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연 인천의료원 원장은 ‘재난 자본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코로나19 환자를 보는 동안에는 손실보상금이 나와서 그때는 지방의료원의 재정도 안정적이었다. 시민들 사이에서 존재감도 커졌으니 오랫동안 외면당했던 한국의 공공의료가 성장하겠구나, 기대감을 품었다.
천문학적으로 풀린 정부 예산 대부분이 민간병원으로 가서 우리 의사와 간호사들을 빼가는 데 쓰일 줄은 몰랐다."  - P13

역설적 상황이다. 공공병원에 요구되는 시대적 과제는 점점 무거워지는 데 반해 지방의료원들은 경영난과 의료진 이탈 등 좀처럼 출구를 찾기 어려운 수렁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가뜩이나 취약했던 한국의 공공의료 기반도 나날이 침식되고 있다. - P15

한국 보건의료가 민간병원을 중심으로 발전해왔다는 것, 정말 맞는 얘기다. 농촌, 시골, 지방 소도시에도 다 민간병원이 들어가 있다. 공공병원인 지방의료원은 전국 통틀어 35개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지방 소멸이 심화되면서 지역에서 민간의료가 더 이상 지속 가능하지 않게 돼버렸다. 심폐소생을 해서도 더이상 살아나기 힘든 지경이다.  - P18

우선은 현 정부의 국정 철학이 공공의료 확대와 배치되는 측면이 있다. 보건의료에 대해서는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고, 기획재정부의 경제 논리에서도 어느 정도 보호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공공의료 강화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제이다. 구체적인 방안으로 ‘공공의료기금‘ 신설을 제안하고 싶다. - P19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는 백서에서, 이명박 정부 초기 블랙리스트 정책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인물로 유인촌 문체부 장관 후보자를 지목한다. 총 10권(본책 4권, 부록 6권)에 유 후보자 이름만 총 104회 등장한다. 유후보자는 이명박 정부 초대 문체부 장관이었고, 최장수 장관 기록(3년)을 세우고퇴임했다가 윤석열 정부에서 다시 문체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됐다. - P22

 김학의 사건 등 검찰의 권한남용에 대한 공수처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게 지금 사실관계가 다 맞다면, 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은 처벌을 안 받는다, 그것은 법 앞의 평등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법의 지배 원리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 질서 상 허용되지 않는다. 공수처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 P25

뉴스 유통 플랫폼인 포털사이트도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라왔다. 5월12일국민의힘은 정부가 포털의 기사 배열 기준을 들여다보고 개입할 수 있는 법안을 발의했다. 방통위는 9월25일 네이버 사실 조사‘에 들어갔다. 지난 7월5일부터 실시해온 네이버 뉴스 서비스 실태점검 결과 언론사 제휴와 관련해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사항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방송·신문·인터넷 뉴스 그리고 포털사이트까지, 임기 2년 차 윤석열 정부의 ‘언론 장악 의혹‘ 타임라인이 숨 가쁘게 전개되고 있다. - P31

부동산 PF는 한국경제의 핵심뇌관으로 지목받고 있다. 저금리 환경에서 시작된 부동산 PF가 고금리 환경에서 부실화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한국에서 PF를동원한 부동산 개발사업은 크게 3단계자금이 동원된다. 브리지론(1차 대출)을통해 토지를 구입하고, 인허가 후 본PF(2차 대출)로 대출을 갈아탄 뒤, 분양(판매)을 통해 공사비를 충당한다. 시행사가처음부터 자기자본을 대거 투자하는 방식이 아니다. - P40

서울시 역시 2004년 버스 준공영제도입 이후 2019년까지 총 4조320억원에달하는 운송 적자를 지원금 등으로 충당했다. 김형수 팀장은 민간사업자의 이윤보전을 위해 사용되는 비용을 대중교통의 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지자체가 직접투자할 때라고 말한다. - P47

지금처럼 극소수 강경파가 판치는 상황을 끝내기 위해서는 우선 차기 의장과 공화당 주류 의원들이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강경파 의원들의요구로 지난 1월 개정된 하원 규칙, 즉 ‘단 한 명의 의원이라도 해임안을 제출하면 의장은 재신임 투표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부터 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완성된 <뮤지엄 산>은 지붕의 기복을 정교하게 사용하여 입구에서부터의 긴 산책로를 거쳐 뮤지엄 본관에 도착하며, 다시 그 앞에 스톤 가든을 배치한 직선 구조를 이루고 있다. 본관 건물은 세 개의 직육면체가 평행하게 비껴가게 늘어서고 또 하나의 직육면체가 비스듬하게 그것들을 연계하는 배치이며, 그것들의 결절점에 정육면체와 원통(실린더), 이른바 <안도적 입체>가 들어가서 명쾌한 기하학적 구성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의 동선을 이끄는 공간의 연쇄는 복합적이므로 높이가 달라지고 갑자기 개구(開口)가 열리는 등 안도 다다오의 문법이 고스란히 실현되어 있다.... 한국은 석재가 풍부한 만큼, 돌을 사용하는 데는 공을 들였다. 그래서 채용한 아이디어는 안팎의 이중 상자로 이루어진 중첩 상자 구성으로, 바깥쪽은 돌 붙임 벽으로 덮은 상자, 안쪽은 노출 콘크리트로 소재의 차이를 도드라지게 했다. 30만 개의 돌판이 필요했으며, 그것을 설치하는 작업은 장관이었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87


[사진] 뮤지엄 산 안내도


 지난 주 원주에 있는 <뮤지엄 산>에 다녀왔다.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개관 10주년을 맞이한 <안도 타다오-청춘>이란 주제의 대규모 개인전. 건축가의 전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지만, 전시회가 열리는 공간 자체가 이미 작품이니 그 안에서 건축가의 의도, 건축의 특징을 느끼는데는 부족함이 없다. 


 1976년부터 10년 동안의 안도 주택 특징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세련된 노출 콘크리트에 의한 디자인. 둘째, 기하학적인 형태. 셋째, 빛에 대한 집착. 넷째, 시선과 동선을 중시.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85


[사진] 뮤지엄 산 전시관 외부


 콘크리트 소재감이 흡사 스키야의 나무처럼 단정하여 내부 공간의 품위와 밀도를 높이고 있다. 안팎의 뛰어난 공간 배치와 어우러져 당대 비할 데 없는 철근 콘크리트 주택이 되고, 심지어 건축의 변치 않는 본질에 다가가며 어떤 가식도 없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05


 건축가에게 기하학이란 도형이나 공간을 해석할 뿐만 아니라 형태 자체를 만들어 가는 원리이다. 계산에 따라 끌어내는 대수 값으로 길이나 크기가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도형적으로 풀어야 한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30


[사진] 빛의 공간 The space of Light 입구


[사진] 빛의 공간 The space of Light 내부 천장


 실내에 발을 들여놓는다. 벽이 평행하게 여러 개 겹쳐서 투사되는 그림자에 농담이 생긴다. 벽은 빛을 흡수하여 바깥 세계의 소리가 소멸한다. 굳게 침묵을 지키는 실내에서 시간이 정지한다. 스며 나오는 그림자는 신비한 느낌을 휘감은 침묵의 두께로 모습을 바꾼다. 가늘고 긴 슬릿을 통해 흘러 들어와 떨어지는 빛이 투명한 층으로 순화되어, 방 전체를 밝히지 않고 벽에 흡수되어 간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48


 내외부가 연결된 콘크리트 구조와 기하학적인 구도에서 흘러나오는 빛과 어둠의 대비. 물과 바람의 길처럼 건물을 크게 가로지르는 구도. 그 여백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공간(空間)을 읽는다. 그렇다면, 시간(時間)은 어디에 있을까?


 정육면체 등의 근원적인 도형이 그대로 유지되면 기하학의 절대성은 흔들리지 않는데, 안도는 지오메트리와 풍토성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잡는다. 르코르뷔지에 같은 플라톤주의 계승자들과의 차이가 거기서 드러난다. 대지를 읽는 수준을 훌쩍 뛰어넘어, 대지의 배후에 있는 지형, 문화, 기맥(氣脈) 같은 것을 몸으로 느끼는 것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37


  뮤지엄 내부에서 우리는 시간을 발견하지 못한다. 건물 바깥에 심어진 가을꽃들이 자태를 뽐내지만, 건축의 수명에 비길바는 아니다.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의 시간을 찾기 위해서는 좀 더 멀리서 지켜봐야 한다. 뮤지엄 산을 둘러싼 수십 억년의 역사가 담긴 대지(大地)와 산. 거기에서 자라난 수십 년 수령의 나무들. 이들이 바로 공간을 둘러싼 시간이 아닐까.


 식물은 성장한다. 특히 수목은 수명이 몇십 년, 때에 따라서는 1백 년이라는 규모이며, 사찰 경내에 있는 나무는 몇백 년에서 1천 년 단위이다. 안도의 내면에 있는 시간의 계측 단위에는 두 가지 표준이 있는 것 같다. 하나는 건축으로, 몇 년이 걸려서 준공하고 그 후에는 수십 년 단위로 유지, 보수하면서 지속된다. 다른 하나는 수목 또는 식생으로, 이것의 수명은 최소 50년에서 1백 년이며 앞으로도 긴 세월 동안 생명을 유지한다. 안도의 신체에는 이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 수명이 함께 갖춰져 있어서 건축과 수목, 양쪽을 오가면서 생명을 불어넣는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76


 때마침 단풍의 계절이었다. 산등성이에 펼쳐진 이 땅을 본 안도는, 거기서 다른 데서는 맛볼 수 없는 '생명의 힘'을 느꼈다고 한다. 이 흙에서 솟구쳐 오르는 힘은 미래의 아이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고, 자손 대대로 이어져 갈 땅이라고. 이 절묘한 대지를 보고 안도는 그 자리에서 설계하기로 결단을 내리고 스케치도 그린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499


[사진] 뮤지엄 산 외경


 젊은 시절 프로권투선수였던 안도는 두가지 싸움을 펼친다. 자연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인간의 세계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서구적 가치관과의 싸움 그리고 주어진 환경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는 싸움. 모든 예술가가 마찬가지겠지만, 안도 다다오에게도 작품은 치열한 싸움의 결과물임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주거야말로 거점이며 전투의 요새이다. 안도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어디까지나 개개인으로부터 시작되는 '산다', '생활한다'는 것에 대해 자아가 그로테스크하게 느껴질 정도까지 드러내는 원시 욕구를 사고의 중심에 놓음으로써, 주거는 그것들을 폭 감싸서 덮어 버린다"... 자신의 주거를 만들어 그 안에 기존 마을 풍경 속에서 키워 온 생활을 외부 자본에 맡기지 않고 관철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48


 건축은 싸움입니다. 거기에는 긴장감을 지속시킬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모든 것이 걸려 있습니다. 긴장을 지속하고 사물을 끝까지 파고들어 그 원리까지 되돌아가서 재조합하는 구상력이야말로 문제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기존의 조합을 깨부수는 강력함을 가진 건축을 낳는 것입니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58


 

 <뮤지엄 산>에서 안도 다다오의 도록 <TADAO ANDO : YOUTH>를 구입했다. 이 도록은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에서 설명된 주요 작품에 대한 생생한 컬러 사진을 제공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더해준다. <안도 다다오-안도 다다오가 말하는 집의 의미와 설계>는 건축의 도면에 대한 정리가 잘 되어 이들을 통해 안도 다다오의 건축을 바라본다면, 보다 의미있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물의 교회>에서는 무덤 앞에 세우는 표시처럼 우리를 마주 보는 네 개의 십자가를 빠져나와 예배당 안으로 들어오게 되며, 거기서 다시 물의 정원에 우뚝 선 십자가를 바라보게 된다. 반대로 <빛의 교회>에서는 성당 정면에 벽을 찢고 빛이 된 십자가가 출현한다. 전자가 행진에 의한 죽음과 재생의 의식이라면, 후자는 현현(顯現) 그 자체이다. _ 미야케 리이치, <안도 다다오, 건축을 살다>, p187


[사진] 물의 교회


[사진] 빛의 교회


 서로 다른 두 개의 교회를 연결시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재림의 의미를 해석한 글 안에서 스토아학파적인 안도 다다오의 면모를 깨닫게 된다. 이 참에 임석재의 서양 건축사도 정리해봐야겠다...


 포스트모던이라 불리는 1970년대 이후의 현대는 에피쿠로스학파, 스토아학파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1970년대 이후의 건축과 도시계획에 있어 포스트모더니즘은 개별 건축물부터 도시에 이르기까지 통일감 있는 디자인으로 구성하겠다는 야망을 단념하고 유동하는 하나의 무리가 된 세계 속에서 로컬한 질서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런 점에서, 스승인 단게 겐조(1913~2005)의 모더니즘으로부터 포스트모더니즘으로 전향한 이소자키 아라타(1931~2022)를 에피쿠로스학파에 비교한다면, 단게-이소자키와 같은 국가적 엘리트와는 거리가 먼 곳에서 맨주먹으로 출발한 안도 타다오(1941~ )는 스토아 학파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스토아학파의 가르침처럼, 형성된 질서는 반드시 해체되고 태어난 것은 반드시 죽게 되므로 그 운명에 화내고 슬퍼해봤자 소용이 없으니, 오히려 사태를 냉정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 더 나아가 운명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일까? _ 아사다 아키라,<안도 타다오, YOUTH> <안도 타다오의 스토아학파적 건축> 中





댓글(8) 먼댓글(0) 좋아요(4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3-10-16 03: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겨울호랑이 님 안도 다다오가 설계한 뮤지엄 산에 다녀오셨군요 그런 곳이 있다는 말 들어본 적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어느새 십년이 되다니... 안도 다다오 이름만 알고 잘 모르기도 하네요 안도 다다오 건축을 보고 서양건축사를 정리하시려 하다니 멋지시네요 저는 그런 거 보면 그걸로 끝일 텐데... 하나에서 다른 걸로 이어지는 공부를 하면 좋을 듯하네요


희선

겨울호랑이 2023-10-16 07:42   좋아요 2 | URL
저도 뮤지엄 산 근처에 자주 가면서도 제대로 감상한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사실 이번에도 거의 지나칠 뻔 했는데 다행히 기회가 잘 맞았고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많은 기회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지나가 놓쳐버린 것이 얼마나 많을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기회를 통해 무엇인가를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는 것은 계획에는 어긋나지만, 우리 삶을 재밌게 해주는 일탈이 아닌가 싶습니다. 희선님, 감사합니다! ^^:)

yamoo 2023-10-16 0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여기 어디 인가요? 저도 시간되면 가볼까 합니다만..^^;;

겨울호랑이 2023-10-16 10:13   좋아요 2 | URL
강원도 원주 오크밸리안쪽에 있는 <뮤지엄 산>입니다. <안도 다다오 - 청춘>은 10월 29일까지 예정되어 있어 시간이 조금 촉박하네요... 조금 멀지만 좋은 시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yamoo님 좋은 하루 되세요! ^^:)

2023-10-16 1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3-10-16 14: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꼬마요정 2023-10-20 10:4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아 <뮤지엄 산>이로군요!!! 저는 2017년에 다녀오고 다시 못 가서 아쉽습니다. 너무 예쁘고 신기한 곳이었죠. 그 때는 백남준 전시 보고 제임스 터렐관 갔었어요.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건축가들도 천재인 것 같아요!!!!!

겨울호랑이 2023-10-16 17:47   좋아요 2 | URL
지금도 백남준 전시와 제임흐 터렐관에서 전시 중이라 안도 다다오 전 이외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습니다. 저 도한 산 속에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재생과 부활의 공간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다른 분들에게도 멋진 공간으로 기억되는 것 같아 반갑습니다 ^^:)
 

《정의론의 핵심은 우리가 타고난 천부적 재능과 사회적 지위 모두가 도덕적 정당 근거가 없는 우연적인 것인 까닭에 그것들을 공동의 자산으로 간주하고 중립화하는 데서 정의에 대한 생각이 시작된다는 점이다.  - P43

그런데 형식적 기회 균등도 아니고, 실질적 기회 균등도 넘어서서 공정한 기회 균등까지 보장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여기에서 롤스는 우선 절차적 정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되 그 문제점을 ‘최소 수혜자 최우선 배려의 원칙‘을 통해 보완하는 전략으로 자신이 구상하는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고자 한다. - P43

롤스는 ‘무지의 베일 the veil of ignorance‘을 통해 각자의 운명을 모르는 상태에서 가장 불운한 계층의 일원이 될 각오 아래 선택한 것이 바로 정의의 원칙으로서 정당화된다고 보았다.  - P48

이런 점에서 롤스의 정의론은 절차주의적 측면과 결과주의적 측면의 상호 보완을 통해 구성된다고 할 수 있다.
즉 기회 균등을 중심으로 수행되는 절차주의적 과정의 부족한 측면을 공정 분배라는 결과주의적 조정으로 보완함으로써 롤스의 정의론이 완성되는 것이다. - P60

"모든 사회적 가치들-자유, 기회, 소득, 재산 및 자존감의기반은 이들 가치의 전부 또는 일부의 불평등한 분배가모든 사람에게 이득이 되지 않는 한 평등하게 분배되어야한다."(《정의론》, 107쪽) - P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방기의 제주가 4·3이라는 역사적 소용돌이로 치달아가게 된 원인을 나름대로 탐색하면서 사건을 총체적으로 다뤄보고자 했으나 4·3은 인간의 언어로 그려내기엔 너무나도 압도적인 비참함이라는 것이다. 작가는 북토크 내내 "어두운 방 안에서 코끼리를 더듬은 격"이라는 표현을 반복했다.

그가 찾은 키워드는 제주의 ‘공동체주의’다. 작가는 그때는 분명히 존재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제주 공동체를 그리워하면서, 지금의 제주가 대한민국의 일부라 해도 중앙정부와는 거리를 두고 ‘완전한 독립’과 ‘자치권’을 얻기를 소망했다.

『제주도우다』는 항쟁이 일어나기 이전의 제주를 공들여 묘사하고 있다. 해방과 함께 갑자기 인구가 6만이나 늘어난 제주는 들떠 있었다. 주인공 안창세가 조천중학원을 다니던 1946년에는 전도의 소학교 학생 수만 2만에서 4만으로 늘었다. 일본이 물러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튀어나와 조선말을 쓰고 자치조직을 만들면서 새 나라를 세우고자 한 이들은 보통의 제주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무슨 일이든 공동체적으로 대응했으니 4·3은 해방공간에서 자주독립국가를 꿈꾸었던 민중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공동체로서 봉기한 것이라고 봐야 해요. 사실 처음 원고에는 ‘아나키즘’이라고 썼는데 교정을 보며 ‘무정부주의’라고 고쳤어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현대철학 케니의 서양철학사 4
앤서니 케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서광사 / 2013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철학의 역사를 통하여 용어 표현을 달리하면서 두고두고 되풀이해서 제기된 하나의 형이상학적인 문제가 있다. 이것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이해하려면 일상생활에서 쏜살같이 스치듯 마주치는 개별적인 것들과 완전히 다른 종류의 대상들(entities)이 정신의 외부 세계에 실존해야만 하는지를 묻는 물음이다. 고대에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데아나 형상이 물질이나 물체와 상관없이 독립적으로 실존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를 논했다. 중세에는 줄곧 보편자가 실재하는 것인지 기호에 불과한 것인지를 두고 실재론자와 유명론자 사이에 논쟁이 이어졌다. 현대의 수학철학자들은 수를 숫자와 동일시하는 형식주의자, 그리고 수가 정신 세계나 물질 세계가 아닌 제3세계를 구성하는 독립적 실재성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실재론자와 수학적 대상의 본성에 관해 팽행한 논쟁을 벌였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254


 앤서니 케니(Anthony Kenny, 1931 ~ )의 <현대철학 A  New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volume 4 : Philosophy In The Modern World>은 시리즈의 마지막이자 벤담(Jeremy Bentham, 1748~1832)부터 1970년대까지 철학을 다룬다. 철학사의 전체적인 흐름을 앞 장에서 정리하고, 뒷부분에서 세부적으로 내용을 정리하는 케니의 서양철학사의 서술은 흔들림없이 시리즈의 마지막까지 이어진다. 현대 철학의 이 이전 시기의 철학과 가장 크게 구분되는 점은 무엇일까. 중세의 유명론(nominalism)과 실재론(realism) 논쟁과 같은 시대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반복되는 주제가 현대 철학에서도 다뤄지기도 하지만, 가장 특징적인 부분은 자연과학의 독립과 수학의 도입이라 생각된다. 


 지칭 대상의 불투명 문제는 이 모든 양상 문맥에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그 문제는 두 종류의 다른 지칭 대상을 구별함으로써 처리될 수 있다. 어떤 용어가 진정한 이름이 되기 위해서는 크립키의 전문 용어로 고정 지시어(rigid designator)라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그 용어는 모든 가능 세계에서 지칭 대상이 동일해야만 한다. 그와 달리 뜻에 의해 지칭 대상이 정해지기 때문에 가능 세계에 따라 지칭 대상이 달라지는 표현들도 있다. '9=행성들의 수'에서 '9'는 사실상 어느 가능 세계에서나 계속 그 지칭 대상을 유지하는 고정 지시어이다. 그러나 '행성들의 수'는 다른 세계에서 다른 수를 지칭할 수도 있는 일종의 기술(description)이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174


 근대 철학에서 인식과 관련하여 감성(感性), 지성(知性), 이성(理性) 등 인간의 사고 능력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이루어졌고, "나는 무엇을 알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는 무엇을 희망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는다면, 현대 철학에서는 "내가 하는 '무엇'은 무엇인가?"라는 한 단계 더 들어간 질문과 답이 논의된다. '무엇'이라고 지칭되는 대상의 기호와 의미와의 관계 속에서 전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던 언어(言語)의 문제가 현대철학에서는 본격적으로 다뤄진다. 언어와 대상 사이의 관계, 지각(知覺) 이전의 관계가 새롭게 주목되고, 사회와 언어의 상호작용으로부터 오염을 최소화하기 위한 간결한 수학적 표현 양식의 등장 등이 현대철학과 이전 철학의 큰 차이점으로 생각된다.


 비트겐슈타인은 언어 게임에 정통하는 것이 의심의 전제 조건이라고 주장한다. p라는 것에 대해 의심을 보이기 위해서는, 누구든 p라는 말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해야만 한다. 데카르트의 극단적인 의심은 그 의심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 낱말들의 의미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기 떼문에 자멸하게 된다. (OC 369, 456)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237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철학은 이전 시대의 다른 어떤 철학보다 불명확하다는 특징을 갖는다. 이는 이전 시기의 철학들이 권위를 통해 극단적인 경우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진 데 반해, 반증가능성이라는 과학의 특성과 다원화된 민주주의 체제가 보편화된 현대철학에서는 보다 세분화된 영역에서 간결한 방식으로 다양한 양태로 수많은 사상이 공존하는 것이 아닐까.


 다윈주의는 많은 것이 설명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개체종이 이전의 종으로부터 기원하는 것이 진화론적 압박과 선택의 메커니즘에 의해 설명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은 그와 같은 종의 기원을 설명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연선택에 의한 설명의 출발점 가운데 하나가 전형적인 번식 집단, 즉 종이 존재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419


 제임스는 결론에서 우주의 최상의 실재(supreme reality)를 흔쾌히 '신'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신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설명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그것은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가 신을 '모든 사물이 그들 존재의 법칙을 실현하려는 경향성의 흐름' 또는 '의로움을 향한 우리 자신이 아닌 영원한 힘'이라고 정의한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제임스는 종교를 본질적으로 감정의 문제로 간주했고, 감정을 본질적으로 분명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에, 그의 불분명한 표현은 이미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435


 근대 이후 과학을 새롭게 떠나보내고, 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현대철학. 지금도 계속 새로운 이론과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철학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하거나 이해하는 것은 분명 불가능한 일이다. 불가능에 대한 미련은 버리고, 큰 흐름을 잡는다는 생각으로 정리를 한다면 케니의 <현대철학>은 좋은 개론서가 되리라 생각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크로체의 경우, 예술은 역사와 과학 사이에 위치한다. 역사와 마찬가지로 예술은 일반 법칙이라기보다는 특수 사례를 다루기는 하지만, 예술의 특수 사례는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된 것이며, 과학처럼 보편적 진리를 예시한다... 크로체에게 예술의 핵심은 직관(intuition)이다. 직관은 실증주의자들이 뭐라고 말하든 느낌(feeling)과 동일하지 않다. 느낌은 표현을 필요로 하는데, 표현은 인지적 문제이지 감정상의 문제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_ 앤서니 케니, <현대철학>, p3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