이젠베르크의 대화는 조선 중기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2~ 1571)과 고봉 기대승(高峰 奇大升, 1527 ~ 1572)간의 사단칠정(四端七情) 및 이기(理氣) 논쟁을 연상시킨다. 또한, 빛의 성질과 관련한 당대 학자들의 논쟁은 다른 시대의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 논쟁을 떠올리게 한다. 결국, 기독교의 신성 문제는  AD 451 칼케돈 공의회(Council of Chalcedon)를 통해 예수는 '완전한 인간이며 완전한 하느님'이라는 양성론(兩性論)이 공인되는 것으로 막을 내리게 되고, 물리학에서도  빛이 파동과 입자의 성격 모두를 포함한다는 상보성 원리가 인정받는 것을 보면서 통합(統合)이 중요함도 깨닫게 된다. 이런 여러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영역을 넘나드는 <부분과 전체>만의 매력때문이 아닐까 한다. 이처럼 <부분과 전체>는 흥미있는 여러 주제를 다루기에, 비록 물리학에 대해 흥미가 없더라도 세계적인 석학(碩學)이 바라보는 세계관(世界觀)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들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ps. <성경>의 '빛'과 '예수'를 연결시켜, '파동-입자' 를 '인성-신성'으로 연결지어 무리하게 해석하려 한다면, 그건 너무 나간 해석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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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10 17: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말로는 이해가 되는데 수식만 보면 어질;_;)...과거로 돌아간다면 수학 공부를 열심히 하겠어요ㅜㅜ! 아니면 아주 미래로 가 수학 공부 잘하는 백신을 맞던가ㅎㄱㅎ

겨울호랑이 2018-05-10 17:25   좋아요 1 | URL
저는 국영수를 중심으로 학교수업에 충실히 예습복습을.... ㅋㅋ

2018-05-10 17: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0 18: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인문학에길을묻다 2018-05-10 1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여러수 위 정말로 인정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10 18:03   좋아요 0 | URL
에고 oldboy님 과분한 칭찬입니다... 그저 과학책도 즐겁게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류 역사에는 여러 차례의 대기근(大飢饉, Great Famine)이 있어 왔으며, 이로 인해 많은 인명 피해가 있어왔다. 그렇다면, 대기근과 이로 인한 피해는 자연으로부터 온 것인가? 이번 페이퍼에서는 역사상 아일랜드 대기근(Great Famine, 1845 ~ 1852)을 배경으로 한  <검은 감자 Black Potatoes>와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958 ~ 1962) 시기를 다룬  <인민3부작 2.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 ~ 1962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 ~ 1962>를 통해 대기근의 전말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1. 자본주의 대기근 : 아일랜드 대기근

 

 감자 대기근은 아일랜드를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온 마을 모든 집을 빠짐없이 휩쓸었다. 아일랜드어와 몇백 년 동안 이어져 내려오던 전통과 민간 신앙은 거의 사라졌다.... 역사가 대부분이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 사망자는 100만 명이 넘고 이주민은 200만 명을 웃돈다고 추정한다. 정확한 수치는 영영 알 길이 없다.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이 헤아릴 수 없이 많았기 때문이다.(p238) <검은 감자> 中


 전체 인구의 1/8이 아사(餓死)한 아일랜드 대기근은 1845년 감자 흉년에서 시작되었지만, 이듬해인 1846년 흉년으로 인해 아일랜드에 큰 타격을 주게 되었다. 1845년에는 부족한 식량은 미국으로부터 옥수수 수입을 통해 해결하고, 영국으로부터 경제적 원조도 받을 수 있어 급한 불을 끌 수 있었다. 그렇지만,  위기가 극복된 것으로 보였던 1846년에는 이러한 조치가 늦었으며, 무엇보다도 1845년 재난을 통해 경제적 기반이 파괴되었기 때문에 대재앙(大災殃)으로 치닫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그해 감자 흉년의 원인이 '피토프라토라 인페스탄스(Phytophthora infestans)'라는 감자 역병균이며, 이 병균은 몇 시간 만에 감자밭 전체로 퍼질만큼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을 안다... 1845년에 필 총리가 파견한 과학 위원단은 감자 역병균에 관해 몰랐다. 당연히 진단도 처방도 잘못 내렸다.(p57)... 감자 역병이 또다시 덮친 것은 1846년 8월 첫 주였다. 게다가 지난 해보다 훨씬 심했다. 하룻밤 사이에 전체 수확량의 4분의 3이나 되는 감자가 썩어버렸다.(p78)... 감자 역병이 2년 내리 발생하리라고는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난 겨울을 나면서, 노동자 대부분이 돈 될 만한 것은 다 팔거나 저당 잡혔다. 그렇게 마련한 돈으로 식량과 씨감자를 샀다. 그런데 감자 농사는 쫄딱 망쳤고, 팔 것도 하나 남지 않았다.(p79) <검은 감자> 中


 주식인 감자 흉년으로 인해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영양실조와 질병 등으로 쓰러지는 것도 비극(悲劇)이었지만, 이 사건으로 인한 처참한 결과는 사회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영양가 높은 감자를 먹지 못한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양실조에 걸렸다. 따라서 바이러스와 세균에 대한 저항력도 떨어졌다. 아일랜드 대기근 시기에 질병으로 죽은 사람이 굶주려서 죽은 사람보다 어림잡아 열 배나 더 많다.... 비위생적인 음식과 오염된 물을 먹고 생활환경마저 불결한 탓에 질병은 널리 퍼졌다.(p131) <검은 감자> 中

 

 여기에서 대기근의 아주 커다란 모순 한 가지를 깨닫게 된다. 아일랜드 백성이 주식으로 삼는 감자 농사를 망쳐 굶주림에 시달리는 동안, 다른 한 편에서 노동자들은 입에 댈 수도 없는 곡식들이 영글고 있었다. 그것은 지주와 농민의 것이었다. 굶주린 노동자들은 그저 곡식을 베고 털고 빻아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내가는 것만 지켜보았다. 그 곡식은 영국과 다른 나라에 팔 것들이었다.(p79) <검은 감자> 中


 아일랜드 대기근 동안 '감자'만 흉년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은 그가 속한 계급에 따라 달라지게 되었다. 가진 것이 없는 소작농들에게는 '위험한 상황'이었지만, 지주, 상인 등 여유있는 이들에게 이 사건은 '기회'였다. 감자 역병균에서 시작된 기근은 사회적 문제와 결합되면서 역사에 '아일랜드 대기근' 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었다.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는 나라에서 식량을 수출하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가장 가혹한 현실 한 가지는 기근은 식량이 부족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기근 문제는 식량 이용권을 누가 갖느냐에 달려있다. 영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아일랜드인을 굶주리게 한 것은 아니었다. 지주, 농민, 도매상, 소매상의 생업에 간섭할 법률을 제정할 뜻이 없었을 따름이다. 그런 법률을 만든다는 것은 자유방임주의 원칙을 어기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또 지주와 농민도 곡물을 영국과 외국 시장에 수출했다. 자신들이 영리를 추구할 권리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p81) <검은 감자> 中


 2. 공산주의 대기근 : 대약진 운동


 "올해 우리나라는 강철 520만 톤을 생산했고, 5년 뒤에는 1000만 ~ 1500만 톤을 생산할 수 있을 것이다. 5년이 더 지나면 2000만 ~ 2500만 톤을, 다시 5년 뒤에는 3000만 ~ 4000만 톤을 달성할 것이다... 흐루쇼프 동지는 소련이 15년 안에 미국을 따라잡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마오저뚱)는 15년 안으로 우리 또한 영국을 추월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약진 운동이 시작되었다.(p49) <마오의 대기근> 中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 1958 ~ 1962)은 마오쩌둥이 단기간 내에 선진국을 따라잡기 위해 시작한 운동이었지만, 대약진 운동 역시 또하나의 대기근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총 당원 수는 1559년에 1396만 명에서 1961년 1738만 명으로 급증했지만 1959 ~ 1960년에 360만 명의 당원이 우파로 낙인찍히거나 숙청되었다... 수천만 명이 혹사와 질병, 고문, 굶주림으로 죽어 가게 되면서 중국은 파국으로 빠져든다.(p167) <마오의 대기근> 中


 대약진운동은 아일랜드 경우와는 달리 자연재해로부터 시작되지 않았음에도 대기근을 가져온 이유는 무엇일까? 중앙집권(中央集權) 계획경제(計劃經濟) 체제 하에서, 자신의 실적을 채우기 위한 과도한 목표 설정과 허위 보고, 그리고 허위 보고에 기초한 생산물 조달은 농촌 지역에서의 대규모 기근을 가져왔으며, 이로 인해 중국 경제는 1962년 위기에 봉착하게 되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할 곡물 생산량 달성을 과시하고자 하는 압력은 대약진 운동 기간 동안 절정에 달했다. 경쟁적으로 더 높은 목표량을 약속하는 광풍 속에서 마을 단위부터 성에 일으기까지 당 관리들은 서로를 능가하고자 갖은 애를 썼고 선전 기구는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기록을 발표하면서 더 조심스러운 간부들까지 숫자를 부풀렸다.(p201)... 수확량이 부풀려지면서 과도한 조달 할당량이 내려왔고, 이는 부족 사태와 대대적인 기근으로 이어졌다.(p202)... 당(黨)은 농촌의 필요를 무시하는 일단의 정치적 우선순위를 발전시켰다. 지도부는 외국과의 계약 사항을 준수하고 국제적 평판을 유지하기 위해 곡물 수출을 늘리기로 결정했고 1960년에는 "수출 제일" 정책이 채택될 정도였다.(p207) <마오의 대기근> 中


3. 대기근의 결과들 


 이러한 대기근은 이후 어떤 결과를 가져왔을까. 대기근을 통해 아일랜드는 뜻하지 않은 디아스포라(Diaspora)와 이로 인한 막대한 인구 유출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아일랜드 민족의식이 고취되어 결국 1922년 아일랜드 공화국이 수립되었지만, 당시의 충격으로 아일랜드가 입은 손실은 현재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아일랜드 대기근은 오래도록 씻기지 않을 적대감과 원한을 남겼다... 대기근 때문에 아일랜드 사람들은 영영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감자 대기근 이후 60년 동안 대규모 이주가 끊임없이 이어졌고, 그때마다 청년층이 이주민의 절반을 차지했다... 1910년까지 조국을 영원히 떠난 아일랜드인은 500만 명에 달했다. 오늘날 아일랜드 인구는 약 400만 명으로 1845년 인구수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현재 미국에는 아일랜드계 미국인이 4,000만 명을 웃돈다.(p241) <검은 감자> 中


 한편, 중국 역시 대약진운동을 통해 사회 각층의 불만이 쌓여가고, 대약진 운동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묻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었다. 당시 총책임자였던 마오쩌둥은 이러한 목소리에 답(答)을 해야 했다. 그리고, 그 답은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 1966 ~ 1976)을 통해 이루어지게 되었다.


 저우런라이는 과도한 곡물 징발, 생산량 부풀리기, 각 성에서의 곡물 유출과 해외로의 식량 수출 증대에 관해 개인적 책임을 지는 식으로 지금까지 잘못되어 왔던 상황의 원인을 상당 부분 자신에게 돌림으로써 마오쩌둥에게 면죄부를 주려고 했다... 마오쩌둥은 때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당과 나라를 산산조각 낼 문화 대혁명을 개시하기 위한 참을성 있는 기초 작업은 이미 시작되었다.(p492) <마오의 대기근> 中


  'Laissez faire(자유 방임주의)'를 표방한 자본주의와 노동자 중심의 'Communism' 을 주장한 공산주의 사회 모두에서 대기근이 발생했다는 사실은 두 체제 모두가 전체 구성원의 행복보다는 소수(少數)를 위해 작동했으며 이로 인해 대규모 재앙을 가져왔음을 보여주고 있다. 인간다운 삶의 전제조건인 의(衣), 식(食), 주(住)보다 사유 재산권, 혁명 사상 등 부차적인 내용을 강조했을 때 큰 비극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PS. <검은 감자> <마오의 대기근>은...


 <검은 감자>의 작가인 수전 캠벨 바톨레티(Susan Campbell Bartoletti)가 딸에게 이야기 해주듯이 쓰여진 책이기에 쉽고 편하게 읽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여러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당시의 참상을 잘 서술하고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인민3부작 2. 마오의 대기근, 중국 참극의 역사 1958 ~ 1962 Mao's Great Famine, The History of China's Most Devastating Catastrophe 1958 ~ 1962>는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ter>가 '대약진운동' 시기를 다룬 역사책으로, 당대의 참상을 사례와 통계자료를 통해 잘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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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9 15: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09 15: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09 22: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금까지 천재인줄 알았습니다. ㅠ

겨울호랑이 2018-05-09 22:11   좋아요 0 | URL
네... 저 역시 자연의 힘이 대단하다고만 생각했었는데, 정말 대단한 것은 사람의 끝없는 재물욕, 명예욕 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18-05-11 10: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1: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1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12 02: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병경백자  兵經白字>는 게훤(掲暄, 1613 ~ 1695)이 저술한 병법과 관련한 책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병법과 관련한 100자 운(韻)을 제시하면서 병법과 관련한 내용을 구성한다. 상 중 하로 구성된 3권은 각각 지부(智部), 법부(法部), 연부(衍部)로 되어 있으며, 이하 세부 주제어를 제시하여 각 내용을 상세히 설명하고 있다. 책의 내용이 크게 어렵지 않지만, 글을 읽다보면 다음과 같은 상반된 내용이 언급되기도 하기에 현실 적용에 어려움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예를 들면 <법부>의 '과장하기'와 '축소시키기' 편이 그렇다.

 

 과장하기(張) : 아군의 위엄을 과장하여 적의 사기를 빼앗고 변칙적인 계책을 내어 승리를 취하는 것이다. 이것이 과장되게 위세를 부려 실용적 이익을 성취하는 것이니, 허약한 군대에게는 좋은 방법이다.(p132) <병경백자> 中

 

 축소시키기(減) : 자신의 정통(精通)하고 능숙한 능력을 감추는 것은 적군의 성대한 기세를 약화시킬 수 있으니, 오직 축소시키는 것만이 적군의 강력함을 이길 수 있고 오직 축소시키는 것만이 적군의 강력함을 가지고도 아군을 어렵게 만든다. (p134)  <병경백자> 中

 

 개별적으로는 이해되지만, 전체적으로는 서로 모순(矛盾)되는 듯한 위의 내용을 통해 우리는 병법서를 읽기 전 무엇보다도 자기 이해가 필요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를 잘 설명한 내용이 너무도 유명한 <손자병법 孫子兵法>의 다음 구절이 아닌가 한다.

 

 그러므로 말한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만 알면 한 번은 이기고 한 번은 지게 될 것이며,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위태롭게 될 것이다."(p106) <손자병법> 中

 

 따라서 용병을 아는 자는 출동해도 미혹되지 않고, [군대를] 일으켜도 막힘이 없다. 따라서 적을 알고 나를 알면 승리는 곧 위태롭지 않으며 하늘을 알고 땅을 알면 승리는 곧 온전해질 것이다.(p257) <손자병법> 中

 

 많은 이들이 현대 기업의 경영(經營)을 전쟁에 비유하며, 병법서를 읽고 있다.  그리고, 수많은 현대 경영서적들이 옛 병법과 고대 전투를 사례로 다루고 있는 현실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병법서에서 제시한 수 많은 방법을 아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누구인가, 자신이 처해있는 상황이 어떤지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연후에 병법서를 읽더라도 크게 늦지 않을 것임을 새삼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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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0: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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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0: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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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0: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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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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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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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7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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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와 어른의 갈등

 

 어린이와 어른의 갈등은 전 인류의 역사에 걸쳐 끝없이 이어졌왔다... 어른들의 가장 분명한 죄악은 - 신체적 질병과 마찬가지로 신경질적이고 정신적인 장애 - 어린이에게 반영되어 어린이의 삶 속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첫 징후로 나타났다... 죄 없는 어린이들은 오랜 세월 어른들의 실수로 인해 숙명적으로 일탈된 상태에서 발달을 진행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p181)

 

 20세기 초 지식인들이 사회 문제 원인을 어린이 교육에서 찾으면서 가정과 학교 문제가 공론화되기에 이르게 되었다. 이에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 1870 ~ 1952)는 <어린이의 비밀 Il segreto dell'infanzia>를 통해 아동 발달, 교육적 지원의 가능성과 어려움 그리고 어린이와 어른들의 관계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고 있다. 몬테소리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크게 부모의 임무와  어린이의 권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부모는 어린이의 보호자다. 그러나 어린이의 창조주는 아니다. 부모는 마음을 열고 준비된 마음으로 매우 중대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부모는 아동의 권리를 인정하고 이를 위해 투쟁해야 한다. (p193)... 우리는 운명적으로 우리 미래의 삶을 위해 어린이를 새롭게 보아야 한다.(p192)

 

 오랜 시간 동안 어른들의 법칙에 의해 문화가 상당히 발전해왔음에도, 어린이는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했다. 어린이는 자신의 가정에서 물질적이고 도덕적인 자원만 제공받았다. 사회는 이 부분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p194)... 이러한 사회에서 부모의 임무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부모만이 자신의 자녀를 구원할 수 있고 또 구원해야 한다.(p195)

 

 20세기 초 당시 아동에 대한 체벌이 일반화된 상황 속에서 몬테소리는 아동의 권리와 보호를 주장했고, 몬테소리 교육법을 보급시켰다. 그로부터 1세기가 지난 지금 어린이들을 둘러싼 환경문제는 얼마만큼 개선되었을까? 경제적인 여건은 과거보다 나아졌지만, 아이들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은 아직 부족하다고 여겨진다.

 

 우리 어린이집에서 값비싼 장난감을 마음대로 가지고 놀게 하더라도 어린이들은 장난감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것은 나를 놀라게 했다... 이 사건을 통해 나는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것과 가치 있는 것을 사용할 수 없을 때 마지막 수단으로 장난감을 사용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장난감이 어린이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어린이는 끊임없이 성장하고 있으며, 자기 발달을 돕는 모든 것에 매혹되지만 한가한 활동에는 민감하지 않다.(p129)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을 돕기 위한 부모의 노력이 값비싼 장난감보다 낫다는 몬테소리의 조언 속에서 부모들의 길을 찾게 된다. 좋은 장난감이나 옷을 사주는 것으로 부모의 역할을 다했다고 부모들 스스로 위안하는 것은 아닌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그런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와 함께 요리를 하거나 - <아빠와 아들> -, 아빠와 역할을 바꿔보거나 - <내가 아빠고 아빠가 나라면> - , 함께 놀이를 하면서 같이 보내는 시간 - <아빠랑 함께 피자 놀이를> - 을 어린이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 아닐까.  5월 5일 어린이 날을 맞이해서,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행복한 하루를 보내길 바라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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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0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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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09: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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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e 2018-05-05 02:2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빠와 함께 피자놀이를‘ 오랜만에 보니 반갑네요. 아이들 어릴때 아빠랑 많이 했었거든요. 책 따라서

겨울호랑이 2018-05-05 09:58   좋아요 1 | URL
^^:) 그러셨군요. 저 역시 아빠들이 아이들과 어떻게 놀아야할 지 잘 모르는데, 그 방법을 잘 알려주는 책이라 생각합니다.

2018-05-05 1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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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10: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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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1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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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14: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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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5 14: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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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6 11: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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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5-05 16: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어린이날입니다.
어제보다 기온이 많이 올라간 날씨같아요.
겨울호랑이님, 가족과 함께 즐겁고 좋은 주말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5-05 16:26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날이 어제보다 더 좋네요. 서니데이님도 행복한 연휴 되세요!^^:)

데미안 2018-05-16 22:3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헉, 어린이날,어린이는 왜 햄버거와 피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특별한 날에 부모들이나 보호자들이 생색내며 사주는 것들이 아이들 입장에서는 선물받고 대단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뿐이고 어른들은 특별한 날에는 어른들 입장에서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추측되는 것을 사주는것이 결국 아이와 어른 사이의 진정한 소통을 전제로 못한 것은 아닐까 싶더군요. 저희 아이들은 연어알초밥과 쑥된장을 좋아하니까 어린이날 그런 걸 선물해줄 걸 그랬어요. ㅋㅋ

겨울호랑이 2018-05-16 22:40   좋아요 0 | URL
^^:) 아이들 입장에서는 부모의 선물을 마지못해 ‘기쁘게‘받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부모에게 아이가 옆에 있는 것 자체로 기쁠 수 있다라면, 아이들에게 부모 역시 그렇지 않을까하는 질문도 하게 됩니다. 함께 하는 시간.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겠지만, 데미안님께서 말씀하신 소통의 출발이라는 면에서도 의미있다 여겨집니다^^:)

데미안 2018-05-16 22: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비슷한 맥락인 것같아 적어 봅니다
 


 "여러분들은 지금 여러분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유, 균등, 안정이 실현된 것입니다. 우리가 무한히 보카노프스키 과정을 지속시킬 수 있다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입니다." 수백만의 일란성 쌍생아를 생산할 수 있다. 대량생산의 원칙이 마침내 생물학에 응용된 것이다.(p13) <멋진 신세계> 中


 <멋진 신세계 Brave New World>는 올더스 헉슬리(A.L.Huxley, 1894 ~ 1963)가 그린 디스토피아(dystopia) 이야기다. 공유, 균등, 안정이 실현된 미래사회는 우리의 생각만큼 밝지만은 않다. 플라톤(Platon, BC 428 ~ BC 348)이 <법률 Nomoi>에서 그려낸 이상사회의 모습과 과학기술이 결합된 미래의 모습 속에서 우리는 어떤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멋진 신세계> 속의 공유, 균등, 안정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희망과 과제를 살펴보고자 한다. 


 1. 공유


  "요즈음에 와서 나는 그렇게 바람둥이 노릇이 싫어졌어, 그렇게 느껴지는 때가 있는 것은 사실이야."... "우리는 모두 유희의 규칙을 지켜야 해. 결국 만인(萬人)은 만인의 소유물이니까." "옳아. 만인은 만인의 소유물이야."(p57)  <멋진 신세계> 中


 가정, 가정 - 한 남자와 주기적으로 잉태하는 한 명의 여자와 여러 가지 연령층의 소란한 아이들로 인해 시끄럽고 질식할 것같이 비좁은 몇 개의 방. 공기도 공간도 없다. 소독도 제대로 하지 않은 감옥이다. 어둠과 질병과 악취...(p49)  <멋진 신세계> 中


 '아버지'라는 말은 어린애를 낳는다는 행위의 징그러움이나 불륜스러운 어떤 것을 연상시킬 뿐 음탕하지는 않으며 단순히 천하고 춘화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똥 냄새가 나는 더러운 것이었는데(p192)... 사람을 보고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농담치곤 지나친 말이었다. 그것은 음담패설이었다.(p193)  <멋진 신세계> 中 


 <멋진 신세계> 속 미래에는 가정은 해체되고, 아버지, 어머니라는 말은 언어(言語) 상에만 존재하는 개념에 불과하다. 미래사회 속에서 우리는 플라톤이 말한 '공동 식사', '공동 양육'의 모습을 우리는 확인하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가정'의 역할일 것이다. 플라톤의 이상사회에서 '가정'은 번식을 위한 필요악(必要惡)이지만, 과학 기술이 발달한 <멋진 신세계> 속의 미래에서는 더이상 가정은 필요치 않게 되었다.

 

 우리의 신랑들이 혼인 이전의 시절에 비해 조금도 다르지 않게 또는 덜하지 않게 공동 식사로 식생활을 해야만 한다고 우리가 말할 것이라는 겁니다... 이는 어떤 전쟁이나 그 밖의 다른 것으로서 똑같은 영향력을 갖는 것이 인구 부족 상태에 처한 사람들의 어려움으로 해서 법제화된 것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를 겪어 보고 공동 식사를 이용하도록 강요당한 사람들에게는 이 관습이 안전에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 여겨졌습니다. 이와 같은 식으로 해서 여러분의 공동 식사 관행이 제도화되었습니다.(780b) <법률> 6권 中


 2. 균등


  <멋진 신세계> 속에서 균등(均等)의 개념은 '만인은 다른 만인의 소유물'이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난다. 그렇지만, 인도 카스트 제도와 같은 엄격한 신분제 사회 내에서 이들이 만한 균등은 평등(平等)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러한 신분제는 사회권력에 의해 유지되며, 토머스 홉스(Thomas Hobbes, 1588 ~ 1679)가 <리바이어던 Leviathan>에서 그린 자연 상태는 엄격한 사회 권력에 의해 극복되었다.


 "만인은 다른 만인을 위해 일합니다. 그 누구라도 없어진다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엡실론 계급조차도 유용한 것입니다. 엡실론 계급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만인은 다른 인간들을 위해 일합니다. 그 누구라도 없어지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p92)... 우리는 습성이 다르게 길러졌기 때문이야. 또한 우리는 처음부터 유전인자가 달라."(p93)  <멋진 신세계> 中

 

 인간의 본성이 바로 이러하기 때문에, 우리는 인간들 사이에 분쟁이 발생하는 원인을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경쟁(competition)이며, 둘재는 자기 확신의 결여(diffidence)이며, 셋째는 공명심(glory)이다.... 이로써 다음과 같은 사실이 분명해진다. 즉 인간은 그들 모두를 위압하는 공통의 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는 전쟁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이다. 이 전쟁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다.(p171) <리바이어던 1> 中


3. 안정


 과학기술의 발달은 인류의 번식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멋진 신세계>의 미래에서는 알약을 통해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면서, 누구나 성인(聖人), 군자(君子)의 경지에 쉽게 오를 수 있게 된다. 누구나 격정적인 감정 대신 중용(中庸)에 이를 수 있는 미래가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진다.


 억제된 충동은 넘쳐흐른다. 범람하는 것은 감정이며 격정이다. 심지어 그것은 광증이다. 그 물살의 힘과 제방의 높이와 견고성에 좌우된다. 가로막지 않은 강물은 지정한 수로를 평온하게 흘러가서 평온한 행복에 당도한다... 감정이란 욕망과 그것의 충족 사이에 게재된 시간 속에서 고개를 드는 법이다. 그 시간 간격을 단축하면 과거의 필요없는 장애는 모두 제거된다.(p57)  <멋진 신세계> 中


 분노를 진정시키고 적과 화해시키고, 인내하고 수난을 참도록 하는 소마가 있다 이말이야. 옛날에는 대단히 어려운 노력을 거치고 오랜 수양을 쌓아야 겨우 도달되는 미덕이었지, 그러나 이제 반 그램짜리 두세 알만 삼키면 그러한 수양의 경지에 도달한다는 말일세. 이제 누구나 군자가 될 수 있다네.(p302)  <멋진 신세계> 中


 교육 전체가 그와 같은 것들과 관련해서 알맞은 법률을 갖추고 있으며, 이에 더해 관리들의 시선은 다른 데를 응시하지 않고, 언제나 바로 젋은이들을 지켜보는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이 하고많은 인간적인 다른 욕망들에 대해 적도(適度)를 지키는지를 말입니다...누가 어떻게 잘 대처할 수 있겠으며, 무슨 처방을 써서 이들 각자에게 이와 같은 위험을 피할 길을 찾아 주게 되겠습니까? 도무지 쉽지가 않습니다.(836a) <법률> 8권 中


  플라톤은 <법률> 속에서 교육은 '혼(魂)'을 최선의 상태로 끌어올리는 역할과 함께 사회화(社會化)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묘사하지만, <멋진 신세계> 속에서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교육의 역할은 사회화로 하는 것으로 한정된다. 


 6월의 따뜻한 햇빛을 받으며 벌거벗은 6,7백 명의 어린 소년들이 금속성의 소리를 지르며 잔디 위를 뛰어다니며 공놀이도 하고 두서넛씩 짝을 지어 꽃밭 속에서 조용히 쪼그리고 앉아 있었다.(p40)... 그러나 그들의 미소에는 어딘가 아랫사람을 봐주는 듯한 느낌이 있었다. 견습생들 역시 이러한 어린이들의 유희를 졸업한 지가 얼마되지 않았으므로 다소의 경멸감 없이 그들을 바라보기란 불가능했다.(p41) <멋진 신세계> 中


  세 살과 네 살, 다섯 살 그리고 더 나아가 여섯 살까지도 아이들의 혼의 성향에는 놀이들이 필요하게 할 것입니다.(793e)... 이 나이 또래의, 곧 세 살에서 여섯 살까지의 아이들은 마을마다의 신전들에 모여야 합니다. 각 마을 사람들의 아이들이 같은 곳에 함께 모이는 겁니다.(794a) <법률 제7권> 中


 진지해야할 일을 위해서는 놀이(paidia)까지도 하도록 해야만 합니다. 소년 소녀들이 합창가무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규칙(logos)에 따라 그리고 그럼직한 구실들을 갖는 때에, 저마다 건전한 상태의 부끄러움을 갖는 한도 내에서, 이들 남녀가 알몸 상태를 서로 보기도 하고 보여 주게도 하는 겁니다.(771e ~ 772a)  <법률 제6권> 中


 <멋진 신세계>에서 그려낸 공유, 균등, 안정의 사회는 우리에게 긍정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작품 전반에 깔린 짙은 어두움은 미래의 사회가 전체주의(全體主의) 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일 것이다. 발달한 과학기술과 전체가 강조되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더이상의 희망과 긍정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러한 디스토피아에서 길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 역시<멋진 신세계>를 통해 찾을 수 있을 듯하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늙음'이 존재하지 않는 미래 사회에서 '노인'은 기피대상으로 묘사되고 있다.


 노인의 눈은 움푹 패인 눈자위 속에서 아직도 특이할 정도로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노인의 눈은 한참 동안 레니나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거기에 있지 않은 것처럼 표정도 놀람도 없는 눈초리였다. 그러고는 굽은 등을 한 채, 노인은 그들 옆을 엉금엉금 지나쳐서 사라져버렸다. "무서워요." 레니나가 속삭였다. "끔찍해요. 이런 곳엔 오지 말았어야 되는 건데."(p139)  <멋진 신세계> 中  


 그렇지만, 우리는 같은 상황에서 '늙음'을 똑바로 바라본 결과 깨달음을 얻게 된 이를 알고 있다. 석가모니(釋迦牟尼, BC 624 ? ~ BC 544 ?)다. 석가모니는 노인을 보면서 생노병사(生老病死)에 대해 고민하고 출가(出家)하여 훗날 해탈(解脫)에 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신들은 왕의 계획을 방해하여 싯다르타로 하여금 인간의 고통을 목격하게 만든다. 처음 싯다르타는 지팡이를 짚고 걸어가는 늙은이를 만나고, 다음 날에는 "깡마르고 창백한 열에 들뜬 병자"를 만나며, 세 번째로는 묘지에 실려가는 시체를 본다. 한 시종은 왕자에게 누구든지 늙음과 병듦 그리고 죽음을 벗어날 수 없다는 사실을 일러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왕자는 평온하고 고요한 걸식 수행자를 만난다. 그리고 그의 모습에서 종교가 인간의 비참한 조건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큰 위로를 얻는다.(p104)... 그리고 그 장소까지 그를 이끌어주었던 신들과도 작별을 고했다. 그 이후부터 붓다의 신화적 생애 안에서 신들은 더 이상 중요한 역할을 하지 않는다. 그는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세계종교사상사 2> 中


 <멋진 신세계> 속에서 그려진 미래사회는 과학기술이 발달된 계급사회, 전체주의 사회다. 현대 과학의 발전과 최근 극우(極右)성향 정치인의 등장을 보면서 불길한 예언의 실현되는 것인가 하는 걱정을 떨치기 어렵다. 그렇지만, '늙음'을 온전히 받아들여 진정으로 깨달음을 얻게 된 석가모니의 모습 속에서 우리가 가야할 길을 확인하게 된다. 


 '비록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자연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 내다보기는 어렵지만, 우리가 자만에 빠져 스스로를 잃어버리지 않는 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은 자연과학의 발전으로부터 도움을 얻을 것이며, 또한 역으로 인류의 도덕과 행복이 과학의 성공에 일익을 담당하리라는 확신에 찬 희망을 품어도 좋을 것이다.'(p550) <호모 데우스> 中


 <멋진 신세계> 속에서 <호모 데우스>에서 말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것이 <멋진 신세계>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아닌가 생각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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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00:2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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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04 08:1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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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04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지젝의 ‘기독교적 유물론‘이 제게 또 다른 난제인데요.
지젝은 불교적 명상은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수단이어서, 가장 평화적인 것부터 가장 파괴적인 것까지 다양한 사회정치적 쓰임을 가질 수 있음˝(그의 책 <꼭두각시, 난장이, 기독교의 도착적 핵심>)으로 해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오히려 이용만 될 뿐 근본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 된다 말하죠. 차라리 그에 대립되는 기독교적 사랑의 ˝비관용˝이 존재 질서 내부의 차이와 간극을 받아 들여 세계를 바꿀 수 있는 폭력적이지만 혁명적인 힘이 된다 하는데.....제가 뭉텅그려 표현하고 있어 오도될까 걱정되는데요.
겨울호랑이님이 <세계종교사상사2>에서 인용하신 거(˝그는 초자연적 존재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게 된다˝) 때문에 이 말을 꺼내 본 거였습니다.
지젝도 ˝기독교적 유물론˝ 견지에서 비슷한 말을 하고 있었거든요.
˝내가 나 자신을 신성한 축복과 동일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오로지 신으로부터 분리라는 무한한 고통을 경험할 때에야 나는, 신 그 자신(십자가 위의 예수)과 경험을 공유한다.˝

겨울호랑이 2018-05-04 13:23   좋아요 1 | URL
제가 지젝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을 전제로 AgalmA님께서 말씀한 부분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지젝이 말한 ‘불교적 명상‘이라는 것은 수행자의 수준에 따라 깨달음의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보편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최소한의 수단으로 ‘기독교적 사랑‘을 말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드네요. 마치 우리가 낯선 곳에서 가서 맥도널드 햄버거를 먹는 것은 그것이 맛있어서가 아니라, 최저한의 기대 수준을 만족시키기 때문에 이용하듯이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 그리고, 기독교의 ‘선-악‘의 이분법적인 대립 속에서, 내재적으로 혁명에 사용할 수 있는 힘을 응축시킬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그리고, 아래에서 지젝이 말한 부분은 예수의 신성(神性)과 인성(人性) 부분 중에서 자신은 ‘인성‘에 대해서 공감을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가 됩니다...

AgalmA 2018-05-04 13:33   좋아요 2 | URL
지젝은 불교의 관용과 포용을 좀 비겁? 소극적?으로 보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지젝이 표방하는 공산주의, 프롤리타리아의 단결 등에서도 볼 수 있듯 외부적인 혁명으로 일어나야 한다는 사람이니 불교의 니르바나 같은 건 개인에서 그친다고 보는 거겠죠. 마르크스가 못 이룬 프롤레타리아 단결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니 만족스럽지 못할 만도 하지요.

겨울호랑이 2018-05-04 14:26   좋아요 1 | URL
AgalmA님 말씀처럼 지젝은 해석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동양 문화권에서는 <대학>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서처럼 개인의 변화로부터 사회적 변화까지 끌어낼 수 있다고 보기에, 지젝의 말을 쉽게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문화적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