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 이야기 3 - 완결 시오노 나나미의 십자군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송태욱 옮김, 차용구 감수 / 문학동네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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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가 이 도시의 통치와 방어를 정비한 성과는, 이 시기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한 그리스도교도 상인의 말에 잘 나타나 있다. 중근동과 오랫동안 교역해온 이 베네치아 상인은 프리드리히가 통치하기 이전과 이후를 비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대부분의 것들은 변하지 않았다. 그래도 변한 것을 찾는다면, 첫째로 거리에 보이는 수비대 병사가 이슬람교도에서 그리스도교도로 바뀌었다는 것, 둘째로 그리스도교 교회에서 이전보다 큰 소리로 종이 울려퍼지게 된 것이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405

<십자군 이야기 3 The story of the Crusades 3>는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마지막 권이며, 제3차 십자군(1188 ~ 1192)으로부터 제8차 십자군(1248 ~ 1254)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책이다. 시기적으로는 전체 200여년에 해당하는 십자군 역사에서 후반부 70년에 해당하기에 200년을 3분하여 분량을 할당한 작가의 구성은 큰 무리없어 보이지만, 성지 예루살렘을 잃어버린 후 이를 탈환하기 위한 원정의 대부분은 이 시기에 집중되기에 기계적 중립에 가까운 분량 배분이 이루어졌다.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 1157 ~ 1199)와 살라딘(Saladin, 1138 ~ 1193)의 대결로 압축되는 제3차 십자군과 베네치아 상인에게 농락당해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함락시킨 제4차 십자군이 일반적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고, 작가도 여기에 집중한다. 때문에 4차 이후 십자군 전쟁은 무게감이 떨어지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시선이 가는 곳은 오히려 제6차 십자군전쟁이다.

제6차 십자군은 처음부터 외교협상이 이루어진 전쟁이라는 점에서 다른 전쟁과는 근본적 차이가 있다. 프리드리히 2세(Friedrich II, 1194 ~ 1250)와 알카밀(al-Malik al-Kamel Naser al-Din Abu al-Ma‘ali Muhammed,1180 ~ 1238) 사이에 이루어진 협상은 평화롭게 끝났고 이를 통해 성도(聖都)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도와 이슬람교도, 유대교도가 공유하게 된다.

프리드리히는 아코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알 카밀에게 교섭 재개를 요청하는 밀사를 보냈다. 중근동에서 오래 살아온 봉건제후 출신으로 아랍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던 두 밀사는 당시 알 카밀이 머무르고 있던 나블루스로 향했다. 프리드리히는 대환영을 받으며 아코에 도착하자마자 일찌감치 외교로 해결하려는 시도를 한 것이다.(p377)... 이집트에 세력 기반을 둔 알 카밀로서는 프리드리히가 이끌고 온 군사력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p379)... 알 카밀이 시간 벌기로 시작한 교섭은 이렇게 조금씩 진지하게 이교도간의 공생관계 수립을 지향하는 교섭으로 변해갔다. 그러나 그 사이에도 프리드리히는 중근동 그리스도교 세력의 안전을 보장할 수단을 강화해가고 있었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385

물론, 이러한 결과는 이들이 평화를 사랑했다라고 보기보다 현실적인 이유가 더 크게 자리했을 것이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황제의 의무를 수행하기 위해 전장으로 떠밀린 프리드리히 2세와 다마스쿠스에서 반기를 든 동생과의 갈등 관계에 있던 알 카밀. 이들은 모두 싸움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협상에 임했고, 결과적으로 평화협정에 이르게 되었다. 그렇지만, 역사가들은 이러한 결과가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 모두의 반발을 가져왔다고 서술한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황에서 협상의 결과에 반대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아마도 전쟁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는 이들이 아니었을까. 평화로 인해 손해보는 이들이 존재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일테니.

프리드리히와 호노리우스의 서신 교환은 그후 한동안 두절된다. 그리고 1218년 말 둘의 교류가 다시 시작된다. 이번에는 교황이 먼저 프리드리히에게 서신을 보낸다. 제5차 십자군이 이집트 다미에타에서 고전하고 있던 시기였다. 이번에는 넌지시 비추는 정도가 아니라 분명히 용건을 밝혔다. 요컨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가 되고 싶으면 원정을 가라는 것이었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345

1192년 봄, 재상 윌리엄 롱샹은 리처드에게 하루빨리 귀국할 것을 요청했다. 서신에는 리처드의 막내동생 존을 전면에 내세운 프랑스 왕의 군대가 노르망디 지방을 넘어 영국까지 침공하고 있으며, 유럽에 남아 있는 리처드파의 군대는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며 리처드의 귀국에만 희망을 걸고 있다고 씌여 있었다. 제1차 십자군 당초부터 유럽의 모든 황제와 왕, 제후들은 로마 교황이 제창한 ‘신 앞에서의 평화‘를 지키는 데 동의했다. 십자군 원정중에는 누구든 원정에 나선 이의 영토를 결코 침략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프랑스 왕 필리프 2세가 그것을 처음으로 깨버렸다.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177

구체적으로는 십자군 전쟁을 통해 자신의 권위를 세우려는 교황, 제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던 유럽의 여러 왕들. 이들이 종교(宗敎)를 앞세우고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채우려는 목적으로 평화의 길을 반대하고 여론을 조성한 것은 아닐까라는 합리적 의심을 하게 된다. 앞으로 종교를 앞세우고 뒤로는실속을 채우려믄 이들은 평화협상을 실패라고 비난했고, 프리드리히를 파문에 처하기까지 한다. 역사는 이러한 기록을 남기지만, 실제로도 그랬을까.

리뷰의 서두에 언급된 베네치아 상인의 증언은 평화협상의 결과로 세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이 이루어졌음을 말한다. 상인인 그의 입장에서는 평화가 자신에게 유리했음은 너무도 당연할 것이고, 이는 예루살렘과 일대에 거주하는 이들 모두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직접적인 이해당사자인 그들이 결코 원치 않았던 전쟁을 피한 제6차 십자군을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까. 또한, 십자군 전쟁의 목적이 성지 회복이라면, 피흘리지 않고 예루살렘을 소유(所有)하지는 못했지만 공유(共有)할 수 있었던 이 전쟁을 실패라고 볼 수 있을까. 만약, 제6차 십자군이 실패라면, 전쟁을 통해 이익을 얻지 못한 이들의 관점에서 실패가 아니었을까. 세 종교가 공존할 수 있는 길을 살피고, 평화의 길을 세워 오늘날 중동평화를 가져울 수도 있었던 협상이었다는 점에서 본다면 가장 역사적 의미를 갖는 십자군 전쟁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 특히, ‘한반도 평화 정착‘이라는 시대과제를 안고 있는 우리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역사 소설인 <십자군 이야기 3>에서 이런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다.

앞서 말했듯 <십자군 이야기 3>에서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가장 공들이고 쓴 부분은 제3차 십자군과 제4차 십자군이다. 그리고 이 부분은 작가의 상상력과 긴장감을 고조하는 특유의 서술을 좋아하는 이들을 충분히 만족시키도록 ‘맛있게‘ 씌여졌다. 다만, 흥미진진한 다른 십자군 원정과는 달리, 별다른 화제거리가 없는 제6차 십자군에 대해서는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오히려 사실을 파악하는데 방해가 될 뿐이다.

예를 들어, 제3차 십자군에 참전했던 프리드리히 1세(Friedrich I, 1122 ~ 1190)가 수영하던 중 물에 빠져 죽은 사건을 보자. 이에 대해 작가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서술한다. 정확한 사인(死因)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공식기록이지만, <십자군 이야기 3>의 글을 읽다보면 우리는 프리드리히 1세가 ‘철없는 늙은이‘ 라는 부정적 인식을 가질 뿐이다. 그렇지만, ‘붉은 수염‘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중세 유럽에서 10만명에 가까운 병력을 동원할 능력있는 자를 평면적으로만 바라볼 수 있을까.

내 머리에는 ‘늙은이의 냉수(노인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위험한 짓이나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을 일컫는 일본어 관용구)‘라는 말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황제 ‘붉은 수염‘은 자기도 질 수 없다 생각하고 뛰어든 게 아닐까. 황제 프리드리히 1세는 예순여덟 살이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병이라는 걸 모르고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가 병상에 드러누웠다는 기록은 전혀 없다. 그런 만큼 체력에 자신이 있었을 테고, 그 탓에 나이도 잊어버렸을 것이다. 그래서 부하들과 함께 반나체로 뛰어든 것까지는 좋았는데 그대로 가라앉아버렸고, 끌어냈을 때는 이미 죽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현대의 연구자들도 대부분 심장마비로 인한 익사라는 데 의견이 일치하는 듯하다. 익사한 날은 1190년 6월 10일, 독일을 떠나온 지 1년 1개월이 지나 있었다. _ 시오노 나나미, <십자군 이야기 3>, p68

실제로, 공식 기록에 남겨진 황제에 대한 기록은 이와 다르다. <프리드리히 황제의 업적 Gesta Friderici I imperatoris>에는 당당하면서도 인격자인 황제의 모습이 버젓이 기록되어 있지만, 작가의 상상력 앞에 진실은 구석으로 치워진다. 이런 편향된 기술이 과연 한 인물에 한정되었을까. 이런 점을 고려해본다면, 역사에 관심있는 이들이라면 <십자군 이야기> 이야기는 야사를 접했다는 정도로 읽길 권한다.

그의 인격은 그의 힘을 시기하는 자조차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균형잡힌 사람이다. 그는 매우 큰 사람보다는 작으나 보통 신장의 사람보다는 더 크고 고귀하다. 그는 금발이고 이마에서 웨이브가 있다. 그의 눈은 날카롭고, 그의 수염은 붉고, 그의 입술은 곱다... 그의 모습은 밝고 기운차다. 그의 이빨은 눈같이 희다... 분노대신 겸손으로 그는 얼굴을 붉힌다. 그의 어깨는 넓은편이고, 강한 체격이다.(출처 : 위키백과)

<십자군 이야기 3>를 읽으면서 느꼈던 두 가지 생각. 역사에 대한 재해석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며, 역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실에 기반한 소설이 아닌 정식 기록을 통해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리뷰를 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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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0-08-23 23: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시오노 씨의 글들을 한 때는 사랑해서
열심으로 읽었으나, 이모 작가의 경우
처럼 본색이 드러나 손절하게 되었네요.

그렇게 칭송해 마지 않던 평론가들이
지금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하네요.
수오지심은 있는지 과연.

겨울호랑이 2020-08-23 23:43   좋아요 1 | URL
그렇습니다. 저 또한 레삭매냐님 말씀처럼 시오노 나나미의 글을 좋아했으나, 이제는 더 손이 가질 않네요.. 그렇지 않아도, 시오노 나나미의 작품과 관련한 이별 페이퍼를 작성 중에 있습니다. 레삭매냐님 눈 높이에 부족하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시간되신다면 함께 나눌 수 있는 시간 되었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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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54. 나라는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에 시카리파라는 새로운 강도단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환한 대낮에 도시 한가운데에서 살인을 일삼는 자들이었다. 255. 특히 그들은 축제일에 무리 가운데 섞여 있다가 옷 속에 숨겨둔 칼로 상대방을 찔러 살해했다. 적이 쓰러지면 살인자들은 군중 사이로 숨어들어가 무리의 일부인 것처럼 행세했다. 이런 뻔뻔한 행위가 도처에서 자행되었다.(p228)... 2.408. 이때 무슨 수를 써서라도 전쟁을 일으키려고 하던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 마사다라고 불리는 요새로 쳐들어갔다. 그들은 이곳을 급습하여 차지하고 로마 경비병들을 죽였으며 그곳에 자기편 소속의 군인들을 배치했다... 409.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아들로 당시 제사를 주관하던 자들을 감독하던 용감한 젊은이 엘르아살은 이방인으로부터 어떠한 예물이나 희생제물도 받지 말라고 명령했다. 로마와의 전쟁 시작의 원인은 바로 이것이었다.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1>, p258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 ~ AD 100 ?)의 <유대 전쟁사 The Wars of the Jews>는  AD 70년 경에 있었던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Antiochus IV, BC 215 ~ BC 164)의 예루살렘 침공부터 마사다(Massada)에서의 최후의 저항까지의 역사를 다룬 역사책이다. 처음에는 유대 저항군의 입장에서 서 있다가 이후 베스파시아누스(Titus Flavius Vespasianus, AD 9 ~ AD 79) 장군(후에 황제)에게 투항한 이후 로마군의 입장에서 예루살렘 함락까지를 지켜보게 요세푸스. 그는 유대 전쟁의 시작을 대제사장 아나니아의 아들 엘르아살의 마사다(Massada) 요새 점령으로부터 잡는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유대 전쟁의 마지막도 바로 이 요새에서 장식하게 된다. 최초이자 최후의 항쟁지 마사다 요새. 그곳은 어떤 곳인가.


 1.252. 플라비우스 실바가 유대지역의 통치권을 물려받았다. 그는 모든 유대지역이 로마에 정복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하나의 요새가 아직도 반역을 도모하고 있음을 알고, 흩어져 배치되어 있던 병력을 모두 집결시켜 이 요새를 치러 갔다. 이 마지막 요새는 바로 마사다였다. 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p283

  

[사진] Massada(출처 : https://www.secrettelaviv.com/best/activities/massada)

 

 마사다 요새는 이스라엘의 초급 장교들이 임관 직전에 반드시 방문하는 곳으로 알려져있다. 로마군의 공격으로 예루살렘(Jerusalem) 함락 후 최후의 저항을 한 곳으로 알려진 마사다 요새. 생존자 없이 전원 자결하여 비장함을 풍기는 이곳에서 이스라엘 청년 장교들은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을 것을 맹세한다고 들었다. 이를 장교 임관 전 남한산성(南漢山城)에 올라 삼전도(三田渡)의 굴욕을 되새기는 프로그램 중 들었던 기억이 난다. (개인적으로는 이스라엘의 마사다 요새와 같은 의미를 남한산성이 지니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고 있다. 그보다는 한강대교에 가서 한국전쟁 당시 수뇌부의 수많은 피난민과 군인들이 건너고 있는 한강다리를 끊고 도망갔었던 아픈 역사를 되새기는 편이 보다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런 이유로 우리에게도 '마사다'는 비장한 장소로 여겨지지만, 당시의 상황을 지켜본 역사가 요세푸스의 눈에는 그렇게 비춰지지 않았나 보다. 그의 눈에 마사다에 모인 이들은 광신도(狂信徒, zealot)에 불과하다.


 253. 마사다 요새를 지키던 시카리파 수장 엘르아살은 매우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이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유다의 후손으로, 이 유다는 퀴리니우스가 유대 총독으로 부임했을 때 실시한 인구조사를 거부하라고 많은 유대인을 선동한 자였다. 254. 시카리파 유대인들은 로마에 항복한 자들을 적으로 간주하여 그들의 재산을 강탕하고 집에 불을 질렀다. 255. 그들은 유대인들이 그토록 간절히 자유를 지키려고 투쟁해온 노력을 불명예스럽게 포기한 채 로마인의 속박 아래로 스스로 몸을 내던진 자는 이방인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하면서 자신들의 행동을 정당화했다. 256. 왜냐하면 시카리파는 이들과 더불어 반란에 가담하여 로마군을 상대로 전쟁을 벌였던 동족 유대인들에게 가장 지독한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258. 더욱이 시카리인들은 자신들의 위선을 드러나자 그들의 악행에 대해 정당한 비난을 퍼붓는 동족들을 더 가혹하게 다루었다... 260. 개인적이든 혹은 사회적이든 간에 모든 사람이 마치 전염병에 걸린듯이 범죄에 물들여 있었다... 262. 가장 일선에서 동족에게 불법과 만행을 저지른 자들은 바로 시카리인들이었다. 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p283


 처음에는 사두가이파에서 바리사이파로 개종하고, 다시 로마군에게 투항한 요세푸스. 동족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요세푸스는 변절자겠지만, 유대 전쟁 전체를 떨어져서 바라본 그의 시선은 냉정하다. 그에게 메시아(Messiah)의 재림을 기대하며 전쟁을 주장한 시카리파와 젤롯당들은 예루살렘 파괴의 원인제공자에 지나지 않는다.


 268. 이들은 유대 사회의 모든 질서를 남김없이 파괴하고 온통 무법천지로 만들어 놓았다. 그 결과 이른바 젤롯당으로 불리는 족속이 활개를 치게 되었다. 이들은 젤롯이라는 이름대로 행위에 열심을 다하는 자들이었다... 270. 그들은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한다는 뜻에서 스스로를 열심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열심'이라는 말의 뜻을 야만스러운 성품으로 간주했던지, 혹은 가장 흉악한 범죄를 선한 일이라고 여겼던지, 사실상 그들은 그 이름을 조롱거리로 삼을 만한 행위를 일삼았다._ 플라비우스 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2>, p285


 광신도의 열정이 부른 마사다의 비극. 요세푸스의 <유대 전쟁사>의 마지막 주제다. 이 사건 이후 유대 민족은 자신들의 나라를 가지기까지 2,000여년의 시간을 더 기다려야 했다. 그렇지만, 더 큰 비극은 역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이 아닐까. 광신도들의 잘못된 믿음이 가져온 폐해는 어제 오늘날의 문제는 아니지만, 2020년 광화문 집회 이후 이 문제는 더욱 아프게 다가오고, 우리의 삶이 비극(悲劇)으로 가는 듯 하다.

 

훌륭한 플롯은 단일한 결말을 가져야지, 일부 사람들이 말하듯 이중의 결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주인공의 운명은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뀌어서는 안 되고 행복에서 불행으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비행 때문이 아니고 중대한 하마르티아(hamartia 과실) 때문이어야 한다. _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제13장 11 ~ 15, p385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 BC 385 ~ BC 323)의 <시학 peri Poietikes>에서는 훌륭한 비극의 플롯을 '중대한 과실에서 오는 행복에서 불행으로의  전환'을으로 언급한다. 연일 쏟아지는 확진자 안내 문자를 보면서 얼마전까지 'K방역'의 성공이 또다른 시카리파에 의해 훼손받고 있음을 절감한다. 비록, 지금은 우리의 현실이 비극의 플롯요소를 잘 갖추고 있지만, 아직 극(劇)은 끝나지 않았기에 조용히 집에서 주말을 보낸다. 누가 또 알겠는가. 헨리크 입센(Henrik Johan Ibsen, 1828 ~ 1906)의 <인형의 집 Et Dukkehjem >에서처럼 일반 대중들이 강력히 희망하면 작품의 결말이 불행에서 행복으로 바뀔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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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 2020-08-30 0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익한 글 잘읽고 갑니다...저도 꼭 사봐야겠네요...^^

겨울호랑이 2020-08-30 14:02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하마님 즐거운 독서, 건강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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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유라시아 견문> 시리즈를 덮으며 함께 읽으면 좋을 책들을 나누며 이번 페이퍼에서는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처음 <유라시아 견문>을 읽으면서, 책의 구성이 낯설게 다가왔다. 보통 여행기의 경우, 저자의 여행 경로에 따라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다 보면, 시간에 따라 공간이 묶이는 구성이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다.  지역 별로 구분해서 '동북아시아', '동남아시아', '지중해' 등으로 묶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권마다 '동 東 - 서 西'의 도시들이 서술되는 기준일까에 관심이 미친다. 그러다가, <유라시아 견문 2>의 도시들을 훑으며, 이들이 해안 도시라는 공통점을 찾게 되었고 대체적으로 '바다의 길'에 해당하는 경로임을 알아냈다. 그렇다면, <유라시아 견문 1>에서는 중국이, <유라시아 견문 3>에서는 러시아, 몽골이 배치된 이유가 보다 분명해진다. 각 권은 '비단길', '바닷길', '초원의 길'에 대응하고, 이를 의식한 편집임을 깨닫게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견문록이면서도 문명사(文明史)의 관점에서 현대를 조망한 책이라 할 것이다. 때문에, 관련있는 책들을 고르자면, 정말 차고 넘치지만 그 중에서도 먼저 떠오르는 것들을 올려본다.

 











 먼저,  정수일 박사의 <실크로드 도록>이 도움이 될 것이다. 해당 경로의 도시와 과거 역사, 유물을 소개한 도록을 통해서 우리는 생각보다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를 깨닫게 된다. 추가적으로 실크로드 사전도 함께 읽으면 좋겠다. 여기에 저자의 여행기도 있지만, 아직 읽지 않아 리스트에 포함하지는 않는다.


 여기에 더해 세계 4대 여행기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오도릭의 동방기행>,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들이 곁들여 진다면, <유라시아 견문>에서 소개된 국가, 도시의 옛 모습 등을 확인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들은 <유라시아 견문>을 시간적으로 보완할 수 있는 고전들이다.















  다소 아쉬움에 느껴진다면 여기에 더해 라시드 앗 딘의 <집사>까지 읽으면 어떨까. 이를 통해 낯선 중앙아시아 몽골 제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서진>과, <신장의 역사>는 중국과 중앙아시아 역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 인도와 관련해서는  문학작품이지만 <마하바라따>를 추천한다. 물론 양이 방대하지만, 노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중국 문화에 대해 '대륙은 스케일이 다르다'고 하지만, <마하바라따>는 양(量)이 아닌 차원(次元)이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게 만든다.


























































 












 



 저자는 <유라시아 견문3>에서 서양 사상이 공자의 영향을 짙게 받았음을 말하면서,문명교류의 재개를 강조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황태연 교수의 책들이 도움이 될 것이다. 분량도 제법 되니 쌓아놓고만 있어도 마음이 채워지는 책들이다. 만약, 양이 부담스럽다면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를 읽어도 대강의 내용을 잡는데 큰 무리는 없어 보인다.












 



 최근 저자는 서구 계몽주의의 영향을 국가별로 나눈 책들도 냈지만, 아직 읽지 않아서 지금은 이에 대해 평가하기 어렵다. 기회가 되면 후에 다루도록 하고 일단은 넘기자.


 또한, 저자는 문명 교류를 통해 새로운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여러 곳에서 주장한다. 이는 문명의 성격이 지역적이고 고립적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변화와 생성에서 찾고 있다는 느낌을 받느다. 이런 역사관의 측면에서 아놀드 토인비의 책들과 듀런트의 책들을 비교해서 읽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서양 고대 철학에서 '변화'를 강조한 헤라클레이토스와 '정지'를 강조한 파르메니데스의 관점을 비교해 보면 어떨까...


























































































 물론, <유라시아 견문>에는 실크로드의 경로를 담고 있는 국가들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간략하게나마 담고 있기에 이들에 해당하는 책들을 넣는다면 분명 더 많은 책들을 담을 수 있겠지만, 개략적으로 읽거나 알고 있는 책들을 중심으로 리스트를 만들어 본다. 이 정도면 한 1년 동안은 심심하지 않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해당되는 책들의 리뷰는 정리가 되는 책들부터 차례로 올리기로 하고 <유라시아 견문>시리즈를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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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darkan 2021-02-21 17:1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리뷰와 소개입니다!

겨울호랑이 2021-02-21 17:32   좋아요 0 | URL
ddarkan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