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정신의 진보에 관한 역사적 개요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3
마르퀴 드 콩도르세 지음, 장세룡 옮김 / 책세상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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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인간의 모든 지식에 계산의 과학을 더욱 일반적이고 철학적으로 적용하는 것이 이 지식의 전체 체계의 범위와 정확성과 통합성을 반드시 증가시키게 된다는 것을 지적할 것이다.(p87)... 우리는 교육의 평등, 여러 나라 사이에 확립될 교육의 평등이 이러한 과학의 행진을 얼마나 가속화하는지를 제시할 것이다.(p88)

사회는 금전적인 문제로 학습 수단을 갖지 못하는 사람들, 초기 교육에서 변별화되지 못하고 알면 유익할 진실들을 찾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쉽고 간단한 학습 수단들을 마련해야 한다.(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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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9 09: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5-29 09: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다에 의한 육지의 분리가 가장 중요하다. 분리의 영향은 분리의 정도에 달려 있다. 관건은 분리가 완전한지 아니면 불완전한지, 따라서 육지가 섬의 형태인지 아니면 반도의 형태인지 하는 것이다. 또한 관건이 되는 것은 분리하는 바다의 폭이다. 왜냐하면 협만이 좁은 경우에는 생물이 뛰어넘을 수 있으며, 이는 기후학적 영향을 거의 미칠 수 없다. 이런 것들은 그 원인을 지질적 현대에 두고 있는 현상, 따라서 기후와 인간 생활에 대해서는 큰 의의가 없다. 하지만 이것은 동/식물의 분포에 대해서는 중요한데, 이는 종과 속 그리고 부분적으로 이른 과거로 그 기원을 소급할 수 있으며, 현재는 바다인 육지상에서 빈번히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p258) <지리학2> 中


[사진] Mediterranean Lingua Franca(출처 : https://en.wikipedia.org/wiki/Mediterranean_Lingua_Franca) 


 알프레트 헤트너(Alfred Hettner, 1859 ~ 1941)는 <지리학 Die Geographie: Ihre Geschichte, Ihr Wesen und Ihre Methoden>에서 지리의 자연 분류에서 바다와 육지의 관계가 자연환경과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설명한 위의 이론은 기후가 생태계에는 영향을 미치는 반면, 인간 생활에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음을 지적했다. 이러한 헤트너의 이론은 역사(歷史)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이번 페이퍼에서는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 ~ 1985)과 데이비드 아불라피아(David Abulafia, 1949 ~ )를 통해 이를 살펴보도록 하자. 

 

 우리는 지중해 지역의 삶을 포근하고 편안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매력적인 풍경에 의한 착각이다. 경작지는 부족한 반면 메마르고 척박한 산들이 사방에 널려 있다. 강우량도 고르지 못하다... 이밖에도 지중해의 물은 항상 따뜻해서 대부분의 지역에서 섭씨 13도를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생물학적으로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p68)... 지중해의 생명선은 대서양과 연결된 좁은 해협이었다. 만약 제방을 쌓아 지브롤터 해협을 막아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지중해는 십중팔구 염수호로 변할 것이고, 그 안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말 것이다.(p69) <지중해의 기억> 中


 패르낭 브로델은 유고작 <지중해의 기억 Les-Memories de la Mediterranee>에서 지중해의 역사를 기후, 지리 등 자연환경과 연관지어 분석하는데 반해, 데이비드 아불라피아는 이러한 브로델의 관점을 비판하며, 인간의 역할을 보다 강조한다.

 

 브로델의 접근 방법에는 '모든 변화는 느리게 진행된다'는 것과 '인간은 자기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속박되어 있다'는 사상이 내포되어 있다. 이 책은 두 가지 관점 모두에 반대되는입장을 취한다. 특정 시대를 고찰하여 지중해의 특성을 파악한 브로델의 수평적 역사 서술 방식을 지양하고, 시대에 따른 지중해의 변화에 주안점을 두는 수직적 역사 서술 방식을 지향하려는 것이다.(p24) <위대한 바다> 中


 이 책도 바람이나 해류의 중요성을 부인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보다는 지중해를 넘나든 인간들의 경험이나, 바다를 생계 수단으로 삼은 항구 도시 및 섬들에 거주했던 인간의 삶을 전면에 부각시키려는 것뿐이다. 인간의 힘은 브로델이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던 것보다 한층 더 지중해 역사의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p28)... 이렇듯 룰렛의 결과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지만, 회전 바퀴를 돌리는 것은 결국 인간의 손이었다.(p30) <위대한 바다> 中


 이러한 저자의 입장이 반영되어 <위대한 바다>에서 자연의 변화는 역사의 사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아불라피아의 지중해 역사에서 변수(變數)는 인간이고, 자연은 상수(常數 constant)다. 그런 면에서 <위대한 바다>는 의지를 가진 위대한 인간이 활동한 바다를 그려내는 역사책이라 할 것이다.


 브로델은 정치사를 '사건들(events)'로 치부하고 경멸에 가까운 조소를 보였다. 사건보다는 지형이 지중해 유역 내에 일어나는 일을 결정짓는 요소라고 보았다. 그는 지중해의 진정한 중요성은 다른 곳, 예컨대 지중해를 둘러싼 육지 지형과, 지중해를 오가는 사람들이 항로를 결정할 때 고려하는 바람과 해류 등 지중해 자체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p24) <위대한 바다> 中


 그렇지만, 서문의 브로델 비판에도 불구하고 문명(文明 civilization)의 초창기 역사에서 자연의 역할을 빼놓을 수는 없다. 초창기 풍부한 식량과 자원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교역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위대한 바다>에서도 피해갈 수 없는 사건이다. 이런 점에서 바라본다면 브로델의 관점을 비판하고 인간의 역사를 강조한 아불라피아의 역사관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기원전 5000년 무렵의 이른바 중석기 시대, 도구를 만드는 기술은 착실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축산, 도기, 곡물 경작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던 과도기에는 시칠리아 섬의 선사 시대인들의 식량이 도미류와 농어류 같은 바다의 산물로 바뀌었다.(p38) <위대한 바다> 中


 수백 년 동안 큰 변화가 없던 몰타 섬과 달리 시칠리아 섬은 극심한 변화를 겪었다. 각종 자원이 풍부한 데다 접근하기 쉬운 커다란 땅덩이다 보니 그런 결과가 초래된 것이다. 리피리 제도에 흑요석이 흔한 것도 시칠리아 섬으로 사람들이 모여든 요인이었다.(p46)... 모르긴 해도 토로이는 아나톨리아 내륙 및 흑해와의 교류가 확대됨에 따라 주석의 주요 공급원이 되었을 것이다.(p53) <위대한 바다> 中


  이러한 비판에 대해 아불라피아 입장에서는 다음과 같은 반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초창기에 인간은 자연의 영향을 받았지만, 문명이 발달하면서 자연의 역할은 점차 비중이 약해졌고, 이제는 무시할 수준에 이르렀다는.


  그렇지만. 이에 대해서도 반론이 가능하다.  문명 초기 좋은 기후와 환경이 위치한 곳에 이미 인류 문명의 포석이 끝난 상태에서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주변지역으로 확장이 일어났다고 본다면, 결국 인류 문명은 부처님 손바닥 안의 손오공 같은 존재가 아닐런지. 기후의 영향으로 발생한 문명과 이의 확산 발전은 데이비드 리카도(David Ricardo, 1772 ~1823)의 차액지대론으로 보충설명한다면 반론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정리하자면, 지중해 역사에서 자연(또는 기후)의 영향을 배제한<위대한 바다>의 아부라피아 관점보다는 이를 통해 역사를 설명하고자 한<지중해의 기억>의 브로델 관점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한 나라에 사람이 처음 정착할 때는, 기름지고 비옥한 토지가 풍부해 매우 적은 부분만이 현재 인구의 부양을 위해 경작되면 되거나, 아니면 그 인구가 지배할 수 있는 자본으로써 실제로 경작될 수 있기 때문에 지대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아직 점유되지 않은 토지가 풍부하고 따라서 누구나 원하는 대로 그것을 경작하기로 선택할 수 있는 때에는 아무도 토지의 사용에 대해 대가를 지불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p71)... 사회가 발전하면서 2급 비옥도의 토지가 경작되면 1급 질의 토지에서 즉각 지대가 발생하며, 이 지대의 크기는 이 두 종류의 질적 차이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p72) <정치경제학과 과세의 원리에 대하여> 中


 보나파르트는 처음부터 몰타 섬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1797년에 그가 아직 총재 정부에서 일하고 있을 때, "우리의 주 관심사는 몰타 섬"이라고 하면서 우호적인 기사단장을 확보할 필요성을 역설하는 글을 상사들에게 보낸 것도 그 점을 말해 준다... 나무와 식수가 부족한 것을 모르고 보급 기지로서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실수를 범하기는 했지만, 나폴레옹의 이 견해는 매우 정확한 판단이었다.(p773) <위대한 바다> 中


 또한, 개인적으로 브로델의 역사관에 더 끌리는 이유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역사의 변인(變因)을 외부에 두었을 때 역사의 보편성에 대한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다르지 않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  문명의 차이가 나타났고, 이러한 차이가 문명으로 표현되었다는 브로델의 관점과는 달리, 아불라피아와 같이 인간(또는 문명) 속에서 역사의 변인을 찾는다면, 자칫 선민(選民)사상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심정적으로도 별로 끌리지 않는다. (실제로 아불라피아는 유대계 영국인이다.) 


 사실 지중해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지구에서 가장 큰 땅덩어리에 갇혀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리 말하면 유럽-아프리카-아시아가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대륙에 갇혀 있는 꼴이다. 이 거대한 땅덩어리는 그 자체로 지구라고 할 수 있으며, 처음부터 상품과 인간이 교류되었던 땅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렇게 세 대륙이 하나로 연결된 땅에서 역사라는 드라마를 공연해왔다. 또한 이 땅은 중대한 교환이 이루어진 곳이기도 하다.(p73) <지중해의 기억> 中


 '지중해의 정체성'을 규정하거나 지중해의 어떤 물리적 특성이 인간의 경험을 형성했다고 주장하기 위해 지중해 역사를 몇 가지 공통 요소로 묶으려 하는 것은 일견 그럴듯해 보인다. 하지만 지중해의 기본적 통합성을 주장하려는 그런 시도야말로 지중해 유역과 섬들에 거주했거나 또는 지중해를 오간 사람들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통합성을 찾기보다는 다양성에 주목해야 한다.(p947)... 지중해 역사의 통합성은 역설적이게도 변화무쌍한 가변성, 상인과 유랑민들의 이산, 오래도록 고생에 시달린 이븐 주바이르나 펠리스 파브기 같이 겨울이 닥쳐 해상에서 발이 묶이지 않기 위해 서둘러 바다를 건너려 한 사람들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다.(p956) <위대한 바다> 中


 개별 사건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어느 변수가 역사의 절대 변수인가를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역사의 시간에서 어느 요인이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에 대한 답으로 우리는 <지중해의 기억>애서 '자연과 인간이 만들어간 역사'와 <위대한 바다>는 '독립한 인간의 역사'를 확인하게 된다. 어느 역사가의 관점에 동의하는가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우리의 시야를 넓게 해준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중해는 역사 초기부터 이러한 불균형, 즉 자신의 운명 전체를 결정한 원동력의 목격자였다. 우리가 이미 언급한 남분의 차이 그리고 수준의 차이를 보이면서 마침내는 문명간의 뚜렷한 갈등으로 비화된 동서의 차이가 바로 지중해의 운명을 결정한 원인이었다.(p115) <지중해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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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제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사상선집
루드비히 폰 미제스 지음, 황수연 옮김 /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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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개 국민은 자기 나라의 법들 중 하나를 어길 때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하는 범죄자다. 그러나 만약 공무원이 ‘국가(state)‘의 이익을 위하느라고 정당하게 반포된 국법을 위반한다면 그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반동적인(reactionary) 법원들의 견해에 따르면 그는 기술적으로 위반의 죄를 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더 높은 도덕적 의미에서는 그는 옳았다. 그는 신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인간들의 법을 위반했다. 이것이 관료주의 철학의 본질이다.(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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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9-05-27 23: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있는 말입니다. ^^

겨울호랑이 2019-05-28 07:36   좋아요 1 | URL
네 미제스가 관료제의 장점과 단점을 짧은 문장으로 잘 표현해서 잘 와닿습니다.^^:)
 
약자들의 힘 (천줄읽기) - 발췌 - 지만지 고전선집 314 지만지 천줄읽기 314
안나 제거스 지음, 장희창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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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 제거스가 보기에 이들 모두는 약자이면서도 또한 역사 발전의 주체다. 이 작품에서 아나 제거스는 말없이 행동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어떠한 역사도 기록으로 남기지 않는 민중들의 소리없는 저항을 기록하고 있다... 사회 변혁을 예술의 본질적 기능으로 규정하는 사회주의의 리얼리즘의 전형적인 예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은 문자 그대로 ‘현실‘과 마주치게 하며, 더 나아가 우리의 현실을 직시토록 한다.(p9) - 해설 중-

모든 것이 헛되었다. 교회와 회교 성당에서의 기도는 헛되었다. 오래전에 잊혀 이제 아무도 숭배하지 않는 신들에게 간청하고 애원해도 헛되었다. 칼과 분노의 마지막 저항도 또한 헛되었다... 미래가 없었으므로 과거는 헛된 것이 되어버렸다.(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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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 리쩌허우와의 담화록
리쩌허우 지음, 류쉬위안 엮음, 이유진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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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데거 이후 이제 중국 철학이 등장해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비록, 하이데거가 노자 老子를 좋아하긴 했으나 노자를 억지로 갖다 붙여서 비교하며 논의해서는 안 됩니다. 공자, 그러니까 중국의 전통으로 하이데거를 소화해야 해요. 지금이 바로 그때인 것 같지 않나요?(p21)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리쩌허우(李澤厚, 1930 ~ )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該中國哲學登場了>에서 기존의 서양 철학의 한계를 지적하며, 이를 대신한 새로운 중국 철학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정 본체 情 本體'가 자리한다.


 인성, 정감, 우연은, 내가 기대하는 철학의 운명이라는 주제다. 이것은 장차 21세기에 시적으로 전개될 것이다.(p112)... 어떻게 과거를 슬퍼하고 현재를 아낄 것인가, 어떻게 욕 慾을 정 情으로 이끌어 들여서 욕을 정으로 만들 것인가, 그건 바로 포스트모던에서 중국 철학으로 전환하여 운명을 선택하고 내일을 결단하는 최적의 경로에요. 그건 바로 제가 인류학 역사 본체론에서 말한 '정감 - 이성 구조(문화 - 심리 구조)' 이며 '정 본체'입니다.(p11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저자는 도구의 사용을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는 인류만의 역사가 시작된 것으로 파악한다. 도구의 사용이 인류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고, 이러한 과정이 반복되면서 역사(歷史)가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만들어진 문자(文字)를 통해 역사의 교훈이 후대에 남게 된다. 이러한 역사 또는 경험의 결과로 철학이 만들어졌다고 바라보는 것이 저자의 관점이다. 


  중국 문자란 대체 어떤 개념일까요? 그건 바로 역사에요. 문자는 역사와 경험을 대표합니다. 문자는 역사 경험을 총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지요.(p141)... 하이데거가 강조했던 건데 바로 명명 命名이에요. 제 생각에 이름 있음과 명명은 일을 나타내는 겁니다. 그 근원을 찾자면, 매듭을 지어 일을 기록하던 것이지요. 그것이 바로 최조의 역사이지요.(p142)... 명명은 중요합니다. 그건 역사의 근원이에요. 여기서 아주 중요한 중국식 사유를 총괄해낸다면 바로, 역사로 나아가고 경험을 중시하는 겁니다.(p14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정본체 - 정감은 운명, 인성, 우연과 함께 제기한 것이지요. 일단 그 셋에 대해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p50)... 우연 - 역사는 우연으로 가득합니다... 각종 사건에 있어서 우연과 필연의 관계와 비중을 연구하는 것이 역사학의 중심점이라고 했답니다.(p51)... 인성 - 저는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인류가 '보편 필연'적으로 도구를 사용하고 제작하는 데 관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역점을 두고 연구한 것은, 도구의 사용과 도구의 제작이 인류의 심리 구조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가 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도구의 사용과 제작으로 인해 형성된 문화-심리 구조, 즉 인성 문제이자 '누적 - 침전 沈澱'에 대한 연구에요. 누적 - 침전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별해주는 심리 형식이지요.(p5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철학이 경험의 결과라면, 중국의 철학은 다른 지역의 철학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을까? 저자는 중국 철학의 특징으로 반(反) 이분법(二分法) 요소가 그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 정신과 육체, 이성과 감성을 구분한 서양 사유와는 달리 중국은 이(理)와 정(情)이 어울어져 도(道)와 예(禮)를 만들어 내기 때문에, 서양 철학이 맞닥뜨린 철학의 위기 상황을 겪지 않을 수 있으며 때문에 철학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이 된다.


 중국의 '무사 巫史 전통'으로 인해 중국 문화 속의 정감과 이성, 종교와 과학은 뚜렷이 나뉘지 않았던 겁니다. 중국에서는 공자든 맹자든, 한대 漢代의 천일합일이든, 송명이학 宋明理學의 심성 수양이든, 일종의 신앙이고 감성적인 거에요. 동시에 이성적 추리와 논증이기도 하고요. 신앙과 정감이 이성적 사변과 한데 섞여 있는 거죠.(p23)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전통은 이 理와 욕 慾의 관계를 조정하고 구축하기 위한 것이지요. 즉 정이 욕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정을 욕과는 다르게 만드는 것이랍니다. 정에는 이가 있긴 하지만 이와 같은 건 아니지요. 최대한으로 이를 정과 아울러서, 정으로 욕을 변화시켜 '도'와 '예'가 되도록 하는 거랍니다.(p56)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도 道'는 지극히 커다란 보편성을 가지고 있답니다. '도'가 바로 역사 본체론의 제1조 條랍니다. '도'는 인류의 생존과 관계가 있지요... '도'는 사실 '미 美'이기도 하답니다. '도'가 각종 형식감을 창조하거든요. 이런 '감 感'은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의 활동 자체가 외재하는 천지자연과 하나로 일치되는 느낌, 체험, 파악, 인식이랍니다. 그 뒤에야 그것이 비로소 대상과 관계를 맺으면서 외부세계를 규범에 맞도록 만드는, 인간의 물질적 힘과 기예가 되는 것이죠. 그리고 이것이 생활의 각 방면으로 확장되는 거에요.(p146)... '도'는 경험의 척도이고, 경험은 실천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그것은 경험의 산물이죠. 역사의 긴 강을 지나면서 실천을 통해 세워진 겁니다.(p147)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가장 근본적인 광의의 형이상학이 아직 남아 있지요. 광의의 형이상학은 인류의 마음이 영원히 추구하는 것이자 인생의 의이, 삶의 가치, 우주의 근원에 대한 이해이며 질문이에요. 또한 정감의 추구이기도 하지요. 하이데거가 '철학의 종말'을 제기하면서 말한 것은 그리스 철학을 표본으로 삼은 거였어요. 저는 그것을 '협의'의 형이상학의 종결이라고 부르겠습니다.(p17)... 협의의 형이상학은 중국에 없어요. 하지만 중국에는 광의의 형이상학이 있답니다.(p2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이와 같은 역사와 사상이 만들어지는 흐름과 함께 저자는 무엇을 말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저자는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를 통해 푸코(Michel Foucault, 1926 ~ 1984)와 데리다(Jacques Derrida, 1930 ~ 2004)의 해체주의를 이을 새로운 철학이 바로 중국 철학임을 말한다. 본문에서 데리다가 중국에는 철학이 없다고 말한 사실이 언급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는 참으로 짓궂은 반론이라 생각된다.


 제가 지금 제기하는 정 본체, 다른 말로 인류학 역사 본체론은 세계의 시각이고 인류의 시각이라는 겁니다. 중국의 전통을 기초로 세계를 보는 것이지요. "인류의 시각, 중국의 관점."(p138)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그리움, 아낌, 감상 感傷, 깨달음으로 공허하고도 해결할 수 없는 '두려움'과 '번민'을 대체하고, 두려움과 번민에서 야기된 포스트모던의 '파편'과 '순간'을 대체하자는 거죠. 인간 자신의 실존이 우주와 협동하고 공존하는 것이야말로 근본이 존재하는 곳이에요. 하이데거의 디자인 Dasein 은  '현존재'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해석학에 따른다면 바로 '살아감'이지요. 그리고 제가 말하는 '인간이 살아가는 것'이기도 하고요.(p22)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에서 저자가 그려내는 새로운 시대 철학의 모습은 중국 철학의 바탕 위에 마르크스의 유물론과 하이데거의 현상학이 결합된 모습이다. 이러한 분석도구를 사용하여 역사를 살펴보고 이를 통해 철학을 풍부히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 저자가 생각하는 새로운 시대의 중국 철학 모습이다.


 "심리가 본체가 된다." 나는 이것이 하이데거 철학의 주요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역사 본체론'에서 두 개의 본체를 제기했는데, 앞의 본체(도구 본체)는 마르크스를 계승하고 뒤의 본체(심리 본체)는 하이데거를 계승했다. 그런데 이것 모두 수정과 '발전'을 더했다. 중국 전통과 결합하여(p164)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 中


 대담 형식으로 구성된 <중국 철학이 등장할 때가 되었는가?>는 이처럼 중국 철학 대가인 리쩌허우의 사상을 정리하여 제시한다. 또한, 저자의 대표작인 <미의 역정><중국고대사상사론> <중국근대사상사론> <중국현대사상사론> 등에 담긴 자신의 의도와 생각도 다뤄지기에, 리쩌허우 저서의 입문서로서의 기능도 갖는 부분은 책이 가진 뚜렷한 장점이다.


 반면, 중국의 역사 경험에서 비롯된 중국 사상을 인류 보편적인 사상으로 해석하는 저자의 주장에는 쉽게 찬성하기 어렵다. 중국과 다른 문명권에 속하는 이들에게도 같은 역사 인식과 철학이 공유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된다. 유럽 문명에 속하는 이들은 중국 철학보다는 오히려 불교(佛敎) 사상에 더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을까? 실제로, E. F. 슈마허 (Ernst Friedrich Schumacher, 1911 ~ 1977)는 <작은 것이 아름답다 Small is beautiful>을 통해 '불교 경제학'을 주장했으며, 이러한 사상은 환경 생태학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다는 점 등으로 뒷받침된다. 또한,  동아시아 문화권에 속하는 이들은 저자의 사상에서 대국굴기(大國崛起)를 꿈꾸는 중국의 모습을 발견하기에 쉽게 공감하기 어렵다 여겨진다. 이런 면에서 저자의 사상은 인류 보편 사상이라기 보다 현대 중국 사회 사상이라 하는 편이 바람직할 것이다. 엄밀하게는 중국 내부이 변화하는 정치 흐름은 담아내지 못한다는 면에서는 이마저도 부족해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 부분은 다소 아쉽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얇은 대담집을 통해 대학자의 사상 전반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은 이 책만이 가진 큰 장점이라 생각하며 이번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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