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진 - 청(淸)의 중앙유라시아 정복사 역사도서관 9
피터 C. 퍼듀 지음, 공원국 옮김 / 길(도서출판)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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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서 나는 유럽 국가들과 유라시아에서 경합하는 세 주요 제국, 즉 준가르 몽골, 러시아, 중국이 유사하다는 점을 주장한다. 세 국가 모두 지정학적 경쟁의 추동을 받아 전쟁과 무역과 외교를 통해 상대방과 경합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자원을 동원했다. 맞수와 경쟁하기 위해 개별 정권들은 자기 영내의 민족들과 이웃 민족들에게서 자원을 거둬들임으로써 '국가성(stateness)'을 증대하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실질적인 사회적/제도적 개혁을 이루게 된다.(p45)... 나는 이 정복을 중국의 '신장 新疆' 정복이라 보지 않고, 중앙유라시아와 중국 핵심부를 최대한 자신의 지배 아래 두기 위해 중앙유라시아 국가가 거대한 중국의 관료제와 경제적 자원을 이용해 팽창한 것으로 파악한다.(p48) <중국의 서진> 中


 <중국의 서진  China Marches West: The Qing Conquest of Central Eurasia>은 청(淸)의 전성기를 이끈 강희제(康熙帝, 1654 ~ 1722), 옹정제(雍正帝 ; 1678 ~1735), 건륭제(乾隆帝, 1711 ~ 1799)가 지금의 신장/위구르 지역의 지배권을 어떻게 확립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다.


 러시아인들이 이익을 좇아서 단지 모피와 엄니가 있는 곳에만 관심이 있었던 반면, 중국인들은 안보를 추구하여 단지 즉각적인 위협에만 관심을 두었다.(p132) ...  몽골 원정은 청이 세계사적 중요성을 지니는 중앙유라시아 제국으로 발돋움하게 된 가장 결정적인 표지였다.(p181) <중국의 서진> 中 


 1세기에 걸친 중국의 중앙아시아 진출을 다룬 이 시기의 주인공은 3개 제국(帝國)이었다. '중국의 서진' 결과 최후의 유목 제국이었던 준가르(準噶爾, 1619 ~ 1758)는 멸망에 이르게 되었고, 청은 이를 통해 제국주의 국가의 면모를 보여주게 된다. 당초 이 전쟁의 배경은 거창한 것은 아니었지만, 각국은 자신의 이해를 극대화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고 자신의 역량을 집결하였다. 그리고, 이들의 이해 관계는 중앙아시아에서 맞아떨어졌다.


 16세기 말 러시아인과 만주족이라는 두 삼림 민족은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서로가 북쪽의 초원을 양분할 때까지 계속해서 팽창하기 시작했다 양자 모두 조직화와 정치기구로 인구의 열세를 보충해야 했다... 혈연관계가 통치 엘리트들을 하나로 묶었고, 농노제 혹은 속박 노예제가 농업 생산자들을 군사화된 국가에 묶어놓았다. 양자는 농경 지대 가장자리의 제한된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 군사적 귀족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 양자는 농경 지대 가장자리의 제한된 자원을 집중시키기 위해 군사적 귀족제를 효과적으로 이용했다.(p80) <중국의 서진> 中


 '경제적 이익'과 '안보'의 관점에서 시작된 청의 진출은 러시아의 양해 속에서 가속화되었다. 중앙 아시아에 대한 러시아의 묵인과 양보는 제국의 북쪽의 안정을 가져올 수 있었고, 이미 정묘호란(丁卯胡亂, 1627)과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 ~ 1637)을 통해 동쪽의 조선을 제압하고, 타이완의 정성공(鄭成功, 1624 ~ 1662)을 제압하면서 제국의 남쪽 안정을 기한 청은 서쪽으로의 진출에 거침이 없었다.


 중국 황제의 갈단 원전은 러시아의 묵인이 없었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 중국과 러시아는 1689년 네르친스크 조약, 1727년 캬흐타 조약에 조인했다. 이 조약들은 중앙유라시아 권력관계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국경선이 정해지지 않은 지역들이 없어짐으로써 변경의 모호성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p211) <중국의 서진> 中


[지도] 준가르-청 전쟁(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Dzungar%E2%80%93Qing_Wars)


 그렇지만, 당초 강희제의 친정(親征)으로 청의 국력을 쏟아부은 이 전쟁은 예상과는 달리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 이는 침입을 받았을 때 초원 깊이 철수하여 상대의 보급선을 길게 늘어뜨리고, 느슨해진 상대를 각개격파하는 초원의 전통적인 전술의 영향이 컸다.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 ~ 1821)의 모스크바 침입을 격퇴한 러시아군 전략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히틀러(Adolf Hitler, 1889 ~ 1945)의 독일군을 맞이한 소련군 전략을 떠올리게 하는 이들의 전술은 전쟁을 장기전 양상으로 끌고갈 수 있었지만, 청의 물량공세 앞에 결국은 무릎을 꿇게 되었다.


  준가르족은 청이라는 거대한 기계에 대항하여 놀랄 만큼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을 보호한 두 가지 결정적인 요인, 즉 그들의 기동성과 그들에 닿기까지의 거리 덕분이었다.(p658) ... 만주족은 일단 중국의 중심부를 정복하자 준가르족보다 훨씬 더 많은 경제적인 가용 자원을 얻게 되었고, 인력/곡물/화폐가 조밀한 교환 체계 안에서 연결된 수송망을 물려받았다. 준가르족은 광대하고 통합되지 않은 공간에서 훨씬 더 파편화된 물자들을 긁어 모아야 했고, 이로 인해 그들의 국가 건설 기획은 훨씬 어려웠으며 결국 단명했다. (p657) <중국의 서진> 中


 준가르 제국의 멸망은 이후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에 의해 이루어진 대규모 억압과 박해로 이어져 이후 몽골 민족은 다시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지 못하는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준가르-청의 전쟁' 결말이다.


  18세기 전반기 내내 과거에 이동하던 할하 유목민들의 경제는 중국 자본에 의해 강제적으로 화폐화되었고, 청은 그들에게 원정에 필요한 가축을 대라고 점점 강하게 압박했으며, 그들은 관료제의 통제 아래 엄격한 행정적 경계선 속에 점점 한정되어갔다.(p349)... 학살 정책으로 청은 중국 서북 변경 문제를 '완전히 해결'했는데, 이는 한 세기가량 지속되었다. 준가르 국가와 민족은 함께 사라졌고, 준가르 초원은 거의 완전한 인구 희박 지역으로 바뀌었다.(p359) <중국의 서진> 中


 그렇다면, 이러한 중국의 서진 결과는 세계사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것은 17세기 제국주의 국가 청의 부상과 함께 19세기 제국주의 침턀국으로 청으로 몰락의 흐름을 파악하는 중대 사건이라는 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의 서두에서 언급한 바처럼 중국 중심부에서 힘을 비축한 청은 그 힘을 변경으로 펼치면서 제국의 영토를 최대한으로 팽창시켰다. 그렇지만, 전쟁을 통해 효율적인 관료체제를 구축했던 청 제국은, 전쟁의 종료와 함께 관료제의 효율성도 함께 잃게 되어 이후 19세기에는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무력할 수 밖에 없었다.


 청의 정복은 중국 제국, 러시아 제국 그리고 그 사이에 낀 중앙유라시아 민족들의 역사를 결정적으로 바꾸어놓았다. 나는 청-준가르의 갈등을 국가 건설 경쟁 과정으로 분석했는데, 그 과정에서 쌍방은 경제적, 군사적 자원들을 동원하고, 통치 조직들을 구축하고, 정복과 통치의 이념들을 발전시켜야 했다.(p359)... 대륙을 통틀어, 몽골 제국 해체 와중에 중앙유라시아의 정복자들에 의해 세워진 대제국들은 인구가 밀집된 정주 지역의 심장부를 차지했고, 군사력을 공급하기 위해 이 지역들의 자원을 이용했으며, 심장부에서 대륙의 중심부로 다시 밀고 나왔다. 경계에서 맞닥뜨렸을 때 그들은 협상으로 조약을 체결해 초원, 사막, 오아시스를 가로질러 고정된 경계선을 그었으며, 변경 지역의 이동 민족들을 위한 피난처를 남겨놓지 않았다.(p38) <중국의 서진> 中


 제국 관료제의 효율성이 결정적으로 전환된 것은 18세기 중엽 무렵, 바로 제국의 팽창이 끝났을 때였다. 변경에서의 군사적인 도전이 종료됨으로써 관료 체계에서 역동성이 빠져나가게 되었다. (p699) <중국의 서진> 中


 몽골을 격퇴한 직후 남부 해안에서 새로운 도전들이 등장한 것, 초원 유목민들에게 성공적으로 적용되던 정책들이 남쪽의 해양 환경에서 실패한 것, 청에서 중안의 이해와 지방 세력가들 사이의 균형을 잡아주던 협상을 통한 타협이 탈중앙집권화로 옮아가기 시작한 것 그리고 16세기부터 진행되던 상업화가 중앙에 대한 충성심을 침식한 것이 19세기 청을 서구의 침투에 노출시켰다.(p719) <중국의 서진> 中


 이처럼 <중국의 서진>에서는 17세기에 팽창을 하던 각기 다른 이해관계를 가진 두 제국과 이의 희생이 된 다른 하나의 제국을 다룬다. 경제적 이익을 가진 러시아를 협약으로 묶어두고, 안보를 목적으로 이루어진 제국주의 국가 '청'은 효율적인 관료제를 기반으로 최후의 몽골 제국을 멸망시킨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상세한 이야기는 다른 리스트와 페이퍼를 통해 소개하기로 하면서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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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4일 새학기가 시작되는 날입니다.
오늘 딸아이도 입학식과 함께 새학기를 맞이 하게 됩니다. 3년 동안 다니던 유치원을 그렇게 졸업하고 싶어하더니, 막상 초등학교 입학식을 하려니 낯선 환경에 긴장되나 봅니다.

밤늦게 잠 못이루는 딸아이와 함께 책을 읽던 중 내성적인 성격의 ‘연희‘가 친구를 못 사귀는 대목을 같이 보게 되었네요. 내일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많이 궁금해 하는 딸아이 ‘연의‘를 보면서 좋은 ‘버디‘를 만나길 아빠로서 바라 봅니다.

한유총 사태로 많이 어수선한 새학기가 되었네요. 하루빨리 어린이들이 어른들의 욕심에 희생되지 않고, 아름다운 유치원과 학교 생활을 하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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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09: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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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4:1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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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20 15: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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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인들은 평화 회담의 결과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1919년 5월 7일 독일 대표단에게 전달된 베르사유 조약의 최종안은 그들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독일은 영토의 14퍼센트를 내주어야 했고, 그로 인해 인구의 10퍼센트와 철광석 절반, 석탄 매장량의 4분의 1을 내주어야 했다. 또한 모든 해외 식민지를  포기해야 했으며, 해외에 투자한 자금과 특권을 모두 잃게 되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전쟁 배상금에 대한 요구였다. 10년 동안 그들은 석탄 생산량의 60퍼센트, 상선 90퍼센트, 거의 대부분의 기차 내연 기관, 철도 차량, 젖소 절반, 화학 제품과 의약품 4분의 1 가량도 양도해야 했던 것이다. 또한 독일 군대는 육군 1만 명과 해군 1만 5,000명으로 제한되었으며 탱크와 비행기, 잠수함과 독가스 보유가 금지되었다.(p270) <케임브리지 독일사> 中


 <평화의 경제적 결과 The Economic Consequences of the Peace>에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 1883 ~ 1946)은  제1차 세계대전 종식을 위해 열린 파리평화회의와 그 결과로 만들어진 평화조약(베르사유조약)을 비판하였다. 능력을 넘는 과도한 전쟁 배상금과 승전국의 요구 속에서 저자는 이미 다른 세계 대전의 불씨를 예견하였다.

 

 독일을 돕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가 서부 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 사이에 채택되고 거기에 미국의 재정적 지원이 더해진다면, 하늘은 유럽인 모두를 도울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서유럽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교묘하게 중부 유럽을 빈곤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잡는다면, 감히 예견하건대, 머지않아 복수전이 펼쳐질 것이다.(p246)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약속을 존중하고 정의를 충족시키는 것이 파리평화회의의 임무였다. 그러나 삶을 재구축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것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임무는 승자의 아량이라는 원칙에 따라 필요한 것 못지않게 유럽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사항이다.(p36)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파리평화회의는 세계대전 후 유럽의 재건을 위해 당사국 모두가 '관용(寬容)'의 자세로 임할 필요가 있었지만, 현실을 그렇지 못했다. 베르사유 조약이 패자에게 특히 가혹했던 조약이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베르사유 조약은 강력한 이웃을 가지지 않으려는 프랑스 클레망소(Georges Benjamin Clemenceau, 1841 ~ 1929)의 경계심과 미국 대통령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 ~ 1924)의 무능력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려는 영국 총리 로이드 조지(David Lloyd George, 1863 ~ 1945)의 욕망이 결합된 결과로 분석한다.


 프랑스 정책의 솔직한 목적, 즉 독일 인구를 제한하고 독일 경제 체계를 악화시키는 것이 윌슨 대통령을 위해 자유와 국제적 평등이라는 장엄한 언어로 포장되었다.(p65)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협상의 다른 측면은 차치하더라도, 독일로부터 일반적인 전쟁 비용을 받아내겠다는 약속을 선거운동에 활용한 것은 영국 정치인들이 언젠가 반드시 책임져야 할, 정치적 무모함의 극치를 보여준 행위라고 나는 믿는다.(p143)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각국의 정치인들이 자신의 나라와 개인을 위해 패전국에 강요한 조약의 결과는 가혹했고, 그렇게 만들어진 평화조약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없었기에 한편에서는 극우 파시즘(Fascism)이, 다른 한편에서는 극좌 공산주의(Communism)가 집권하는 계기를 주게 되었다.


 경제적 박탈은 아주 쉽게 일어나며, 사람들이 그런 박탈을 인내하는 한, 바깥 세계는 그 문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육체적 능률과 질병에 대한 저항력은 서서히 약화된다. 그러나 삶은 어쨌든 계속된다. 그러다 결국엔 인내의 한계에 닿게 될 것이고, 절망과 광기의 구호가 무력감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선동할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은 분발하여 일어나고, 인습의 끈들은 풀리게 된다. 그것이 곧 위기이다... 파리에서는 평화조약이 선언되었다. 그러나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기대하지 못하고 또 희망을 걸만한 것을 전혀 갖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느 정도까지 인내할 것인지, 또 사람들이 불행을 피하기 위해 최종적으로 어느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인지 누가 알 수 있을까?(p229)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에서 '관용'에 입각한 전후 처리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성(理性)보다는 감정(感情)이 지배한 평화회의장의 모습 속에서도우리는 계몽시대(Enlightenment)의 종언을 확인할 수 있다. 더이상 볼테르(Voltaire, 1694 ~ 1778)의 주장을 귀담아 듣는 이는 없었다. 

 

 자연은 우리 인간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들은 연약한 존재이므로 서로를 도우시오. 당신들은 무지하므로 서로를 가르치고 용인하시오. 만약 당신들 모두가 같은 의견이고 단 한 사람만이 반대 의견이라면 여러분은 그 사람을 용서해야 하오. 왜냐하면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데는 여러분 각자가 책임이 있기 때문이오... 당신들 인간들이 걸핏하면 벌이는 잔인한 전쟁 한 복판에서도 나 자연만이 당신들을 결합시킬 수 있소. 나는 당신들 인간에게 땅을 경작할 팔을 그리고 자신을 인도해 줄 한 줌의 이성(reason)을 주었소. 이 싹을 꺽거나 썩히지 마시오.(p178) <관용론> 中


 이러한 암울한 당대 현실 속에서 케인즈는 절망했을까? 그렇지 않았다. 비록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시대 흐름 속에서 그는 '교육'과 '상상력'의 역할을 통해 역사의 흐름을 바꾸려 했다. 


 유럽이 파산과 쇠퇴를 겪도록 내버려둔다면, 그 상태는 장기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그래도 다행한 것이 한 가지 있다. 지금 나아가고 있는 길을 재점검토하고 세계를 새로운 눈으로 볼 시간은 아직 있는 것이다. 미래를 좌우할 사건들이 지금 전개되고 있고, 유럽의 운명은 더 이상 몇몇 사람의 손에 달려 있지 않다. 앞으로 몇 년 동안 일어날 사건들은 정치인들의 교묘한 술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역사의 표면 아래에서 지속적으로 흐르고 있는 숨겨진 물결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우리는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만 이 숨겨진 물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뿐이다. 그 방법은 의견을 변화시킬 교육과 상상력의 힘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진실을 굳게 믿고, 망상을 깨뜨리고, 증오를 불식시키고, 사람들의 가슴과 마음을 활짝 열고 또 확장시켜야만 숨겨진 물결의 방향을 우리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돌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p270) <평화의 경제적 결과> 中


그리고, 이러한 그의 주장 속에서 우리는 장기균형보다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지출을 강조한 그의 경제학 이론과 통하는 흐름을 발견할 수 있다.


 But this long run is a misleading guide to current affairs.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장기(長期)는 현재 사안에 대해 잘못된 안내를 해준다. 장기적으로 우리는 모두 죽는다. <화폐개혁론> 中 [출처 : 위키백과]


 국가는 부분적으로는 과세를 통하여, 부분적으로는 이자율을 정함으로써, 그리고 또 부분적으로는 아마도 다른 방법을 통하여 소비성향(消費性向)에 대해 지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자율에 대한 은행정책의 영향력이 그 자체로서 최적투자율(最適投資率)을 결정하기에 충분하리라는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나는 상당히 광범위한 투자(投資)의 사회화(社會化)가 완전고용에 가까운 상태를 확보하는 유일한 수단이 되리라고 생각한다.(p455)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 中


 저자는 <평화의 경제적 결과>의 본문을 각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을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리고, 유럽 여러 나라들은 대신 '전쟁의 경제적 결과'가 '피'임을 체험을 통해 알게 된 것은 비극이라 할 것이다.


 2019년 2월 28일. 제2차 북미정상회담이 별다른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한 채 끝낸 후 글을 쓰기 시작해서, 2019년 3월 1일 3.1운동 100주년 기념일 새벽까지 글을 쓰고 있다.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300년 전 3.1 운동을 불러온 베르사유 조약이 가져온 평화와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평화의 결과는 무엇이 될 것인지 되물으며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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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en 2019-03-01 17: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어제 극소수의 사람들이나 겨우 예상할 수 있었던 ‘결렬 시나리오‘가 막상 눈 앞의 현실이 되면서 참으로 많은 생각들을 해 보게 됩니다. 우선, ‘북한의 비핵화‘에 대한 개념 자체가 2차 북미회담 직전까지도 서로 일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북한 비핵화‘에 대한 어려움을 극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우리 정부의 무분별할 정도로 지나친 낙관론을 이제는 좀 더 냉철히 되돌아볼 때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트럼프의 말대로, 결국 ‘비핵화는 핵을 없애자는 것‘인데, 지금까지의 북한의 태도로 봐서는 ‘비핵화를 구실로 내세워 결국 UN의 제제 완화만 얻어내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정말로 비핵화를 하자는 것인지, 핵무기 체계의 극히 일부에 불과한 풍계리 핵실험장,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 영변의 핵시설 폐기 등을 잘게 썰어서 ‘핵 장사‘를 하자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으니까요.(이번 회담이 결렬되고 나서야 마침내 이런 측면들이 비로소 극명하게 부각된 게 이번 회담의 진정한 소득이라면 소득이 아니었을까 싶은 생각마저 들더군요. 아무튼 북한 비핵화는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만 가까스로 도달 가능한 매우 어려운 과제임이 분명한 듯합니다. 여의도의 세 배나 되는 면적에 400여개나 되는 건물로 둘러싸인 영변 핵시설만 해도 끔찍한데, 그거 말고도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또 있다고 하니 정말 소름이 끼치더군요.)

겨울호랑이 2019-03-01 18:22   좋아요 1 | URL
oren님 말씀처럼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갈 길이 참 멀어 보입니다. 저는 회담의 결렬 원인에 대해서 Oren님과는 조금 다른 생각을 합니다만, 보다 중요한 문제는 한반도의 평화, 세계의 평화임은 분명해 보입니다. 서로 다른 북한과 미국의 기자 회견 내용을 접하면 혼란스럽기도 합니다만, 어제의 협상 결렬이 평화로 가는 과정이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아 봅니다...

2019-03-02 11: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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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15: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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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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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8:3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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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성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 다음 시한부 농성 중인 신부들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 그 신부들 뒤에는 수녀들이 있습니다. 당신들이 연행하려는 학생들은 수녀들 뒤에 있습니다. 학생들을 체포하려거든 나를 밟고, 그다음 신부와 수녀들을 밟고 지나가십시오.˝ (1987년 6월 13일 밤 경찰력 투입을 통보하러 온 경찰 고위 관계자에게) [출처 : 연합뉴스]

얼마 전 고 김수환 추기경 선종 10주년을 보내며, 진정으로 가슴 아픈 일은 한 어른과의 이별이 아니라, 그 어른이 가신 빈 자리를 아직까지도 채우지 못한 한국천주교회의 현실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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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07:3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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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07: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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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2-24 18:1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정 시대의 어른이라 부를 만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분에 비하면 종로에 등장하시는 분
들은 정말... 부끄럽습니다.

겨울호랑이 2019-02-24 19:21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2009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에는 원로이신 김수환 추기경님, 법정 스님, 김대중 대통령 님 등 여러 분이 계셨고, 친근한 아버지 같은 노무현 대통령도 계셨는데, 한 해 동안 모두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분들의 빈 자리가 아직까지 크게 느껴지네요...

2019-02-25 2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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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22: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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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5 23:4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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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6 08:1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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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1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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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2 15:4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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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3-04 17: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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