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 된다는 것은 삶의 양식, 즉 다시 태어남의 부활양식을 나의 실존의 지평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나의 삶의 지평에 받아들이는 사건, 그 사건이 바로 바울이 말하는 "기쁜 소식"이요, 유앙겔리온이다!(p42)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中


 도올 김용옥 교수는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이전 여러 권의 기독교 관련 서적을 낸 바 있다. 이를 먼저 간단히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자. 저자는 <기독교 성서의 이해>(2007)를 통해 성서가 정경으로 확립되는 역사적 배경을 중심으로 성서 무오설(聖書 無誤說)을 비판하며, <요한복음 강해>(2007)를 통해서 영지주의(Gnosticism)에 대항하는 인간화된 로고스(Logos)의 모습을 밝히는데 중점을 둔다. 공관복음과 관련하여 <마태오 복음>와<루카 복음>에 전승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상의  Quelle(Q자료)를 기반으로 <큐복음서>(2008)에서는 예수의 어록(가라사대 문헌)을 다루고 있고,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도마복음>(2010)에서는 어록 자료 중심의 분석을 수행한다. 


 저자는 <큐복음서>와 <도마복음>의 공통된 말씀 자료 속에서 무엇을 찾으려 하는 것일까. 저자는 성서 텍스트를 일종의 '무대장치'로 해석한다. 보다 극적인 복음 선포를 위해 성서의 자료들은 가공된 것이 많으며, 이 안에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그리고, '인간 예수'가 아닌 '메시아 예수' 또는 '십자가 위에 못박힌 예수'의 모습이 사도 바오로에 의해 강조되면서 기독교 교리가 성립되었음을 <도올의 로마서 강해>(2017)에서 설명한다.


 마가복음은 인류사상 최초로 등장한, 유앙겔리온이라고 하는 유니크한 문학장르이다. 바울이 예수의 죽음을 선포하는 유앙겔리온의 선포자였다고 한다면, 마가는 예수의 삶을 선포하는 유앙겔리온을 창시했다... 전자가 예수의 십자가사건의 의미를 물었다면, 후자는 예수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노력한다.(p73)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中


  이와 같이 정리한 기독교 사상 체계 위에서 저자는 드디어 <마가(마르코) 복음>(2019)에서 인간 예수의 모습을 찾는다. 저자는 <바오로의 편지(바오로 서간)>들 외의 복음서의 원형을 <마가 복음>에서 찾으면서, 이로부터 인간 예수의 모습을 찾아간다. 불트만의 성서신학의 연구를 바탕으로, 안병무의 갈릴리 지평에서의 인간 예수를 찾아 최종적으로 우리 삶으로 가져오려는 12년에 걸친 저자의 노력을 우리는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복음서의 끝이야말로 원점에서의 새로운 출발이다. 빈 무덤이야말로 1장 1절의 선포였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 빈 무덤이야말로 살아있는 예수님 말씀의 모든 성취를 의미하는 것이다. 안병무는 예수의 삶이 노자가 말하는 물과도 같다고 말했다. 예수는 물과 같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낮추고 무화 無化시킴으로써 모든 생명의 구주가 되었다고 했다. 마가의 마지막 빈 무덤이야말로 노자가 말하는 우주적인 "빔", 곧 모든 생명의 근원, 끊임없이 회귀하는 반자도지동 反者道之動의 위대한 생명력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p605) <도올의 마가복음 강해>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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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4: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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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5-2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자본론 1 - 하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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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잉여가치의 생산 또는 이윤의 획득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절대적 법칙이다. 노동력은 생산수단을 자본으로 유지하며, 자기 자신의 가치를 자본으로 재생산하고, 지불받지않는 노동으로 추가자본의 원천을 제공하는 한에서만 판매될 수 있다. 따라서 노동력의 판매조건은,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노동력의 끊임없는 재판매의 필연성과 자본의 형태로 부를 끊임없이 확대재생산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다.(p845) <자본론 1-(하)> 中


 <자본론 1-(하)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conomie 1-2> 에서는 기계의 도입으로 인한 자본의 집중, 잉여가치의 자본으로의 전환과 시초축적, 집중과 축적으로 인한 대자본의 출현 등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하 리뷰에서는 이에 대해 차례로 살펴보도록 하자.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는 불변자본인 기계는 가치를 창출할 수는 없지만, 이를 통해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수단이다. 기계의 도입으로 여성과 아동노동의 착취가 가능해지면서, 기계는 점차 폭넓게 활용되고,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 확대는 자본주의 사회의 변화를 가져온다.


 불변자본의 다른 모든 구성부분과 마찬가지로, 기계는 아무런 가치도 창조하지 않으나 그것으로 생산되는 생산물에 자기 자신의 가치를 옮긴다. 기계가 가치를 가지며 따라서  생산물에 가치를 이전하는 한, 기계는 생산물 가치의 한 구성부분을 이룬다. 기계는 생산물의 가치를 싸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가치에 비례해 생산물의 가치를 비싸게 한다...(p523) <자본론 1-(하)> 中


 기계는, 근육의 힘을 요구하지 않는 한, 근육의 힘이 약하거나 또는 육체적 발달은 미숙하지만 팔과 다리는 더욱 유연한 노동자를 사용하는 수단이 된다. 그러므로 여성노동과 아동노동은 자본가에 의한 기계사용의 첫 번째 결과였다! 노동과 노동자를 대신하는 이 강력한 수단, 즉 기계는 즉시로 남녀노소의 구별 없이 노동자 가족의 구성원 모두를 자본의 직접적 지배 아래 편입함으로써 임금노동자의 수를 증가시키는 수단이 되었다.(p533) <자본론 1-(하)> 中


 과잉 노동인구가 축적의 필연적 산물 또는 자본주의적 토대 위에서 부의 발전의 필연적 산물이라면, 이번에는 이 과잉인구가 자본주의적 축적의 지렛대로, 심지어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생존조건이 된다. 과잉 노동인구는 절대적으로 자본에 속하며 자본이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산업예비군을 형성한다.(p861) <자본론 1-(하)> 中


 마르크스는 기계의 자본주의적 사용으로 인해 사회적 분업이 촉진되고, 잉여가치와 생산물의 양을 증대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증대된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활용되는 순환구조로부터 자본의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짐을 설명한다. 또한,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사회적 분업으로 인해, 자본은 보다 낮은 임금과 생산물을 소비할 시장을 찾아 외국으로 진출하게 된다. 바로, 자본의 제국주의 침략이다. 마르크스는 제국주의 침략의 기원과 경기순환의 원인을 자본주의적 생산으로부터 찾는데, <자본론 1-(하)>에서는 잉여가치가 어떻게 생산되는가를 설명한다. 


 기계제 생산이 비교적 소수의 노동자로 원료, 반제품, 노동수단 따위의 양을 증대시킴에 따라 이런 원료와 반제품의 가공은 수많은 분야로 갈라지며, 그리하여 사회적 생산부문의 다양성은 증가한다. 기계제 생산은 매뉴팩처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사회적 분업을 촉진한다... 기계 도입의 직접적 결과는 잉여가치와 [잉여가치가 들어 있는 ] 생산물의 양을 증대시킨 것이다. 그리고 기계는 자본가들과 그에 딸려 있는 사람들이 소비하는 물건을 더욱 풍부하게 하며 따라서 이 사회계층 자체도 증대시킨다. 사회적 생산물의 더욱 큰 부분이 잉여생산물로 전환되며, 잉여생산물의 더욱 큰 부분이 잉여생산물로 전환되며, 잉여생산물의 더욱 큰 부분이 더욱더 섬세하고 다양한 형태로 재생산되고 소비된다.(p601) <자본론 1-(하)> 中


  대공업은 그것이 확립된 모든 나라에서 노동자들을 끊임없이 '과잉인구'로 전환시킴으로써 해외이민을 강화하며 타국의 식민지화를 촉진하는데, 이 식민지들은 종주국을 위한 원료생산지로 전환된다.(p609)...  공장제 생산의 방대한 비약적 확장력과 세계시장에 대한 의존성은 필연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환 cycle - 즉 열병적인 생산과 이에 뒤이은 시장에 대한 과잉공급, 그리고 시장의 축소와 이에 따르는 생산의 마비 - 을 일으킨다. 산업의 생애는 중간 정도의 활황, 번영, 과잉생산, 공황 crisis, 침체라는 일련의 시기들로 구성된다. 번영기를 제외하고는 자본가들 사이에 시장에서 각자의 몫을 둘러싸고 맹렬한 투쟁이 벌어진다. 각자의 시장 몫은 생산물이 얼마나 싼 가에 정비례한다. 이 때문에 노동력을 대체하는 개량된 기계의 사용과 새로운 생산방식의 도입에서 경쟁이 일어날 뿐 아니라, 어느 산업순환에서도 상품을 싸게 하려고 임금을 노동력의 가치 이하로 강제적으로 삭감하려고 시도하는 한 국면이 나타나게 된다.(p611) <자본론 1-(하)> 中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의 생산일 뿐 아니라 본질적으로 잉여가치의 생산이다.(p688) <자본론 1-(하)> 中


  마르크스에 의하면 잉여가치는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로 구분할 수 있다. 이들의 구분은 양(量)과 질(質)의 문제로 바라볼 수 있는데, 절대적 잉여가치가 노동시간의 확장에 의해 얻어지는 것이라면, 상대적 잉여가치는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통한 필요노동시간의 축소(잉여노동 시간의 확대)를 통해 얻어진다. 하루가 24시간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자본은 초기에는 야근과 같은 방법으로 절대적 잉여가치를 착취하지만, 점차 기계의 확장을 통해 상대적 잉여가치를 늘리는 방안을 도입하면서 자본주의적 생산을 지속해 나간다.


 노동자가 자기 노동력 가치의 등가만을 생산하는 점을 넘어 노동일이 연장되는 것과, 자본이 이 잉여노동을 취득하는 것이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이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자본주의체제의 일반적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을 위한 출발점이다.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에는, 노동일은 처음부터 두 개의 부분, 즉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절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일의 길이에만 관심을 가지지만,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노동의 기술적 과정과 사회적 편성을 철저히 변혁시킨다. 따라서 상대적 잉여가치의 생산은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을 요구하게 되는데, 이 생산방식은, 자본에 대해 노동이 형식적으로 종속한다는 토대 위에서 자기 자신의 방법, 수단, 조건을 만들어 내면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전한다.(p689) <자본론 1-(하)> 中


 노동력의 가치와 잉여가치는 서로 반대방향으로 변동한다. 노동생산성의 변동, 즉 이것의 증가 또는 감소는 노동력의 가치에 대해서는 반대방향으로 작용하고, 잉여가치에 대해서는 같은 방향으로 작용한다.(p704) <자본론 1-(하)> 中


 자본가들은 이렇게 생산된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활용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자본의 축적이 이루어진다. 사실 잉여가치는 자본의 유통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고, 생산과정 초기에 노동의 투입에 의해 창출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M - C - M' 이라는 화폐로의 전환과 후불제로 지급되는 노동의 대가라는 특성으로 인해 잉여가치는 마치 자본의 유통단계에서 이루어진 것이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고, 이로부터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자신의 몫으로 가져갈 수 있다. 그리고, 자본가는 일정부분을 유통과정에 재투입함으로써 재생산 구조를 지속적으로 유지해간다.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사용하는 것, 즉 잉여가치를 자본으로 재전환시키는 것을 자본축적이라고 부른다.(p790)... 잉여가치는 처음부터 총생산물의 일정한 부분의 가치로 존재한다. 이 총생산물이 판매되어 화폐로 전환되면, 자본가치는 다시 최초의 형태를 얻게 된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자본가치와 잉여가치는 모두 화폐액이며, 그것들의 자본으로의 재전환은 정확히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p791) <자본론 1-(하)> 中


 일정한 화폐액이 생산수단과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것은 자본으로 기능하려는 가치량이 겪는 운동의 첫 번째 국면이다. 이 전환은 시장 즉 유통 영역 안에서 행해진다.  운동의 두 번째 국면, 즉 생산과정은 생산수단이 [그 구성부분들의 가치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상품 - 따라서 최초에 투하한 자본 외에 잉여가치를 포함하는 상품 - 으로 전환됨으로써 끝난다. 이 상품은 그 다음에 다시 유통영역에 투입되어야 한다. 그것이 판매되어 그 가치가 화폐로 실현되고, 이 화폐가 다시 자본으로 전환된다. 동일한 국면들을 연속으로 통과하는 이 순환운동이 자본의 유통을 이룬다.(p770)... 거래의 이와 같은 진정한 성격은 생산물의 상품형태와 상품의 화폐형태에 의해 은폐되고 있다.(p774) <자본론 1-(하)> 中 


 지속적으로 유지되는 재생산구조는 확대재생산되는데, 이 과정에서 노동력은 자본에 종속되며,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발전에 따라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서 가변자본의 구성부분은 줄어들게 된다. 이것은 기계의 발전에 따라 여성, 아동 노동력의 활용이 가능해지면서 산업예비군이 늘어나게 되고, 노동자가 받는 임금을 낮추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설명이다.

 

 단순재생산이 자본관계 자체를, 다시 말해 한편으로 자본가를 다른 한편으로는 임금노동자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확대된 규모의 재생산[축적]도 자본관계를 확대된 규모에서 재생산한다... 노동력은 자본의 가치증식 수단으로 끊임없이 자본에 다시 결합되어야 하고, 노동력은 자본으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없으며, 또 노동력의 자본에 대한 예속은 노동력을 각종 개별 자본가에게 팔 수 있다는 것에 의해 은폐되고 있을 뿐이므로, 노동력의 재생산은 사실상 자본 자체의 재생산을 위한 하나의 요소다. 따라서 자본의 축적은 프롤레타리아트의 증식이다.(p838) <자본론 1-(하)> 中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끊임없이 재전환하는 것은 생산과정에 들어가는 자본의 크기가 증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 증대는 이번에는 생산의 규모를 확대하는 기초로 되며, 이에 따라 노동생산성을 증진하는 방법의 기초로 되며, 또 잉여가치의 생산을 촉진하는 기초로 된다.... 자본축적에 따라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발전하고, 진정한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따라 자본축적이 발전한다. 이 두 경제적 요인들은 [그들이 서로 주고받는 자극에 복비례해] 자본의 기술적 구성에 변화를 일으키고, 이 변화 때문에 가변적 구성부분은 불변적 구성부분에 비해 점점 더 작아진다.(p852) <자본론 1-(하)> 中


 최초에는 양적 확대로서만 나타난 자본축적은, 이미 본 바와 같이, 자본구성의 누진적 질적 변화[즉 가본의 가변적 구성부분을 희생시키면서 불변적 구성부분을 끊임없이 증가시키는 것]를 수반하면서 진행된다.(p857)... 총자본의 증가하는 축적과 집중이 자본구성의 새로운 변동의 원천으로 된다. 가변자본의 상대적 감소는 오히려 노동인구의 절대적 증가라는 거꾸로 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은 자본주의적 축적 그 자체가 상대적으로 과잉인, 즉 자본의 평균적인 자기증식욕에 필요한 노동인구를 초과하는 노동인구를 끊임없이 생산해 내고 있는 것이다.(p858) <자본론 1-(하)> 中

 

 잉여가치를 생산하는 모든 방법은 동시에 축적의 방법이 되며, 그리고 축적의 모든 확대는 다시 이 방법을 발전시키는 수단으로 된다. 따라서 자본이 축적됨에 따라 노동자의 상태는, 그가 받는 임금이 많든 적든, 악화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끝으로, 상대적 과잉인구 또는 산업예비군을 언제나 축적의 규모와 활력에 알맞도록 유지한다는 법칙은 노동자를 자본에 결박시킨다. 이 법칙은 자본의 축적에 대응하는 빈곤의 축적을 필연적인 것으로 만든다.(p879) <자본론 1-(하)> 中


 그렇다면, 이와 같은 '빈곤의 축적'이라는 악순환의 제1원인은 무엇일까?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시대 이전에 이루어진 '시초축적'에서 이를 찾는다. 마르크스는 생산자와 생산수단의 분리를 시초축적으로 정리하며, 영국에서 일어난 엔클로저(Enclosure)는 시초축적의 역사적 사례가 된다.


 자본의 축적은 잉여가치를 전제하고, 잉여가치는 자본주의적 생산을 전제하며, 자본주의적 생산은 상품생산자들 수중에 상당한 양의 자본과 노동력이 이용 가능한 형태로 존재하는 것을 전재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운둥은 끝없는 순환 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같이 보이는데, 여기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는 우리는 자본주의적 축적에 선행하는 시초축적 始初蓄積 primitive accumulation, 즉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결과가 아니라 그것의 출발점인 축적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시초축적이 정치경제학에서 하는 구실은 원죄가 신학에서 하는 구실과 거의 동일하다.(p977) <자본론 1-(하)> 中


 자유로운 노동자 free workers라 함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그들 자신은 노예, 농노 등과는 달리 생산수단의 일부가 아니라는 의미와, 자영농민 등과는 달리 자기 자신의 생산수단을 가지지도 않으며 따라서 생산수단으로부터 분리되고 자유롭다는 free from 의미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가 자기의 노동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들의 소유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있는 것을 전제한다... 이른바 시초축적은 생산자와 생산수단 사이의 역사적 분리과정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p979) <자본론 1-(하)> 中 


 자본의 시초축적, 즉 자본의 역사적 발생은 결국 무엇인가? 그것이 노예와 농노를 임금노동자로 직접 전환시키는 것, 즉 단순한 형태변화가 아닌 이상, 그것은 오직 직접적 생산자의 수탈 expropriation[즉 자기 자신의 노동에 토대를 두는 사적 소유를 해체하는 것]을 의미할 땨름이다.(p1043) <자본론 1-(하)> 中


 <자본론 1-(하)>에서 마르크스는 기계제의 도입으로 인해 잉여가치가 확대생산되는 모습과 함께, 교환과정에서 잉여가치가 자본가에게 귀속되는 모습을 밝히고 있다. 그리고, 잉여가치가 자본으로 전환되는 축적단계를 통해 노동의 자본예속이 심화되고, 자본의 집중이 가져오는 변화(국내적으로 사회적 분업의 확대, 국외적으로 제국주의 침략)를 분석하며, 생산수단과 생산자의 분리를 통해 시초자본의 축적이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했음을 주장한다. 이로써 <자본론 1> 전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본다. <자본론 1>을 통해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생산모습을, <자본론 2>에서는 교환을 분석하고 있다. <자본론 2>에 들어가기 전에 마르크스 변증법을 살짝 맛보면서 이번 리뷰를 마무리한다...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으로부터 생기는 자본주의적 취득방식은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를 낳는다. 이 자본주의적 사적 소유는 자기 자신의 노동에 입각한 개인적 사적 소유 individual private property의 첫 번째 부정이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은 자연과정의 필연성을 가지고 자기 자신의 부정을 낳는다. 이것은 부정의 부정이다. 이 부정의 부정은 생산자에게 사적 소유를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대의 성과 - 협업, 그리고 토지를 포함한 모든 생산수단의 공동점유 - 를 바탕으로 개인적 소유[개인들이 연합한 사회의 소유]를 재건한다.(p1046) <자본론 1-(하)>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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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20-05-24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초축척, 곧 분업이 문제라고 하는데, 분업의 힘을 믿는 제게 마르크스 이론은 참 딜레마 입니다. ^^

겨울호랑이 2020-05-24 16:00   좋아요 1 | URL
분업을 활용한 생산구조가 높은 생산성을 가져오기에, 사회 전체로는 효율적이지만, 전체의 부분으로 종속되는 개인의 설 자리가 줄어든다는 것이 마르크스 이론의 주장이라면, 이들간의 균형을 잡아주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쉽지 않겠지만요^^:)

syo 2020-05-24 19:19   좋아요 2 | URL
자본에 대한 본격적인 독해가 알라딘에 올라온다면, 그건 북다님 혹은 호랑이님일 거라고 늘 예측하고 있었는데, 여기 두 분 다 계시네요 ㅎㅎㅎㅎ

겨울호랑이 2020-05-24 19:35   좋아요 0 | URL
어떻게 하다보니 제가 리뷰를 올렸습니다만, 이번에 정리한 내용 중에서 <자본론>의 많은 주요 내용을 담기에는 많이 부족했네요. 요약이라 하기에도 부족함이 많은 글이었습니다... 다만, <자본론>이 생각보다 읽기에 어려운 책이 아니고, 경제이론 뿐 아니라 당대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 의미있는 책이라는 인식을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생각합니다.^^:) syo님 감사합니다.

NamGiKim 2020-05-24 17: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본론은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자본주의를 분석한 책이죠. 하지만 반공주의에 빠져 오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결국 자본주의 체제는 잉여생산을 통한 축적을 목적으로 돌아가는데, 대다수의 반공주의자들은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면서도 그걸 모르며 살아가고 있죠.

겨울호랑이 2020-05-24 19:30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NamGiKim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자본론>은 자본주의를 부정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한 책이라 생각됩니다. 물론, 노동가치설고 이윤의 원천드와 관련해서 다른 의견도 분명히 존재합니다만.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회과학 서적으로서 <자본론>을 읽는 것은 자본주의사회에서 당연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한,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빨갱이‘로 비난하는 이들 또한 비난 이전에 ‘공산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마르크스가 무엇을 비판하고 그가 제시한 길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상대의 주장도 정확하게 모르고 비난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라 여겨집니다.

NamGiKim 2020-05-24 17: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런생각도 듭니다. 마르크스가 주로 활동하던 곳은 19세기 산업혁명을 시작으로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 되던 영국이었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주로 활동했다면 어땠을까요? 과연 공산당 선언이나 자본론 등의 명저를 만들었을까요? 마르크스가 활동할 시기 독일에선 제1차 수정주의라 불리는 에뚜아르트 베른슈타인이 등장했습니다. 베른슈타인을 포함한 사회민주주의자들은 ˝혁명이 아닌 개혁과 사유재산 및 시장 보호˝를 주장했고, 마르크스와 대립했죠. 베른슈타인이 활동하던 곳은 독일이었는데, 당시 독일은 영국하고는 좀 다른 사회였습니다. 최소한 복지에 대한 얘기 비스마르크때 부터 나왔고, 산재보험 연금보험 등이 실행되기도 했죠.(물론 자본가들이 공장에서 노동자들 굴리는건 매한가지였지만) 저는 이부분에 궁금증이 생기더군요. 21세기 자본주의 사회에 미친 마르크스의 영향은 자본주의를 약간 수정하는 형태로 나타났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마르크스주의가 주는 철학적 사회적 의미는 막강합니다. 마지막으로 호치민의 말은 인용하며 댓글을 마칩니다.

˝칼 마르크스의 꿈이 언제 실현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지만, 그것도 아직 꿈으로 남아 있지 않습니까?˝

겨울호랑이 2020-05-24 18:51   좋아요 1 | URL
NamGiKim님의 예전 글을 보면서 레닌과 마르크스, 스탈린에 우호적인 면을 발견합니다. 저는 이들 사상가들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편은 아닙니다. 19세기의 마르크스 이론이 당대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만, 당시와 산업구조가 변화되고,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문제가 되는 오늘날에는 <자본론>에 묘사된 현상에서 답을 찾는다면 별로 얻을 것이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또한, 물질적인 것을 기준으로 이론을 펼쳐나간 부분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동의하기 힘듭니다. 다만, (마르크스 자신이 극심한 빈곤으로 자녀들을 떠나보낸 것도 한 이유가 되겠습니다만) 그 안에 담긴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유물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보다 더 물질적인 요즘 세태에 귀감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 생각됩니다. 20세기 말 공산주의 사회는 붕괴되었지만, 사적 소유 형태를 부정하지 않고 노동의 조직화를 통해 보다 완만하게 평등하게 실현시키고자 하는 사회주의 운동은 오늘날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NamGiKim님께서 말씀하신 마르크스의 꿈이 실현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북다이제스터 2020-05-24 18:59   좋아요 1 | URL
자본주의가 이정도 굶주리지 않은 삶을 만든 것에 동의할 수 있지만 지나치게 버려지는 것 또한 넘 극심하게 많다는 것에도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중간이 무엇인지 항상 고민 많이 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4 19:07   좋아요 1 | URL
북다이제스터님 말씀처럼 ‘생산 - 교환 - 소비‘의 자본주의 재생산 구조에서 적절한 자원의 배분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라 생각됩니다. 평등과 지역간/세대간 분배 그리고 중용 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NamGiKim 2020-05-24 19:28   좋아요 1 | URL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노동의 조직화라는 것을 부정하진 않았지만, 소위 경제주의 내지는 조합주의로 빠질 우려를 했었습니다. 사회주의자로써 얘기하자면, 정치투쟁과 경제투쟁 이론투쟁 이 3가지가 항상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즉 노동자의 투쟁은 단순히 임금인상과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해선 안되고 국가보안법 철폐나 미제침략행위 반대투쟁과 사회주의 원전 학습도 같이 해야한다는 얘기죠. 경제투쟁을 부정하자는게 아닌 다른 중요한 투쟁도 노동계급의 요구와 이익만큼 중요하다는 얘기입니다.

스탈린은 물론 과오도 있지만, 지극히 악마화된 인물이라 생각합니다. 스탈린 정권이 1930년대에 등장한 것을 사회적인 변화와 맥락속에서 이해를 해야합니다. 당시 소련은 나치독일과 일본제국이라는 파시즘의 위협에 시달렸고, 따라서 사회주의의 국가안보가 중요했습니다. 독-소 불가침 조약도 그렇고요. 비판적인 견해를 떠나서 시대사적 맥락을 이해해야 하는 것이겠죠.

겨울호랑이 2020-05-24 19:44   좋아요 1 | URL
^^:) 제가 NamGiKim님과는 달리 보수적인 성향이라 사실 혁명이라는 수단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편입니다. 문제점에 대한 대안 선택 시 대안이 주는 사회적 충격도 충분히 고려해야한다는 점에서 제가 위치한 지점과 NamGiKim님이 서계신 곳은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다만,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라는 방향성에서는 많은 부분 동감합니다. 제가 공산주의 혁명가들에 대해서 NamGiKim님만틈 많이 알지를 못합니다. 그렇지만, 스탈린이나 마오저뚱 등의 인물이 정말 ‘악의 화신‘이었다면, 그들이 그토록 오랜 기간 집권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 면에서 이들에 대한 입체적인 조망이 필요하겠지요. 그런 면에서 NamGiKim님의 관점은 상당히 새롭게 다가와 많은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2020-06-06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6 20: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3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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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부는 노동력 부족을 보충할 목적으로 조선인 약 70만명과 중국인 약 4만명을 일본 본토와 사할린 등지로 강제연행하여 광산 등지에서 혹사시켰기 때문에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다. 또 일본은 다수의 조선인 여성과 점령지 여성에게 군 관리하의 위안부생활을 강요했는데 그중에는 강제연행되거나 속임수로 끌려온 사람들도 많았다.(p528) <새로 쓴 일본사> 中


 중국인 포로들은 더욱 형편없는 보상을 받았고, 동남아시아로 끌려간 노무자들의 숫자는 추산조차 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위험지역에는 '근로보국대'로 징발된 한국인들이 있었다. 이 끔찍한 이야기에다 '위안부'라는 기묘한 이름으로 불리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최근에 추가되었다. 이들은 일본군 위안소에서 강제로 일했다. 제국군대는 풍기문란을 막고 성병을 줄이기 위해 공개적으로 위안소를 설치하고 관리했다. 위안부의 모집은 보통 인신매매 중개인을 통해 이루어졌고, 규슈의 궁핍한 지역에서 가장 많은 여성이 차출되었다. 규정상 강제모집은 금지되어 있었다. 하지만 군인의 수가 늘어나고 전선이 확대되자 정상적인 공급원에만 의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이때부터 직업적 매춘부보다는 감언이설에 속아서 지원했거나 강제로 끌려온 여성의 수가 많아졌다.(p972)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일본의 극우주의 역사책들은 과거 일본제국주의 시대의 '침략'을 '진출'로 정당화하고, 일본이 서구 제국주의 침략으로부터 아시아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맡았다는 주장을 펼친다.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이러한 역사왜곡 안에는 이들이 저지른 참상은 은폐되고, 이러한 사관(史觀)으로 일본 중고등학교 역사가 집필되는 점은 우려할만한 지점이다. 그렇지만, 강제동원과 정신대 피해자, 위안부 피해자들의 용기있는 증언은 일본의 집요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참상을 역사의 수면 위로 올리는 계기가 되었고, 이를 역사 안에 포함하는 일본 역사서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 물론, 일본 내에서 이를 부정하고 담지 않는 역사서가 아직은 훨씬 더 많지만. 

 

 백지에 쓴 문장을 소리 내 읽던 그녀는, 모든 걸 다 말하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말을 하고, 그리고 죽고 싶다."... "엄마가, 엄마가 가장 갖고 싶어.(p153)' <한 명> 中


 그녀는 울고 싶은데 울음이 안 나온다. 아귀처럼 입을 한껏 벌리고 목을 늘어뜨려도 눈물 한 방울 안 난다. 자매들이 죽었을 때도, 오빠가 죽었을 때도 그녀가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으니까, 친인척들은 흉을 보았다. 독해서 시집도 안 가고 평생 혼자 살더니만 울지도 않는다고. 그녀는 너무 지독하게 살아서 눈꺼풀을 쥐어뜯어도 눈물이 안 나는가 보다 했다. 평생에 걸쳐서 두고두고 울 걸 소싯적에 다 울어버려서 그런가 보다고.(p36) <한 명> 中


 위안부 피해자들은 자신들이 겪은 기가 막힌 이야기에 대해 말하고 싶었지만,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자신의 가족들에게도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안고 평생을 살아야했던 피해자들에게 이러한 현실은 2차 가해였으리라. 이러한 현실 속에서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한 이들이 1990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희(정의기억연대 전신)이었다.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낸 이들의 공은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이미 많은 위안부가 사망했고 살아남은 희생자들은 수치심을 느꼈기 때문에 이 문제는 1990년대 이전까지는 공론화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오랫동안 침묵을 지키던 한국, 중국, 심지어 네덜란드 여성의 불만이 터져 나오자 위안부문제는 국제문제로 비화되었다. 일본정부가 (외양상으로는 비정부기구를 통해) 손해배상과 보상을 위한 기금마련에 나선 것을 보면 희생자들의 불만이 정당한 것임을 알 수 있다.(p973) <현대일본을 찾아서 2> 中


 최근 21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된 윤미향 이사장과 정의기억연대와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러한 의혹은 결국 법정에서 가려지겠지만, 그 전까지는 30년 동안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 한 이들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기다렸으면 하는 마음이 든다. 이들이 아니었으면, 피해자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을까. 병자호란(丙子胡亂) 당시 끌려간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우리 역사에 아픈 역사가 반복되었다면, 정의기억연대가 있어 공론화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공(功)을 생각한다면, 정의기억연대와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노력을 이제는 우리가 할 차례라 여겨진다.

 

 남자들은 걸핏하면 국가입네 민족입네 거창하게 얘기하지. 강제로 끌려가서 당한 우리만 죄인이고. 불문곡직하고 여자는 순결해야 한다는 게 남자들의 생각이야. 우리가 정신대로 끌려갈 때 조선 남자들은 뭘 했는고?(p99)... 왜정 때 위안부로 끌려갔던 조선 여자들이 십 수만 명이래. 위안부로 등록한 할머니 이백 몇 십 명을 뺀 수많은 할머니들은 한을 안고 소리 소문 없이 죽거나 외롭게 살아가것제. 그넘들이 끌어다가 쓰고 싶으면 쓰고 아프고 병들면 처분해 버리고... 정말 골병들었다.(p100) <나비의 노래> 中


PS. 이들이 저지른 회계부정이 있다면 엄중하게 판결해야 할 것이다. 다만, 회계부정이 있다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가족간 취업특혜가 있었다면 KT 채용비리와 비교하고 우리 사회에 미칠 파장과 정도를 따져 형평성있는 판결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이런 판결이 나올 때까지 뒤늦게나마 정의기억연대 정기 후원을 시작한다...



 

 민주주의의 세 번째 차원은 민주적 담론이다. 진정한 집단적 행위는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만약 시민들이 그들이 말하는 좋은 생각들이 주의를 끌 수 있도록 하는 구조와 분위기 속에서 공동체에게 말할 수 없다면 민주주의는 진정한 형태의 자기-정부를 제공할 수 없다. 만일 공공의 담론이 검열 때문에 장애를 받는다면, 또는 각각의 편이 다른 편이 말하는 것을 단지 왜곡하거나 묵살하기 위해서 고함을 치거나 비방하는 시합으로 타락한다면 어떤 집단적 자기-정부도 없고, 어떤 종류의 집단적 사업이라는 것도 없으며 오직 수단만 다른 전쟁으로 간주되는 투표만 있게 된다.(p555) <자유주의적 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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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holic 2020-05-20 20: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늘 좋은 글 감사합니다.
정의연에 대한 겨울호랑이님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겨울호랑이 2020-05-20 20:41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bookholic님. 작은 실수 하나로 정의연의 성과와 노력 전체가 부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많은 이들이 동감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본론 1 - 상 - 2015년 개역판, 정치경제학비판 자본론 1
카를 마르크스 지음, 김수행 옮김 / 비봉출판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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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품의 가치는 그 상품에 체현되어 있는 노동량에 정비례하고 노동생산성에 반비례한다. 이제 우리는 가치의 실체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이다. 우리는 가치의 크기의 척도를 알았다. 그것은 노동시간이다.(p50) <자본론 1-(상)> 中


 <자본론 1-(상) Das Kapital: Kritik der politischen O"conomie 1-1>에서 칼 마르크스(Karl Marx, 1818 ~ 1883)는 노동가치설(勞動價値說 Theories of Labour Value)을 바탕으로 상품의 가치와 교환 그리고 잉여가치의 생산에 대한 내용을 밝히고 있는데, 이번 리뷰에는 이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마르크스는 사용가치(use-value)와 교환가치(exchange-value) 그리고 가치를 구분한다. 사용가치는 물건의 유용성으로 표현되는데 반해, 교환가치는 서로 다른 두 물건의 사용가치가 교환단계에서 일정비율로 실현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교환가치는 어떻게 결정되는 것일까? 이는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드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이다. 이렇듯 마르크스의 가치체계에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그리고 가치는 구분된다. 


 한 물건의 유용성은 그 물건으로 하여금 사용가치 use-value가 되게 한다. 그러나 이 유용성은 공중에 떠있는 것이 아니라 상품의 물리적 속성에 의해 주어지고 있으며, 그 상품체 商品體와 별도로 존재할 수 없다... 상품의 이런 속성은, 그 유용성을 취득하는 데 인간노동이 많이 드는가 적게 드는가 하고는 관계가 없다. 사용가치는 오직 사용 또는 소비에서만 실현된다.(p44) <자본론 1-(상)> 中


 교환가치 exchange-value는 먼저 양적 관계, 즉 어떤 종류의 사용가치가 다른 종류의 사용가치와 교환되는 비율로 나타난다. 그런데 이 비율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끊임없이 변동하므로, 교환가치는 어떤 우연적이고 순전히 상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따라서 상품 자체에 고유한 내재적 교환가치라는 것은 일종의 형용모순인 것처럼 보인다.(p45) <자본론 1-(상)> 中


 사용가치 또는 유용한 물건이 가치를 가지는 것은 오직 거기에 추상적 인간노동이 대상화되거나 체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가치의 크기는 어떻게 측정하는가? 그 물건에 들어 있는 '가치를 형성하는 실체 substance'인 노동의 양에 의해 측정한다... 한 상품의 생산에 평균적으로 필요한, 즉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 걸리는 한,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 socially necessary labour time이란 주어진 사회의 정상적인 생산조건과 그 사회에서 지배적인 평균적 노동숙련도와 노동강도에서 어떤 사용가치를 생산하는 데 드는 노동시간이다... 이와 같이 어떤 물건의 가치량을 결정하는 것은 오직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량, 즉 그것의 생산에 사회적으로 드는 노동시간이다.(p48) <자본론 1-(상)> 中


 마르크스에 의하면 사용가치는 교환 시 고려대상이 되지 않는다. 사용가치는 단지 상품이 되기위한 필요조건에 불과하며, 사람들은 노동시간을 기준으로 상품의 가치를 측정하고 교환하기에, 노동시간을 매개로 상품은 자신을 제외한 상품들과의 교환비율을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각 상품의 사용가치에는 유용노동, 일정한 종류의 합목적적 생산활동이 들어 있다. 여러 가지 사용가치는, 만약 거기에 질적으로 다른 유용노동이 들어 있지 않다면, 상품으로 서로 마주할 수 없다. 생산물이 일반적으로 상품 형태를 취하고 있는 사회, 즉 상품생산자 사회에서는, 개별 생산자들이 상호 독립적으로 자기 자신의 계산에 따라 수행하는 여러 가지 형태의 유용노동 사이의 질적 차이는 하나의 복잡한 체계, 사회적 분업으로 발전한다.(p53) <자본론 1-(상)> 中


 가치관계를 매개로 상품 B의 현물형태는 상품 A의 가치형태로 된다. 다시 말해 상품 B의 물체는 상품 A의 가치를 드러내는 거울로 된다. 상품 A는, 가치체이자 인간노동의 체현물인 상품 B와 관계를 맺음으로써, 사용가치 B를 자기 자신의 가치의 표현재료로 삼는다. 상품 A의 가치는 이와 같이 상품 B의 사용가치로 표현되어 상대적 가치형태를 얻게 된다.(p67) <자본론 1-(상)> 中


 시간이 흘러 교환경제가 발달하게 되면서 상품들의 교환가치를 표시할 필요가 생겨나게되고 이에 따라 화폐가 생겨났고, 화폐를 매개로  'C 상품 - M 화폐 - C 상품'형태의 교환거래가 생겨났다. 


 화폐는, 종류가 다른 노동생산물이 실제로 서로 동등시되고, 따라서 상품으로 전환되는 교환과정의 필연적 산물이다. 교환현상의 역사적 확대와 심화는 상품의 성질 속에 잠자고 있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을 심화시킨다.(p114)... 화폐 자신의 가치는 화폐의 생산에 소요되는 노동시간에 의해 결정되며, 동일한 양의 노동시간이 응고되어 있는 다른 상품의 양으로 표현된다.(p120) <자본론 1-(상)> 中


 교환과정은 상품을 상품과 화폐라는 두 개의 요소로 분화시키는데, 이것은 상품에 내재하는 사용가치와 가치 사이의 대립이 외적 대립으로 표현된 것이다. 이 대립에서 사용가치로서 상품들이 교환가치로서 화폐와 맞선다.(p136)... 상품의 교환과정은 대립적이면서 동시에 상호보완적인 두 개의 탈바꿈 - 상품이 화폐로 전환과, 화폐가 상품으로 재전환 - 에 의해 수행된다.(p137) <자본론 1-(상)> 中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러한 교환거래로부터 다른 물건들과 쉽게 교환할 수 있는 화폐(금)를 보유하고자 하며, 이에 따라 교환의 형태는 'C - M - C' 에서 'M - C - M'으로 바뀌었다. 마르크스에 의하면, 이러한 교환의 형태 변화는 단순한 순서 바뀜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앞선 식에서 M(monetary)는 두 C(commodity)의 교환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뒤의 식에서 M은 목적이 된다. M을 얻기 위한 것이 교환의 목적이라면, 사람들은 최초의 상태 M 이상의 것을 기대하게 된다. 이로부터 사람들은 교환을 통해 잉여가치를 추구하게 되고, 유통과정에서 '자본(資本 capital)'이 만들어진다. 이제부터 마르크스는 논의를 가치론에서 자본으로 옮긴다.


 화폐는 이제 과정을 매개하는 것이 아니라, 교환가치의 절대적 존재형태[즉 일반적 상품]로서 독립적으로 개입해 유통과정을 종결짓는다. 판매자가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킨 것은 화폐로 어떤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였고, 화폐퇴장자가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킨 것은 상품을 화폐형태로 보존하기 위해서였으며, 채무를 진 구매자가 상품을 화폐로 전환시킨 것은 지불할 수 있기 위해서였다.(p177) <자본론 1-(상)> 中


 과정 M-C-M은, 그 두 끝이 모두 화폐이기 때문에, 두 끝의 질적 차이에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고 오직 두 끝의 양적 차이에서만 의미를 가진다. 다시 말해 처음 유통에 투입한 것보다 더 많은 화폐가 유통에서 끌려 나와야 한다... 그러므로 이 과정의 완전한 형태는 M-C-M'이다. 여기서 M'은 최초에 투하한 화폐액에 어떤 증가분을 더한 것과 같다. 이 증가분, 즉 최초의 가치를 넘는 초과분을 나는 잉여가치 剩餘價値 surplus-value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최초에 투하한 가치는 유통 중에서 자신을 보존할 뿐 아니라 자신의 가치량을 증대시키고 잉여가치를 덧붙인다. 바꾸어 말해 자기의 가치를 증식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운동이 이 가치를 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p197) <자본론 1-(상)> 中


  자본가들은 M 이상의 가치를 지닌 M'를 원한다. 그렇지만, 교환(유통)자체는 상품의 가치를 변동시킬 수 없다면(노동가치설) , 어떤 방식으로 M'을 획득할 것인가. 잉여가치를 획득을 위해 자본가들은 관심을 상품 '노동'으로 돌린다. 마르크스는 노동으로부터 '교환가치를 실현하면서, 사용가치를 자본가에게 넘겨주는' 특성을 발견한다. 교환과 동시에 자본가들은 노동에 대한 통제권을 획득하게 되는데, 이로부터 자본가들은 노동을 최대한 활용해서 자신의 상품가치를 끌어올리고자하는 의도를 갖게 된다.


 자본가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이 상품[노동력]의 독특한 사용가치[가치의 원천일 뿐 아니라 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가치의 원천이라는 것]였다. 이것이야말로 자본가가 노동력으로부터 기대하는 독특한 봉사며, 그는 노동자와의 거래에서 상품교환의 영원한 법칙에 따라 생동한다. 사실상 노동력의 판매자는 노동력의 교환가치를 실현하면서 그 사용가치를 넘겨준다.(p258) <자본론 1-(상)> 中


 구체적으로, 상품의 가치가 더 많은 사회적 평균노동의 투입이라고 했을 때, 자본가들이 노동자들에게 노동력의 가치에 대한 대가를 충분히 지급하지 않는다면(노동의 착취를 통해)  자본가는 잉여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자본가들은 필요노동시간을 최소화하고, 잉여노동시간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생산성을 높이게 된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제 자본을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나눌 필요가 있다.


 노동력의 정상적인 유지가 노동일의 한계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노동력의 가능한 최대한도의 일상적 지출[그 지출이 아무리 병적이고 강제적이며 고통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이 노동자의 휴식 시간의 한계를 규정한다. 자본은 노동력의 수명을 문제 삼지 않는다. 자본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오로지 1노동일 안에 운동시킬 수 있는 노동력의 최대한도일 뿐이다.(p358) <자본론 1-(상)> 中


 잉여노동의 연장에 필요노동의 단축이 대응하고 있다. 즉 노동자가 이때까지 사실상 자기 자신을 위해 쓰고 있던 노동시간의 일부가 자본가를 위해 지출되는 노동시간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달라지는 것은 노동일의 길이가 아니라 노동일이 필요노동과 잉여노동으로 분할되는 비율이다.(p428)... 노동일의 연장에 의해 생산되는 잉여가치를 나는 절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른다. 이에 대해 필요노동시간의 단축과 이에 따라 노동일의 두 부분들의 길이 변화로부터 생기는 잉여가치를 나는 상대적 잉여가치라고 부른다.(p431) <자본론 1-(상)> 中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자본을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분한다. <자본론>에서 노동가치설에 따라 불변자본에서는 잉여가치가 생겨날 수 없다. 불변자본은 오직 노동생산성을 증대시켜 노동자의 필요노동시간을 줄일 목적으로 사용된다는 것이 마르크스의 주장으로, <자본론 1-(상)>에서는 이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언급되고 있다. 이윤율과 이윤량 등과 연관되는 이 개념에 대해서는 <자본론>의 다른 권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고 일단 넘기자.


 자본 중 생산수단[원료, 보조재료, 노동수단]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량은 변동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자본의 불변부분 또는 간단하게 불변자본 不變資本 constant capital이라고 부를 것이다.(p278) 이와는 반대로 자본 중 노동력으로 전환되는 부분은 생산과정에서 그 가치가 변동한다. 이것은 자기 자신의 등가물을 재생산하고 또 그 이상의 초과분, 즉 잉여가치를 생산하는데, 이 잉여가치는 역시 변동하며 상황에 따라 크게도 작게도 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자본의 가변부분 또는 간단하게 가변자본 可變資本 variable capital이라고 부를 것이다. 노동과정의 관점에서는 객체적 요소와 주체적 요소[즉 생산수단과 노동력]로 구별되는 바로 그 자본요소들이 가치증식과정의 관점에서는 불변자본과 가변자본으로 구별된다.(p279) <자본론 1-(상)> 中


 가치생산물은 얼핏 보아서는 (c+v)+s 또는 410원 c + 90원 v + 90원 s인 듯이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고 v+s, 즉 90원 v + 90원 s이다. 다시 말해 가치생산물은 590원이 아니라 180원이다.(p284)...  잉여가치율은 s/C 또는 s/(c+v)가 아니라 s/v이며, 따라서 90/500(=18%)이 아니라 90/90(=100%)인데, 이것은 외견상의 착취도의 5배 이상이나 더 크다.(p290)... 노동일의 길이와 순이윤의 관계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공장주들에게 기계설비, 공장건물, 원료, 노동을 뒤섞지 말고, 한 쪽에는 공장건물, 기계설비, 원료 등에 투하된 불변자본을 놓고, 다른 쪽에는 임금에 투하된 자본을 놓아달라고 요청했어야 할 것이다.(p299) <자본론 1-(상)> 中


 불변자본인 생산수단은 가치증식과정의 관점에서 본다면 오직 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그리고 노동의 한 방울 한 방울과 함께 그것에 비례하는 양의 잉여노동을 흡수하기 위해서만 있다. 생산수단이 이렇게 하지 않는 한, 생산수단의 존재는 자본가에게는 일종의 소극적인 손실이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이 사용되지 않는 동안은 쓸모없이 투하된 자본을 대표하기 때문이다.(p345) <자본론 1-(상)> 中


 정리하자면, <자본론 1-(상)>에서 마르크스는 상품의 사용가치와 교환가치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고, 인간의 노동에 의해 상품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전제로 교환경제에서 화폐의 등장되면서 일어나는 교환식의 변화를 설명한다. 또한, C- M -C에서 M - C - M'의 변화를 통해 잉여가치를 추구하는 자본가의 등장과 상품으로서의 노동의 특성을 말하면서, 불변자본의 사용이 가져온 노동생산성의 향상이 결국 노동자의 잉여노동시간을 증가시키고 자본가 몫이 확대되었음을 밝히고 있다.  

 뒷편인 <자본론 1-(하)>에서는 기계의 발달로 인한 대자본의 출현과 잉여가치의 생산에 따른 자본의 축적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리뷰에서 다루도록 하고, <자본론 1-(상)>의 내용정리 리뷰는 이만 줄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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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5-19 10:1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대단하십니다...

시대의 고전이라는 자본을 독파
하시고 계시다니 그저 존경할
따름이네요.

겨울호랑이 2020-05-19 10:29   좋아요 0 | URL
에고 아닙니다. 몇 차례 내용을 정리하고자 했는데, 계속 미루다가 올해 겨우 마음 먹고 정리해 봅니다. 레삭매냐님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2020-06-06 13: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0-06-06 22:17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