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이라고 하면 국민들 다수가 1976년‘박정희 전대통령 사망일‘로 기억하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10.26은 의미있는 날이었다. 많은 이들은 잘 모르는 사실이겠지만...

1909년 10월 26일은 하얼빈 역에서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조선통감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날이다. 한국 현대사에서 독재자 박정희가 쓰러졌어도 이 땅의 민주주의가 돌아오지 않았던 것처럼, 한국 근대사의 끝자락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죽였지만 일제에 의한 강제병합은 막을 수 없었다. 그렇지만, 1909년의 10.26의거는 캄캄한 일제 치하에 떠올랐던 찬란한 별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안중근과 동양평화론」은 1909년의 10.26이 단순한 테러가 아닌 평화로 가기 위한 구한말 한 지식인의 고뇌에 찬 결단임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이제 우리는 10.26을 독재자 사망일로 기억하기보다 더 큰 평화의 길을 가기위한 의거일로 기억할 때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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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27 09: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7 09: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북프리쿠키 2018-10-27 11: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기억하겠습니다. ~
겨울호랑이님 주말 잘 보내세요^^

겨울호랑이 2018-10-27 11:45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북프리쿠키님께서도 가을 주말을 책과 함께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8-10-28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9 08: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8-10-29 11:3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29 13:31   좋아요 1 | URL
페크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제가 맡은 업무 중 하나로 프로젝트 제안이 있습니다. 승패병가지상사(勝敗兵家之常事)라고 했던가요. 때로는 제안이 낙찰되어 기쁨을 누리기도 하지만, 다른 업체들과 경쟁에서 밀려 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사실은 떨어지는 경우가 더 많지요.) 이제는 경험도 어느 정도 쌓이다보니, 떨어졌을 경우 아쉬움도 잠시이고, 이내 평정심을 찾고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조금은 색다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페이퍼는 그 생각을 분석해 보려합니다. 


 얼마 전에도 프로젝트 제안서가 여느 때처럼(?) 떨어졌습니다. 내심 기대했던 프로젝트라 아쉬움이 컸지만, 동시에 평안함이 찾아오더군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몇 가지를 떠올려 봤습니다.


 1. 제안 : 화폐를 통한 사용가치 교환

 

 상품소유자는 누구나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사용가치를 가진 다른 상품에 대해서만 자신의 상품을 양도하려고 한다. 그런 점에서 교환은 그에게 그저 개인적인 과정에 불과하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자신의 상품을 가치로서 실현하고자 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이제 교환은 그에게 일반적인 사회적 과정이다.(p151)... 사회적 행위만이 어떤 상품을 일반적 등가물로 만들 수 있다.  즉 다른 모든 상품의 사회적 행동이 어떤 특정한 상품을 따로 떼어내어, 이 상품을 통해 다른 모든 상품이 자신의 가치를 표시하게 된다. 그럼으로써 이 상품의 현물형태는 사회적으로 유효한 일반적 등가형태가 된다. 일반적 등가물이 되는 것,  그것이 사회적 과정에서 따로 분리된 이 상품의 특수한 사회적 기능이 된다. 그리하여 그 상품은 화폐가 된다.(p152) <자본 1-1> 中


 제안 요청자와 이에 응해서 제안을 준비하는 자는 '용역'을 통해서 교환관계를 맺게 됩니다. 대부분의 경우, 교환 관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교환 참여자 자신들은 기대하는 이익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이익이 있다고 판단되었을 때 거래에 참여하겠지요. 거래 참여자의 주관적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이 바로 '화폐'라고 마르크스(Karl Heinrich Marx, 1818 ~ 1883)는 <자본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konomie>에서 설명합니다. 제 경우 '프로젝트가 떨어졌다'는 의미는 제가 제시한 가치(주관적 가치)가 상대편에서 생각하는 적정기준(객관적 기준)에 미달했다는 의미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거래는 성립하지 않았습니다. 


2. 노예의 도덕 : 실망감


 그리고, 이를 통해서 저는 먼저 '실망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프로젝트를 수주했다면 '성취감'을 느꼈겠지요. 제가 느꼈던, 그리고 느꼈을 지도 모르는 이러한 감정들은 '프로젝트 제안'이라는 사회적 관계에서 주어지는 외부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느끼는 감정은 여기에서 부가적으로 파생된 것이라고 보면, 우리는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 의 <도덕의 계보 Zur Genealogie der Moral)>의 일부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은 원한 자체가 창조적이 되고 가치를 낳게 될 때 시작된다 : 이 원한은 실제적인 반응, 행위에 의한 반응을 포기하고, 오로지 상상의 복수를 통해서만 스스로 해가 없는 존재라고 여기는 사람들의 원한이다. 고귀한 모든 도덕이 자기 자신을 의기양양하게 긍정하는 것에서 생겨나는 것이라면, 노예 도덕은 처음부터 '밖에 있는 것', '다른 것', '자기가 아닌 것'을 부정한다 : 그리고 이러한 부정이야말로 노예 도덕의 창조적인 행위인 것이다... 노예 도덕이 발생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먼저 대립하는 어떤 세계와 외부 세계가 필요하다. 생리적으로 말하자면, 그것이 일반적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 노예 도덕의 활동은 근본적으로 반작용이다. 고귀한 가치 평가 방식에서 사정은 정반대다 : 그것은 자발적으로 행동하고 성장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 더 감사하고 더 환호하는 긍정을 말하기 위해 자신의 대립물을 찾을 뿐이다.(p368) <도덕의 계보 : 제1논문> 中


 '실망'을 부정적인 감정으로 '성취감'을 긍정적인 감정으로 본다면, 조금 거칠게 '실망'은 '나쁨'으로, '성취감'을 '좋음'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느낀 부정적인 감정은 외부에 의해 수동적으로 주어진 것으로, 니체에 의한다면 제가 느낀 실망감은 '노예 도덕의 활동'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반면, 그 이후 느낀 평정심은 '고귀한 도덕'에 해당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 역시 '노예 도덕'의 일부일까요. 그 분류는 '평정심'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따라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귀한 인간의 경우는 정반대이다. 고귀한 인간은 '좋음'이라는 근본 개념을 먼저 자발적으로, 즉 자기 자신에게서 생각해내고, 거기에서 비로소 '나쁨이라는 관념을 만들게 된다.(p371) <도덕의 계보 : 제1논문> 中


3. 고귀한 도덕 또는 진정한 행복


 니체가 말한 '고귀한 도덕'과는 조금은 다른 의미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에피쿠로스(Epikouros, BC 341 ~ BC 271)의 <쾌락>에서는 우리가 추구해야할 쾌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적인 평정상태인 '아타락시아 ataraxia'를 추구하기 위해서 외부의 자극을 차단해야한다면, 제가 (비록 수동적이기는 하지만) 계약 수주에 실패해서 느낀 평정심은 에피쿠로스의 '평안'에 가까운 것은 아닐지 생각해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잃어서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를 것 같습니다. 다소 모순되는 것같지만, '큰 슬픔 뒤에는 작은 기쁨이 따른다'라는 오랜 격언을 생각해 본다면 크게 잘못된 표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우리는 다음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욕망들 epithmia 중 어떤 것은 자연적이고 다른 것은 공허하며, 자연적인 욕망들 중 어떤 것은 필연적이고 다른 것은 단순히 자연적이며, 필연적인 욕망들 중 어떤 것은 행복을 위해 필요하며 어떤 것은 몸의 휴식을 위해 필요하며 다른 것은 삶 자체를 위해 필요하다... 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거나 피할 때 몸의 건강과 마음의 평안을 참고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것이 행복한 삶의 목적이므로. 우리는 항상 이런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즉 고통과 두려움을 피하기 위해서 행동한다. 그리고 일단 이것이 얻어지면 모든 마음의 폭풍우가 사라진다.(p45) <z쾌락> 中 


 제가 느꼈던 평안함이 허탈함일지, 일하기 싫은 게으름일지, 아니면 마음을 비우는 것으로부터 오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모든 것을 얻는다는 문제는 우리가 진정으로 행복하고, 우리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과는 또 다른 문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본주의(資本主義)'라는 말처럼 '자본=주인'인 체제에서 노동자로 살아가야 하는 개인들이 고민하고 있는 큰 문제의 한 부분이라 생각해 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이에 대한 답은 각자 내리시길 바라며, 저는 다음 제안서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이웃분들 모두 좋은 오후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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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10-19 12: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북플에서 정말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표지네요 ㅎㅎㅎ 겨울호랑이님도 좋은 오후 되시길^-^

겨울호랑이 2018-10-19 13:12   좋아요 1 | URL
syo님께선 <자본>을 아주 많이 좋아하시지요^^:). 화창한 가을날이네요. syo님께도 화창한 금요일 보내시길 바랍니다!

2018-10-19 1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9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1 00: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21 09: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8-10-29 17:0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실망감이나 성취는 외부를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노예의 도덕 감정이 맞겠죠. 그러나 평정심은 내부로부터 오는 것이니 ‘고귀한 도덕‘ 맞겠는데요^^ 그런데 개념이라는 게 사람마다 달리 쓰는 난점이 있어서 어떤 이들은 정말 동의하기 곤란한 걸 ‘고귀한 도덕‘으로 쓰는 게 문제죠.

겨울호랑이 2018-10-29 23:43   좋아요 1 | URL
^^:) AglamA님 말씀처럼 주관적으로 사용되는 것이 개념인지라... 그때그때 달라져서 정확하게 정의하기가 참 어려운 것 같네요. 그것이 ‘수학 세계‘와 ‘현실 세계‘의 차이이겠지만요. 덕분에, 많이 어려우면서도 재밌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만인을 위한 예술을 창조하려 했던 똘스또이는 단번에 보편성을 얻었다. 그의 작품은 전세계에서 불후의 성공을 이룩했다. 그 이유는 그 작품이, 예술이 지닌 온갖 파멸되어야 할 요소에서 정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작품에는 영원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로맹 롤랑 <똘스또이의 생애>에서 (p15)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中


 톨스토이(Tolstoi, Lev Nikolaevich, 1828 ~ 1910)의 작품에 대해 프랑스 문학가인 로맹 롤랑(Romain Rolland, 1866 ~ 1944)는 그 안에 보편성과 영원이 담겨있다고 평가한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장편 소설에서 뿐만 아니라, 러시아 민화(民話)나 다른 작가의 작품을 각색한 짧은 단편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데, <인생이란 무엇인가 3 행복> 안의 두 작품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역시 그런 작품들이다. 이번 페이퍼에서는 두 작품 속에서 느껴지는 톨스토이의 신, 하늘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 본다. 먼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살펴보자. 이 작품은 하늘의 천사가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신(神)이 낸 세 가지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다는 이야기다.  


 '다시 내려가 산모의 영혼을 거두어라. 그러면 세 가지 말을 알게 되리라. 즉 사람의 내부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그것을 알게 되면 하늘 나라로 돌아올 수 있으리라.'(p64)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작품 속에서 천사는 사람의 내부에는 사랑이 있으며, 사람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지식이라는 것과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사랑을 느끼며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때 저는 '사람 안에는 무엇이 있는지 그것을 알게 되리라'고 하신 하느님의 첫 번째 말씀을 생각해 냈습니다. 나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번에는 사람에게 주어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냈습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한가하는 지식입니다.(p67)... 저는 그 부인이 타인의 아이로 인해 눈물을 흘렸을 때 거기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그림자를 발견했고,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깨달았습니다.(p68)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中


 톨스토이에게 신은 매우 중요한 존재였지만, 막연한 절대자의 이미지만은 아니라는 것을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는 보여준다. 작품 안에서 서로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습을 발견하는 마르틴과 스쩨빠느이치의 모습을 본다면, 톨스토이에게 신(하느님)은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본다.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았으나 아무도 없었다. 도로 몸을 굽혀 드러눕자 갑자기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또렷이 들려 왔다. "마르틴, 마르틴아! 내일 한길을 보아라, 내가 갈 터이니." 마르틴은 의자에서 일어나 눈을 비비기 시작했다.(p75)...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 나는 가물가물 잠이 들었지. 그렇게 졸고 있는데 누군가가 조그만 목소리로 '기다려라, 내일 갈 테니' 하지 않겠나?" 스쩨빠느이치는 머리를 저을 뿐 아무 말 않고 컵에 남은 차를 마저 마시고 컵을 놓았다.(p77)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 中


 이들 작품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대부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 22 : 37 ~ 39)'라는 성경구절을 떠올리겠지만, 기독교 신자들이 아닌 이들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는 것은 <중국철학사>에서 표현되듯 하늘(天)에 대한 인류 보편적인 사상이 있어서가 아닐까.

 

 중국 문자 가운데 이른바 하늘(天)에는 다섯 의미가 있다. 첫째, 물질지천(物質之天) 즉 땅과 상대적인 하늘이다. 둘째, 주재지천(主宰之天) 즉 소위 황천상제(皇天上帝)로서 인격적인 하늘이다. 셋째, 운명지천(運命之天) 즉 우리 삶 가운데 어찌 할 도리가 없는 대상을 지칭한 것이다. 넷째, 자연지천(自然之天) 즉 자연의 운행을 지칭한 것이다. 다섯째, 의리지천(義理之天) 즉 우주의 최고원리를 지칭한 것인데, <논어 論語>에서 공자가 말한 하늘 역시 주재지천이다.(p61) <중국철학사 中國哲學史 상> 中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이 있는 곳에 신이 있다>의 작품 속에서 신은 '주재지천'의 존재만은 아니다. 우리 안에 사랑이 있다는 '의리지천'으로서의 하늘과 사랑을 통하여 우리가 살아간다는 '자연지천'으로서의 하늘 역시 같이 표현되고 있기에, 세계인들이 그의 작품에 공감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런 점이 그를 '러시아의 톨스토이'가 아닌 '인류의 톨스토이'로 만든 것은 아닐까. 


 다만, 톨스토이의 작품을 접할 때 누군가는 그의 기독교 사상이 불편하다고 한다.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 종교를 강요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 그 이유인데, 그의 작품 속에 깊이 나타난 종교관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그의 예술관 속에서 그 답을 찾아보자.

 

 <예술이란 무엇인가?>에서,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감정을 감염시키는 것이라는 단순한 이론을 표명하였다. 진정한 예술가는 표현도 하고 정서도 환기시킨다. 예술을 통하여 예술가는 자신이 경험한 감정을 청중에게 감염시킨다... 톨스토이는 예술의 역할로 예술가와 청중간의 의사소통을 강조했으며, 지식과 지적 활동으로부터 예술 감상을 분리시키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이 두 번째 특징이 톨스토이의 감화의 은유를 설명하며, 훌륭한 예술을 이해하기 위해 특별한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치 않다는 그의 주장을 뒷받침한다.(p32) <미학개론> 中


 톨스토이의 예술관은 작가의 감정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감염시키는데 있었다. 이러한 그의 예술관을 알고 나면 작품 곳곳에 표현된 작가의 종교관(宗敎觀)을 예전보다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러시아의 민중작가로서 보편성과 영원을 추구한 예술가. 


 톨스토이와 그의 작품 세계를 깊이 있게 알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작품을 읽어야겠지만, 일단 위와 같이 '틀'을 잡아 놓고, 다른 작품을 접하면서 그에 대한 평가를 다듬어 보고자 한다.


 잠시 말을 돌려보자.  중국철학에서 공자(孔子, BC 551 ~ BC 479)이전 하늘에 대한 생각이 위와 같았다면, 춘추시대(春秋時代, BC 770 ~ BC 403) 이후에는 인간(人間)을 중시하는 새로운 기운이 싹트게 된다. 이에 대해 펑유란(馮友蘭, 1894 ~ 1990)은 <중국철학사>안에서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러나 춘추시대에는 비교적 진보적인 일부 선비들이 점차 귀신 혹은 천도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되었다. 예를 들면 소공(昭公) 18년[ BC 524], 자산(子産)이 말했다. "천도(天道)는 멀고 인도(人道)는 가까우므로, 양자는 서로 상관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어떻게 천도로 말미암아 인도를 알 수 있겠는가? 天道遠, 人道邇, 非所及也. 何以知之?<좌전 左傳>" (p62) <중국철학사 상> 中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톨스토이가 작품 속에서 '천도(天道)' 이야기 했다면, 러시아의 자산처럼 '인도(人道)'를 말한 작가는 누가 있을까. 도스토예프스키(Fyodor Dostoevsky, 1821 ~ 1881)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하면서 이번 페이퍼를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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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15: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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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1 15: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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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09:5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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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10-12 10:0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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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15 00: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와 같은 톨스토이 소설을 읽고 저는 좋았는데 너무 교훈적이어서 싫다는 사람도 있더라고요.
교훈적이면 아무래도 문학성은 떨어지는 것으로 느껴지긴 합니다.

겨울호랑이 2018-10-15 07:27   좋아요 2 | URL
페크님 말씀처럼 너무 교훈적이면 우리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을 줄 것 같아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페크님께서도 좋은 가을의 한 주 시작하세요!
 

한글날입니다. 이웃분들 모두 휴일 잘 보내고 계신지요? 저는 오전 아이와 함께 집 앞 놀이터에서 모래놀이를 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저와 마찬가지로 연의도 모래놀이를 매우 좋아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선뜻 소매를 걷어붙이고 함께 모래놀이하지 못하게 되네요. 제가 어른이 되어서일까요. 모래는 예전 그대로인데, 아이가 밖에서 모래를 달고 집에 들어오면 털고 들어오라고 말하는 제 자신을 보면 제가 변한 듯 합니다.

오래전 읽은 「피터 팬」과 「정글북」이 떠오릅니다. 「피터 팬」의 피터는 네버랜드(Neverland)에 살며 언제까지나 어린이로 살아가지만, 현실로 돌아온 웬디는 어른이 되버리지요. 어른이 된 웬디를 찾아온 피터는 웬디 대신 웬디의 아이와 함께 모험을 간다는 결말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모래 놀이를 하면서 웬디가 되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어린이로부터 어른이 되는 것은 아픔과 변화가 따른다는 것은 이를 경험한 많은 이들이 공감할 것입니다. 「데미안」에서는 이를 껍질을 깨는 아픔이라고 표현합니다만. 저는 성장과 관련해서는 「정글북」의 마지막을 떠올립니다. 커다란 뱀 ‘카아‘는 사람의 마을로 가려는 모글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거라, 아이야. 우리 뱀들은 벗은 허물안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단다.˝...

그렇게 저는 카아의 말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고 살아왔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어른이 된 어느날 이제는 피터팬을 봐도 같이 갈 수가 없게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웃어야할 지 울어야할 지 잘 모르겠네요. 분명한 사실은 저 사진의 다음 장면에서 저는 딸 아이와 함께 땅따먹기와 제기차기를 했다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며칠 전만큼 화창한 가을 날은 아니지만, 흐드러지게 핀 코스모스(로 여겨지는 꽃) 사진을 올립니다. 이웃분들 모두 행복한 한글날 되세요.

ps. 오랫만에 제기차기를 해보니, 최고의 고관절 운동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힘드네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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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8-10-09 19:3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거라, 아이야.
우리 뱀들은 벗은 허물안에 다시 들어가지 않는단다.˝

정글북 안에 이렇게 멋진 구절이 있었나요?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 그리고 다시는 들어가지 못할 허물앞에 주저앉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모두를 위로해주는 글이네요

겨울호랑이 2018-10-09 20:59   좋아요 2 | URL
감사합니다. ^^:) 기억력이 좋지 않은 제가 알고 있는 몇 안되는 구절이니 거의 있을 것입니다. 기온이 떨어져 가을이 깊어가네요. 나와같다면님 편안한 밤 되세요!^^:)

2018-10-12 09: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10: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12 10: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Joseph Goebbels>(이하 <괴벨스>)는 랄프 게오르크 로이트(Ralf Georg Reuth, 1592 ~ )가 쓴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 1897 ~ 1945) 평전이다. 독일 제3제국 선전장관으로 나치 선전에 앞장선 괴벨스를 다룬 이 책의 큰 줄기는 그가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를 선택한 배경과 나치 집권을 위해 사용한 그의 선전 전략이라 생각되기에, 이번 페이퍼에서는 이를 중심으로 따라가본다. 


 <괴벨스>의 저자는 괴벨스가 어릴 때 갖게 된 '만곡족(彎曲足)'이라는 질병이 그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바라본다. 자신이 가진 신체적 약점으로 그는 열등감에 빠졌고, 이로 인해 한때 성직자를 꿈꾸던 소년이 신(神) 대신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 ~ 1900)의 '초인(超人)'을 기다리는 심정으로 구원자를 찾기를 원했다는 것이 그의 해석이다. 그의 해석에 따르면 소년 괴벨스가 갖게 된 질병이야말로 '비극(悲劇)의 탄생'이라 하겠다.


 소년 자신은 장애와 신앙의 관련성을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사실과 함께, 무엇보다도 어른들의 모욕적이고 동정 어린 시선과 친구들의 놀림 때문에 괴벨스는 신체적 장애가 모든 것에 그늘을 드리운다고 여기게 되었다. 그리하여 자신을 열등하다고 생각하고 집 밖으로 나가기를 꺼리게 되었다.(p23)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하느님은 왜 경멸과 조롱을 받도록 그를 만들었는가? 왜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자신과 삶을 그 자체로 사랑할 수 없는가? 왜 사랑하고 싶고 사랑해야 할 때, 그러지 못하고 증오해야 하는가?" 그래서 그는 신을 원망했다. "때때로 그는 하느님이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믿을 수 없었다."(p27)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괴벨스는 자신의 '현대적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모습을 한 다른 "구원자"를 찾으려했다. 그는 이미 박사논문에서도 '강력한 천재'를 갈망하는 마음을 표현한 바 있다.(p106)... 괴벨스는 믿음, 이러한 믿음의 육화(肉化)에 대한 갈망, 그리고 마지막으로 희생을 통한 자기 구원 등의 요소를 통해 사이비 종교적이고 병리학적인 나치즘 제식의 빈 껍데기 말들을 미리 발견했던 것이다.(p107)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괴벨스의 다른 사상 축이었던 반(反)유대주의 역시 그의 다리 장애와 무관하지 않다. 헤어진 약혼녀와 다투게 된 원인이 다리 장애였다는 사실과 그 약혼녀가 마침 유대인이었다는 사실이 그의 반유대주의의 모든 원인은 아니었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영국 출신 인종주의 이론가 휴스턴 스튜어트 체임벌린(Houston Stewart Chamberlain, 1855 ~ 1927)의 <19세기의 기초> 등의 책을 읽으면서 반유대주의를 강화해 나갔다. 


 1922년에 약혼녀 엘제 얀케는 그의 다리 장애 때문에 일어난 다툼중에 자신의 어머니는 유대인이고 아버지는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고백'했다.... 그러나 괴벨스가 유대인 문제를 자신의 사고에서 중심에 놓기 시작한 것은 은행에서 겪은 '체험'과 '통찰'에 따른 것이었다.(p118)... 이제 괴벨스는 유대인을 물질주의의 화신, 악, '적(敵)그리스도의 화신', 나아가 이 세상의 악덕에 구체적으로 책임이 있는 존재로 보기 시작했다.(p120)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괴벨스...>의 작가는 여기에 덧붙여 니체와 슈펭글러(Oswald Spengler, 1880 ~ 1936)의 사상 또한 청년 괴벨스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쳤음을 설명하고 있다. 다만, 이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을 수도 있다 여겨진다. 니체가 나치에 영향을 준 부분은 분명하지만, 니체 자신이 반유대주의자나 국수주의자가 아니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 니체가 나치주의의 사상적 원류라고 말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라 여겨진다.(니체사전 '나치스' 항목 참조)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서구의 몰락>을 읽은 것도 전반적으로 그의 심리 상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 니체 모방자가 쓴 역사형태학에서 괴벨스는 모든 문화가 생성과 소멸이라는 존재의 영원한 법칙에 묶여있다는 것을 읽었다. 그는 지금 영혼이 없는 물질의 시대, 산업과 '문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모든 문화가 소멸하기 시작하는 때임을 그 책에서 잀었다. 슈펭글러의 영원한 생성과 소멸의 법칙에 따르면 오로지 강자가 지배해야 하기 때문이다.(p80)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토마스 만(Thomas Mann, 1875 ~ 1955)도 말하듯이 "니체가 도덕, 인간성, 동정, 그리스도교에 적대한 모든 것, 그리고 아름다운 방탕, 전쟁, 사악에 참여하여 입에 올린 모든 것은 파시즘의 사이비 이데올로기에 자리를 얻었으며, 병든 자를 죽이고 열악한 것을 거세하라고 처방한 니체의 '의사를 위한 도덕', 노예제의 필연성의 인상을 준 교설, 종족 위생상의 선택 도태...... 의 넋두리는 나치스의 실천에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p66) <니체 사전> 中


 이와는 별도로 1930년대에 나치에 의해 전용된 다른 예술가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 1813 ~ 1883)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니체와 달리 반유대주의자였던 바그너의 사상은 삶을 부정하고 비방하는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생전 니체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 제3제국에서 이들의 사상들이 각각 나치즘에 영향을 주었다는 점을 고려해본다면, 서로 대척점에 있던 이들의 사상들이 파시즘 안에서 어떻게 합(合)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있을 것이라 여겨지지만,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고, 이제부터는 괴벨스의 대중선동에 대해 살펴보자.(니체의 바그너 비판은 낭만주의 사상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지만, 히틀러가 독일음악으로 생각했던 바그너의 음악이 니체로부터는 프랑스 풍(風)으로 비판 받았다는 점은 흥미있는 부분이라 여겨진다.)


 

 나는 바그너 음악을 영혼의 디오니소스적 강대함을 표현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했다. 바그너 음악에서 나는 태곳적부터 봉쇄당해온 삶의 근원력을 마침내 숨쉬게 하는 지진 소리를 들었다고 믿었다... 고통받는 자는 두 종류가 있다. 그 하나는 디오니소스적 예술을 원하고, 삶에 대한 비극적 통찰과 비극적 개관 또한 원한다 - 또 다른 하나는 삶의 빈곤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다.(p530)... 삶에 대한 보복 - 이것은 그런 빈곤한 자에게는 가장 자극적인 도취인 것이다!...... 후자의 이중적 요구는 쇼펜하우어와 바그너에 걸맞은 것이다. - 이들은 삶을 부정하고, 삶을 비방하며, 그러기에 내 대척자들이다.(p530)... 마지막으로 리하르트 바그너에 관해 말하자면 : 사람들은 바그너의 진정한 기반은 파리라는 사실을 분명히, 그리고 명백히 알고 있다.(p532).... 나는 언제나 독일인이기를 선고받았다......(p538) <니체 대 바그너 Nietzsche contra Wagher> 中

 

 다른 이들 앞에서는 어떤 것을 알고 있는 양 모습을 취하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그것을 모른다는 강한 의구심과 두려움이 포함돼 있습니다...나에게는 두 사람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공적인 모임의 대중 앞에서 긴 연설로 위장할 수 있는 한 사람을 나는 봅니다.... 긴 연설을 하는 자는 우리는 무엇이라고 밝힐까요? 정치가인가요, 아니면 대중선동가인가요? 대중선동가입니다.(268 a ~ b) <소피스트 Sophistes> 中


 1926년 나치의 베를린 관구장으로 임명된 괴벨스는 이때부터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게 된다. 대중 앞에서 대중들이 간명하게 이해할 수 있는 주제만을 강조하는 그의 선전술은 오늘날에도 많이 볼 수 있는 마케팅 전술로 현재도 유효하다. 이러한 형식을 가깝게는 K-POP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에게 후크송( 영어로 kitch song)으로 알려진 짧은 구절을 반복하는 노래 형식은 강렬함을 더해주는데, 괴벨스는 이러한 점을 극대화하여 사용했다. 오래되었지만, 2008년 쥬얼리의 <Baby one more Time>이 가장 인상적인 후크송이라 생각되어 올려본다.



 "이 도시(베를린)는 센세이션(흥분, 사건)을 먹고 산다. 그리고 이를 소홀히 하는 정치 선전은 모두 수포로 돌아갈 것이다."... 괴벨스의 견해에 따르면, 대중의 시대에 거리는 "현대 정치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훗날 그는 "거리를 정복할 수 있다면 대중을 정복할 수 있다. 그리고 대중을 정복하는 자는 국가를 정복한다."라고 회고했다.(p180)... 괴벨스는 '이념'을 모든 선전 활동의 전제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 이념을 구구절절이 두꺼운 책에 쓸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매우 간명하고 대중이 이해할 수 있는 주제"만을 담고 있어야 한다.(p181)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괴벨스는 선동 연설이나 <공격> 논설에서, 파리에서 '진짜로'일어나고 있는 일은 바로 독일 민족을 노예화하고 결국 서양 전체를 몰락시키려는 '국제 유대주의'의 가공할 음모라고 집요하게 반복 주입하였다.(p229)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괴벨스가 전달하고자 하는 '이념'은 이성(理性)에 호소하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감성(感性)에 호소하는 것이었다. 과학과 이성이 강조된 산업화 사회에서 따뜻한 인간의 감성을 울리는 '감성 마케팅'과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과학'을 잘 조합한 괴벨스의 전략은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나치는 다수당의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괴벨스는 청중들에게 이른바 '이념'의 숭고한 점을 전달하고 그들을 신자로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다. 나치즘은 그들에게 (머리가 아닌) 심장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치즘이 다른 정치 노선보다 탁월해 보일 뿐 아니라, 물질주의적이고 차갑다는 판결을 받은 대도시의 세계에서 확연히 눈에 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괴벨스가 조직한 선전 집회들은 항상 청중들의 감정과 본능에 호소했다.(p187)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괴벨스의 수많은 연설 외에도 포스터가 선거전의 주요 선전도구로 쓰였다. 선거전에 투입된 선전물의 양이 결국 득표 수에 반영된다는 괴벨스의 지론에 따라... 괴벨스는 다른 선전 도구들도 활용했는데, 기술적으로 그 시대의 수준에 걸맞는 것이었다. 그는 축음기용 음반을 하나 제작해 총 5만장을 찍었는데, 음반 하나가 일반 편지 봉투에 넣어 발송할 수 있을 만큼 크기가 작았다.(p334)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된다. 나치의 성공적인 선전 전략은 괴벨스 독창적인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가깝게는 <프로파간다 Propaganda>의 버네이즈(Edward Bernays, 1891 ~ 1995)로부터 멀게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4 ~ BC 322)나 플라톤(Platon, BC 428 ~ 427) 때부터 대중선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면, 대중 선전의 역사가 결코 짧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괴벨스는 여기에 충실하여 자신의 환경에 맞는 방법을 고안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라 할까.

 

 청중을 설득하고 훌륭한 조언을 할 수 있는 모든 수단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가장 효과적인 것은 모든 정체(政體)를 알고 각 정체의 관습과 제도와 이점을 구별하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 설득되고, 유익한 것은 정체를 보전하기 때문이다.(1365b 22 ~ 25)... 우월함은 미덕을 암시하는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모든 연설에 공통된 현상 가운데 '효과의 강화'는 과시용 연설에 가장 적합하고, 예증은 심의용 연설에 가장 적합하며, 생략삼단논법은 법정 연설에 가장 적합하다.(1368a 26 ~ 32) <수사학 Techne Rhetorike> 中


 <괴벨스...>에서는 괴벨스의 삶을 보여주면서 그가 나치에 빠지게 된 배경과 그를 유명하게 된 선전술이 효과적인 감성마케팅 전략의 결과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후 책 본문에서 놀라운 선전술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인 약속과 실천을 하지 않으면서도 제국 내 2인자의 위치를 끝까지 지켜내는 괴벨스의 모습이 그려지는데, 그러한 과정에서 플라톤이 <고르기아스>에서 지적했던 연설가(고르기아스)의 허언(虛言)에 대한 비판을 떠올리게 된다.


 연설술은 사실 자체가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 필요가 전혀 없지만, 대신에 설득의 어떤 계책을 찾아내어 모르는 자들 앞에서 아는 자들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해야 합니다.(459c)... 연설가는 그것들 자체는 모르지만 즉 좋은 것이 무엇인지, 나쁜 것이 무엇인지, 훌륭한 것이 무엇인지, 부끄러운 것, 정의로운 것, 부정의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모르는 자들 앞에서 모르면서도 아는 자보다 더 많이 아는 것처럼 보이도록 그것들에 관하여 설득할 계책을 마련해 놓고 있습니까? <고르기아스 Gorgias> 中


 제2차 세계대전으로 나치가 패망한지 70년이 지났지만, 우리는 여전히 괴벨스의 후예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가짜뉴스가 판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기 힘든 시대에서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은 어두운 곳에서 밝은 곳을 지향하는 파시즘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기록서라 여겨진다.


[사진] Fake news(출처 : BBC.com)


 괴벨스의 가장 강력한 동맹자는 다름 아니라 점차 심화되어 가는 독일의 고난이었다. 실업자 수는 오래전에 3백만 명 상한선을 넘어섰다. 그들은 더 나은 상황으로 급격한 변화를 약속하는 자들에게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p279) <괴벨스, 대중 선동의 심리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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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0-06 17: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괴벨스에겐 그런 약점이 있었군요 이 책 읽어보고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겨울호랑이님 ㅎㅎ

겨울호랑이 2018-10-06 17:51   좋아요 1 | URL
이번에 <괴벨스...>를 읽다보니, 히틀러도 그렇고 파시스트들에게는 어딘지 모르게 어둠의 기운(?)이 있음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카알벨루치님 평안한 주말 되세요!^^:)

syo 2018-10-06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거기서 쥬얼리가 나오다니! 당했다..... ㅎㅎㅎ

카알벨루치 2018-10-06 17:47   좋아요 1 | URL
추억이 돋아 동영상부터 봤다는

겨울호랑이 2018-10-06 17:53   좋아요 1 | URL
^^:) 다소 생뚱맞지만, 일종의 호객행위가 되버렸습니다.ㅋ

카알벨루치 2018-10-06 17: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격이....쎄네요 =333333...55555555ㅋㅋ

겨울호랑이 2018-10-06 17:54   좋아요 1 | URL
네 좀 두께가 되는 책이 되어서 그런지 좀 비싸네요ㅜㅜ

카알벨루치 2018-10-06 17:56   좋아요 1 | URL
지를 때 눈 감고 손가락만 움직이면 됩니다 ㅎ

겨울호랑이 2018-10-06 18:07   좋아요 1 | URL
^^:) 알라딘 마을은 마음이 통하는 분들이 많아 편하고 좋습니다.ㅋㅋ

카알벨루치 2018-10-06 18:08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같이 지르러 갈까요 =33333333

겨울호랑이 2018-10-06 18:12   좋아요 1 | URL
저는 <괴벨스...>는 이미 구입해서 다음 달에 다른 책으로 하겠습니다.ㅋ

곰곰생각하는발 2018-10-06 18: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고퀄리티 페이퍼입니닷 !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18-10-06 18:50   좋아요 0 | URL
^^:) 곰곰발님 감사합니다. 평안한 주말 보내세요!^^:)

2018-10-06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6 21: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레삭매냐 2018-10-06 21: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진영논리니 복잡한 설명 다 필요없습니다 -
현실의 문제를 직격하고 감성을 자극하는
선동적 문구 하나면 끝납니다.

나치 선전상 괴벨스는 대중의 그런 점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실행에 옮긴 거지요.

그 와중에 훼이크 뉴스의 활용은 정말 탁월
했습니다. 독일 민족이 지금 겪는 모든 고
통과 만악의 근본 원인은 바로 유대인이다.
공격해야 할 소수 희생양까지 점지해 주었
으니...

겨울호랑이 2018-10-06 21:55   좋아요 0 | URL
나치 집권 과정이 완벽하게 합법적인 절차를 통해 이루어졌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레삭매냐님의 지적대로 핵심은 대중 선동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소수 세력이었던 나치가 다른 세력과 연합을 통해 내각을 구성하고 하나하나 적으로 돌리면서 최후의 승자로 남을 때도, 스탈린그라드에서 괴멸적인 패배를 당했을 때조차도 그 원인을 다른 곳에서 돌리면서 대중의 눈을 가리는 모습을 책 속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 모습을 탁월하다 해야할지, 사악하다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2018-10-07 0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8-10-07 1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