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및 시카고학파는 정부 활동의 고유한 영역을 현존하는 시장 시스템을 보호하는 것 이상으로 확장해야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p958)... 극단적인 자유방임에 대하여 오스트리아 및 시카고 학파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첫째, 이들은 자본주의에서 지금까지 관찰된 모든 불안정성은 모조리 정부의 지나친 개입의 결함이라고 간명하게 단언한다. 둘째, 이들은 거대 기업이 일반적으로 중대하고 유의미한 독점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부인한다. 셋째, 정부가 마땅이 공급해야 한다고 이 두 학파가 생각하는 유일하게 '정당한' 사회적 소비재는 "국방"이다. 넷째, 이들은 외부성의 문제(오염 문제)에 대하여 사적 소유권을 창출하여 이를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 시장을 확립하라는 것이다.(p960) <E.K. 헌트의 경제 사상사 > 中


 E.K. 헌트(Emery Hunt, 1937 ~ )는 <E.K. 헌트의 경제 사상사 History of Economic Thought : A Critical Perspective>을 통해 신고전파 경제학의 두 갈래인 오스트리아 학파와 시카고 학파로 구분하며, 그들의 이론의 핵심을 위와 같이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신고전파 경제학에서 강조되는 사상을 흔히들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 noeliberalism)라고 부른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의 모습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신자유주의, 간략한 역사 A Brief History of Neoliberalism>의 저자 데이비드 하브(David Harvey, 1935 ~ )는 그의 저서를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잘 정리하여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저자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논의의 시작은 다음에서 출발한다. 

 

 개인의 자유가 시장과 무역의 자유에 의해 보장된다는 가정은 신자유적 사고에서 극히 중요한 부분이며, 오랫동안 세계의 다른 국가들에 대한 미국의 입장이기도 했다. 나는 이런 종류의 국가 장치를 '신자유주의적 국가(neoliberal state)'라고 부르고자 한다.(p24) <신자유주의> 中


 신자유주의사상은 오스트리아 정치철학자 하이에크(Friedrich von Hayek, 1899 ~ 1992)가 설립한 몽페를랭회(Mont Pelerin Society)의 창립문 속에서 잘 표현된다. 저자에 따르면 당시 몽페를랭회 창립에는 미제스(Ludvig von Mises, 1881 ~ 1973), 경제학자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 ~ 2006), 포퍼(Sir Karl Raimund Popper, 1902 ~ 1994)까지 포함되었다고 한다.


 문명의 핵심 가치가 위험에 처해 있다... 개인과 자발적 집단의 위상은 전횡적 권력의 확대로 인해 훼손되고 있다... 본 협회는 이러한 발전이 모든 절대적인 도덕적 기준을 부정하는 역사관이 성장, 법 통치의 우월성을 의문시하는 이론의 성장에 의해 육성되었다고 주장한다.... 사유재산 및 시장 제도들과 결부된 광범위한 권력과 선도가 없다면, 자유가 효과적으로 보호될 수 있는 사회를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p38) <신자유주의> 中 


 우리는 신자유주의화를 국제적 자본주의의 재조직화를 위한 이론적 설계를 실현시키려는 유토피아적 프로젝트, 또는 자본축적의 조건들을 재건하고 경제 엘리트의 권력을 회복하기 위한 정치적 프로젝트로 해석할 수 있다.(p37) <신자유주의> 中


 개인의 자유를 강조한 신자유주의는 어떻게 세계 경제를 지배했는가? 그것은 자산(資産)의 금융화(金融化)를 통해 이루어져 왔다. 과거 경제의 초점이 생산(生産)에 있었다면, 신자유주의 경제에서는 교환(交換)이 강조되었다. 자산과 금융이 강조되면서, 경제의 중심은 노동에서 자본으로 보다 급격하게 움직이게 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요컨대 신자유주의화는 모든 것들의 금융화를 의미했다. 이 점은 경제의 다른 모든 영역들과 국가 장치는 물론, 마틴(Randy Martin)이 지적한 바와 같이 일상생활에 이르기까지 금융의 장악을 심화시켰다. 이는 또한 세계적 교환관계에 가속적인 변동을 유발했다. 의심할 바 없이 생산으로부터 금융의 세계로 권력 이행이 있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하에서 부상하는 계급 권력의 본질적 핵심은 CEO들, 즉 기업 이사회의 주요 운영자와 잔본주의적 활동의 내적 성소(聖所)를 둘러싼 금융적, 법적, 기술적 장치들의 선도자들에게 있다. 그러나 기업 정책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많은 표결권을 얻지 않고서는 자본의 실제 소유자, 즉 주주들의 권력은 다소 축소된다.(p52) <신자유주의> 中


 저자인 하비 교수는 또한 신자유주의 경제 체제에서 지배 계급은 초국적(超國籍) 연계를 맺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Global Production Network)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 연계된 현재 경제 체제 내에서 각국의 경제 지배계급은 공통된 이해 관계를 가지고 있게 된다. 그래서, 이들은 국제 연대를 통해 이익을 공유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지적한 이러한 지점은 토마 피게티(Thomas Piketty, 1971 ~ ) 가 <21세기 자본 Capital in the Twenty- First Century>에서 강조한 '글로벌 자본세 -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초국가적 과세'의 배경이기도 하다.  


 어디에서든 지배계급이 자신의 활동 범위를 제한해 특정 국민국가 내에서만 충성을 다하는 경우란 역사적으로 많이 과장된 것이다.... 국제적 연계는 항상 중요하며, 특히 식민적, 신식민적 활동뿐만 아니라 19세기 또는 그 이전으로 소급되는 초국적 연계들에 있어서도 그러했다.(p54)... 이들은 다보스에서의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와 같은 조직을 통해 생각을 나누고, 정치 지도자들과 교류하고 협의할 수단을 보유한다. 이들은 세계적 실무들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일반 시민들이 지니지 못한 행동의 자유를 누린다.(p55) <신자유주의> 中

 

 우리가 주목한 것은 20세기에 창안되었지만 미래에도 틀림없이 핵심적인 역할을 계속 수행해야만 할 사회적 국가와 누진적 소득세라는 두 가지 기본제도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현 세기의 세계화된 금융자본주의를 다시 통제하려면, 오늘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을 개발해야만 할 것이다. 여기서 이상적인 수단은 매우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금융 투명성과 결부된 누진적인 글로벌 자본세가 될 것이다.(p617) <21세기 자본> 中


 저자는 <신자유주의>를 통해 자산의 금융화를 통해 권력이 금융기관으로 넘어갔으며, 이들 금융권력들은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국제적인 연대를 맺고 있음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소수의 상위 계급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을 사용하는가? 


 1970년대에는 전통적 상위 계급들이 (미국 정부와 더불어) 지원한 군사 쿠데타가 이들의 권력을 위협했던 노동운동 및 도시사회운동 내에서 형성된 모든 연대들을 강력하게 억압함으로써 수행되었다. 그러나 1979년 이후 대처와 레이건에 의한 신자유주의적 혁명은 민주적 수단을 통해 이뤄져야만 했다. 이처럼 중대한 이행이 가능하려면, 선거에서 이길 정도로 충분히 큰 범위에 걸친 정치적 동의가 사전에 구축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람시(Antonio Gramsci, 1891 ~ 1937)가 '상식(common sense)'이라고 한 것이 전형적으로 동의의 기반을 이룬다.(p59) <신자유주의> 中


 저자는 과거 1970년대에는 군사적 쿠데타 등 물리적 업압을 통해 신자유주의 체제가 유지되었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침투를 통해 대중들을 세뇌시키고, 선거라는 민주절차 방식으로 체제를 유지하고 있음을 본문을 통해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신자유주의적 전환을 합법화하기에는 충분한 대중적 동의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영향이 기업, 대중매체, 그리고 시민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제도들 -대학, 학교, 교회, 그리고 전문가 협회 등 - 을 통해 유포되었다.... 소수 엘리트의 경제적 권력 회복을 둘러싼 공개적 프로젝트는 아마 많은 대중적 지지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개인적 자유라는 명분을 내세웠던 실용적 시도는 대중 기반에 호소함으로써 계급 권력을 회복하겠다는 본래 의도를 감출 수 있었다.(p60) <신자유주의> 中


 <신자유주의>에는 이러한 배경으로 태어난 신자유주의 체제가 어떤 방식으로 세계 각국에서 자리잡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으며, 그 중 전형적인 사례로 우리나라를 들고 있다. 우리나라의 신자유주의가 어떻게 뿌리내렸는가하는 문제까지 다루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므로, 다음 기회로 넘기도록 하자. 다시 경제사상사로 돌아오면, 신자유주의의 경제학 사상의 기원이 된 오스트리아와 시카고 경제학파는 기본적으로 시장을 '완전시장', 시장참여자의 기대를 '합리적 기대'로 파악하고, 이러한 기반 위에서 자신의 이론을 순수과학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정부의 개입 대신 극단적인 자유 방임을 주장한 이들은 자신들의 이론이 모든 가치를 배제한 순수 과학임을 강조한다. 프리드먼은 "원리상 경제학에는 어떤 가치 판단도 없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리처드 매켄지 Richard McKenzie와 고든 털록 Gordon Tullock은 이렇게 말한다. "경제학자의 접근법은 도덕과 무관한 것이다. 경제학의 관심사는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가 아니라... 현실에서 나타나는 사람들 행동의 이유를 이해하는 것이다.(p957) <E.K. 헌트의 경제 사상사 > 中


 경제학은 과거 정치경제학(政治經濟學)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고민한 학문이었다. 여기에 '정치'와 '경제'를 분리시키고, '정치'의 자리를 '수리(數理)'를 대신한 결과 '경제학'의 학문적 관심은 '인간'에서 '자본'으로 넘어간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최근까지 크게 유행한 '수리경제학'을 통해 모든 것이 수치화되고, 관념화된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의 모습이 학문에 있어서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아닐런지... 


 <신자유주의>는 우리에게 널리 알려졌지만, 구체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신자유주의에 대해 쉽게 설명한 책이라 여겨진다. 그렇다면, 우리가 신자유주의자들이라 부르는 이들이 바라보는 자신들의 사상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를 간략하게 살펴보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치도록 하자. 

 

 인간의 어리석음으로 만들어졌던 우리의 길을 막았던 장애물들을 제거하고, 개인들을 '지도'하고 '명령'하기 위한 또 다른 기구를 고안하기보다는 개인의 창의적 에너지를 분출하도록 놓아두는 것이 더 중요해졌다.(p326)... 만약 자유로운 사람들의 세상을 창출하려는 첫 번째 시도에서 실패한다면, 우리는 다시 시도해야 한다. 실로 개인의 자유를 위한 정책이 유일한 진보적 정책이라는 핵심적 원리는 19세기에 진리였듯이 현재에도 여전히 진리이다.(p327) <노예의 길 The road to Serfdom>


 미국은 계속 발전해왔다. 국민의 의식주나 교통사정도 더 좋아졌고, 계급 및 사회 격차는 좁혀졌으며, 소수집단이 겪어야 했던 불이익도 줄어들었고, 대중문화는 급속도로 발전했다. 이 모든 것들은 자유시장을 통해 서로 협조하는 개인들의 창의력과 추진력의 산물이었다. 정부가 취한 조치들은 이런 발전을 방해해왔지 도와준 것은 아니었다.(p310)... 우리의 기본적인 가치체계, 그리고 자유로운 제도들이 짜여 이루어진 그물망은 굳세게 버텨낼 것이다. 나는 우리가 자유를 유지하고 확대해나갈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p314) <자본주의와 자유 Capitalism and Freed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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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13: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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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14: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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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5-30 18:0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게 신자유주의에 저항 좀 하라고 이런 글을 또ㅎㅎ; 정신 좀 차려! 찰싹찰싹))) 아웅, 찔려;;;

겨울호랑이 2018-05-30 18:03   좋아요 2 | URL
사실은 저도 찔리지요... 신자유주의를 거부하면서도 주식 투자를 하는 자신을 보면...ㅜㅜ 물론 증권계의 고사리손이긴 합니다만...

2018-05-31 23: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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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08:3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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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1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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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 많이 모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고 적게 있다고 나쁜 것도 아니다. 모인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서로 아끼고 살아가는 삶터가 바로 작은 곳이다. 큰 학교라고 서로 정을 나누며 살 수 없는 것도 아니고, 꼭 작은 학교라고 모든 사람이 정겹게 살아가는 것도 아니다. ‘작은 곳‘이란 규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 사이의 가까운 정도를 말한다. 가까움은 함께 사는 사람들이 서로의 작은 일, 작은 것에 주목할 때 살아난다.(p19) 「작은 학교, 학교의 길을 묻다」中


 「작은 학교, 학교의 길을 묻다」는 폐교 위기에 몰렸던 시골의 여러 학교들이 혁신 학교의 모델로 거듭 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농촌 인구가 줄면서 자연스럽게 학생수100명 이하의 학교는 폐교의 수순을 밟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요즘. ‘작은 곳‘이기 때문에 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찾아내고 노력하는 이들을 우리는 책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여기에 보여지는 혁신 학교의 모습속에서  일찍이 1970년대에 인간 중심 경제를 주장한 슈마허(Ernst Friedrich "Fritz" Schumacher, 1911 ~ 1977)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의 주장을 발견하게 된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를 통해 저자 슈마허는 대규모 조직을 활용한 대량 생산의 시대에서 환경 오염과 과도한 자원 이용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리고,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동양 사상인 ‘불교경제학‘과 ‘교육‘을 본문에서 제시하고 있다.

  「작은 학교, 학교의 길을 묻다」가 소규모 집단이 생존을 위해 교사, 학생, 학부모가 긴밀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면,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산업화 시대 대규모 집단이 생존을 위해 소집단으로 분화할 것을 요구한다. 전자는 소규모 집단에서 대규모 집단으로 성장하는 것이 지향점인 반면, 후자는 대규모 집단에서 소규모 집단으로 줄어드는 것을 지향한다. 이처럼 출발점과 지향점은 다소 차이가 있지만, 이들 모두 '작은 곳'에서 ‘인간‘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인간의 모습은 크고 높은 곳이 아닌 작고 낮은 곳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아닌런지... 마침 '작음'와 관련하여 오래전 읽었던 시집 제목이 떠오른다.

 

  1992년 당시 인기있었던 시집 중 칼릴 지브란의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가 있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때 읽었던 시집이라 제목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만큼은 지금까지 기억할 만큼 인상적이었다.

 

 '작음'으로 연결되는 오늘 책 속에서 삶의 의미를 정리해본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라는 말 속에서 작은 것에 우리 삶의 의미가 있음을 깨닫고, 「작은 학교, 학교의 길을 묻다」 과 같이 작은 것에서 길(道)을 발견하는 것이 우리가 힘써야 할 바가 아닐런지 생각하며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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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12:2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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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30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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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15: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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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18: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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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20: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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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20: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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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2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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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00: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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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21: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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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23:0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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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7 00: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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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95년 이미 71세에 이른 칸트가 영원한 평화의 실현을 바라며 쓴 저작. 칸트에 의하면 국가 간에는 법적 질서가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경우에는 서로 자기의 정의를 주장하여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기 쉽고, 일어난 경우에는 서로 자기의 정의를 주장하여 언제까지나 전쟁이 계속되기 때문에 섬멸전으로 되기 쉽다. 그러므로 우선 전쟁을 방지하고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지반을 구축해야 한다. 칸트는 이를 위한 구체적 조건으로서 제 1장에서 여섯 가지 예비조항을 제시한다... 이어서 칸트는 제2장에서 이와 같이 하여 준비된 지반 위에서 영원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조건으로 세 가지 확정 조항을 제시한다... 칸트의 평화론의 의의는 무엇보다도 영원한 평화가 이성에 기초한 "도덕적 목적"이며 그 실현이 아무리 곤란하더라도 모든 노력을 기울여 그에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자각을 접근해야만 한다는 것을 밝히고 사람들에게 자각을 촉구한 데 놓여 있다.(p278) <칸트 사전> 中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 1724 ~ 1804)는 그의 저서 <영구 평화론 Zum  ewigen Frieden. Ein philosophischer Entwurf>를 통해서 국가 간의 영원한 평화를 위한 조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칸트는 영원한 평화를 위해 6개의 예비 조항과 3개의 확정 조항을 제시하는데, 이들 조항은 도덕과 정치간의 관계에서 기초한다.

 

 도덕은 우리가 그것에 따라야만 하는 무조건적인 명령적 법칙의 총체이기 때문에, 객관적인 의미에서 그 자체로 이미 실천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의무의 개념에 권위를 부여하고 난 후, 우리가 의무를 수행할 수 없다고 핑계를 대는 것은 명백하게 불합리하다.(p63)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칸트는 정언명령(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에 기반하여 도덕이 정치보다 우선했을 때 영원한 평화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도덕적인 정치가는 생각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도덕가는 생각할 수 없다는 그의 말을 통해서 우리는 칸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정치적 도덕가는 도덕적 정치가가 당연하게 중단한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하며, 이로 인해 원칙을 목적에 종속시키기 때문에 정치를 도덕과 일치시키려는 그 자신의 의도가 수포로 돌아가 버리는 데서, 모든 악이 생겨나는 것이다... "네 의지의 준칙이 보편적 법칙이 되게 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고 하는 원리에서 출발해야 할 것인가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p73)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인간의 권리는, 비록 그것이 지배 세력에게 아무리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 할지라도 신성하게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된다. 사람들은 여기에 타협해서 실용적으로 제약된 법이라는 중간 노선을 추구해서는 안 된다. 모든 정치는 도덕 앞에 무릎을 꿇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정치는 비록 완만하기는 해도 영원히 빛나게 될 단계에 도달할 것을 희망할 수 있다.(p79) <영구 평화에 관한 도덕과 정치간의 대립에 관하여> 中  


 이러한 칸트의 사상은 루소의 사상과 더불어 유럽 정치사에서 이상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이상주의에서는 특히 '여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이상주의자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에 근거하여 '이익의 조화'라는 명제를 도출하였으며, 이는 경제학에 있어서 '자유무역'과도 통하는 주장이었다.

  

 루소(Jean Jacques Rousseau, 1712 ~ 1778)와 칸트 모두 전쟁이란 자신의 이익만 챙기고 국민들의 이익은 돌보지 않는 군주들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에 공화정(共和政)에서는 전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들은 여론이 제 효과를 발휘하면 그것으로도 전쟁을 막기에 충분하다고 믿었다.(p48) <20년의 위기> 中 


 4년 후 윌슨 행정부의 초대 국무장관이었던 브라이언(William Bryan, 1860 ~ 1925)이 새로운 조약안을 제안했다. 이 조약안은 사람들이 흥분한 상태에서는 이성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 일단 냉각기를 거치면 이성이 국제여론이란 모습으로 제 힘을 발휘할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한 것이었다.(p56) <20년의 위기> 中


 18, 19세기의 이상주의자들의 가장 큰 장점은 이상과 같은 불만을 동시에 해소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들은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최대 다수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합리적 목적이 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상충되는 두 입장을 이처럼 종합할 수 있었던 것은 개인에게 최고의 이익과 사회의 최고 이익은 자연 발생적으로 같다는 주장에 의해서 가능해졌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이익의 조화 (harmony of interest)]라는 명제이다.(p69)... 개인들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할 때 무의식적으로 전체 사회의 이익을 이루듯이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개별 국가들도 인류의 이익을 위해 봉사한다고 믿었다. 세계자유무역론의 근거는 바로 개별 국가의 경제적 이익이 극대화될 때 전체 세계의 경제이익도 극대화된다는 믿음에 있었다.(p72) <20년의 위기> 中 


 20세기 초반 세계 정치외교을 중심에 있었던 이상주의는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1929년 세계경제대공황으로부터 고전학파 경제학이 붕괴하고 케인즈 경제학이 그 자리를 대신한 것과 마찬가지로, 정치적으로는 '이익의 조화'에 대한 이상주의 사상 역시 도전을 받게 되었다.


 1930년대의 붕괴는 특정 개인의 작위나 부작위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압도적이고 엄청난 사건이다. 그것의 붕괴는 그것이 기반한 모든 명제의 파산을 의미한다. 19세기 신념의 기반이 의심받고 있다. 사람들이 어리석거나 사악하여 옳은 원칙을 따르지 못하거나 안 한 때문이 아니라 원칙 자체가 잘못되었거나 현실에 맞지 않는 것이다.  사람들이 국제정치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한다고 올바르게 행동한다는 보장이 없다. 사람들이 자신의 혹은 자국의 이익을 올바르게 추론한다고 해서 그것이 세계의 낙원을 보장하지 못한다.(p65) <20년의 위기> 中


 경제적으로 자국의 산업이 상대국에 대해 절대 또는 비교우위에 있을 때 이들은 자유무역을 주장하는 이들은 정치적으로 이상주의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에 반해, 상대국에 비해 절대 또는 비교우위에 놓여 있는 이들은 보호무역주의 또는 산업보호주의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정치적으로는 헤겔로부터 출발하는 현실주의 사상을 주장하였다.


 이성이 신의 소명을 대체함에 따라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 ~ 1831)은 합리적인 역사과정의 인식에 기반한 철학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질서정연하게 반복되는 과정을 전제한 헤겔은 역사를 이끌어 가는 힘을 '시대정신(Zeitgeist)'이라는 형이상학적 존재로 추상화하는 정도에 만족했다. 그러나 일단 현실에 대한 역사적 인식이 자리를 잡은 이상 추상적인 시대정신을 모종의 물리적 힘으로 대체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p96) <20년의 위기> 中 


 철두철미한 현실주의자가 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정치학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또 가장 이상한 교훈이다. 철저한 현실주의는 모든 정치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네 가지 요소를 배제한다. : (1) 확고한 목표, (2) 정서적 호소, (3) 도덕적 판단, 그리고 (4) 행동의 기준이 그것이다.(p123) <20년의 위기> 中


 정치, 경제적으로 이처럼 대립되는 듯한 이상주의와 현실주의는 각각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한계는 서로 보완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다. 이상과 현실을 동시에 고려하기 위해서는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극단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이들의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 저자인 E.H 카(Edward Hallett Ted Carr,1892 ~ 1982)의 주장이다. 


 우리는 모든 건전한 정치사상은 이상과 현실 모두에 기반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상주의가 공허하고 특권층의 기득권을 대변하는, 참을 수 없는 겉치레가 되면 현실주의는 그 가면을 벗기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나 순수한 현실주의는 적나라한 권력투쟁 외에는 대안적인 모습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에 국제사회란 불가능해진다.(p128)... 정치란 결코 서로 만날 수 없는 두 개의 판에 떨어져 존재하는 이상과 현실이라는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목표와 제도, 즉 이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정치적 사고에 장애가 되는 것은 없다.(p129) <20년의 위기> 中


 세계질서를 논의하면서 국력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이 이상론이라면 도덕의 요소를 무시하는 것은 현실주의의 현실주의답지 않은 비현실적 성격이다... 국제질서도 권력에만 전적으로 의존할 수 없다. 국제질서도 상당한 정도의 일반적 동의를 필요로 한다. 도덕과 권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는 것이 정치의 숙명적 이중성이다.(p295)... 국제적 조정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궁극적인 길은 경제회복의 길에 있는 것 같다... 미국을 포함한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이윤의 창출이라는 경제적 목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고용창출이라는 사회적 목적을 위해 커다란 자본투자가 있었다.(p297) <20년의 위기> 中


 칸트에 따르면, 영원한 국제 평화는 도덕이 정치에 우선한다는 사상적 기반에서 여러 국가들이 조약을 맺어 유지할 수 있다. 반면, E.H.카에 따르면 세계평화를 위해서는 도덕과 권력을 모두 고려해서 정치를 해야 하며, 국제 정치의 방향은 고용을 통한 사회 전체의 번영을 향해야 한다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권력이 국제관계를 전적으로 지배하는 한 다른 모든 이들을 군사적 필요에 종속시키는 것은 위기를 악화시키고 전쟁의 전체주의적 성격을 강화시킬 것이다. 반면 일단 권력문제가 해결되면 도덕이 그 역할을 재개하여 상황은 절망적이지만은 않게 될 것이다. 경제적 이익이 사회적 목적에 종속된다는 것을 솔직히 인정하고 경제적으로 좋은 것이 항상 도덕적으로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이제 국내사회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도 적용되어야 한다.(p298) <20년의 위기> 中


 정언명령에 근거한 칸트의 평화사상은 냉정한 국제 정치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에,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말한 E.H.카보다 추상적이고 관념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칸트의 이상주의가 없었다면, E.H카의 이상주의와 현실주의의 균형 주장 역시 없었을 것이다. 칸트 사상의 의의는 세계 평화에 대해 누구도 말하지 않던 시절 처음으로 인류평화를 주장한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며, E.H.카의 주장은 이러한 평화주의 사상과 경제적 현실을 고려한 구체적인 국제 평화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에서 의의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최근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을 것인가가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북미 정상회담이 동북아 지역 평화를 넘어 세계 평화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일 것이다. 북미 정상회담으로 한반도 평화 정착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요즘 <영구 평화론> 과 <20년의 위기>는 우리가 가야할 평화의 방향에 대해 여러 생각할 거리를 주는 고전(古典)들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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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8 07: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0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30 2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성과 감정은 칼로 자르듯 나뉘지 않죠. 직관과 합리가 종합적 사고로 작용하듯이. 수많은 사람들의 판단이 작용하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뫼비우스의 띠같기도 하고요. 그의 주저 진행을 보면 칸트도 이 딜레마를 모르진 않았다고 봅니다.
근친상간만 해도 진화적 문제(유전적 변형)에서 발생한 터부에서 사회 구조로 섞여 들면서 도덕 관념으로 굳건해져 있죠. 몰랐는데 피터 싱어 <더 나은 세상> 보니 한국에서는 친족이더라도 성인 간 합의에 의한 성 관계는 죄가 아니더라는? 그렇더라도 사회적 혐오를 피할 수 있을까요. 동성동본 결혼도 최근까지 그러했는데. 이런 복잡한 이해 관계에 따른 도덕, 윤리의 혼란을 생각할 때 칸트가 제시한 초국가적 보편 도덕 성립은 이론적으로는 타당한 공리이긴 합니다. 늘 그렇듯이 인간의 문제는 공통의 합의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 삐끗하면 전체주의가 될 수도 있고.
환경 보존, 고기를 먹지 말고 모두가 채식으로 바꾸자 등등의 뛰어난 문제 해결을 제시해도 자국의 이익, 개인의 자유와 권리, 인권 내세우면 또 공염불... 국제합의기구의 이해타산적 모습과 결과를 하루이틀 보는 것도 아니고.
세상 참 지지고 볶고죠ㅡㅜ

겨울호랑이 2018-05-30 20:37   좋아요 1 | URL
칸트가 <영구 평화론>에서 말한 평화를 이루어 내는 힘의 기원은 <실천이성비판>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 진보의 역사를 만들어 내는 합리적 이성을 칸트는 강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부과한 도덕 법칙의 요구라는 측면에서 칸트는 평화를 바라봤기에,칸트에게 있어 현실적인 어려움은 극복할 수 있는 장애는 아니었을까 여겨지네요. 이성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칸트였기에 감정은 고려허지 않은 것으로 여겨집니다만, 확실하게 알기 위해서 조금 더 공부를 해서 정리해봐야겠습니다...^^:)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 - 인류의 기원부터 현재까지
장 졸리 지음, 이진홍 외 옮김 / 시대의창 / 2016년 11월
평점 :
품절


[그림] 선사시대의 아프리카(p11)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 L'Afrique Atlas Historique et son environnement Europeen et Asiatique >는 다른 아프리카와 관련된 책들이 가지고 있지 않은 장점과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의 장점은 선사 시대의 아프리카 역사부터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 계보에서 확인된 가장 오래된 개체는 말라위와 케냐에서 발견된 호모루돌펜시스로 약 25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 오래된 인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알려졌다. 약 400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프레안트로푸스 아프리카누스가 있고 350만년 전의 케니안트로푸스 플라티오프스다... 인류의 조상이 아프리카 대륙을 넘어서 유라시아로 이주했음을 알려준다.(p9)


 대부분의 아프리카 역사서들이 선사시대 아프리카와 식민시대이전의 아프리카를 별도로 구분짓지 않고 한데 모아 서술하는데 반해,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에서는 인류의 기원이 아프리카였음을 시각적으로 보다 잘 보여준다. 책은 마치 중고등학교 사회과 부도를 보는 듯 풍부한 시각적 자료 제공을 통해 이전에 잘 알지 못한 아프리카 부족 역사를 제공하기에 우리는 아프리카 역사를 시각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더 나아가 독자로 하여금 현대 아프리카의 비극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가를 생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림] 빈 회의(1815~ 1830) 시기의 아프리카(p111)


 독자들은 유럽의 여러 강대국에 의한 아프리카 침략이 부분적으로 이루어진 19세기 초반의 지도 모습에서 자연 환경에 따라 거주지가 바뀌온 여러 부족들의 영역을 확인할 수 있다. 아프리카의 지형적 특성은 북부지역의 사하라 사막과 중부의 사바나 초원, 남부의 열대 우림, 동부의 고원지대으로 정리될 수 있다. 이러한 자연 환경의 영향으로 아프리카의 여러 부족은 선사 시대 이래 자유롭게 살고 있었지만, 제국주의 시대 아프리카 분할 시에는 이에 대한 고려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림]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1818~ 1939) 시기의 아프리카(p134)


 제국주의 시대 만들어진 현대의 아프리카 국경이 아프리카 부족의 분포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것임을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는 확인시켜 준다. 그리고, 이로부터 최근까지도 발생하고 있는 부족간 내전이 발생하고 있는 현재 아프리카 문제의 원인을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시각적 자료를 통한 문제 제기는 이 책이 주는 장점이라 여겨진다.


 반면, 이 책이 가지고 있는 한계점은 무엇인가.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으로 된 책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의 저자는 철저하게 유럽인의 입장에서 아프리카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이러한 점이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단점이다. 저자의 이러한 관점을 제국주의 시대를 총평한 다음의 글을 통해 확인해 보자.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아프리카 식민지는 종주국에 거의 이익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심지어 포르투갈은 더 가난해지기까지 했다. 한 예로 1960년 포르투갈의 1인당 국내총생산 GDP은 앙골라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다.(p156)... 식민지 건설의 경제적 수익이 형편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1960년 기준으로, 유럽 열강은 무역량에 견주어 너무 많은 비용을 해외 영토의 인프라 건설에 쏟아 부었다.... 이렇게 인프라를 정비하는 데 든 투자비와 농업보조금은 식민지가 본국에 가져다준 수익보다 훨씬 높았다. 아프리카 식민지 건설로 인한 적자액이 총 700억 금 본위 프랑(1913)에 달했다. 이는 마셜 플랜으로 프랑스가 받은 원조금의 세 배에 해당한다.(p157)


 저자의 유럽의 아프리카 지배를 요약하면 유럽은 아프리카에서 손해를 입었으며, 식민시대를 통해 아프리카는 무거운 세금에서 해방되었고, 교육, 의료 서비스 등에서 큰 혜택을 입었기 때문에 식민시대가 아프리카에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는 달리 암흑 시대는 아니었다...


 1939년 유럽인이 전체 인구의 0.4퍼센트에 불과했던 네덜란드 동인도의 경우, 국민의 세금 부담이 과거 이슬람 술탄 시대보다 낮았다. 영국령 인도의 경우에도 1941년 전체 인구 약 3억 3800만 명 중 유럽인의 수는 13만 5000명으로 0.004퍼센트에 불과했다. 무굴 제국이 주로 사치스러운 궁전을 유지하느라 부과했던 무거운 세금에 시달리던 인도 납세자들에게, 식민 정부는 중간 과정을 없애는 방법으로 부담을 덜어주었다... 식민지 개발과 근대화가 진행됨에 따라, 식민 본국에서 교육을 받고 서구화한 엘리트 계층이 등장한다... 의료 부문은 가장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룬다. 식민 통치기 말에는 영아 사망률도 크게 준다.(p157)... 끝으로, 유럽 식민지 몇 군데에서 후기에 발생한 분쟁(케냐, 알제리, 앙골라, 모잠비크)을 제외하면, 식민 통치기간은 대체적으로 비교적 평화롭게 번영한 시대였다.(p158)


 일본에 의한 식민지 시대를 겪은 우리는 저자의 주장에 대해 쉽게 동의하기 어렵다. 일제 시대(1910 ~ 1945)의 시대에 철도, 도로, 항만 등의 건설이 이루어졌음을 근거로 일본이 우리 나라를 근대화시켰다는 주장과 책의 본문의 내용은 사실당 동일한 내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일제 시대 이루어진 근대화로 인해 행복했으며 지금 행복한가?


 <지도로 보는 아프리카 역사 그리고 유럽, 중동, 아시아>는 위와 같은 의미에서 <유럽인이 바라본 아프리카 역사 - 지도를 중심으로- > 라고 제목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다른 책에서 제공하지 않는 선사 시대부터 대항해 시대 이전의 아프리카 역사에 대한 정보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인 반면, 프랑스인인 저자의 편향된 시각이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이라 여겨진다. 따라서, 이 책은 아프리카 역사 부도로만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진다. 아프리카 역사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아프리카인의 입장에서 저술된 책을 추가적으로 확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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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5-27 18: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 지도 크기가 넘 작다는 걸 봐도 충분히 이해되는 책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5-27 18:49   좋아요 0 | URL
역시 북다이제스터님의 통찰력은 날카롭기만 합니다! ㅋ 한 방에 정리되네요.

2018-05-27 19: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7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6-04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프리카를 보면 항상 드는 생각이지만 현재 아프리카에서 일어나는 내전들이 따지고 보면 19세기 서구제국주의자들이 그어놓은 컴퍼스줄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08 15:32   좋아요 1 | URL
NamGiKim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아프리카의 문화와 자연을 고려하지 않은 인위적인 분할이 아프리카를 내전으로 몰고 있는 주요 원인이라 생각됩니다. 피식민지인들을 배려하지 않은 제국주의 시대의 상처때문에 지금도 아프리카의 피가 흐르고 있다 여겨집니다...

NamGiKim 2018-06-08 12:07   좋아요 1 | URL
따라서 아프리카 내전의 원흉은 서구 제국주의자들이라 볼 수 있다 봅니다.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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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 1805 ~ 1875)의 <안데르센 동화전집>은 안데르센의 작품 168편을 모아 놓은 전집이다. 본문에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인어공주>, <못생긴 새끼 오리>, <성냥팔이 소녀>, <벌거벗은 임금님>등 여러 동화가 담겨 있다. 안데르센은 머리말을 통해 자신의 동화 유래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비평가들이 동화집에 대한 평가를 꺼려하자, 다시는 동화를 쓰고 싶은 의욕이 사라져 버렸다. 하지만 동화와는 거리가 먼 작품에 매달리고 있을 때 "인어공주"의 줄거리가 머릿속을 맴돌아 다시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어린 시절, 나는 동화와 이야기를 즐겨 들었다. 어릴 때 들었던 이런 이야기를 옮겨 쓰면서 고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될 때는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야기에 신선함을 가미했다. 이 책에 나온 이야기 중 <부싯깃 통>, <장다리 클라우스와 꺼꾸리 클라우스>, <못된 아이>, <길동무>는 이렇게 쓰여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듯이, 아나크레온의 시에 <못된 아이> 이야기가 나온다. <꼬마 이다의 꽃>, <엄지 아가씨>, <인어 공주>는 창작한 것이다.(p11) <머리말> 中


 머리말을 통해 <안데르센 전집>에 실린 동화의 성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덴마크 전래 민담을 작가가 적절하게 고친 이야기들이며, 다른 하나는 작가의 창작 작품들이다. 유래가 다른 이들 동화는 각각 어떤 특성이 있는지 이번 리뷰에서 살펴보도록 하자.


1. 전래 동화 : <못된 아이> <길동무>에 담긴 권선징악과 해악


 <안데르센 동화전집> 속 중에서 전래 동화로 전해 지는 <못된 아이>와 <길동무> 속의 이야기에는 전형적인 권선징악(勸善懲惡)의 성격과 해학(諧謔, Humour)이 담겨 있다. <못된 아이> 속 큐피드의 모습에서 우리나라 전래 도깨비의 모습을 연상하거나, <길동무>에서 경상도 아랑전설(阿娘傳說) 속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전래 동화 속 이야기들이 인간의 보편적인 감정에 기초했음을 깨닫게 된다.


  큐피드는 못된 아이다. 절대로 큐피드와 어떤 일을 해서는 안 된다. 큐피드가 여러분의 늙은 할머니 심장을 쏘았다는 것을 생각해 보라. 할머니는 아주 오래 전에 화살을 맞아서 이제 아픔을 느끼지 못하지만 결코 잊지 못한다. 짖궂은 큐피드! 이제 여러분도 그를 알게 될 것이다. 큐피드가 얼마나 못됐는지를!(p59) <못된 아이> 中


 "아닐쎄, 이제 시간이 다 되었다네. 난 자네에게 진 빚을 갚았을 뿐이네. 교회에서 나쁜 사람들이 시체를 내던지려 했던 일을 기억하나? 자넨 그 죽은 남자가 무덤 속에서 편히 쉬도록 전 재산을 내놓았네. 내가 바로 그 죽은 남자라네." 말이 끝나자마자 길동무는 사라져 버렸다.(p76) <길동무> 中


2. 창작 동화 : <인어공주> <눈의 여왕> 에 담긴 철학적, 종교적 의미


[사진] 인어공주 공식 포스터(출처 : 위키백과)


 <안데르센 동화전집> 속 창작동화는 전래 동화에 비해 보다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중에서도 작가가 애정을 갖고 있는 <인어공주>를 통해 철학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인어공주>는 어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 있으며, 동시에 줄거리가 흥미롭기 때문에 아이들도 즐겨 읽을 수 있다.(p11) <머리말> 中 


 호기심 많은 인어공주는 할머니에게 사람에 대해 질문을 하는데,  할머니(안데르센 동화에서 할머니의 이미지는 '자비로운 현자'로 표현된다)는 인간만이 가지는 '불멸의 영혼'을 자신의 손녀에게 말해준다. 


 "그들도 죽는단다. 우리보다 생명이 훨씬 더 짧지. 우리는 삼백 년까지도 살 수 있지. 우리에겐 무덤도 없고 죽으면 물거품으로 변하지만 말야. 우리는 불멸의 영혼이 없기 때문에 다시는 생명을 얻지 못한단다. 우리는 해초와 같아서 일단 꺾이면 다시 살아나지 못하지. 하지만 인간은 다르단다. 인간은 죽어서 흙이 된 후에도 영원히 사는 영혼을 가지고 있지. 영혼은 맑은 공기를 뚫고 반짝이는 별들 너머로 간단다. 우리가 물 위로 떠올라 인간 세계를 보듯이 인간들은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찬란한 곳으로 올라가지."(p85) <인어공주> 中


 그리고, 인어공주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불멸의 영혼'을 가지고자 열망하게 된다. (어린이판) <인어공주>에서는 인어공주가 왕자를 보고 사랑에 빠져, 인간이 되기를 희망했다는 것으로 편집을 하지만, 원본에서 말하는 바는 다르다. '사랑'으로 이야기를 바꾼 것은 '불멸의 영혼'을 아이들에게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겠지만, 이로 인해 <인어공주>의 성격은 크게 달라지게 된 부분은 아쉽게 느껴진다. 


 "우리에겐 왜 불멸의 영혼이 없나요? 단 하루만이라도 인간이 되어 별 너머에 있는 찬란한 세계에 가 볼 수 있다면 제 목숨을 주어도 아깝지 않겠어요." 인어공주가 애처롭게 말했다... "제가 죽으면 물거품이 되어 바다 위를 떠다니겠죠? 파도가 연주하는 음악 소리도 듣지 못하고, 아름다운 꽃도 붉은 해도 보지 못하겠죠? 어떻게 하면 영혼을 얻을 수 있나요?"(p85) <인어공주> 中


  (전집)<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다면 영혼을 얻을 수 있다는 할머니 말을 듣고 사람이 되기를 결심하게 된다. 원본에 따르면 인어 공주에게 왕자는 불명의 영혼을 얻기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이 될 수 없었다.


 '틀림없이 왕자가 탄 배일 거야. 내게 소망과 행복을 가져다줄 왕자 말야. 꼭 왕자를 얻고 말테야. 영혼을 얻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p86)  <인어공주> 中


  메피스토펠레스(Mephistopheles)와 거래한 파우스트(Faust)처럼 인어공주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마녀에게 목소리를 주고, 사람이 된다. 안타깝게도, 자신의 목소리를 잃었기 때문에 소통할 수 없었던 인어공주는 왕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고, 결국 물거품이 되버리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결말을 우리는 비극(悲劇)이라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제 목소리를 가져가 버리면 제겐 뭐가 남죠?"

 "아름다운 모습이지. 우아한 걸음걸이, 그윽한 두 눈, 이것으로도 인간의 마음을 충분히 사로잡을 수 있어. 아직도 그럴 용기가 있니?"(p88) <인어공주> 中


[그림] 인어공주와 마녀와 거래 (출처 : http://oddidragon.tistory.com/24)


 소통 대신 외적인 아름다움을 선택한 인어공주의 선택이 행복한 결말로 이어진다면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되는 것은 아닐런지. <인어공주>에서 인어공주는 불멸의 영혼을 얻기를 희망했고, 비록 사람이 되어 사랑을 얻지는 못했지만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인어공주>는 진정한 해복한 결말로 끝났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넌 공기의 딸들과 함께 있단다. 인어에겐 영혼이 없지.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인어가 영혼을 얻으려면 다른 힘에 의존해야 한단다. 공기의 딸들도 영혼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여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인간들이 누리를 행복을 누릴 수 있단다. 가련한 인어 공주야, 넌 온 마음을 다해 우리처럼 영혼을 얻으려고 노력했어. 뼈를 깎는 고통을 겪으면서 말야.그 고통이 너를 너를 공기의 정령들 세계로 끌어 올린 거야. 이제부터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을 수 있단다." 인어 공주는 눈을 들어 겸허하게 태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두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는 것을 느꼈다.(p96) <인어공주> 中


  전집에 수록된 작품 중 유명한 작품 중 하나인 <눈의 여왕> 에서도 철학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이성의 거울'이라 하는 호수에 살고 있는 눈의 여왕은 주인공인 카이에게 '이성'이라는 놀이에서 '영원'이라는 글자를 맞추게 하지만, 글자를 맞추지 못한다.


[그림] 눈의 여왕(출처 : 위키백과)


 여왕은 그 호수를 '이성의 거울'이라고 불렀으며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가장 훌륭한 거울이라고 생각했다... 카이는 멍이 든 것처럼 추위로 온몸이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카이는 뭘 만들려는 것처럼 날카로운 얼음 조각을 열심히 이리저리 맞추었다. 카이가 하고 있는 놀이는 차가운 이성이었다. 카이의 눈에는 자신이 만든 모양이 매우 훌륭하고 대단한 것으로 보였다. 카이는 얼음 조각들을 짜 맞추어 여러 가지 글자를 만들었지만, 아무리 애써도 만들어지지 않는 글자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원'이라는 글자였다. 눈의 여왕은 카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 글자를 맞춘다면 넌 네 자신의 주인이 되지."(p295) <눈의 여왕> 中


 차가운 이성으로 맞추지 못한 '영원'은 어린아이들과 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사랑할 때 비로소 맞출 수 있다는 것을 마지막으로 <눈의 여왕>은 마무리 된다. 작품 속에 담긴 기독교적인 성격은 다른 안데르센의 창작 작품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등에서도 발견된다.


 카이와 게르다는 의자에 앉아서 서로 손을 꼭 잡았다. 눈의 여왕이 살던 성에서 경험했던 추위와 황량함이 악몽처럼 기억에서 사라졌다. 할머니가 햇볕을 쬐며 앉아서 성경 구절을 큰 소리로 읽었다. "너희가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p299)  <눈의 여왕> 中


 왕비의 창백한 두 뺨이 장밋빛으로 물들더니 두 눈이 커다랗고 또렷해졌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는 그 책갈피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에서 흘린 그리스도의 피에서 피어난 장미였다. "이제 알겠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보는 이는 절대로 죽지 않을 거야!" 왕비가 부르짖었다.(p428)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 中


 <안데르센 동화전집>에는 이처럼 다른 유래를 가진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어떤 전래동화는 전통적인 가치관이 담겨 있는 반면, 창작 동화에는 안데르센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영원', '사랑' 등이 이야기 속에 녹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서로 다른 유래를 가진 이야기들이 묶여서 어른들에게는 삶의 의미를, 아이들에게는 즐거움과 흥미를 주기에 <안데르센 동화전집>이 모든 세대에 널리 읽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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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5-23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3 2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8-05-23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안데르센 동화집 읽은지가 오래되어서 다시 읽으면 새로울 것 같아요.
전에 읽었던 것도 잘 기억나지 않는 내용이 많고, 예전에 읽었던 것과 다른 내용도 있는 것 같아서요.
겨울호랑이님, 저녁 맛있게 드시고,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5-23 20:11   좋아요 2 | URL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과 어른이 되어서 읽는 동화책은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 친구 같던 책을 지금와서 살펴보니, 현인 같다는 느낌을 많이 받네요. 서니데이님도 하루 마무리 잘 하시고 행복한 밤 되세요^^:)

북다이제스터 2018-05-23 20: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전 좀 생각이 다른데요.^^ 아이들을 획일적 일관된 방향으로 길들이는 <안데르센 동화집>이 아이들에게 금서가 될 날을 꿈꿔봅니다. ㅋㅋ

겨울호랑이 2018-05-23 21:11   좋아요 2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전래 동화 등이 어린이들에게 기존 사회의 가치관을 강요하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는 것이 사실이라 여겨집니다. 동시에, 세대 간 유대감 형성 또는 문화의 전승 측면에서 본다면 이는 긍정적인 역할이라 여겨집니다.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을 모두 갖추고 있는 것이 전래 동화라 생각됩니다. 더 나아가 이와 관련된 문제는 전래 동화 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교육‘의 관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해야하지 않나 판단됩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5-23 21:17   좋아요 1 | URL
아, 미처 생각해 보지 못 했습니다. 세대 간 유대감 형성과 문화의 계승이 중요한 일인지 미처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것이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생각거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5-23 21:32   좋아요 0 | URL
예전보다 동화책도 많이 나오고, 유튜브 등 영상매체도 많아서인지 아이들(연의 포함)이 예전만큼 전래동화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안데르센 동화집>의 위상 역시 자연스럽게 줄어들다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지는 어느 순간에는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도 하게 되네요. 저 역시 북다이제스터님 말씀 덕분에 동화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AgalmA 2018-05-23 21:5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항상 주인공들은 하지 말라는 걸 해서 일을 키우고 고생을 사서 하죠. 하긴 인간도 이 버릇 못 버려서....
그리하야 신이 아담과 이브에게 선악과 먹지 말라 운운, 십계명을 인간에게 조건으로 내거는 거, (이건 좀 다른 경우지만)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쳐라 등등 그것들은 이야기의 은유 구조지 사실이라고 믿지 않게 된단 말이죠-ㅅ-!

겨울호랑이 2018-05-23 21:51   좋아요 2 | URL
그러게요... 멀리 갈 것 없이, 왜 저는 부모님께서 공부하란 말을 듣지 않아서 고생을 사서 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이건 은유가 아니라 팩트인 듯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5-23 22:07   좋아요 2 | URL
^^:) AgalmA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으니 긍정하게 되네요. 물론, 전부 다는 아닙니다만. ㅋ 저 역시 많이 부족합니다만, <성경>안의 의미를 해석하고 받아들일 때, 당시 문화적 배경에 대한 이해 없이 맹목적으로 받아들였을 때의 위험하다는 것은 알고 있기 때문에, 신에 대한 여러 입장을 경청하게 되네요.

2018-05-23 2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5-23 22:32   좋아요 1 | URL
너무 까불대다 혼날 거 같아서🙏😅🙏

2018-05-24 23: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4 23: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16: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1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1: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6 22: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5-28 15:3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