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위험에 처해 있는데, 이는 영국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Anthony Giddens, 1938 ~ )에 따르면 적어도 어느 정도는 세계화 때문이다. 그는 근대성이 정부와 개인들이 기후변화 같은 세계적 위험에 직면하는 '질주하는 세계'를 낳았다고 믿는다... 근대성의 세계화와 그 결과는 인류 문명의 새로운 단계를 나타내는데, 기든스는 이를 '후기근대(late modernity)'라고 부른다. 후기근대의 생활이 때론 유익하고 신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개개인은 새로운 불확실성에 직면해야 하고, 추상적인 체제를 신뢰해야 하며, 새로운 문제와 위험을 헤쳐나가야만 한다.(p148)... 기든스는 심각한 기후변화의 피해에서 벗어나려면 전 세계가 지금부터 즉시 과격할 정도의 획기적인 온난화 대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기든스는 미래를 낙관한다. 그는 첨단기술 사회를 낳은 바로 그 인간 독창성이 탄소 방출 절감을 위한 혁신적 해결책을 찾는 데 쓰일 수 있다고 믿는다.(p149) <사회학의 책> 中


 앤서니 기든스는 근대의 결과로 세계화가 진행되었고, 이의 부산물로서 기후변화라는 위기가 초래되었다고 주장하면서, 문제 해결을 위해 급진적인 해결을 주장하고 있다. 동시에, 기후 변화로 초래된 위기는 인간의 독창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 또한 펼친다. 이러한 생태 문제에 대한 기든스의 입장은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도 일관되어 나타나고 있는데, 이번 페이퍼에서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Beyond Left and Right>와 <제3의 길 The Third Way>을 통해 기든스의 관점을 살펴보고자 한다.

 

 생태학적 위기는 이 책의 핵심이기는 하지만 비정통적인 방석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생태학적 위기 및 그와 관련하여 발생한 여러 철학과 운동은 근대성의 표현이다. 근대성은 전 지구화 추세에 따라 그리고 스스로 자신에게 등을 돌리게 됨에 따라 한계에 도달하게 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당연히 새로운 전략들과 계획들이 요구되기는 하지만 그에 따라 제시될 대부분의 실천적, 윤리적 고찰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p23)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1994년 출간된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통해 현재 사회의 인위적 불확실성(manufactured uncertainty)이라 칭하면서, 전 지구화, 탈전통화, 사회적 성찰(social reflexivity) 등이 불확실성을 가속화 시킨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와 같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무엇일까?


 삶의 정치문제는 전 지구화(globalization)와 탈전통화(post- traditional)가 결합된 영향력의 결과로서 중요성을 띠게 된다. 전 지구화와 탈전통화 과정은 서구적 의미를 강하게 띠고 있으나 전 세계 국가들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포괄적으로 볼 때 급진적 정치틀은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네 가지 근대성 범주와의 연관 속에서 발전된다. 절대적/상대적인 빈곤과의 전쟁, 환경 파괴의 구제, 전제권력에 대한 대립, 사회적 삶에서의 강제력과 폭력의 역할 감소 이것들이 유토피아적 현실주의의 지향점이다.(p272)... 내가 해석한 생태학적 위기는 전 지구화 되어가는 세계에서 본질적으로 도덕적 의미의 위기를 의미한다.(p273)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에서 제기한 현대 사회의 문제에 대해 기든스는 자율성과 의존성의 결합, 연대성 증진, 삶의 정치 확대 등을 대화민주주의(dialigic democracy)의 방법을 통해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이러한 그의 관점은 환경 문제를 인간의 독창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그의 낙관적인 전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


 사회적 연대성의 재건은 경제영역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삶의 영역에서 조화로운 자율성과 상호 의존성을 결합시키는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탈전통사회에서 연대성 증진은 능동적 신뢰(active trust)로 이름 붙일 수 있는 것에 달려 있다. 이것은 타인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책임의 회복과 연결된다.(p26)... 삶의 정치(life politics)는 삶의 기회의 정치가 아니라 삶의 스타일의 정치이다... 능동적 신뢰는 발생적 정치(generative politics)의 개념을 포함한다. 발생적 정치는 사회의 전반적 관심과 목표라는 맥락에서 개인과 집단이 무슨 일인가를 발생시키도록 하는 정치이다.(p28)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그렇지만, 이러한 인류적 과제 앞에 기존의 정치사상들은 과거와 달리 변화되고 있다. 보수주의는 급진화되고, 사회주의는 보수화되면서, 신자유주의는 그 모순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이 기든스의 진단이다. 그리고, 저자는  1998년 출간된 <제3의 길>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방향을 제시한다. <제3의 길>을 통해 저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체제는 무엇일까? 이를 살펴보기 전에 그가 추구하는 방향을 먼저 살펴보자.


 보수주의는 경쟁자본주의와 자본주의가 야기하는 경향인 극적이고 원대한 변동과정이라는, 이전 같았으면 거부했을 면들을 다소 갖고 있다... 보수주의가 급진화된 것과는 대조적으로 사회주의는 보수화되었다.(p14)... 좌파 급진주의자들은 또 다른 방향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다. 페미니즘, 생태학, 평화와 인권에 관련된 새로운 사회운동이 그것이다.(p15)... 우파는 급진적으로 전환된 반면 좌파는 보수적 기질을 보인다. 복지국가적 특성들을 보존하려하는 것 등이 그 예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내적으로 모순적이고 이 모순은 점점 더 흔하게 발견된다. 한편으로 신자유주의는 전통에 대해 적대적이고 곳곳의 전통을 소멸시키는 주요 동인의 하나이며 시장과 공격적인 개인주의 증진의 결과이다. 다른 한편 신자유주의는 정당성을 위해 그리고 보수주의와의 유착을 위해 국가, 종교, 성, 가족의 영역에서 전통의 보존에 의존한다.(p22)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를 통해 생산성주의를 자본주의와 연계시키고 이를 비판한다. 조화로운 사회를 이루기 위해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이 생산성주의라고 했을 때, 내적으로 모순을 가지고 있는 신자유주의사상은 결코 답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또한, 급진화된 보수주의나 보수화된 급진주의 역시 불확실한 상황에서 우리의 과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하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기든스가 제시한 개념이 '제3의 길'이다.


 이상적 지향으로서의 탈결핍사회 개념과 생산성주의 비판은 이러한 관점에서부터 도출된다. 간단히 말해서 탈결핍사회는 더 이상 생산성주의를 지배적 규칙으로 삼지 않는 사회이다. 나는 생산성주의를 노동이 자율적인 사회, 경제발전 기제가 개인의 성장과 타인의 조화를 이루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목표를 대체하는 사회의 핵심으로 규정한다... 생산성주의는 자본주의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러나 생산성주의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사회주의 사상과는 아주 다른 정책을 취해야 한다.(p274)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中 


  기든스는 <제3의 길>을 통해 정부와 시민사회의 조화로운 협력을 강조하면서, '신혼합경제'체제를 주장하고 있다. '규제완화'와 '작은 정부'를 말하는 우파와 '복지 사회'를 주장하는 좌파를 넘어선 새로운 길이 기든스가 주장하는 제3의 길이다. 


 국가와 정부의 개혁은 제3의 길 정치의 근본 방향을 설정하는 원칙이어야 한다. 즉 국가와 정부의 개혁은 민주주의를 심화시키고 확장시키는 과정이어야 한다. 정부는 공동체의 복원과 발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시민사회의 행위 주체들과 동반자로서 활동해야 한다. 이 동반자 관계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내가 신혼합경제(new mixed economy)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다.(p125)... 제3의 길은 '정부를 적이라 말하는' 우파와 '정부가 해답이라고 말하는' 좌파를 넘어서서 국가를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p127) <제3의 길> 中


  기든스가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와 <제3의 길>을 통해 새로운 정치방향을 제시한 지도 벌써 20여년이 넘었지만,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와 이를 둘러싼 문제를 돌아본다면 기든스의 이론을 낡았다고 비판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림] 새정부 경제정책 기본 방향 (출처 : 경북일보)


 경제 문제에 있어 소득주도 성장인가, 혁신주도 성장인가 하는 문제를 양자택일(兩者擇一)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일부의 문제 인식과 정치 성향을 '진보', '보수'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록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기든스의 조언은 여전히 유효다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저자가 강조하는 '제3의 길'의 여섯 가지 중심 과제를 마지막으로 이번 페이퍼를 갈무리한다.


 저는 특히 제3의 길을 이루는 여섯 가지 중심 과제를 강조합니다. 첫째는 정부의 재창조입니다. 둘째는 시민사회를 재구성하는 것이며, 셋째는 정부의 규제 완화와 민영화등을 통하여 시장 중심적인 신혼합경제를 이끄는 과제입니다. 넷째는 인적 자원의 개발과 위험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처방으로 복지체제를 개편하는 것입니다. 다섯째는 생태환경적 현대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여섯째는 세계적 민주주의를 관철할 수 있는 세계적 관리운영 체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p274) <제3의 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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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23: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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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2 23: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5 1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9-05 13: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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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철학산책 - 인류의 정신세계와 종교문화의 보고
이태승 지음 / 정우서적 / 2007년 7월
평점 :
품절


 <인도 철학 산책>은 인도 철학의 흐름을 알기 쉽게 정리한 입문서다. 이에 따르면 오랜 기간 걸쳐 형성된 인도 철학은 전형적인 변증법(辯證法, dialectics)적 구조를 가지고 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는가의 여부에 따라 인도철학은 크게 두 파(派)로 구분할 수 있다.


 인도에서 전개된 철학을 말할 때 중요한 기준을 제공하는 것이 베다(veda)와 우파니샤드(Upansad)에 나타나는 철학사상이다. 베다는 고대인도 아리아인에 의해 만들어진 종교문헌이며, 우파니샤드는 베다문헌의 핵심적인 사상과 철학을 담고 있는 문헌이다.(p18)...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권위와 전통을 인정하는가의 여부와 그 핵심적인 개념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는가의 여부에 따라 인도철학은 유파(有派)라는 의미의 아스티카(Astika)와 무파(無派)라는 의미의 나스티카(Nastika)로 나누어진다.(p19) <인도 철학 산책> 中


 여기에서 말하는 <베다>와 <우파니샤드>의 권위는 크게 '브라흐만'과 '아트만'이라는 존재로 요약될 수 있을 것이다. 거칠게 표현해서 자연법칙인 '브라흐만'과 사회법칙과 심리학의 요소가 있는 '아트만'을 깨달아 카르마(karma)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아스티카가 추구하는 바였다. 반면, 이러한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 나스티카의 입장이다.


 철학적 사색을 통해 우주자연의 근본원리로 발견된 것이 브라흐만(Brahman)이고, 이 브라흐만은 우주자연의 궁극적인 원리 혹은 근원적인 힘으로 여겼다(p39)... 이 브라흐만은 우주자연은 물론 인간 삶의 근원적인 이치를 알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이다. 이와 동일한 근원적인 요소를 인간의 내면에서 발견한 것이 아트만(atman)으로, 아트만을 알게 되면 인간은 고(苦)에서 벗어나 해탈을 이루게 된다.(p40) <인도 철학 산책> 中 


 유파란 베다와 우파니샤드를 존중하고 받들며 그것들의 중심 개념을 인정하는 사상전통을 가리킨다. 이러한 사상전통을 대표하는 것이 오늘날 6파 철학으로 불리는 상키야, 요가, 바이쉐쉬카, 니야야, 미맘사, 베단타의 여섯 학파이다... 유파 곧 아스티카로 불리는 정통철학에 반대하는 새로운 철학적 전개가 무파 곧 나스티카라 불리는 비정통 철학이다. 여기에 속하는 철학사상으로는 유물론, 불교, 자이나교를 들 수 있다.(p19) <인도 철학 산책> 中


 반면, 나스티카의 대표 사상인 불교철학에서는 절대적인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끊임없는 성찰을 통해 업(業 Karma)를 소멸시키는 것을 강조한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자이나교(Jainism) 역시 고행(苦行)을 통한 업(業)의 소멸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무파의 입장에 서 있다고 하겠다.


 연기(緣起, Pratityasamutpada : 인간의 심신 心身 일체의 삶이 서로 관련되어 존재한다는 것)적인 삶에 대한 통찰을 통해 얻은 지혜로 고(苦)를 소멸시키는 것이 붇다의 근본적인 가르침이다. 여기에는 브라흐만이나 아트만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란 있을 수 없다. 브라흐만이나 아트만과 같은 개념은 연기의 이치를 모르고 고(苦)에 속박된 인간이 상정한 것이며, 따라서 사람들은 연기의 이치를 아는 지혜를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p71) <인도 철학 산책> 中


 절대 존재인 '브라흐만'과 '아트만'의 인정 여부에 따라 철학의 유파에 따라 유파(아스티카)와 무파(나스티카)로 나눈다면, 이들을 각각 정(正)과 반(反)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이 만나는 합(合)의 위치에 있는 것은 '힌두교'라 여겨진다.


 힌두교(Hinduism)는 베다 우파니샤드 이래 브라만의 종교전통을 바탕으로 하고 힌두철학을 교리적 근간으로 하여 형성된 종교문화현상이다.(p157)... 힌두교가 지니는 종교적 특성으로 꼽을 수 있는 것은 강력한 포용과 수용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포용력과 수용력은 특히 비슈누(Visunu)신에 대한 신앙에서 더욱 잘 나타난다.(p158)... 불교의 개조인 붓다도 비슈누신의 화신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종교문화의 형태로 불교를 힌두교 속에 받아들이고 있는 모습이다.(p159) <인도 철학 산책> 中


 이처럼 우리는 힌두교 교리 안에 녹아있는 유파(아스티카)와 무파(나스티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기에, 힌두교가 인도 종교에 있어 합(合)의 위치에 있다고 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이라 여겨진다. 이렇게 인도 철학을 종합한 힌두교지만, 뒤이어 전파된 이슬람의 영향으로 인도 사회는 또다시 변화하게 되었음을 <인도 철학 산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도 철학 산책>은 인도 철학 입문서라 하기에는 내용적으로 다소 가볍게 느껴겨진다. 때문에, 많은 내용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인도 철학의 전체적인 틀을 잡기에 좋은 책이라 생각된다. 


 비록 책의 내용은 가볍지만, 이 안에서 담겨진 인도 철학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 않음을 확인하게 된다. 이는 인도 철학안에 함께 녹아 들어가 있는 동서양 철학 때문이라 생각된다. 예를 들면, 우리는 힌두교 사상안에서 기독교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 교리를 떠올릴 수도 있으며, 동시에 카르마라는 개념을 통해서 동양의 주역(周易)의 순환론적 시간관을 느낄 수 있다. 고대 헬레니즘(Hellenism) 문화권 아래 있으면서 동시에 중국과 교류했던 문화 중심국으로서 인도의 역량을 우리는 철학에서도 확인하게 된다.


[사진] 트리무르티(출처 : 위키백과)


 힌두교의 신들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삼위일체(三位一體, Trimurti)로 표현되는 브라흐마(Brahma), 비슈누(Visunu), 쉬바(Siva)이다. 이 중 브라흐마신은 우주의 창조를 담당하며, 비슈누는 우주의 전개와 지속을, 쉬바는 우주의 파괴와 소멸을 담당한다... 불이론(不二論) 베단타의 견해에 따르면, 고차원의 유일 전래의 브라흐만이 저차원의 상대적인 모습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곧 신들을 포함해 존재하는 일체의 것들은 절대적인 브라흐만이 그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그 본질은 모두 동일한 브라흐만이다.(p158) <인도 철학 산책> 中


 또한, 아스티카와 나스티카로 구분되는 인도 전통 철학의 결합과 외래사상인 이슬람교의 대립은 우리나라에서 무속신앙과 불교의 결합과 기독교의 대립 양상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인도 종교사가 우리에게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도 철학 산책>을 통해 다음에 읽을 인도 철학의 큰 틀과 몇 가지 물음은 이정도로 정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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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8-08-29 20:4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독서의 끝판왕인 인도철학까지 가셨습니다.
솔직 부럽습니다. ^^
거의 모든 책이 식상하고 재미없을 때 종국 도달하는 책이 불교와 인도철학이라고 배웠습니다. ^^ 전 언제 이런 책 읽을 날 올지 궁금합니다. ^^

겨울호랑이 2018-08-29 21:10   좋아요 2 | URL
에고... 그렇다면 제가 실수로 번지수를 잘못 찾아갔네요. 그 전에 읽을 책이 많은데 잘못 기웃한 것 같습니다.^^:)

북다이제스터 2018-08-29 21:13   좋아요 2 | URL
별말씀을요. 전 단지 부러워서... 제겐 넘 어렵고 가당치 않아서 부러워 드린 말씀인데.... 죄송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08-29 21:20   좋아요 1 | URL
아니에요^^:) 저야말로 분에 넘치게 「마하바라따」를 들고 있습니다만, 이 양반들 스케일이 이만저만 큰게 아니라 아주 혼쭐이 나고 있습니다 ㅜㅜ 인도가 끝판왕이라는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에 적극 공감합니다^^:)

2018-08-29 23: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0 0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classy 2018-08-29 23: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글 잘읽고 갑니다.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이신 이원복 교수님께서 추천해 주신 ˝인도 인사이트˝가 발간되었습니다. 알기 쉬운, ˝먼나라 이웃나라˝ 스타일의 나래티브로 힌두교와 불교의 관계를 포함, 인도에 대한 소개를 쉽게 꾸민 책인데, 한 번 추천 드려요

겨울호랑이 2018-08-30 09:49   좋아요 1 | URL
classy님 감사합니다^^:) 추천해주신 책도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18-08-30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0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12: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31 13: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살아가며 어떤 일에서든 베팅하는 마음가짐으로 생각하면 의사결정의 질을 높일 수 있다. 결과의 좋고 나쁨이 의사결정을 잘하느냐 못하느냐에 따른 직접적 산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확실하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을 갖는지 알아낼 수 있다. 미래를 그려내는 전략을 배우고, 뒤늦게 반응하는 식으로 다급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경우를 줄이며, 비슷한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다른 사람들과 인맥을 쌓고 유지해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을 개선시키게 된다. 마지막으로 과거와 미래의 나 자신을 동원해 감정적 의사결정의 수를 줄일 수 있다.(p12)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Making Smarter Decisions when you don't have all the facts>는 불확실한 현실 속에서 효과적인 의사 결정을 내릴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다루고 있는 책이다. 책의 많은 내용이 포커(Poker)를 통해 얻은 저자 애니 듀크(Annie Duke)의 경험에서 비롯되었지만, 그 내용을 들여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행동경제학의 원리를 담고 있음을 확인하게 되었다. 그래서, 이번 페이퍼에서는 보다 학술적으로 행동경제학을 다루고 있는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 추단과 편향 Judgment under Uncertainty : Heuristics and Biases>과 함께 책의 대강을 살펴보고자 한다.  


 보다 나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 먼저 의사결정자들은 지난 결정에 대해 돌이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과거 내린 결정이라는 경험을 통해 의사결정자들은 한 단계 나아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기 때문에 이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지만, 과거를 돌아보는 것에는 우리가 빠지기 쉬운  두 함정이 있는데, 그 중에서 사후확증편향을 먼저 살펴보자.


 사후확증편향 hindsight bias이란 어떤 결과가 나온 후에 그 결과가 필연적이었던 것처럼 인식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럴 줄 알았어' 라든가 '그렇게 될 걸 알았어야 했는데' 같은 말을 할 때 그 사람은 사후확증편향에 시달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생각은 결과와 의사결정 사이의 과도하게 밀접한 관계로부터 만들어진다. 그것이 우리가 과거의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전형적인 방식이다. (p23)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의 한 주요 측면은 경험으로부터의 학습이다. 어떤 일의 결과를 알게 되면, 그 일이 발생한 까닭을 이해하려고 하고 우리나 다른 사람들이 그 일을 위해 얼마나 준비를 잘 했는지 평가하려고 한다. 이러한 성과 지식이 우리 자신의 판단에 후견지명 hindsight의 지혜를 베풀지만, 그 장점은 실제보다 높이 평가 된다.(p597)... 사람들은 선견지명으로 알았던 것을 후견지명에서 과장하기 위하여 자신의 예언을 잘못 기억하기까지 한다.(Fischhoff, 1975)(p598)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과거의 결과로부터 의사결정의 좋고 나쁨을 판단하는 위험을 말하는 사후확증편향 이외에도 우리가 경계해야 하는 요소는 결과 안에도 내재되어 있다. 결과는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기술'과 통제할 수 없는 '운'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기술과 운은 구별하지 못한다. 이는 이 두 요소가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기 때문이지만, 우리 속담에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라는 말처럼 결과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루어지지 못한다면 우리는 실패로부터 배울 수 없게 된다.


 어떤 결과가 실력 때문이라고 여기면 우리는 스스로 공을 차지한다. 결과가 운 때문이라면 그것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떤 결과물이 나타나든 우리는 이 일차적인 분류를 해야하는 의사 결정에 직면한다. 그 의사결정은 해당 결과물을 '운' 바구니에 넣어야 하는지, '실력' 바구니에 넣어야 하는지에 대한 베팅이다.(p138)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많은 사람들이 기술 skill과 운 luck이 밀접하게 얽혀 있다는 점에 동의하겠지만, 이 둘이 묶이는 방식을 완전히 이해하기까지는 아직 멀었다. 원칙적으로 이 둘은 분명히 구분된다. 기술과 관련된 상황에서는 행동과 그 결과 사이에 인과적 연결이 있다. 따라서 기술 관련 과제에서는 성공을 제어할 수 있다. 반면, 운은 우연히 발생한다. 운이나 우연한 활동으로는 성공을 제어할 수 없다.(p319)... 기술과 우연 요인들이 사람들의 경험과 너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모든 기술 상황에는 우연의 요소가 들어 있고 거의 모든 우연 상황에는 기술의 요소가 있기 때문이다.(p330)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그림] 포트톨리오 위험(by 겨울호랑이)


 '기술'과 '운'과 관련하여 여기서 잠시 이야기를 재무관리, 보다 정확하게는 주식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 우리는 일반적으로 구성자산을 다각화해서 위험을 피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위의 포트폴리오 위험은 이러한 구성의 한계를 보여준다. 위의 그림에서 재무관리에서 포트폴리오 위험은 크게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으로 나눌 수 있는데, 비체계적위험은 구성자산 수를 늘리면 점차 감소하지만, 시장 위험인 체계적 위험은 구성자산의 수를 늘리는 것으로 통제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현대자동차 기업상황이 좋지 않을 때 우리는 이 회사 주식을 사지 않음으로써  기업 고유위험을 회피할 수 있지만, 1998년 외환위기(IMF)와 2008년 세계금융위기와 같은 상황이 닥친다면 시장 구성원들은 시장에 존재하는 한 이 위험을 회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위험은 '통제 가능성'에 따라 체계적 위험과 비체계적 위험의 구분이 가능하다는 것이 이야기의 결론이다. 이의 연장선상에서 우리는 결과 분석 시 우리의 통제가능성에 따라 기술 skill과 운 luck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잠시 다른 곳으로 흘렀지만, 다시 결정 문제로 돌아오자.


 이처럼 우리는 과거 결과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편향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확실한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주관적인 결과 분석과 주관적인 확률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결정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상당부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는 이러한 기반 위에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방법을 제시한다.


 실제의 삶에서 가용성을 가장 분명하게 예시하는 것은 사건이나 시나리오의 우발적 가용성의 영향이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에서 생생한 핵전쟁의 묘사를 본 후, 어떤 우발적 사고나 고장이 그러한 전쟁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관적 확률의 증가를 알아챘을 것이다. 어떤 결과에 대한 지속적 몰두가 그 가용성과 그의 지각된 우도를 증가시킬 수 있다.(p244)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에서는 좋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보다 열린 마음으로 주위의 의견을 경청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여 바라본다면 우리는 주어진 상황에서 좋은 결정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생각에 푹 빠져 있어서는 내기에서 이길 수 없다. 내기에서 이기려면 미래에 대한 믿음과 예측이 더욱 정확히 세상을 그려낼 수 있도록 끊임없이 그것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객관적인 사람이 편향된 사람을 이긴다... 자신의 믿음을 세부적으로 수정하려면 다양한 시각과 대안적인 가설들을 열린 마음으로 고려해야 한다.(p207)...  과거, 현재, 미래의 자신이 함께 어울릴 때 우리는 더 나은 의사결정을 내리고, 그런 의사결정에 대해 흡족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p342)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 中


 대부분은 아니지만, 여러 경우에 효과적인 위험 관리는 대다수 보통사람들의 협동을 요구한다... 여기서 논의된 발견들은 비전문가들에게는 중요한 도전이 된다. 더 잘 알고, 검토되지 않거나 지지되지 않은 판단에 덜 의존하고, 위험한 판단으로 편향시키는 요인들을 인식하고, 새로운 증거에 더 개방적이어야 한다. 요컨대, 교육받을 수 있는 잠재력을 깨달아야 한다.(p683)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 中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는 위와 같은 내용으로 독자들이 효과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이다. 책 본문에서는 포커 게임과 스포츠 게임 등의 예시를 통해 독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도록 따라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어 독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의 가장 큰 장점을 든다면, 행동경제학을 알기 쉽게 풀이했다는 점을 들고 싶다. 이번 페이퍼에서 함께 비교한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은 행동경제학과 관련한 30여편의 논문으로 구성된 책으로 재미와는 거리가 있는 책이다.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통계 용어로 어렵게 씌어진 이 논문들에서 도출된 유의미한 결론들을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에서는 일상 생활에 잘 접목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라 여겨진다.


 반면, 많은 통계용어들을 걷어내고 일반 독자들을 위해 쉽게 쓰다보니, 독자들이 새로움을 느낄 여지는 많이 줄어든다. 자기계발서에 관심있는 독자들 입장에서는 한 번쯤은 들어봤거나,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의 제시는 비록 그 구성과 절차가 체계적임에도 불구하고, 신선함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부족함을 채우고 즐겁게 읽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이버 페이퍼를 마무리 한다.


 <결정, 흔들리지 않고 마음먹은 대로>를 행동경제학과 관련된 책들과 함께 읽는다면 보다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판단>의 공저자 다니엘 카네만(Daniel Kahneman, 1934 ~ )이 일반인들을 위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을 읽는다면, 행동경제학의 이론과 실제의 조합을 잘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여기에 정부의 정책부문까지 알고 싶다면 <넛지>를 곁들여도 좋을 듯하다...


* 이 페이퍼는 출판사의 제공한 책으로 작성된 페이퍼 입니다. * 


 1. 기저율(base rate) : 판단 및 의사결정에 필요한 사건들의 상대적 빈도


 2. 통계학에서, 가능도(可能度, 영어: likelihood) 또는 우도(尤度)는 확률 분포의 모수가, 어떤 확률변수의 표집값과 일관되는 정도를 나타내는 값이다. 구체적으로, 주어진 표집값에 대한 모수의 가능도는 이 모수를 따르는 분포가 주어진 관측값에 대하여 부여하는 확률이다. 가능도 함수는 확률 분포가 아니며, 합하여 1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출처 :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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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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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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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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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8 13: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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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8: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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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9:1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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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31 09: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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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호랑이 2018-09-01 23:36   좋아요 1 | URL
한국사회에서 외부를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기는 참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정도는 떨쳐버려야겠지요...

2018-09-02 0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E.H.카(Edward Hallett Carr, 1892 ~ 1982)는 <러시아 혁명 1917 ~ 1929 The Russian Revolution 1917 ~ 1929>을 통해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농업 국가인 러시아의 공업화 과정과 여기에서 빚어진 갈등을 밝히고 있다.

 

 애초에 마르크스는 선행하는 부르주아 혁명을 통해 확립된 자본주의와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토대 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발전한다고 예상했다. 그런데 러시아에서는 이런 토대가 발달하지 않았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레닌은 경제적/정치적으로 후진적인 나라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기를 기대했다. 혁명이 곧바로 국제적 성격을 띨 것이라는 가정하에서만 이 딜레마를 피할 수 있었다. 프롤레타리아트 자체가 경제적으로 후진적이고 수적으로 미약한 한 나라에서 혁명을 통해 도입된 사회주의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의 통일된 프롤레타리아트가 일으킨 혁명의 결과로 예상한 사회주의가 아니었고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러시아 혁명은 혼성되고 양면적인 성격을 띠었다.(p273) <E.H. 카 러시아 혁명> 中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에 따르면 사회주의 국가는 부르주아 혁명과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의 2단계 혁명 단계를 거쳐야 했다. 그렇지만, 1917년 당시 러시아는 농업국가였으며, 마르크스의 혁명 도식에서 벗어난 국가였다. 이는 온건파인 멘셰비키(Mensheviks)와 볼셰비키(Bolcheviks)가 대립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멘셰비키가 부르주아 혁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한 반면, 레닌(Vladimir Ilyich Ulyanov, 1870 ~ 1924)을 중심으로 한 볼셰비키는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으로 충분하다고 보았다. 이제 러시아 혁명과 내전을 거쳐 정권을 확고하게 장악한 레닌과 볼셰비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해야 했다.


 소련의 산업, 특히 중공업은 비효율적인 고비용 생산 부문인 반면, 농민 노동을 무제한으로 공급할 수 있는 농업은 상대적으로 저비용 생산 부문이었다. 자본이 최대 수익을 얻는 방법은 농업에 자본을 투자해서 수출용 잉여 농산물을 증대시켜 산업의 궁극적 발전을 위한 자본재를 비롯한 산업재 수입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자본이 부족하고 미숙련 노동 잉여가 넘처나는 소련 같은 나라에서 합리적인 경로는 자본집약적인 자본재를 생산하는 산업이 아닌 노동집약적인 단순 소비재를 생산하는 산업에 우선 중점을 두는 것이었다.(p165) <E.H. 카 러시아 혁명> 中


 러시아를 중심으로 한 소비에트 연방(이하 소련)의 현실은 산업국가와는 거리가 멀었다. 소련 인구의 다수가 농민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한 방안은 경공업을 발전시키는 방안이 현실적인 방안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소련이 직면한 현실은 이를 위한 충분한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마르크스 예언을 실현시키기 위해 소련 내부에서 빠른 산업화와 국제적인 혁명의 확산이 동시에 이루어지기 위해 이들에게 허용된 시간은 결코 넉넉한 것이 아니었다.  


 산업화의 첫째 조건은 농민이 도시와 공장에 필요한 식량을 임금 수준에 견디기 힘든 부담을 주지 않는 가격으로 공급하고, 농민 시장을 위한 소비재 생산에 전용되는 산업 자원을 최소한의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었다.(p196)... 공공연하게 공언된 둘째 조건은 노동의 생산성을 임금보다 빠르게 증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야만 산업 팽창에 필요한 재원을 일부나마 산업 이윤 자체에서 조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p198)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산업화된 도시를 발전시키기 위해서 농촌은 저렴한 노동력과 식량을 꾸준히 제공할 수 있어야 했으며, 도시 노동자들은 임금 수준 이상의 생산성을 결과로 내어야 했다. 그리고, 이 구조가 선순환(善巡還)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농촌 생산력의 증대가 필요했으며, 이를 위해 경공업 보다 중공업의 발달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소련은 경제 권한의 집중과 반(反)시장주의를 선택하게 되는데 이 중, 둘째 요소인 반 시장주의가 소련 경제의 발목을 잡게 되었다.


 전시공산주의는 두 개의 주요 요소로 이루어져 있었다. 한편에는 중앙집중적인 통제와 관리, 소규모 생산 단위의 대규모 단위로의 대체, 통일된 계획 조처 등 경제적 권한과 권력의 집중이 있었다. 다른 한편에는 상업적/금전적 형태의 분배로부터 이탈, 무상이나 고정 가격의 기본 재화와 서비스 공급 도입, 배급, 현물 지불, 가정된 시장이 아닌 직접 사용을 위한 생산 등이 있었다.(p54)... 그런데 전시공산주의의 둘째 요소, 즉 '시장' 경제를 '자연' 경제로 대체한 것은 그런 기초가 전혀 없었다.(p55) <E.H. 카 러시아 혁명> 中


 통화는 또다시 인플레이션으로 가치가 떨어지고 있었다. 불확실성과 경계의 분위기 속에서 곡물은 가장 안전한 가치 저장물이었다. 비축물이 있는 농민들로서는 이 물건을 시장에 내놓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p186)... 신경제정책이 토대를 두었던 믿음, 즉 국가에 대한 자발적인 농산물 인도와 시장의 자유 판매를 결합한 체계로 도시를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믿음은 이미 산산이 무너졌다.(p192)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소련의 반 시장주의 정책의 실패는 다음의 내용을 통해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1985)는 그의 저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Afterthoughts on Material Civilization and Capitalism>를 통해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구분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브로델에 따르면 소련 지도부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구분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소련 경제는 시작부터 문제의 씨앗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된다.

 

 레닌이 "제국주의(imperialisme)"라고 부르는 것(또는 달리 말하면 20세기 초에 새로 탄생한 독점자본주의)과 경쟁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단순한 자본주의의 병존이 그것이다. 나는 갤브레이스와 레닌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내가 "경제(economie)" - 또는 시장경제 - 라고 부른 것과 "자본주의(capitalisme)"라고 부근 것 사이의 영역 차이가 새로운 모습이 아니라 중세 이래 유럽에서 언제나 지속되던 상수(常數)라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산업화 이전 시기의 모델에 세 번째의 영역을 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시장경제라는 층의 옆에, 차라리 그 위에, 반(反)시장(contre-marche)의 영역이 있다. 바로 이곳이 자본주의의 영역이다.(p323)<물질문명과 자본주의 2-1, 교환의 세계 上> 中 


 국가는 언제나 계급 지배와 억압의 도구였다. 계급 없는 공산주의 사회와 국가의 존재는 양립할 수 없었다. 레닌은 직접 만든 경구에서 이렇게 요약했다. "국가가 존재하는 한 자유란 없다. 자유가 존재하게 된다면 국가란 없을 것이다."(p19)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시장경제는 인류 역사를 통해 꾸준히 존재해온 양식이었기 때문에, 이를 부정한 1920년대의 소련 경제 정책을 결국 실패로 귀결되고 만다. 제1차 경제개발계획등을 추진하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고, 이러한 실패로 말미암아 1924년 레닌 사후 소련을 이끌게 된 스탈린( Iosif Vissarionovich Dzhugashvili, 1878 ~ 1953)은 국제주의를 포기하게 되었다. 국가를 부정한 마르크스 - 레닌의 이론 대신 공산주의는 민족주의와 결합하면서 E.H. 카가 서술한 소련의 1920년대는 마무리 된다.


 그때까지 일국사회주의는 신경제정책의 연속으로 간주됐을 것이다. 신경제정책 또한 국제 혁명의 암울한 전망에 등을 돌렸고, 러시아 농민과의 동맹을 통해 사회주의로 가는 길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제 스탈린은 자급자족하는 러시아, 즉 근대화된 산업과 농업을 통해 변형되고 경제적으로 자립하게 된 러시아라는 아주 다른 개념을 향해 더듬더듬 나아가고 있었다... 일국사회주의는 현홍적인 장기적 전망이었고, 바야흐로 경제 상황에서 감지되기 시작하던 여러 변화와 들어맞았다. 일국사회주의 이론은. 그 주창자들의 의도가 무엇이든 간에, 자급자족의 조건으로서 중공업 장려를 뒷받침했다. 하지만 이 이론은 후진적인 러시아 경제의 자원을 가지고 사회주의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도 함축했다.(p119)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코민테른의 결정은 사실상 소련 공산당의 결정이었다. 이 결정을 외국 공산당에 강요할 수 있고 실제로도 강요했지만, 해당 국가에서는 점점 더 많은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대가를 치렀다. 노동자들은 동떨어진 외국의 권력이 자의적이고 때로는 전혀 부적절한 지시를 내리자 고분고분 따르지 않았다. 1920년대 말에 서구 각국의 공산주의 운동은 수와 영향력이 쇠퇴하고 동조자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p267)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일국사회주의에 대한 몰두는 스탈린에게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일국사회주의 덕분에 스탈린은 사회주의에 관한 주장들을 러시아 민족주의와 조화시킬 수 있었다. 소수민족이나 작은 나라에 대한 스탈린의 처리 방식에서 민족주의는 쉽게 국수주의로 변질됐다.(p251) <E.H. 카 러시아 혁명> 中


 저자는 E.H.카는 <러시아 혁명 1917 ~ 1929>를 통해 소련의 신경제정책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고 있다. 


 집단화는 토지 혁명을 완성했는데, 이 혁명은 1917년에 농민들이 지주 토지 강탈로 시작됐지만 오랜 경작 방식과 농민의 생활방식을 고스란히 남겨 높았다(p238)... 지난 12년 동안 농업은 여전히 경제 내에서 준 準 독립적인 고립지대로 남았고, 자체의 궤도를 따라 기능하면서 그 궤도를 변경하려는 외부의 모든 시도에 저항했다. 이것이 신경제정책의 본질이었다.(p239) <E.H. 카 러시아 혁명> 中


 농민국가에서 공업국가로의 변신과 국제 혁명의 필요성 때문에 빚어진 '농촌 - 도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것이 1920년대 소련의 경제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이러한 소련의 경제적, 정치적 상황과 맞물린 것이 1937년 이루어진 고려인들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사건이라는 점을 생각해 본다면, 러시아 혁명과 우리 역사의 거리는 지리상의 거리보다 짧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진]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출처 : http://webzine.nuac.go.kr/tongil/sub.php?number=1779)


 이처럼 <러시아 혁명>은 우리에게 러시아 혁명 후 10여년에 걸친 소련의 경제사를 '도시 - 농촌'의 대립 관점에서 짧은 페이지임에도 불구하고 밀도있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이 책이 우리에게 의미있는 것은 독립운동 당시 고려인 이주 사건 외에도 1960년대 이후 우리의 경제발전사의 모델을 제시하는 등 우리 역사에 미친 직간접적인 영향 때문일 것이다. 농촌의 억압을 통한 도시 발전과 중화학 공업의 육성 등 많은 부분에서 우리는 소련 경제사 속에서 우리 자신의 역사를 발견하게 된다. 또한, 최근 한계에 부딪힌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한계점 역시 이 안에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지난 역사를 통해 현재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이 역사책을 읽는 이유라고 한다면, 비록 러시아 혁명 100주년을 조금 넘겼지만, 이 책이 갖는 의미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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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08-24 14: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트로츠키의 세계혁명론에 반대하는 스탈린
이 레닌의 후계자가 된 것이 소련에게는
그야말로 대재앙이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공산주의 역사발전 이론에서 아직 공업화가
덜 된 러시아에서 PT혁명이 발생했다는 점도
넌센스가 아니었을까요. 사실 독일 정도 되는
나라에서 혁명이 일어났어야 하는데 반대로
파시즘 국가가 되어 버렸으니.

푸틴 짜르 시절에 마치 다시 예전 제정 러시
아 시대로 돌아갔다는 느낌이 드네요.

겨울호랑이 2018-08-24 14:3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물론 마르크스 혁명론이 절대 진리는 아니겠지만, 자본주의의 문제점에 대해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사회에서 ‘사회주의‘라는 결과만을 추구하다보니 결국은 원점으로 돌아가게 된 것 같습니다. 보다 사회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사회 전체 구성원들의 문제 인식 공유가 먼저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2018-08-24 16: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4 17: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4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4 1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6 20:5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6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6 2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6 22: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08-26 22: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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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7 12: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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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GiKim 2018-08-27 20:0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호랑이님의 좋은 리뷰 잘봤습니다. 전 사회주의가 실패하지 않았다 봅니다. 오히려 4차 산업혁명이 기회가 될 수 있다 보고, 현실 사회주의는 쿠바도 있죠.

저 또한 스탈린을 비판하는 쪽에 가깝고, 레닌과 트로츠키보다 당연히 저평가하는 쪽이기는 하나 스탈린식 경제개발은 설사 트로츠키였다 하더라도 했을거라 봅니다. 내전으로 인한 경제 사정이 워낙 안좋았으니까요. 다만 일국사회주의와 국제사회주의라는 국제적인 측면에선 달랐을 거라 보고, 트로츠키의 경은 스타하노프 운동과 같은 짓은 안했겠죠.

참고로 전 사회주의자입니다. 마르크스나 레닌이 제 심장을 뜨겁게 만드네요.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08-27 20:24   좋아요 1 | URL
^^:) 인류 사회가 지속되는 한 ‘평등‘과 관련한 논의는 계속 되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하나의 지향점을 제시하겠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주의의 성공과 실패에 대한 평가 역시 이르다고 생각됩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주의의 많은 요소들이 ‘복지‘라는 이름으로 제도 안으로 들어올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만, 마르크스를 ‘예언자‘로 생각하고 사회변혁의 공식 틀에 맞춰서 움직이려고 했던 것은 유물론과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마치, 유대인들이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면서 베들레헴에서 예언자가 나와야한다고 주장하는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군요. 저는 성향이 보수적인 편이라 사회주의자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사회주의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어느 사상이나 이념도 분명 한계가 있으니까요. ^^:)
 
이하동서설 - 감춰진 동이(東夷)의 실체와 고대 한국
부사년 지음, 정재서 옮김 / 우리역사연구재단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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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사년의 <이하동서설>은 중국의 고대 문명을 남북 간의 이항구조로 파악하던 전통적인 관념을 뒤집고 동서 간의 대립으로 인식을 전환시켰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으며, 이(夷) 곧 동이의 실체를 드러내고 정치적, 문화적 지위를 부각시켰다는 점에도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다.(p42)... 다만 부사년은 은(殷)과 이(夷)의 관계에 대해서는 하(夏), 주(周)와 대립된 동방의 국가라는 차원에서 친연성을 인정하면서도 종족적, 지역적, 기원적으로 구별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뚜렷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 애매한 느낌을 준다. 은(殷)을 고조선과 같은 계통으로 보는 반면 이(夷)의 활동 범주를 대륙 내지인 산동(山東) 등에 국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고대 한국은 동이계로 간주하지 않는 셈인데 다소 의외라 하지 않을 수 없다.(p43) <이하동서설 : 해제> 中


 <이하동서설 夷夏東西說>은 중국 역사학자 부사년(傅斯年, 1896 ~ 1950)에 의해 이 주장된 내용으로, 중국 고대사를 '하(夏)'와 '이(夷)'의 대립으로 본다는 면에서 1930년대 당시 중국 학계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학설이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자. 


 중국 동쪽의 거대한 지역은 하천에 의해 충적된 대평원이어서 산동반도에 있는 산 몇 개를 제외하면 모두가 해발 1,200m 이하의 평지다... 이에 반하여 서쪽의 거대한 지역은 산과 산 사이에 끼인 고원지대여서 도시는 늘 하천의 양안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는 동쪽의 평지를 동평원구(東平原區), 거대한 산 속에 끼인 서쪽의 고지를 서고지계(西高地系)라고 간략히 부르겠다.(p231)... 분명 이(夷)와 은(殷)은 동쪽 체계에 속하고 하(夏)와 주(周)는 서쪽 체계에 속해 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p235)<이하동서설> 中


 부사년은 먼저 서쪽 고원 지대와 동쪽 평원 지역으로 이루어진 중국 지형에 주목하고 이러한 지형으로부터 '동(東) - 서(西)' 간의 대립 관계가 자연스럽게 형성된다고 주장한다. <이하동서설>에서 말하는 동이(東夷)는 특정 종족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다. 구이(九夷)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여기에는 다양한 민족이 포함된다. 또한, 은(殷) 또는 상(商)은 동쪽으로부터 시작하여 서쪽으로 세력을 넓힌 고대 중국의 제국(帝國)이었다.


 무릇 은상(殷商)과 서주(西周) 이전, 혹은 은상이나 서주와의 동시기에 지금의 산동성 전 지역과 하남서의 동부, 강소성(江蘇省)의 북부, 안휘성(安徽省)의 동북부 전체, 아울러 하북성의 발해(渤海) 연안 및 바다 건너 요동(療東)과 조선의 양안(兩岸)까지 일체의 지역의 모든 부족과 모든 성씨들을 전부 '이(夷)'라고 불렀을 것이다... 하(夏) 한 시대의 대사(大事)란 바로 이러한 이인(夷人)들과의 투쟁이었다.(p155) <이하동서설> 中


 [지도] 하나라 영토 지도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emir98&logNo=60210194759&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동이(東夷) 가운데에는 부여(夫餘), 읍루(揖婁), 고구려(高句麗), 구려(句麗)[맥이(貊耳)], 예(濊), 한(韓)[마한(馬韓), 진한(辰韓), 변한(弁韓)], 왜(倭) 등이 있다.(p268) <이하동서설> 中


 상인(商人)이 세웠던 제국은 전성기 때 무력이 몹시 강대하였으며, 패망한 이후에도 쓰러뜨기기 어려웠을 것이다. 동쪽으로 해동에서 일어나 서족으로 기양(岐陽 : 섬서성 기산(岐山)일대)에까지 이르렀던 이 대제국이 당시의 문화 수준에서 건립될 수 있었다는 것은 더할 수 없이 위대한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건대 특수한 무기나 견고한 사회조직에 힘입고서야 비로소 이룰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p122) <이하동서설> 中


 부사년은 이러한 '동-서' 대립 구조의 사례로 다음과 같은 일련의 사건들을 제시한다. 저자에 따르면 춘추(春秋)전국(戰國)시대 이래 후한(後漢)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대립이 있어 왔으나, 이후 이(夷)가 동화되면서 이러한 갈등은 점차 해소되었다는 것이다.


  진(秦)이 6국을 통합한 것은 서가 동을 이긴 것이요, 초(楚)와 한(漢)이 진(秦)을 멸망시킨 것은 동이 서를 이긴 것이요, 평림병(平林兵)과 적미군(赤眉軍)이 왕망(王莽)의 신(新)나라 왕실에 대적한 것은 동이 서를 이긴 것이요, 조조(曺操)가 원소(袁紹)에 대립한 것은 서가 동을 이긴 것이다. 그러나 양한(兩漢) 때에 이르면 동서의 융합은 이미 상당히 심화되어 대치하는 형국이 삼대에 미치지 못했음이 분명하다.(p238) <이하동서설> 中


 저자 부사년은 이러한 사건들을 통해 '동-서' 대립이라는 일련의 역사법칙을 도출해낸다. 그렇다면, 이러한 대립 속에서 그가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이하동서설>에서 동이(東夷)라는 단어지만, 사실 부사년이 말하고 싶었던 바는 '하(夏)'다. 1928 ~ 1937년까지 은나라의 중심지였던 은허(殷墟) 발굴을 주도한 그는 중국 역사를 보다 이른 시기인 '하'나라로 끌어올리기 위해 '이하동서설'을 주장하였고, 이 책은 이를 담고 있다. 그렇지만, 그가 주장한 학설은 이후 고고학적으로 증명되지 못해 <이하동서설>의 연구결과는 현재 거의 폐기된 상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하동서설'은 중국 '동북공정 東北工程'의 사상적 기반을 제공하는 핵심 이론 중 하나라는 점과 그가 만든 대립구도를 바탕으로 많은 재야학자들의 이론이 생산되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변증법적 규칙을 따라 전국 시기에 융합 혼재하게 되었으니 이 과정이 바로 하(夏), 상(商), 주(周) 왕조가 교체되어 온 골격을 이루고 있다. 그중 두드러진 민족 간의 갈등이 바로 동서방간 이(夷)와 하(夏)의 투쟁인 것이다. 진(秦) 왕조가 시작된 이래 2,000년간에 걸친 고대 중국의 민족적 갈등은 남북간 투쟁으로 개괄될 수가 있으므로 광대한 연해지방 이인(夷人)들은 혹은 북쪽으로 이주하여 베링 해협을 건너 북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가거나, 남쪽으로 바다를 건너 여러 섬들 및 심지어는 남태평양을 거쳐 남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갔다.(p325) <이하동서설 : [부록] 동이(東夷)와 그 역사적 지위> 中


 대개 은나라 사람들은 동방의 이인(夷人)들 가운데에서 가장 선진적인 일부였을 것이며 기자(箕子)가 조선으로 지니고 갔던 일정한 사회풍습은 은상(殷商)과 떼놓을 수도 없을 것이다. 다만 사물의 발전추이란 언제나 불균형성을 띠고 있어 선진성과 낙후성이 곧잘 동시에 공존하기도 하므로, 광범위한 동방의 이인(夷人) 지역에 있어서도 적지 않은 원시부락과 그들의 사회적 유물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p314) <이하동서설 : [부록] 동이(東夷)와 그 역사적 지위> 中


 <이하동서설>과 [부록]에 수록된 글 속에서 우리는 동이(東夷)가 중국 문명의 발전을 위한 하나의 반(反) 역할을 수행하는 변증법의 요인에 불과함을 확인하게 된다. 후한 시대 이후 중화 문명이라는 하나의 합(合)으로 녹아들어갔다는 그의 학설 속에서, 고구려 역사가 중국 지방 정부의 역사라는 구도로 발전된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재야 사학에서 이러한 '동 - 서' 대립 구도를 그대로 차용해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 존재하는 것은 우려가 되는 지점이다. 

 

 이처럼 <이하동서설>은 우리가 비판적으로 읽어야 할 역사책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하동서설>을 읽어야 한다면, 이것은 올바른 역사관의 확립을 위해서가 아닐까. 역사(歷史)는 진실(眞實)이어야 하고, 객관적 사실에서 교훈(敎訓)을 끌어내는 것은 후대가 할 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바른 역사관의 정립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하동서설'은 목적 역사관의 한계를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고 여겨진다. 역사관은 아니지만,  관련하여 고(故) 리영희님(李泳禧, 1929 ~ 2010)의 언론관과 관련한 명언을 마지막으로 이번 리뷰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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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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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0 07: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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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1 11: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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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23 12: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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