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그림찾기 : 찾아라! 크리스마스의 기적」은 제목처럼 아이들을 대상으로 만든 숨은 그림 찾기 책입니다. 사진처럼 예쁜 그림속에 숨겨진 물건 또는 생물을 반복적으로 찾도록 구성된 책 속에서 단순히 숨은 그림 찾기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각 장의 하단에는 찾아야하는 대상과 숨겨진 대상의 갯수가 나옵니다. 예를 들면 ‘개(그림)×3 마리‘ 이런 식이지요. 여기까지는 다른 책들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만, 숨은 그림을 찾으면서 독자들은 책의 특징을 파악하게 됩니다. 복수로 찾아야하는 대상들은 나름의 차이가 있습니다. 크기가 다른 새, 먹다 남은 사과, 치와와와 푸들 등이 각각 같은 범주의 대상으로 묶입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이를 통해 크기, 상태, 종류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를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음을 배우게 됩니다. 물론, 아이들 자신들은 잘 모르겠지만요.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이들은 ‘1+1=2‘라는 수리적 계산을 현실에 적용하는 방법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로 묶을 수 있다는 사실을 통해 ‘다름‘을 자연스럽게 인정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린이 그림책 하나를 가지고 너무 깊게 생각한 것은 아닐까 하면서도, 이 책 속에 담긴 뜻을 나름 찾아보았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읽을 책들이니 이런 고민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면서 저는 어린이 책에 담긴 숨은 의미를 찾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ps. 의도치 않게 포켓몬스터 그림을 자주 그리게 되는 요즘입니다. ‘이상해 씨‘를 그렸는데, 원본 그림과 사본에 많은 공통점이 있길 바라보면서 이번 글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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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나무 2018-08-17 09: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 이번 여름 휴가때 요 비슷한 책 덕분에 조카들은 물론 부모님과도 즐거운 시간을 보냈어요. ㅎㅎ
컬러풀해서 보기에도 즐겁고 은근 다들 집중하면서 찾게 되더라구요. ^^
그나저나 그림실력이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

겨울호랑이 2018-08-17 09:33   좋아요 1 | URL
^^:) 숨은 그림 찾기나 끝말 잇기 등의 놀이는 모두가 함께 할 수 있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설해목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아이가 그림을 그릴 때 ‘아빠보다는 잘 해‘라는 자신감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끄적거려 봅니다. ㅋ

후애(厚愛) 2018-08-17 09: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숨은 그림 찾기 좋아하는데 좀 어려운 책들을 구매해 놓은지 오래 되었는데 조금씩 하고 있습니다.^^
그림을 정말 잘 그리세요!^^
행복한 하루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8-17 10:25   좋아요 0 | URL
저도 아이 덕분에 오랫만에 즐거운 시간을 가졌습니다. 숨은 그림 찾기 책은 여러 권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먼저번에 찾았던 그림을 기억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즐거운 독서를 위해서는 복습을 게을리할 필요가 ㅋ 후애님 부족한 그림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선한 가을 날이 느껴지는 오늘 하루 상쾌하게 보내세요^^:)

2018-08-17 1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7 1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7 1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7 15: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나와같다면 2018-08-17 17: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만 같은 ‘범주‘로 묶을 수 있다는 것! 멋진 능력입니다

연의가 본질을 볼 수 있는 귀한 사람으로 자라나기를 축복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8-17 18:13   좋아요 2 | URL
나와같다면님 감사합니다.^^:) 아마도 저자는 저보다 훨씬 많은 고민을 했을테니, 보다 많은 가르침이 책 안에 담겨있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도 이번에 동화 등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이 간결해보여도 그 이면의 저자 고민은 만만치 않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연의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한층 성장하면서 더 나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저 역시 함께 기원합니다!
 

 <유럽 도자기 여행>은 북유럽, 동유럽, 서유럽의 도자기 문화사를 다룬 기행문이다. 독일 마이센(Messein)으로부터 시작되는 유럽 도자기 역사는 중국의 청화백자(靑華白磁)의 수입으로부터 출발한다. 동양 도자기를 만나기 이전 유럽에는 고온을 견뎌낼 수 있는 흙이 없었기 때문에, 남유럽이베리아에서는 러스터웨어(lusteware)라는 도기가, 네덜란드 등에서는 마욜리카(majorlica)등의 자기가 있었다. 그렇지만, 이들의 아름다움은 청화백자에 비할 바가 못되었다. 

 

 이탈리아든 네덜란드든 유럽은 그릇 제작에 사용한 점토의 특성 때문에 흰색 도기는 꿈도 꾸지 못했다. 유럽은 1710년까지 자기 생산에 필수적인 고령토의 존재를 모르거나 이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러니 1,300℃ 이상의 높은 온도에서 그릇을 굽는다는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고, 그런 온도에서 휘발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안료인 파란 코발트블루의 존재도 잘 몰랐다.(p34)... 이같은 상황에서 매일같이 칙칙한 그릇만 보다가 하얀 눈처럼 우아하기 그지없는 순백색 그릇을 보았을 때 얼마나 설레었을 것인가!(p37) <유럽 도자기 여행 : 북유럽편> 中


 청화백자는 백자, 즉 하얀 자기에 푸른색 안료인 코발트블루로 그림을 그려 장식한 것을 말한다. 청화백자는 지구의 도자기 역사를 바꾸어놓은 주역이다... 유럽 왕실은 모두 청화백자에 눈이 멀어 너도나도 파란 코발트블루의 바다에 빠져들었다.(p34) 그래서 탐미주의를 대표하는 오스카 와일드(Oscar Fingal O'Flahertie Wills Wilde, 1854 ~ 1900)는 청화백자, 즉 쯔비벨무스터(Zwiebelmuster)에 대해 "일상에서 파란색 도자기를 사용할수록 그 깊은 세계에 점점 도달하기 어려워진다"고 표현했다.(p35) <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편> 中


 당시 유럽 상류층은 중국 청화백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으나, 이를 받아들여 본격적으로 자신만의 도자기로 생산하게 된 계기는 일본의 아리타 자기의 수입으로부터였다. 그리고, 이러한 일본의 아리타 자기를 만들어낸 이는 조선의 도공 이삼평이었다. 일본에서 '도자기 전쟁 Ceramic war'으로 부른다는 '임진왜란'의 영향은 이처럼 멀리 떨어진 유럽에도 미치고 있었다.


[사진] 청화백자(출처 : 한국경제매거진)


 임진왜란 (壬辰倭亂, 1592 ~ 1598) 당시 아리타가 속해 있는 사가현(佐賀縣)의 영주였던 나베지마 나오시게(鍋島直茂, 1537 ~ 1619)는 1만2천명의 군사를 이끌고 조선 땅에 쳐들어왔다가 나중에 다시 일본으로 퇴각할 때 수만 명(많게는 10여만 명으로 추산)의 도공을 붙잡아와서 일본에 정착키고 자기를 만들게 만들었다. 이때 일본에 잡혀온 이삼평(李參平, ? ~ 1655)은 아리타에 있는 이즈미야마(泉山)에서 태토를 발견해 이곳에 가마를 만들고 일본 최초의 백색 자기를 만들기 시작했다.(p138)... 1650년대부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 의해 유럽으로 수출된 아리타 도자기는 공식 기록에 의한 것만 해도 100여년 동안 120만여 점이 넘는다고 한다.(p139) <유럽 도자기 여행 : 북유럽편> 中

 

 일본 도자기가 유럽 왕실에서 사랑받을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교체되는 시기에 바닷길을 막는 쇄국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도자기 제품의 수입이 끊기자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일본과 베트남을 새로운 수입처로 선택했고, 결과적으로 아리타 도자기가 유럽에서 각광받게 된 것이다.(p51) <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편> 中


 실크로드(Silk Road)를 통해 중국 자기들이 들어오고, 대항해시대를 맞이하여 동양으로 진출한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대대적으로 일본 자기가 수입되면서 유럽 도자기 산업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되었다. 현재 중국이 경제 성장을 위해 유럽과 미국의 선진기술을 받아들였던 그 방식 그대로 16세기 유럽인들은 모방을 통해 도자기 산업을 발전시켜 나갔던 것이다. 


[사진] 유럽 도자기(출처 : 경향신문) 


 품질이 월등히 좋은 중국 자기들이 쏟아져 들어오게 되자 델프트 마욜리카 산업도 일대 변화에 직면하게 되었다. 눈높이가 높아진 소비자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려면 그들 역시 제품의 질을 높이든지, 기존의 색상을 바꾸든지 무엇인가 변해야 했다. 그러면 델프트 도공들은 과연 처음으로 어떤 일을 했을까? 가장 손쉬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그렇다. 가장 쉬운 방법, 그것은 모방이다... 1640년부터 1800년께까지 델프트 도기들은 거의 대부분 중국 자기를 성공적으로 모방할 수 있었다.(p52) <유럽 도자기 여행 : 북유럽편> 中

 

 동유럽 편에서 누누이 살펴본 바와 같이 마이슨 도자기를 제작하게 한 작센의 군주 아우구스트 1세처럼 샹티이의 루이 앙리 왕자 역시 열렬한 동양 도자기 애호가였고, 특히 일본의 아리타 가키에몬 양식을 좋아했다. 이 점 역시 아우구스트 1세와 똑같다. 그래서 샹티이 공장의 초기 제품은 가키에몬 도자기와 거의 흡사한 '파송 드 자퐁 facon de Japon'이 생산되었다. 이들 제품은 언뜻 보면 어느 것이 아리타 자기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정도다.(p453)  <유럽 도자기 여행 : 서유럽편> 中


 이처럼 유럽 도자기는 중국과 조선, 일본의 영향을 받아 출발하였음에도 이제는 이들 지역으로 제품을 수출할 정도로 발전하게 되었음을 <유럽 도자기 여행>을 통해서 알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동양에서 출발한 도자기 산업이 유럽에서 꽃피운 이유는 무엇일까? 


아르민 클라인(Armin Klein, 1855 ~ 1883)의 인물화 도자기에는 흡사 라파엘전파의 그림속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이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아르민 클라인의 도자기를 보고 있으면 캔버스 대신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림을 다 그린 다음 불에 구워야 한다는 점에서, 화폭이 그리 넓지 않다는 점에서 매우 제한적이지만 도자기의 그림은 깨지지 않는 한 변색되지 않고 영원불멸한 존재로 남아 있을테니 이 얼마나 매력적인가!.(p391) <유럽 도자기 여행 : 동유럽편> 中


 동양에서 도자기는 그릇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으나, 유럽에서는 이를 넘어서 건물 외벽을 장식하는 타일을 비롯하여 도자기 위에 그림을 그리는 용도로까지 활용되었다. 아마도 이것은 신(神)의 절대적 가치를 추구하는 유럽인들의 취향과 도자기의 속성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 아닐까. 반면, 인간의 유한함을 강조하며 건물에 나무(木)을 많이 사용하는 동양 문화권에서는 서양만큼 도자기의 절대성은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용도에 제한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추측해본다.

 

[그림] 극세밀화로 복원된 황룡사 9층 목탑(출처 : 중앙일보)


 그리고, 이러한 수요(需要, demand)의 차이는 자연스럽게 경제주체들의 결합을 유도하고 그 결과가 오늘날의 유럽 도자기 산업과 우리의 차이를 만들어낸 것이라 생각해 본다. 큰 시장(市場)이 있는 곳에는 생산을 위한 여러 요소들이 결합되기 마련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기에, 20세기 소비 사회를 통찰한 장 보드리야르(Jean Baudrillard, 1929 ~ 2007)의 주장은 유럽 도자기 발전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의 독점적 생산은 결코 단순히 재화의 생산만은 아닌, 항상 제(諸) 관계의 (독점적) 생산이며, 여러 차이의 생산이기도 하다. 따라서 거대한 트러스트와 미소(微小)한 소비자, 생산의 독점적 구조와 소비의 '개인주의적' 구조 사이에는 논리적 공범관계(共犯關係)가 존재한다. 왜냐하면 개인이 욕심부리며 '소비하는' 차이는 또한 일반화된 생산의 중요한 영역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오늘날에는 독점의 영향하에서 대단히 폭넓은 균질성이 생산 및 소비의 여러 내용(재화, 생산물, 서비스, 관계, 차이)을 결합시키고 있다.(p119) <소비의 사회> 中


 <유럽 도자기 여행>에서는 이처럼 유럽의 여러 지역의 아름다운 도자기 사진과 함께 도자기의 역사를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유럽 도자기의 발전에는 우리의 아픈 역사 또한 자리잡고 있음도 우리에게 알려준다. 책을 통해 도자기라는 씨앗의 원산지는 동양이었으나, 이를 꽃피운 곳은 유럽이었음을 확인하면서 우리는 도자기 문화를 꽃피운 유럽에 대한 부러움과 함께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것에 대해서 도 생각하게 된다.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은 우리 곁에 있지만,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는 자신을 잘 모르는 것은 아닐까. 


 2018년 광복(光復) 73주년을 맞아 근대화(近代化)라는 이름으로 과거를 부정하는 뉴라이트의 역사관으로는 결코 깨달을 수 없는 우리 자신에 대한 생각을 <유럽 도자기 여행>을 통해 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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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7 16:2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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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09: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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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23: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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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2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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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8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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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남자 & 황제내경 : 하늘, 땅, 인간 그리고 과학 지식인마을 20
강신주 지음 / 김영사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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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강신주(姜信珠, 1967 ~ ) 박사는 <회남자 & 황제내경 淮南子 & 黃帝內經>을 통해 동양 과학사상과 서양 과학사상의 차이와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한의학)의 신체관을 설명하고 있다. 리뷰에서 동양의학에 대해 살펴보기 전에 뿌리가 되는 동양 과학사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도록 하자. 


 서양 근대 자연과학은 측정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양(量)으로 치환한다. 우리가 분석하려는 요소를 제외한 나머지 요소는 주어진 조건으로 가정하게 된다. 'ceteris paribus, all things being equal'라 불리는 이러한 전제를 통해 일반법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되며, 세워진 수식을 통해 수리적 조작을 가능케 한다. 이를 위해서는 대상과 주체의 엄격한 분리가 필요하다.


 서양의 근대 자연과학은 인간의 양적인 경험에 주목한다. 따라서 이 전통은 이를 통해 자연현상을 수학적으로 일반화하려는, 즉 양화하려는 경향을 띠게 되었다. 이와 달리 동양 전통 과학사상은 음양오행론이 보여주는 것처럼 인간의 질적 경험을 직접 일반화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제1성질(수학적으로 다룰 수 있는 것. 크기, 모양, 양, 운동 등)'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결여되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연에 대한 양적인 조작 가능성을 어렵게 만들었다.(p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반면,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대상과 주체가 분리되지 않는다. 기 氣의 정의에서 볼 수 있듯이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을 인정하는 동양 과학의 태도는 관찰되지 않는 사실에 대해 인정하지 않는 서양 과학의 태도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 결과 동양 전통 과학에서는 일반 법칙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하게 되고, 이러한 차이로부터 동양 과학은 서양 과학에게 주도권을 넘겨주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우리는 기를 다음과 같이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기가 비가시적 invisible 이지만 감지할 수는 sensible 있는 것이다'라는 정의이다.(p51)... 우리는 동양 전통 과학사상의 중대한 특징 하나를 읽어낼 수 있다. 즉 기에 대한 경험이나 감지는, 주체와 대상 사이의 분리를 전제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객과화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여기서 객관화되기 어렵다는 표현은 양화되기 어렵다는 것, 즉 측정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한다.(p5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우리는 동양의 전통 과학사상이 기본적으로 '실험'을 통한 반증가능성 falsifiability, 즉 실험을 통해서 반박할 수 있는 가능성 자체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결국 동양 과학사상은 '실험'하고나 '조작'하기보다는 오히려 '설명'하는데 치우쳐 있었다고 할 수 있다.(p39)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이러한 사상적 기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동양의학은 서양의학과 다른 방향을 추구하게 되었다. '편작'으로 대표되는 동양의학은 인체를 '유기체'로 바라보는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관점이 서양의학의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의 극복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이로부터 우리는 동양의학이 주먹구구식 의학이 아니라,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임을 알게 된다.


[사진] 동양 의학과 서양 의학 차이(출처 : http://book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4/13/2013041300268.html)


 동양의학은 우리의 신체를 기계가 아닌 살아 있는 '유기체'로 다룬다. 유기체란 어느 한 부분의 변화가 전체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고, 전체의 변화는 모든 부분의 변화를 낳을 수 있는 통일체를 말하는 것이다.(p15)... 배를 절개해서 내장들을 직접 살펴보고 이것들을 치유하려는 유부 兪跗라는 의사는 서양의학의 해부학적 사유와 매우 유사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 扁鵲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 그러나 이런 해부학적 치료법에 대해 편작은 단호하게 반대 입장을 피력한다.(p1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편작 앞에는 이미 '유부'로 대표되는 '해부학적 의학'이 있었던 것이다. 편작의 새로운 의학이 해부학적 사유를 부정하면서 출현했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것은 동양의학이 해부학에 기초를 두고 있는 서양의학과 대립할 수 밖에 없는 성격을 태생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예견하고 있기 때문이다.(p16)... 동양의학은 어떻게 인간의 몸 안에 오장육부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동양의학도 기본적으로는 해부학적 전통에서 왔다... 그들 역시 몸을 구성하는 각각의 장기를 직접 관찰했고 그것들의 위치를 경험적으로 확인했던 것이다.(p132) <회남자 & 황제내경> 中


 그렇다면, 동양 과학사상에 기반한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과 한계점은 무엇일까? <회남자 & 황제내경>에서는 동양의학의 탁월한 점으로 몸의 기능을 관계를 통해 해석한 점으로 꼽는다. 우리 사회가 유지되는 원리와 질서가 우리 몸에도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보다 보편적인 도 道를 끌어낼 수 있다. 반면, 지금 사회에 적용되고 있는 질서를 통해 자연 nature 自然 법칙을 바라보기에, 혁명적 인식의 전환을 어렵게 만든다. 초기 동양의학이 혁명적 사고의 전환의 결과였음에도, 이후 획기적인 전환점이 없음은 이를 반증한다. 그리고, <회남자 & 황제내경> 에서는 그 예로 뇌(腦)의 기능을 발견하지 못한 동양의학을 들고 있다.


 <황제내경>에서 다른 장기도 물론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중요한 기능을 담당한다. 그런데도 서한시대 동양의학자들이 생명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심, '일차적 중심(위장)'과 '이차적 중심(심장)'을 따로 설정해다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된다. '일차적 중심'이 신체의 내부와 외부 사이의 관계를 상징한다면, '이차적 중심'은 신체 내부의 균형과 조화를 상징한다. 결국 '이차적 중심'은 최종적으로 '일차적 중심'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 이것이 바로 <황제내경>의 탁월할 통찰이었다.(p136)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왜 <황제내경>은 뇌가 정신활동의 근원이라는 것을 통찰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동양의학자들이 정신활동이 직접 장기를 손상한다는 임상적 경험을 직접 추상화해냈기 때문이다.(p137)... 고대 중국인은 경험적으로 사실을 관찰하고 그에 주목했다. 이로부터 그들은 기쁨, 노여움, 두려움, 걱정 같은 정서적 반응이나 사유 같은 지적인 활동이 신체 내부의 장기와 어떤 관련을 맺고 있다고 생각했다. 즉 인간의 정신활동이 장기에 직접 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바로 이 부분에서 오행론이 함축하는 유추논리이 부적절함이 확실하게 드러난다.(p138) <회남자 & 황제내경> 中


 책을 읽고 나면 우리는 이러한 차이를 보이는 동양의학(한의학)과 서양의학 중 어떤 의학이 더 우수하고, 어떤 치료법을 선택해야 하는가하는 문제를 자연스럽게 던지게 된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 앞서 잠시 마케팅 Marketing 조사 기법을 머리도 식힐 겸 살펴보자. 


  <회남자 & 황제내경>을 읽다보면 우리는 마케팅 조사 기법 중 정성 Qualitative 定性 조사와 정량 Quantitative 定量조사를 연관지어 생각할 수 있다. 정량 조사 기법은 객관식 문항을 중심으로 소비자의 의향을 파악하는 분석 방법인 반면, 정성 조사 기법은 개념 도출을 위해 사용하는 분석 방법이다. 전자가 객관화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영향력을 파악하는데 활용되는 방법이라면, 후자는 전혀 새로운 사실, 제품 등의 소비자 수용성을 파악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사진] 정성조사 정량조사(출처 : https://www.weetechsolution.com/blog/strengths-and-weaknesses-of-quantitative-and-qualitative-research)


 이런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일반적인 법칙/치료법을 추구하는 서양의학은 우리가 아픈 상황에 직면했을 때 눈 앞의 치료를 위해서 바람직한 반면, 동양의학은 예방의학적 차원에서 우리가 잘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사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이 이렇게 병원을 이용하고 있기에 별로 놀라운 결론은 못된다.)


 <회남자 & 황제내경>은 이처럼 동양과학과 서양과학 사상 기반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의학의 차이까지를 넓게 바라보고 있다. 어느 의학이 더 우수한가에 대한 질문과 답에는 주관차이가 존재하겠지만, 동양 의학 역시 해부학적 사실에서 출발했다는 점과 인식의 전환이 있었음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회남자 & 황제내경>은 우리에게 전통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심어준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에서 좋은 교양서적이라 생각된다. 마지막으로, '대상 - 주체'와의 관계를 정리한 본문 내용을 살펴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치고자 한다.


 서양의 분리법에서는 내포 intension와 외연 extension이라는 유명한 논리적 개념들이 출현하게 된다. 여기서 내포가 어떤 개념이 함의하고 있는 속성들을 의미한다면, 외연은 그 개념이 가리키는 대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음양 陰陽에 의한 의한 분류법에는 내포와 외연이라는 논리적 관계가 성립될 여지가 전혀 없다. 단지 인상적이고 감각적인 유사성에 의한 유비 analogy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점에서 유비적 사유는 마치 시 詩에서의 '은유'나 '직유'와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p55) <회남자 & 황제내경> 中


PS. '대상-주체'의 관계를 분리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서양과학이라면, 이를 통합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동양과학이라고 정리될 수 있겠다. 그렇다면, 동양과학은 통계학에서 말하는 '공분산 共分散, covariance : 2개의 확률변수의 상관정도를 나타내는 값'을 고려한 과학으로 정리될 수 있겠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우리는 동양과학 사상으로부터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 量子力學, quantum mechanics을 '유비'해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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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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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3: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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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6: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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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0 17: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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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프리쿠키 2018-08-10 22: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다양한 분야에 깊이있는 독서를 하시고,
늘 글도 꾸준히 쓰시는 호랑이님.. 부럽고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좋은 밤 되세요!!

겨울호랑이 2018-08-10 22:48   좋아요 2 | URL
에고. 아니에요. 저는 북프리쿠키님께서 독서 모임을 통해 여러 분야의 책을 깊이 있게 읽고 계시는 모습이 많이 부럽습니다. 한동안 더운 날이 이어진다니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건강한 주말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요즘 아이가 포켓몬스터에 많이 빠져있습니다. 유튜브에서도 포켓몬과 관련한 내용을 즐겨찾아 보고, 인형도 수집하고 있네요. 거의 수십마리의 포켓몬들이 연의 침대에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만 정확한 숫자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중 큰 녀석들만 모아 기념사진을 찍어 봅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아빠에게 녀석들 초상화를 그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딸아이 덕분에 요즘 뒤늦은 미술 공부를 하게 되네요. 포넷몬 캐릭터를 함께 보며 같이 그림을 그리는 것에서 큰 행복을 느끼게 됩니다.

저 역시 부족함이 많지만, 함께 하면서 어린 시절을 돌아보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그리 어렵던 부분이 쉽게 풀리는 경험을 할 때는 작은 기쁨도 느끼게 됩니다. 아마 이런 것을 보며 아이가 부모를 성장시킨다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입추가 지나고 나니 아침저녁으로는 가을 분위기가 조금씩 드러나네요. 이웃분들 모두 건강하게 막바지 더위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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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8-09 01: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악..... 나옹 그림 너무 귀엽네요 ㅎ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8-09 07:43   좋아요 0 | URL
syo님 감사합니다. 보고 그린 것 치고는 많이 부족하지만, 아이를 만족시킬 수 있으니 다행이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목나무 2018-08-09 08: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지난주말 포켓몬에 푹 빠진 조카녀석때문에 정말 다양한 몬스터들을 만났었네요. ㅎㅎ
다음 만날 때까지 포켓몬스터 공부좀 해야겠어요. ^^
그림 멋지십니다!

겨울호랑이 2018-08-09 09:07   좋아요 1 | URL
정말 포켓몬은 오래 가는 장수 캐릭터임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뒤늦게 저도 포켓몬을 공부하게 되네요. 아이 덕분에 동심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부모님들께 이런 수준의 그림으로도 아이들은 즐거워한다는 것을 알려드리고 싶어 그림을 올려봤습니다. 설해목님, 감사합니다.^^:)

아트 2018-08-09 09: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저도 초등학생 때 포켓몬을 좋아했었는데 반갑네요😸 저도 보고 그리는게 어려워서 항상 종이 밑에 원본 그림을 깔고 따라 그렸던 생각이 나요~ 귀여운 그림과 인형 잘 보고 가요 😆

겨울호랑이 2018-08-09 09:09   좋아요 1 | URL
아 그러시군요. 김유나리님께는 포켓몬이 더 남다르게 다가올 것 같네요. 세대 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캐릭터가 포켓몬이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2018-08-09 09: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9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slmo 2018-08-09 10: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우리 아들 어렸을때 포켓몬을 좋아하여 수많은 굿즈들을 사모으고,
무슨 빵 속에 스티커가 들어있어서,
좋아하지도 않는 빵을 사먹고 했던 기억이 나네요.

연의 어린이는 날마다 행복하겠어요~^^

겨울호랑이 2018-08-09 10:54   좋아요 1 | URL
맞습니다. 예전에 국찐이빵, 핑클빵 등등 해서 빵 안에 스티커등이 있었지요. 크지 않지만 함께 하는 것에서 진심으로 기뻐하는 아이의 모습에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지며, 많은 것을 배웁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연의와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봅니다.^^:)

雨香 2018-08-09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첫째가 한때 열심히 포켓몬을 그리다 시들해질 때 쯤
둘째가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

가끔 제가 쟨 누구 진화야 물어보면... ˝아빤, 그것도 몰라!˝ 하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줍니다. ^^

겨울호랑이 2018-08-09 12:26   좋아요 1 | URL
우향님 말씀처럼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에 보이는 부모의 작은 관심이 정말 아이에게 자부심을 주는 것 같습니다.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는 말에서와 같이 아이들 기를 살리는 것은 우향님처럼 눈높이를 같게 하는 것이라 생각하게 됩니다.^^:)

나이니 2018-08-09 11: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아들이 유치원때부터 포켓몬에 빠져서 수백장이 넘는 포켓몬 카드와 포켓몬 관련 보드 게임에 이제는 포켓몬고 어플까지~
이제는 온 가족이 포켓몬과 친구가 된 느낌입니다^^
저희집 포켓몬 대도감 책은 하도 봐서 이젠 너덜너덜 해졌네요~
직접 그림도 그려주시고 좋은 아빠시네요~^^

겨울호랑이 2018-08-09 14:11   좋아요 1 | URL
그렇군요. 나이니님 가정에서는 포켓몬이 가정 캐릭터가 되었습니다. 세대를 관통하는 캐릭터가 있다는 것은 참 아름다운 추억이라 생각합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잘 그린다고 칭찬해주는 딸아이 덕분에 용기내어 그리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cyrus 2018-08-09 13: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이면 우리나라에 포켓몬스터가 들어온 지 10년일거예요. 1999년에 만화가 첫 방영한 걸로 알고 있어요. 연의도 포켓몬스터를 알고 있다니 신기하네요. ^^

겨울호랑이 2018-08-09 14:13   좋아요 0 | URL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요즘 유치원 아이들에게도 포켓몬은 인기에요. 그렇게 본다면 닌텐도에서 캐릭터 관리를 참 잘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수퍼마리오도 그렇고 장수 캐릭터가 제법 있네요.

2018-08-09 2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08: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09: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10 09: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랑크 디쾨터(Frank Dikotter, 1961 ~ )의 인민 3부작은 <문화 대혁명 : 중국 인민의 역사 1962 ~ 1976 The Cultural Revolution : A People's History 1962 ~ 1976>으로 마무리된다. 일반에게 홍위병(紅衛兵)으로 대표되는 문화 대혁명(文化大革命)의 시작은 스탈린(Joseph Vissarionovich Stalin, 1879 ~ 1953) 사후 흐루쇼프(Nikita Sergeevich Khrushchyov, 1894 ~ 1971)에 의한 스탈린 비판과 이를 지켜본 마오쩌둥의 불안감에서 시작된다.

 

 마오쩌둥의 집중적인 집산화 프로그램은 1956년 거대한 역화에 직면했다. 제20차 소련 공산당 대회의 마지막 날인 2월 25일, 니키타 흐루쇼프가 스탈린 정권하에서 재판도 없이 행해진 무자비한 숙청과 대규모 추방, 처형을 비판했다... 몇 개월 뒤 총리인 저우언라이를 비롯한 일단의 인물들이 국영 농장을 비판한 흐루쇼프를 인용하며 집산화 속도를 견제하고 나섰다. 바야흐로 마오쩌둥이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나는 듯 보였다.(p39)  <문화대혁명> 中


 권력을 잃어버릴 위기에 처한 마오쩌둥은 자신을 향한 비판의 칼날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생겼다. 특히, 그에게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라는 아픈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관심 전환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였다. 그리고, 그는 젊은이들과 문화, 예술부문에 대해 주목하게 되었다.


 더 이상 대기근을 부정할 수 없게 되었을 때 마오쩌둥이 취한 첫 번째 행보는 기근의 책임을 계급의 적에게 돌리는 것이었다.(p53)... 대약진 운동 이후로 힘을 얻어 온 반동적인 이데올로기에 대응하려면 탄압만으로 부족했다. 마오 주석은 혁명의 계승자인 젊은이들을 교육하는데 특히 관심을 기울였다.(p79)  <문화대혁명> 中


 중앙 문화 혁명 소조에는 장칭과 캉성, 야오원위안과 장춘차오를 비롯한 주석의 몇몇 심복들이 포함되었다. 세력 균형이 바뀔 때마다 그 구성원은 달라지겠지만 문화 대혁명이 지속되는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앙 문화 혁명 소조는 계속해서 태풍의 눈으로 남을 터였다... 국제 어린이날이기도 한 6월 1일에 중앙 문화 혁명 소조가 첫 번째 폭탄을 투하했다.(p114)... 노동자를 속이고 기만하고 멍청하게 만들려는 부르주아의 대변자들을 척결하라는 외침과 함께 문화 대혁명이 공식적으로 시작되었다.(p115) <문화대혁명> 中


 그렇지만, 마오쩌둥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는 직접 몸을 일으켜 움직이는 대신 측근들과 인민을 이용한다. 먼저, 자신의 측근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행사하면서 공작대를 만들어 냈다. 공작대에 의해 일련의 사람들이 반동, 반프롤레타리아로 몰리게 되자, 이번에는 마오쩌둥은 반대편에 서면서 공작대 해산을 지시하게 된다. 마오쩌둥에 의해 혐의를 벗게 된 이들은 마오쩌둥의 열렬한 추종자로 변신하게 되는데, 이들이 후에 홍위병의 중추가 된다. 마치 <삼국지 三國志>에서 조조(曹操, AD 155 ~ 220)에게 황건적을 토벌하면서 얻게 된 30만 청주병(靑州兵)이 하북(河北) 제패의 기반이 된 것처럼, 이들 홍위병들은 문화대혁명 기간 중 마오쩌둥에게 큰 힘이 되었다.

 

 류사오치와 덩샤오핑은 당이 늘 하던 대로 나아가기로 했다. 요컨대 공작대를 파견해서 문화 대혁명을 이끌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주석의 동의가 필요했고 그래서 항저우로 날아갔다. 주석은 계속 애매한 태도를 보이면서 명확한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주석은 편안히 앉아서 중국이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과정을 지켜볼 참이었다. (p120) <문화대혁명> 中


 당에 반대하는 중등학교나 대학교의 시위를 그대로 묵인할 경우 반혁명 세력이 미쳐 날뛰도록 방치한다고 마오쩌둥이 자신을 책망할 수 있었다. 반대로 가장 노골적인 비평가들에게 재갈을 물릴 경우에도 이번에는 주석이 태도를 바꾸어서 '대중을 억압한다'라고 비난할 수 있었다.(p133) <문화대혁명> 中


 주석은 공작대를 해체하라고 요구했다. 공작대는 사과 성명을 내고 해산했다. 반역자로 몰렸던 학생들은 혐의를 벗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오쩌둥을 그들의 해방자로 여겼다. 1966년 7월 29일 인민대회당에서 공식 발표가 이루어졌다. 이제 그곳에는 중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참가한 1만여 명의 학생들이 북적거리고 있었다.(p131)... 여름 동안 '우경 세력'과 '반동분자'로 고발되었던 사람들이 이제 주석을 중심으로 뭉쳤다. 공작대의 손에 명예가 훼손되고 감금을 당했던 사람들은 한때의 가해자들을 향해 복수에 나섰다.(p135) <문화대혁명> 中


  복수심에 불타는 홍위병은 과거로부터 이어온 모든 것을 인습(因習)으로 규정하고, 과거와의 단절을 선언하게 된다.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 대혁명의 수많은 파괴가 이때 발생하게 되었다.  짧은 기간 이루어진 파괴였지만, 문화 혁명이 끼친 영향은 컸다. 오랜 역사 전통과 단절된 중국이 죽(竹)의 장막을 걷고 세계와 교류하기 위해서는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사진] 문화 대혁명(출처 : 한계레)


  홍위병이 진정한 조직으로 행동에 나선 것은 구(舊) 사회의 유물을 파괴하려는 운동을 통해서였다. 8월 18일에 마오 주석과 나란히 연단에 모습을 드러낸 린뱌오는 학생들에게 '착취 계급의 모든 낡은 사고와 낡은 문화, 낡은 전통, 낡은 관습'을 타파하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촉구했다... 전통이란 산 사람에게 계속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과거의 죽은 손이었고 완전히 박살 내야 할 어떤 것이었다.(p150) <문화대혁명> 中


 낡은 세상을 파괴하려는 폭력 사태는 이삼 주 남짓하게 지속되었지만 그 파장은 오래갔다... 남녀를 불문하고 모두 검소한 옷차림을 선호했으며 파란색이나 회색 면으로 된 군복과 검은색 헝겊신을 주로 선택했다.(p169)... 예술과 공예, 산업 부문이 완전히 전멸했다... 문화 대혁명은 산업 분야 곳곳에서 파장을 일으켰다. 장난감이나 원단, 화장품, 가정용품부터 도자기까지 모든 제품은 상표와 포장, 내용에서 봉건적인 과거의 흔적을 지울 필요가 있었다.(p170) <문화대혁명> 中


 <문화대혁명>에서는 홍위병에 의한 파괴 이후에도 문화 대혁명 시기의 여러 사건들이 서술되어 있다. 홍위병의 세력이 위축된 이후 군대의 등장과 소련과의 국경 분쟁, 대오 정화 운동, 상산하향 운동을 통해 문화대혁명이 중국 전체로 퍼져나간 과정과 사회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외국과의 분쟁이 <문화 대혁명>에서 펼쳐진다.


  이처럼 <문화 대혁명>에서 저자는 문화 대혁명 전후 상황에 대해 독자에게 알려 준다. 저자인 프랑크 디쾨터는 흐루쇼프의 수정주의 등장으로 스탈린주의자였던 마오저뚱이 느꼈을 불안감과 국면 전환의 필요성, 마오저뚱의 모호한 태도, 인민들의 복수가 한데 얽혀져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문화 대혁명으로 파악하고 있다. 3부작의 다른 저작과 마찬가지로 문화 대혁명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은 비판적임을 책 전반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인민 3부작은 문화 대혁명이 중국에 미친 영향을 마지막으로 마무리된다.

  

 문화 대혁명 말기에 농촌에서 널리 퍼졌던 은밀한 관행들이 이제는 완전히 활성화되었고 농민들은 가족농으로 회귀하거나, 환금 작물을 재배하거나, 개인 소유의 상점을 운영하거나, 공장에서 일하기 위해 도시로 향했다. 결과적으로 농촌의 탈집산화는 보다 많은 농촌 인력을 해방시켰고 향진 기업 붐을 촉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p492) <문화대혁명> 中


 현재 중국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에서 일하는 하급 이주 노동자인 농민공(農民工) 문제가 큰 사회 불안 요인 중 하나이지만, 이들 농민공의 저렴한 노동력 제공이 현대 중국 성장 밑거름이 되었다는 측면에서 바라본다면, 최근 중국 경제 성장 역시 문화 대혁명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게 된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 많은 부정적인 영향에도 불구하고, 문화 대혁명을 절대적으로 실패한 정책으로 볼 것인가하는 의문점을 던지게 된다. (긍정적인 면도 약간 있다는 뜻이지, 문화 대혁명 전체를 미화하는 것은 아니다.)


[사진] 농민공 실직자 문제(출처 : 아시아 투데이)


 이제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을 마무리 하자. 

 

1부인 <해방의 비극 1945 ~ 1957>에서는 마오쩌둥이 중국 대륙을 석권한 후 국민당 정부의 잔재를 지우기 위한 숙청이 주로 다뤄진다. 2부인 <마오의 대기근 1958 ~ 1962>에서는  빠른 시간 내 자본주의 국가를 따라잡기 위한 대약진 운동과 이의 실패가 그려지며, 마지막 3부에서는 <문화 대혁명 1962 ~ 1976>에서는 대약진 운동의 실패 원인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일어난 내전(內戰)인 문화 대혁명과 마오쩌둥의 사망을 서술한다. 


 인민 3부작의 특징은 개별 사건의 상세한 제시가 될 것이다. 비교적 최근 공개된 사례를 시기별로 서술하는 방식으로 책이 진행되기 때문에 독자들은 보다 생생한 체험을 경험하게 된다. 인민 3부작에서 다루는 사례를 대부분이 비참하다. 이 때문에 책을 읽다 보면, '인간이 무엇이며, 이념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절로 던지게 된다.  그렇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다른 곳에 있다고 여겨진다. 


 오히려 책이 끝난 지점으로부터 우리는 다시 되짚을 필요가 있다. 인민 3부작에서는 1989년 천안문 사태를 마지막으로 끝나지만, 이후 오늘날 미국과 G2를 이루는 강대국으로 서는 시간까지 연결고리를 우리는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책의 행간 속에서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다. 


 피비린내 나는 숙청과 무모한 정책 수행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발생하지만, 그 속에서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이들은 정치가들이다. 정작 비참한 현실에 직면한 인민들은 오히려 이러한 현실에 담담히 대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음을 우리는 역사의 기록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마오쩌둥의 죽음 소식을 들은 한 사람의 인터뷰 내용 속에서 우리는 묵묵하게 시대를 살아가는 인민의 모습을 찾게 된다.


 사람들은 사적인 자리에서 그다지 회한을 드러내지 않았다. 윈난 성의 성도 쿤밍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가게마다 술이 매진되었다. 한 젊은 여성은 자신의 아버지가 가장 절친한 친구를 초대한 다음 문을 걸어 잠그고 집에 있던 유일한 포도주를 개봉했다고 회상했다. 다음 날이 되자 그들은 공공 추도식에 참여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너무나 슬프게 통곡했다. (아직 어렸던 나는 어른들의 표정 변화에 어리둥절했다. 전날 밤 그렇게 행복해했던 아버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너무나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p483) <문화 대혁명> 中 


 우리는 인민 3부작을 통해 1945년 ~ 1976년의 비참한 시대를 살았던 중국 민중들의 고통을 확인하게 된다. 동시에 어려웠던 이념과 배고픔의 시기를 살아낸 이들의 축적된 힘이 오늘날 중국을 만들었음도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이처럼 프랑크 디쾨터의 <인민 3부작>은 중국 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를 보여주면서도, 인간의 삶 또한 잘 묘사하기 때문에 일독(一讀)할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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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06 23: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6 23: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7 10: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07 1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NamGiKim 2018-08-11 19: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안읽어 봤지만, 너무 부정적으로만 서술했습니다. 이 책 빠는 수꿜이 있는거 보고 좀 읽기 싫어졌던 기억이.ㅋ 마오와 현대 중국을 알기 위해선 이 책보단 마오쩌둥 평전이 나았던 것 같네요.

겨울호랑이 2018-08-11 20:02   좋아요 2 | URL
말씀하신대로 저자가 중국공산당 통치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 거 있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그래서 보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서는 이와 관련한 다른 관점의 책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화혁명 역시 장점과 단점이 공존하겠지요. 다만, 누구에게 장점이었는지, 그 주체는 누구인지에 대한 독자의 기준은 스스로 세워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NamGiKim 2018-08-11 20:06   좋아요 1 | URL
저 또한 대약진 운동과 문화대혁명을 비판하는 쪽입니다. 네 여러 책을 보며 해석해야 한다는 호랑이님의 주장에는 동의합니다. 전 개인적으론 이 책 1권의 제목부터 좀 맘에 안들었습니다. ㅎㅎ 많은 사람들에게 읽더라도 좀 비판적으로 읽으라고 권해주고 싶은 책이에요.ㅎ

겨울호랑이 2018-08-11 20:11   좋아요 1 | URL
인민 3부작의 전체 구성이 저자의 역사 해석과 이를 뒷받침하는 예시로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보다 실감나게 읽히긴 합니다만, 극단적인 사례를 제한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드는 부분 또한 확인하게 됩니다.^^:)

징가 2018-08-27 10: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사는 역사가의 세계관을 반영할수밖에 없다는 E.H.Carr 의 견해를 전제로 읽는다면 별 문제없다고 봅니다 다만 에드가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 같은 책도 같이 읽어본다면 중국의 근현대사를 보다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수 있지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겨울호랑이 2018-08-27 12:04   좋아요 0 | URL
네 민정식님 말씀에 공감합니다. 사람마다 자신만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고, 모든 일에는 빛과 어둠의 양 측면이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절대적인 ‘역사적 의미‘란 존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과제겠지요. 민정식님께서 추천해 주신 <중국의 붉은 별>은 제목만 들어봤고,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네요. 다만, 에드가 스노가 <아리랑>의 저자 님 웨일스의 남편이라는 사실은 겨우 알고 있었습니다. 마오쩌둥을 가까이서 지켜본 이의 관점은 또 다르겠지요. 말씀을 들은 김에 챙겨놓아야겠습니다. 민정식님 좋은 책 추천에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