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 세계사 - 고대 제국에서 G2 시대까지
피터 프랭코판 지음, 이재황 옮김 / 책과함께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작은 진동들은 사방으로 뻗어나간 네트워크를 따라 전달되었다. 그 길을 따라 순례자와 전사 戰士, 유목민과 장사꾼들이 여행하고, 먼 곳에서 온 물건이 거래되었으며, 사상이 교류하고 수용되고 다듬어졌다. 이 길은 번영뿐만 아니라 죽음과 폭력, 질병과 재앙도 실어 날랐다. 끝없이 뻗은 이 연결망은 19세기 말 독일 지질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 Ferdinand von Richthonfen에 의해 명명된 이후 그 이름으로 불렸다. 바로 실크로드 silkroad다.(p14) <실크로드 세계사> 中


[사진] 실크로드(출처 : 위키백과)


 피러 프랭코판(Peter Frankopan)은 <실크로드 세계사 The Silk Road : A new history of the world>속에서 고대부터 2010년대까지 문명 교류사를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고 싶어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유럽이 세계사의 중심인 시기는 매우 짧았으며, 오랜 기간 세계의 중심은 중앙아시아였다는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세계 유수의 지적 증심지는 유럽이나 서방이 아니라 바그다드와 발흐, 부하라와 사마르칸드였다... 그들은 사상을 주고받으면서 철학과 과학, 언어와 종교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었다.(p16)... 그러나 근대 초기에 진보의 주역이 바뀌었다. 15세기 말 두 차례의 해양 탐험이 가져온 결과였다... 갑자기 서유럽은 지방의 벽지라는 위치에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통신과 수송과 교역 시스템의 구심점으로 탈바꿈했다.(p17) <실크로드 세계사> 中 


 중앙아시아 중심의 세계사를 표방하는 <실크로드 세계사>는 로마보다는 페르시아가, 십자군보다는 셀주크 투르크가 역사의 중심에 놓여 있다. 마치, 지도를 거꾸로 보는 것과 같은 인식 변환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고대 사회가 결코 분리된 각각의 문명권이 아닌 서로 영향을 깊이 미치고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약 900 페이지에 이르는 내용을 읽을 때마다 벽에 부딪치고 말것이다. 그러니, 일단 아래의 내용을 인정하고 넘어가자. 인류 역사는 고대부터 교류의 역사였다.


 고대 세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서로 연결되어 있었다. 로마를 서유럽의 시발로 보는 것은 로마가 줄곧 동방을 바라보고 있었고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방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다는 것을 간과하는 것이다.... 인도를 페르시아만 및 홍해와 연결하는 교통량이 늘면서 고대의 초기 실크로드는 활기를 띠었다.(p59) <실크로드 세계사> 中


 후대에 '비단길' 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는 실크로드를 따라 종교, 문화, 사상, 질병 등이 활발하게 퍼져나가게 된다. 14세기 유럽을 강타했던 흑사병(黑死病, Black Death)이 이 길을 따라 전염되었으며, 이 길을 통해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가 통일  신라에도 전파되었고, 불교와 기독교 역시 이 길을 통해 동과 서로 퍼져나갔음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이들은 전파되면서 서로 혼합되고 받아들이면서 영향을 끼쳤다. 동방 기독교는 영지주의(gnosis)와 결합하면서, 서방 기독교와 다른 모습을 보였으며, 중국의 불교는 도교(道敎)의 영향으로 선(禪)사상을 결합시키는 등 독자적인 발전을 하게 되었다.


 7세기 초의 문헌들은 기독교 성직자들이 자기네의 생각을 불교와 조화시키려 노력했음을 기록하고 있다... 기독교는 그저 불교와 상충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대체로 말해서 기독교가 바로 불교라고 중국에 갔던 한 선교사는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기독교 사상과 불교 사상을 체계적으로 융합하려 노력했다.(p110) <실크로드 세계사> 中


 그리고, 이러한 문명의 교류와 발전의 중심지는 바로 중앙아시아였다. 동과 서의 교류 중심지로서 중앙아시아는 세계의 교역품과 금(金)과 은(銀)이 모이는 풍요로운 곳이었고, 티그리스- 유프라테스(Tigris- Euphrates)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역은 오랜 기간 인류에게 에덴(Eden)동산이었다. 그렇지만, 15세기에 들어 실락원(Lost Paradise)의 시대가 대항해 시대의 개막과 함께 시작되었다. 아메리카 식민지가 개척되던 초기 많은 양의 금과 은이 중앙아시아로 흘러가면서 중앙아시아는 크게 부흥하게 되지만, 분위기가 바뀌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바그다드는 이슬람 세계의 풍요와 왕권의 중심지, 후원과 위신의 완벽한 상징이었다. (p165)... 많은 자료들은 대규모 교역품이 페르시아만을 드나들고 중앙아시아에 이리저리 뻗어 있던 육로를 따라 이동했음을 입증한다... 9세기 인도네시아 근해에서 7 만점의 도자기를 실은 배가 난파한 사실은 당시 엄청난 교역 물량을 보여준다. 이 시대는 황금기였다.(p168) <실크로드 세계사> 中


 당시 황금시대가 시작된 것은 유럽뿐만이 아니었다. 발칸 반도에서부터 북아프리카까지 오스만 세계 곳곳에서 대규모 건설 계획이 추진되었다. 그 자금은 계속 늘고 있는 조세 수입으로 충당했다.(p384)... 그러나 서아시아가 대서양 건너 아메리카에서 흘러들어오는 금, 은과 기타 보물들의 홍수로 돈을 벌고는 있었지만, 가장 큰 수혜자는 수출품이 생산되는 곳이었다. 바로 인도, 중국, 중앙아시아였다.(p386)... 유럽과 인도의 영화는 아메리카 대륙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p392) <실크로드 세계사> 中


[사진] 피사로의 잉카 제국 정벌(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Battle_of_Cajamarca)


 15세기 유럽이 중심이 된 것은 과학, 종교, 자본주의의 결합을 통해 이룩한 것이었다. 풍요로운 부(富)를 과시하는 중앙아시아에 비해 가진 것이 없던 유럽은 대항해 시대를 통해 폭력을 행사할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동양에 대한 인식의 변환이 시작되었다. 이른바 부정적인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이 형성되는 것도 이즈음부터다.


 유럽이 1490년대의 대탐험 이후 세계의 중심이 된 것은 그들이 폭력 및 군국주의와 굳건한 관계를 맺었기 때문이다.(p423)... 싸움과 폭력과 살육도 정당성이 있는 한 미화되었다. 이것이 아마도 종교가 그렇게 중요해진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p424)... 유럽 각국 정부는 군비에 충당할 자금이 부족하자 대출 시장을 만들었고, 그곳에서 미래의 세금 수입을 담보로 돈을 뜰어올 수 있었다... 정부 부채에 대한 그들의 투자는 애국심으로 포장될 수 있었다. 국가 재정에 투자하는 것은 출세하는 길이었고, 또한 부자가 되는 방법이었다.(p428) <실크로드 세계사> 中


 표면 아래서 강력한 흐름이 눈에 띄지 않은 채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시아에 대한 유럽인들의 태도가 뻣뻤해지고 있었다. 동방을 이국적인 초목과 보물로 가득한 놀라운 나라로 보던 태도를 바꾸어, 현지 주민들을 아메리카 주민들과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쓸모없는 사람들로 생각하기 시작했다.(p451)... 아시아에 대한 태도는 얻을 수 있는 이득으로 인한 흥분에서 노골적인 수탈에 대한 생각으로 바뀌었다.(p451) <실크로드 세계사> 中


 아메리카 대륙으로부터 시작된 식민지화는 19세기 들어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로, 중국이 반식민지 상태에 빠지면서 제국주의(帝國主義) 시대는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동시에, 중앙아시아 역시 교역의 감소와 더불어 쇠퇴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지만, 이는 비극의 시작이었을 뿐이다. 


 인도의 대부분이 영국의 손에 넘어가자 육상 교역로가 생명력을 잃었다. 구매력과 소비력, 자산과 관심이 결정적으로 유럽 쪽으로 옮겨갔다. 군사기술과 전술이 더욱 발전하면서 기병대의 중요성이 떨어진 것 또한 수천 년 동안 아시아를 이리저리 연결해주던 길을 따라 운송되던 물량의 감소를 촉진했다. 중앙아시아는 그 이전의 남부 유럽과 마찬가지로 사라져가기 시작했다.(p457) <실크로드 세계사> 中

 

 인도를 식민지로 삼은 영국과 부동항(不凍港)을 얻기 위한 러시아의 대립은 그레이트 게임(The Great Game, 1813 ~ 1907)으로 치닫게 된다. 이제는 전쟁터로 바뀐 중앙아시아는 러시아, 영국, 오스만 투르크의 격전장이 되버렸다. 아직 석유를 주동력으로 사용하기 이전, 이 지역이 전략적으로 중요한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여기에는 세계적인 밀의 생산지 우크라이나가 있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이 지역의 전략적 가치에 관심을 기울인 이는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였다.


[사진] 우크라이나 밀(출처 : https://www.agweb.com/article/higher_wheat_prices_more_complex_than_ukraine_turmoil_naa_ben_potter/)


 문제를 러시아의 영토가 빠른 속도로 확장되면서 자신감도 점점 커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p468)... 크림 반도와 아조프해에서 벌어지고 다른 곳들에서 잠깐 비쳤던 어렴풋한 전쟁은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이익이 걸려 있었다... 러시아를 통제하고 암묵적으로 인도에서의 영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법은 크림 반도와 캅카스 전역의 통제권을 오스만에 넘겨주는 것이었다.(p477) <실크로드 세계사> 中


당시 식량부족으로 힘들어 하던 히틀러는 1941년 바르바로사 작전(Unternehmen Barbarossa)을 통해 소련을 침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침공 결과는 1943년 스탈린그라드 전투(Schlacht von Stalingrad)를 통해 독일의 패배로 끝나게 되지만, 이 지역에 대한 중요성이 감소한 것은 아니었다.


 [사진] 바르바로사 작전(출처 : http://www.stalkerzone.org/collapse-barbarossa-stopped-hitlers-death-machine/)


 히틀러는 1940년 7월 말 새로운 모험을 발표하면서 그것을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위장했다. 이제 볼셰비즘을 제거할 기회라고 그는 요들 장군에게 말했다. 그러나 사실 문제가 된 것은 원자재와 무엇보다도 식료품이었다... 바케는 독일의 문제에 소련이 해법이 될 것이라는 생각에 집착했다. 러시아 제국이 팽창하면서 스텝 지대는 유목민들의 목장에서 곡창지대로 서서히 변모했다.(p612)... 우크라이나는 열쇠였다. 흑해 북안과 카스피해 너머까지 펼쳐지는 풍요로운 농작물 평원을 손아귀에 넣으면 독일은 천하무적이 된다.(p613) <실크로드 세계사> 中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을 대신해서 중앙아시아에서 소련과 대립한 나라는 미국이었다. 미국이 중앙아시아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레이건의 아래 말이 잘 표현하고 있다. 미국은 '검은 황금'이라 불리우는 석유의 생산지인 중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을 결코 잃어서는 안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이란-이라크 전쟁(1980 ~ 1988)', '걸프전쟁(1990)', '미국 - 아프가니스탄 전쟁(2001 ~ )', '미국 - 이라크 전쟁(2003 ~ 2011)'등의 사건이 직간접적으로 미국과 연계되어 이어지게 되었다.


 레이건 대통령은 시청자들에게 말했다. "이란은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일부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소련과 따뜻한 바다 인도양의 입구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지도를 보면 소련이 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보내 그 나라를 점령하고, 가능하다면 이란과 파키스탄까지 점령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지리적인 문제는 차치하고라도, 이란에 매장된 석유는 세계 경제의 장기적인 건전성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p795) <실크로드 세계사> 中


 15세기 대항해 시대 이후 계속된 유럽-미국의 패권은 최근 중국(中國)의 부상에 따라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일대일로(一帶一路)를 통해 새로운 실크로드를 만들어가는 중국의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실크로드 세계사>는 마무리 된다. 


[그림] 일대일로(출처 : http://chinesewiki.uos.ac.kr/wiki/index.php/%EC%9D%BC%EB%8C%80%EC%9D%BC%EB%A1%9C)


 중국 정부는 물자와 에너지원에 연결되고 도시, 항구, 대양들에 접근할 수 있는 네트워크를 꼼꼼하고도 신중하게 구축하고 있다. 교역의 물량과 속도를 대폭 늘리기 위한 기반시설을 개선하거나 아예 새로 건설하는 데 막대한 돈을 투자한다는 발표가 매달 새로 나온다.(p854)... 시진핑이 2013년에 제시한 일대일로 一帶一路 비전에 막대한 자원이 투입된다는 것은 중국이 미래를 계획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p862)<실크로드 세계사> 中


 <실크로드 세계사> 가 다루는 시대의 범위가 워낙 방대하기 때문에, 약 900 페이지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다. 그렇지만, 해당 시기의 주요 사건을 간략하게 요약하여 서술하기 때문에 내용 자체는 어렵지 않다. 동시에,  실크로드의 역사 전체를 보여준다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우리는 세계사의 우리의 시각이 확장됨을 느끼게 된다. 예를 들어,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을 살펴보자.


  많은 경우 우리는 유대인에 대한 히틀러 개인의 극단적인 분노의 결과로만 생각하기 쉽다. 그렇지만, 그처럼 엄청난 일이 개인의 단순한 증오에서만 비롯되었을까? 여기서 당시 히틀러가 단기간에 유럽을 지배하면서 식량과 원자재가 부족했었다는 점을 연계해서 생각해볼 수 있겠다. 자원 부족을 절감한 히틀러는 소련을 침공하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게 되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결국 자원을 소모하는 인구(人口)를 줄이려는 목적으로도 유대인 대학살을 감행한 것은 아니었을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히틀러와 나치독일의 죄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유태인 학살은 나름의 위기 탈출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유태인 학살을 독일 국내 문제, 히틀러 개인의 문제로 한정할 것이 아니라 조금 범위를 넓혀 본다면, 이처럼 새롭게 보일 수도 있다. 그리고, <실크로드 세계사>는 이렇게 새로운 관점을 여러 곳에서 제시한다.


 이처럼, <실크로드 세계사>는 우리에게 문명권들간의 영향력과 배경에 대해 새로운  사실을 일깨워 준다. 그리고, 독자들은 이를 통해서 '국내'요인으로만 바라보는 관점을 버리고, 세계적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을 얻게 된다는 점에서 <실크로드 세계사>는 좋은 문명교류사 입문서적이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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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6 16: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6 16: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7-26 18: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별 다섯 개 주셨으니 기대되는 책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8-07-26 18:28   좋아요 0 | URL
두꺼운 페이지가 부담이 되기도 합니다만, 북다이제스터님께서는 큰 부담없이 즐겁게 읽으시리라 생각합니다^^:)

읽자나 2018-07-26 19:1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제국주의 특히 영국이 착취하는 것도 모자라 분쟁의 씨앗을 심어 놓았는지 보고 화났던 기억이...

겨울호랑이 2018-07-27 09:55   좋아요 1 | URL
네 읽자나님의 말씀처럼 현대 중동 문제의 씨앗을 유럽 열강들이 심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연 그들이 중동 및 아프리카의 난민 문제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서니데이 2018-07-27 16: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무척 더운 날씨입니다.
겨울호랑이님, 더위 조심하시고 건강하고 즐거운 금요일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7-27 18:28   좋아요 1 | URL
정말 계속 더운 요즘이네요. 서니데이님께서도 행복한 주말 보내세요!^^:)
 
루돌프 폰 예링 권리를 위한 투쟁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60
루돌프 V.예링 지음, 윤철홍 옮김 / 책세상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법(法)의 목적은 평화이며,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다. 법이 부당하게 침해되고 있는 한 법은 이러한 투쟁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된다. 법의 생명은 투쟁이다. 즉 민족과 국가 권력, 계층과 개인의 투쟁이다. 이 세상의 모든 권리는 투쟁에 의해 쟁취되며, 중요한 모든 법규 Rechtssatz는 무엇보다도 이러한 법규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맞서 투쟁함으로써 쟁취된 것이다.... 법은 끊임없는 노동이다. 더욱이 이것은 국가 권력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에게 요구되는 노동이다.(p37) <권리를 위한 투쟁> 中


  독일의 법학자 루돌프 폰 예링(Rudolf von Jhering, 1818 ~ 1892)은 그의 저서 <권리를 위한 투쟁 Der Kampf um das Recht>에서 법을 투쟁(鬪爭)으로 정의한다. 이러한 정의를 도출하기 위해 그는 개인간 소유권(所有權) 분쟁을 예시로 설명하고 있다. 다른 사람에 의해 부당한 권리 침해가 있을 경우 우리 앞에는 두 개의 선택이 놓여있다. 법적인 다툼인가, 아니면 조용하게 넘어갈 것인가. 


 권리 침해가 있는 경우 모든 권리자에게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즉 자기 권리를 주장해서 상대방에게 저항할 것인가, 즉 투쟁한 것인가 혹은 다툼을 피하기 위해 권리를 포기할 것인가? 이 결정이 어떻게 내려지든 간에 권리자는 두 가지 경우에 하나의 희생을 감수해야만 한다.(p53)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저자는 권리를 침해한 자가 모욕한 것은 그 권리가 아닌 권리를 소유한 사람이라는 점을 <권리를 위한 투쟁>에서 강조한다. 즉, 재산권 침해가 아닌 인격모독 사건으로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권리를 침해받은 사람은 인격 모욕을 참아서는 안되고, 이에 대한 반격을 해야한다. 예닝은 이를 자신에 대한 '의무'라고 해석한다.


 원고가 권리에 대한 굴욕적 침해를 방어하려는 소송에서는 사소한 소송의 목적물을 위해서가 아니라 인격 그 자체와 인격적 법감정에 대한 주장이라는 이상적 목적을 위해서 투쟁한다.(p55)... 내면의 소리는 그에게 자신의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며, 그에게는 이미 무가치한 소송물이 아니라 자신의 인격, 명예, 법감정, 자존심 등을 위해 소송하라고 강조한다(p56)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인격 그 자체에 도전하는 굴욕적 불법에 대한 저항, 즉 권리에 대한 경시와 인격적 모욕의 성질을 지니고 있는 형태로서의 권리 침해에 저항하는 것은 의무다. 이것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자 자신에 대한 의무다.(p57) ... 어떤 물건이 우연히 내 권리 범주 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나를 침해하지 않고서는 내게서 빼앗아갈 수 없다. 나와 그 물건 사이의 유대는 우연이 아니라 나의 의지에 의해 결합되기 때문이다.(p75)... 소유권은 오직 물질적으로 확장된 내 인격의 외연에 불과하다.(p76)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어떻게 보면, 재산권 침해를 개인에 대한 모욕으로 간주하는 것은 지나친 논리의 비약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러한 논리의 비약을 막고자, 예링은 '악의(惡意)의 추정(推定)' 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법률 용어로 악의는  '법률의 효과에 영향을 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상대방이 악의가 있다는 것은 '내 권리를 인지했음에도 침해하려는 자'라는 것을 의미하고, 예링의 논리는 보완된다.

 

 당사자를 효과적으로 움직이게끔 하는 유일한 것은 당사자를 소송으로 이끈, 상대방에 대한 악의(惡意)의 추정(推定)이다. 만약 이러한 악의의 추정에 반증을 제시한다면 원래의 반감은 약화될 것이며, 당사자는 이익의 관점에서 사건을 고찰하게 되고, 이에 따라 화해가 성립된다.(p61)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이러한 투쟁의 동력을 예링은 법감정(法感情)이라고 해설하면서, 권리를 행사하는 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닌 감정의 문제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그 결론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개인은 투쟁해야 한다는 것으로 마무리되며, 저자는 이를 국제법으로까지 확대시켜 나간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가지 물음을 던지게 된다. 1948년에 제정된 우리 헌법에는 우리의 법감정이 흐르고 있는가?


 인간이 자기 권리를 침해당했을 때 느끼는 고통은 그 권리가 그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즉 그것이 일차적으로는 해당 개인에게, 그 다음에는 인간 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에 대한 아주 강압적이고도 본증적인 자기 고백을 내포하고 있다.(p77)... 오성(悟性)이 아니라 오직 감정만이 이 문제에 답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권리의 심리적 원천을 법감정이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은 타당하다. 법의 힘은 사랑의 힘과 마찬가지로 감정 속에 깃들어 있다.(p78)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주관적 혹은 구체적 권리를 위한 투쟁은 권리의 침해 혹은 불법적인 억압에 의해 야기된다. 개인의 권리든 민족의 권리든 그 어떤 권리도 이러한 위험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기 떄문에, 이 투쟁은 아래로는 사법으로부터 위로는 헌법과 국제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법률분야에 걸쳐 반복된다는 결론에 이른다.(p51)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사진] 삼총사(출처 : http://www.isrageo.com/2017/09/23/dumas868/)


 알렉상드르 뒤마(Alexandre Dumas pere, 1802 ~ 1870)의 <삼총사 Les Trois Mousquetaires>의 처음을 보면 주인공 달타냥이 삼총사(아토스, 아라미스, 포르토스)를 만나는 장면이 나온다. 달타냥의 작은 실수에도 자신이 모욕당했다는 느낌을 받은 삼총사들은 결투를 약속하고 이렇게 그들의 모험은 시작된다..


 위의 장면을 언뜻 보면 등장인물들이 너무 쉽게 화를 낸다고 여겨지지만, 이들의 정서에 '악의 추정 원칙'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된다. 결국, 이러한 일을 통해 예링이 말한 '악의 추정 원칙'은 서구의 법감정이 반영된 것이며, 법감정에는 사회의 모든 것이 녹아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그렇지만, 이러한 감정이 우리의 감정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경우 1948년 헌법을 제정할 때 서구 법체계를 따랐기 때문에 우리 법 속에는 서구 법감정이 흘러있다. 이처럼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법체계 때문에 우리는 권리를 위한 투쟁이 아닌 현실과 다른 법을 고치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예링의 <권리를 위한 투쟁>을 통해 우리의 현실과 우리의 법에 대한 생각을 2018년 7월에 일어난 슬픈 사건과 함께 엮어 하게 된다.


 나의 견해로는 민감성, 즉 권리 침해에 대한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실천력, 다시 말하면 공격을 물리치는 용기와 결단이 바로 건전한 법감정을 판단하는 두 가지 표준이다.(p79) <권리를 위한 투쟁> 中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우리는 약자의 권리 침해에 대해 고통을 느끼는 능력과 실천력이 뛰어난 정치인 노회찬을 잃었다.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법체계 속에서 불법을 괴로워하다 운명을 선택한 그의 죽음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관련기사 : 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854731.html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권리를 위한 투쟁> 중 자신에게 엄격했던 그를 생각하게 하는 문장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법률을 적용하려는 용기를 가진 소수자들의 운명은 진정한 순교로 나타난다. 자신들로 하여금 자의에 승복하기를 허용하지 않는 소수자들의 강력한 법감정이 스스로에게는 저주가 되어버리기 때문이다.(p86) <권리를 위한 투쟁>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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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7-25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투쟁!! 투쟁!!!

겨울호랑이 2018-07-25 15:42   좋아요 1 | URL
^^:) 사회의 잘못된 제도가 차츰 고쳐지길 바라봅니다.

NamGiKim 2018-07-25 15: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인터내셔널가를 부르고 싶어 집니다.^-^

syo 2018-07-25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쩌면 투쟁의 결과물이 법은 아닐까요. 투쟁의 승리자들이 자신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조문을 만들고 겸사겸사 전리품도 챙기고.....

겨울호랑이 2018-07-25 20:13   좋아요 0 | URL
예링은 본문에서 타인에 대한 투쟁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법에 대한 투쟁도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syo님의 투쟁의 결과물이 법이라는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현실에서도 판례가 또 하나의 법으로서 작용하는 모습을 보면 법은 역사와 더불어 승자의 기록이라는 생각도 들게 됩니다...

갱지 2018-07-28 10:2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권리를 위한 투쟁...의 원동력은 인간의 힘이겠지요. 중생들이 모여서 만든 힘이던, 소수 권력자가 가지는 힘이던,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부가 중심이고.
그런 논리라면 법의 세분화라는 게 신용할 수 있나 싶은 생각도 들지만, 또 기본적인 윤리도덕조차 법이 필요한 세상이니
참 난감한 법이네요.

겨울호랑이 2018-07-28 10:28   좋아요 1 | URL
갱지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법으로 인간 삶의 모든 것을 규정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법을 이용하기 전에 사회의 상식으로 조화롭게 조정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하게 됩니다...

2018-08-02 0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2 09: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3 0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머튼의 평화론
토마스 머튼 지음, 조효제 옮김 / 분도출판사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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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게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할 것인가?" 또는 더 정확히 말해 "우리의 진정한 의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훨씬 더 중요하다.(p44)... 공산주의자들이 핵무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라는 질문과 상관없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라. 우리는 핵무기로 무엇을 하고 싶어 하는가? 핵무기를 없앨 것인가, 아니면 그것을 소련에게 사용할 것인가? 이 점에 대해 조금이라도 할 말이 남았는가? (p46) <머튼의 평화론> 中  


 토마스 머튼(Thomas Merton, 1915 ~ 1968)은 저서 <머튼의 평화론 Peace in the Post Christian Era>에서 핵무기를 보유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예상되는 답은  강력한 핵을 통해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주장과 민주주의의 수호 정도겠지만, 이러한 주장에 대해 머튼은 다음과 같이 비판한다.


 핵 억지력을 옹호하기 위해 그리스도교 윤리 원칙을 악용하는 작태에 우리는 우려를 금치 못한다. 한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쓰고 있다. "핵 억지력에 수반된 역설은 그리스도교의 근본적 역설의 한 변형이다. 즉, 우리가 살기 위해서 기꺼이 남을 죽이고 나 자신도 죽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도저히 정상으로 볼 수 없을 만큼 오도된 관점이다.(p52) <머튼의 평화론> 中 


 오늘날 이 나라에서 전 세계가 공산주의의 수중에 떨어지느니 모두 함께 자멸하는 게 낫다고 진정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민주주의의 이상을 모두 포기한 패배주의자일 뿐만 아니라 히틀러와 똑같은 사고 구조를 가진 사람들이다.(p227) <머튼의 평화론> 中


 대량살상무기의 사용은 민간인과 군인, 적과 나 자신을 구분하지 않고 해치기 때문에 이를 반대한다는 머튼의 이야기는 다른 반론을 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대량살상무기가 아닌 재래식 무기의 사용은 괜찮은가? 이에 대한 머튼의 반론 역시 명확하다. 전쟁은 옳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머튼은 한 가지 질문을 더 던진다. 전쟁을 통해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설령 어떤 전쟁이 '정당한 전쟁'으로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전쟁 도중 명백하게 정당하지 않은 수단에 의지하게 되거나 병사들과 전략가들이 한없이 비인도적인 잔혹성에 사로잡히게 될 경우 '불의의 전쟁'으로 변질될 수 있기 때문이다.(p122) <머튼의 평화론> 中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 게 무엇인가? 우리의 종교인가 우리의 물질적 부인가? 아니면 종교와 돈을 우리가 완전히 동일시하게 되어서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이 이제 도저히 불가능한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p147)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1960년대 냉전(冷戰)상황이 윤리(倫理)의 붕괴, 가치관의 상실에서 온 결과라고 해석하고 있다. 윤리와 가치가 붕괴된 현실에서 개인은 물질적 풍요에 빠지게 되었고, 이를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현실에 대한 이러한 진단은 새로운 가치관의 확립이라는 처방으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내가 작금의 긴박한 전쟁 직전 상황 속에서 단 하나의 근본적 진리를 주장한다면 그것은 바로 이런 피상적이고 극단적인 종교적 신조를 반대하는 것이다. 모든 핵전쟁, 그리고 꼭 핵무기가 아니라도 어떤 방식으로든 도시와 인간과 국가와 문화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것은 극히 중대한 범죄행위이며, 이것은 그리스도교 윤리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그 어떤 정상적인 도덕률에 의해서도 금지되는 행위다... 우리에게는 영성적이고 윤리적인 중심이 없다. 우리는 자신의 폭력성을 자제해야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평화로운 세계를 건설하도록 도와주는 내적 동기가 결여되어 있다.(p61) <머튼의 평화론> 中 


 머튼은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해 각자가 최선(最善)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노력하고, 이를 공론화(公論化)시킬 것을 주장한다. 이러한 노력을 통해 군비감축 등 구체적인 평화운동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우리는 최선의 인간 가치를 옹호하고 북돋우어야 한다.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와 자신의 도덕성에 걸맞은 방식으로 자기 삶을 발전시킬 권리가 바로 그러한 최선의 인간 가치다.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인간이 보유한 거대한 파괴력이 범죄적으로 이용되지 않도록 인류를 지켜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문제의 핵심은 점진적이고 합리적으로 협상된 군비 철폐안의 가능성과 문제점을 잘 연구하여 희망의 분위기와 협상의 자신감을 창출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선결적인 과제이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인 것이다.(p185) <머튼의 평화론> 中


 국가의 논리적 행동을 자극하기 위하여 여론의 압력이 반드시 한몫을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바로 이 때문에 개명된 양심이라면 반드시 준수할 도덕정 한계를 명백히 설정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원칙을 공표하고 그 원칙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대외적으로 명명백백하게 밝혀서 그런 원칙이 정책의 향방에 결정적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p202)...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행동으로 발언해야 한다... 그것은 또한 우리의 내적 의도와 외적 행위 간의 거리를 좁혀야 함을 의미한다.(p238)  <머튼의 평화론> 中


 이렇게 바라본다면, 머튼의 평화론은 다른 평화론자들의 주장과 큰 차이가 없는 일반론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머튼의 평화론이 다른 이유는 행동의 주체가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그리스도인이라는 점에 있다. 우리 주변이 사악(邪惡)한 것이 아니라 우리 내면의 문제를 알려주기에,  독자들은 반성(反省)하게 된다. 


 전체주의와 관련해 우리 외부의 적인 공산주의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내부의 파시즘적 경향 또는 집단주의적 경향에 대해서도 반대해야 한다.(p48) <머튼의 평화론> 中 


 그러므로 만일 평화의 복음이 그리스도인의 입에서 더 이상 확신에 차서 나오지 않는다면 그것은 다름 아니라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와 일치와 사랑의 생생한 모범을 더 이상 보여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p232)<머튼의 평화론> 中


 군비 철폐를 내걸고 회의를 개최하여 선전 목적의 제안을 내놓았다가 상대방이 그것을 진지하게 취급하려는 기색이 보이면 황급히 그 제안을 거두어들이는 식의 행태를 부릴 여유가 우리에겐 없다. 이런 점에 있어 공산주의자들이 부정직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서방 역시 허물이 있기는 마찬가지다.(p42) <머튼의 평화론> 中 


 많은 이들이 핵무기가 전쟁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전략 tic for tac strategy'가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데 가장 효율적이라는 게임이론(game theory)에서 비롯된 듯하다. 대표적으로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 1941 ~ )도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를 통해  TFT(Tic For Tac) 전략을 통해 유전자의 진화해 왔음을 밝히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보복전략이 우수한 전략이라는 인식이 있다. 그리고, 그 결과  우리는 어느새 '보이지 않는 위험'에 대비만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사진] 2017년 국가예산 중 국방비 비중 약 10%(출처 : http://hansang1006.tistory.com/146)


 이 책은 핵무기를 대규모로 무분별하게 사용하는 것은 공격용이건 보복용이건 간에 그리스도교 윤리에 어긋난다는 입장을 취한다.(p39)... 제한된 전쟁을 추구하기보다 온전한 평화를 추구하는 것이 더욱 그리스도교 정신에 맞고 더욱 인도적일 뿐만 아니라 더욱 현실적인 것처럼 보인다.(p40) <머튼의 평화론> 


[그림] 스티븐 코비의 시간관리 매트릭스(출처 : 국민일보)


 스티븐 코비(Stephen Richards Covey, 1932 ~ 2012) 박사에 의하면 효율적으로 시간을 관리하기 위해서는 '중요함 - 긴급함'의 Matrix를 잘 활용해야 한다. 많은 이들이 '중요하지 않지만, 긴급한 일'에 매여 있기 때문에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인데, 국방과 관련해서 우리는 '중요하지 않지만 중요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우리가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보다 진중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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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24 14: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토마스 머튼이 이런 책도 썼군요! 우아

겨울호랑이 2018-07-24 14:19   좋아요 1 | URL
네, 토머스 머튼이 일반적으로 <칠층산>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저 개인적으로는 <토머스 머튼의 장자의 도>와 <머튼의 평화론>을 좋아합니다.^^:)

2018-07-24 1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7-24 14: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카알벨루치 2018-07-24 14: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칠층산>을 가지고 있었는데, 읽히지 않아 버린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20대때 안 읽히니 평생 못 읽을 것 같았는데. 그 이름만 들어도 그 명성 그대로..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 2018-07-24 14:42   좋아요 1 | URL
저도 <칠층산>이 쉽게 안 읽혔습니다. 수도경험을 경험한 분들은 피부에 다가오겠지만, 그렇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어려운 책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고백록에 해당하는 책들은 읽기 힘들어 피하게 됩니다. 카알벨루치님 감사합니다.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 지식인마을 16
최훈 지음 / 김영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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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 Immanuel Kant, 1724 ~ 1804)는 <실천이성비판 實踐理性批判, Kritik der praktischen Vernunft> 에서 '정언명령 定言命令, Categorical Imperative'을 인간의 행동의 준칙으로 제시하는데, 이 '보편성'의 원칙은 이 책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의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떠한 행위를 할 때 따르는 지침을 칸트는 준칙(maxim)이라고 불렀다... 칸트는 이 준칙이 무조건적이고 보편적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먼저 준칙이 무조건적이어야 한다는 것은 준칙에 어떤 조건이 붙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p50)... 무조건적인 명령을 정언명령이라고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마치 당신의 행동 준칙이 자신의 의지에 의해 자연의 보편적 법칙인 것처럼 행위하라"이다.(p51) <벤담 & 싱어> 中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는  공리주의(功利主義, Utilitarianism)인 벤담(Jeremy Bentham, 1748 ~ 1832)과 실천윤리학자인 피터 싱어(Peter Singer, 1946 ~ )의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라는 윤리학(倫理學) 과제에 대한 답을 소개하고 있다. 공리주의자들은 인간 사회 내에서 인간 행동의 선택 기준에 대해 논의했다면, 실천 윤리학자인 피터 싱어는 주제 범위를 동물(animal)로 확대하고 있다. 먼저 공리주의자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우리에게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the greatest happiness of the greatest number'으로 널리 알려진 공리주의자 벤담은 양(量)적 공리주의를 주장하는데, 이에 따르면 모든 행복(또는 효용 效用)은 측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는 경제학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비자 이론의 효용함수(效用函數)와 무차별곡선(Indifference curve)가 공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개념이다. 


 [그림] 기펜재의 무차별 곡선(출처 : 위키백과)

 

 어떤 행동이 옳은지 그른지 결정할 때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의 이익, 곧 공공의 이익을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 바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이다.(p61)... 공리주의의 주장은 명쾌하다. 나를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행동이 옳으며, 우리는 그런 행동을 해야만 한다. 이때  '모든 사람'에는 내가 아닌 사람만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공리주의의 창시자인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 1748~ 1832)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하나로 계산되며 어느 누구도 하나 이상으로 계산되지 않는다."(p62) <벤담 & 싱어> 中


  많은 경우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은 다수결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인식과는 달리 공리주의에서는 다수결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소수의 이익도 고려하는 공리주의지만, 공리주의 원칙대로 살아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한계효용 체감법칙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동일한 재화나 서비스를 소비함에 따라 느끼는 주관적인 만족도는 점차 감소'하게 된다. 때문에, 공리주의 원칙에서 바라본다면, 우리가 치맥을 먹는 대신 아프리카 어린이가 굶주림을 벗어날 수 있도록 원조하는 것이 바람직한 선택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실천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이는 공리주의의 현실적인 한계이기도 하다.

 

 다수결의 원리에서는 단순히 사람들의 수에 따라서 결정을 내리지만 공리주의에서는 각 사람들의 선호하는 정도까지 고려한다. 그러므로 다수결의 원리에서 문제되는 소수 억압이 발생하지 않고, 발생하지 않더라도 심각하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밀(John Stuart Mill, 1806 ~ 1873)의 <자유론 On Liberty>(1859)은 소수자 억압에 반대한 대표적인 책이다.(p64) <벤담 & 싱어> 中


 공리주의에서는 전체 행복이 증대된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부자가 된 사람의 재산을 훔쳐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행위도 용납될 수 있다. 공리주의는 이렇게 사람들이 상식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을 옹호한다. 그런 상황을 옹호한다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의무라는 뜻이기도 하다.(p82)... 공리주의는 지키기 너무나 힘든 것을 우리에게 요구한다.(p84) <벤담 & 싱어> 中


 이처럼 공리주의에서 바라보는 관점은 인류(人類) 보편적인 관점이다. 같은 종(種)에 속하는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의 입장을 헤아리는 것도 이처럼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현실 속에서, 피터 싱어는 한 걸음 더 들어간 논의를 한다. 그의 저서 <동물 해방 Animal Liberation>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평등의 원칙을 동물에도 적용한 것이다. '동물의 평등'에 대해 말하기 전 먼저 그의 관점에 대해 살펴보자.


 도덕 원리라면 보편화가능성(universalizability) 조건을 반드시 갖추어야 한다.(p100)... 싱어는 이성은 끝이 없는 에스컬레이터와 비슷하다는 비유를 자주 든다... 싱어가 생각하는 더 높은 곳은 어디를 말할까? 그것은 우주적인 관점을 말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나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름대로의 욕구와 선호를 가진 수많은 사람들 중 하나일 뿐이다.(p106)... 나의 이익이 다른 사람의 유사한 이익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 이성적(합리적)인 사고다.(p110) <벤담 & 싱어> 中


 피터 싱어에 따르면 우리는 우주(宇宙)적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이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인간과 동물의 구분은 무의미해지게 되고 보편성의 원칙을 동물에게 까지 확대될 수 있다.


 싱어는 자신의 이익에 대한 평등한 고려 원칙을 일관되게 적용하여 동물 해방이라는 주장과 운동을 이끌어낸다. 사람의 피부색이나 성별이 다르다고 해서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 되는 것처럼 어떤 존재가 어느 동물 집단에 속하느냐를 따라 그 존재의 이익을 다르게 고려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p139) <벤담 & 싱어> 中


 피터 싱어는 <동물 해방>을 통해 동물에 대해 더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간을 위해 사육되거나, 실험도구로 쓰이는 동물 역시 사람과 마찬가지로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배려의 출발점으로 피터 싱어는 '채식'을 권하고 있다.


 <벤담 & 싱어>에서는 이처럼 윤리학의 법칙을 보편적으로 적용한다는 면에서 공통점을 가진다. 다만, 공리주의자들은 윤리학의 법칙을 인간으로 한정하여 적용한다면, 실천윤리학에서는 인간을 넘어서 동물로까지 보편적 법칙의 적용 범위가 확대됨을 확인하게 된다. 실천윤리학은 이처럼 형이상학적인 물음을 현실과제에 적용시키기 때문에 철학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또한 많은 반론(反論)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예를 들어 '채식주의 菜食主義, vegetarianism'에 대해 말을 해보자. 동물이 고통을 느끼는 존재이기 때문에 살생을 피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터 싱어는 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주장에 대해 '채식'에 대해 식물도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고 반론할 수도 있다. 아직 논의 중이긴 하지만, 만약 식물도 고통을 느낀다는 주장이 정설이 된다면 그 때 우리는 채식도 중단해야 할 것인가? 


관련기사 : 식물도 통증을 느끼는가 (출처 : 한겨레 21) http://legacy.h21.hani.co.kr/h21/data/L980824/1p3p8o29.html


 이러한 사실 이외에도 현재 공장식으로 사육되는 시스템이 아니면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기 때문에, <동물해방>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일방적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적인 한계가 존재한다. 또한,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벤담의 공리주의 또한 많은 비판을 받아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한계점에도 불구하고 타인(他人), 타자(他者)에 대한 고려를 해야한다는 공리주의와 실천윤리학의 관점은 자신만을 아는 요즘 우리에게 분명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여겨진다. 그리고, <벤담 & 싱어 : 매사에 공평하라>는 그 새로운 관점을 쉽게 잘 요약해서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PS. 사람과 동물이 함께 하는 아름다운 세상을 기대하며 오래 전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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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9: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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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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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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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0: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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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2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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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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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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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8-07-23 14: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함수 같은 것을 이해하려면 다시 수학책을 보고 경제학으로 가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오래전에 찍은 사진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귀한 것이 되는 것 같아요.
그 때로 돌아가서 다시 찍을 수 없으니까요.
오늘도 더운 날씨 계속되고 있어요.
겨울호랑이님,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한 하루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07-23 15:05   좋아요 1 | URL
네 서니데이님 요즘은 에어컨과 선풍기가 없으면 정말 안될 것 같은 더위네요. 에어컨을 오래 틀고 있으면 몸에 별로 좋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끼고 사는 요즘입니다. 서니데이님께서도 건강하게 오늘 하루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지식인마을 30
신혜경 지음 / 김영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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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야민 & 아도르노 :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는 벤야민(Walter Bendix Schonflies Benjamin, 1892 ~ 1940)과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 ~ 1969)을 다룬 입문(入門)서적이다. 프랑크푸르트 학파(Frankfurter Schule)인 두 사람은 대중문화에 대해서 상반된 시각을 보이고 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로 대표되는 20세기을 대표하는 문화양식을 대중문화(大衆文化)라 했을 때, 이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할 것인가? 

 


 먼저 아도르노의 관점부터 시작해 보자.  아도르노는 인간이 자기보존의 목적으로 계몽이 출발되었지만, 점차 자연, 사회, 내적 자연의 지배로 확대되어 가면서 인간 자체의 말살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파악한다.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Max Horkheimer, 1895 ~ 1973)가 사용하는 '계몽 enlightenment'은 신화와 마법의 전제 專制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켜서 자연을 통제하고 지배할 수 있도록 하는 "이성적으로 각성된 사유 양식"을 지칭한다.(p5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애초에 계몽의 출발은 인간이 자연의 위협적인 힘에 맞서서 자신을 보존하고 자연을 지배하려는 데서 시작되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개념은 '자기보존'이라는 개념인데, 아도르노는 자기보존이야말로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법칙이라고 강조한다... 이성적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단 하나이다. 이제 인간은 자연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자연을 지배하는 길로 들어선다.(p53)...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내는 데 성공했지만,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다.(p54) <벤야민 & 아도르노> 中 


 그 결과 인간의 이성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기 위한 수단이 아닌, 사회 지배를 위한 도구로 전락하게 되었는데, 이를 호르크하이머는 '도구적 이성'이라 부른다. 최대 효율을 위해 동일성을 추구하는 도구적 이성에 의한 지배는 대중 문화에서도 이루어지고,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일종의 지배 수단으로 파악한다.


 이제 인간의 이성적 사유는 진정으로 사유할 수 있는 능력, 스스로를 반성하고 비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버리고 어떻게 하면 보다 효율적으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가에만 몰두하는 도구적 이성  instrumental reason 이 되어버렸다.(p78)... 도구적 이성의 기저에 깔려 있는 정신적 원리가 바로 동일성 원리 the princilpe of identity 라는 것이다. 동일성 원리란 주체가 대상을 파악하고 관리하기 위해 서로 다른 대상들을 주체가 가지고 있는 동일한 하나의 형식으로 강제하는 지배 원리다.(p82)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아도르노는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오늘날 철저하게 이윤을 추구하는 일종의 비즈니스가 되었음을 강조한다... 아도르노에 따르면, 문화산업이란 궁극적으로는 인간 주체의 내면적 자연, 그러니까 인간의 감정, 충동, 욕망, 본능, 상상력, 육체 등에 대해서 외적 자연에 가했던 것과 똑같은 폭력을 가함으로써 동일성 원리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지배의 수단이다.(p88)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이에 반해, 벤야민의 대중문화론은 긍정적이다. 벤야민에 따르면 대량생산로 대표되는 20세기의 기술 복제 시대에 대중문화는 일반 대중을 각성시킨다는 것이다. 이를 조금 더 깊이 살펴보자.


 벤야민은 대중문화의 산물이 대중을 기만하고 불구로 만든다고 비판한 아도르노와는 달리,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로서 영화가 몽타주라는 형식 원리를 통해 대중의 충격과 각성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대중을 집단적 주체로 형성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말해 아우라의 붕괴를 특징으로 하는 기술 복제 시대에는 예술의 사회적 기능이 전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p217)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벤야민에 따르면 기술 복제 시대를 거치면서 종래 예술이 가지고 있던 권위(아우라)가 상실되었다. 종교예술로 대표되는 과거와 달리 기술복제시대에 들어, 대량생산이 되면서 예술작품은 희소성을 잃게 된 것이다. 그는 특히 사진과 영화에 주목하면서 '소외'를 통해 대중들은 종래 익숙했던 것들을 새롭게 보면서 새롭게 자각하게 된다고 대중문화를 해석한다. 


 벤야민이 대중문화의 산물을 보다 긍정적인 각도에서 평가한 까닭은 무엇일까? 그는 무엇보다도 오늘날 기술 매체의 발전, 즉 복제 기술의 발전이 예술에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에 주목했다.(p173)... 벤야민에 따르면 예술의 생산 방식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변화는 기술적 복제가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기술 복제 시대의 새로운 예술의 등장은 전통적인 예술에 어떠항 영향을 끼쳤는가? 벤야민은 그것을 한마디로 아우라 Aura의 상실이라고 설명한다.(p175) <벤야민 & 아도르노> 中


 보통 소외라는 개념은 부정적인 의미로 곧잘 이해되지만, 여기에서 벤야민이 사용하는 '소외 alienation' 개념은 브레히트의 '소격 Verfremdung' 개념에서 차용해 온 것으로, 긍정적이고 유익한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다.(p188) ... 소외는 우리가 그저 당연한 것으로 여겨 그냥 지나칠 수 있는 것들을 낯설게 만들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것을 다시 주목하고 세부까지 조명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인간과 대상 사이의 관계를 의미한다.(p189)... 벤야민은 이러한 장이야말로 정치적으로 훈련된 시각의 가능성을 새롭게 열어젖힌다고 보았다.(p191) <벤야민 & 아도르노> 中


  정리하면, 아도르노에게 대중문화는 도구적 이성의 결과로 일종의 프로파간다(propaganda) 수단이지만, 벤야민에게 대중문화는 복제를 통해 대상과의 거리를 좁힐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대중이 새롭게 깨어나는 계기를 만들어주는 수단이 된다. 그렇다면, 두 석학 중 누가 현실을 바르게 바라본 것일까.


[사진] 영화 <토이 스토리 Toystory> 中( 출처 : ttps://www.youtube.com/watch?v=y03qIQciuxQ)


 영화 <토이스토리 2> 에서 주인공 중 하나인 버즈(Buzz)는 자신을 유일한 우주전사로 생각하지만, 마트에 진열된 수많은 '버즈'를 보면서 좌절하는 모습을 보인다. 처음에는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다가 나중에는 다른 버즈를 도와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다는 이야기는 대중문화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생각된다. 외양이 같은 수많은 버즈에 집중하는가, 아니면 각성하는 버즈에 집중하는가가 아도르노와 벤야민 관점의 차이점이라 여겨진다. 


 20세기의 대중문화에는 이러한 양면이 모두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대중문화에 대해 우리는 어떤 관점을 취해야할 것인가. 이에 대한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상황이라 생각된다. 보다 현명하게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이 있는 공부가 필요할 것이다.


   이처럼 <벤야민 & 아도르노>는 대중문화에 대한 두 사상가에 대한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어, 이름만 들어본 이들도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좋은 입문서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 대한 내용을 옮기면서 이번 리뷰를 마친다.


  아도르노에게 "변증법이란 수미일관한 비동일성의 의식"이 된다. 아도르노는 헤겔 Georg Hegel, 1770 ~ 1831 의 변증법에 대해 부정의 부정을 통해 긍정을 산출하는 긍정적 변증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이에 반해 부정의 부정이 긍정으로 넘어가지 않는 것, 즉 사회에서 부정적인 것이 지속되는 한 부정의 부정은 부정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의미에서 '부정 변증법'을 주장한다. 한 마디로 말해 사유의 자기반성을 촉구하는 부정 변증법은 비동일자의 구제를 목표로 한다.(p136) <벤야민 & 아도르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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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1 23: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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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1 23: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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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3: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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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14: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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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22 2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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