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터베리 이야기 The Canterbury Tales>는 영국의 제프리 초서(Geoffery Chaucer, 1343 ? ~ 1400)의 작품으로 켄터베리를 향한 순례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서로를 잘 알지 못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순례를 가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번 페이퍼는 여기에서부터 출발해 보자.

 

 <켄터베리 이야기>의 프롤로그에 나와 있듯이, 이 작품은 원래 120개의 이야기로 구성될 예정이었다. 토머스 베게트(Thomas Becket, 1118 ~ 1170)의 사당을 향해 가는 한 무리의 순례자들이 여행의 지겨움을 해소하기 위하여 각자 하나씩 이야기를 하게 되어 있었다. 초서는 이 120개 이야기 중에서 스물한 개를 완성했고 세 개는 미완 혹은 중단된 상태로 남겨 놓았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성지(聖地)를 향한 공통된 목적을 지닌 한 무리의 여행자들이었다. '하나된 신앙' 이 강조된 중세의 질서 안에서 이들은 집단으로 움직여야 했으며, 이는 종교행사인 순례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봉건 사회는 아주 촘촘한 알갱이들로 형성된 구조였다. 이 사회는 너무 빽빽한 덩어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래서 개인들은 당시의 '프라이버시'라 할 수 있는 행위로, 비좁은 공간의 과도한 집단생활에서 벗어나 자신을 고립시키고 주위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두르며 꼭 닫힌 정원에 자기를 가두려고 했다... 누군가가 외따로 떨어져 있다면 설령 나쁜 짓을 하려고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도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나쁜 짓을 저지를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혼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적의 공격에 취약할 수 밖에 없었다. 일반적인 견해에 따르면 홀로 떠돌아다니는 것은 광기의 여러 증상 가운데 하나였다.(p717) <사생활의 역사 2> 中


 낯선 곳으로의 떠남을 의미하는 순례는 중세인들에게는 일종의 '세례(洗禮)'와 같은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순례는 일상을 떠나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는 의미와 함께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의미를 지녔기에, 중세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행사였다. 

 

 이성은 그들에게 낯선 곳, 다시 말해 고립을 벗어나 질서 속으로 돌아가라고 명령한다. 이러한 문명으로의 복귀는 그들에게는 사생활로, 궁정으로, 다시 말해 집단생활로 돌아가는 것을 의미했다. 그들은 거기로 돌아가지만 고난을 겪은 뒤에야 비로소 정화되고 쇄신된다. 사실 자의든 타의든 위험과 고립 같은 힘든 시련은 강한 자들과 선택받은 자들에게는 지고의 선을 행해 나아갈 기회였던 것처럼 보인다.(p718) <사생활의 역사 2> 中


 공통의 목적을 가졌지만, 서로 다른 신분을 가진 이들은 각자 자신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작품 안에서 어느 누군가가 육욕(肉慾)의 죄에 대하여 이야기한다면, 다른 누군가는 다른 이야기 속에서 교회 전통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성(聖)과 속(俗).<켄터베리 이야기>의 세계관을 요약한다면 위와 같이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들, 음란한 색욕(色慾)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십시오. 그것은 정신을 약하게 만들 뿐 아니라 육체까지도 파멸에 이르게 합니다. 음탕한 욕망은 불행을 초래할 뿐입니다. 음란한 행위는 차치하고, 그런 죄를 범하겠다는 의도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거나 만신창이가 됩니까! (p162) <켄터베리 이야기> - 변호사의 이야기 - 中


 내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야곱과 마찬가지로 아브라함도 위대한 성인(聖人)이에요. 그런데 많은 다른 성인들처럼 두 성인도 두 명 이상의 아내를 데리고 살았어요... 동정이나 처녀를 지켜야 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하느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지키는 것이에요... 내 남편이 죽으면, 내가 다시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은 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두 남자와 함께 산다고 해도 역시 죄가 아니랍니다. (p17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켄터베리 이야기>는 당대 지배층에 대해 비판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풍자소설이기도 하다.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1872~1945)가 <중세의 가을 Herfsttij der Middeleeuwen> 속에서 중세의 두 기둥이라고 표현한 기사(귀족), 학자들 역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중세 기사도 이상의 표본적 인물로 칭송되는 부시코 Boucicaut의 전기에서 우리는 이런 사실을 알게 된다. 하느님의 의지로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것이 주어졌다. 그것은 신성한 법과 인간의 법을 지탱하는 두 기둥이다. 그것이 없다면 이 세상은 일대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그 두 기둥은 기사단과 학자들이다.(p139) <중세의 가을> 中


 귀족이란 말은 자비를 베푼 선조들의 명성일 뿐, 자신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거예요. 귀족적인 성품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에요. 다시 말해 우리의 진정한 귀족적 성품은 하느님의 은총을 통해 오는 것이지,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사회적 지위가 주는 것이 아니에요. (p203) <켄터베리 이야기> - 배스의 여인의 이야기 - 中 


 연금술을 배우면 이런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우리가 쓰는 용어는 아주 이상한 전문적인 말들입니다. 그래서 난해한 학문을 직접 실행에 옮기는 작업장에 들어가면, 우리는 아주 현명하고 똑똑한 사람들처럼 보입니다... 우리는 모든 재주를 부려보았지만 한 번도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보지 못했습니다. 아무것도 소용이 없었습니다.(p518) <켄터베리 이야기>  - 성당 참사회원 종자의 이야기 - 中


 성직자 역시 <켄터베리 이야기> 속에서 풍자 대상으로 등장한다. 다만, 하위징아는 거대한 교회였던 중세 유럽에서 성직자들은 일반 대중과 긴밀한 연관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성직자에 대한 조롱은 일종의 친근감의 표현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같은 지배계급이었지만, 친근감을 가졌다는 면에서 중세 성직자는 기사, 학자와는 다른 위치에 있었던 듯하다. (이 부분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시기 삼부회( Etas Generaux)를 구성했던 제1신분, 2신분이었던 성직자, 귀족들에 대한 평민들의 시각과 함께 살펴보면 좋을 듯하니, 잠시 접어두고 간다.)


 제 목숨을 걸고 말하는데, 아마 여러분들은 방귀 소리와 악취가 동일한 속도로 열두 개의 바퀴살로 골고루 퍼져나가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 계신 고해 수사님은 매우 고귀한 분이시므로 이 지위에 걸맞게 방귀 소리와 냄새를 가장 먼저 맛보게 되실 것입니다... 오늘만 해도 교단에서 훌륭한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생각으로는 방귀 냄새를 처음으로 맡게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p236) <켄터베리 이야기> - 소환리의 이야기 - 中 


 그 시대의 일상적인 종교 생활은 불쑥 정반대의 입장으로 전환되는 극단적인 변화를 보여 준다. 어떤 때는 사제와 수사에게 조롱과 증오심을 쏟아 부었으나, 그것은 동전의 표리(表裏)처럼 마음속 깊이 품은 애정과 존경심의 뒷면일 뿐이었다. (p338) <중세의 가을> 中


 그렇지만, 목적지인 켄터베리에 다가오면서 이야기는 점점 종교적인 색채를 짙게 띄게 되고, 결국 죄의 용서와 참회, 구원 등 교회 교리를 주제로 한 본당신부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가난한 마음으로 살면 이처럼 복된 나라를 얻을 수 있으며, 겸손하게 살면 하느님의 영광을 얻을 것이고, 굶주리고 목마르게 산 사람은 천국의 완전한 기쁨을 누릴 것이며, 열심히 일한 사람은 평안을 얻을 것이고, 죄를 뉘우치고 죽은 사람은 새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켄터베리 이야기> - 본당신부의 이야기 - 中 


 여러 세속적인 삶의 이야기와 지배 계급에 대한 비판으로 이야기가 진행되다가 결국 종교적인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켄터베리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순절 직전의 사육제를 떠올리게 된다. 성스러운 성지 순례 이전 여행의 어려움을 이야기를 통해 풀어가는 그들의 모습 속에서 사순 기간 금육(禁肉), 금식(禁食)의 고통을 덜기 위해 행하는 사육제(카니발)의 의미를 발견하게 된다.


[그림] 사육제과 사순절의 싸움( 출처 : http://www.pictorem.com/24201/Fight%20Between%20Carnival%20and%20Lent.html)


 카니발 Carnival  : 그리스도교 국가에서 사순절 직전 3~7일에 걸쳐 행하는 제전(祭典). 사육제(謝肉祭)라고 번역하는데, 라틴어의 카르네 발레(carne vale :  고기여 그만) 또는 카르넴 레바레(carnem levare : 고기를 먹지 않는다)가 어원이다. 그리스도교 초기 로마 사람을 회유하기 위하여 그들의 농신제(農神祭)를 인정한 것으로, 이교적(異敎的)인 제전이었다. 이것이 계승되어 매년 부활절 40일 전에 시작하는 사순절 이전 즐겁게 노는 행사가 되었다. (출처 : 두산동아백과사전)


 <켄터베리 이야기>는 이처럼 14세기 중세 영국 사회의 모습이 생생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작품을 통해 우리는 중세인들의 모습을 느끼게 된다. 비록 중세 음악은 다소 낯설게 들리지만, 중세인들의 보편적인 감정은 우리와 다르지 않음을 <켄터베리 이야기>는 우리에게 알려준다. 클리프턴 패디먼(Clifton Fadiman, 1904 ~ 1999)의 <평생독서계획 The New Lifetime Reading Plan>에서 소개한 감상포인트를 마지막으로 <켄터베리 이야기>에 대한 페이퍼를 마친다. 



 맨 앞에 나오는 프롤로그는 반드시 읽어야 한다. 영문학 사상 가장 훌륭한 초상화의 갤러리이다. 이 작품에 들어 있는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것은, 기사, 방앗간 주인, 수녀원장, 수녀시승, 면죄승, 바스의 여장부, 서기, 상인, 수습기사, 수도참사 회원의 종자의 이야기 등이다. 또한 여러 편의 프롤로그, 에필로그, 각 이야기들을 연결하는 대화들을 읽을 것을 권한다.(p121) <평생 독서 계획> 中

 

 이야기의 동시대성은 각자의 언어적 개성을 드러내는 각양각색의 인물들을 '여행'이라는 서술 맥락으로 수용한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잘 들어났다... <켄터베리 이야기>는 산문 형식의 두 글인 멜리베오의 이야기와 파로코의 이야기를 제외하면 모두 2행 시절로 되어 있다... <켄터베리 이야기>의 문학적 꾸밈은 이야기꾼의 두 가지 기능으로 지탱된다. 초서는 저자의 입장에서 작품을 소개하나 마지막에는 교육적-그리스도교적으로 충분한 목적성을 보여 주지 못하는 그의 다른 작품들처럼 이를 전부 부정했다... 초서는 <켄터베리 이야기>에서 보카치오처럼 폭넓은 이야기들을 통해 삶의 다양함과 활력, 복합적 특징을 부여했다.여기에는 매우 이질적인 주제와 양식, 구조가 공존했다.(p771) < 중세3 : 성, 상인, 시인의 시대> 中


나가기 전에 <켄터베리 이야기>를 선물해 주신 이웃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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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9: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주 모순적인 사육제와 사순제가 붙어 있는 건 인간의 모습과 비슷하지 말입니다(왜 군대식 말투가...). <켄터베리 이야기>가 고상한 척하는 지배층의 아주 세속적인 적나라함을 보여주듯이 말입니다. 여기 우리는 모두 방귀 안 뀌는 듯이 좋은 말, 문장을 구사하는 것에 기를 쓰고 있지만 인간은 아무리 미인도! 누구나 하루에 7번 이상은 방귀를 뀐다는 과학적 보고가...(곰곰이 내 하루를 뒤돌아보며)....인간의 뗄 수 없는 양면성을 말한다는 게 갑자기 방귀에 꽂혀서.... 댓글에서 방귀 냄새 풀풀))) 죄송합니다...(이 댓글은 망했....);;

겨울호랑이 2018-06-16 19:37   좋아요 2 | URL
AgalmA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안 그런 척‘ 하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모습이 아닌가 싶네요. 반대로 ‘그런 척‘하면서 살기도 하구요... 적당히 알면서 속고 속이면서 살아가는게 우리 삶인듯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을 규정한 형이상학적 가치는 사람을 질식시키네요... 방귀처럼 말입니다 ㅋㅋ

2018-06-16 20: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2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6-16 22: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의 독서 스펙트럼은 어디까지인지... 부럽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6 23:0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저는 북다이제스터님의 깊이 있는 독서가 더 부럽습니다.^^:)

2018-06-17 10: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7 19: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8 09: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6-18 1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페이퍼 내용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어 살짝 다녀가려 했는데,
프로필 사진이 바뀌셨군요.
연의 어린이 완전 멋진걸요.
보는것만으로도 행복해집니다.
여러모로 보시하고 게십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8 12:22   좋아요 0 | URL
중세와 관련된 내용을 얼기설기 엮은 페이퍼라 좀 길었습니다. 연의를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양철나무꾼님, 행복한 하루 되세요^^:)
 

 대한민국 제7회 지방 선거가 며칠 전 끝났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여당의 압승과 야권의 궤멸'로 끝난 이번 선거를 어느 한 유권자의 입장에서 선거 성격과 선택 배경 등을 정리해 보려한다.


 1. 지방선거 : 양자 운동과 중력 사이 그 어딘가

 

 우리가 볼 수 있는 범위 중 가장 큰 10의 15승 미터가 중력과 중력장의 지배를 받는 것이라면, 가장 작은 단위에서 볼 수 있는(10의 -16승 미터) 몇 가지 장면들은 양자 운동의 예가 된다. 이들은 뉴턴의 법칙이 아닌 새로운 법칙을 따른다. 중력 효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원자 영역은 양자 운동의 영역이다... 대부분의 일상 경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달력도 아니며, 어느 정도 우연하게 중력계에 존재하는 궤도들도 아니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물질의 안정성이다.(p27) <10의 제곱수> 中


 지방선거는 우리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지방자치단체 구성원을 선출한다는 의미와 함께 중앙정부에 대한 민심을 전달한다는 두 가지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로 선거 때마다 정권심판론과 인물론 어느 쪽이 더 우세한가에 따라 선거의 성격이 달라지게 되는데, 이 두 상이한 성격은 내용적으로 부딪히는 부분이 있다. 마치 물리학에서 양자역학이 좌우하는 미시의 세계와 중력의 지배를 받는 거시의 세계가 현실적으로 공존하는 자연세계와 정치세계에서 우리는 공통점과 차이점 모두를 발견하게 된다. 현재까지 양자역학과 상대성 이론을 통합하는 이론이 나오지 않은 것처럼 지방선거를 종합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은 물리학과 정치학의 공통점이라 여겨진다. 다만, 물리학의 세계와 달리 이들 법칙이 미치는 영향력의 범위가 달라지는 것은 차이점인 듯하다.


2. 문재인 정부가 처한 상황 :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그림] 제1차 삼두체제 당시의 세력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Caesar%27s_Civil_War)


 지난 2016년 촛불혁명을 바탕으로 다음해에 집권한 문재인 정부는 여러 가지 면에서 어려움에 놓여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정치적으로는 여소야대, 경제적으로는 재벌개혁과 소득불균형, 외교적으로는 남북문제 등으로 문재인 정부는 많은 개혁과제를 안고 있는 실정이다.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에서 주도권을 잡았지만, 실질적으로는 폼페이우스(Gnaeus Pompeius Magnus, BC 106 ~BC 48)에게 역(逆)포위되어 있었던 카이사르(Gaius Julius Caesar, BC 100 ~ BC 44)의 상황을 연상시키는 현재 한국의 현실은 짙은 어둠 안에 놓여있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등으로 과거보다 상황은 조금 나아보이지만 여전히 많은 해결 과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여러 부분에서 야당(특히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인해 개혁이 무산되는 것을 유권자들을 지난 1년동안 지켜봐왔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유권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갈리아와 로마의 국경 지대인 '루비콘 강' 앞에 도착한 카이사르는 망설인다. 이대로 강을 건너면 반란의 주역이 된다... 기원전 49년 1월 12일 그는 결국 루비콘을 건넌다(p17)... 폼페이우스는 일단 이탈리아를 벗어나 그의 세력이 힘을 발휘하는 지중해와 히스파니아, 아프리카 등지에서 전투를 벌이고자 했다. 추격 도중 잠시 로마에 들어온 카이사르는 기원전 48년도 집정관에 취임하면서 로마의 내정을 돌본 후 급히 다시 폼페이우스를 뒤쫓는다.(p19) <카이사르의 내전기 Commentarili De Bello Civili> 中


3. 유권자의 선택 : 차선의 이론

 

 최근 유권자들은 여러 개혁 과제들이 독립된 과제가 아니라, 서로 얽혀 있는 문제임을 확인해왔다. 고차방정식의 해를 구하는 구하는 것처럼 어떤 선택지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가에 대해서는 '차선의 이론'을 통해 설명이 가능하다. 차선의 이론에 따르면 충족되는 효율성의 조건의 수와 사회 후생의 극대화와 반드시 관련있는 것만은 아니다. 차선의 이론은 우리에게 현재의 제약조건은 순차적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동시에 개선되어야함을 알려준다.


 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위해서는 n개의 조건이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고 하자. 그런데 어떤 이유 때문에 이 중 하나가 충족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할 때, 나머지 (n-1)개의 조건만은 모두 만족되는 것이 차선의 결과를 가져온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립시(R. Lipsey)와 랭카스터(K. Lancaster)는 이와 같은 직관이 틀린 것일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다. 그들이 증명하는 바에 따르면 이미 하나 이상의 효율성 조건이 위배되어 있을 때는 충족되는 효율성 조건의 수가 늘어난다 해서 사회 후생이 더 커지리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p572) <미시경제학> 中

[그림1] 차선의 이론(by 겨울호랑이)


[그림1]에서 원점에 대해 오목한 생산가능곡선과 몇 개의 사회무차별곡선들이 그려져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가장 바람직한 배분은 E점이 의미하는 쌀과 옷의 조합이 생산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선분FG로 대표되는 이 선분의 바깥쪽에 있는 상품의 조합은 선택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자. 이 제약하에서 주의해야 할 것은 이 점이 반드시 생산의 효율성을 의미하는 생산가능곡선 위에 위치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이다. 그림을 보면 생산가능곡선 위의 H점에서 보다 그 곡선 위에 있지 않은 I점에서의 사회후생이 더 크다는 것이 명백하게 나타나 있다.(p573) <미시경제학> 中


4. 유권자의 제약 배경 : 불가능성정리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49060.html


  이에 대한 야당인 자유한국당의 대응 논리는 '나라를 통째로 넘기겠습니까' 였다. 문재인 독재를 방치할 경우 개별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는다는 논리로 정리될 수 있을 듯한데, 이들의 논리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은 듯 하다. 결국 이슈가 독재와 사회개혁으로 압축된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선택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는 '불가능성 정리'라는 제약조건으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사회적 효율성과 독재성은 배타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 불가능성 정리의 핵심이다.


 애로우(K.Arrow)의 불가능성정리(不可能性定理, impossibility theorem)는 바람직한 성격을 두루 갖춘 사회 후생함수가 존재하지 않음을 입증함으로써 우리에게 큰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불가능성정리는 사회적 선호체계가 가져야 할 바람직한 성격으로 다음의 네 가지 공리(axiom)를 제시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하고 있다... 애로우는 이들 공리 중 1), 2), 4)를 모두 만족시키는 사회적 선호체계는 반드시 공리 3)을 위배하는 것을 증명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가능성정리의 핵심이다. (그리고, 문재인 독재를 공격하는 이론적 논거가 될 것이다)


1) 완비성(完備性, completeness)과 이행성(移行性, transitivity) : 모든 사회적 상태를 비교, 평가할 수 있어야 하며, a / b / c 라는 세 사회적 상태에 대해 a를 b보다 더 선호하고 b를 c보다 더 선호한다면 a를 c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2) 파레토원칙(Pareto principle) : 이 사회의 모든 사람이 a를 b보다 더 선호한다면 사회도 a를 b보다 더 선호해야 한다.


3) 비독재성(non-dictatorship) : 이 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의 선호가 전체 사회의 선호를 좌우해서는 안 된다.


4) 제3의 선택 가능성으로부터의 독립(independence of irrelevant alternatives) : a와 b의 두 사회적 상태를 비교한다고 할 때, 이들과 직접 관련이 없는 제3의 선택 가능성 c의 존재는 이들 사이의 선호 순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말아야 한다.(p571) <미시경제학> 中


 결국,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에 놓여진 과제 상황은 사회후생의 극대화를 위해 어느 조건을 포기해야 한다면 어떤 조건을 포기할 것인가. 그리고, 개혁은 단숨에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이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는 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마치 ''개인적으로 부패한 독립군'과 '개인적으로 훌륭한 일본제국군인'이 선거에 나왔을 때,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물음을 받았을 때 개인의 품성보다 그가 속한 조직을 보고 선택한 것과 같은 결과가 이번 선거에 나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5. 지방 선거 이후 과제와 정리


 참패를 한 야당도 마찬가지지만, 개인적으로는 여권인 여당에게 주는 국민의 메세지가 더 무겁다고 생각한다.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임을 <확장된 표현형 The Extended Phenotype>의 표현을 빌려 옮겨본다. 유전자가 적응의 수혜자라는 자연 법칙을 깨닫지 못했을 때, 적응하지 못하는 개체가 멸종하는 바와 같이 정당이 유권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한다면 그 끝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자명할 것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이것이 지방선거가 남긴 과제라 분석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어떤 행동 유형이 부적응이라는 말은 오직 이를 수행하는 동물 개체에서만 부적응이라는 뜻이다. 행동을 수행하는 개체는 적응인 행동으로 이득을 얻는 존재자가 아니다. 적응은 개체를 만든 유전하는 복제자에게 이익을 주며, 경우에 따라서 동물 개체에게 이익을 줄 뿐이다.(p454) <확장된 표현형> 中


 선택은 다른 유전자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하는 유전자를 선호하기 때문에, 그 결과 유전자는 다른 유전자들이 존재하는 조건에서 성공한다....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신조에 따라 유전자(유전하는 복제자)가 내는 표현형 효과는 세계 전체에 미친다고 보는 것이 최선이며, 유전자가 자리한 개체나 다른 어떤 운반자에게 효과를 미치는 일은 그저 부수적 사건에 불과하다.(p227) <확장된 표현형> 中


[사진] 사진으로 요약한 제7회 지방선거 : 정의, 평화 그리고 심판(by 겨울호랑이)


PS. 선거에서 '차선의 이론'의 결론을 피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차악(次惡)'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매번 놓이는 것은 아이러니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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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8-06-15 11: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고급스러운 글을 읽는 기분입니다. ㅎㅎ

겨울호랑이 2018-06-15 11:26   좋아요 0 | URL
^^:) 조금 아는 것을 이어붙여 길게 늘어졌습니다 ㅋ 감사합니다

2018-06-15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2: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5 13: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6 00: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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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6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6-15 14:3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묵직하기가 하늘입니다 ㅎ

겨울호랑이 2018-06-15 14:40   좋아요 3 | URL
에고... 여러 이야기를 담다보니 글이 무거워졌네요 ^^:)

나와같다면 2018-06-15 17: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무서울 정도로 힘을 몰아준 유권자의 뜻이 무엇인지를 여권이 깨닫지 못한다면 결코 생존할 수 없을 것..

그들이 이 무게를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겨울호랑이 2018-06-15 17:47   좋아요 3 | URL
정말 그래야겠지요... 물론 그들이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해도 유권자들은 또다른 대안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다소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민주당 자신을 위해 깨달아야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cyrus 2018-06-15 18: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 언론들은 ‘야권의 궤멸’을 ‘보수(자유한국당, 대한애국당)의 궤멸’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겨울호랑이님도 그렇게 보시는 것 같고요. 선거 전부터 지금까지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대결 구도 프레임으로 정치 지형을 분석하는 방식에 불편합니다. 이러한 분석 관점은 나이브합니다.

심각한 건 언론은 정의당, 녹색당, 민주평화당, 노동당 같은 진보 정당들의 정책 어젠다에 아무도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어요. 선거 결과 이후 전체적으로 보면 진보 정당들이 약진한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더불어민주당 중심의 정책 어젠다나 정치 이슈가 장기적으로 알려진다면, 진보 정당들도 불리합니다. 그럴수록 유권자의 선택 폭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어요. 겨울호랑이님이 유권자의 선택을 분석한 관점(문재인 정부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전략적 선택)은 원론적으로 맞을지 모르나 현실을 반영한다고 볼 수 없어요.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모두 싫어서 진보 정당에 힘을 실어주고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요.

원내정당인 정의당뿐만 아니라 원외정당에 속한 진보 정당들(녹색당, 노동당)도 정책 어젠다를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주류 언론은 진보 정당들의 행보에 주목하지 않았고, 진보 정당들의 목소리를 국민에게 들려줄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어요. 이러니까 국민들은 진보 정당들은 정책 어젠다를 못 내놓는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정의당은 ‘더불어민주당 2중대’라는 소리까지 듣습니다. ‘더불어민주당 대 자유한국당’ 대결 구도 프레임이 계속 이어진다면 언론과 국민이 쏠리는 관심 정당은 ‘둘 중 하나’일 겁니다. 당장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국민이 다양한 정당의 정책 어젠다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6-15 20:51   좋아요 4 | URL
먼저 cyrus님께서 좋은 의견 말씀해주셔 감사합니다. 그리고 cyrus님께서 말씀하신 다양한 정책 어젠다로 가야한다는 방향성에 대해서 저또한 찬성하는 입장입니다. 다만, 그전에 선행과제들이 분명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선거제도 개혁 같은 부분이 있겠지요. 현재의 소선거구제 하에서 진보 정당을 비롯한 중소 정당들이 의회 진출할 길은 많이 차단되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이전에 중선거구제 도입 등의 제도 개혁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지역 유지들과 정치권이 밀착 양상을 보이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례 대표제도를 강화할 필요에 대해서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여겨지네요. 이러한 정치 개혁이 이루어진 후에야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 이전에는 거대 양당이외 세력이 자리잡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주어진 상황이 단기적으로 바뀌기 전에 취할 수 있는 행동은 전략적일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번 투표에서 실제 투표 결과가 그렇게 나온 것으로 여겨집니다. cyrus님 말씀처럼 유권자들이 정당 정책을 확인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요. 그렇지만, 확인하는 유권자들도 분명 있습니다. 그리고, 그분들은 공약에 대한 평가를 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압승으로 끝난 결과는 제도적 제약하에서 행해진 유권자들의 전략적 투표행태로 생각됩니다. 물론, 제 개인적인 생각이고 결과에 대한 해석일 뿐 우리가 가야할 방향성과는 다르다 여겨집니다. 이후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개헌과 제도 개혁을 통한 사회변혁이라 여겨집니다. 그리고, 그런 변화가 이번 지방선거부터 시작되기를 바라봅니다.

Tempus_fugit 2018-06-15 22: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차선의 이론과 유권자의 선택을 고찰하신 점은 정말 흥미롭습니다. 마침 스티글리츠의 책을 읽고 있는데 스티글리츠는 차선의 이론이 최선의 상황이 달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모든 정부 개입을 부인하는 것처럼 잘못 이해하는 것을 강한 어조로 비판하고 있었거든요^^

결국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는 [개인의 선호를 사회적 선호로 집계할 수 있는 완벽한 사회적 의사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즉, 모든 사회적 대안을 일관되게 평가할 수 있는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회후생 함수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어떤 개인도 배제시키지 않고(보편성) 모든 사회적 대안에 대해(완비성) 항상 일관된 답을 줄 수 있는(이행성) 민주적인(비독재성) 사회적 의사결정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능성 정리의 조건 중 지나치게 제약적이거나 덜 중요한 조건들을 하나씩 완화시키면 바람직한 사회적 의사결정체계가 존재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아마티아 센(Amartya Sen)은 제한된 수의 선택 가능성 사이에 서열을 매길 수 있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적 선호 체계를 찾는 일은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접근(완비성 완화)을 하고 있고, 베르그송(Bergson)은 사회적 후생 함수에 적극적으로 적절한 가치판단을 도입하여 개인 간의 효용의 비교를 어느 정도 허용한다(무관한 선택 대안으로부터의 독립성 완화)는 접근법을 제시한 바 있습니다. 개인의 선호를 단봉 선호로 제한(보편성 완화)하거나 서수적 효용 함수가 아닌 기수적 효용을 사용하는 사회후생 함수(베르그송-새뮤엘슨) 등의 다양한 접근법 또한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투표율이 높아졌다고는 하지만 60.2%는 너무 낮다고 생각합니다. 투표를 한 사람과 하지 않은 사람을 주류 경제학(합리적 무지 가설)이 아닌 행동경제학으로 고찰해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겨울호랑이 2018-06-15 23:18   좋아요 2 | URL
kokoro님, 감사합니다. 경제학의 많은 부분이 정치학을 다루고 있어, 페이퍼에서 여러 생각을 해봤습니다.

kokoro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애로우의 불가능성 정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기본 전제인 ‘공리‘의 한계를 찾아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알려주신 아마티아 센, 베르그송, 새뮤엘슨 등의 석학들이 제시한 방식 역시 애로우의 강공리 대신 약공리를 대안으로 삼는 것인 것 같네요. 다만, 이러한 대안에도 한계가 존재한다는 생각을 짧게 해봅니다.

예를 들어, 행동경제학과 기수적 효용 등에서 나타날 수 있는 주관성으로부터 사회 전체 복리를 증진시키는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대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 또한 해결하기에 쉽지 않은 과제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게 됩니다...

투표율 60%가 낮은 것 또한 사실입니다. 과거 산업화시대 도입된 제도가 21세기 변화된 생활 양식을 충분히 뒷받침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다수의 직장인이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현실 속에서 투표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유권자에 대한 다른 배려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공인인증으로 인터넷, 모바일 뱅킹을 하면서 모바일 투표는 왜 도입이 되지 않는가에 대한 생각도 언뜻 해보게 됩니다. 보완할 점이 있겠지만, 투표율을 높이는 여러 방안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4차 산업 시대에 맞는 생활양식의 변화를 제도가 못 따라가는 것은 아닌가 잠시 생각해봤습니다... kokoro님 덕분에 여러 가지 많이 배우고 생각해 봤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편한 밤 되세요!^^:)

Tempus_fugit 2018-06-15 23:31   좋아요 2 | URL
말씀 감사합니다. 주류 경제학이 말하는 ‘합리적 인간‘이라는 기본 가정과 전제에 회의감이 들곤 합니다^^; 겨울호랑이님께서 올리시는 글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것 같습니다. 항상 감사드립니다. 편안한 밤 보내세요! :)

겨울호랑이 2018-06-15 23:37   좋아요 2 | URL
저 역시 경제학의 기본 전제인 ‘합리적 인간‘이라는 가정이 현실에 맞지 않는 전제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경제학의 이론을 정립하기 위해서 ‘합리적 인간‘과 ‘다른 조건이 변하지 않는다면‘이라는 전제는 붙일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생각해보면, 계몽시대와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이성‘과 ‘다수‘라는 핵심 용어 대신 ‘감정‘과 ‘개인‘을 바라볼 수 있는 ‘차가운 머리 뜨거운 가슴‘의 21세기 경제학을 기대해 봅니다.^^:) kokoro님 감사합니다.
 
티벳 사자의 서
파드마삼바바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199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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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원제목은 <바르도 퇴돌 Bardo Thos-grol>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사후 세계의 중간 상태에서 듣는 것만으로 영원한 자유에 이르는 가르침>이라고 번역된다.(p10)... 생을 마치고 사후의 세계로 여행을 떠났을 때 그대 앞에는 많은 빛들이 나타날 것이다. 임종의 순간에는 최초의 투명한 빛이 그대를 맞이하러 나타나리라. 그대는 그 빛을 따라가야만 한다. 그 빛은 모든 것의 근원이며 진리의 몸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 中 


 <티벳 死者의 書>는 죽음을 맞이한 후 환생(還生) 이전까지 윤회(輪回)의 전체 모습을 그려내고 있는 티벳 전통 사상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사후 49일 동안 인간이 마주하게 될 여러 모습 - 빛의 인도, 평화의 신(神)들과 분노의 신들 - 을 확인하게 되지만, 보다 중요한 의미는 다른 곳에 있다. 그것은 이 모든 것들이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이 책의 뛰어난 점은, 우리가 사후에 보게 되는 그 모든 빛들과 신들의 세계가 사실은 우리 자신의 마음에서 투명된 환영에 불과한 것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들은 실체를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의식 세계가 펼쳐 보이는 환상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나아가 삶도 죽음도 우리의 환영이고, 모습도 색깔도 마음까지도 실체 없는 환영의 세계이다. 삶도 내 자신이 만드는 것이고, 세계도 내가 창조하는 것이다.(p12)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그렇다면, <티벳 사자의 서>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이 완성된 부처임을 스스로 깨달으라는 것이다. 비어있음(沖)과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은(無形) 본래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 것이 죽은 자들의 과제임을 깨우쳐 주는 구절 속에서 우리는 죽음의 공포를 가볍게 해주는 위로를 느끼게 된다. 


 그대 자신의 마음이 곧 참된 의식이며 완전한 선을 지닌 붓다임을 깨달으라.그것은 텅 빈 것이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빔이 아니라 아무런 걸림이 없고, 스스로 빛나며, 기쁨과 행복으로 가득한 텅 빔이다. 본래 텅 비어 있고 아무런 모습도 갖지 않은 그대 자신의 참된 의식이 곧 그대의 마음이다. 그것은 스스로 빛나고 더없는 행복으로 가득한 세계다.이 둘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다. 그 하나됨이 바로 완전한 깨달음의 상태다.(p250) <티벳 사자의 서> 中


 <티벳 사자의 서>의 깨달음이 죽은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이유는 그 때가 바로  '결정적 순간(the decisive moment)'이기 때문이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 1908 ~ 2004)이 '결정적 순간'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사진 한 장에 표현하는 바와 같이 죽음의 순간, 우리 인간은 자신의 모든 것을 펼쳐내야 한다. 


 불교와 힌두교에서는 죽음의 순간에 갖는 마지막 생각이 그 다음 환생의 성격을 결정짓는다고 믿는다. 인간은 죽음을 맞이할 때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통제할 수 있어야만 한다고 인도의 현자들은 가르친다.(p40) <티벳 사자의 서> 서문中


[사진] <국민당 최후의 날, 중국 1948> by Henri Cartier-Bresson (출처 : http://photovil.hani.co.kr/213534)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모든 것이 환상이고, 죽음의 순간에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면, 우리가 살았을 때 과연 착하게 살아야할 이유가 있을까? <티벳 사자의 서>에서는 이에 대해서도 답을 하고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그런 깨달음으로 대자유에 이를지라도, 생명을 가진 존재들의 수는 많고 악한 카르마는 힘이 있다. 그리고 무지는 너무 깊고 나쁜 습성이 오랫동안 뿌리내렸기 때문에 무지와 환영의 수레바퀴는 힘이 떨어지지도 않고 가속이 붙지도 않는다.(p317) <티벳 사자의 서> 中


 이처럼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을 맞이한 인간이 이전에 가보지 못한 길을 걸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긍정하면서도, 어떠한 경우에도 자신의 모습을 않는다면 고통의 순간에서 벗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죽음은 더 이상 우리에게 두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을 것이다. <티벳 사자의 서>는 이러한 내용으로 죽은 자에게도, 이를 읽어주는 이들에게도 죽음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면에서 <티벳 사자의 서>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서>이기도 할 것이다.



PS. 티벳의 전통 장례는 천장(天葬)으로 치뤄진다. 사람의 시신을 토막내어 독수리에게 던져주는 그들의 장례 문화는 외국인의 눈에는 낯설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날아오르는 독수리와 함께 하늘로 돌아가는(歸天) 모습을 담은 천장의 준비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다음의 구절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사진] 티벳 천장 (출처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67520)


 그대의 몸은 카르마의 성향만을 지닌 사념체이기 때문에 베이고 잘리고 토막나더라도 죽지 않는다. 그대의 몸은 실제로는 텅 비어 있으므로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죽을 수가 없다. 그대의 몸이 조각조각 난도질당해도 그대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 거듭되는 난도질은 그대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안겨 주리라.(p351) <티벳 사자의 서>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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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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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2 1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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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12 15: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의 내용과는 생뚱 맞을 지도
모르겠지만...

국민당 최후의 날, 이란 제목의 사진
이 압권이었습니다 ㅋ

겨울호랑이 2018-06-12 15:39   좋아요 0 | URL
^^:) 어쩐지 이 사진이 끌리더군요. 제목이 ‘최후의 날‘이어서 때문인지, 내일 지방선거 어느 당 때문일지는 잘 모르겠습니다.ㅋㅋ

sslmo 2018-06-12 16:3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을 가지고 있는데,
제가 워낙 감정이입을 잘 하는 편이라,
몇번 들춰보기만 했을뿐 제대로 읽지를 못했네요.

제가 이 책을 버거워한 이유는 다른 사진책에서 ‘천장‘하는 사진을 보고나서였습니다.
무섭거나 두렵다는 말만으로는 부족한 일종의 경이로움을 느꼈달까요.

암튼, 언젠가는 읽어야할 숙제로 남겨두고 있었는데,
님의 리뷰를 보니 반가운 생각이 들어서요.
좋은 리뷰 잘 봤습니다, 꾸벅~(__)

겨울호랑이 2018-06-12 16:4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천장‘의 다른 사진들을 보면서 문화적 충격을 느꼈습니다. 물론, 문화적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뭐라 말할 수는 없지만 양철나무꾼님께서 말씀하신 경이로움이 무엇이었는지 공감하게 됩니다... 즐겁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18-06-14 15: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15: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4 17: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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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14 20: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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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8-06-16 10: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20대에 너무 제 사념에 빠져서 이 책을 읽은 게 아쉬워서 다시 읽어야지 읽어여지 하다가 어언....-_-; <이집트 사자의 서>는 이 책과 달리 백과사전식이라 이게 뭐야-ㅁ-), 영적이지 않잖아! 흥미를 잃고;;....죽기 전에 제대로 중심 좀 잡아야 카르마에 안 잡힐텐데 말입죠;

겨울호랑이 2018-06-16 10:50   좋아요 1 | URL
저는 버스에서 할머니에게 자리 양보하기, 연의와 놀아주기 등으로 작은 선업을 쌓은 후 죽기 전 ‘모든 것이 다 뻥이야‘라고 중얼거리며 세상을 떠나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집트 사자의 서>도 지금 들여다 보고 있는데, 이집트 신화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정당사회학 - 근대 민주주의의 과두적 경향에 관한 연구 한길사 한국연구재단 학술명저번역총서 서양편 6
로베르트 미헬스 지음, 김학이 옮김 / 한길사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형태의 과두정을 분쇄하는 것에 이론적인 존립 근거를 두는 사회혁명 정당과 민주 정당들에게서, 그들이 공격하였던 그 경향이 나타나는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책의 핵심적인 과제는 바로 그 물음에 대하여 객관적이고 분석적인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다.(p55) <정당사회학> 中


[사진] 로베르트 미헬스(출처 : 뉴스앤조이)


  로베르트 미헬스(Robert Michels, 1876 ~ 1936)의 <정당사회학>은 민주주의(民主主義)를 추구하는 정당(政黨)에서 역설적으로 과두정(寡頭政)에 의한 운영이 일어나고 있는 원인을 분석하고 있다. 그렇다면, 미헬스가 생각하는 과두정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정당정치의 토대가 외면적으로 민주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에만 집중하다가는, 모든 정당이 귀족정, 더욱 정확하게 말하자면 과두정으로 변형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쉽다... 그러나 문제는 혁명을 지향하는 정당들조차 보수 정당 못지 않게 과두적 경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는 데 있다.(p54) <정당사회학> 中


1. 과두정의 배경 : 정당 조직의 필요성


 저자에 따르면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한 국가들에서 정당은 항상 전쟁 상태에 놓여 있게 된다. 표를 얻고 정권을 얻기 위해서는 중앙집권형 조직이 효율적이었기 때문에 근대 정당은 군대처럼 조직화 되었다.


  근대 정당은, 정당이란 단어의 정치적 의미에서 '전쟁 조직'이다. 정당이 준수해야 하는 전술학의 기본 법칙은 전투 태세이다... 중앙집권은 예나 지금이나 결정의 신속성을 보장한다. 대규모 조직은 그 자체로 둔중한 기구이다. 만일 대중 정당이 신속한 결정이 요청되는 일상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대중으로 하여금 제한적이나마 일정한 판단력을 갖추도록 조치해가면서 당을 운영한다면, 시간적 손실과 공간적 거리 때문에 순수한 형태의 민주주의는 불가능해질 것이다... 전쟁을 치르는 근대 정당에서는 엄격한 위계질서가 불가피하다.(p82) <정당사회학> 中


  조직은 과두화되는 경향을 보이기 때문에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당은 지도하는 소수와 이를 따르는 다수로 자연스럽게 나누어지게 된다. 결국 미헬스에 따르면  치열한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정당의 조직은 변화되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정당의 모습은 과두제(寡頭制, oligarchy)로 흘러간다는 것으로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의 밑바탕에는 '무지한 대중'이 놓여 있다.


 조직은 정치의 필수적인 원칙이다... 조직이란 곧 과두정에의 경향이며, 본질적 성향은 귀족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조직의 메커니즘은 견고한 구조를 창출함으로써 조직화된 대중을 심대하게 변화시킨다. 그리고 조직은 대중과 지도자의 관계를 역전시킨다. 조직은 정당과 노동조합을 지도하는 소수와 추종하는 다수로 이분(二分)시키는 것이다.(p68) <정당사회학> 中


 대중은 정당의 기본 문제를 정식화하거나, 정식화된 사항을 검토할 능력이 모자란다. 대중의 무능은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몇몇의 문제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사실 지도자 권력의 가장 견고한 기반은 바로 대중의 무능이다. 대중의 무능은 지도자의 권력에게 현실정치적인 정상성뿐만 아니라, 일정한 정도의 도덕적 정당성까지 부여한다.(p124) <정당사회학> 中


2. 조직화의 조건 : 무지한 대중 


 참정권을 보유한 국민들 중에서 공무에 진지한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의 수가 극히 소수라는 주장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적 이익과 공적 이익 사이의 내적 연관성을 그리 강렬하게 의식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국가라고 지칭되는 조직이 개인의 사적인 일과 안녕과 일상에 미치는 작용과 반작용을 명료하게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p88) <정당사회학> 中


 저자에 따르면 대중은 무지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공무(公務)에 많은 관심이 없다. 

 이들은 군중심리에 따라 움직이며 정치인의 말 한마디에 선동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들이 가진 권리를 소수의 지배자들에게 위임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다수는 자신을 대신하는 소수가 있다는 사실에 기뻐한다. 소수의 지도를 받고자 하는 대중의 욕구는 곧잘 영웅 숭배로 연결되고, 그 욕구는 조직화된 노동자 정당에서도 한계를 모른다. 그 보편적인 구습집착증(Misoneismus)은 그렇지 않아도 각종의 진지한 개혁 노력을 좌절시켜 왔는데, 그 현상은 줄어들기는 커녕 오히려 늘어나고 있다.(p92) <정당사회학> 中


 대표의 도덕적 권리는 '위임'으로부터 발전된다. 일단 대표자로 선출된 자는, 정관이 바뀌거나 아주 특별한 일이 생겨 대표 업무에 지장이 초래되지 않는 한 그 직책을 유지한다. 그리하여 원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하여 설치된 선출직이 종신직이 된다. 관습이 권리가 되는 것이다.(p84) <정당사회학> 中


3. 과두제의 정착


 반면, 지도자가 된 이들은 자신이 가진 권력을 지키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이 맡은 지위에 따라 자신의 가치를 자각하게 된 지도자들은 다수를 지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자본(資本)과 같은 속성을 가진 권력(權力)은 점차 확대되고 세습화 된다. 


 대중은 지도를 욕구하지만 지도자에 무관심한 것과 대조적으로, 지도자에게는 타고난 권력욕이 있다. 그리하여 조직의 기술적 논리 때문에 발생한 과두 민주주의는 권력욕이라는 지도자의 보편적인 인성에 의하여 더욱 강화된다. 조직, 관리, 전략의 필요에서 시작되었던 것이 심리에 의하여 완성되는 것이다.(p229) <정당사회학> 中


 일단 지도자로 올라선 사람은 결코 정치적 지위가 낮았던 과거로 되돌아갈 수가 없다. 이는 사회적 모세혈관의 법칙에 반(反)하는 것이다. 모든 권력 의식은 과대망상을 부여한다. 게다가 인간의 가슴에는 좋건 나쁘건 권력에의 욕망이 깃들어 있다. 이것은 심리학의 기초적 상식이다. 지도자가 자신의 가치를 인지하게 되고, 동시에 그가 대중 역시 지도자를 욕망한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면, 그의 지배자로서의 천성이 발휘되기 시작한다.(p233) <정당사회학> 中


  당직자들의 독재 욕구는 당의 재산을 관리하는 경제적 권력까지 장악하도록 만든다. 지도부는 정복한 당의 재정권력을, 자신의 권력 지위를 공고화하고 안정화시키는 데에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p163)... 권력은 권력을 확장하려는 경향이 있다. 권력을 수중에 넣은 사람은 일반적으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고 확대하며 권력 지위를 방어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요새를 쌓아올리고, 대중의 주권과 통제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노력한다.(p235) <정당사회학> 中


4. 근대 민주주의 : 그들만의 리그(League)


 대중이 지도자보다 강력하다는 것을 입증한 사례는 극히 드문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기존의 지도자들과 갈등에 빠져든 새로운 지도자가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힘있는 자로 거듭나는 경우, 즉 새로운 지도자가 기존의 지도자를 끌어내리고 그를 대체 하는데에 성공하는 경우가 통상적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민주주의가 거둔 성취는 신속하게 무(無)로 돌아가고 만다.(p226) <정당사회학> 中


 이렇게 만들어진 근대민주주의 체제에서 대중은 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존재였다. 오랜 기간 잊혀졌던 대중이 다시 정치인들의 관심을 받게 될 때는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때 뿐이었다. 결국, 민주주의가 향하는 길의 끝에는 과두정이 있다는 결론을 내리면서 <정당사회학>은 마무리된다.


 오늘날 대중은 거의 언제나 지도자의 명령에 따라 움직인다. 설사 대중이 지도자들과 불화를 빚으면서 특정한 행동에 돌입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거의 언제나 대중이 지도자들을 오해하였기 때문에 발행한 것일 뿐이다(p193)... 대중은 가끔 의식적으로 봉기하려 하지만, 지도자들은 언제나 그들의 열정에 재갈을 물린다. 당 대중이 능동적인 배우로 역사의 무대 위로 등장하여 정당 과두 세력의 권력을 제거하는 때는, 오로지 지배계급이 혼망 속에서 억합을 과도하게 증대시키는 경우뿐이다.(p194) <정당사회학> 中


 저자 미헬스는 <정당사회학>을 통해 정권을 잡기위한 조직화가 소수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게 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일반 대중은 자신의 요구를 관철하는 방법도 의지도 없기 때문에 기꺼이 소수 지배자에게 권력을 위임하며 권력의 맛을 본 지배자들은 경제, 정치 권력을 유지하고 세습하기 때문에 결국 민주주의는 과두정으로 옮겨갈 수 밖에 없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결국 <정당사회학>은 민주주의에 대한 우울한 예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후에 미헬스는 1914년에 이탈리아로 귀화하고,  파시즘(fascism)에 빠지는 모습을 보이는데, 이러한 그의 인생은 <정당사회학>과 무관하게 보이지 않는다.


 [사진] 무솔리니와 히틀러(출처 : 위키백과)


 <정당사회학>은 이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음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이러한 전망이 현재도 유효할 것인가에는 의문이 따른다. 소수에게 정보가 과점되던 과거와는 달리 정보가 다수에게 공개되고, 이에 대한 반응도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요즘 현실 속에서 미헬스의 '무지한 대중'이라는 전제는 절반 정도는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 또한 하게 된다. 


 말씀을 실행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야고 1:22)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 대중의 의사는 선거를 통해 나타나게 된다. <정당사회학>과 달리 대중이 무지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적극적인 실행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유권자의 적극적인 투표는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최후의 보루라 여겨진다.

 


 얼마 전 tumblbug을 통해 6.13 지방선거 가이드인 <전국투표전도 2018> 제작을 후원했고, 책자를 받아 보았다. 현재 지방선거의 이슈와 지역별 투표율 등의 정보가 실려있는 책자 제작 후원은 예상보다 많은 후원을 받고 성공리에 종료되었다. 이러한 유권자들의 관심이 살아 있을 때 민주주의가 지켜질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홍보 광고 같은 결론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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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6-06 23: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7 06: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1 23: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12 0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6-16 10: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래서 풀뿌리 민주주의, 지방자치 확대가 모색되는 거 아니겠나요? 정당, 중앙집권식으로 체제를 만들면 대중의 힘이 미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작은 정치로 분할시키면 더많은 대중이 참여할 수 있겠죠. 지금 체제도 결국 권력자들이 만들어놓은 판이고 뿌리가 깊어 궤도 수정이 어렵긴 하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의 의지가 있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겠죠.

겨울호랑이 2018-06-16 11:02   좋아요 1 | URL
저 역시 AgalmA님 말씀처럼 지금 당장은 기득권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있지만, ‘우공이산‘의 마음으로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언젠가는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선과 명의 외교 관계는 명이 조선 왕을 책봉하고 조선은 명에 조공하는 체제를 기본 골격으로 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양국 간에는 빈번한 사신 왕래가 이루어졌다. 그런데 태조대에는 대명 관계의 갈등 양상에 따라 사신 파견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p42)...  원래 조공이란 중국 황제로부터 책봉을 받은 주변 국가가 사신을 파견해 공물을 바치면(진헌 進獻), 중국 황제가 그에 대한 답례로써 물품을 내려 주는 (회사 回賜) 경제 행위가 핵심이었다. 진헌과 회사를 통해 이루어지는 이러한 조공 무역은 근대적인 국제 무역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국제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물자의 교역이라는 점에서 일종의 공무역이었다.(p43)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15세기 : 조선의 때이른 절정>에서는 1392년 건국된 조선 朝鮮이 세종(世宗, 1397 ~ 1450)대에 국가의 틀을 빠르게 잡아가는 모습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15세기에 이루어진 조선의 변화는 크게 '소중화 小中華'라는 주제어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 만들어진 조선은 15세기에 국가 기틀을 잡는 과제를 안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왕조정통성 王朝正統性 확보 필요가 놓여 있었다. 그리고, 조선은 이러한 과제를 '소중화'를 통해 빠르게 풀어갈 수 있었다. 


 조선은 왕조정통성 확보를 위해 중국과의 관계부터 정리해 나간다. 명나라의 책봉을 받은 왕 王의 지위를 국내외적으로 결정하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은 '사대 事大'로 결정되었다. 그렇지만, 과연 교린 交隣으로 볼 수 있는가에 대해서 <15세기>는 의문을 제시한다. 


 흔히 조선 시대의 대외 정책을 '사대교린 事大交隣'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사대'의 대상은 중국이고, '교린'의 대상은 중국을 제외한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나 부족들이다. 즉 여진, 일본, 유구 琉球 등이다. 그런데, '교린'이라는 말에는 서로 필적할 만한 나라가 대등한 자격으로 교류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하지만 과연 조선이 여진, 일본, 유구 등을 대등하게 인식했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p44)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이의 근거로 당대의 지도인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들고 있다. 고지도는 지도의 정확성보다 당시를 살아가던 이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우리는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를 통해 '소중화'에 대한 조선인의 생각을 찾을 수 있다.


 고지도 古地圖는 역사 지도와는 달리 현재의 지식을 과거 어떤 특정 시점의 영사막에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지도가 제작될 당시의 시점에서 투사된 지도이고 그 당시 지식의 총제가 특정 공간을 지도상에 재현한 도표이다. 그것은 단순한 기념 사진이 아니라 과거에서 현재를 향하여 점진적으로 동일한 공간을 그려나가면서 공간에 대한 보다 개선된 도형을 보여 준다는 데 의미가 있다.(p13) <서양고지도와 한국> 中


[사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출처 : 위키백과)


 1402년에 제작된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 混一疆理歷代國都之圖>라는 세계지도가 있다. 이 지도에는 한가운데 중국이 있고 그 오른쪽에 실제보다 크게 확대된 조선이 있다. 그리고 조선의 아래쪽에는 실제보다 훨씬 더 축소된 일본이 그려져 있다. 실제보다 확대된 조선과 축소된 일본의 모습은 이 지도를 제작한 조선인의 일본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즉 당시 조선 사람들은 일본을 조선과 대등한 관계로 인정하기보다는 조선 아래에 있는 존재로 인식했다고 할 수 있다.(p44)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로 대표되는 조선인의 인식을 <15세기>에서는 민족적 자존의식이라고 정리한다.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소중화로서 문화국임을 자부했던 조선 선비들의 인식이 <15세기>에서 잘 표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 천문학, 예악, 문자 등 과학기술의 발달로 이어져 조선은 15세기에 절정에 이르렀다고 <15세기>는 해석하고 있다. 


 그렇지만, 독자적인 민족의식이 자부심의 표현으로부터만 나온 것일까. <한국수학사>는 <15세기>보다 한층 깊이 들어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한국수학사>의 다른 관점은 천문, 예악, 문자의 관점에서 <15세기>와 비교해서 살펴보도록 하자.


 조선은 오래전부터 중국의 문화를 받아들여 문화적으로 중국과 동등하다는 자존의식을 지니고 있었다. 세조 때 양성지 梁誠之의 말을 들어보면, 그는 조선이 명과 대소에 따른 국력의 차이가 있고 따라서 사대를 한다는 현실은 인정한다. 그러나 문화적인 면에서는 조선도 기자 箕子 이후 문물이 발달해 '군자지국', '예의지방', '소중화'라 불리며, 중국과 비교해 전혀 열등할 것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대동 大東 으로서 단군이 중국의 전설적인 성군인 요 堯와 같은 시기에 나라를 세웠고, 기자조선- 신라 - 고려를 거치면서 중국과는 다른 독자적 역사를 전개해온 사실을 강조했다. 조선 부분을 확대, 과장해 그려냈던 이면에는 이러한 문화적 자존의식이 자리 잡고 있다.(p58)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1. 천문 天文


 <15세기>에서는 조선이 천명 天命을 받았음을 <천상열차분야지도> 제작을 통해 보여준다고 서술하고 있다. 고구려의 <천상열차분야지도> 탁본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1395년 천문도 제작은 이러한 조선 왕조 적통성 주장의 근거가 되었다. 


 하늘을 대신해 인간 세상을 통치하라는 명을 받은 자로서 왕은 하늘의 뜻을 받들기 위해 항상 정성을 다해 천문을 읽어야 했다. 그렇기에 천문학은 제왕학이었다.... 조선 왕조가 개창된 지 불과 3년 만에 <천상열차분야지도>를 제작한 까닭이 분명해진다. 조선 왕조가 천명을 받았으며, 요/순 임금처럼 모범적인 성군의 정치를 펼칠 것을 천하에 알리는 상징적인 행위였다.(p136)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한국수학사> 역시 천문학의 목적성에 주목하고 있다. 간의, 옥류 등 천체기구를 보관하던 건물(흠경각)의 건설은 실생활의 필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왕실의 정통성 확보에 목적이 있었다고 해석하고 있으며, 이러한 관점은 예악과 문자의 의의에서도 이어지게 된다.

 

 흠경각(欽敬閣)은 단시일에 집중적인 노력에 의해 발휘된 한국인의 창조력에 관한예증일 뿐이다. 이 업적은 전통적인 유교 문화의 후예임을 과시하기 위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따지고 보면, 누각제도 역시 일반 대중에게 시각을 알린다는 것은 둘째 문제였고, 왕실의 정통성 확보가 가장 큰 목적이었다.


 우리나라는 멀리 바다 밖으로 떨어져 있으나, 모든 문물은 오로지 중화(中華)의 제도를 따르고 있다. 다만 천문 관측의 의기만 갖추어져 있지 않다. (<세종실록>, 세종 19년 4월 15일) (p245) <한국수학사> 中

 

 2 예악 禮樂


 조선 시대 예악 또한 실생활의 필요가 아니라 질서와 조화라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왕조 차원의 정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러한 필요에 의해 당시 <악학궤범>의 편찬과 악기 정비 등의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었음을 확인하게 된다.


 조선 왕조는 유교적 이상 국가를 구현하고자 예악 정치를 표방했다. 여기서 예 禮와 악 樂이란 추상적 구호 이상의 의미가 있다. 예가 질서를 위한 것이라면 악은 조화를 위한 것이다. 질서와 화합을 위해 필요한 예악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체로서, 형정 形政의 근본을 이루며 왕도의 필수 요건이다.(p151)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세종은 예술에서도 주체성을 강조했지만, 유교 국가의 이상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하는 조선의 왕으로서 가장 주력한 음악은 역시 아악이었다. 그래서 거문고, 비파, 대금, 생황 등의 아악기가 제작되었다. 그러나 악기를 만드는 것보다 악기를 조율하는 것이 먼저였다. (p256) <한국수학사> 中 


3. 문자 文字


 세종 당시 가장 위대한 발명이라 불리는 훈민정음의 창제. 이에 대해 <15세기>에서는 말과 글이 다른 필요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조되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수학사>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이와는 조금 다르다.


 한자를 가지고 한국어를 표기하려는 시도, 이른바 차자표기법 借字表記法이 등장하기는 했다... 차자 표기법이 발전해 사용되기는 했지만, 말과 글이 따로 노는 상황은 한자, 한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보통 백성과 여성에게 많은 불편을 불러왔다.(p165)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한국수학사>에서 훈민정음의 창제가 주체성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왔음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한국수학사>에서는 훈민정음에 담긴 사상이 중국 고전 사상인 음양오행이 담겨 있음을 밝히고 있으며, 결국 소중화로서 정통성을 표현하고 했다는 한계점을 동시에 말하고 있다.


 세종의 왕립 아카데미인 집혀전이 이룩한 최대 업적은 바로 한글 창제이다. 체계적인 문자를 발명하게 된 가장 큰 동기는 바로 독립국가로서의 주체성에 대한 자각이다... 여기에서도 주체의식과 관련해서 정통성을 지향하는 태도가 강하게 드러나 있다. 민족의 주체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독자적인 문자를 창조하려고 했던 것은 중국의 영향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의식적으로 옛 중국의 고전 사상에 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했던 것이다. <훈민정음>의 기초 작업에 직접 동원된 학문과 사상은 중국의 음운학과 주자학(朱子學)이다... 성음학이건 송학이건 그 근본 사상은 모두 음양오행설이다. <훈민정음>에도 이 전통적 이데올리기가 반영되었다.


 하늘과 땅의 이치는 오직 음양과 오행뿐이다. 곤괘와 복괘의 사이가 태극이 되고 움직이고 고요한 후에 음양이 된다. 무릇 생명을 지닌 무리로서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자 음양을 두고 어디로 가나. 그러니 사람의 목소리도 모두 음양의 이치에 따른다. (<훈민정음해례> 제자해) (p264) <한국수학사> 中 


 이렇게 본다면, 결국 조선 시대 초기 의 과학, 문화 혁명은 조선 왕조의 정통성 확보라는 목적하에서 이루어진 관제官製 혁명이라는 한계점을 지닌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변화를 끌어내지 못한 조선 초기 과학 문화 혁명에 대한 <한국수학사>의 평가는 <15세기>에 비해 냉정하다.


 과학이 가설이라고 한다면 세종 시대의 과학을 지배한 가설은 중국의 옛 자연철학에 근거를 둔 것이기는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 그 과학 정신은 한반도의 독자적인 합리주의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국적인 주체성은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성장을 촉진하는 원동력이 되지는 못했다. 이는 세종 시대의 과학자들이 당시 과학 문화의 핵심적인 주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과학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는 집단 의식이 각 구성원의 자율적인 과학 정신에 있지 않았고, 이 집단 또한 세종의 개성이 반영되어 재구성된 소재, 또는 필요에 따라 적절하게 사용된 도구의 집합에 불과했던 것이다.(p269) <한국수학사> 中  


 이에 대비되는 변화가 서양에서 있었음을 <15세기>에서 보여주고 있다. 15세기 한국사를 세계사와 비교해서 서술하는 것이 <15세기> 민음 한국사의 장점 중 하나라 여겨진다. 여기에 소개된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 1468)의 금속활자로 인해 <성경 The Holy Bible>이 보급되고, 이로 인해 '종교개혁 宗敎改革'이 크게 일어났다는 사실과 비교해 본다면, 조선시대 과학기술 발전의 한계점을 보다 분명하게 깨닫게 된다. 


 1450년 독일의 구텐베르크는 유럽 최초로 금속활자를 사용한 대량 인쇄에 성공했다. 이 사건은 유럽뿐 아니라 세계 문화사의 돌이킬 수 없는 이정표였다. 구텐베르크는 포도즙을 짜내는 압착기에서 착안해 양면 인쇄 등 기존 목판인쇄기보다 월등한 활판인쇄기를 발명했다. 이로써 이전에는 손으로 베끼는 데 4~5개월이 걸리던 200쪽의 책을 하루면 인쇄할 수 있게 되었다. 지식 복제의 속도를 120 ~150배나 증대시킨 셈이다.(p19) < 15세기 : 조선의 때 이른 절정> 中


 2018년 5월 미국 빌보드(Billboard) 차트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BTS(방탄소년단)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앨범 발표 직후 에서 높은 인기를 끄는 방탄소년단과 K-POP을 통해 15세기 조선의 과학 문화 혁명의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많은 이들이 K-POP의 한계점 중 하나로 연예 기획사 시스템을 들고 있다. 연습생 중에서 소수의 엘리트를 데뷔시키는 연습생 제도는 K-POP의 장점이자 한계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소수 기획사가 끌어가는 K-POP의 모습은 15세기 조선 초기 지도층이 끌어간 과학, 문화 발전의 모습을 떠올리게한다. 그렇지만, K-POP과 조선 전기 과학이 큰 차이는 일반 대중들의 삶을 변화시켰다는 점이라 여겨진다. 역사적 사실은 '최초'가 중요할 지는 모르지만, 역사적 의의는 '삶의 변화'에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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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6-03 2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15세기 조선 지식인 그리고 사림들에게는
자주적 의식이 결여되었던 걸까요?

소중화주의에 천착해서 오로지 대국을 향
한 해바라기만 하다가 결국 명나라가 망해
가는 판에, 병자호란이라는 전대미문의 국
가적 망신을 당했으니까요.

하긴 숭정 몇백년이라는 연호를 채 버리지
못한 소중화 완완세인들의 시대착오적 유
산은 그 유구한 전통을 묵묵하게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죠. 그들이 신봉하던 중화가 아
메리카나로 바뀌었을 뿐.

겨울호랑이 2018-06-03 21:30   좋아요 2 | URL
15세기 조선이 등장했을 때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한 정권이 택할 수 있는 길은 외부와의 관계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소중화 사상과 사대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는지 모르겠네요. 국가의 하부까지 개혁할 수 없었던 조선 문화의 한계는 여기에서도 나타나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지금까지도 이어져오고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네요...

2018-06-03 21: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3 21: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06-03 22: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방탄소년단이 등장할 줄이야ㅎㄱㅎ! 겨울호랑이님 소재 연결 파도타기 늘 재밌어요^^!

겨울호랑이 2018-06-03 22:40   좋아요 1 | URL
^^:) 제가 소재를 좀 막 던지는 편이지요... 일단 먹물을 화선지에 흩뿌리고 점을 연결해서 선을 만들고 글자라 우기는 느낌이랄까요 ㅋㅋ

AgalmA 2018-06-03 23:01   좋아요 1 | URL
소재 즉흥성이 우리 친구할 만합니다ㅎㅎ;;
아빠 겨울호랑이 & 아기 흰 호랑이, 뒤에는 엄마 호랑이 감시입니까ㅋ
겨울호랑이님 프사 구경 놓칠까봐 자주 와야겠네요^^;;

겨울호랑이 2018-06-03 22:48   좋아요 2 | URL
오늘 이천 아울렛에 갔었는데 도자기로 만든 호랑이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ㅋㅋ 역시 고양이 같은 호랑이가 제일 친근하게 느껴져요^^:)!

AgalmA 2018-06-03 22: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수다만 떨다 갈 순 없고.... 글에 대한 소감도 남겨야지;
이 글의 관점이 참 좋습니다. 최초가 아니라 문화 파급력을 더 중요하게 봐야 한다는 지적이^^👍

겨울호랑이 2018-06-03 22:58   좋아요 1 | URL
ㅋㅋ 새삼스럽게 AgalmA님의 독후감을 접하니 어색하지만... 저 역시 격을 갖춰서.. AgalmA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2018-06-04 15: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6-04 15:3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